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 때리고 또 때리기 (3)
“엄마,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응.”
오랜만에 땀을 흠뻑 흘린 어머니가 후련한 표정으로 답했다.
난 링에 널브러진 채로 입을 열었다.
“친엄마 맞음?”
“오, 아들 맷집 좋네, 2회전 하자고?”
아니, 그건 아니고.
“나 죽어요. 밤새도록 싸우고 왔단 말입니다.”
“누가 시켰니? 그리고, 겨우 하루 이틀 밤새웠다고 툴툴거릴 정도로 약한 아들 둔 적은 없다.”
그건 인정.
현재 내 체력이면 밤샘 사흘쯤이야 너끈하지.
변신족 훈련을 통해 난 체력 괴물이 됐다.
“오, 호랑이 가면 너 유명인사 됐더라.”
9시가 좀 넘자, 통나무 선생님이 밑으로 내려왔다.
이 양반은 장이 시작돼야 일과도 시작이다.
훈련 중에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장이 문을 열지 않으면 의욕이 안 생겨.”
라고 답했다.
주식의 노예 같은 분이다.
패드를 붙잡은 선생님이 마저 말했다.
“프로메테우스 애들 독이 바짝 올랐을 것 같은데? 거기에 넌 지명수배범이 될 것 같고.”
나라가 아니라 개인이 개인을 때리면 당연히 법에 저촉된다.
프리랜서로 의뢰를 받아서 하는 일도 작정하고 털면 범죄에 속하기도 한다.
물론 나라가 인정하는 부분도 있다.
공무에 관련된 일, 그들이 요청한 일, 뭐 그런 것들.
아니면, 엄청 유명한 프리랜서가 되면 어쩔 수 없기도 하다.
국익을 해치는 일이나, 진짜 테러범만 아니면 흐지부지 넘어가니까.
그럼 이번에 내가 한 일은?
범죄다.
겉으로만 보면 그렇다.
하지만, 그 안을 까 보면 어떨까?
“사식 넣을 일 만들지 마라, 아들.”
“설마, 남편이 행안부 실세라며?”
“그럴 일 없어요.”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거참 여기저기 얻어맞아서 몸이 삐걱댄다. 밤새 싸운 것보다 어머니랑 대련한 게 더 힘들다.
“너 준비한 게 있구나?”
“아들 계획 있니?”
두 분이 물으시길래 웃으며 되물었다.
“때리고 또 때리고 계속 때리면 아프겠죠?”
두 분의 얼굴에 의문 부호가 떠올랐다.
그냥 그런 거다.
물리적으로 때리고 정신적으로 또 때리고.
맞은 데 또 맞는 기분이 아닐까?
아니면 여기도 맞고 저기도 맞는 기분일까?
나야 모르지, 난 때리는 쪽이라서 맞는 쪽 기분은 모르겠다.
“이제 비밀을 가질 나이도 됐지, 우리 아들, 엄마한테도 말 안 하고. 혹시 네 컴퓨터에 있는 직박구리 폴더에도 엄마한테 숨길 게 잔뜩 있는 거 아니지?”
“……어머니, 저한테 왜 그러십니까.”
그건 아들의 프라이버시라고요.
“오늘 TV 보시면 나올 거예요.”
“슬혜야, 뉴스.”
굿 타이밍이다. 주식 시장 동향 파악을 위해 뉴스를 꼼꼼히 챙겨보는 통나무 선생님이 말했고.
어머니가 휴게실로 향했다.
TV에 속보, 믿을 수 없는 현실 따위의 기사가 나오는 중이었다.
그 중심에는 장타일보의 김초명 기자가 있었다.
오랜 시간 고생하던 기자 양반이 장타 한번 후련하게 날렸다.
뭐, 이 정도면 홈런에 가깝겠지만.
* * *
“반드시 실어 주십시오.”
밤을 새운 덕에 김초명은 눈이 빨겠다.
밤새도록 습격받은 곳을 돌아다녔다.
조폭 사무실, 대부업체, 불법 대포폰을 만드는 애들까지.
전부 깔끔하게 털렸다.
금고를 들고 나르고 현물도 가져갔다.
‘강도질이잖아.’
그렇게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이전에 있었던 익명의 제보가 없었다면, 그저 강도질 따위로 치부할 수 있었다.
김초명은 사진을 찍고 기록을 남겼다.
그 와중에 인터뷰도 땄다.
우연히 현장에서 마주친 여자였다.
겁에 질린 여자에게 인터뷰 비용으로 돈을 쥐여 줬다. 그제야 술술 입을 열었다.
별 내용은 없다. 하지만 필요한 내용은 다 있었다.
사실 단 하나면 충분했다.
“가면을 썼어요. 호랑이 가면이요. 피도 튀었고, 3층에 가 보니까 사람들이 전부 쓰러져 있었고……. 모자이크 처리는 해 주는 거죠?”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지금 모자이크가 문제인가.
가면, 호랑이 가면을 썼단다.
그거면 충분하지.
일반인을 마주쳤음에도 어떤 위해도 없었다.
그들은 목표로 한 것들만 때렸다.
익명의 제보를 토대로 한 증거.
그 증거와 어젯밤과 새벽 내내 일어난 일을 토대로 쓴 기사.
그렇게 국장 앞에 섰다.
“증거 있으면 해 주겠다고 하셨잖습니까.”
처음부터 대들었다.
이번에는 안 해 주면 퇴사하고 개인 기사라도 낼 셈이었다.
어떻게든 알려야 했다.
그렇게 으르렁거리자.
“누가 안 해 준대? 무슨 말도 하기 전부터 송곳니부터 들이대? 내가 뭐, 비리의 온상이냐? 이제까지 돈 먹고 기사 내리고 그런 사람이었냐? 내가?”
그런 의심도 많이 들었었다.
국장이 그리 깨끗한 인간도 아니니까.
하지만.
“나도 테러 단체라면 치를 떤다, 아주 개자식들이라고 생각한다고, 그러니까 실어. 뉴스 헤드라인 올리고 방송국 놈 중에서 먼저 온 놈한테만 중계권 준다고 하고. 뜯을 거 다 뜯고. 초명아, 너 알지.”
“뭘요.”
“우리 이거 하면, 그때부터는 우리도 목숨 내놓는 거다.”
그래서 거절할 줄 알았는데 한단다.
김초명은 국장이 변심한 이유가 뭘까 궁금했지만, 지금은 묻고 싶지도 않았다.
급한 건 이쪽이다.
“저 기사 씁니다.”
“써라, 김초명, 내가 허락한다. 야, 미리 말하는데, 쫄리면 퇴사하고 오늘 밤에 튀어라. 내일 아침부터 우리는 테러 단체를 밝힌 언론인이자, 그 개새끼들에게 목숨을 저당 잡힌 몸이니까.”
“……그게 다 진짜입니까?”
다른 기자 하나가 물었다. ‘프로메테우스가 침투한 한국 사회’란 가제의 기사와 내용은 이미 회사 내에서 떠돌았다.
“넌 내가 호구로 보여? 프로메테우스 저격 기사를 쓰는데, 소설 써서 올릴 것 같아?”
물었던 기자가 입을 다물었다.
몇 명은 떠났고 나머지는 남았다.
“까짓거, 언론의 자유가 뭔지 보여 주자고요.”
베테랑 기자 하나가 말했다.
“그래, 가 보자. 김초명, 빨리 써!”
국장이 큰소리를 쳤다.
그렇게 만든 기사의 제목이었다.
[범국가적 테러 단체 프로메테우스, 한국에 뿌리내린 암세포]
제목은 저격이었고 내용은 신랄했다.
[프로메테우스, 그들은 한국의 밤을 장악했고 낮에도 손을 뻗었다. 그동안 마약으로 인한 피해, 일반 서민을 등쳐먹는 불법 대부업체 등, 이들이 손을 뻗치지 않은 분야가 없을 지경이었다.]
증거가 나왔고, 그 와중에 지난 밤 일어난 사건의 자초지종도 나왔다.
[호랑이 가면을 쓴 무리는 머니 & 세이브를 타격했다. 이전에도 있었던 일이다. 그럼 그들은 강도였고 테러범이었을까? 아니다. 이들은 테러 단체에 억울한 일을 당한 피해자 무리가 고용한 프리랜서라고 본 기자는 추측한다.
그 예로 그들은 일반인에게는 손도 대지 않았으며, 하물며 머니 & 세이브 금고는 손도 대지 않았다.
다만 돈세탁을 전문으로 하는 테러 단체 요인이 3층에서 시신으로 발견됐을 뿐이다.]
기자의 사견이 들어가긴 했지만, 워낙 충격적인 사건인지라, 나라가 들썩였다.
* * *
‘내 조카지만.’
음흉하고 머리 잘 돌아가고 집요한 놈이다.
그저 힘만 믿고 날뛰면 불리해지는 건 광익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걸 뒤엎었다.
‘도와라.’
아버지가 그리 말했다.
그럴 작정이었다.
필요하다면 그룹의 힘을 쓸 생각도 있었다.
여력도 있었고, 그럴 영향력도 충분했다.
하지만 광익이 요구한 건 더 단순했다.
“삼촌, 언론사 하나만 압박해 주고 보호해 주세요.”
“압박이랑 보호랑 다른 단어인 건 알지?”
“알죠.”
“하고 싶은 말이 뭔데?”
프로메테우스를 찌르고 싶어 안달 난 기자가 소속된 신문사.
압력이야, 그룹의 힘까지도 필요 없다.
제 명함 한 장이면 충분했다.
단군 그룹 산하의 본부장 명함이다.
거기에 덧붙여서.
“여기 한국입니다. 프로메테우스고 프린세스 메이커고 간에, 그룹에서 지키겠다고 하면 지킵니다. 3년, 무상으로 경호팀 붙여 드리죠.”
회유와 압박이다.
언론사 사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일에 정치를 제외할 순 없다.
이윤이 움직이는 일에 권력이 움직이고 권력이 움직이는 일에 이윤이 움직인다.
다만, 이번 일은 조금 달랐다.
이긍낙은 조카의 부탁을 받았을 뿐이다.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하물며 경호팀 운영 비용도 조카가 냈다.
“어머니가 삼촌한테 빚진 거 알면 저 죽어요.”
아직 누이와 그룹 간의 갈등이 다 해소되지 않았다.
그걸 알고 저리 말한다.
참 속없어 보였는데, 속이 깊은 조카 놈이다.
그래서 돈도 받았다.
그러니 이 일은 정확히 의뢰를 받은 일이다.
언론사가 기사를 내기 전, 이미 3년 경호 업무 계약을 체결했다.
이윤과 정치, 권력과 별개로.
이십 대 초반의 청년이 벌인 일로 세상이 들썩였다.
한국 뉴스뿐 아니라 전 세계 뉴스가 시끄러웠다.
깊게 뿌린 내린 프로메테우스를 몰아내자는 말이 뉴스 댓글에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여론이다.
여론이 뭉치고 프로메테우스의 정체를 밝힌다면, 어젯밤에 일을 벌인 가면 무리에게는 면죄부가 생긴다.
프리랜서가 범죄자를 잡는 일도 묵인하는 판이다.
현상금 사냥꾼이란 놈들도 있다.
그럼 그 상대가 프로메테우스라면?
‘내가 정부라도 봐줘야지.’
안 봐주면 어쩔 건데.
답이 없었다. 잘 만든 판이었다. 광익이 만들고 주무르고 조작한 판이기도 했다.
“누나, 조카 한번 기가 막히게 키우셨네요.”
긍낙이 허공에 부스터 연기를 뿜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연초 형태 부스터 말고 다른 걸 개발해야 하나.
실내 금연이란 말에 부스터까지 못 피우게 하니 미칠 노릇이었다.
아침부터 날이 더웠다.
푹푹 찌던 날이었는데, 일기 예보도 예측하지 못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쏴아아아아.
시원한 장대비였다.
* * *
“이 기회에 털어 내시죠.”
유연호의 말에 장관이 그를 바라봤다.
“다 못 털어 내면 역풍이다, 알지? 여기에 엮인 사람이 한둘이 아니야.”
돈과 권력을 떼려야 뗄 수 없는 거다.
프로메테우스가 한국에 어떻게 침투했겠나. 돈을 갖다 발랐다.
정치인에게 바르고 기업인에게 바르고, 필요하면 기부도 하고 지자체에도 쏟아부었다.
그렇게 기반을 마련했다.
“다 털어 내시죠.”
유연호의 의지는 굳건했다.
아들이 프로메테우스와 싸운다. 아비 된 도리로서 응원은 못 할망정, 정치인이 엮였다고 말릴 수는 없지 않나.
그렇다고 강 건너 불구경할 생각도 없다.
“연호야, 유 팀장, 이거 진짜 쉬운 일 아니야. 무력으로만 해결할 일이 아니라고.”
“힘으로 될 거였으면 저 지금 여기 있지도 않았습니다.”
피닉스팀 데려가서 다 멱을 따 버렸지.
대충 누가 연관되고 엮였는지는 안다.
“혹시 저 몰래 돈 받았으면 미리 말하고요.”
“……왜? 난 봐주게?”
“제가 봐줄 것 같습니까?”
국장은 만약 자신이 연관되었다고 말한다면 이 불멸자가 이 방을 곱게 나가지 않을 것을 확신했다.
“너 왜 이렇게 극단적이냐?”
“극단적인 게 아니라 옳은 일을 하자는 겁니다.”
“끙.”
국장이 앓는 소리를 냈다.
진짜 하자니, 골이 아프다. 모르긴 몰라도 대통령 라인까지 닿을 일이다.
그렇다고 누구는 봐주면서 누구는 털 수도 없는 일이고.
당장 기사가 터지자마자, 로비가 들어온다.
로비의 주제는 한결같았다.
돌려 말했지만, 상대 정치 세력을 압박하는 카드로 쓰자는 거다.
그러니까 자기편은 놔두고 상대편만 털자는 건데.
“야, 행안부에서 작정하고 움직인다고 이게 될 일이야? 안 된다니까.”
“그래서 여기서 말씀드린다고 했잖습니까.”
두 번 말하게 할래? 유연호가 표정으로 말했고.
장관은 어쩔 수 없음을 알았다.
전화기를 들고 검찰에 연락했다.
“……무력은 우리 쪽에서도 지원할 거고 30분 뒤에 시작합시다. 리스트는 보내 드릴게.”
“미친 거요? 대한민국 정치를 아작 내겠다고?”
이게 터지면 뭐라고 불릴까.
프로메테우스 게이트?
블랙홀만으로 끔찍한데 또 게이트라니.
그래도 어쩌겠나.
안 하면 혼자 나가서 다 족칠지도 모를 인간이 유연호다.
들어줘야 했다.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무엇보다 대통령의 허락도 떨어졌다.
“그래요. 합시다. 이번에 안 하면 어쩌겠어요. 알고도 넘어가면 올드 포스 가입국으로서 얼굴도 못 들겠지요.”
국가 원수의 말이다. 무게감이 달랐다. 물론 피할 수 있으면 피하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래서 말려 보려고 한 건데.
“저 공무원으로 남게 해 주시죠.”
검찰 쪽의 잔소리를 듣는 와중에 유연호가 말했다.
“협박하지 마. 내가 네 부하냐?”
장관이 잠시 수화기를 내려놓고 성을 냈다.
그 뒤, 수화기를 다시든 장관은 목소리를 높였다.
“아, 몰라. 우린 할 거고 막을 거면 막든가. 피닉스팀 보낼 거니까.”
그리고 전화를 끊었다.
“장관님, 최고.”
유연호가 엄지를 치켜세우고 나갔다.
열린 문으로 밖을 보니, 이미 팀이 대기 중이었다. 안 말리면 진짜 홀로 나설 셈이었을 거다.
“아이고, 저 꼴통. 아들은 저놈 안 닮았어야 할 텐데.”
장관이 중얼거렸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아들은 아버지의 이런 면을 쏙 빼닮았으니.
어제 난리 친 가면의 주인이 광익인 걸 알면 더 기가 막혔을 노릇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