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 할아버지의 선물
부실 공사일까.
그건 아닐 것 같다.
몇 놈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아까 밖에 땅에 다이빙한 친구를 제하면 1층에 보이는 건 셋이었다.
둘은 팔다리가 전부 부러졌을 뿐, 얌전히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데 한 놈은 그로테스크한 예술품이 되어 있었다.
대가리로 벽을 뚫고 박혀 있다.
어깨까지 박혀서 몸이 축 늘어져 벽에 달라붙어 있는 걸 보니, 고약한 예술가의 감성이 느껴졌다.
벽에 박힌 놈을 자세히 보니 피부가 딱딱한 질감으로 변한 친구였다.
거기에 돼지 꼬리가 달려있고.
변신족과 초능 특수종의 결합이다.
아까도 그렇고 이것도 그렇고.
다 실험체다.
프로메테우스가 보냈던 그 실험체와 같았다.
꽝, 꽝, 꽝.
위에서 누군가 벽을 타종하듯 후려치고 있었다.
퍽, 으직 따위의 소리도 섞였다.
설마 어머니가 당할까 싶긴 하다만, 그래도 방심하는 것보다는 빨리 가는 게 나을 터.
2층으로 향하는 화강석 계단 중간이 반쯤 무너져 있었다.
고민할 것도 없었다. 1층 창문을 열고 나가 벽에 손가락을 박으며 올라갔다.
어머니가 삼 눈 개 대가리를 통해 만든 구멍으로 쏙 들어가려는데, 우르르하고 다른 쪽 벽이 무너졌다.
건물 이렇게 다 부숴도 되나?
모르겠다. 구멍으로 쏙 들어갔다.
그대로 어머니 기척을 잡아채 옆방으로 넘어갔다.
문이 아니라 벽을 부수고 움직였는지, 구멍이 뻥뻥 뚫려 있어서 몇 발자국이면 충분했다.
도착해서 보니, 이미 상황 종료 직전이었다.
곰의 얼굴에 참새 날개를 단 놈이 바닥에 피를 질질 흘리며 어머니를 향해 입을 열었다.
“괴, 괴, 괴, 괴물.”
겉모습만 보면 저쪽이 훨씬 괴물이지만.
실력만 보면 어머니도 그 괴물 라인이 맞지.
변신족 순혈, 괴력의 힘은 어지간한 건 전부 물리력으로 부순다.
날개 한쪽은 어머니가 찢어 버렸는지, 한쪽 날개만 남은 곰 참새가 눈을 부라렸다.
“겁이 없는 거니? 아니면 그렇게 개조당한 거니? 아직도 이런 실험을 하는 애들이 남았구나.”
어머니 말투는 여전히 평온하다.
혼자 해결한다고 했을 때부터, 계속 담담했다.
몸에 점점이 묻은 피만 아니라면 지나가다 마실 나온 주부처럼 보였다.
“마지막이에요?”
“말할 줄 아는 놈도 저거 하나뿐이더구나.”
어머니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곰 참새는 날개만 찢긴 게 아니었다. 지금 보니 얼굴 한쪽도 함몰됐다.
원래 저렇게 생긴 줄 알았네.
팔다리가 전부 부러진 건 말할 것도 없고.
밑에 있는 애들도 다 그랬으니.
“누가 보냈니?”
어머니가 물었다.
“아, 아, 아, 아버지가.”
곰 참새가 답했다.
아이를 이런 곳에 보낸 놈이 친아비일 리는 없을 테고.
그렇게 세뇌 따위를 한 거겠지?
“그 아, 아, 아 아버지가 누군데?”
내가 물었다.
“아, 아, 아버지는, 박, 박, 혁.”
말을 더듬는 건 모든 실험체가 갖는 패시브 스킬인가.
아니지, 우리 마리는 말 안 더듬잖아.
“박박혁, 알아요?”
어머니한테 물었다.
괜히 물은 게 아니었다. 이름을 듣자마자 어머니가 있는 대로 미간을 찌푸렸으니까.
곧 표정을 원래대로 되돌린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박혁, 미친 변태 싸이코 과학자다.”
소탈한 표현이었다.
“죽은 줄 알았는데.”
어머니가 읊조렸다. 내가 불멸자의 귀를 가진 게 아니었다면, 안 들렸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였다.
죽은 놈이 살아 돌아왔다는 건가.
그래, 팬더 형이 알면 좋아하겠네.
나보고 회귀자라고 하니, 박박혁인지, 박혁인지 하는 놈을 보면 귀환자나 환생자라고 하고 좋아하려나.
끅끅 신음을 흘리던 곰 참새가 어머니를 노려보다가 눈을 까뒤집었다.
기절할 만도 하지.
아무리 실험체라고 해도, 피를 이만큼 흘렸으면 과다출혈 쇼크사로 훅 갈 수도 있다.
“전화 좀 해야겠다.”
그만큼 급한 일일까.
어머니가 전화를 들었다.
“통화권 이탈일 텐데요?”
누군가가 재밍을 했다.
이 구역을 일단 빠져나가야, 신고도 하고 이 뒤처리도 할 수 있겠지.
그리 말하려고 하는데.
“응? 되는데?”
어머니가 답했다.
전화를 들어 확인하니, 재밍이 풀렸다.
음?
이거 뭐야, 재밍 기계를 누가 발동시켰다가 지금은 풀었다고?
그럴 리가 있나, 아까부터 난 오감과 육감의 칼날을 있는 대로 세우고 있다.
최소 시발 팀장급의 기척 죽이기가 아니면 내 감각의 영역을 빠져나갈 순 없었다.
그런 내 귀에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무겁고 묵직한 소리.
한 명이 아니다. 최소 셋, 한 팀이 다가오는 중이었다.
육감의 칼날을 세워 방향을 잡고 밖을 바라봤다.
“음?”
“왜 그러니?”
어머니가 곁에 다가와 물었다.
“쟤들이 왜 여기에 있나 해서요.”
“쟤들?”
난 손가락으로 밑을 가리켰고 어머니가 다가오는 세 명의 그림자를 확인하더니, 고개를 모로 꺾었다.
그걸 보고 내가 입을 열었다.
“변신족이에요. 단군 그룹 직속의.”
곧 할아버지의 사람이란 거다.
2층 건물이다. 시멘트로 대충 마감한 주차장을 넘어서면 서로 얼굴이 보이는 건 금방이었다.
쪽.
밑에서 이전에 만났던 피지컬 깡패, 소진이 손 키스를 날렸다.
잽싸게 고개를 꺾어서 피했다.
“잘 지냈죠?”
우렁찬 목소리다. 우리 피지컬 깡패는 성악을 시켜도 잘할 것 같다.
“네. 뭐.”
대충 답하고 기다리란 표시로 손바닥을 보였다.
셋만 달랑 온 것도 아니었다.
기절한 게 분명한 웬 짐 덩이도 하나 어깨에 얹어서 들고 왔다.
웬 사람을 짐짝처럼 메고 오더니, 바닥에 아무렇게나 내려놓는 게 보였다.
“쟤 왜 저러니?”
소진이를 본 어머니가 물었다.
“소자가 인기가 좀 있습니다.”
답하니.
“쟤랑 만나니?”
어머니가 되물었다.
“제 이상형 아시잖아요.”
내가 말했다. 아니라는 의미였다.
그 말에 어머니가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아들, 나이 스물다섯까지 안 한다고 마법사 안 돼. 알잖아. 마법사는 어릴 때부터 공부하고 배워야 할 수 있는 거야. 시간이 필요한 기술이지.”
“무슨 말씀입니까.”
“스물다섯까지 동정이면 마법 쓸 수 있다는 말에 그러는 거 아니니?”
농담을 이렇게 진지하게 하면 진짜 같다.
“진심으로 하는 말은 아니죠?”
“아니지.”
어머니가 담담하게 말하고 눈짓으로 말했다.
내려가 보자고.
안 그래도 그래야 할 듯했다.
건물 위에서 폴짝폴짝 뛰어서 벽을 몇 번 차고 바닥에 내려섰다.
계단도 부서졌고 굳이 돌아갈 필요도 없었다.
내 뒤로 어머니가 건물 벽에 있는 가스관을 손으로 쥐고 레펠하듯 통통 벽을 차고 내려왔다.
가스관을 쥐었다고 놓으며 힘으로 하는 레펠이었다.
내려선 내가 허리에 손을 올리며 입을 열었다.
“어쩐 일로?”
셋 모두를 향한 물음이었다.
“보고 싶어서 왔죠.”
이게 피지컬 깡패 정소진.
“같이 왔다.”
운비다.
이전에 꽃님다방에서 복면을 쓰고 나한테 얻어맞은 친구가 이 친구라는 걸, 난 이미 알고 있었기에 적절한 안부 인사를 던졌다.
“몸은 괜찮고?”
그새 다 치료하고 왔네. 이 친구.
“알고 있었나?”
“응.”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줬다.
“손에 자비가 없던데.”
운비가 아니라 다른 놈이 답했다.
그 말에 고개를 돌렸다.
처음 보는 친구였다.
얼굴에 흉터가 진하게 나서, 그게 먼저 눈에 들어와서 오히려 이목구비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친구다.
할아버지가 세배받고 싶다고 나한테 덤비게 했던 복면 중 하나다.
기질이 같다.
작정하고 제 기척을 속인 것도 아니고 스펠 기어를 쓴 것도 아니니, 내 감각을 속일 수는 없었다.
불멸자의 감각이 이 친구가 그때 그 친구와 같은 인물이라고 했다.
“할 때는 뭐든 최선을 다하자는 주의라.”
“그런 것치고는 힘을 숨겼고.”
오호, 눈치 빠른 놈일세.
사람은 각양각색, 변신족 중에서도 단순무식한 타입이 아닌 놈도 있는 법이었다.
“할아버지 처음 뵙는데, 여간 부끄러워야지. 내가 낯을 가려서.”
“…….”
“…….”
내 말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셋뿐 아니라 어머니까지.
“왜, 난 낯 가리면 안 되냐? 내가 낯 좀 가리면 안 되는 거냐고?”
“가려라. 마음껏 가려. 아들.”
어머니가 내 편이 되어 주셨다.
역시 피붙이가 최고지.
“세최또.”
운비가 중얼거렸다.
“다 들린다.”
말하고 소진을 바라봤다.
이전에도 써드 오더였으니, 이번에도 뭐 일이라도 맡기러 왔으려나?
눈으로 진짜 왜 왔냐고 물으니.
“그룹에서 지원하라고 보낸 병력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흉터 놈이 소진이 대신 답했다.
이쪽이 지위가 더 높아?
“도안결이다.”
흉터가 손을 내밀었다.
“그래, 유광익이다.”
그 손을 마주 잡으며 답하고 다시 입을 열어 물었다.
“난 병력 지원 요청한 적 없는데.”
“호의라고, 세뱃돈 중 하나라고 전하셨다.”
오호, 그러니까 변신족 병력 셋을 쓰라고 빌려준다?
“렌트로?”
툭 물으니.
“……맞다.”
표정은 그대로 두고 말투만 께름칙하다는 티를 낸 도안결이란 흉터남이 답했다.
렌트란 표현이 걸렸니?
직관적인 표현이 익숙지 않은 친구인가 보다.
하여간 관료제가 문제다. 꽉 막힌 회사 문화가 애들의 머리를 굳게 한다.
“저건?”
그럼 쓰러진 놈은 뭐냐?
“오는 길에 갑자기 전화가 먹통이 되기에 보니, 저놈이 재밍 장치를 가동 중이었다.”
“음?”
내가 고개를 갸웃했다.
얘는 말을 쉽게 할 줄 모르나.
도안결이란 친구가 잠깐 생각하더니, 답했다.
“오다 주웠다.”
적응력 봐라. 금세 직관적인 표현 수단을 장착했다.
내 소재를 파악하고 오는 사이, 우연히 동선이 겹쳐 잡았다는 거다.
차를 놓고 셋 다 뛰어오는 바람에 생긴 일이었다.
즉, 걸린 놈이 재수가 없었다는 게 내 결론이다.
“아버지가 보냈다고?”
어머니가 말하더니 셋을 눈으로 훑었다.
셋 다 어머니를 알았다.
먼저 도안결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선배님.”
다음은 정소진.
“저도요, 소문은 진짜 많이 들었는데, 제가 각성했을 때는 이미 안 계셔서요.”
마지막은 운비였다.
“음, 그, 오랜 팬입니다.”
어머니는 대체 회사 생활을 어떻게 했길래 팬이 생겼을까?
“그래요. 반가워요. 셋 다.”
어머니가 딱히 날 말리지 않을 거다.
이미 오면서 이런 얘기를 나눴다.
밀당하면서 받을 거 다 받겠다고.
이게 세뱃돈이라면 받아 줘야지.
“계좌 확인하면 진짜 세뱃돈도 조금 넣어 두셨다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 세뱃돈은 마음의 짐을 덜어준다고 하시며 머니 & 세이브를 그룹 차원에서 인수했다.”
“아아.”
난 고개를 끄덕였다.
반가운 이야기였다.
단군 그룹은 프로메테우스의 머니 & 세이브를 작정하고 적대적 M&A로 샀다.
자세히 살피면 단군 그룹이 지원하고 은행 회사 하나가 먹은 거지만, 그게 그거다.
프로메테우스가 한국을 포기한 덕에 머니 & 세이브가 붕 떠 버렸었다.
그대로 공중분해 됐으면 거기에 돈을 맡긴 사람 몇은 한강 수온을 쟀을 터.
이율 높인 저축, 펀드 상품 많이 팔던 곳이다.
그거로 자금을 많이 융통하기도 했고.
그 모든 일이 나로 인해 시작된 거였다.
아무리 내가 한 일의 여파로 일어난 모든 상황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해도, 마음이 불편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고로 이게 내 진짜 세뱃돈이었다.
뭐, 나한테도 좋은 얘기긴 하지만, 단군 그룹에서도 손 안 대고 코 푼 격이다.
얼마짜리 기업을 홀라당 해 먹은 거야.
“여기 뒤처리 좀 부탁할까?”
“네, 보스, 리더, 남편. 뭐로 부를까?”
우리 소진이 농이 늘었네.
“급조됐지만, 팀이라고 생각하고 팀장?”
“요새는 팀장 직급 없다. 우리는 오더로 통일하니까.”
흉터 안결이 말했다.
오늘부터 네 별명은 흉터 안결로 하자.
피지컬 소진, 흉터 안결, 딱 좋네.
불멸에도 너희 기남, 돈독 미호가 있는데 그들도 이들도 퍽 잘 어울리는 별명이었다.
내가 별명은 좀 잘 짓는다.
“그럼 오더라고 하던지.”
흉터 안결의 말에 대강 답했다.
호칭은 알게 뭐람.
단군 그룹 산하 회사는 퍼스트, 세컨드, 써드 오더라고 명령을 내리는 지위를 따로 둔다.
직급을 없앤 대신이었다.
그 외는 매니저나 선후배로 퉁 치고.
각 부서의 최고 꼭대기는 유나이티드 오더를 줄여서 유나 오더라고 부른다고도 들었다.
뭐라 부르는 게 무슨 상관일까.
기왕 생긴 인력 충실히 이용하면 그만이다.
“뒤처리하고 아직 밖에 애들 있는데 애들 놀라지 않게 건물을 좀.”
뒤를 돌아보다가 하던 말을 멈췄다.
대충 고쳐 놓으라고 하려고 했는데 이건 아니지, 싶어서.
“안에 봉사자 둘 기절해 있어요. 그 둘 병원에도 보내 줘요.”
어머니가 아무렇지 않게 내 말을 이었다.
“네, 알겠습니다. 반드시 완수하겠습니다.”
운비가 나섰다.
누가 보면 적진에 뛰어들어 혼자 인질 둘 구하는 임무 맡은 줄 알겠네.
다 때려 잡아 놔서 멀쩡히 기절한 민간인 둘만 데리고 나오면 끝날 일이다. 자식아.
“잠깐만요, 제가 봐야 해요.”
“원장님, 안 돼요. 여기 작전 구역이라고 했습니다.”
실랑이 소리가 들렸다.
보육원 외부 입구 쪽이었다.
녹색 철창문을 넘어 원장님이 들어섰다.
아, 걱정 많으셨겠네.
괜찮습니다. 어머니가 다 해결했어요. 뒤처리도 다 알아서 할 겁니다.
미소를 지으며 말하려고 했는데.
“억, 건물이…….”
원장님이 먼저 제 목덜미를 잡았다.
아.
다시 뒤를 돌아봤다.
누가 그랬는지, 반쯤 부서진 건물이 보였다.
오래됐지만, 깔끔했던 건물이 단숨에 폐가가 됐다.
밤에 보면 무서울 것 같았다.
“아들.”
“네.”
“돈 많지?”
“보수하겠습니다.”
처음부터 기부하려고 했다.
그 기부에 이유가 붙었을 뿐이다.
어머니가 부쉈다.
뭐, 아버지한테 말했어도 알아서 해결해 주셨겠지만, 나도 이참에 효도하는 거지.
“저만 믿으세요.”
“오냐, 아들, 너만 믿는다.”
어머니가 미소를 보이셨다.
나도 흡족한 마음에 같이 웃었다.
그리고 그런 우리 둘을 보고 원장님은 기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