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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격 외 혈통 천재-200화 (200/488)

200. 상성이 안 좋다.

깡!

4번 타자는 산탄총이기도 하지만, 훌륭한 방패가 될 수도 있었다.

피 묻은 칼날이 4번 타자의 옆면을 후렸고.

상대는 공격이 막힌 대가로, 턱주가리에 내 주먹을 맞아야 했다.

우직.

턱뼈가 쪼개지며 곰 대가리 변신족의 눈깔이 흰자만 남고 돌아갔다.

철완의 요령으로 때린 주먹이다. 발이 붕 뜨더니 몸이 공중에서 회전했다.

난 반쯤 틀은 몸을 돌렸다.

쿵, 바닥에 떨어진 곰 대가리 변신족이 푸들푸들 떨며 거품을 물었다.

“흐으.”

주름 가득한 얼굴의 상대가 그걸 보고 신음을 흘렸다.

턱을 덜덜 떨면서도 물러날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렇게 내 앞을 막아선 실험체가 열이 넘었다.

전부 늙었다. 주름 가득한 얼굴의 혼혈 변신족이었다.

난 그 뒤편에 선 박혁에게 시선을 던지며 입을 열었다.

“……실버산업이냐? 노인 일자리 찾아 주기 홍보대사야?”

왜 사람을 패륜아로 느껴지게 하는 거냐.

동방예의지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에게 노인을 두들겨 패는 건 거부감이 느껴지는 일이었다.

잠깐 입을 연 사이다.

“킷!”

선두에 선 노인 하나가 달려들었다.

난 달려드는 상대의 발을 걸며 목덜미를 잡고 옆으로 던졌다.

훙- 하고 날아간 실험체가 텅- 하고 떨어지며 바닥을 굴렀다.

떨어지는 타이밍에 맞춰 핸드 불릿 두 발을 던졌다.

균형을 잃었으니, 탄도를 보고 피하는 건 엄두도 못 냈다.

퍼벅.

“끄으으으.”

양 허벅지가 뚫린 실험체가 어금니를 악물고 비명을 참아 냈다.

그가 흘린 피가 아스팔트 위, 횡단보도 표시의 하얀 마크를 붉게 물들였다.

“미친 새끼구나. 손을 쓰는 일에 가차 없어.”

노인네 하나가 말했다.

“할아버지, 집에 가서 손주 재롱을 볼 시간에 이러시면 어떻게 합니까.”

“난 열여덟 살이야.”

“……대체 어떤 십팔 년을 살았길래 얼굴이 그 모양이냐?”

“실험체로 살았지.”

사람 할 말 없게 만드네.

“얌전히 나올래, 동생? 널 그렇게 만든 친구 건강에 볼일이 있거든.”

“웃기지 마라, 괴물 새끼.”

대화가 가능하다. 그런데 자기를 실험체로 만든 사람을 위해 싸운단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이해하지 않았다.

알 게 뭐냐.

뭐, 실험체 중에서도, 저 박혁이란 인간과 나름대로의 사연이 있을 수 있겠지.

그 사연을 안다고 내가 변할까? 안 변할 거다. 난 여전히 저 박혁을 죽도록 팰 거다.

그럼 알 필요도 없었다.

무시하고 한 걸음.

주춤하더니, 노안의 실험체 무리가 한 걸음 물러났다.

이들에게 희망은 없었다.

이미 싸움의 승패는 갈렸다.

불멸특수대와 변신특수대의 합작품이 장내를 제압했다.

간간이 초능 변신족이 날뛰긴 했다. 싸우며 본 장면이 떠올랐다.

웬 실험체가 양손을 펼치자, 달려들던 변신족 둘의 몸이 묶였다.

“염동력이다.”

묶인 변신족이 말했다.

금력 묶기, 염동력자가 흔히 쓰는 기술이다.

원리는 간단했다.

염동력은 무형의 힘이다. 단순하게 밀어내거나 잡아채는 것보다는, 패턴을 정해서 훈련하면 같은 힘으로 더 강력한 구속력을 발휘했다.

고로 금력 묶기란, 밧줄 따위의 이미지를 구현해서 반복 훈련해 만든 기술이란 거다.

묶인 변신족 둘은 이미 늑대 형태로 변형한 상태였다.

“아우우!”

둘은 동시에 하울링을 토하며 힘을 줬다. 우두둑우두둑- 하고 뼈 맞물리는 소리가 울렸지만, 몸을 묶은 힘은 풀리진 않았다.

그래, 대단하다.

초능과 변신의 합, 그중에서도 손꼽히는 실험체다.

일대일로 붙으면 피지컬 소진 수준의 변신족도 곤란할 거다.

단순히 힘 차이가 문제가 아니다. 저 초능이란 변수가 전투 향방에 영향을 끼친다.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일까.

퉁, 퍽.

초능력은 집중력을 필요로 한다. 특히나 염동력은 방해를 받으며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었다.

머리에 총탄을 맞은 채로 염동력을 유지할 수는 없다는 거다.

머리통에 탄을 맞은 놈이 바닥을 굴렀다.

관자놀이로 피가 흘렀다.

죽진 않았다. 가까스로 고개를 돌려 피한 것 같았다.

그래도 염동은 풀렸다.

저격 포인트를 점령한 불멸특수대원의 솜씨였다.

사수의 캐쉬히포만큼은 아니더라도, 변신족을 제압할 총탄은 충분했다.

다치는 사람도 나오긴 했는데.

상황이 워낙 유리했다.

판을 잘 짰다고 해야 맞았다.

변신이 앞을 막고 불멸이 지원한다.

이게 바로 변신과 불멸의 콜라보레이션이다.

팬더 형 나이스다. 판을 짠 게 그 양반이니까.

염동력을 뿌리든, 제 몸을 투명하게 만들어서 지금처럼 내 뒤를 노리든.

상황은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난 앞으로 나가는 척하다가 몸을 휘릭 돌렸다.

4번 타자는 바닥에 놓고, 나이프를 뽑아 그었다.

서걱, 트득.

칼날에 걸리는 느낌, 방검복이다.

나이프를 그은 채로 무릎을 치켜 세웠다.

떡.

상대가 막았다.

난 막은 상대의 안면 부분을 향해 이마를 들이받았다.

꽝.

이마에 묵직한 충격이 남았다. 뾰족한 것에 찔린 기분이었다.

그제야 투명화가 풀린 변신족 놈이 보였다.

뾰족한 주둥이와 툭 튀어나온 눈깔이 보였다.

변신이 어설프게 돼서 피부의 반은 인간이었고, 반은 비늘이었다.

주둥이로 피를 질질 흘리는 놈이 부르르 떨려 말했다.

“투명화를…….”

난 놈의 말을 끊었다.

“간파했지, 숨을 그렇게 크게 쉬면서 다가오는데 어떻게 모르겠냐.”

나한테 불멸의 피도 흐르는 거 모르냐?

난 상대의 피부와 생김새를 살피며 물었다.

“도마뱀이야?”

“카멜레온이다.”

놈이 말하며 몸을 일으켰다. 다시 몸이 주변 사물과 동화되며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숨을 참고 가 보지.”

지랄은.

놈은 사라졌지만, 흔적은 남았다.

한번 붙은 이상, 냄새가 남고 기척이 남는다. 그걸 놓칠 것 같냐고.

거기에 속임수도 썼다.

덤빌 것처럼 굴고 뒤로 물러난다. 정확히는 박혁의 곁으로 향했다.

단숨에 달려가서 조지고 싶은데, 주름진 낯을 가진 변신족 무리가 눈을 형형히 빛내고 있었다.

난 왼쪽 새끼손가락을 깨물었다.

우득.

피가 흘렀다.

심상을 집중해 웨어러블 기어를 깨웠다.

피 한 방울에 발동, 다시 피 한 방울에 탄환 장전이다.

내 팔을 뚫으며 생긴 기어가 검지 끝에 붉게 물든 총구를 만들었다.

깨문 새끼손가락은 이미 재생 끝이다.

눈에 보이지 않은 상대를 가상으로 그렸다.

조금 전 본 모습을 심상으로 그리고, 그대로 겨누어 쐈다.

퉁.

내 피로 만들어진 탄환이 허공을 뚫었다.

퍽- 하고 뚫린 허공 사이에서 울컥하고 붉은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미친.”

누군가 중얼거렸다.

투명화가 풀린 놈에게 시선을 쏠리는 사이, 난 기척을 죽이고 내달렸다.

단숨에 노안 부대의 곁을 스쳐 지나치고 박혁이 곁에 선 뒤, 난 말했다.

“인상이 되게 나쁘시네요. 제가 그쪽 공부하는 사람인데, 몇 대 맞고 얘기 좀 해 보실래요?”

화들짝 놀란 박혁이 손을 휘저었다.

실험체 변신족이랑 투덕거리다 이런 헛손질을 보니, 한숨이 나올 지경이었다.

피했다.

피하고 손을 뻗어 박혁의 멱살을 쥐려 했다.

오른손을 뻗었다. 내 손이 상대의 목덜미에 다다를 때쯤.

뜨끔.

육감과 직감의 영역이었다.

불길함을 느꼈고, 난 무시하지 않았다.

무게 중심을 이동하고 뒤로 몸을 젖히는 순간이다.

어설픈 움직임을 보이던 박혁이 절제된 동작으로 칼날을 꺼내 그었다.

핏, 칼날이 손끝을 스쳤다.

손가락 끝에서 핏방울이 튀었다.

다섯 걸음 거리를 단숨에 뛰어서 물러나고 보니.

“감이 좋구나.”

박혁이 입꼬리를 올리는 게 보였다.

놈의 손에 특이한 형태의 나이프가 보였다.

뾰족한 칼날 끝이 두 갈래로 갈린 나이프다.

“이제까지 내가 잘 숨어다녀서 살아남았다고 생각했나? 이 어설픈 꼬맹아, 난 1세대 특수종과 같은 세대를 살아온 몸이다.”

뭐지? 난 자세를 바로 하며 놈을 바라봤다.

상대에게서 위화감이 느껴졌다.

“나이 많아서 좋겠네.”

말하며 상대의 태도에서 느껴지는 위화감의 정체를 파악하려 했다.

눈을 두어 번 깜빡이는 사이, 생각을 끝마쳤다.

놈의 말투가 거슬렸다.

승산을 잡은 듯한 말투였다.

난 고개를 갸웃했다.

겨우 손가락 스친 정도로?

그래서 위화감을 느꼈다. 이긴 것처럼 굴기에는 좀 부족하지 않냐?

“약이 안 되면 다른 거로 절여서 가져가야겠지.”

난 놈이 그리 말한 이유를 금세 알 수 있었다.

손가락 끝, 재생이 안 된다. 피가 계속 흘렀다.

상황 파악을 다 끝내기도 전, 놈의 눈이 녹색으로 빛났다.

난 그와 동시에 몸을 옆으로 날렸다.

내가 있던 자리를 살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무슨 일이 일어났다. 다만 보이지 않을 뿐.

“너 감이 정말 좋구나.”

“독?”

“감이 좋은 정도가 아닌데.”

“내가 불멸특수대 특급 에이스였거든.”

자신만만하다.

그럴 만도 했다.

제 입으로 말하지 않았나.

무려 1세대의 특수종과 같은 세대를 살아왔다고.

그리고 이제까지 살아남았다면, 당연히 믿는 구석 하나가 있을 법도 했다.

다만.

“운이 없네.”

“후회해도 늦었다.”

아니, 나 말고.

상성이 안 좋다.

내가 단순한 변신족이었다면 이게 먹혔을지도 모르지.

서걱.

난 거침없이 손가락을 잘랐다.

나이프 칼날이 아주 잘 들었다.

갤럭시 필드가 걸린 장갑을 벗어서 챙겨 놔서 다행이다.

이것도 코트처럼 망가지게 둘 수는 없지 않나.

덕분에 저 칼날에 노출되지 않았다.

괜히 장갑 망가지면 아깝잖아.

차라리 손가락이 낫지.

난 불멸자니까.

나 독 내성 훈련도 받았고.

불멸자 훈련 중에 그런 게 있다.

웃긴 건, 변신족 훈련 중에도 있다.

두 종의 특수종 훈련에서 가장 중요하게 꼽는 건, 내가 당한 종류의 독이 무엇인가 파악하는 거다.

물론 난 이것도 금세 익혔다.

그래서다.

내 몸을 파고든 독이 뭔지 알아내는 건, 잠깐이면 충분했다.

내 몸에 침범한 건 마법적 처리가 섞인 독이다.

저주와 초능이 배합된 아주 독특한 독인데.

침투해서 전신을 침식해, 기능을 상실케 하는 종류였다.

손가락 끝이 마비라도 된 것처럼 안 움직이더라고.

“어?”

손가락을 자르는 걸 보고 놈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뭘 그렇게 놀라고 그러나.”

손가락 끝이다. 마디 하나도 채 자르지 않았다. 재생하는 데 1분도 안 걸릴걸?

눈에 그린 라이트 켜는 건, 아마도 초능으로 만드는 독이겠지.

저건 당해 봐야 알 수 있을 텐데.

굳이 당할 필요가 있을까나.

“너…….”

말을 잇지 못하는 박혁을 향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이건 비밀인데, 내 몸에는 불멸의 피도 흐른다.”

혼혈, 이레귤러, 그따위 단어가 날 먹음직스러운 미끼로 만든 거다.

물론 상대도 그걸 잘 알았다.

성큼성큼 걸어서 다시 거리를 좁혔다.

상대의 칼날이 나한테 닿을 거리다.

그럼 내 칼날도 상대에게 닿을 거리다.

손안에서 나이프를 휘릭 돌려 역수로 잡고 물었다.

“덤빌래?”

박혁은 포기하지 않았다.

끝이 두 갈래로 나뉜 칼날이 내 목을 노렸다.

팅.

칼날로 튕겨 내고 잽을 뿌렸다. 좌우로 리듬을 타며 주먹과 나이프를 뻗자, 박혁의 손도 바빠졌다.

놈의 눈도 덩달아 바빴다.

녹색의 빛을 뿌리며 날 바라보는데, 난 가뿐히 피했다.

칼날과 눈길, 그사이 섞인 격투 콤비네이션.

박혁은 뛰어난 전투원이기도 했다.

거기에 독을 쓰는 초능까지 갖췄다.

어지간한 불멸이었다면 이 작자의 기술에 당했을 듯싶다.

이제까지 만난 상대 중 손에 꼽을 정도로 좋은 몸놀림이다.

다만, 상대가 변신족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몸을 쓰는 능력이라면 특수종 최고의 운동 신경을 갖췄으며.

단일 전투력 최강의 몸뚱이를 가진 게 변신족이다.

어지간한 불멸이나 초능은 덤비면 끔살이다.

이 정도로 나랑 맞붙는 게 잘 싸우는 거다.

몇 번 놀아 주다가 나이프로 상대의 손목 힘줄을 그었다.

서걱.

방검복도 입지 않은 박혁의 손목에서 피가 튀었다.

튄 피가 후두둑 바닥에 흩뿌려졌다.

뒤로 두 발자국 물러나자, 기다렸다는 듯 박혁도 물러났다.

“헉, 헉.”

그러고는 숨을 몰아쉰다.

“힘들어?”

물었다.

“힘드냐고? 시발, 너 뭐냐? 이 괴물 새끼.”

호흡을 고른 박혁이 말했다.

이거 자꾸 어깨를 으쓱하게 만드네.

괴물이란 단어도 자주 들으니까 내 호 같다.

연암 박지원처럼, 괴물 유광익, 이런 느낌이란 말이지.

“어린 변신족이 이렇게 싸움을 잘한다고?”

“칭찬해도 안 봐줄 건데.”

내가 말했다.

독은 누구에게나 치명적이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뭐?

안 맞으면 어쩔 건데.

그럼 답이 없지, 애초에 신체 능력 차이가 너무 나잖아.

물론 내가 일반 변신족이었다면 첫 칼빵에 승부가 났겠지만.

그러니까 상성이 안 좋다니까.

변신족이자, 불멸자인 나에게.

상대가 가진 패는 무용했다.

독도, 긴 세월 단련한 기술과 노련한 경험도.

다 의미 없다.

“곱게 갑시다.”

내가 말했다.

실험체를 총괄하는 사냥꾼이든 뭐든, 일단 뛰쳐 나와서 만나기만 하면 됐다.

난 그걸 노렸다.

상대는 그걸 몰랐고.

아마 내가 광린에 당하지 않아도 잡을 수 있다고 믿었겠지.

착각은 자유다.

누구에게나 그럴듯한 계획은 있다. 처맞기 전까지만 그럴듯한 계획이.

“시발.”

박혁이 욕설을 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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