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규격 외 혈통 천재-178화 (178/488)

178. 웃음 참기 실패.

유연호와 강슬혜는 저녁을 먹고 소파에 앉았다.

“드라마 볼까?”

영화와 드라마는 아내의 취미 생활이다. 유연호도 즐기는 일 중 하나였고.

“좋죠.”

말하며 아내가 품에 안겼다.

유연호는 아내를 꼭 안은 채로 TV를 켰다.

스트리밍 사이트로 전환하기 직전, 뉴스 채널에 고정된 화면이었다.

“속보입니다!”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다급하게 들렸다.

속보?

부부가 의문을 담아 화면을 바라보는데, 화면이 변했다.

아나운서가 사라진 영상에는 ‘대담한 은행 강도무리’라는 자막과 함께 가면을 쓴 이들이 보였다.

“어흥!”

우렁찬 기합이 TV 스피커를 뚫고 나왔다.

선두에 선 사람의 체형이 눈에 익었다.

호랑이 가면을 썼고 키는 큰 편이었다.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다고 해서 모든 걸 숨길 수는 없었다.

몰랐으면 모를까, 이미 안다면 자연스레 눈치채기 마련이었다.

“허.”

유연호가 자기도 모르게 탄식을 터트렸고.

강슬혜는 어느새 남편의 품에서 빠져나와선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맞죠?”

아내가 물었다.

“응.”

“저쪽은 마리죠?”

“응.”

“이놈의 새끼가, 동생을 데리고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아내의 말투가 거칠어졌다.

연호는 눈치를 보다가 말했다.

“저기 머니 & 세이브야.”

“알아요. 프로메테우스 지점.”

“그래서 간 것 같은데.”

프로메테우스를 지운다고 하더니, 진짜 본격적으로 나설 참인 듯싶었다.

유연호는 자기도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 회사에 가서 조치를 좀 취해야…….’

둘은 부부였다. 일심동체의 부부.

강슬혜도 같은 생각을 했다.

그녀는 진짜 싫지만, 아버지를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아휴, 진짜, 누굴 닮아서.”

슬혜가 중얼거렸다.

유연호는 화면을 빤히 보다가 입을 다물었다.

당신 닮아서 변신족 특성 뿜어낸다고 하면, 오늘 밤에 같은 침대에서 자기는 그를 터.

“걱정하지 마, 슬혜야. 우리 아들이야.”

말을 돌렸다.

“걱정은 안 하죠. 저런 잔챙이 애들한테 얻어터지고 오면 그동안 훈련받은 시간이 아깝지.”

아내가 채널을 바꾸고 다시 품에 안겼다.

드라마나 볼 시간이었다.

둘 다 믿는 구석이 있었다.

남편은 피닉스팀을 쓸 수 없어서 직속 특작 부대 하나를 광익이 서브로 붙여 놨다.

일 터지면 연락이 올 터였다.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동생을 갈궜다.

하나뿐인 조카의 몸에 이상 생기면 동생의 몸에도 이상이 생길 거라는 충고도 했다.

그럼 알아서 단군 그룹 병력을 뽑아낼 것이다.

“누나 아들 불멸자야. 어지간해서 안 죽어.”

“너도 변신족이야, 어지간히 맞아서는 안 아파.”

그렇게 동생을 보냈으니, 걱정할 게 없었다.

* * *

가면은 사람을 흥분하게 하는 맛이 있다.

괜히 배트맨, 스파이더맨, 아이언맨이 가면을 쓰는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 예전에 썼던 호랑이 가면을 썼다.

가면을 쓰자마자 변신족 기운이 솟아나는 기분이 들었다.

솟아나라, 호랑이 기운.

“음.”

사수는 외마디 신음과 함께 가면을 들었다.

얌전한 암사자 가면이다.

꽤 잘 어울리는 조합이라는 생각에 내가 준비했다.

“음.”

사수는 한 번 더 외마디 신음과도 같은 감탄사를 남기고 가면을 썼다.

“취향하고는.”

혜민이는 검은 고양이 가면.

양쪽으로 수염 세 가닥은 흰색으로 칠했다.

‘마녀’ 하면 검은 고양이지.

마리는 점박이 표범.

“마리는 만족해요.”

얘는 됐고.

팬더 형은 당연히 팬더 곰탱이 가면이다.

“얼굴, 외모, 전부 숨겨. 지문, 머리카락 하나 남기지 않는다.”

가면을 쓴 팬더 형이 말했다.

당연했다.

우리는 사고를 칠 것이다.

그리고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게 기본이었다.

장갑, 전신 방호복, 모자와 압착 슈즈까지.

덕분에 돈 좀 들었다.

“그럼 주문 겁니다. 마음 편하게 먹어요. 거부하면 안 걸리니까.”

말과 함께 혜민이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우리가 있는 곳은 머니 & 세이브 서울 광화문 점 뒷골목 안쪽에 있는 망한 술집이었다.

폐업한 지 두 달이 지난 곳이다.

고약한 냄새가 나지만, 사람은 오가지 않기에 딱 적당했다.

“보여도 보이지 않고 들려도 들리지 않게, 사람의 눈은 허상만 좇을 것이니, 나 말하노라, 내 뜻대로 이뤄지길, 나 원하노라, 내 뜻대로 이뤄지길.”

혜민이 거창한 주문을 읊었다.

그리고 내 예민한 불멸자의 감이 발동했다. 이상하게 혜민이가 입을 열어 말하는 거에 믿음이 안 가는데.

“그거 진짜 주문이냐?”

혜민이한테 물었다.

“……눈치는 빨라서.”

어디서 허세를.

주문에 저런 거창한 말은 필요 없었다. 적어도 그동안 내가 봐 온 주문의 특징은 다 그랬지.

수인을 만들고, 이상한 가루를 뿌리고, 하여간 점쟁이 굿하는 거랑 하등 다를 것 없는 행위가 이어졌다.

주문은 허세였으나, 그 말대로 되긴 했다.

내 앞에 선 사수, 마리, 팬더 형의 기척이 흐려졌다.

집중하면 놓칠 정도는 아니지만, 신기하긴 했다.

“갑시다.”

작전은 단순했다.

흔들고 타격을 준다.

내가 먼저였다.

후드 재킷을 위에 걸치고 푹 눌러쓴 채 머니 & 세이브 안으로 들어갔다.

마감 시간이 딱 십 분 남았을 때였다.

소파에 앉았다. 푹신했다.

일반인도 간간이 보였다.

그때 내가 머니 & 세이브 비밀 금고 털어서 일반인도 엄청 피해를 봤다는 얘기를 들었다.

뭐, 잘 모르는 사람은 머니 & 세이브가 그냥 2차 금융 업체인 줄 안다.

데어 본 사람 중 일부는 불법 추심 업체라고 욕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대외적으로는 그냥 여신업체일 뿐이니까.

어쨌든 내가 하는 일의 여파를 몽땅 책임질 생각은 없다.

다만, 한 번 했던 일을 다시 할 때는 더 깔끔하게 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일반인에 대한 피해까지 고려할 만큼 여유가 있기도 하고.

자, 그럼.

다리를 꼬고 소파에 등을 기댄 채로 보안요원 숫자를 셌다.

넷이다.

정문에 둘, 좌우 벽 끝에 선 둘.

이전에 불감가학병 정신병자가 난리 치는 통에 보안이 더 빡빡해졌다고 들었다.

보안요원 중 하나가 날 유심히 본다. 감이 좋은 친구다. 혼혈 불멸자 중에서도 탁월한 감각을 가진 놈은 있다.

물론 순혈 정가랑 비교하면 의미가 없을 예민함이다.

머니 & 세이브 직원이라면 이걸 잊었을 리는 없겠지?

후드를 벗으며 내가 읊조렸다.

“범 내려왔다. 장림 깊은 산 속의 범이 오셨다.”

보안이 더 빡빡해졌어? 그럼 난 뭐 놀았을까.

그때의 난 불멸자였지만, 이번에는 변신족으로 왔단다.

보안요원이 눈을 부릅떴다.

동시에 허리춤에 달린 총을 꺼낸다. 반응 속도 빠르고 판단력 좋고.

난 오른 팔꿈치를 펴며 손을 튕겼다.

퍽.

손에 쥐고 있던 쇠 구슬 하나가 날아가 요원의 이마를 뚫었다.

뼈와 피, 뇌수가 튄다.

“……꺄아아악!”

“우, 우, 우아아아아아!”

“끼르아악!”

놀라는 비명도 참 제각각이다.

내가 던진 건 변신족 전용 무기 중 하나, 완력으로 던지는 구슬.

흔히 말하길 핸드 불릿이라 부르는 물건이다.

손으로 던지는 총탄이라는 거다.

던지고 외쳤다.

“어흥!”

살기를 담아 기세를 퍼트린다.

야성을 담은 압력이 좌중을 짓눌렀다.

동시에 핸드 불릿 세 개를 연속으로 던졌다.

피이이잉.

구슬이 공기를 찢어발겼다.

보안요원 넷을 제압하는 거는 양손을 번갈아 튕기는 거면 끝이었다.

본래 변신족이 이걸 던지는 훈련만 일 년을 넘게 한다고 했던가?

난 적응하는 데 15분 걸렸다.

불멸자의 예민한 감각을 엿 바꿔먹은 건 아니니까.

“끅.”

퍽.

“꺽.”

두 명은 신음을, 나머지 하나는 인중을 정확히 맞아서 신음도 내지 못하고 쓰러졌다.

머리통이 안 터진 걸 보니, 단단한 몸이다. 변신족이겠지, 뭐.

알 바 아니다.

내가 여기서 할 일은 이전 일의 리바이벌, 앵콜 공연이다.

“크허허헝! 호랑이 가면이 돌아오셨다!”

내가 외쳤다.

곧바로 금고로 달리자, 데스크 밑에 있는 버튼을 연타하는 여직원이 보였다.

특수종이 아니다. 일반인 직원이다.

내 살기에 저리 움직이는 걸 보니, 평소에 기 세다는 말을 많이 들었을 것이다.

뭐, 본래 행동에 제약을 주려고 퍼트린 살기가 아니긴 하다.

내 존재감을 퍼트리기 위한 것일 뿐.

“크헝!”

말이 필요 없었다.

호랑이 울음만 토하고 다 때려 부쉈다.

이게 다 프로메테우스의 재산이렷다.

꽝.

ATM기를 통째로 뜯어서 데스크 위에 꽂아 주고.

“네 자리는 오늘부터 여기다.”

말 한마디만 남겨 준 뒤.

번호표 뽑는 기계를 발로 걷어차고.

“낯짝이 마음에 안 든다아아아.”

또 말하면.

“까아아아악!”

“미친 특수종이다아아아!”

“가면 변태다아아아!”

따위의 말이 자연스레 퍼진다.

“여자를 내놔!”

이전 버전이 불감가학병이라면.

이번에는 발정 난 변신족이다.

“내 씨를 받을 여자를 내놔라아아아아!”

이성을 잃은 변신족이 날뛴다. 난 그런 모습을 연출했다.

데스크를 때려 부수고 아랫도리를 손바닥으로 탁탁 치면서 크릉크릉 하는 울음소리를 토해 낸다.

그러면서도 출입구는 막지 않아서 사람들은 알아서 잘 도망갔다.

그 와중이다.

점장으로 보이는 자가 움직였다.

안 본 척하다가 앞으로 굴러 거리를 좁혔다.

“여자다!”

“시발, 저리 가!”

특수종이다. 초능력자고 여자다.

남색 실크 셔츠를 입은 여자 점장이 눈을 부릅떴다.

곧 눈에서 레이저가 터져 나왔다.

쭈-웅!

고개를 옆으로 꺾었다.

쭉 뻗은 눈깔 레이저가 펑 하고 천장에 구멍을 냈다.

난 곧바로 옆으로 뛰었다.

레이저가 날 따라서 움직였다.

눈깔 돌아가는 속도보다 딱 한 타이밍 빠르게 안으로 뛰었다.

호선을 그리면서 달린 뒤, 여자 점장의 목덜미를 쥐어서 시선은 정면으로 고정시키고 귓가에 주둥이를 갖다 댔다.

“후으으, 여자다.”

숨결과 함께 한마디만 남겨 주면 올해의 남우주연상은 내 것이다.

“꺄아아악!”

점장이 비명을 지르기에 뒤통수를 갈겼다.

퍽- 하고 맞은 여자가 쓰러졌다.

이쪽은 프로메테우스가 아니다.

특수종 능력과 별개로 열심히 살아온 점장이다.

이미 조사했다.

고로 해칠 생각은 없다.

이번 작전은 기본적으로 솎아내기다.

그걸 위한 것, 시선 끌기가 내 역할이고.

웨에엥!

사이렌 소리가 귀를 때렸다.

그리고 그것보다 빠르게 투둑 하고, 구멍 난 천장에서 누군가의 발이 튀어나왔다.

경찰의 사이렌 소리보다 먼저 도착한 놈들이다.

머니 & 세이브 사설 경비대, 이쪽은 전부 프로메테우스다.

“이 미친 새끼가.”

천장에서 발을 먼저 보인 놈이었다.

우드득 하고 천장 일부를 뜯어내더니 툭 하고 떨어져 내려왔다.

인상이 험악한 친구였다. 들창코에 심술 볼살이 덕지덕지 붙어서 불독을 닮았다.

“여기가 어디라고.”

다른 목소리도 들렸다.

정문, 사람들이 빠져나간 곳이다.

정문에서 들어오는 놈이 보였다. 몸이 가볍고 날렵해 보였다.

이쪽은 도베르만을 닮았다.

다음 놈은 금고 안쪽에서 나왔다. 저쪽에 비밀통로가 있나 보다.

“너 겁 없구나.”

피부가 얼룩덜룩하고 키가 크고 날씬한 놈이다. 특히 한쪽 눈언저리는 까만데 다른 쪽은 하얗다.

그러니까, 달마시안을 닮았다.

정문 뒤에서 두 놈이 더 들어왔다.

덩치가 다른 놈보다 크고 볼살과 눈매가 과하게 축 처진 놈은 세인트버나드를 닮았고.

눈 사이고 멀고 두상이 매끈하고 콧대가 없다시피 생긴 놈은 불테리어를 닮았다.

얘네 진짜 준비 많이 했네.

노필두 급은 아니지만, 그 밑에서 비빌 만한 놈이 다섯이다. 수준이 꽤 있다.

이 다섯은 한 팀이었다.

포지션 잡는 게 능숙해 보였다.

그리고 내 목표이기도 했고.

전부 다 올 줄은 몰랐다만.

“어흥, 다 남자라니!”

난 연기에 충실했다. 화를 냈다.

“빨리 죽일까?”

세인트버나드가 말했다.

난 좌우로 고개를 돌리다가 달마시안과 눈이 마주쳤다.

아.

“풉.”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너무 웃기게 생겼잖아.

“……저거 나 보고 웃은 거지?”

달마시안이 말했다.

저 자식이랑은 되도록 눈을 마주치지 않도록 해야겠다.

“아흐허엉크흐릉.”

웃음과 섞여서 호랑이 울음소리가 좀 독특해졌다.

“저 고양이 새끼가.”

까득.

달마시안이 어금니를 갈며 화를 냈다.

음, 조사한 그대로구나.

제 외모를 보고 웃으면 사람을 물어뜯어 죽인다는 놈이었다.

다섯 다 비슷한 놈들이다.

프로메테우스가 자랑하는 병력 중 하나다.

변신족 5인방, 전부 개로 변신하는 도그파이트 스쿼드.

이번 작전에서 잡기로 한 첫 번째 목표다.

이걸 위해서 굳이 여기서 난리를 쳤다.

이놈들이 사설 경비대에 합류했다는 걸 진즉에 알았으니까.

“크헝, 아무 데나 오줌 싸는 수컷 강아지 다섯 마리는 꺼지고 여자 데려와! 암컷 데려와! 내 씨를 받을 여자를 데려와라! 불끈불끈!”

난 성욕에 지배당한 변신족이다.

조금 무안하긴 하군.

지금 통신으로 전부 내 말을 듣고 있을 텐데.

“죽여.”

“거시기를 물어뜯어 주마.”

“잘근잘근 씹어 먹겠다.”

“허, 새로운 자살 시도냐. 너 운이 없다. 여기가 어딘지 모르고 온 것 같은데, 얌전히 죽으면…….”

“말이 길어, 그냥 찢어 죽이면 될 일.”

놈들이 자기들끼리 한마디씩 던진다.

투견 오 형제.

불독, 도베르만, 달마시안, 세인트버나드, 불테리어까지.

다섯이 투쟁심을 터트렸다.

곧 야성으로 똘똘 뭉친 다섯의 근육이 커지기 시작했다.

자, 이건 내 능력을 시험하기 위한 장이기도 했다.

과연 난 변하지 않고 이 다섯을 상대할 수 있을까?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정면에서 악어를 잡고 싶으면 최소 수준 있는 변신체 다섯은 때려잡아야지.”

“쉽죠. 그건.”

“변신 안 하고.”

조건이 붙어서 안 쉬워졌다.

뭐, 그런데 직접 마주해 보니.

그렇게 어려울 것 같지는 않았다.

나 말고도 다들 열심히 일하고 있겠지?

다섯이 변했다.

다들 개 대가리가 되었고.

달마시안 놈은 양쪽 눈언저리가 그대로였다.

“풉.”

웃음 참기 실패.

“크르, 저거 나 크르! 웃었다!”

흥분한 달마시안이 먼저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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