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 압도
“광익이 괴물 맞지?”
긍낙이 물었다.
“내 아들이자 네 조카한테, 괴물?”
강슬혜가 무표정하게 되물었다.
“아니, 좀 너무한 건 아닌가 싶어서.”
그 말에 괜히 강슬혜의 어깨가 으쓱했다.
그걸 본 긍낙이 말을 이었다.
“교관 시절에도 이런 타입 본 적은 없지?”
긍낙의 물음에 강슬혜는 천천히 기억을 더듬다가 관뒀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없었지.”
혈통은 재능을 대변하지 않는다.
아무리 순혈의 피를 이었다 해도 병신은 병신이다.
그게 갱생마녀 강슬혜가 입에 달고 살던 소리다.
혈통빨로 싸우는 건 한계가 명확하다.
육체의 힘을 키우는 거야, 그래, 혈통빨로 한다 쳐도, 그 이후는?
훌륭한 변신족은 하드웨어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그 안에 탑재된 소프트웨어도 중요했다.
최신형 커스텀 PC에 윈도우 98 따위를 탑재해서야 답이 나오겠나.
그것과 같았다.
그래서 중요한 게 훈련과 단련이다.
기술을 배우고 익힌다. 여기까지도 어지간한 변신족이라면 잘 따라온다. 몸으로 하는 모든 것에 재능을 보이는 게 변신족이다.
강슬혜가 강조하는 건 그다음이었다.
‘응용.’
기술을 익히고 배우면 뭘 하나 적당한 때에 쓸 줄 알아야지.
익히고 배운 걸 써먹는 건 또 다른 문제다.
그런 면에서 강슬혜의 아들은 괴물이 맞았다.
“알려 준 건 한 번 보여 주면 그대로 카피해서 쓰고, 다음에 쓸 때는 나보다 더 잘하는 거. 그거 보는 사람은 자괴감 들어.”
“음.”
극찬이다. 강슬혜는 미지근한 차를 한 모금 입안에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구운 쿠키를 입에 물지 않아도 달았다.
오늘은 퇴근한 남편에게 아들 얘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매일 하는 일이었다.
슬혜가 말하면 연호도 같이 맞장구치기도 했다.
“우리 아들, 불멸특수대에서도 이거였어. 혼혈인데 혼혈이 아닌 것 같지. 아더 사이드에서도 사람 구하고 아주 그냥, 우리 아들 그냥.”
남편은 엄지를 치켜세우며 말할 것이다.
그렇게, 슬혜의 얼굴에 슬며시 미소가 피어오를 때쯤이다.
“지금 당장 화랑 팀에 꽂아도 팀장 진급까지는 문제도 아닐 텐데.”
그 말에 슬혜의 눈썹이 씰룩였다.
긍낙이 말하며 힐끔 눈치를 봤다.
슬혜가 찻잔을 들었다.
쌉싸름한 홍차로 입안을 헹궜다.
화랑, 두 개의 의미를 가진 이름이다.
단군 그룹의 산하 기업은 모두 사설 병력을 운용한다.
법무법인 발해부터 시작해서 단군 전자까지, 전부 사설 경비대를 군대 수준으로 보유하고 있다.
그 모든 곳에서 소위 말하는 수재, 영재, 천재를 모아서 만든 전투 집단.
그게 바로 화랑이다.
이게 그룹 내에서 화랑의 위치이자 첫 번째 의미의 화랑.
두 번째 의미는 서울 시내 치안을 위해 조직한 회사. 이미지 메이킹을 위한 의미다.
즉, 대외적인 활동에 제약을 최대한 없앤 무력 집단이란 거다.
치안 유지라는 이유로 인베이더, 사건 사고에 개입할 권한을 어느 정도 갖췄으니까.
“긍낙아?”
변신족은 돌려 말하는 걸 싫어한다. 조금 더 과격하게 표현하면 증오한다.
그들에게는 두괄식이 맞았다.
강슬혜는 그런 의미로 동생을 불렀다.
“아버지가 보고 싶어 해.”
이긍낙이 순순히 답했다.
긍낙의 아버지는 슬혜의 아버지.
곧 단군 그룹의 총수, 회장이다.
그가 변신족 천재를 보고 싶다는 거였다.
한가로운 오후의 티타임 중 나눈 오누이의 대화였다.
* * *
요원 시절 참 많은 걸 배웠다.
불멸자 육체 다루는 법이라든지, 인베이더 상대하는 법이라든지.
변신족 훈련도 같았다.
어머니는 갱생 마녀라 불리는 최고의 교관 중 하나였고.
삼촌은 단군 그룹 산하 기업의 본부장이었다.
삼촌은 최신식 훈련을 얘기하고 장비를 조달했다.
합치.
정신과 마음을 하나로 하고.
상대를 바라본다.
넘버링 8의 인베이더 둘이 달려든다.
실눈에 납작코, 입이 없다.
두꺼운 목, 네 개의 팔, 두 개의 다리를 가졌다.
주먹만 쓰는 인베이더다.
약점과 대응법이 머리를 스쳤다.
가슴 정중앙의 심장, 원거리 저격, 대물저격총 요구, 기관총 전신 타격, 근접전 기피, 관절기 필요, 아래에서 위로 복부를 통해 심장으로 칼날을 찔러 넣는다.
떠올린 뒤, 모든 걸 무시했다.
“전술에 답은 없다. 능력이 되면 무시해도 좋다.”
통나무 선생님의 말이 떠올랐다.
난 그렇게 했다.
좌우로 흔들던 왼손을 뿌린다.
달려들던 놈이 그에 반응하며, 팔을 들어서 막았다.
네 개의 팔 중 하나만 들었는데 제 몸과 가슴을 가리고도 남았다.
두꺼운 쇠공 주먹이 달린 팔이었다.
휘릭.
채찍처럼 휘어진 주먹이 인베이더가 세운 가드에 닿는다.
팍.
때리며 뒤로 두 걸음.
내가 때린 자리로 옅은 먼지가 피어올랐다.
겉면에 흔적만 남긴 수준이었다.
내가 있던 자리로 우측에 있던 인베이더가 냅다 주먹을 휘둘렀다.
훙.
주먹이 허공을 가르자, 풍압이 밀려들었다.
궤적을 보며 상대의 움직임을 읽는다. 스텝을 밟으며 포지션을 잡는다.
왼쪽으로 한 발, 순간적으로 측면에 자리를 잡은 뒤다.
“후.”
호흡을 뱉으며 주먹을 다시 뻗었다.
옆 통수를 노렸는데, 상대가 잽싸게 주먹을 들어서 가드를 세웠다.
팍, 팍, 팍.
여전히 먼지만 피어오른다.
이대로 후리면 내 주먹이 먼저 박살 나려나?
감각이 깨어나며 상대가 노릴 곳을 미리 알린다. 다시 스텝.
주먹을 피하고 호흡을 다시 가다듬었다.
마음을 다스리는 게 진짜 변신족의 비기라지만, 그렇다고 육체를 강화하는 게 없는 건 아니다.
변신족 순혈의 힘은 두 갈래로 나뉜다.
강체(强體)와 괴력(怪力)이다.
그중 ‘괴력’의 갈래로 이어진 비기 중 하나가 강각이다.
근력 강화 기술이라고 해도 좋았다.
그에 맞춰 강체의 갈래로 이어진 비기도 있었다.
피부 섬유를 단단하게 만드는 요령이다.
아랫배 쪽에서 뜨거운 기운이 솟는다. 그걸 토대로 익힌 요령을 대입.
양팔 근육이 화끈하게 달아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강체의 요령은 간단하다.
근육에 힘을 줘, 밀도를 높인다. 단단하게 뭉친 근육은 곧 갑옷이 된다.
제 몸의 근섬유를 컨트롤해야 가능했다.
그렇게 했다. 별로 어렵지도 않았다.
그래서 익힌 변신족의 비전, 철완(鐵腕)이다.
근육의 밀도가 높아지며 갑옷을 만든다. 곧 주먹에도 그 힘이 깃든다.
인베이더 새끼의 실눈 안에 있는 빨간 동공이 휘릭휘릭 돌며 날 찾는다. 난 발을 멈추지 않았다.
내가 던지는 주먹은 플리커 잽.
발을 멈춰서야 의미가 있겠나.
파바박.
내가 뛴 자리로 바닥에 쌓인 먼지가 빗방울 튀듯이 흩날리고, 신기루처럼 허공에 형체를 이루다가 사라졌다. 속도를 높여, 상대를 내 거리에 둔다.
동시에, 상대에겐 거리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걸 만드는 건 발이다.
치고 빠지는 잽, 플리커를 응용해서 탄력적으로 팔을 뻗었다.
왼팔이 채찍처럼 휜다. 휜 팔의 힘을 그대로 주먹에 싣는다.
머리를 노리고 주먹을 뻗자, 상대가 두 팔로 가드를 세우며 몸을 낮춘다.
맞으면서 돌진할 요량으로 보였다.
숙인 몸, 가드, 내 주먹, 모든 것이 머릿속을 스쳤다.
휘릭- 하고 날아간 주먹의 끝이 상대의 가드에 닿았다.
펑!
막은 쇠공 주먹이 깨지고 부서져 파편이 튀었다.
가드가 깨진다. 힘과 기술의 조화다.
요령이 필요한 건데, 난 별로 어렵지도 않았다.
깨진 파편이 비산했다.
그 사이로 인베이더의 실눈이 보인다.
파박.
급할 필요는 없었다.
발을 놀린다. 상대의 측면을 잡는다. 반복하고 주먹을 날린다.
펑, 펑, 펑.
세 방에 가드가 깨졌고, 가슴이 보였다.
양팔과 같은 수준의 경도를 가진 가슴팍이다.
난 주먹을 뻗는 척하다가 품으로 뛰어 들어가며, 발을 상대의 가랑이 사이에 넣고 팔꿈치를 찔러 넣었다.
이문정주라는 팔극권의 기술이었다.
변신족의 육체는 상상 속 기술을 실현하게 한다. 거기에 요령만 붙으면, 이런 것도 가능하고.
펑.
팔꿈치 또한 철완의 일부.
일격에 가슴뼈가 함몰되고, 안에 있던 심장이 터졌다.
퍽- 소리와 함께 새빨간 피가 튀었다.
한 놈을 처리하자마자 땅을 찼다.
훙, 훙.
옆에 있던 인베이더다.
제 동료가 죽는 타이밍에 그걸 미끼로 주먹을 휘둘렀다.
물론 피했다.
감각이 날을 세운 칼날과 같았다. 선명하게 주변 모든 걸 인지했다.
몸을 돌리며 강각의 묘를 발휘해 발을 뻗었다.
회전하는 힘을 이용한 뒤차기다.
발바닥과 인베이더의 팔꿈치가 만난다.
펑.
팔이 중간부터 부서지며 옆으로 휘었다.
돌덩이 팔은 부서져도 피가 흐르지 않았다. 대신 수은 같은 걸쭉한 액체가 흐를 뿐.
진득한 액체가 바닥에 뚝 하고 떨어지고, 그사이에 다시 자세를 잡고 뻗은 내 주먹이 상대의 가드를 부순다.
펑, 펑, 펑.
그 뒤, 거리를 좁혀 가슴팍에 스트레이트.
꽝.
두 번째 심장이 터지기 무섭게 홀에서 다시 인베이더가 튀어나왔다.
꺄아아악- 하는 소리 따위가 들렸다.
뒤늦게 홀을 발견한 사람의 비명이다.
무시했다.
사람을 구하려면 인베이더를 죽이면 된다.
단순한 명제만 머리에 남았다.
다시 뛰었다.
챔피언 두 마리가 달려든다.
난 몸을 좌우로 흔들었다. 잔상을 만들자, 주먹 여덟 개가 소나기 펀치를 날렸다.
전부 보였다.
대부분 피하다 마지막 주먹 하나를 보며 중간에 낚아챈 뒤, 손목을 잡아당기며 꺾고 탱고라도 추듯 상대의 품 안으로 몸을 반 바퀴 돌리며 안겼다.
안기며 팔꿈치를 휘두르자, 곧 상대의 가슴팍이 팔꿈치에 닿았다.
펑!
세 번째 놈은 때려눕히는 데 5초도 걸리지 않았다.
요령이 붙었다.
탁탁, 바닥을 두 번 차는 거로 다시금 기어를 올린다.
제로에서 갑자기 올라간 속도에 적응하지 못했는지, 목이 두꺼운 네 번째 인베이더 챔피언이 날 놓쳤다.
뒤를 잡은 난 상대의 어깨를 잡고 등의 중앙, 심장이 있을 법한 자리를 무릎으로 찍었다.
펑.
경쾌한 소음이 연신 터진다.
입이 없기에 비명조차 없다.
앞으로 고꾸라지는 놈이다. 감각이 경고성을 발했다.
뒤를 돌아보니, 홀에서 인베이더가 꾸역꾸역 나오는 중이었다.
몸을 돌리고 다시 왼팔을 흔들었다.
진자운동을 시작한 팔이 채찍처럼 휘어지며 움직인다.
인베이더의 전신을 다지는 분쇄기나 다름없었다.
파바바바박.
가드를 깎아 내고, 빈틈이 보이면 여지없이 짓쳐들어간다.
스텝 몇 번에 품을 파고들어서 이문정주, 또는 무릎 차기.
틈이 보이면 발도 쓴다.
육탄전이었다.
움직이다 보니 아드레날린이 뿜어져 나왔다.
더, 더 싸우자.
홀에서 나오는 인베이더가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홀은 그 기대에 부응했다.
챔피언은 계속해서 나왔다.
그리고 난 그 앞에 선 사형집행관이었다.
* * *
“염병, 서울 시내 교통.”
PWAT팀은 계급으로 그 지위를 나누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팀 단위로 움직였다.
1팀, 2팀 따위로 나누는 팀이 총 스물이 넘는다.
그중에는 능력을 인정받아 알파 팀 따위로 불리는 곳도 있지만, 보통 서울 시내 치안을 담당하는 팀은 넘버팀이었다.
그중에서도 7팀장, 김효진은 꽉꽉 막힌 도로를 보며 욕설을 터트렸다.
웨에에에엥.
사이렌을 울리며 달려도, 막힌 길을 뚫고 나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나아졌다.
예전에는 길을 안 비켜 주기도 했었다. 알 게 뭐냐 하며 버티는 이들도 있었다.
소방차나 구급차를 막는 거나, 치안 유지팀 차량을 막는 거나, 막는 놈은 계속 막는 법이었다.
하지만 지금 같은 때는 밀고 지나간다.
PWAT팀의 차량은 장갑차 겸용이다.
막으면, 부수고 뚫고 가면 된다.
다행히 이제 그럴 일은 없었다.
이제는 그렇게 무시하게 막는 사람은 없다.
문제라면 이미 시간 딜레이가 길었다는 거다.
‘늦었다.’
효진은 그런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최소 수십에서 수백의 사상자가 생길 것이다.
‘젠장.’
입안이 썼다.
이런 일이 발생한 이유는 크게 둘이었다.
하나는 전조도 없이 생긴 블랙홀 때문이다.
언택트 가드가 울기 전에 탐지가 먼저였는데, 본부에서 홀이 탐지되자마자 경보기가 울었다.
곧 보이자마자 열리는 문이란 소리다.
두 번째 이유는 근무 끝나기 10분 전이었다는 것.
누구라도 방심할 틈이었다.
이제까지 이런 홀은 없었으니까.
10분 전이라면 보통은 쉬는 시간이었다. 10분 이내에 탐지가 걸리면 다음 팀이 출발하는 게 관례였다.
이렇게 갑자기 열리는 경우는 예전 휴즈 게이트 사건 때를 제외하고 없었다고 들었는데.
“미치겠군.”
절로 욕이 나오려는 걸 참았다.
“저기, 팀장님.”
“왜?”
팀원, 그것도 신입의 물음이다.
사나운 대답이 뒤따랐다.
지금은 막내가 팀장에게 말을 걸 때가 아니었다.
사수로 보이는 팀원이 신입의 옆구리를 찔렀다.
막내 팀원은 울상을 짓다가 말했다.
“저기, 이걸 보셔야 할 것 같은데.”
“넌 출동 중에 한가하게 폰이나 붙잡고 있냐?”
“그게 아니라, 아무래도 우리 현장이 지금 생중계되는 것 같습니다.”
“……뭐?”
그 끔찍한 참상을? 누가 찍는다고?
이 씹어 먹을 방송국 새끼들이.
효진의 눈에 살벌한 기운이 어렸다.
탁- 하고 막내에게서 스마트폰을 빼앗았다.
홀로그램이 아닌 화면 송출 형식.
방송국이 아니었다.
“지금 보이십니까? 혼자서, 저분 혼자서 다 죽입니다. 인베이더, 시발, 나 이런 거 처음 봐. 시청자 여러분, 전 목숨 걸고 지금 방송 중입니다. 에? 진짜 죽을 뻔했습니다. 에? 그러니까 홀이 열리는 거만 보고 가려고 했는데 저분이 갑자기 튀어나오더니…….”
개인 방송이었다.
찍는 사람도 얼마나 놀랐는지, 두서없이 아무 말이나 지껄이고 있었다.
효진도 놀랐다.
입이 떡 벌어졌다.
‘뭐야, 이 새끼.’
세상이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이게 가능한가?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었다.
상대는 넘버링 8 챔피언.
근접 전투를 피해야 할 최악의 인베이더 중 하나.
보통 도심에 이런 놈이 나타나면, 나오기 전에 지뢰부터 설치한다.
그게 실패하면 강력한 초능력자와 불멸자가 필요하고.
저격으로 시간을 벌면서 화력으로 밀어붙이는 거다.
물론 더 쉬운 방법은 홀 앞에 지뢰를 까는 거다.
웃긴 게, 이 새끼들이 전면 방어는 강력하지만 밑에서 위로 솟구치는 공격에 취약하다는 것.
그래서 만든 게 수직 지향성 폭발 지뢰다.
날카로운 칼날 따위를 담은 지뢰는 오롯이 인베이더 챔피언을 위해 만든 거였다.
인베이더 하나를 위해 무기를 만들었다.
왜 그랬겠나.
일단 나오면 상대하기 까다로우니까.
어지간한 변신족도 근접전으로 상대하기는 벅찬 놈이니까 그러는 건데.
막 개인 방송에 잡힌 놈이 잔상을 남겼다.
효진의 눈에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사라졌다가 나타난 건, 홀 앞에 튀어나온 인베이더의 앞. 밑에서 위로 주먹이 올라간다.
뻥!
주먹 한 방에 쇠공으로 만든 주먹이 부서지고, 뭘 어떻게 했는지 인베이더의 가슴팍이 터져 있었다.
피가 튄다. 빨간 피가 후드득 흩날렸다.
그리고 이 작품을 만든 주인은 파박 하고 땅 차는 소리만 남긴 채, 다시 다른 인베이더에게 달려든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열?’
바닥에 널브러진 놈들의 숫자를 셌다.
열이 넘었다.
여러 가지 악재가 겹쳐 늦게 출동한 길이었다.
본래라면 수백의 사상자가 나왔어야 할 대형 사고였다.
“언빌리버블.”
팀원 중 하나가 중얼거렸다.
차량이 현장에 도착했다.
사상자는 없었다. 전무후무한 사건이었다.
전신을 피로 뒤집어쓴 특수종 하나만이 현장에 서 있었다.
“후우.”
호흡을 길게 내뱉은 특수종이 몸을 돌렸다.
“좀 많이 나오네요. 이번 홀은.”
그가 말했다.
“네?”
효진이 자기도 모르게 되물었다.
그게 혼자서 챔피언 수십 마리를 때려잡고서 할 말인가?
이건 사람인가?
그런 의문이 효진의 머릿속을 헤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