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 왜 자꾸 우리 엄마 건드리지?
신주호는 눈을 떴다.
묵직한 두통이 뒤따랐다. 드문드문 끊긴 마지막 기억이 떠올랐다.
‘뭐였지?’
뭔가가 휙 나타났고, 누구냐고 물었다. 얼굴에 흉터가 진하게 난 남자의 얼굴이 보였고.
‘출사 나왔다고 했는데.’
풍경 사진이나 찍으러 왔다고 했다.
말릴 겨를도 없이, 덩치 큰 여자가 제 망원 카메라 안을 살피더니 쯧 하며 혀를 찼고, 그 뒤로 기억이 끊겼다.
목이 뻐근했다. 본능적으로 손을 들어 목을 주무르려 하는데 덜컥- 하고 손이 움직이질 않았다. 의자에 발과 다리가 묶인 채였다.
주변을 둘러봤다. 어두웠다. 깜깜한 가운데 신주호는 생각했다.
‘괜찮아.’
제 몸에 추적기를 심어 놨다.
위험한 일에 종사하면서 이런 상황에 대비 하나 안 해 뒀을까.
신주호가 하는 일은 불법이었다. 그는 그걸 잘 알고 있었기에 위험도 인지했다.
그래서다. 평소에 비용을 꽤 지급해서 용병 업체를 고용해 뒀다.
‘처남도 같이 오겠지.’
처남은 혼혈 변신족이다. 본래는 블랙마켓의 격투장에서 싸우던 녀석이었다.
능력을 의심할 것도 없다.
소싯적에는 불멸특수대 요원도 때려눕혔다는 처남이다.
무슨 일이 생기면 아내가 곧바로 추적기를 확인하고 사람을 보낼 것이다.
어둠에 눈이 점점 익숙해졌다. 페인트 냄새가 났다. 최근에 페인트 작업을 한 곳이었다.
눈을 몇 번 감았다가 떴다.
어렴풋한 사람 모습이 시야에 잡혔다.
“안 죽였지?”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남자다.
“기절도 안 했어요.”
여자의 목소리다. 어둠 속에서 네 명의 사람이 서 있는 게 보였고, 그 밑에 바닥을 기는 사람도 보였다.
창가로 들어온 은은한 달빛이 그 사람의 얼굴을 비췄다.
“처남?”
신주호는 자기도 모르게 그를 불렀고.
“매혀어엉.”
처남의 다 죽어 가는 목소리가 들렸다. 눈가에 눈물도 몇 방울 맺힌 것 같고.
처남 곁에 쓰러진 몇 명의 사람도 보였다.
얌전히 누워 있는 게 죽은 것처럼 보였다.
까만 전투 슈트를 입은 이들이다.
신주호는 저 복장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블랙 가드.’
엑스큐라시 산하, 글로벌 경호업체 ‘리얼 가드’를 본떠 만든 국내 용병 업체다.
정확히 말하면 자신의 신변을 보호하라고 매달 돈을 쏟아붓는 그 용병 업체.
눈을 몇 번 깜빡이며 고개를 들었다.
어둠에 파묻힌 네 명이 보였다.
얼굴은 확인할 수 없었다.
체형만 어렴풋이 눈에 들어왔다.
그중 한 명이 눈에 익었다.
‘유광익.’
벌써 몇 주째 쫓아다닌 사람이다. 눈에 익지 않을 리 없었다.
신주호는 깨달았다.
‘엿 됐다.’
자기를 구하러 온 업체도, 처남도 다 엿 된 거라고.
일부러 불을 밝히지 않고 얼굴도 보이지 않았다. 그게 더 불길했다.
굳이 불을 끌 이유가 있을까?
끔찍한 상상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아내가 보고 싶었다.
‘다시 볼 수 있을까?’
그는 혀를 깨물었다.
우득- 하는 혀 찢어지는 소리가 뇌리를 울렸다.
통증이 정신을 일깨우니 머리가 돌아갔고, 그는 지금 당장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았다.
“제 이름은 신주호, 업계에서는 특파라치라 불립니다. 이걸 시킨 쪽은 사설 연구소를 운영하는 놈들이었습니다. 주소랑 연락처를 압니다. 의뢰 내용은 유광익 님의 사생활부터 시작해서 모든 걸 샅샅이 알아 오라는 의뢰였습니다. 알아낸 건…….”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신주호가 살아남는 법이다.
목숨은 소중하다.
상대는 막강하고.
이게 맞았다.
의뢰주를 밝힌 일?
업계의 불문율을 깨뜨린 거?
그거야 나중 일이다.
일단 살아야 내일이 있는 법 아닌가.
당장 뒈지는 것보다야, 이게 백 배, 천 배는 나았다.
* * *
“여기 전등 나갔어?”
단군 그룹에서 구한 안전 가옥이라는데, 최근에 페인트칠을 했는지 냄새가 고약했다.
“네, 내일 갈아 끼우려고요. 오자마자 광익 씨 있는 곳으로 가느라 손을 못 댔어요.”
소진이 답했다.
덕분에 거실 안이 어둑했다.
창문에 블라인드가 반쯤 내려가 있어서 달빛이 스며들었는데, 우연히 딱 잡아 온 사람의 상반신만 비췄다.
“뭐, 크게 상관은 없지.”
불멸자는 이 정도 빛이면 모든 걸 분간할 눈을 가졌다.
보육원 일은 뒤이어 온 경찰에게 맡겼다.
경찰이 신원을 확인한다길래 전화를 한 통 걸었다.
아버지한테 걸어도 충분하지만, 그보다 빠른 사람이 있잖은가.
지혜 팀장 누나한테 걸었더니 프리 패스.
변신족 셋이야, 단군 그룹 소속이니 말할 것도 없었고.
그 뒤 곧바로 저 양반을 데리고 나와서, 이 변신족 세 친구가 구한 가옥으로 모인 거다.
우리 집에서 걸어서 20분. 변신족이 뛰면 5분도 안 걸릴 거리일, 차로 와도 마찬가지인 곳이다.
용케 이런 곳을 구했구나 싶었다.
이제 막 저 사람을 깨우려 하던 중, 도착한 지 10분도 되지 않았을 때 습격이 있었다.
불멸자인 내가 먼저 알아챘고, 누구 더 올 사람이 있냐고 물었더니 곧바로 피지컬 깡패가 반응했다.
그녀는 현관문 도어락을 풀어서 문을 활짝 열어 뒀다.
3층짜리 작은 빌라였고, 건물을 통째로 빌린 거라고 했다.
곧 문 안으로 서넛의 훈련받은 태가 나는 놈들이 들어왔고.
난 훈련받은 변신족의 위력을 감상했다.
소진은 들어오는 놈이 칼을 쭉 내뻗는 걸 보더니, 중간에 손목을 잡아채 꺾어 부러뜨리고 멱살을 잡아 한쪽으로 던졌다.
쿵- 하고 벽에 부딪힌 친구가 바닥을 기었다.
그사이 권총을 들이민 놈은 운비가 벽을 박차고 몸을 휘릭 돌리더니, 천장을 발로 차며 위에서 밑으로 쇄도했다.
생각도 못 한 각도의 공격에 상대는 반응하지 못했다.
피지컬도, 훈련 상태도, 차이가 꽤 나는 상대였다.
운비는 어느새 꺼낸 나이프로 권총 든 친구의 손목을 그어 버렸고.
운결은 뒤이어 온 놈을 차례로 안으로 끌어들여 때려눕혔다.
다 해서 3분도 안 걸렸다.
들어온 놈은 총 다섯, 한 놈은 어디서 싸움질 좀 했는지 대뜸 하이킥을 날리기도 했다.
소진은 왼팔을 얼굴에 붙여 킥을 받아 내더니, 그대로 손목만 꺾어서 발목을 잡아채 반대로 꺾었다.
우드득- 하는 소리가 들렸고.
“끄어…….”
비명을 지르려는 놈의 입을 틀어막고 바닥에 널브러뜨렸다.
그게 끝이었다.
차곡차곡 쌓인 놈들을 살피던 운결이 말했다.
“블랙 가드다.”
“용병 업체?”
특수대에서 일하는 동안 한번 들어 본 것 같기도 하고.
“맞다.”
“얘들도 연구소 사주받고 왔나?”
혼잣말로 물으니, 운결이 고개를 저으며 손가락으로 묶인 친구를 가리켰다.
“저쪽을 구하러 온 거겠지.”
그사이, 의자에 묶어 둔 카메라맨이 고개를 들었다.
정신을 차린 그가 주변을 살피더니, 눈을 깜빡거렸다.
그걸 보며, 나는 소진에게 안 죽였냐고 물었고.
카메라맨이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처남.”
“매혀어엉.”
가족이었어?
이런 일을 무슨 패밀리 비즈니스로 하시나.
흐음.
어쩔까나.
정보를 캐긴 해야 하는데.
난 불멸자다.
고통 감내 훈련을 받은 불멸특수대원이기도 하다.
고통 감내 훈련은 곧 훌륭한 고문 기술자를 만들어 내는 것과 같은 말이었다.
인체를 괴롭히는 데 이골이 나니까.
다만, 고문까지 해야 하나 싶은 거지.
내가 고민하자, 변신족 셋도 얌전히 기다렸다.
일단 물어나 봐야겠다, 싶어 입을 열려는데.
“제 이름은 신주호, 업계에서는 특파라치라 불립니다. 이걸 시킨 쪽은 사설 연구소를 운영하는 놈들이었습니다. 주소랑 연락처를 압니다. 의뢰 내용은 유광익 님의 사생활부터 시작해서 모든 걸 샅샅이 알아 오라는 의뢰였습니다. 알아낸 건…….”
갑자기 카메라맨, 아니, 신주호라는 특파라치가 방언을 토해 냈다.
“……뭘 이렇게 알아서 다 말해.”
다 듣고 나서 담백하게 말하니.
안결이 옆에서 한마디 거들었다.
“당연한 것 같은데.”
주변으로 시선을 돌렸다. 음, 무서울 법도 하겠지.
자기를 구하러 온 사람들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고, 믿었던 처남은 발목이 돌아가서 눈물을 짜내고 있으니.
뭐, 덕분에 일이 편해졌다.
듣고 연락처도 받았다.
그 뒤에 물었다.
“그 의뢰인, 금발이었어요?”
혹시나 해서 물었다.
“아니요. 한국 사람입니다.”
금발 그 새끼 참 잡기 어렵네.
팬더 형도 두 손 두 발 들었다.
“고스트야.”
라고 말한 게 전부다.
작전 용어였다. 완벽하게 숨어서 찾기 힘든 대상을 칭하는 말이었다.
그럼 이 사람은 진짜 어쩌나.
죽일 필요는 없을 것 같고.
잠깐 고민한 사이, 나는 다시 말했다.
“아저씨, 앞으로 착하게 삽시다.”
딱 봐도 사십 대는 훌쩍 넘어 보였다.
“네? 네, 착하게 살겠습니다.”
“남의 뒤나 캐고 살다간 큰일 나요.”
이미 큰일은 났다. 우리 쪽에 잡힌 순간, 이미 난리 난 거지 뭐.
“네, 네, 알겠습니다.”
원체 겁에 질려 있어서 뭐라 더 말할 수도 없겠네.
“가요, 쟤들 다 챙겨서.”
“네? 네? 그냥 가도 됩니까?”
“가기 싫어요?”
“아니요. 가고 싶습니다. 아내가 보고 싶습니다. 노모가 절 기다리고 있습니다.”
“네, 가세요.”
“끅, 당신들 누구요?”
내 말에 처남이란 놈이 고개를 들며 물었다.
자존심이 상한 얼굴이다.
왜? 일격에 싸움이 끝나서.
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딱.
그걸 본 매형이란 작자가 처남의 뒤통수를 때렸다.
“그걸 왜 물어. 우리는 몰라, 저분들 이름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는 거다.”
이 정도 처세술이면 진짜 나쁘지 않다.
중고 형과 버금간다.
그렇다고 그가 한 일 전부를 용서하진 않겠지만.
“깨워 줘.”
내 말에 소진이 발로 블랙 가드 애들을 툭툭 쳤다.
일어난 놈들이 반사적으로 전투태세를 취했다.
소진이 그들 중 하나를 붙잡고 속삭였다.
“우리 화랑인데, 더 하게?”
불멸자인 내 귀에도 똑똑히 들렸고, 곧 블랙 가드 애들은 꼬리 만 개가 됐다.
화랑이란 이름이 이 정도였나?
그렇게 그들은 줄줄이 일어나서 나갔고, 가는 걸 보며 저 아저씨가 짧은 시간에 나에 관해 많이도 알아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능력이 있는 건데.
짜증이 치솟기도 했지만, 능력만큼은 인정이다.
그걸 미주알고주알 다 알아내서 말해 줬다는 거니까.
“저기요.”
막 나가려는 아저씨를 불렀다.
“넵.”
“명함 하나 주고 가세요.”
“네?”
되물었던 스토커 아저씨가 잽싸게 품에서 명함을 꺼내 줬다.
“신주호, 특파라치라고 하면 업계에서는 알아줍니다.”
“근데 의뢰인을 막 까발려도 돼요?”
“제 목숨보다 소중한 약속은 없죠.”
맞는 말이다.
그들이 떠난 뒤, 운결이 말했다.
“무르다. 적어도 다시는 이런 일을 못 하게 손을 봐야 했다.”
난 무시했다.
꼭 주먹으로 벌을 줘야 벌일까.
덕분에 주소를 받기도 했고.
그러니까 불법 연구소인지, 아니면 그 새끼들이랑 같이 일하는 애들이 모인 그 주소가 나한테 들어왔다.
“팀 꾸릴까요? 그룹에서 지원받을 수 있는데.”
소진이 말했다.
전화 한 통이면 경찰도 출동하겠지.
하지만 어느 쪽이든 습격하려면 반나절은 필요할 거다.
준비하는 시간이 필요할 테니까.
“같이 갈래?”
“……네?”
소진이 눈을 깜빡이길래, 내가 말을 이었다.
“지금 갈 건데.”
“어딜?”
운결이 물었다.
“여기.”
내가 홀로그램 시계로 띄운 주소를 가리켰다. 가상 지도 위로 주소지에 있는 건물이 보였다.
“지금?”
“지금.”
“우리 넷이?”
“너희 안 오면 나 혼자 가지.”
“……이걸 단순무식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화끈하다고 해야 할지.”
운결이 중얼거렸다.
“안 올 거면 혼자 간다.”
난 말하고 밖으로 나갔다.
달빛이 밝았다. 밤공기가 무척 시원해졌다. 어느새 완연한 가을이다.
“아들, 조심해라. 무슨 일 생기면 엄마한테 전화하고. 네 아빠도, 필요하면 정부를 달달 볶아서라도 그 새끼들 잡아 족치겠다고 하니까. 일단 몸 사리고 있고.”
보육원 일이 끝난 후, 어머니가 그리 말씀하셨다.
난 그걸 듣고 열이 올랐다.
프로메테우스도 그렇고.
남명진 사장도 그렇고.
이 새끼들도 그렇고.
왜 자꾸 우리 엄마 건드리지?
짜증이 확 솟는 일이다.
어머니가 안전한 걸 떠나서, 왜 자꾸 가족을 건드리냐 이거다.
“같이 가요.”
계단 터벅터벅 내려가는데 셋이 졸졸 따라왔다.
“그래.”
말하고 차에 올랐다.
주소가 가리킨 곳은 서울 외곽의 작은 빌딩이었다.
부아아아앙.
난 밤거리를 질주했다.
차가 안 막히니, 몇 분이면 도착할 거였다.
끼이익.
질주했고, 곧 까만 유리의 4층짜리 꼬마 빌딩 앞에 섰다.
빌딩 앞에 차를 대고 출입구를 밀려고 하니, 잠겼다.
‘당기시오’라고 쓰여 있어서 밀었는데, 이게 답이 아닌가?
위이잉.
머리 위, 양쪽으로 빨간 불빛을 뽐내는 두 대의 방범 카메라 대가리가 날 향해 고개를 꺾었다.
난 손에 든 핸드 불릿 두 개를 좌우로 던졌다.
퍼벙.
카메라가 터졌다.
동시에 발로 출입문을 걷어찼다.
쩡.
강화 유리가 쪼개지며, 안으로 터지듯 부서졌다.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그 신주호란 아저씨한테 화풀이할 뻔했다.
솔직히 그 작자도 일조한 일이니까.
하지만 그건 진짜 화풀이다.
그 작자도 나름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긴 할 거다.
그게 꼭 폭력적일 필요는 없을 뿐.
“너 뭐야?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오냐?”
곧바로 날 맞이하는 놈이 보였다.
직접적으로 연관된 건 이쪽이겠지.
청원경찰 복장인데, 눈으로 놈의 전신을 훑었다.
품에 권총, 허리춤에는 진압봉, 허리에는 나이프.
어둠 속에서 눈이 빛나는 걸 보니 특수종이고, 육감은 상대가 혼혈 변신족이라고 말했다.
파악했으면 끝이다. 난 툭- 하고 땅을 찼다.
몸을 숙이며 앞으로 짓쳐 들어간다. 순식간에 공간을 좁힌다. 짧은 거리 대쉬는 상대의 시야를 속이는 마법과 같았다.
눈 깜빡하는 사이에 상대의 코앞에 도달하니까.
“엇!”
놀람을 표하는 짧은 비명이 이 친구가 맨정신으로 한 마지막 말이었다.
난 상대의 턱에 숏어퍼를 때려 넣었다.
쩡.
턱뼈가 쪼개진 게 손에 여실히 느껴졌다. 발이 공중에 살포시 떴다.
한 방에 눈깔이 돌아갔고, 기절이다.
일단 하나. 안에 몇 놈이나 있으려나.
책임자가 있으면 더 좋을 것 같은데.
난 그렇게 생각하며 위로 향하는 계단에 발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