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규격 외 혈통 천재-194화 (194/488)

194. 금발, 너

변신족은 열여덟에 각성한다.

불멸자보다 2년이 빨랐다.

그래서 도안결은 열여덟에 진짜 변신족이 되었다.

열여덟에 각성하리라는 건 어렸을 때부터 알았다.

도안결은 순혈의 피를 이었고, 그런 집안에서 태어났으니까.

그렇게 당연한 것처럼 각성했고 현재에 이르렀다.

소위 말하는 엘리트였다.

“넌 못 따라잡겠다.”

“도안결, 이 괴물 새끼.”

이런 얘기를 수없이 들으며 살았다.

순혈 변신족, 그것도 엘리트가 취업할 곳은 하나였다.

단군 그룹, 그중에서도 핵심인 무력 단체 화랑.

입사 시험은 어려웠다.

다만, 도안결한테는 할 만한 수준이었다.

“경이의 신인이구나.”

“나 젊을 때 보는 것 같네.”

“얘가 이번 기수, 솔직히 이전 몇 기수를 통합해도 최고 같은데.”

선배 몇이 이런 말을 앞다퉈 했다.

냉병기를 다루는 훈련, 총기를 다루는 훈련, 몸을 사리는 법, 욕구 통제 훈련, 변신 조절 훈련, 각종 비기 훈련까지.

모든 훈련에서 도안결은 S랭크를 받았다.

소위 말하는 백 점 만점에 백이십 점 같은 변신족 앨리트, 그게 도안결이었다.

“네가 자랑스럽다. 아들.”

아버지도 기뻐했고.

“안결아, 엄마는 널 믿는다.”

어머니는 믿음을 보였고.

“할애비 얼굴에 금칠하는 손주로다.”

할아버지는 기꺼워했다.

동료는 그를 부러워했고, 열여덟에 입사한 이후 5년도 되지 않아 세컨드 오더가 됐다.

정소진은 자기보다 나이도 많고 경력도 많은 선배였지만, 써드 오더.

그런 정소진도 단군 그룹이 자랑하는 인재였다.

어떤 틀을 넘어선 천재.

그게 도안결을 칭하는 말이었다.

덕분에 회장님과 독대하기도 했으면 화랑 내에서도 인정받는 변신족이 됐다.

누구나 부러워할 특수종 초엘리트 인생이었다.

하물며 도안결은 머리도 좋았다.

다른 사람보다 더 큰 그림을 그릴 줄 알았다.

단순함이 장점이자, 단점인 변신족치고는 드물게 시야도 넓었다.

팔방미인.

완전무결.

그게 도안결이었다.

하지만.

‘싱겁다.’

모든 게 너무 쉽게 풀리면 흥미가 생기지 않는 법이었다.

그에게는 라이벌이 없었다.

훈련에도 실전에도 자신을 따라잡을 사람이 안 보였다.

하물며 그가 목표로 할 만한 사람도 딱히 보이지 않았다.

물론 그보다 더 노련한 요원은 있었다.

현재의 그보다 더 강한 힘을 지닌 변신족도 있다.

‘1년이면 충분해.’

도안결은 그들을 따라잡는 게 어렵다고 느끼지 않았다.

시간이 해결할 문제일 뿐이었다.

더 노련해지고 경험이 쌓이고 단련할 시간만 있다면 끝날 그런 목표.

쉬이 성취할 수 있는 것에 흥미를 느낄 수는 없었다.

자연스럽게 도안결은 모든 일에 흥미를 잃었다. 아니, 잃는 중이었다.

그를 움직이는 건 의무감이었다.

앨리트로서의 의무감.

아들로서의 의무감.

아버지와 어머니는 서로 사랑하지 않았다.

그저 순혈의 혈통을 잇기 위해서 만났을 뿐.

동생을 둘이나 더 낳았지만, 피는 자신이 가장 진하게 이었다.

이후, 두 분은 각자 애인을 만들었다.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애초에 사랑으로 만난 사이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가족이 화목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부모님은 각자 애인을 인정하고 산다.

이런 기형적인 가족을 이룬 이유가 자신이었다.

그룹 내에 굴지의 권력을 지닌 할아버지의 믿음도 한몫했다.

도안결은 의무감에 움직였다.

회장의 손자를 보기 전까지는.

불멸특수대 출신의 이레귤러.

불멸과 변신의 혼혈.

아무리 순혈의 피를 이었다고 해도 혼혈.

도안결에게는 순혈 변신족조차도 흥미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그런데 혼혈이라니.

이제까지 이뤄낸 일을 듣긴 했다.

‘그런 상황이 된다면.’

자신도 할 수 있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마주하면 그 허황한 명성을 다 깨 줄 수 있다고 여겼다.

그렇게 마주쳤다.

그런데 우습게도, 도안결은 유광익을 마주한 순간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최선을 다하면 상대는 좌절한다.

도안결은 그걸 알았다.

“난 관둔다. 넌 음, 끝까지 버티라는 말도 의미 없겠지? 기회 되면 또 보자.”

가장 친했던 친구였다.

각성부터 이후까지 꾸준히 함께했던.

그 친구에게는 언제나 최선을 다했다. 그게 친구를 위한 거로 생각했다.

언젠가 자신을 따라와 줄 친구라 생각했으니까.

아니었다.

친구는 좌절했다. 도안결은 그걸 눈치채지 못했다.

친구는 질투와 질시에 자신을 잃기 싫다고 했다.

그는 회사를 떠났고, 안결은 친구를 잃었다.

도안결은 자신의 능력이 상대에게 좌절감을 준다는 걸 깨달았고.

그 이후 어떤 순간에도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적당히 했을 뿐이다.

그 버릇 때문이었다.

힘을 숨겨 상대했고, 상대도 그랬다.

자신과 정소진, 운비 셋이 덮치는 데도 유광익은 여유를 부렸다.

도안결은 상대의 안에서 굶주린 짐승을 봤다.

하지만 그 짐승은 손톱조차 꺼내지 않았다.

그 상태로 셋을 상대한 거였고.

회장이 유광익에게 가라고 했을 때, 안결은 주저하지 않았다.

더 보고 싶었다.

과연 얼마나 대단한 혼혈인지,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다.

“성격 되게 급하네요. 같이 가면 좋을 텐데. 그러다 다치기라도 하면, 아참, 불멸의 피도 이었죠? 그럼 뭐, 죽진 않겠네요.”

정소진이 평소와 마찬가지로 수다를 떨었다.

“진입한다.”

안결은 무시하고 말했다.

도착하니, 이미 문은 박살 나 있었다.

“피 냄새.”

운비가 말했다. 나머지 둘도 같은 냄새를 맡았다.

셋은 안으로 들어갔다. 적당히 긴장감을 유지하며 경계심을 가졌지만, 습격은 없었다.

바닥에 쓰러진 사람만 보였다.

“전투 불능이요. 위로 갔어요.”

소진이 말했다. 셋은 곧바로 계단을 타고 움직였다.

사방을 경계했다.

변신족은 불멸자가 아니다. 총알 세례라도 받으면 곤란했다.

퍽, 우직, 꽝.

따위의 소리가 연신 들렸다.

펑!

계단을 오르자마자, 그림자 하나가 굉음과 함께 문을 쪼개며 튕겨 나왔다.

얼굴이 찌그러진 상대였다.

그 뒤로 광익이 나왔다. 광익의 뒤로 바닥에 널브러진 이들이 보였다.

“그거 불멸자다.”

그렇게 말하며 돌아섰다.

안결은 쓰러진 사람의 숫자를 셌다.

‘열둘?’

아니, 밑에 있는 하나까지 합치면 열셋이다.

자신도 할 수 있다. 상대가 방심했다면.

그렇다고 상처 하나 없이 전부 제압하려면 손이 많이 갈 터였다.

하물며 저 유광익은 여기에 오면서 제대로 된 작전을 짠 게 아니었다.

주소를 받자마자 잽싸게 튀어와서 곧바로 들이닥친 거였다.

“이 미친 새끼들이.”

통로 건너편이다.

기관단총을 든 놈들 셋이 튀어 나왔다.

안결은 훈련받은 대로 몸을 날렸다.

소진과 운비도 마찬가지다.

셋이 좌우로 피탄 범위를 벗어나는 사이, 광익만 달리 움직였다.

퉁.

그는 땅을 박찼다. 옆으로 몸을 날리며 안결은 그걸 눈에 담았다.

벽을 차고 천장을 달린다.

‘입체 기동?’

운비의 특기였다. 건물 안에서 싸울 때, 벽과 천장을 전부 땅처럼 쓰는 기술이다.

운비가 안전 가옥에서 한번 보여 줬을 뿐인 기술이었다.

안결도 할 수 있었다. 다만, 저렇게는 못 할 뿐.

입체 기동은 벽을 땅 삼아 달린다. 천장에 다다르는 순간, 떨어져야 했다.

유광익은 왼쪽 벽을 차더니, 그 힘으로 천장을 두 걸음 걷고 우측 벽을 차고 다시 천장에 돌아와, 밑으로 쇄도했다.

투다다다다.

총알이 광익의 움직임을 쫓고 그 움직임을 예측해 쫓았지만, 무용했다.

반응하기에는 너무 빠르고 변칙적이었다.

‘운비가 보면 혀를 차겠어.’

운비보다 더 유연했다.

셋 중 하나가 총기를 둔기 삼아 휘둘렀다.

광익은 그걸 손바닥으로 받아 냈다.

아니, 받아 낸 거로 그치지 않았다.

받아 내며 잡아채 당기고는 상대의 안면을 팔꿈치로 찍었다.

우적.

시큰한 소리가 울렸다.

그대로 바닥에 떨어지기 직전 양발로 가위차기.

두 놈 다 막았다.

총구를 겨누기에는 좁다. 두 명의 적이 동시에 칼을 뽑고 광익은 좌우로 손날을 내리쳤다.

“강체.”

안결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강체를 단련하는 비기를 ‘철완’이라 한다.

철완을 가다듬으면 쓰는 기예 중 하나, 강체 손날 치기다.

퍽, 퍽.

광익은 칼날을 손날로 받아쳤다.

완벽하진 못했다. 손날에서 피가 튀었고, 튄 피가 두 놈의 얼굴로 향했고.

둘 다 반사적으로 눈을 깜빡였다.

광익은 그 틈에 몸을 휘리릭 돌리더니 팔꿈치를 그었다.

그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는 팔꿈치였다.

스거억.

이번에는 섬뜩한 소리가 울렸다.

팔꿈치를 칼날처럼 썼다.

두 놈 다 가슴팍이 쩍- 하고 벌어졌다.

죽을 상처는 아니지만, 놔두면 과다 출혈로 이승과 굿바이하게 될 거다.

그리고 이 모든 걸 지켜본 도안결은 가슴이 뛰었다.

가슴 깊은 곳에 넣어 뒀던 투쟁심이 들끓었다.

‘지금 당장.’

제대로 붙어보고 싶었다. 모든 걸 걸고 부딪치고 싶었다.

“금발, 너.”

그 순간, 광익의 목소리가 들렸다.

도안결은 번뜩 정신을 차렸다.

여기서 광익과 싸울 수는 없다. 자신은 도우러 온 거다. 방해할 수 없다.

의무감과 함께 수년간 다져졌던 책임감이 그의 정신을 붙들었다.

금발? 듣는 순간 떠오른 건.

광익이 찾던 놈, 회장님한테 말했던 이야기.

‘어스 블랙홀 임의 개방?’

불가능한 얘기였다.

하지만 유광익이 거짓말을 하진 않았을 거다.

뭔가 숨겨진 게 있을 거였다. 그럼 잡아야 했다.

“소진, 운비, 퇴로.”

안결이 말하고 앞으로 튀어 나갔다.

자신의 차례였다. 광익과 싸울 수는 없어도, 그 앞에서 제 능력을 보일 수는 있었다.

뛰는 심장이 피를 공급한다. 안결은 광익을 향한 살기를 마음속에 묻고, 어디선가 일본도를 들고나온 놈을 향해 돌진했다.

* * *

쓰레기들이 많기도 하다.

처음 마주한 놈을 지나쳐 계단에 오르니, 방 안에 있는 놈들의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후 후각이 화약 냄새를 맡았다.

총기, 화기를 지닌 놈들이었다.

문손잡이 돌려 얌전히 문을 열었다.

“이 또라이 새끼.”

상대의 반응이 빨랐다.

방범 카메라를 부순 덕이었나 보다.

거침없이 몰아쳤다.

덤비는 놈들한테 하나씩 꿀밤 먹이듯 후려치니, 기절했고.

마지막 불멸자 놈을 문밖으로 던지듯 내쳤다.

그제야 변신족 친구들이 따라온 게 보였다.

대충 상황을 전달하고 다시 앞으로 향했다.

예민한 감각 덕분에 이미 다가오는 숫자가 셋이라는 것도, 총기를 들었다는 것도 알았다.

제압하면서 두 놈의 칼을 손날로 막았고.

피가 튀는 것도 전략이었다.

손날에 생긴 자상이 스멀스멀 재생하자 간지러웠다.

이제 몇 놈 안 남았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들었을 때다.

통로 끝쪽, 양옆으로 열리는 철제문을 열고 나온 놈이 보였다.

“금발, 너.”

금발 그 새끼였다.

“와우, 여기를 어떻게?”

어떻게는 새끼야, 우연이다.

땅을 지르밟으려는데 또 앞을 덮치는 놈들이 있었다.

그 틈에 금발이 날 보더니 피식 웃고 몸을 돌렸다.

저 새끼가.

쫓으려고 해도 이건 해결하고 가야 했다.

“내가.”

그때, 뒤에서 안결이 튀어나왔다.

어디서 일본도를 들고나온 놈을 향해서다.

품으로 파고들곤, 툭- 하고 검을 쥔 손을 치고 몸을 틀더니 팔꿈치로 명치를 올려친다.

깔끔하고 훌륭한 일격이었다.

한 놈을 때려눕힌 뒤, 안결이 날뛰었다.

그걸 본 후, 난 다시 벽을 차면서 천장을 밟고 앞으로 뛰었다.

운비를 보고 배운 건데, 꽤 쓸 만한 이동기다.

강각까진 아니더라도, 땅을 차는 요령과 몸의 밸런스를 잡을 수 있다면 조금만 연습해도 할 수 있을 터였다.

물론 난 보자마자 그냥 썼다.

괜히 삼촌과 어머니가 볼 때마다 놀란 내가 아니다.

그대로 날아가듯 뛰었다. 금발의 기척을 읽으려고 집중했다.

안 읽혔다.

뛰면서 불멸자에게 기척을 들키지 않으려면, 최소 훈련받은 순혈 불멸자여야 한다.

그런데 금발에게 그런 느낌은 조금도 받을 수 없었다.

“네 예상 범주를 벗어난 일은 전부 두 개 중 하나라고 보면 편하지.”

불멸특수대의 가르침과.

“모든 걸 감각에 의존하지 마라.”

아버지의 가르침이 떠올랐다.

범주를 벗어난 일은 초능 아니면 마법이고.

지금은 마법에 가깝다고 판단했다.

하여간 주문쟁이들.

난 아버지의 가르침에 따라 움직였다.

감각에 의존하면 머리를 쓰지 않게 된다. 생각이 멈추면 행동 패턴이 단순해진다. 그러면 이 세상에 잡아 먹히는 법이었다.

난 그러지 않았다.

생각했다. 머리를 굴렸다. 따로 비상 통로가 있지 않다면, 금발은 어디로 뛸까.

밖이겠지, 뭐.

난 달리다 말고 방 안으로 쏙 들어갔다. 방범창이 보였다. 그대로 몸을 날렸다.

와장창.

창문과 창틀을 반쯤 깨부수며 밖으로 나왔다.

3층이었지만, 그게 무슨 상관일까.

난 바닥에 떨어짐과 동시에 낙법을 써서 굴렀다.

보통 인간이라면 무리한 일이라도 특수종에게는 아니다.

그러나 보통의 변신족이라면 장비 없이 몸으로 창문을 깨는 일 따윈 하지 않을 거다.

하지만 나랑은 상관없었다.

피부에 박힌 유리 조각이 밖으로 나오며 떨어졌다.

재생력은 불멸자의 장기다.

기척은 여전히 없다.

대신, 난 혼자 오지 않았다. 안결을 보고 깨달은 사실이다.

그가 둘에게 퇴로를 막으라고 하는 것도 들었다.

난 그 둘의 기척을 찾았다.

소진과 운비는 떨어져 있었다.

그중 소진 쪽으로 내달렸다. 누군가와 싸우는 소음이 들렸다.

툭툭- 땅을 박차며 속도를 내고 도착하니.

“후우, 후우.”

소진이 호흡을 가다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무슨 짓을 했는지, 소진의 얼굴이 피로 젖어 있었다.

“숙녀의 얼굴을 이렇게 만드는 건 제 취미죠.”

금발이 웃으며 말했다.

소진이 당했어?

아니다. 이상하다. 이질감이 감각을 일깨웠다.

소진의 자세, 밸런스가 엉망이다.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어 보였다.

“의외의 일이긴 한데, 이렇게 된 이상 제가 잡아가죠. 혼혈 이레귤러.”

금발이 말했다.

딱.

놈이 나를 향해 손가락을 튕겼다.

그와 동시다.

감각이 방향성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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