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 왜 내가 여기서 끝낼 거로 생각하는 걸까?
두근두근.
정소진은 욕구를 꾹 눌러 참았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절로 손톱이 삐죽삐죽 제 본 모습을 드러내려 했다.
욕구 컨트롤은 제대로 된 변신족의 기본이었다.
그녀는 쉬이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다.
이번에 데려온 사십의 변신족은 사실상, 점수판과 다를 바 없었다.
이 일을 맡기 전, 상급자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소진이 아직 시집 안 갔지?”
“네?”
“괜찮은 신랑감인지 얼굴이나 보고 올래?”
그 주인공이 유광익이었다.
제대로 된 변신족이라면 욕구를 통제할 줄 안다.
오늘 데려온 팀원 전부는 투쟁 욕구를 조절할 줄 아는 ‘제대로 된 변신족’이었다.
그리고 그 사십이 전부 반응했다.
자신도 마찬가지다. 꾹 눌러 참았을 뿐.
‘싸워 보고 싶다.’
엄청 재밌는 냄새가 났다.
절로 코가 씰룩였다.
상급자가 괜히 보낸 게 아니었다.
가속화를 달고 덤비는 초능 특수종이 한 방에 나가떨어졌다.
‘아, 미치겠네.’
자빠뜨리고 싶고, 싸우고도 싶다.
아주 오랜만에 소유욕이 들끓었다.
하물며 머리가 빈 채로 몸만 쓰는 타입도 아니었다.
‘머리가 좋아. 분위기를 만들 줄도 알아.’
운비의 말이 맞았다.
셋만 살린다고 해 놓고, 셋만 죽이고 끝났다.
아니, 밖으로 나간 놈까지 합치면 넷인가.
유광익이 직접 때려잡은 건 셋이다.
이게 노림수였다면 머리도 기가 막히게 돌아가는 타입이란 거다.
겉만 보면 머리 쓰는 쪽은 아닌데.
“영리해.”
운비가 팔짱을 낀 채로 말했다.
소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총수의 손자라.’
처음에는 흥미가 생기질 않았다.
핏줄을 이었다고 해서 그게 꼭 훌륭한 혈통이란 법은 없으니까.
소진은 이제까지 혈통을 믿고 깝치다가 뒈진 놈의 이름을 최소한 열 개는 쓸 수 있었다.
상급자는 유광익의 평가를 원했다.
소진은 보고서 쓸 첫 줄을 떠올렸다.
‘이레귤러.’
유광익은 특수종 세상에 전에 없던 이레귤러였다.
전투력과 별개로, 분위기를 만드는 그 심리전까지.
‘아, 진짜 탐나.’
아랫배에서 뜨거운 기운이 솟구쳐 전신을 치달렸다.
“지금 덮치면 일 커진다.”
옆에서 운비가 손등을 툭 쳤다.
기세를 일으키진 않았다.
소진은 업무에 충실한 회사원으로 돌아왔다.
광익이 포마드 머리를 한 놈의 어깨에 손을 풀고 자신에게 다가왔다.
“나 또 반했잖아. 광익 씨. 최고야, 멋있어. 짜릿해, 밤에도 그럴까요? 우리 광익 씨, 힘세고 짜릿할까?”
“네, 감사합니다. 그 자꾸 왜 그럽니까?”
뒤에 붙인 말에 대한 반응이 신선했다. 이쪽으로는 숙맥이었다.
소진은 속으로 웃음을 감추고 눈꼬리를 축 늘어뜨리고 콧잔등을 찡그리며 물었다.
“그렇게 내가 싫어요?”
“아, 진짜 이러지 말라고, 이상한 사람이야. 진짜.”
광익이 도망쳤다. 그가 PWAT 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선두에 선 여자가 눈에 띄었다. 그 여자가 광익을 보고 입을 여는 게 보였다.
머리를 빨갛게 물들인 여자였다.
아쉽네.
소진이 입맛을 다셨다.
조금 더 있었으면 눈물도 조금 보여 줄 수 있었는데.
“쫓아낼 생각이야? 아니면 덮칠 생각이야? 둘 중 하나만 해.”
운비가 팔짱을 낀 채 말했다.
“유혹이었는데?”
“……어디가?”
운비는 냉정했다.
소진은 이런 방식으로 남자에게 다가간 적이 없었기에 자신의 행동에서 잘못된 점을 찾지 못했다.
* * *
이지혜는 상황을 파악하기 바빴다.
싸움의 흔적을 읽었고 눈앞에서 일어난 일을 인지했다.
‘넷이 죽었고.’
나머지는 얌전하다.
덤빌 생각도 안 한다.
마약쟁이 무리가 이렇게까지 고분고분한 적이 있었나?
마약 전담 수사팀이 들으면 기가 막힐 일이었다.
그런데 이게 된다.
광익이 변신족 지휘자와 말을 나누다가 자신을 향해서 다시 걸음을 놀렸다.
‘단군 그룹과 연관이 있었나?’
변신족 사십과 지휘자로 보이는 둘이 눈에 띄었다.
변신족 무리는 싸우지 않았다. 그런 흔적은 없다.
‘이걸 혼자?’
누가 했을까.
물어서 뭐 하겠나.
“광익 씨가 한 거죠?”
“네? 아, 네.”
대수롭지 않다는 투였다.
그래서 더 놀랍다.
혼자서 한국 마약 제조업체의 핵심 그룹 인사를 때려잡고 저 앞에 사열 종대로 벌 받게 해 둔 사람이 이런다.
“약속은 지키시는 거죠?”
광익이 물었다.
“받을 거 받으면요.”
“아, 그건 저 친구가.”
말하며 광익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야, 아까 뭐라 그랬지? 네 보스가 누구한테 돈 먹이고 있었다고 했더라?”
“네? 네, 아니, 그걸 그렇게 큰 소리로 말씀하시면…….”
“아, 비밀이야? 그럼 비밀이라고 말을 해야지.”
보통 이런 건 말하지 않아도 쉬쉬하게 되지 않나.
그걸 이렇게 대외적으로 말하는 게 더 어색하잖아.
하지만 이지혜에겐 생각한 걸 입 밖에 내는 것보다 정보의 신뢰도를 판단하는 게 급했다.
“대우야.”
그녀는 진실 감별의 능력을 지닌 부하를 부르며 상대의 얼굴을 살폈다.
“가르마 대가리?”
“네, 제가 가르마 대가리 조병철입니다. 전 그럼 이제 경찰 쪽에 인계되는 겁니까?”
포마드 머리가 두 손을 모으고 물었다. 공손한 태도였다.
“맞아.”
지혜가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조직의 주요 인물은 넷이었다.
첫 번째가 보스.
양팔이 터진 채로 뭐가 그렇게 억울한지, 두 눈을 부릅뜨고 죽었다.
두 번째가 원숭이.
머리가 터져 죽었다.
세 번째가 대두.
그놈은 혼자 밖에서 피격당해 죽었고.
남은 건 가르마 대가리 하나뿐이었다.
마약쟁이가 으레 그러듯, 독하고 끈질기다. 하물며 이번에 파악한 이 네 놈은 외국에서도 활동한 진짜배기 제조업자였다.
그런데 뭐가 이렇게 순할까.
“네, 최선을 다해 진술하고 복역하겠습니다.”
가르마 대가리 조병철이 얌전히 양손을 내밀었다.
뭐냐고 눈으로 물으니.
“수갑이요. 채워 주시죠. 전 반드시 경찰과 함께하겠습니다.”
얌전하다. 말도 잘 듣는다.
이지혜의 고개가 삐딱하게 기울었다.
고개를 기울인 채로 상대의 눈을 바라봤다.
공포다. 눈에 어린 두려움이 보였다. 놔두면 오줌이라도 지릴 것 같았다. 놈의 시선을 따라가니.
“살아서 다행이네, 우리 가르마 대가리.”
조병철의 별명을 듣고 피식거리는 광익이 보였다.
뭘 어떻게 했길래.
이지혜와 유광익의 눈이 마주쳤다.
“혹시 경찰청에 들어올 생각은 없어요?”
자기도 모르게 본심이 나왔다.
들어오면 곧바로 고속 승진은 물론, 시작부터 고위직 확정이다.
일선에서 이렇게 뛰어주는 인재, 정말 흔치 않았다.
“네, 없습니다.”
광익이 단호하게 잘랐다.
“아.”
이지혜가 아쉬움에 탄식을 터트렸다.
“그럼 연상 포지션은 놔둬 주세요. 그건 제 자리니까.”
이렇게라도 연을 이어 가야 했다.
유광익은 진짜배기다.
불멸특수대 안에 있었기에 오히려 과소평가 된 거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요새 진짜 왜 이러지.”
광익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김중고를 향해 돌아섰다.
* * *
“저 요새 좀 이상해요.”
“넌 원래 이상했어. 괜찮아. 그게 정상이야.”
일을 끝내고 팬더 형 집에 찾아온 참이었다.
“아니, 진짜 이상하다니까.”
“뭐가?”
“요새 인기가 너무 많아요.”
“……나가, 꺼져.”
“진짜, 요새 나 좋다고 쫓아다니는 사람이 너무 많음.”
“다들 돈을 보고 왔거나, 아니면 노리는 게 있는 거다. 뒷조사부터 해 봐.”
이 사람은 사람이 진지하게 고민 상담을 하는데 왜 이 모양인가.
“쓸데없는 얘기 집어치우고. 얼마 벌었냐?”
우리 팬더 형, 돈 참 좋아한다.
“시계 사고 싶어요?”
“네가 내 마누라냐? 버는 돈 어디에 쓰는 건지 확인하게?”
그건 그렇다. 사생활은 존중해야 하는 법이다.
난 이번 일로 얻은 이익을 따져 봤다.
중고형이 나 대신 경찰 쪽이랑 쓴 계약서에 기재된 게 2천.
그리고 마약쟁이 비상금을 챙겨서 4억가량 된다.
전부 다 가지고 나올 수는 없었다.
일단 현물과 현금만 챙겼다. 골드바를 모으더라고 보스 새끼가.
덕분에 금붙이가 좀 생겼다.
거기에.
“물건 감정할 줄 알아요?”
보스 새끼가 들고 있던 칼과 너클이다.
“허, 알뜰하게도 챙겨 왔네. 이거 가져갈 때 경찰에서 뭐라 안 하디?”
“안 하던데요.”
변신족 애들이 길막 할 때 챙겼으니까 경찰은 이거 챙기는 걸 보지도 못했다.
“어마어마하네.”
팬더 형이 혀를 내둘렀다.
많이 벌었다. 뭐, 돈만 보고 한 일은 아니다.
목적은 다른 데 있지.
자, 그럼 이거로 프로메테우스가 겁을 먹었을까?
“앞으로의 일을 점쳐 보시죠. 불멸특수대가 낳은 최고의 브레인님.”
툭 말하니.
“유비도 제갈량을 데리러 올 때, 삼고초려 했는데, 난 왜 한 번에 수락한 걸까.”
“선택지가 없었잖아요. 감방이냐, 여기냐. 양자택일이었으니까.”
“그건 그렇지. 뭐, 프로메테우스는 이제부터가 진짜다. 그쪽도 본격적으로 나올 테니까.”
팬더 형이 캔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켜며 말했다.
테러 단체는 집요하고 지독하다.
“암살자가 오는 건 귀여운 수준일 거고. 끅.”
팬더 형이 말을 끝내고 트림했다.
시큼털털한 냄새가 났다.
“저녁에 뭐 먹었어요? 상한 거 먹음? 아무거나 주워 먹지 말라니까.”
난 코를 잡으며 말했다.
“파인애플 피자 먹었다. 그래서 이제 어쩌게?”
파인애플 피자는 피자가 아니다.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한다.
피자는 그렇다 치고, 프로메테우스를 상대할 방법은 많았다.
단군 그룹 쪽에 신변 보호를 요청해도 되고.
아버지 쪽에게 부탁해도 된다.
그리고 다른 방법도 있다.
“때려야죠.”
코를 잡고 말하니, 코맹맹이 소리가 난다.
“응? 뭘?”
“받아치기만 하면 애들이 만만하게 보거든요.”
이걸 학창 시절에 느꼈다.
일진을 조질 때, 덤비는 놈들만 조지니까 처음에는 무작정 덤비고, 그다음에는 나를 무시한 채로 주변만 괴롭혔다.
그렇게 놔둬서야 쓰겠나.
상대가 지성인이라면 말로 타이르겠지만.
테러 단체에 지성은 무슨.
툭하면 폭탄하고 주먹, 총탄으로 얘기하니.
나도 같은 방식으로 해 주는 거다.
함무라비 스타일은 그런 거다.
팬더 형이 내 말에 눈을 깜빡이다가 물었다.
“너 누구랑 얘기하니?”
“사수한테는 평생 비밀로 했겠지만, 저한테는 안 그래도 됩니다. 형.”
팬더 대리가 좌우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갑자기 정아 얘기는 왜 나와? 여기 우리 둘만 있는 거 맞지?”
“한국에 남은 프로메테우스 세력 다 알죠?”
어디서 자꾸 발뺌인가.
오리발 내미는 건 시발 팀장한테 배웠겠지만, 날 속일 수는 없었다.
팬더 형이 어깨를 움찔했다. 아무리 티를 내지 않으려 해도 불멸자의 감각을 속일 수는 없다.
난 코를 잡은 손을 놨다. 목소리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거 저 줘요.”
“……더 하겠다고?”
팬더 형이 물었다.
왜 내가 여기서 끝낼 거로 생각하는 걸까?
겨우 마약쟁이, 프로메테우스가 손대는 사업 하나 건드리고 내가 멈출 거로 생각하는 걸까?
프로메테우스가 진짜 날 보면 소스라치게 해 주고 싶다.
나만 보면 악몽을 꾸고 날 생각하면 분통이 터져서 가슴을 치게 하고 싶다.
나랑 눈만 마주쳐도 오줌을 지리게 하고 싶다.
가슴이 두근거려 잠도 못 자게 하면 더 좋고.
“당연하죠.”
내가 답했다.
“하, 이 미친놈이.”
팬더 형이 감탄했다.
벌컥벌컥.
이번에는 내가 맥주를 쭉 들이켰다.
가스가 차서 절로 속에서 깊은 트림이 터졌다.
팬더 형이 벌떡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창틀에 기댄 형이 날 빤히 바라봤다.
“정아가 알면 나 죽는다.”
숨긴 걸 알면 사수 성격에 얌전히 ‘아, 그랬어요.’ 하고 넘어가진 않겠지.
그렇다고 이게 그렇게 겁낼 일인가.
“놔두면 곪을 상처는 도려내야 하고, 지금 나 말고 그거 할 사람 있어요?”
마약 파는 놈 붙잡고 물어보니까 가관이더라.
이 새끼들 돈 받아 처먹은 놈들이 뭐가 이렇게 많은지.
정부에도 있고 기업에도 있다.
프로메테우스가 뿌린 씨앗은 이미 한국 깊은 곳에 뿌리내렸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뭐 어째, 보이는 족족 뽑아서 태워 버려야지.
“야, 정아한테 말할 거지?”
깜빡깜빡, 난 눈을 깜빡이며 입을 다물었다.
이 형 왜 이러나 싶어서.
“아우, 그래. 말해 준다. 내가.”
“그리고 형, 공주 육성 간부 하나가 아시아에 일을 벌인다고 하는데, 들은 거 있어요?”
“그거 기밀인데.”
그 기밀을 당신은 어떻게 아는 건데?
“이번에 잡은 애가 줄줄이 말하던데요.”
“그럼 누가 오는지도?”
“네.”
들었다.
팬더 형과 눈이 마주쳤다.
아시아, 정확히는 일본에 일을 벌인다고 한다. 목적은 한국에 병력을 진입시키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담당자가 아는 놈이다.
참여하는 간부가 악어, 크로커다일이었다.
난 팬더 형과 눈이 마주침과 동시에 통했다고 느꼈다.
“맞죠?”
“응, 떡밥 낚시다.”
팬더 형이 내 추측에 확신을 더해 줬다.
악어, 이 새끼가 어울리지 않게 잔머리를 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