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규격 외 혈통 천재-181화 (181/488)

181. 때리고 또 때리기 (2)

“사수는요?”

“불멸자랑 붙었다.”

어떤 작전도 변수가 없을 수는 없다.

“그래서요?”

“왼쪽 정강이 복합골절. 갈비뼈 세 대가 나갔고, 턱뼈도 금 갔다.”

사수는 불멸자가 아니다. 중상이란 소리였다.

“안 죽었으면 됐어요. 어차피 프로메테우스랑 붙으면 사수가 얌전히 물러날 거라 생각한 적도 없고.”

팬더 형이 핸들을 꺾으며 말했다.

“대신 보안팀장을 잡았지.”

전면 창밖으로 비보호 좌회전 표지판이 보였다.

“그게 누군데요?”

“머니 & 세이브의 총괄 무력팀장.”

위치는 노필두 급이고.

무력은 노필두보다는 못하지만, 수완이 좋은 순혈 불멸자란다.

“대어네요.”

“돈세탁하는 놈이랑 같이 조져 놨으니, 더럽게 아플 거다.”

“좋아요.”

2차 집결지로 딱히 쓸 공간이 없어서, 봉고차를 하나 사서 그 안에 모였다.

나와 마리, 팬더 형은 자리했는데.

혜민이와 사수가 빠졌다.

본래라면 사수는 합류했어야 했지만.

괜찮다.

안 죽었고, 대신 상대의 다른 손가락도 부러뜨린 셈이다.

혜민이가 사수를 병원에 데려갔으니 괜찮을 거고.

변수는 어쩔 수 없다. 전부 계산하면 팬더 형이 신이게.

“그래서 오늘 일은 너희 둘이 해야 하고, 동선은 다시 짰다.”

팬더 형이 말했다.

“오케이, 잘했어요.”

“……칭찬을 받는데 왜 기분이 이상하지?”

그야, 본래는 내가 팬더 형한테 이런 말을 할 일이 없었으니까.

위치가 변했다.

그러니 어색할 만도 하지.

끽.

차가 멈췄다. 팬더 형이 비상 깜빡이를 켰다.

바로 옆에 골목길이 보이는 2차선이다.

내가 봉고차 문을 열고 내렸다.

“오라버니, 조심하세요.”

“마리야, 쟤가 다치겠니?”

팬더 형이 뒤로 고개를 돌린 채로 말했다.

그래, 내가 다칠 턱이 있나.

그래도 걱정하는 동생이 귀엽기에.

“내 걱정은 말고, 우리 마리 조심해.”

내 말에 마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마리도 조심할게요.”

그래, 너밖에 없다.

프로메테우스는 머니 & 세이브처럼 얌전히 양지의 사업체만 갖고 있지 않았다.

마약 제조업처럼 음지의 사업체에도 손을 댔다.

가령 지금, 골목길 안쪽에 있는 건물 3층의 대부업체 같은 곳도 그렇다.

잔챙이에 가깝지만.

오늘 밤, 난 알고 있는 프로메테우스 단체를 전부 솎아낼 작정이었다.

“시작합니다. 동훈이 형, 나머지 부탁해요.”

“말이라고.”

눈 밑에 쌓인 그림자가 평소보다 더 짙은 것 같기도 하고.

“피곤해요?”

“아니.”

그래, 이 양반도 불멸 변신 혼혈이다.

이번 훈련으로 변신족 능력도 제어하는 그런 능력자란 거다.

근데 뭐 이렇게 안색이 안 좋냐고.

“똥 마려워요?”

“아, 아니라고.”

아무래도 보상이 부족한 걸까.

“이번 일 끝나면 시계 사드림.”

말하고 가만히 바라보자.

“……돈으로 줘.”

팬더 형이 이어 말했다. 안색이 조금 나아진 것 같다.

거참, 돈이면 간이고 쓸개고 다 팔 양반이네.

곰 쓸개니까 가져다 팔아도 돈이 되긴 하겠다만.

“네, 그럽시다.”

말하고 건물 위로 올라갔다.

‘당기시오’라고 쓰인 문을 힘껏 밀었다.

텅.

힘차게 밀었더니, 문손잡이가 벽을 때리며 경쾌한 소음을 울렸다.

끔뻑끔뻑.

눈을 깜빡이는 덩어리가 둘, 어설프게 피가 섞인 특수종 새끼가 가운데 의자에 앉아서 담배를 물고 있었다.

양아치스러운 분위기가 뭐냐고 묻는다면 지금 이 장면을 소개해 주고 싶었다. 퀴퀴하고 습했다.

지금 태우는 담배 냄새 말고도 찌든 담배 냄새가 코를 찔렀다.

보통 이러면 ‘누구냐’, ‘뭐 하는 놈이냐’ 이딴 질문이 나올 것이다.

난 오늘 들를 영업장이 많았다.

그리고 난 팬더 형이 확인한 정보를 신뢰한다.

그러므로 여기는 프로메테우스 잔챙이 모임 장소가 맞으니.

“저승사자다.”

누구냐고 묻기 전에 정체를 밝혔다.

“……뭐?”

“응?”

“앙?”

세 놈이 동시에 황당한 얼굴을 해 보였다.

형, 바쁘다.

난 말을 끝내자마자 땅을 박차고 앞에 있는 덩어리 두 놈의 목덜미를 내리쳤다.

힘 조절하면 나다.

아직도 특수대 시절의 넥광익을 기억하는 동기가 있다.

떡, 떡.

살집이 두툼한 목을 치자, 떡 소리가 났다.

두 놈이 쓰러지기도 전, 두툼한 원목 책상 위로 올라가 발로 보스로 보이는 놈의 턱을 걷어찼다.

뻑, 후두둑.

노란 치아가 허공에 휘날렸다.

“흩날려라, 벚꽃 이빨.”

이거 오랜만이네.

기남이 치아 털고, 처음인가.

꾸륵.

노란 치아, 옥수수 알갱이를 쏟아 낸 놈이 피거품을 뿜었다.

피가 튀기에 살짝 피하고, 앞으로 폴짝 뛰어내리면서 뒤통수를 잡아 테이블에 찍었다.

꽝.

테이블에 머리가 반쯤 박혔다.

대충 눈치를 보니 불멸 피가 섞인 듯했다.

쿼터니까 이 정도 부상이면 회복하는 데 고생 좀 하겠지만, 애초에 서민 등골 빼먹는 애들 걱정할 내가 아니다.

주변을 둘러봤다.

금고가 보였다. 비밀번호 따위 알아내기도 힘들고 여기서 쥐어뜯자니, 일이 많아.

나 오늘 바쁘다.

콰직.

금고에 손가락을 꽂았다. 꽂은 채로 들고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에 그 짧은 소란에 놀란 사람인지, 누군가 2층에 엉거주춤 서 있는 게 보였다.

짧은 치마의 여자였다.

여자는 날 보더니, 동공이 미친 듯이 흔들리고 다리도 후들거렸다.

누가 봐도 겁먹은 모습이다.

“별일 아닙니다. 들어가시면 됩니다.”

말하니, 이제는 턱까지 발발발 떤다.

아니, 내 얼굴이 보자마자 무서워할 그런 얼굴이 아닌데.

극도의 호감형 아닌가.

“아가씨? 해치지 않아요.”

말하자.

“사, 살려 주세요.”

안 해친다니까 그러네.

“음, 네, 살려드릴게요.”

길게 말하면 오해만 깊어질 판이다.

훌쩍 그녀를 지나쳤다.

난 금고를 들고 내려오다가 불현듯 깨달음을 얻었다.

가면 써서 그랬구나.

싸우면서 가면에 금도 가고 피도 튀었으니, 무서울 법도 하지.

그렇다고 얼굴을 보여 줄 수는 없으니.

훌쩍 나와서, 기다리던 봉고차에 금고를 실었다.

“갑시다.”

“그게 내 시계값이겠지?”

“말해 뭐 해요?”

모든 일에는 보상이 필요하다.

머니 & 세이브 금고는 손도 안 댔다. 그곳에는 일반인의 돈도 섞여 있으니, 굳이 그런 피해를 줄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이쪽은?

서민 등골의 정수다. 되돌려 줄 수도 없으니, 내가 가져다가 좋은 데 쓰면 된다.

맛난 것도 먹고 좋은 술도 사고, 팬더 형 시계도 사 주고 마리 옷도 사 주고.

남으면 기부도 하고.

최근에 어머니가 기부하고 봉사하는 일에 심취하시던데, 거기에 주면 될 거다.

“다음.”

“오케이, 가즈아.”

팬더 형이 옛날 유행어를 읊었다.

이제 활력이 좀 돌아온 것 같네.

금고를 보고 눈이 반짝이는 걸 보니, 딱 느껴진다.

가즈아라니, 혜민이가 들었다면 틀딱이라고 욕했을 텐데.

봉고차가 다시 출발했다.

이날 밤, 마리와 난 열심히 뛰었다.

새벽 6시까지 여기저기를 쏘다녔다.

대부업체, 대포폰 업체, 조폭 사무실 등 총 열아홉 곳을 털었다.

여기저기서 금고는 여덟 개를 얻었고 조폭 사무실에서 골드바도 한 무더기 주웠다.

좋은 전리품이었다.

현금과 현물, 보석도 꽤 쏠쏠하게 구했다.

마지막에 돌아서는데 양팔과 발목이 부러진 강단 좋은 조폭 두목 놈이 눈을 부라리며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골드바랑 보석, 장물아비한테 팔겠지? 우리가 지구 끝까지 쫓아갈 거다.”

자기가 누아르 영화 주인공인 줄 알기에.

“죽고 싶다고?”

나직이 살기를 품어 말해 주니, 오줌을 지렸다.

일반인이라고 손에 사정을 뒀더니, 애가 멋모르고 대거리를 한다.

그렇게 보낸 하루다. 그러니까 보람찬 하루였다.

“자, 이제 가자.”

“네, 오라버니, 마리는 오랜만에 힘을 써서 좋았어요.”

“그래, 가끔 이렇게 스트레스를 풀어 줘야지. 변신족은 원래 이렇게 욕구를 풀기도 해야 하거든.”

“네, 마리는 오라버니 말에 동의합니다.”

역시 청학동 에이스, 예의범절이 남다르다. 어머니의 교육 방식이 만든 예의의 결정체다.

우리 둘의 대화를 듣던 팬더 형이 중얼거렸다.

“쌍으로 미쳐가지고.”

“다 들립니다. 시계.”

“난 아무 말도 안 했다.”

금전 만능주의, 돈의 노예 팬더 형이 입을 다물게 한 뒤에는 평온했다.

막 여명이 떠오르는 하늘과 한강이 눈에 들어왔다.

창밖으로 비추는 한강의 모습이 신비로웠다.

주황빛이 하늘을 태우고 열어, 그대로 강줄기 위를 내달린다. 빛으로 이뤄진 기마대가 강 위를 달리는 것 같았다.

“예쁘네요.”

마리가 말했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이리 아름다운 세상이다.

인베이더를 죽이고자 이 세상에 뛰어들었지만, 더러운 놈들을 치우는 것도 같은 종류의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이제 프로메테우스, 이 개자식들은 어떻게 나오려나?

즐거운 상상이었다.

덤비겠지, 또 덤비면 나도 다음 수를 꺼낼 것이다.

동남아 쪽에 프로메테우스 기지가 몇 개 있다지?

한국에서야 대놓고 만들 수 없었지만, 동남아에는 기지 따위를 만들었단다.

사수가 말한 거니까 확실한 정보였다.

무려 그 장미 또라이가 자백제를 드링킹하고 말한 내용이라니까.

기밀 중의 기밀이지만.

“넌 믿어.”

사수는 그리 말하고 말했다.

믿어 줘서 고맙다는 말은 안 했다.

어쩌다 보니 같은 목적을 가졌다.

그러니 그런 겉치레는 필요 없다.

난 진심으로 사수만큼이나, 기회가 되는대로 이 프로메테우스란 개자식들을 조질 생각이었다.

그렇게 집에 도착했다.

마리와 얌전히 들어가니.

어머니가 소파에 앉아 계셨다.

“아버지는요?”

“출근.”

목소리가 차갑다.

“나 먼저 씻는다.”

잽싸게 말하고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는데.

“유광익.”

어머니가 날 불렀다.

“네, 대한민국 제일 미녀 어머니.”

일단 아부 한 발.

“네 동생까지 데리고 나갈 일이니?”

내가 한 일이 생중계로 나갔다는 건 이미 안다. 거기에 마리도 찍혔군.

“마리가 잘 치더라고요. 그 능력 놔두고 썩히면 아깝잖아요.”

“너랑은 다르지.”

어머니의 눈에 빛이 어린다. 살기라는 이름의 빛일까.

“네, 저는 남자, 마리는 여자.”

“장난질로 넘어가고 싶으면 주먹으로 얘기하고.”

“네, 어머니 소자는 불멸자, 마리는 변신족임을 압니다.”

다쳐도 낫는 게 불멸자인 나였지만, 마리는 다르다.

하지만 이건 내 뜻이 아닌데 말이야.

“어머니.”

날 나무라자, 마리가 나섰다.

어머니의 시선이 마리에게 향했다.

“넌 가만히 있어. 엄마가 알아서 해. 오빠가 이상한 거 시키면 거절해야지.”

그게 아니라니까 그러네.

내가 머리를 긁적였다.

“근데 이 아들 새끼가 반성의 기미가 안 보이네.”

어머니가 일어나려 했다.

마리가 어머니와 내 사이를 막았다.

“아니요, 마리가 원했어요.”

“……마리야?”

“마리가 언제까지 어머니가 주시는 밥이나 축내며 살아야 할까요?”

마리는 말을 잘하는데, 가끔 단어 사용이 격하다.

밥을 축내며 산다니, 너무 공격적이다.

나쁜 뜻으로 한 말은 아니다. 아직 말하는 게 어색해서 그렇지.

저 강렬한 단어 사용을 무마하기 위해 청학도 수준의 예의를 장착한 것도 안다.

그래서 안쓰럽다.

어머니 앞에서 마리는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얌전하게 말했다.

“마리는 증명하고 싶어요. 저도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있겠죠? 실험체가 아니라 박마리라는 이름으로 살고 싶어요. 그러려면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해요. 그게 오라버니가 하는 일을 돕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어머니는 잠시 말이 없었다. 침묵이 흘렀다.

어머니가 마리를 물끄러미 보다가 미소를 보였다.

와, 나 어머니 저렇게 웃는 거 태어나서 몇 번 못 봤는데.

일진 때려잡고 혼난 뒤, 그래도 계속하겠다고 했을 때였나?

그때 봤던 것 같다.

“전부 혼자 생각한 거니?”

“네?”

“지금 말한 거.”

“네, 마리의 뜻이에요. 광익 오라버니는 강요, 강압, 강가……, 아니 이건 아니고요. 하지 않았어요.”

“마지막 걸 했으면 내 아들이라도 죽였어.”

그 미소에 담담함을 담아서 말씀하시니, 살기를 담아 말할 때보다 무섭네요.

그리고 저도 진짜 쟤를 동생으로 생각합니다.

여자 아니고.

“다 컸네.”

“네?”

“다 컸다고 우리 딸.”

어머니가 말하며 일어나 마리 어깨에 손을 올렸다.

마리가 어머니 품 안에 안겼다.

“내가 널 안 지 고작 몇 년이지만, 그래도 넌 내 딸이야. 그리고 이 엄마는 딸이 큰 걸 보니까 좋다.”

담백해서 더 감정이 느껴졌다.

대견함과 더불어 그동안 말하지 않았던 걱정이 깃들었다.

실험체 변신족.

과거의 기억을 잃은 변신족.

본래의 그녀는 누구인지 그녀도 모르고 누구도 모른다.

하물며 그 박병준 박사도 몰랐다.

그녀에게 삶은 이곳이 시작이고 끝이었다.

어머니도 그걸 알았다.

“하고 싶은 거 다 해. 우리 마리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아.”

어머니가 말하며 마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마리는 말이 없었다. 그저 몇 번 눈을 깜빡이다가 무표정 그대로 눈물을 흘렸을 뿐이다.

나도 쟤가 저기서 왜 우는지 모르겠는데, 괜히 나도 울컥하네.

“나도 진짜 동생이라고 생각했다고.”

뒤에서 한마디 거들었다.

“알아요. 오라버니.”

눈물을 닦으며 어머니 품에서 빠져나온 마리가 말했다.

“저 먼저 씻을게요. 엄마, 고마워.”

그리 말하고 훅 욕실로 사라진다.

가슴이 따뜻해진다.

마지막 말이 특히 더 와닿았다.

“하, 이제 사람 같네.”

어머니가 말했다.

“그러게요.”

나도 어른의 눈으로 마리가 들어간 욕실 문을 바라봤다.

툭.

그런 내 어깨에 어머니가 손을 올렸다.

“그건 그거고, 엄마한테 말도 안 하고 동생을 데리고 나간 건 별개가 아닐까?”

“네?”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아들, 유광익, 뒈질래?”

어머니가 살기를 품으셨다.

“진짜 위험한 일 안 시켰어요.”

“안 시켜? 그 테러 양아치 새끼들 모인 곳에 집어넣고? 벽을 주먹으로 뚫게 해서 싸우게 해 놓고?”

누구냐, 누가 말했냐.

“우리 아들, 간이 두 개니? 붓다 못해 분열했니?”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대련 한판?”

매는 먼저 맞는 게 덜 아픈 법이다.

“도전이라면 이 어미가 손수 받아 주마. 변신하고 붙을까?”

“그건 좀.”

변신체로 붙으면 진짜 너무 두들겨 팬다. 불멸자인 걸 알고 난 뒤, 체벌의 강도가 강해졌으니.

“가자, 아들.”

어머니가 내 목에 팔을 둘렀다.

그래, 뭐, 어쩔 수 없으면 가야지.

어머니도 날 꾸짖는 게 반이고, 반은 마리가 변한 걸 기뻐하심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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