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규격 외 혈통 천재-183화 (183/488)

183. 날 사랑한다고 말해 줘

게이트가 터졌다.

블랙홀이 아닌, 비리 게이트가.

일명 ‘프로메테우스 게이트’다.

난리도 아니었다.

하루가 멀게 정치인이 잡혀가고.

기업 총수도 잡혀가고.

아프다고 검찰 출두 거부하고.

오밤중에 잡혀가서 불법 구속이니, 불법 사찰이니, 하는 말이 오가고.

뭐, 나야 모른다.

나라가 깨끗해지는 과정이라 생각하면서 속 편하게 밥 먹고 훈련이나 했다.

당장 프로메테우스 애들이 어떻게 나올지 그걸 지켜보느라 신경을 곤두세울 뿐이지.

그나저나 우리 팬더 형, 진짜 일 기가 막히게 잘하네.

큰 그림은 내가 짰지만, 이 모든 걸 맞춰서 하나의 작품으로 만든 게 우리 팬더 형 되시겠다.

중간에 필요한 정보도 알아서 뽑아내고.

뭐, 시발 팀장을 통해서 불특대 정보가 좀 넘어왔다고 들었다.

보너스로 시계 다섯 개쯤 사 주고 싶은 마음이다.

덕분에 머니 & 세이브는 하루 만에 폭망.

“우리 제자,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오늘 내가 다 사 준다.”

내가 칠 사고를 미리 말해 줬더니, 역으로 주식을 사서 상한가를 친 통나무 선생님도 기뻐했다.

“저 킹크랩이요.”

기왕 먹는 거 비싼 거 먹도록 하자.

“좋아.”

말만 앞서는 양반은 아니다. 금세 사 주겠지, 뭐.

그나저나 프로메테우스가 잠잠하다. 당장 악어가 입국하지는 않을지, 본래 목적이었던 또 다른 간부가 들어오진 않을지 기다리는데 연락이 없다.

몰래 뒤통수치려나?

그런데 그러려고 해도 낌새는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게 전혀 없다.

훈련하고 밥 먹고.

집 근처를 돌아다니며 건물을 돌아봤다.

다 커서 언제까지 부모님 집에서 얹혀살겠나.

돈이 없으면 모를까.

이번에 금고 털고 골드바 털고 보석 털고.

하여간 또 부자가 됐다.

그거만 시가 20억이 넘는다.

휘황찬란한 건물까진 아닌데, 동네에 내가 머물 장소 하나쯤은 살 형편은 된다.

부동산을 찾아 돌아보다가 팬더 형 집에 가서 이 얘기를 꺼내니.

“건물을 사서 어디에 쓸 건데?”

“개조해서 훈련장 만들고 이것저것?”

“됐어. 내가 구할게, 복비 나 줘.”

라고 팬더 형이 나섰다.

“공인중개사 자격증도 있어요?”

“어, 있어.”

농담 삼아 물었는데, 진짜 있다.

“다른 자격증도?”

“몇 개 더 따 두긴 했지. 요원 일 쪽 하다 보면 쓸 데가 많으니까.”

“……형 진짜 머리 좋구나.”

“에듀빌이 최고임. 공인중개사 합격도 에듀빌, 몰라?”

오랜만에 CM송을 들었다.

아버지가 처음 공무원 하라고 권했을 때, 머릿속에 떠다니는 노래였는데.

“요즘은 인강이 대세다.”

팬더 형이 말했다.

인강이 대세인 건 옛날이고.

요즘은 홀강이 대세죠.

홀로그램 강의가 요새 그렇게 뜬다고 하던데.

AI 프로그램이랑 섞어서, 막 진짜 1:1 강의하는 것처럼 한다고 그런다.

“좋아요. 5층 정도면 충분해요. 상가 건물이 나을 것 같고, 1층 통째로 주차장 같은 거 만들고, 지하에 훈련 시설 넣어야 하니까, 그것도 고려해 주시면 좋고요.”

“알아서 구할게, 와서 보고 선택해.”

능력자다.

이 형 그때 감방에서 안 꺼내 왔으면 어쩔 뻔했나.

부르르.

폰이 울렸다. 사수였다. 전화를 받으니.

“낌새가 이상해.”

목소리는 멀쩡하다. 아직 몸이 회복되려면 멀었을 텐데.

비약 인간은 일반인보다 회복이 더 빠르다. 그렇다고 해서 불멸자 만큼 빠르진 않으니.

회사 보험 처리하면 골이 아프다는 말에 병원비는 내가 부담했다.

“몸은 좀 어때요?”

안부부터 물었다. 일로 만난 사이이긴 한데, 그래도 그동안 든 정이 있다.

“장미가 입을 열었다.”

안부 인사는 무시다.

사수는 할 말만 했다.

누가 얼음덩어리 아니랄까 봐, 사람 참 안 변해.

입원해서도 정보를 계속 받은 모양이다. 누가 전해 줬을까 생각하다가 고민할 거리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겠나, 시발 팀장이지.

하여간 츤데레 양반.

겉으로는 툴툴거려도 할 건 다 해 준다. 이렇게 기밀도 쏙쏙 빼 준다.

“……아직 살아 있네요?”

불특대에 잡히고 이런저런 일로 쥐어 터져서 반폐인이 되지는 않을까 했더니.

아니면 감방에라도 처박혀 있거나 했을 텐데.

“정신 구속을 풀었어.”

“네, 그래서요?”

“로즈가 말한 거점, 불특대가 급습했는데 남은 게 없어.”

“음?”

이게 무슨 소리야?

“둘 중 하나라고 봐. 하나는 퇴각, 다른 하나는…….”

“한 방을 노리고 힘을 모은다?”

“로즈는 아는 눈치였는데, 입을 여는 데 조건을 걸었어.”

“뭔데요?”

“널 보고 싶대.”

그게 전화를 한 이유였습니까?

“……날?”

“그래. 너.”

“굳이?”

“이유는 나도 몰라.”

“일단은 알겠습니다.”

“불특대에서 공식적으로 요청이 갈 거야.”

전화를 끊었다.

팬더 형한테 전화 내용을 말해 주니.

“자폭하려는 거 아니냐?”

라고 걱정 어린 말을 뱉었다.

“저, 혹시나 하는 건데.”

진짜 나도 이런 말 하기 싫은데.

사실상 자폭은 불가능하니까.

블특대가 바보도 아니고, 그런 자폭 장치를 품은 걸 놔둘 턱이 있나.

이미 전신 스캔하고 다 털었겠지.

그러니까 드는 생각이다.

최근에 내가 좀 여자한테 인기가 많아진 것 같아서 그런단 말이지.

PWAT 지혜 누나도 있고.

변신족이고 욕구에 충실하다지만, 피지컬 깡패 소진이도 있고.

혜민이는 그렇다 치더라도.

“로즈도 여자니까.”

내 말에 팬더 형이 눈을 깜빡였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고 묻는 것 같았다.

“제가 옴므파탈 같은 느낌이니까.”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아니요. 농담이었습니다.”

그럴 턱이 있나.

나도 농담으로 하는 소리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무리지.

로즈 걔가 아무리 또라이라고 해도 이건 진짜 아니다.

부르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전화가 울렸다.

요한 형이다.

“광익아.”

“응, 말해.”

“나 아는 지인 아니고, 회사 대표해서 전화한 건데.”

기다리던 전화였다.

심문을 위해 출두할 수 있냐는 거다.

난 물론 가야 했다.

여러 가지 이유다.

첫째는 프로메테우스의 동향을 읽는 일이었고.

둘째는 로즈의 심사가 궁금했으니까.

다만.

“얼마 줄 건데?”

“응?”

“회사 회계팀에 물어봐, 얼마 줄 거냐고. 아, 인사부에 내 몸값 알아본 다음 연락해 달라 해 주고.”

“……와.”

놀란 요한 형에게 내가 명언을 남겼다.

“형, 회사가 전쟁터 같지? 밖은 지옥이야. 나 프리랜서라고.”

어디서 맨입으로.

“알았다. 야, 무섭네.”

“요원 말고 요한이 형으로 놀러 와. 소고기 사 준다.”

“그건 좋은데.”

전화를 끊고 보니. 팬더 형이 날 보며 손뼉을 쳤다.

“그래, 젊을 때 한 푼 두 푼 모아야지.”

“당연한 거 아니에요?”

우리 둘은 의기투합했다.

그로부터 정확히 이틀. 몸값 책정에 이틀이 걸렸다.

난 오랜만에 화림으로 향했다.

이전 첫 출근 때처럼 마을버스와 지하철 타고 가는 게 아니라.

내 스포츠카를 몰고 갔다.

부아아아앙.

멋들어진 배기음과 함께 주변 시선을 한 번에 받으며 건물 앞에 섰다.

이전 화림 습격 사건 이후, 아직 건물 재건이 안 끝나서 일시적으로 발렛파킹을 시행 중이라고 들었다.

건물 앞에서 내리자.

“유광익?”

누군가 중얼거렸다.

“그 유광익?”

“퇴사한 그 신입?”

“경이의 신입?”

“오, 저분이 그분입니까? 그 유광익?”

“근데 저 차는 뭐야?”

“와, 나 저거 알아. 한정판인데 십억 넘을걸?”

이게 바로 하차감이다. 승차감은 차를 탔을 때의 편안함, 하차감은 내렸을 때의 주목도.

주변에서 지저귀는 사람이 많다.

“오랜만입니다. 다들.”

대충 아는 얼굴만 보면서 인사하고 안으로 들어섰다.

안내데스크에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인포메이션 누나다.

습격 사건 때 안 죽었고 이후로도 계속 자리를 지킨 듯했다.

“와, 광익 씨.”

누나가 날 더 반겼다.

“오, 누나 아직도 일해요? 몸은 괜찮아요?”

“내 뒤에 딸린 군식구가 셋이야. 내가 일 안 하면 내 가족 다 굶어.”

진짜 굶기야 하겠나.

다만, 그만큼 일이 고프다는 거겠지.

이 누나, 참 친절하고 사람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재주가 있다.

이런 것도 초능이라면 초능이지.

얼굴도 웃는 상인데, 참 귀엽고 정감 가는 타입이다.

“올라가려고 하는데 어떻게 해요?”

이전에야 홍채, 지문 따위로 날 인증했는데 지금은 다 안 될 테니.

“일단 신분 확인부터 해야 하니까, 잠깐만.”

인포메이션 누나가 곧 사람을 불렀다.

보안 요원 둘이 왔는데, 아는 얼굴이다.

동기는 아니고 그 뒤에 들어온 후배님들이다.

“만나 봬서 영광입니다.”

한 명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다른 하나는 묵묵히 스피드건 같은 걸 나한테 겨눴다.

“초능 측정기입니다.”

응, 알아. 보자마자 오라 따위가 느껴지는 걸 보니, 사이킥 기어의 일종이니, 판독기 같은 거다.

형태변환자를 대비하는 거겠지, 뭐.

“오라 수치 없습니다.”

무뚝뚝한 후배가 말하고.

존경한다고 고개를 숙인 후배는 죄송하다며 이상한 부적을 쥐여 줬다.

“정신 조종 또는 해로운 주문을 판독할 수 있습니다.”

이전에 최미남한테 당한 게 크긴 컸다. 출입 심사가 까다로워졌다.

아무 이상도 없었다.

“이상 없으십니다. 선배님.”

“저 퇴사했어요. 선배 아닌데.”

“아, 그렇죠. 그건 그런데.”

“신입 놀리지 말아요. 광익 씨.”

뒤에서 인포메이션 누나가 한마디 했다.

그걸 보고 나도 생긋 웃었다.

“선배 말고 그냥 이름 불러 줘요. 딱딱해서요.”

말하고 승강기에 올랐다.

“네, 그럼 광익 님.”

후배님이 참 예의가 바르네. 그 옆에 선 말 없는 후배님은 무뚝뚝하시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턱.

닫히려는 승강기 문을 무뚝뚝 후배님이 잡았다.

“음?”

고개를 갸웃하고 바라보자.

무뚝뚝한 후배님이 신중하게 한 글자 한 글자를 읊어 말했다.

“죄송합니다만, 사인 한 장만.”

무뚝뚝한 게 아니라 낯을 가리는 거였니?

“그럽시다.”

해 줬다. 겉옷을 벗으며 안에 입은 흰 티에 해 달라기에, 유성 매직으로 해 줬다.

거, 사인 그게 뭐 얼마나 어렵다고.

그나저나 내 인기가 이렇게 폭발적이라니.

승강기를 타고 올라가 내렸다.

“흥, 놀고먹으니 때깔이 곱구나.”

기남이가 날 기다렸다.

“……굳이 따라와서 넌 왜 그러냐.”

옆에서 요한 형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굳이?”

내가 되물었다.

이 자식이 날 기다렸다고?

“웃기는 소리. 지나가는 길이다.”

기남이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그렇다고 치고. 어디로 가요?”

1층은 아직 정리가 미흡했지만, 그래도 이쪽은 어느 정도 정리가 끝났다.

올드 포스, 세계 정부 연합이 인정하는 나라가 한국이다.

그 한국의 중추 중 하나가 불특대고.

당연히 이런 제반 사항은 최우선으로 처리해 주…….

“이거 왜 이래?”

나도 모르게 되물었다.

아니, 파티션 대신에 박스가 뭐냐? 알게 모르게 주변을 보니 빈티가 난다.

방음 소재 벽도 복구 안 됐고.

반파된 회의실 안을 휴게실로 쓰는 요원도 보였다.

슬쩍 탕비실로 눈을 돌리니.

[식음료 개인 지참]

이라고 쓰인 안내문이 보였다.

“이제 회사에서 과자 안 줘요?”

“야, 요즘 회사 어렵단다.”

“네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퇴사자.”

요한 형이랑 얘기하는데 뒤에서 기남이 끼어들었다.

쟤는 오랜만에 만나서 헤드락을 당하고 싶나. 왜 졸졸 따라오면서 시비를 걸까.

“넌 지나는 길이 내 뒤꽁무니냐? 안 가? 안 바빠?”

“요새 회사 일도 없어, 노는 사람 많다.”

내 말에 요한 형이 답했다.

기남이는 흥- 하고 콧방귀만 꼈다.

호남이 형은 안 보이고 툭툭 걷는데, 진짜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시발.”

반가운 얼굴이 중얼거렸다.

시발 팀장이다.

거, 사람 참 안 변해.

“입에 걸레를 문 사람이 있네요. 저 기분 나빠서 일 못 하겠는데, 그냥 가도 돼요?”

마침 흰 머리 본부장도 보이길래 입을 좀 놀려봤다.

“야, 이중봉, 너 혀 놀릴 거면 사직서 날리고 해.”

“…….”

시발 팀장은 입을 놀리는 대신 날 향해 살벌한 눈빛을 보냈다.

의문과 폭언이 담긴 눈빛에.

풉 하고 웃어 줬다.

“허허.”

팀장이 입으로만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아, 무서워서 이거 원.”

그걸 보고 내가 중얼거렸다.

“야.”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흰 머리 본부장이 말했고, 2팀 팀장을 비롯해 주변에 있는 노는 손이 전부 시발 팀장을 붙들었다.

놔뒀으면 분명 덤볐다고 저 양반.

“환영 인사는 이만하면 됐고, 내려가지. 그리고 퇴사자지만 한때 몸담았던 곳인데, 예의는 조금 지켜 주면 좋겠다. 뒤에 둘은 그만 가 보고.”

흰머리 본부장의 말이다.

나도 칠 장난은 다 쳤다.

“가시죠.”

두말할 것도 없이 로즈 또라이를 만나러 갔다.

요한 형과 손 인사, 기남이한테도 손 인사.

물론 모양은 다른 인사다.

한 명은 손바닥으로 다른 한 명은 손가락으로 인사했다.

마지막으로 멀어지는 시발 팀장에게 윙크 한 번을 날렸다.

팀장이 입 모양으로 욕설을 뱉기에 고개를 홱 돌렸다.

안 보면 그만이다.

지하로 내려갔다.

감옥이 있는 곳이었다.

철창, 그 가운데 의자에 덩그러니 앉은 로즈 또라이가 보였다.

이렇게 보니까 되게 불쌍하네.

헝클어진 머리칼 사이로 로즈가 날 바라본다.

“열어.”

본부장의 말에 요원 하나가 나서서 문을 열었다.

“안전은 보장한다.”

본부장이 말했다.

안으로 들어가 죄인 앞에 섰다.

로즈 또라이가 흐리멍덩한 눈으로 날 보더니 말했다.

“날 사랑한다고 말해 줘.”

……아, 진짜 이러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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