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 잡았다, 요놈.
노안(老顔)부대 백.
순혈 실험체 오십.
초능을 갖춘 변신족으로 만든 십지대까지.
덜컹.
위장용 창고 문을 열고 나서자, 빛이 눈을 찔렀다.
해가 중천을 넘어 한쪽으로 넘어가며 오후의 따사로운 햇볕이 눈을 찔렀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이었다.
부웅.
창고 바로 앞으로 차 한 대가 지나쳤다.
저속으로 달리던 차, 그 조수석에 앉은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놀라서 눈이 커진 남자의 시선이 자신의 좌우를 훑었다.
노력과 자본을 대가로 만든 자신의 부대가 번듯이 그들을 바라볼 터였다.
“……어? 음? 어어?”
조수석에 앉은 남자의 입이 벌어지고, 언어라고 말할 수 없는 소리만 이어졌다.
“왜?”
운전석에 앉은 남자가 말하며 고개를 돌렸다.
마침 신호가 바뀌었는지 차가 정지선 앞에서 멈췄다.
그도 놀랐다. 입만 벙긋거릴 뿐 말을 잇지 못했다.
“치워.”
박혁이 말했다.
십지대 중 하나가 차를 향해 검지와 중지를 모아 들었다.
무형의 힘, 염동력이 발동했다.
우드드득.
차의 오른쪽 바퀴 두 개가 붕 뜨더니 그대로 뒤집어졌다.
“오으아아아!”
“와씨, 야씨!”
차 안에 갇힌 남자 둘이 버둥거렸다.
그걸 본 지나가던 여자의 비명이 귀를 울렸다.
“꺄아아악!”
박혁은 피부 솜털이 올올이 서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는 연구도 좋고 돈도 좋아했지만, 그보다 좋아하는 건 이런 종류의 ‘작업’이었다.
그가 괜히 사냥꾼으로 사는 게 아니었다.
푹.
비명을 내지르던 여자의 목에 짐승의 손톱이 박혔다.
피가 튀며, 여자의 몸이 허물어졌다.
실험체 중 하나가 그 피를 게걸스럽게 핥았다.
비명과 소음, 피비린내.
박혁이 사는 이유다.
“그만.”
박혁은 감정을 추슬렀다.
충분히 모든 상황을 고려했다면 주저할 이유도, 필요도 없었다.
그의 장점 중 하나였다.
결정한 일을 되돌아보지 않는 거다.
곧 경찰이나 불특대 따위가 몰려들면 골치 아파질 테니, 그 전에 반쯤 시체가 되어 타오르고 있을 유광익의 몸뚱이를 들고 빠질 생각이기도 했다.
병력은 시위용이었다.
박혁이란 인간을 함부로 건드리지 말라는 경고이기도 했다.
“가자.”
십지대가 뒤로 늘어선 채로 움직였다.
순혈 실험체 오십이 선두, 노안대가 그 뒤를 따랐다.
빠-앙.
도로 위를 가로지르자, 경적이 울렸다. 정작 경적을 울린 차가 급히 우회전하더니 도망치듯 자리를 떠났다.
교통 대란이 일어났다.
놀란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언택트 경보가 터졌다.
그래도 누구 하나 덤비는 사람은 없었다.
광린탄이 터진 곳은 뛰면 5분도 걸리지 않을 거리였다.
도착한 박혁은 운 좋게 살아남은 넷을 바라봤다.
마법사 하나와 단군 그룹이 자랑하는 변신특수대 화랑 셋.
운 하나는 기가 막힌 새끼들이었다.
어떻게 넷 전부 광린탄의 여파에서 벗어났는지.
“오늘 나는 관대하다. 전부 꺼져라.”
살려 줄 마음도 있었고, 괜히 저것들 잡는다면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도 않았다.
유광익 하나를 잡아서 얻을 가치는 무궁무진하다.
그는 이레귤러이자, 변신과 불멸의 혼혈.
이제껏 밝히지 못한 특수종의 비밀을 파헤칠 기회였다.
세포 하나까지 전부 헤집어 줄 터였다.
‘일단 마약으로 뇌 좀 적시고.’
죽어 버리면 그만한 손실도 없으니까.
뭐, 쉽게 죽진 않을 거다. 그는 불멸자이기도 하니까.
박혁은 이곳을 벗어나 몸을 숨기고 도망가는 걸 떠올렸다.
계획은 완벽했다.
심장이 짜릿했다. 열매를 따기 직전이 가장 즐거운 법이었다.
“먹혔군.”
얼굴에 흉터를 가진 변신족 놈이 중얼거렸다.
“그러게요. 쉽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제 무기를 믿나 봐요.”
“5분 됐다.”
여자 변신족의 말에 다른 변신족도 입을 열었다.
박혁이 생각한 분위기와는 많이 달랐다.
마법사와 눈이 마주쳤다.
“뭘 봐, 씹.”
마법사가 말했다.
이건 뭐지? 겁을 집어먹진 않더라도, 도망갈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오빠 귀한 얼굴에 흉 남으면 넌 뒤지는 거야.”
마법사가 또 말했다.
저건 미친년인가?
그렇게 생각하며 뭐라 입을 열려고 할 때다.
“보스.”
십지대 중 하나가 말했다.
십지 중, 유일하게 초능을 갖추지 않은 부하다.
능력은 레이더.
변신 능력을 포기한 대신, 불멸의 감각을 갖춘 혼혈이다.
그녀가 미간을 찌푸리며 손가락을 들었다.
“저기.”
그 손가락 끝이 향한 곳.
빛이 뿜어져 나오는 창고 안이다.
그러니까 광린탄이 터진 곳.
그 안에서 퍽- 하고 사람이 튀어나왔다.
전신이 불타오르는 인간이다.
그걸 본 마법사가 손을 뻗었다.
미친 여자 마법사의 손 위로 종이 몇 장이 타오르더니, 남자의 몸에 붙은 불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훅- 하고 몸에 붙은 불이 꺼진 남자의 피부는 녹아내린 듯 끔찍한 모습이었다.
곧 일그러진 피부가 꿈틀거리더니, 뒤틀리고 찢어졌다.
피 몇 방울이 그의 볼을 타고 흘러 바닥에 뚝 하고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얼굴이 본래 모습을 찾기 시작했다.
“하, 진짜 졸라 아프다.”
남자가 말했다.
얼굴 형태가 눈에 익었다.
사냥감, 유광익이었다.
박혁은 눈을 깜빡였다. 광익은 자신을 보지도 않았다.
몇 번 눈을 깜빡이던 박혁은 자기도 모르게 물었다.
“……너 왜 걷냐?”
묻고 싶은 게 많았다.
어떻게 멀쩡한 건지, 저 안에서 뭘 한 건지.
그런데 입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저게 걸으면 안 되는데, 멀쩡하게 움직이면 안 되는데.
황당해서 나온 물음이다.
“주님께서 이르시되, 그분의 손이 닿으면 절름발이도 걷게 하시니.”
광익이 중얼거렸다.
“……성경에 그런 구절이 있어요?”
“없다.”
“오빠?”
사냥감은 피식 웃었다. 어느새 얼굴이 거의 본래 형태로 돌아왔다.
그는 웃은 그대로 말했다.
“그냥 한번 읊어 봤지, 그럴듯하지 않았어?”
“장래 희망이 사이비 교주라면 그럴듯했다.”
흉터 변신족이 말했다.
“내 장래 희망은 염병할 과학자 뒤통수 후리는 건데.”
말하며 광익이 웃었다.
“어떻게? 어떻게 나왔지?”
그제야 박혁은 제대로 된 물음을 던졌다.
* * *
저 박혁이란 놈이 놀란 걸 보니, 뿌듯했다.
고생한 가치가 있었다.
광린탄은 무서운 무기였다.
다만, 그 형태가 명확했다.
화학 물질이라기보다는 주문에 가까운 무기였다.
빛이 닿는 곳을 태운다.
그럼 빛이 닿지 않는 곳을 찾으면?
난 열기가 느껴지자마자 땅을 때려 부쉈다.
부순 땅으로 파고들고, 주변에 있는 모든 걸 앞으로 던져서 그림자를 만들었다.
물론 그것도 잠시였다.
닿는 모든 것에 불을 붙여 버리니, 어디도 안전하지 않았다.
호흡을 참고 눈을 감았다.
호흡기와 시신경이 타게 둘 수는 없었다.
그렇게 광린 안에서 버티다 뛰쳐나온다.
그게 작전의 전부였다.
“단순해서 먹힌다.”
팬더 형은 그리 말했다.
내 숨 참기 기록은 십 분이 넘는다.
그러니 겨우 오 분, 저 미친 빛무리 사이에서 살아남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물론 몸이 탔다.
피부가 타오르며 기포를 일으킬 새도 없이 괴사하듯이 녹아내렸다.
아팠고 괴로웠다.
“그걸 견뎠다고?”
박혁이 물었다.
“내가 인내심이 좀 남달라.”
너도 불멸자로 좀 살아 보면 알 텐데.
거기선 고통 감내 훈련이란 걸 한단다.
트라우마가 남지 않을 선을 지키며 견디는 건데, 아우, 말을 말자.
괜히 불멸자가 정신과 의사와 결혼할 확률이 높은 게 아니다.
특수종 잡지에서 농담처럼 한 설문 조사에서 나온 말이다.
불멸자는 심리 상담사나, 정신과 의사를 자주 찾는다고.
불멸자의 어여쁜 얼굴을 마주한 의사나 상담사랑 사랑에 빠질 확률이 높다는 개소리다.
“이론적으로는 가능하긴 한데. 그게 말이 되나?”
박혁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해 보니까 되더라.”
될 것 같아서 해 보니까 되더라니까.
“하, 미친놈.”
박혁이 감탄했다.
“별말씀을.”
난 겸손했다. 겸양을 떨었다.
저리 놀라면서 대단하다고 칭찬해 주니, 조금 낯부끄럽잖아.
“너 진짜 또라이구나.”
난 고래가 아닌데 춤을 추고 싶어졌다.
박혁이란 작자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 타입이구나.
난 놈을 만나면 할 말이 있었다.
그래서 목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잡았다. 요놈.”
어찌나 잘 숨어 있던지, 찾느라 고생 직살나게 했다. 새캬.
박혁은 당황했지만, 그렇다고 좌절하진 않아 보였다.
그는 태연함을 가장한 채 말했다.
적어도 내 눈에는 태연한 척하는 거로 보였다.
“왜? 네가 유리해 보이냐? 고작 다섯이 전부인데?”
이럴 때 보면 사람은 참 단순해.
박혁을 빤히 보며 입을 열었다.
“준비?”
그에게 던진 말이 아니다.
“됐다.”
내 질문의 주인, 안결이 답했다.
그는 무전기를 찬 채로 이어 읊조렸다.
“전원 전투태세로.”
단순한 한마디다.
하지만 그 말 한마디에 장내 상황이 변했다.
비명을 지르고 도망가는 사람 사이로 하나둘 불쑥불쑥 나오는 사람이 보였다.
총원 오십.
쉰 명의 훈련받은 변신족 무리였다.
박혁의 눈깔이 데굴데굴 좌우로 굴렀다.
주변을 확인하며 시시각각 안색이 굳는 걸 보니 웃음이 나왔다.
사람은 참 단순하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남도 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한다.
저쪽이 함정을 파면.
여기도 할 수 있다.
저쪽이 유령 흉내를 내면.
여기도 할 수 있다.
숨긴 채로 병력을 잠복시키는 건 누구라도 할 수 있었다.
미끼는 나였고, 세부 작전은 팬더 형 작품이었다.
그리고 조력은 이쪽에서 받았다.
화랑이란 변신특수대 조직 일부를 빌렸다.
전부 휴가라는 명목으로 나선 이들이다.
이쪽만 빌린 건 아니었다.
난 쓸 패가 많았다.
고객이란 명목으로 불멸특수대에 의뢰도 했다.
“형.”
통신기 대신에 적당히 큰 소리로 팬더 형을 불렀다.
그 소리에 맞춰 옥상, 건물 주변에서 또 일부 사람이 나타났다.
익숙한 복장의 방검방탄복이다.
이쪽은 불멸특수대다.
“너, 너, 너 이 새끼.”
박혁이 그걸 보더니 부들부들 떨었다.
삿대질하며 분노를 보였다.
난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내가 인맥이 좀 돼.”
대한민국은 혈연, 학연, 지연이란 것도 못 들어 봤냐?
곧 경찰도 도착할 터.
이럴 때 하는 말이 있었다.
“외통이다. 씹쌔야.”
내가 말하자, 박혁이 외쳤다.
“산개, 십지 전부 길을 뚫는다.”
난 몸을 탈탈 털며 왼쪽으로 손을 뻗었다.
소진이 챙겨 뒀던 4번 타자가 손 위로 떨어졌다.
혹시 광린에 상할까 싶어서 들고 가지도 못했지.
코트는 타 버렸다.
그리핀 섬유라는 신소재 코트였는데 주문 각인까지 깡그리 탔다.
다행히 장갑은 지켰다.
이거 지키려고 장갑을 세 겹이나 꼈다.
다만 갤럭시 필드는 전부 소모했다.
불길이 일자마자 발동했는데, 한 10초 버텨 주더라.
그래도 그게 어디인가 싶었다.
오른쪽으로 손을 뻗었다.
운비가 내 정글도를 건넸다.
나이프는 혜민이가 건네줬다.
자, 장비 착용 끝났고.
4번 타자를 바닥에 세로로 세운 채 장갑을 당겨 꼈다.
아직 피부가 따끔거리긴 하지만.
재생이 아무리 빨라도 화상은 치명적이다.
괜히 불로 불멸을 잡는다는 말이 나오는 게 아니다.
다만, 이것도 초고속 재생이 가능하면 이렇게 버틸 수 있다.
박혁은 실수했다. 그중에서 제일은 내 재생력을 얕본 거였고,
자주 느끼는 건데, 날 보면 그냥 신기한 혼혈, 힘센 불멸자로 보는 것 같다.
재생력이나 그 외의 것들은 잘 보려 하지 않는다.
난 그게 우스워 피식피식 웃었다.
콰직, 우직.
곧 변신족 실험체 무리와 불멸, 변신특수대와 싸움이 붙었다.
“의뢰는 확실히 받았다.”
강희모 대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왼쪽 무리 너머다.
난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이곤 앞으로 걸었다.
“저기!”
그 틈으로 얼굴이 폭삭 늙은 무리 다섯이 덤볐다.
난 바닥에 대고 질질 끌고 오던 4번 타자를 들었다.
반동으로 들어 올려 조준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꽈-앙!
뇌성벽력이 내리친다. 굉음이 귀를 울린다. 주변 모든 소음을 단숨에 밀어내는 굉음이다.
아다만티움 탄이 달려들던 노안 변신족 다섯의 몸에 구멍 수십 개를 만들었다.
4번 타자 총구 끝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내 앞길이 순간 조용해졌다.
난 그사이를 걸으며 입을 열었다.
“다음.”
빨리 걸을 필요도 없었다.
작전 지휘는 팬더 형이 한다.
변신, 불멸 특수대 합동 작전의 목표는 하나였다.
이 일대를 완벽하게 제압할 것.
난 개자식을 살려 보낼 생각이 없었다.
크르르!
눈 깜빡할 사이, 변신족 하나가 들이닥쳤다.
코끝이 둥글고 꼬리가 길게 난 반쪽짜리 변신족 실험체다.
난 상대가 달려드는 속도와 궤적을 읽었다.
동시에 왼발을 내디디며 왼손을 뻗었다.
손에 들린 정글도가 허공에 호선을 그렸다.
스컥.
방검복 따위 잘라 버리는 아다만티움 칼날의 위력이 여실히 드러났다.
달려들던 변신족의 상체와 하체가 분리되어 뒤로 떨어졌다.
피와 내장 따위가 바닥에 흩뿌려졌다.
정오를 지난 햇볕이 눈이 부시게 주변을 비췄다.
비라도 와 주면 좋겠는데, 하늘은 맑기만 했다.
“야, 너 오늘 못 튀어.”
나는 관대하지 못하다.
저런 새끼도 살 가치가 있을까?
박혁이 날 돌아봤다.
그는 분노를 머금은 채로 외쳤다.
“이놈!”
저 새끼가 문제다.
이 실험체는 전부 저 개자식의 장기 말일 뿐.
원해서 이렇게 된 놈이 몇이나 있을까.
짜증이 치솟았다.
저런 새끼도 살 가치가 있는지, 다시 한번 되묻고 혼자 답했다.
신께 심판을 맡기겠다고.
그러니 저걸 신 곁에 보내는 게 내가 할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