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 프로메테우스 아웃
로즈 또라이가 눈을 몇 번 깜빡였다. 흐리멍덩한 눈이 본래대로 돌아왔다.
“빌어먹을 자백제. 개 미친 불특대 놈들, 약을 적당히 써야 할 거 아니야.”
“너 방금 본심 말했어.”
“시끄러워, 그런 거 아니니까.”
“아니라고? 자백제가 본래 그 본심을 말하게 하는 역할이거든.”
미안하다. 그런데 받아 주진 못하겠다.
이놈의 인기란.
세상에 나 같은 남자를 태어나게 한 죄로 신도 벌을 받아야 한다.
세상 모든 남자의 눈에 눈물을 흘리게 할 마성의 남자, 유광익을 태어나게 한 죄를 묻겠습니다. 신이여, 왜 그랬습니까?
“미친 생각 중이지?”
“아닌데.”
“딱 봐도 알겠어. 넌 정상이 아니야.”
“개소리 집어치우고 왜 불렀어?”
본론이 듣고 싶다.
“지금 상황을 보니까 웃기게 돌아가던데, 그 저변에 깔린 의도.”
말을 끊으며 로즈 또라이가 내 눈을 지긋이 바라보고 입술을 달싹이더니 마저 말을 잇는다.
“알고 싶지?”
알고 싶으니까 왔지.
하지만 또 순순히 말려 들어갈 수는 없으니.
“아니, 안 알고 싶은데.”
“싸울 때는 심리전의 고수라고 생각했는데, 완전 맹탕이야.”
나른한 눈으로 날 보며 로즈 또라이가 말했다.
“그래, 알고 싶다. 말해 보든가.”
태세를 전환했다.
이쪽은 뭐, 스파이 업계에서 알아주는 프로다. 괜히 기 싸움해서 뭐 하겠나.
어차피 말하려고 부른 걸 테고.
“조건이 있어.”
“그 조건을 왜 나한테 말하는데?”
널 잡은 건 불멸특수대라고.
“얼굴을 가까이 대봐.”
되게 싫은데, 너 지금 냄새나.
애 좀 씻기지.
구린 냄새가 코를 찌른다.
표정을 안 숨겼더니, 로즈가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빌어먹을 자식아, 네가 좋아서 그런 게 아니야.”
“확실하지?”
되묻자.
“저 치들이 못 들었으면 좋겠어.”
로즈가 풀 죽은 표정으로 말했다.
“세 걸음만 물러나 주시죠.”
뒤를 힐끗 보며 내가 말했다.
자리에 있는 건 흰머리 본부장과 요원 둘이다.
요원 둘의 얼굴이 익숙하지 않은 거 보니까, 내부감사팀이나 그쪽인 것 같고.
순혈 불멸자의 귀에도 안 들리려면 세 걸음 물러나서 진짜 모기가 친구 하자고 할 만큼 작게 속삭여야 한다.
사실 모기 날갯짓 소리보다 더 작아야 한다.
“그러지.”
본부장이 답했다.
이미 날 여기로 부른 건, 어떻게든 정보를 얻겠다는 의지다.
그러니 어지간한 요구는 들어주겠지.
셋을 물린 뒤, 로즈에게 얼굴을 가까이 댔다.
귀는 열고 코는 닫았다.
냄새 진짜 지독하다.
“머리 언제 감았냐?”
괜히 물으니.
“물고문당할 때.”
그때가 언제인지 묻고 싶지도 않다.
귀를 입가에 가져다 대고 나니, 걱정됐다.
얘가 원한이 잔뜩 어려서 내 귀를 물어뜯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
“스으으.”
로즈의 숨소리가 들렸다.
뭐, 물어뜯으면 잠깐 아프고 말면 된다. 그러려고 날 부른 거라면 얘도 진짜 의지의 한국인, 아, 미안. 필리핀인이다.
하여간 이 정도 정성이면 귀쯤 물어 뜯겨 준다.
불멸자의 여유다.
“날 빼내 줘. 내가 이미 계획도 세웠어. 날 사랑한다고 말하라는 건 잊고, 그건 계획을 세우다가 포기한 거니까.”
얘가 입으로 방귀를 뀌는 재주가 있었다.
용한 재주다.
더 말해 보라고 손짓했다.
“물론 그냥 내보내 주진 않을 거야, 하지만 주문으로 구속하면 해 줄지도 몰라.”
그래, 더 말해 보아라. 입방귀야.
망상이 심각하구나.
“내 주문을 푼 사람이 네 쪽 사람이라고 했어. 그리고 프로메테우스랑 완전히 척 졌지, 너?”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주문을 푼 게 내 쪽이라고? 혜민이는 손 뗐다고 했는데.
혜민이한테 이후의 일은 굳이 묻지 않았었다.
“내가 도움이 될 거야.”
뿡뿡, 입방귀.
도움은 무슨, 뒤통수나 안 치면 다행이지.
“어차피 나도 이미 버린 몸이야. 여길 나가도 날 죽이겠지, 개새끼들.”
뿡뿡뿡, 입방귀.
내가 알 바 아니고.
내가 굳이 그래 줄 이유도 없고.
“너한테도 좋은 제안이 될 거야.”
뿡뿡뿡뿡, 이 정도면 설사다.
이후, 로즈가 어설프게 돈이나 준다고 하면 곧바로 따귀를 때려 줄까 생각 중이었다.
“평생 널 위해 살겠어. 몸과 마음을 다 바쳐서. 원한다면 낮이든 밤이든 노예가 되겠어.”
……이건 예상 못 했다.
“침대로 불러도 묵묵히 따를 거야.”
얘가 진짜 급했나 보다. 이런 말까지 하는 걸 보니.
“그리고 저 작자들한테는 죽어도 말 안 하겠지만, 앞으로 프로메테우스가 준비한 일 하나는 알고 있어. 알게 되면 진짜 깜짝 놀랄걸?”
이건 블러핑일까, 아니면 진짜일까.
“대신. 하나만, 딱 하나만 약속해 줘.”
기왕 들은 거다. 마저 들어나 보자.
“프로메테우스에 복수하게 해 줘.”
여기서 뭘 겪었길래 애가 이렇게 변했을까.
본래 프로메테우스의 간부급으로 일하던 로즈다.
그런데 그쪽을 향해 복수의 칼을 들이민다고?
자신을 버렸다는 이유로?
얼굴을 뗐다.
가만히 로즈의 눈을 바라봤다. 고작 그런 이유로 이런 활활 타오르는 눈을 가질 수 있을까?
아니다.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유.”
“속았으니까.”
“뭘?”
“난 동생이 다섯이 있어.”
그래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죽으면 본래 평생 돌봐주기로 되어 있었지.”
으흠. 이야기가 신파로 간다.
“다 굶어 죽었어.”
특수종이 아닌 일반인.
가난한 마을에서 태어난 형제자매.
뻔한 이야기다. 프로메테우스는 탁월한 재능을 가진 로즈를 이용했다.
잡혀서 죽었다고 판단한 순간, 가차 없이 버렸다.
버림받은 것까지는 괜찮았는데.
그 이후가 문제였다.
우리 철두철미한 불특대가 정보를 긁어모아 그녀의 약점을 찌른 거다.
혈관에 피 대신 자백제가 돌고 초능력으로 갈궈도 반응하지 않았던 그녀가 입을 연 이유다.
그리고 복수의 이유도 같고.
그나저나, 이걸 내가 한다고 할 수 있는 일인가.
곰곰이 생각해 보고 답했다.
“확답 못 해.”
“괜찮아.”
그야말로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겠다는 심산이구나.
안쓰럽긴 한데, 얘는 어디까지나 테러범이었다.
그런 애까지 불쌍하다고 바라보기에는 난 그리 감정적인 인간이 아니라는 거다.
다만, 정보는 조금 탐났다.
프로메테우스가 준비하는 일이라.
이건 여기서 아무리 고문한다고 해도 입을 열지 않을 것이다.
눈에 독기가 가득했다. 오뉴월에 서리를 내리게 하는 한이라는 게 뭔지 눈으로 말하는 친구다.
뭐, 일단 풀어주고 죽이거나 다시 가두면 되지 않으려나.
되게 냉정하고 참혹한 작전이긴 한데.
얘도 그 정도는 염두에 둘 것 같은데.
일단 나오면 빠져나갈 자신이 있는 건가?
그게 쉽지는 않을 텐데.
내가 빙다리 핫바지로 보이는 걸까?
모른다.
일단 내가 흥미가 당기는 건 로즈가 말한 정보다.
그건 누구도 쉬이 알 수 없는 프로메테우스의 큰 계획 중 하나일 거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거기에 지금 프로메테우스가 하는 짓거리도 궁금하고.
하물며 내가 확답하지 못하는 데도 수긍한다. 간절해 보였다.
“좋아.”
고개를 끄덕였다.
로즈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의자에 등을 기댔다. 어깨가 축 내려가는 걸 보니 긴장했던 근육이 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그대로 내 뒤에 선 세 명까지 시야에 담고 말했다.
“퇴각하는 거야.”
“뭐?”
“물러나는 거라고, 프로메테우스가 한국에 손을 뗐어. 내가 말한 거점 중 하나는 죽어도 포기하지 말아야 할 곳도 있었어. 한국에서 얻은 재화를 모은 곳도 있었다고. 그런데 지하까지 텅텅 비었다며?”
그건 내가 못 들은 내용이다.
“결론은 하나야, 한국에서 빠졌어.”
“날 포기했다고?”
이렇게까지 도발을 했는데?
로즈는 눈으로 말했다. 자기는 그들이 포기한 이유도 알고 있다고.
그게 아까 말한 그들의 계획이겠지.
이거 진짜 얘를 빼낼 방법을 생각해 봐야겠는데.
“그만, 나와.”
흰 머리 본부장이 말했다.
얌전히 나왔다.
텅.
다시 철창문이 닫혔다.
얌전히 올라가는 길에 본부장이 물었다.
“무슨 얘길 나눴지?”
난 눈을 끔뻑였다.
“유광익?”
본부장이 다시 날 불렀다.
내가 말해 줘야 하나? 내가 왜?
“저 프리랜서인 건 알죠?”
이번에는 본부장이 눈을 끔뻑였다.
“이제 회사 사원 아닙니다. 물으면 다 답해 줄 줄 아나.”
말하고 쌩하니 걸었다.
뒤를 돌아보니, 본부장이 뒤에서 황당하다는 듯 날 바라봤다.
“안 가요?”
“……간다.”
할 말 있으면 하시든가.
내가 화림에 감정이 좋다고 생각하나 보네.
딱히 좋지도 나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순순히 묻는 말에 대답해 줄 정도는 아니라고.
아니면 돈을 주든가. 프리랜서의 입은 금전으로 움직이는 법이 아니던가.
그대로 회사를 빠져나왔다.
운전석에 오르자.
“광익 씨.”
누군가가 열린 창문 틈으로 쪽지를 던졌다.
“연락해요.”
누구더라.
아, 인사팀이다.
연락처가 적힌 쪽지였다.
이게 바로 인기인의 삶인가.
그리 생각하며 차를 몰았다. 일단 혜민이를 만나야 할 참이었다.
쪽지에서 은은한 향수 냄새가 나서 차 안을 채웠다.
장미 향이었다.
* * *
기가 막힌 일이었다.
최미남은 근 몇 년 이래 처음으로 패배감을 느꼈다.
푹신한 소파가, 고가의 명품 소파가 불편하게 느껴졌다.
의자에 몸을 파묻은 최미남은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했다.
‘유광익.’
고작 며칠 만에 한국에 들어가 있던 프로메테우스의 거점이 다 망가졌다.
머니 & 세이브, 각종 음지의 사업체까지.
물리적인 타격만 있었다면 수습할 수 있었다.
그건 일도 아니었다.
중요한 건, 무형적으로 쌓아 둔 재산을 잃었다는 거다.
로비를 통해 만든 인맥, 약점을 쥔 고위급 인사, 그 외에 한국 정치 및 사회 전반에 영향력을 끼쳤던 기반이다.
“의원님, 한 말씀만 부탁드립니다! 한 말씀만 해 주시죠!”
시선이 정면을 향했다.
홀로그램을 통해 한국 정치인이 대거 구속되는 장면이 나왔다.
프로메테우스 게이트.
덕분에 동북아시아 최강국 중 하나라는 곳에서 손을 떼게 생겼다.
“진짜 다 빠지는 겁니까?”
소파 바로 옆에 서 있던 직속 부하가 물었다.
몸은 잘 쓰는데 머리는 잘 안 돌아가는 놈이다.
그래도 전투력만은 크로커다일만큼 클 가능성이 있는 인재이기도 했다.
“응.”
최미남은 고개를 끄덕였다.
“유광익이란 놈도 놔둡니까?”
부하의 눈에서 보이는 건 호승심이다.
잃은 게 정말 많았다.
마약 사업체가 시작이었다.
그 뒤, 돈놀이꾼을 잃는 바람에 한국에 들어간 자본을 다 회수하지 못한 것도 크고.
투견 스쿼드도 잃었으며.
보안팀장으로 출장 중인 불멸자도 잃었다.
그 모든 게 하룻밤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유광익이 했다는 거다.
‘유광익, 넌 대체 뭐니.’
최미남은 바보가 아니었다.
그녀는 일의 배후를 캤고, 유광익의 이름을 들었다.
‘어떻게 투견 스쿼드를 죽였을까?’
아무리 특수대 요원으로서의 경험과 탁월한 재능이 있다고 해도, 상대는 오롯이 싸우기 위해 태어난 변신족 다섯이었다.
그걸 정면으로 부쉈다.
당한 걸 보니, 무기에 당한 게 아니라 육탄전의 결과였다.
쉽지 않다.
자신이라도 어렵다.
불멸과 마법을 다루는 자신이 어렵다면 일반 불멸자는 엄두도 못 낼 일이 맞다.
그런데, 그래야 했는데.
“이길 자신은 있고?”
“맡겨만 주신다면.”
부하의 호승심이 불타오른다. 그 에너지가 피부를 찌릿찌릿하게 찔렀다.
“넣어 둬. 지금은 다른 일에 우리 전력을 집중할 때야.”
최미남은 부하를 달랬다.
유광익, 그래, 놀라운 재능을 보였다.
대단한 특수종이자, 수완가다.
인정한다.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정부가 움직였고 단군 그룹도 움직였다.
어떻게 보면 개인의 행동이 올드 포스와 엑스큐라시라는 전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두 단체를 움직이게 한 것과 다름없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개인의 힘은 한계가 명확하다.
유광익 하나를 죽이는 일보다 중요한 건 많았다.
당한 건 당한 거고, 일은 일이다.
미래를 그리는 게 그녀의 일이었다.
“세상에 불을 가져오듯, 우리는 특수종의 세상을 만들 거야. 급한 건 유광익이 아니야.”
부하가 그 말에 고개를 숙였다.
“유혹하겠다고 일본에서 삐죽거리는 크로커다일도 돌아오라고 해.”
크로커다일에게 광익이 속았다면 일이 쉬웠을 텐데.
일부러 흘린 정보에 속았다면.
그래서 일본에 가서 악어의 아가리에 머리를 넣었다면.
‘그리 쉬운 남자였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겠지.’
잠깐이다. 미련이 머리를 스쳤다.
털어 낼 것도 없는 잡념이었다.
최미남은 한국에 숨어 있던 간부에게도 복귀를 권유했다.
이 일 때문에 프로메테우스의 이름이 땅에 떨어지리라.
프로메테우스는 그걸 감수하기로 했다.
진짜 중요한 일을 위해서, 오물을 잠깐 뒤집어쓰리라, 그리 결심했다.
다만, 이대로 넘어갈 수는 없는 법이다.
‘그냥 가면 서운하지.’
최미남은 광익을 위해 선물을 남겼다.
정보, 최미남은 한국에 유광익의 정보를 남겼다.
이레귤러이자, 특이점을 가진 특수종.
그 정보를 탐내는 하이에나는 많았다.
‘물어뜯겨 죽는다면.’
그거로 만족이다. 살아남는다면, 그때는 진지하게 그를 죽일 것이다.
최미남은 혀로 입술을 핥았다.
매력적인 남자를 떠올리면 성욕이 들끓는다.
마법을 배우며 익힌 주문의 부작용이었다.
그녀는 애써 욕구를 눌렀다.
“그 자식도 지금쯤 우리를 건드리고 불안에 떨고 있을 겁니다.”
부하가 말했다.
최미남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과연.’
그녀가 봤던 유광익이란 인간이 그리 섬세한 마음을 가졌을까?
물론 광익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같은 시각, 광익은 점심을 든든하게 먹고 오침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