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규격 외 혈통 천재-179화 (179/488)

179. 합치

처음에는 ‘왜 하필 우리 팀에 혼혈 신입을’.

다음에는 ‘불쌍한 신입’이라고 생각했고.

그 뒤에는 ‘애가 좀 이상한 것 같다’라고 생각했다.

아침마다 팀장과 치고받고, 수틀리면 들이받고, 동기를 괴롭히지 못해서 안달이 난 것처럼 보였으니까.

회사 생활 막바지에는 미쳐도 단단히 미친놈이라고 확신했다.

회사를 나온 뒤에 만났을 때는.

‘그릇이 달라.’

다른 사람과 다르다. 뭘 해도 할 놈이었다.

동훈이 광익을 바라본 관점이다.

그럼 지금은?

“……얘가 연기에 심취해서 그래.”

통신기를 통해 들려오는 말을 들으며 동훈이 말했다.

“마리는 이해해요. 변신족은 그럴 수 있으니까요.”

“내가 다 부끄럽네.”

마리와 혜민이 번갈아 말하고.

김정아는 상관하지 않았다.

뭐, 이들도 한가롭게 유광익의 연기를 감상할 만큼 시간이 있는 게 아니다.

머니 & 세이브 건물은 총 3층.

동훈이 미리 파악한 바로는 3층 꼭대기에 돈세탁하는 대가리가 하나 있다고 들었다.

그러니까, 머니 & 세이브의 진짜 점장.

프로메테우스가 꽂아 둔 핵심 인력이다.

만약 그 작자가 죽으면?

프로메테우스의 수뇌부에겐 누가 강제로 주둥이를 열고 엿을 처먹이는 기분이겠지.

“시작하자고.”

동훈이 말했다.

광익이 첫 번째 시선 끌기, 두 번째는 마리였다.

그리고 정아가 3층에 있는 놈을 타격한다.

단순하지만, 효율적인 작전이다.

‘이런 걸 보면 참 영리하긴 해.’

큰 그림은 광익이 그렸다. 동훈은 작전의 세부 사항을 맡았다.

동훈이 툭하면 제 입으로 불멸특수대 최고의 두뇌라는 말을 했지만, 광익은 딱히 비난하지 않았다.

최고인지는 몰라도, 동훈을 인정했으니까.

타이밍을 만들고 빈틈을 후비고 김정아를 들여보낸다.

흐름을 잡고 상대의 반응을 예측한다.

착각하게 하고 그걸 믿게 한다.

동훈에게 당한 이들은 그를 이렇게 불렀다.

‘벙어리 사기꾼.’

말없이 상대를 속인다.

이런 종류의 작전은 그의 특기였다.

상대를 농락하는 게 광익의 특기인 것만은 아니었다.

“마리 준비 완료.”

마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실험체지만, 능력만큼은 순혈 변신족을 넘보는 노력형 수재.

그게 이동훈이 보는 박마리다.

일반인에서 실험으로 변신족이 된 소녀는 오른 주먹에 너클을 끼고 벽 앞에 서서 자세를 잡았다.

동훈은 너클을 받고 제 오라버니가 선물해 줬다며 기뻐하던 마리의 모습이 떠올랐다.

저 너클의 이름을 스펠 브레이커.

이전에 마약쟁이 보스의 것이었던 물건이다.

은행 건물의 뒤편, CCTV가 찍든 말든, 마리는 주먹을 내질렀다.

쩌-엉!

주먹질 한 방에 쩌저적 하고 베리어가 부서진다.

이전의 일, 그러니까 광익이 금고를 턴 뒤로는 머니 & 세이브는 벽에 방호 주문을 걸어 뒀다.

그게 지금 깨졌다.

작전 시작이었다.

* * *

“어, 저게 왜 깨져?”

방호 주문이 한 방에 깨진다.

3층, 말쑥한 정장 차림의 남자다.

단체 내에서 별명은 돈놀이꾼, 실질적으로 한국 프로메테우스의 자금을 관리하는 작자였다.

홀로그램 영상이 CCTV를 비춘다.

주문을 깬 마스크 쓴 또라이가 주먹을 들어 벽을 때리기 시작했다.

“미친.”

아다만티움은 아니더라도, 두께 7cm의 강철판을 벽에 넣었다.

한 번 당하지, 두 번은 안 당하니까.

어떤 초능 특수종도 순식간에 강철을 녹일 수는 없다. 그걸 노린 설계였다.

벽은 뚫리지 않아야 했다. 그만한 대비를 했다.

차라리 창문을 뛰어넘고 들어왔으면 그러려니 할 텐데.

CCTV를 부술 생각도 안 하고 벽을 주먹으로 후린다.

샌드백이라도 된 듯 때린다. 양 주먹을 번갈아 가며 벽을 친다. 가면 쓴 또라이는 그걸 반복했다.

기계적인 움직임에 벽에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정면에 호랑이, 이쪽은 표범이냐? 여기가 무슨 동물의 왕국이야? 구경만 할 거야?”

남자의 등 뒤다.

“대기하시죠.”

큰 키에 귀 위로 짧게 머리를 자른 빼어난 미모의 여자, 보안팀장이었다.

순혈 불멸자였으며, 방식은 달라도 전투력이라면 지금 1층에 출동한 도그파이트 스쿼드의 한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는 능력자였다.

그 뒤로 보안요원 둘이 더 있었다.

하나는 불멸자, 하나는 초능 특수종이다.

경호에 변신족보다 불멸자가 유리하다는 건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들이 이곳을 지킨다는 건, 돈놀이꾼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쿵, 쿵, 쿵, 쿵, 우직.

CCTV에 오디오는 들어오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런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홀로그램에 나온 표범 가면의 변신족이 양손으로 후려갈기니까 강철 벽이 우그러진다. 우그러진 벽을 어깨로 들이받더니, 나이프를 꽂고 찢더니 양손으로 잡고 벌려 입구를 만들었다.

무식한 수준을 넘어선 괴력이었다.

“상대는 변신족, 순혈급으로 추정.”

보안팀장이 말했다.

그녀의 눈이 빛났다. 주변에 들어오는 정보를 입력하고 상황을 주시한다.

상대가 노리는 건?

강철 벽에 구멍을 낸 변신족이 안으로 몸을 욱여넣는 게 보였다.

‘금고?’

“금고 또 털리면, 나 죽어.”

돈놀이꾼이 앓는 소리를 뱉었다.

이전 사건이 준 여파를 아직 전부 해소하지 못했다.

프라이빗 뱅크가 털리는 바람에 불멸교와의 거래에서 불리한 위치에 섰다.

한국에서 머니 & 세이브 입지를 단단하게 하려고, 손해를 본 모든 사람의 재산도 복구해 줬다.

이 모든 게 다 가면 쓴 미친 또라이 불멸특수대요원 덕분이었는데.

이번에는 가면 쓴 미친 변신족이 왔다.

그것도 둘이나.

CCTV가 금고 앞 화면을 보여 줬다.

이전에 당한 일 덕분이다. 머니 & 세이브 수뇌부는 금고 앞에 자동화기를 비치해 뒀다.

두두두두, 불꽃이 터지며 섬광이 홀로그램에 노이즈를 만들었다.

보안팀장은 개인 패드를 꺼냈다.

홀로그램이 아닌 옛날 방식의 화면은 섬광에 노이즈가 생기지 않는다.

신기술이라고 해서 무조건 좋은 건 아니다. 때로는 아날로그 기술이 더 유용했다.

기관총이 불을 뿜었다.

경보음이 터지고 바닥에 심어 둔 축능석 폭탄이 터졌다.

M-18 크레모아를 모티브로 만든 초능 에너지, 오라탄을 쏟아내는 대인 지뢰다.

금고 앞 부비트랩으로 설치하기 위해 소형으로 만들어서 폭발력은 약해졌어도 지향성 지뢰라는 점은 충족했다.

금고로 향하는 길은 외길, 기관총과 지향성 대인 지뢰의 폭발, 피할 곳은 없었다.

“미친.”

돈놀이꾼이 옆에서 중얼거렸다.

피할 곳이 없게 만든 함정이었다. 활로가 없어야 했는데.

변신족은 위로 뛰더니, 천장을 뚫고 올라갔다.

“……천장에는 철판 안 깔았어?”

돈놀이꾼이 물었다.

건물 전체를 철판으로 도배하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클 판이었다.

보안팀장은 상대를 눈에 담았다.

움직임, 손짓, 발짓, 반응 모든 걸 보고 머리에 입력했다.

영리하고 뛰어나다. 훈련받은 요원은 아니다. 체형으로 봐서는 여자, 순혈 변신족이다. 정면에 온 놈과 한패라는 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목적은 금고로 판단.

이전 가면 쓴 무리는 금고에 불을 질렀다.

제대로 미친놈들이었다. 차라리 들고 튀었으면 이해라도 하지.

이놈들이라고 그러지 말란 법이 없다.

잡생각의 끝이다.

계산이 끝났다.

경험이 부족한 변신족은 머릿수로 잡을 수 있다.

“가, 지휘해서 잡아. 내 앞에 데려다 놔.”

“네.”

보안팀장의 말에 뒤를 지키던 둘 중 하나가 발을 뗐다.

방호복에 압착슈즈, 허리에 나이프 두 자루, 양손에 기관단총 한 자루씩.

순혈은 아니지만, 지옥 훈련을 통과한 프로메테우스의 요원이다.

1층 또라이는 도크 파이트 스쿼트가 막으니, 이쪽에 남은 전력을 투입하면 된다.

이 정도 전력이면, 제아무리 순혈이라 해도 변신족 하나 정도는 잡는다.

그렇게 부하가 움직인 뒤다.

펑, 펑.

표범 가면이 CCTV를 부쉈다.

화면이 하나둘 꺼진다. 부서진 CCTV 파편이 바닥에 떨어졌다.

벽 안에 숨은 히든 카메라도 있었다.

변신족은 단순한 방법으로 해결했다.

섬광탄을 꺼내 터트렸다.

코앞에서 맞으면 눈을 멀게 할 수준의 광량이다. 카메라가 꺼졌다. 섬광탄이 열기를 뿜어냈다. 덕분에 열 감지도 불가했다.

‘지금에서야 눈을 막는다고?’

처음부터 막았어야 했다.

보안팀장의 뇌가 팽팽 돌아갔다.

일어난 일을 역순으로 새기고 생각했다.

화면을 깨는 대신, 가면을 쓰고 단숨에 들이닥친다.

무식하게 벽을 깰 능력이 있다면 해볼 만하다.

더구나 시선 끌기로는 앞쪽에 난리 치는 정신병 걸린 변신족만큼 적절한 놈도 없을 것이고.

결론.

‘시작은 타임 어택, 지금은 계획이 틀어진 건가?’

틀렸다. 이동훈은 처음부터 이 타이밍을 노렸다.

교묘한 수작이었다.

생각의 흐름을 조정하는 수작이기도 했다.

‘조력자가 있다.’

고작 둘이 할 일이 아니었다.

금고를 터는 일에 변신족 외에 타인이 끼어들 수도 있었다.

‘정면에서 시간을 끌고 금고로 진입하는 거니까.’

지켜야 할 곳은 명확했다.

“금고로 가.”

보안팀장이 남은 요원도 밑으로 보냈다.

“네.”

이쪽은 초능 특수종, ‘강제 이탈’ 능력자다.

손을 댄 자는 지정한 곳으로 강제 텔레포트를 시킨다. 공간 이동 능력자 중에서도 특별한 재능이었다.

‘조력자든 뭐든 전부 내보낸다.’

강제 이탈이라고 해서 지구 끝까지 보낼 수 있는 게 아니다.

반경 300m를 벗어날 수 없다. 그게 한계다.

현재 부하의 지정 포인트는 정문.

대외적으로 머니 & 세이브에 은행 강도가 든 셈이니, 경찰이 올 것이다.

그럼 정문으로 보내기만 해도 충분했다.

알아서 치안 병력이 해결해 줄 터.

모든 싸움은 공평하지 않다.

수비는 공격보다 불리했다. 생각을 더 넓게 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였다.

그리고 장비의 차이는 생각의 차이를 만들기도 한다.

여기서는 능력의 차이가 상황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꿨다고 말하는 게 더 맞는 말이긴 했다.

동훈은 반나절 동안 혜민을 쪼았다.

주문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어디까지인지, 마법의 가능성을 익혔다.

그 덕분이었다.

푹.

파육음이 들렸다. 보안팀장은 반응했다. 하지만 이미 늦어도 한참 늦은 뒤였다.

“끅, 티으으르르이.”

팀장은 반사적으로 주먹을 뻗고 발로 상대를 걷어찼다.

상대는 주먹을 손바닥으로 받아내서 흘리고 발차기는 정강이로 막고 뒤로 훌쩍 물러났다.

가면이 보였다.

갈기 없는 사자, 암사자의 가면.

상대는 둘, 둘의 기척을 느꼈다.

암사자의 뒤, 그림자에서 걸어 나오는 것처럼 보이는 검은 고양이 가면이 보였다.

이럴 수는 없었다. 이들은 너무 갑자기 나타났다. 텔레포트 능력자라고 해도 그 힘의 준동을 느끼는 게 불멸자의 감각이다. 고로 이건 부자연스럽다.

누구도 순혈 불멸의 감각을 이렇게 속일 수는 없다.

“누구?”

말하며 감각으로 쓰러진 돈놀이꾼의 상태를 살폈다.

목에 나이프가 꽂혔다. 돈놀이꾼은 초능 능력자다.

능력은 ‘브레인 디스크’.

머릿속에 정보를 저장할 수 있는, 움직이는 하드 디스크였다.

괜히 돈세탁, 회계사로 있는 게 아니다.

‘어떻게 내 감각을 속였지?’

돈놀이꾼의 상태를 확인하고 상대를 눈에 담는 짧은 순간, 보안팀장은 해답을 찾았다.

“뒤에 숨어서 짚 인형이나 조물거리는 년이 꼈구나.”

“……너 되게 틀딱이구나. 요즘은 짚 인형 안 써.”

혜민이 답했다.

준비한 마법사와 준비하지 않은 마법사는 전혀 다른 존재였다.

약과 장비를 지닌 불멸자와 달랑 팬티 한 장 입고 싸우는 불멸자와의 차이보다도 컸다.

이번에는 이쪽이 치는 공격수.

혜민은 준비한 마법사였다.

그 준비를, 오롯이 하나에 집중했다.

존재 지우기 주문이었다.

눈에 그늘이 짙은 졸려 보이는 곰탱이의 요구였다.

“그거 하나만 해 줘.”

“날 얕보는 거야?”

더한 걸 할 수 있다고 했다.

건물 위로 불덩이를 쏘아 주겠다고 하니.

“불덩이는 쏴서 뭐 하게? 스프링클러 터트리게?”

광익이 말했었다.

참 얄미웠다.

“너밖에 할 수 없는 일이니까 시키는 거야. 또 내 방에서 자고 갈래?”

“나 놔두고 외박하게? 독수공방은 싫거든.”

“그럼 그냥 해 줘.”

해 달라 말하곤 눈웃음을 짓는 광익을 보며, 혜민은 반칙이라고 생각했다.

이러면 해 줄 수밖에 없지.

다들 광익이 딱 고만고만한 미남이라고 하는데.

다 보는 눈이 없었다.

외모가 전부가 아니다. 다른 불멸자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그래. 한다.”

그 결과가 이거였다.

준비한 주문을 쏟아부은 결과, 순혈 불멸자의 시선을 속이고 목표 타격 성공이다.

허무할 정도로 쉬웠다.

“곱게 돌아갈 생각은 아니겠지?”

짧게 자른 머리의 중성미가 넘치는 상대였다.

“내가 할 말.”

그 말에 김정아가 나섰다.

그녀가 입안에 알약 몇 개를 털어 넣었다.

혜민은 얌전히 뒤로 물러났다.

육탄전에 자신이 나설 일은 없었다.

적어도 지금은 나설 때도 아니고.

* * *

“변신족의 제일 큰 약점이 뭘까?”

어머니가 물었었다.

쉬운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요.”

말하며 내 가슴팍을 가리켰었다.

변신족 애들은 쉽게 흥분하고 감정 조절이 안 되니까.

“땡, 틀렸습니다.”

어머니가 말했다.

“그럼요?”

“머리와 몸이 따로 노는 게 문제지.”

절로 머릿속에 의문 부호가 떠올랐다.

이게 무슨 소리일까 싶을 때, 어머니는 나에게 변신족 비전을 가르쳐 주셨다.

강각은 그저 몸을 단련하는 것에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기술이다.

진짜 비전은 고작 몸으로 체득하는 기술 따위가 아니다.

불멸자가 고통을 감내해 정신을 단련한 뒤, 몸의 기술을 익힌다면.

변신족은 육체를 단련한 뒤, 정신의 기술을 익혔다.

비전 ‘합치(合致)’.

“흥분해도 된다. 감정을 터트려도 돼. 다만, 그걸 하나로 해. 냉정할 때는 몸도 냉정하게, 타오를 때는 몸도 타오르게.”

감정 또한 에너지고 힘이다.

초능이 오라를 쓴다면 변신족의 기력은 폭발적인 감정과 욕망에서 나오기도 했다.

다만, 머리와 몸을 따로 놀게 하지 말 것.

난 그렇게 했다.

겉으로는 망나니 변신족을 연기했지만, 난 몸도 마음도 날뛰지 않았다.

조금 신이 나긴 했지만, 그건 별개의 문제다.

상대는 화를 냈다. 하지만 몸과 마음은 따로 놀았다.

눈은 분노를 담았지만, 처음 보는 상대를 향한 의심은 몸에 남았다.

머리는 흥분했지만, 몸은 상대의 움직임을 의식했다.

합치가 되지 않았다.

고로, 흥분은 방심을 부르기 마련이었다.

눈을 한 번 깜빡이는 사이, 생각이 끝나고.

달려드는 달마시안을 보며.

“눈탱이 밤탱이.”

괜히 한마디 하자, 놈의 눈에 더한 분노가 깃들었다. 재밌는 놈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기 놀린다고 이러는 걸 보면.

달마시안은 다른 네 마리 개보다 빨랐다. 그래서 내 코앞까지 다다랐다.

난 마주 달리지 않았다.

어설프게 자세를 잡고 괜히 흥분한 척, 팔을 뒤로 뻗었다.

상대가 달려드는 짧은 틈, 이번에는 통나무 선생의 가르침을 떠올렸다.

선생은 본래 국외를 돌아다니며 날뛰는 특수 용병 출신이라고 했다.

“상대의 방심을 유도할 수 있다면 어떤 수법도 쓰는 거다.”

선생님이 말했었다.

마리도 나도 이걸 몸에 붙였다.

상대의 눈에 내 실력을 숨기는 건 좋은 전술이었다.

합치와 전술, 내가 지금 쓰는 수작이었다.

달마시안이 달려들며 허리춤에 든 나이프를 뽑는다. 개조 나이프다.

칼날 끝이 세 갈래다. 두 개는 솟았고, 하나는 구부러졌다.

찔리면 뽑을 때, 살점이 뜯기는 구조였다.

칼날이 몸에 닿기 직전.

왼 무릎을 굽히며 몸을 숙이며 발을 앞으로 밀었다.

칼날이 픽 하고 옆구리를 스쳤다.

난 왼손으로 상대의 어깨 쪽 옷을 쥐고 몸을 틀며 오른 주먹을 짧게 올려쳤다.

딱.

상대의 턱이 흔들렸다. 때린 손을 뻗어 그대로 멱살을 쥔다. 왼발로 상대의 발을 걸고 몸을 휘돌리며 바닥을 향해 메다꽂는다.

몇 가지 격투기를 섞은 내 개인 기술이다.

이름은 엎어 대가리 치기다.

엎어치기 형태를 기본으로 잡고 품에 들어가 숏 어퍼, 동선을 단축한 펀치로 상대의 턱을 흔든 뒤, 발을 걸고 머리통을 바닥에 꽂아 버리는 거다.

꽝!

폭탄이 터지는 것과 같은 소음이다.

달마시안의 머리통이 깨지고 터졌다. 피가 철철 흘렀다.

“끄어억.”

그래도 어찌나 튼튼한지, 죽진 않았다. 하긴 변신체다.

애초에 엎어 대가리 치기 한 방으로 죽이긴 어렵다.

대신 머리통에서 흐른 피가 얼굴을 적셨고.

난 메다꽂자마자 놈의 목을 로우킥으로 갈겼다.

우드득.

목뼈가 어긋나는 소리가 들렸다.

당장 죽진 않겠지만, 전투 이탈은 확정이다.

완전히 아작내고 싶었는데 마저 힘을 쓸 순 없었다.

뭐, 이 정도로 충분하긴 했다. 더 싸울 엄두는 못 낸다.

놈을 메다꽂자마자 느꼈다.

살기가 먼저였고, 소리는 그 뒤였다.

쐐액.

난 급히 뒤로 몸을 눕히고 뒤로 굴렀다.

내 머리가 있던 자리로 도끼가 지나갔다.

불독이 주먹으로 내가 있던 자리를 발로 찍었다. 물론 굴렀으니, 이것도 피했다.

꽝!

대리석 바닥이 터지며 파편이 총탄처럼 날아들었다.

숨 고를 틈도 없었다.

좌우.

그림자만 흘깃 보였다. 변신체 둘이 무서운 속도로 들이쳤다. 압박감이 전신을 짓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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