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 사과는 탐스러워 보일수록 따고 싶다.
“절대로 얼굴 들이밀지 않을 거다.”
팬더 형이 말했고.
“그놈은 못 찾아.”
사수도 말했다.
“미안하지만, 그건 돈을 쏟아부어도 불가능해.”
하다못해 우미호를 통해 불멸특수대 분석팀의 의견까지 전달받았다.
“그룹에서도 포기한 작자다.”
안결의 말을 듣자니, 단군 그룹도 포기다.
“뭘 찾아 달라고요? 광익 님, 전 뛰어난 헤드헌터지, 탐정이 아닙니다.”
스티븐 최도 갈궈 봤지만, 무용했고.
“동생, 동생은 날 죽이고 싶은 거야? 내가 캐내기 시작한다면 난 한강 수온을 재거나 북한산 지렁이랑 친구가 될 거라고.”
중고 형은 손사래를 쳤다.
“네? 제가 돈을 보고 일하긴 하는데, 그쪽은 못 찾습니다.”
하물며 특파라치라는 양반한테 의뢰라는 명목으로 몰래 말해 보기도 했다.
다들 고개를 저었다.
의뢰의 목표는 하나였다.
매드 사이언티스트 한 놈을 찾는 것.
“근거지까지는 아니더라도 사람 하나는 찾을 수 있지 않냐고.”
아무리 불평을 토해도 소용없었다.
못 찾는단다.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차다.
“원하는 걸 갖고 싶다고 계속 쫓아다니기만 하면 시간 낭비지, 그걸 가진 사람이 너한테 오게 만드는 게 더 빠르지 않겠니?”
예전에 아버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너희 꽝익아, 작전 목표를 대놓고 보여 주면 상대방이 다 준비하잖아, 속임수 몰라? 속임수? 너 그거 정직한 거 아니다. 멍청한 거지.”
시발 팀장의 말도 떠올랐다.
난 쉽게 생각했다.
찾고 싶어도 못 찾는다면.
알아서 나오게 해 보자고.
그럼, 박혁이란 인간이 어떻게 하면 나올까.
그 자신은 한국이 낳은 가장 유명한 매드 사이언티스트이자, 이레귤러 사냥꾼이었다.
난 머릿속으로 박혁이란 인간을 며칠이고 되뇌었다.
유명하다는 건 무엇을 말하는가.
그 자신의 이력이 잘 나와 있다는 거다.
정보의 가치가 꼭 현재에 국한된 건 아니니까.
난 박혁이란 인간의 역사를 헤집었다.
과거를 캐고 그가 한 일을 파헤쳤다.
누구한테 말하지 않은 채 머릿속으로 놈을 만들어 냈고 그놈에게 나 자신을 투영했다.
내가 박혁이라면.
내가 박혁이라면.
내가 박혁이라면.
수없이 되묻고 답했다.
날 잡는 이유는? 놈은 사냥꾼이자, 장사꾼이니까.
바이어가 필요할 거다. 그걸 토대로 잡는 건 어떨까?
고민해 봤으나, 특정 인물을 규정할 수는 없었다.
바이어의 정체는 짐작도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최근에 국내에 입국한 놈들을 다 찾을 순 없었다.
그중에 중요한 일로 오간 이들의 숫자만 몇천이다.
거기에 나와 관련된 이들만 추려도 수백이고.
그들을 다 헤집는 건 말이 안 된다.
비효율적인 수단이었다.
방법을 바꿨다.
생각의 시초로 돌아왔다.
능력 불명, 나이 불명, 오직 이름만 남은 유령.
어떻게 그런 유령이 될 수 있을까?
어떻게 아무한테도 안 걸리고 숨었지?
상상 속에서 얼굴 없는 그림자, 박혁이란 놈이 날 향해 비웃음을 흘렸다.
놈은 답하지 않았다.
대답을 요구한 질문은 아니었지.
“야, 빵혜민.”
딱 한 번 찍은 것도 다 틀려서 빵점짜리 시험지를 본 뒤로 부르다 보니 입에 착 달라붙은 혜민이의 별명이었다.
“그거 하지 말라고.”
듣는 혜민이는 싫어하지만.
“이렇게 완벽하게 숨은 놈이 있을 수 있냐?”
정부가 가진 모든 보안 카메라, 거기다 단군 그룹의 지원으로도 못 찾는 놈이라니.
그것도 한국의 좁은 땅덩어리에서 말이다.
이건 유령 수준을 넘어선 거 아니냐고.
“투명 인간이 기척 죽이기를 쓰는 격 아니냐?”
내가 말했고.
그 말에 혜민이 아무 생각 없이 답했다.
“그럼 주문과 초능에 능통하다는 거 아닐까 싶은데?”
마법은 밝혀진 게 적다.
주문으로 숨고 초능으로 감춘다면.
올드포스, 엑스큐라시의 눈에서도 숨을 수 있는 거 아닐까?
알고 있는 역사에 가설을 더했다. 살을 붙였다. 가상의 그림을 더했다.
박혁은 주문과 초능에 능한 특수종이다.
그럼 놈이 제 모습을 드러낸 적 있었던 사건은?
있었다.
그가 모습을 드러냈을 때 썼던 무기는? 방식은? 형태는?
다 찾아 헤집었다.
시나리오를 짜고 팬더 형에게 말하니.
형이 눈을 깜빡이며 날 바라보고 물었다.
“너 AB형이냐?”
“……뭐요? 에?”
“아니다.”
“혈액형은 왜요?”
“AB형은 천재 아니면 바보라고 해서. 난 가끔 네가 천재로 보여.”
“평소에는 바보로 생각하고요?”
“응.”
그렇게 해맑게 고개 끄덕이지 말죠, 팬더 새끼님.
“혈액형으로 사람 성격이 판별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재미지, 낭만이고.”
“그리고 내가 왜 바보임?”
“가면 하나 쓰고 머니 & 세이브 지점에 다이브하는 게 영리한 거냐? 똑똑한 거야?”
“그게 다 작전인데요?”
“됐다.”
내가 뭐?
또라이랑 바보가 같은 말은 아니지 않냐?
내가 틀려?
하여간 내 의견을 들은 팬더 형은 말했다.
“사과는 탐스러워 보여야 따고 싶어지는 거다.”
미끼는 구미가 당겨야 한다는 거다.
지금 박혁이 가장 원하는 거.
나다.
큰 그림은 내가 그렸고, 세부 작전은 팬더 형이 짰다.
작전을 짜긴 했지만, 대기한 채로 상대 반응을 보고 난 후 세부 내용을 바꾸려 했는데.
그 와중에 특파라치가 얻어걸리고 금발이 얻어걸렸다.
그렇게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혜민이가 잘해야겠네.”
연기가 필요했다.
팬더 형은 요원도 아닌 사람한테 일을 맡겨야 하는 걸 걱정했지만.
“능청과 내숭은 강혜민 양의 장기입니다.”
난 혜민이를 잘 알았다.
어릴 때부터 보통은 훌쩍 넘은 애였다.
마법사가 아니라 해도 이 정도 일은 거뜬했을 거다.
물론, 혜민이는 기대보다 더 잘했다.
본래는 추적 주문을 붙이는 게 아니라 아슬아슬하게 싸우다가 내빼는 거였다.
그럼 난 내 지인을 건드리는 걸 보다보다 못 참아서 이성을 잃고 헤집다가 함정에 빠지는 거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이런 시나리오를, 혜민이는 순식간에 진일보시켰다.
일하다 말고 상대 봉고차에 추적 주문을 걸어 버린 거다.
상대가 주문에 능통하다면 모를 리가 없을 거라고.
그럼 역으로 함정을 팔 거고.
거기에 걸려들면 이보다 좋은 미끼는 없지 않겠냐고.
“하, 너도 AB형이냐?”
팬더 형은 그런 혜민이를 향해 말했고.
“이 아저씨 이상해.”
혜민이는 그런 팬더 형을 한마디로 일축했다.
혈액형이 무슨 소용이냐고.
뭐, 난 AB형이 맞다.
혜민이 혈액형은 모르겠지만.
모든 게 시나리오였고, 작전이었다.
난 당한다.
이걸 아는 사람은 다섯뿐이었다.
팬더 형, 혜민, 안결, 소진, 운비.
나랑 움직이는 다섯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몰랐다.
그래야 했다.
내 소식을 들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반응이 박혁을 속일 마지막 장치가 될 거니까.
여기까지가 내가 그린 그림이다. 이후 일은 내 몫이 아니었다.
속을 놈의 몫이지.
* * *
박혁은 드론을 통해 홀로그램 화면을 살폈다.
광린탄은 제대로 터졌다.
특정 아더 사이드에는 빛을 뿜는 벌레와 풀이 자란다.
각각으로 놔두면 아무 효과도 없지만, 본래 세계, 그러니까 지구의 산소와 접촉하면 폭발을 일으킨다.
빛을 내는 벌레와 풀을 빻아서 가루로 만들고, 그걸 적절한 비율로 백린과 섞는다.
공식 명칭은 광린소이탄(光燐燒夷彈).
폭발의 강도, 정도, 지속력까지 조절 가능한 신개념 폭탄이다.
박혁의 연구소 중 한 곳에서 개발한 물건이기도 했다.
세상에는 돈을 주고 실험체를 주면 연구에만 몰두하는 미친놈들이 많았다.
박혁은 그런 이들의 후원자이자, 관리자였다.
그게 연구는 쥐뿔도 모르는 박혁을 한국 제일의 매드 사이언티스트로 만든 비결이었다.
‘으흠.’
그는 신중했다.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은 많다. 자신을 죽이고 싶은 사람도 많다.
그런 이들에게 쉬이 당하지 않는 건 매사에 조심하는 것뿐이었다.
‘낚았다.’
준비한 덫은 여러 개였다.
이것 하나로 끝나리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운 좋으면 그 주변에 걸린 떨거지 몇이나 떨굴 생각이었지.
박혁의 눈에 유광익은 사람이 아니었다.
잡아야 할 사냥감이요, 실험체일 뿐이었다.
다른 말로 하자면 돈이기도 했다.
저 새끼 하나 잡는 거로 벌 수 있는 돈이 천문학적인 액수다.
그거로 연구자를 매수하면, 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 할 터였다.
‘됐다.’
광린탄에 당한 놈은 멀쩡할 수 없다.
그러니, 제대로 낚였다.
“반응.”
그래도 매사에 조심한다. 돌다리를 두들기고, 그래도 미심쩍으면 헬기 타고 빙 돌아서 간다.
돈이 목숨을 보장해 주진 않는다.
자신이 잡히면 쾌재를 부를 인간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는 조심했다.
“부엌칼 들고 뛰쳐나왔습니다.”
그 어미를 감시하라고 보낸 부하가 전한 소식이었다.
막 이 소식을 들은 광익의 어미가 날뛴다는 말이다.
아비는 동남아 일대의 제 연구 시설을 때려 부수고 신이 난 상태다.
‘빌어먹을 새끼. 사우전드 페이스, 네 아들놈을 천 갈래로 찢어 주마.’
그래도 죽이진 않을 거다. 불멸자답게 다시 살리고 또 살릴 거다.
불멸자는 정신이 죽으면 죽는다고 하던가.
혈관에 피 대신 약이 흐르게 해 줄 것이다.
마약으로 절여 놓으면 죽겠다는 생각도 안 하겠지.
그럴 정도의 기술력은 갖췄다.
그는 명실공히 한국 최고의 과학자 중 하나니까.
제 연구 성과를 전부 공개하면 기업이고 정부고 골이 아플 터였다.
그게 싫으면 지금처럼 제 연구를 돈 주고 사겠지.
불법, 법이란 건 개나 줘 버린 비인도적인 실험의 결과라고 해서 그 성과가 거짓이 되는가?
그래서 그걸 안 쓸 거라고?
“다 개소리지.”
정부와 기업은 그럴 수 없다.
뒤처지면 끝인 세상이니까.
미친 자들이 세상, 특수종의 세상, 박혁에게 특수종의 세상은 그랬다.
정의를 들먹이는 건 머저리들의 전유물인 세상이었다.
몸을 일으켰다.
직접 갈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아니, 확실히 해야지.’
그러려면 자신이 움직여야 한다.
부하 몇으로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당장 드론을 통해 송출되는 화면만 봐도 알 수 있다.
변신족 머저리 셋과 주문을 쓰는 맹랑한 계집 하나는 빠져나왔다.
정확히는 폭발 직후, 뛰쳐나왔다.
아슬아슬하게 광린의 범위를 벗어났다.
이번에 제조해서 설치한 광린은 지속형 시한폭탄 형태.
터지는 순간, 창고 안은 4시간 동안 꺼지지 않는 지옥 불바다가 되는 것과 다름없었다.
광린은 폭발형 또는 지속형으로 나눌 수 있었다.
지속형은 위력은 약해지지만, 대신 불멸자고 뭐고 간에 저 안에서 4시간 동안은 꼼짝없이 지옥과도 같은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할 것이다.
빛이 끊임없이 신체를 태우고 내장에 불을 붙인다.
그러니 지금 광익은 자신에게 잡힌 인질이나 다름없었다.
탐스러운 사과가 윤기를 뽐내며 따 달라 말하니.
“호위대를.”
박혁은 몸소 움직였다.
열매를 딸 때였다.
“네.”
그 뒤를 세 개 부대가 따랐다.
전부 실험체로 이뤄진 부대다.
첫 번째 부대는 노안대.
변신족 욕망을 거세하기 위한 실험 중에 만들어진 실험체다.
부작용은 크게 두 가지였다.
신체 노화가 급격히 진행되며 생긴 노안과 변신 불가다.
대신 장점도 뚜렷했다.
이들은 고통을 느끼지 않았다.
그리고 욕망을 거세당했기에 냉정했다.
혼혈 변신족의 전투력에 냉정함을 갖춘 실험체 부대였다.
두 번째 부대는 변신족 순혈의 피를 혼혈에게 투여해 만든 이혈(異血)의 부대다.
이성을 잃은 대신 명령은 무슨 일이 있어도 따른다.
그 힘은 능히 순혈과 비견할 수 있다.
세 번째 부대는 초능과 변신 실험체, 숫자는 고작 열이지만, 박혁이 가진 최강의 패였다.
십지대.
자신의 열 손가락이라는 의미로 이름을 붙인 부대였다.
든든했다.
이들과 함께라면 유광익이 멀쩡해도 잡을 수 있었다.
그러니 지금, 광린탄에 당한 뒤라면 일도 아니었다.
“팬텀 위치 그대로입니다.”
거기에 위험도 체크도 완벽했다.
돌다리를 두드렸고, 이상함을 느끼지 않았음에도 헬기를 타고 우회한 격이다.
불멸특수대가 안 움직이고.
“그룹 내 움직임 없습니다.”
단군 그룹도 숨죽였다.
어미는 상황을 파악하고 눈깔이 뒤집혔지만, 그래봤자 순혈 변신족 하나일 뿐이다.
사우전드 페이스의 피닉스팀이 마음에 걸렸지만, 그들은 전부 동남아에 있었다.
‘내 연구 기지 때려 부수느라 신났겠지?’
살을 주로 뼈를 취한다. 박혁은 성공을 자신했다.
중간에 계획이 틀어질 뻔도 했다.
금발 부하가 잡혔을 때는 그랬다.
하지만 하늘은 자신의 편이었다.
유광익이 자만했든, 아니면 운이 좋았든. 어쨌든 그는 성공했다.
박혁은 세 개 부대를 대동하고 움직였다.
그가 있는 곳도 성수동이었다.
어두운 등잔 밑이었다.
* * *
불길이 전신을 태운다. 숨조차 쉴 수 없었다.
더럽게 뜨거웠다.
전신이 타오른다.
견뎠다.
어금니를 깨물었다.
단숨에 전신이 타오르지 않았다. 미리 준비한 방화복이 제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 빛의 이름은 광린탄.
어지간한 주문 방어나 초능 방어를 무용케 하는 과학의 집대성.
씹어먹을 물건이다.
그렇다고 이게 만능은 아니었다.
효율적이지만, 약점도 명확했다.
난 상대가 이걸 쓰리라고 예상했다.
광린은 박혁의 주 무기 중 하나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