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 사이코패스 골절 마니아
“광익이 괜찮겠죠?”
아내가 물었다. 유연호는 그 물음에 쉬이 답할 수 없었다.
제 아들이지만, 가끔 지나쳤다.
적정선이라는 게 없어 보일 때가 있었다.
불멸특수대에서 일한 이력을 보니 더 그랬다.
애가 중간이 없다.
사람 좀 구하라고 했더니, 눈먼 개 무리에 달려들어.
동대문에서 네임드가 출현했는데도 물러서지도 않고 사람 구하겠다고 뛰어들어.
머니 & 세이브 금고 털겠다고 대놓고 강도질을 했다.
아내가 마늘 대신 주먹으로 사람 만들어 둔 변신족 곰탱이에게 들어 보니 회사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였다.
‘이중봉.’
팬텀, 자기도 그 작자를 안다.
만만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었다.
들어 보니 성격도 보통이 아니라는데.
‘그 팬텀보다 더했다고?’
아예 업무의 시작을 팬텀과 주먹질로 하는 경우도 많았단다.
어디서 그렇게 실력을 키웠나 했더니, 팬텀의 작품이었다.
하여간 퇴사 후, 광익에게 빌붙은 곰탱이는 배를 두드리며 말했다.
“살면서 그런 친구는 처음 봤습니다. 광익이가 최곱니다.”
불멸 최고의 또라이.
그게 뒤에서 광익을 부르는 별명이란다.
그게 다 정도를 몰라서 붙은 별명이다.
‘순혈 정가 가주랑도 시비가 붙었다고 하던데.’
“여보?”
품에 안긴 아내가 다시 연호를 불렀다.
“응?”
“왜 답이 없어요?”
왜긴, 할 말이 없어서 그렇지.
유연호는 더는 아내에게 작은 거짓도 말하기 싫었다.
그동안 비밀을 품고 살았다. 그 시간이 얼마나 괴로웠는가.
아내를 위로하기 위해서라도 거짓은 말할 수 없었다.
“광익이는 괜찮겠지.”
연호가 말했다.
“광익이 ‘는’요?”
그 상대가 문제가 아닐까 싶다.
작전명 개 조심.
네이밍 센스는 누구한테 배웠는지 최악이다.
그 개 조심의 주는 이거다.
“그 프메가 하는 일이 뭐든 전부 똥물을 뿌려 줄 겁니다.”
자신을 건드리면 문다. 미친개 마인드다.
그걸 보여 주겠단다.
그 방법으로 일단 주변에 있는 프메 관련 모든 사업을 뒤집겠다는 거고.
어째 테러 단체가 취하는 스탠스랑 별 차이가 없어 보이기도 하고.
“여보, 전 우리 아들만 안전하면 누구와도 싸울 수 있어요.”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슬혜야. 상대가 정부든, 프린세스 메이커든, 상관없어.”
아들의 위해서라면 섶을 지고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게 부모다.
“네, 믿어요.”
아내가 품에 파고들었다.
연호는 아내를 안았다. 새삼 왜 이전에는 몰랐을까 싶었다.
아내의 전신은 근육 덩어리였다.
그것도 보통 수준이 아니다.
단단히 뭉치다 못해 인간의 범주를 넘어선 그런 근육.
콩깍지의 힘이란 무서웠다.
유연호는 아내의 몸이 새삼 달라졌다고 느꼈지만, 건강해서 더 좋다고 생각했다.
강슬혜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유연호는 불멸자니까 쉽게 죽지 않는다. 그게 그녀에게 안도감을 줬다.
덕분에 아들도 쉽게 죽진 않을 터였다.
* * *
나보다 한 뼘은 큰 키, 거기에 넓은 등과 어깨, 압도적인 피지컬이었다.
바로 곁에 선 남자도 작은 체구는 아닌데, 상대적으로 왜소해 보였다.
남자는 비정상적으로 종아리가 두꺼웠고 눈꼬리가 이마까지 올라가 몹시 사나운 인상이었다.
독특한 체형과 외모다.
불멸자 사이에 있었을 때와는 달랐다.
변신족은 겉으로 봐서는 외모를 구분할 수 없다.
피지컬 깡패 여자 하나와 남자 하나.
삼촌이 보낸 지원군이었다.
남자가 무표정하게 불쑥 손을 내밀었다.
퉁명스러워 보였다.
손을 맞잡고 흔들었다.
“김운비.”
남자가 말했다. 퉁명스러운 말투였다.
이름 참 특이하네.
아버지가 무협 소설 마니아신가.
손을 놓고 곁에 선 굳게 다문 입술의 여자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유광익입니다.”
“그룹에서 나온 거 맞죠?”
“제 이름은…….”
여자는 입을 열었다가 잠깐 숨을 들이켜더니 단숨에 말을 이었다.
“소진이에요. 작고 소중하다는 의미로 부모님께서 지어 주셨죠. 운비, 이 친구는 수줍음이 많아서 말이 좀 짧죠? 이해해 주세요. 정작 여기에 오겠다고 직접 자원까지 했거든요. 광익 씨? 님? 뭐라고 불러야 할지, 하여간 이 친구는 갱생 마녀님 광팬이라서 그 아들을 보고 싶다고, 아, 물론 강슬혜 교관님의 핏줄이라는 건 저랑 둘만 알고 왔어요. 누굴 돕냐고 물었더니, 이긍낙 본부장님이 말씀하시고는 비밀이라고 하더군요. 걱정하지 마세요. 저 입 무거워요.”
아닌데, 가벼운데.
여기 어디에 입의 무게가 느껴진단 말인가.
이게 소설이었다면 스마트폰 한 페이지를 장식할 만큼 떠들어 놓고 입이 무거워?
거기에 중간부터 이어진 말은 뭔데.
아니, 시작이 문제다.
작고 소중하다고?
나도 모르게 머리부터 발끝까지 소진이란 여자의 전신을 눈으로 훑었다.
나도 키가 큰 편이다.
불멸자 중에서도 컸다.
변신족 중에서도 작은 키가 아니다.
하지만 이 친구는 흔히 말하는 집채만 하다고 표현해도 좋을 피지컬 깡패, 아니 피지컬 두목이었다.
물론 살이 찐 건 아니었다.
체형은 완벽에 가까웠다.
하물며 나오고 들어간 것까지 여성이라는 걸 멀리서 봐도 아주 잘 알 수 있는 몸이다.
덩치가 크니 멀리서 봐도 잘 보이기도 하겠고.
물론 허리는 과장을 보태고 또 보태도 잘록하다고 할 순 없었다. 두껍다. 몇 겹의 근육 갑옷이 겹쳐 있었다.
운비라는 친구가 소진이라는 덩치의 허리를 툭툭 쳤다.
“티엠아이다.”
이게 부끄러워하는 거야?
말하며 눈을 부라리는 꼴을 보니, 막 사람 죽이고 온 것 같은데?
너 암살자지? 나 노리고 왔지?
이런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내려왔다.
“이쪽이 아들이야, 잘 꼬시면 갱생 마녀님 사인이라도 한 장 건질 수 있을걸? 혹시 모르지, 운 좋으면 직접 뵐 수 있을지도.”
피지컬 깡패의 말에 부끄러움 많은 암살자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분노에 냉정함을 잃은 냉혹한 사냥꾼이 생각났다.
“꿈같은 이야기군.”
너희 뭐가 이렇게 조화롭지 못하냐.
“초면에 그렇게 빤히 보면 좀 그래요.”
피지컬 깡패가 말하며 볼을 붉혔다.
객관적으로 봐도 못난 얼굴은 아니긴 한데, 참 어울리지 않는 에티튜드이긴 하다.
말하며 왜 고개를 살짝 돌리는데?
“나?”
나도 모르게 되물었다.
“그럼 누구겠어요?”
혼란하다, 혼란해.
좋은 건 일단 나를 딱히 경계하진 않는다는 거다.
삼촌이 말을 잘해 뒀을지도 모르고.
그게 아니더라도 변신족이니 단순한 만큼 딱히 고민하지 않는 걸지도 모르고.
시키니까 하겠다는 마인드일지도 모르고.
내가 알 바는 아니다.
“달랑 둘이에요?”
문제는 숫자지.
“아! 그럴 리가요. 저는 단군 그룹 산하, 소속은 비밀.”
찡긋.
말하다 말고 윙크 공격이 1회.
“비밀 소속에서 타격팀 써드 오더예요.”
말을 끝맺고 혀를 살짝 내밀어 귀여운 표정 공격이 또 1회.
난 마음이 다치는 중이다.
여자를 외면하고 변신족 암살자 친구를 바라봤다.
여전히 뻣뻣하고 무표정하다.
지금 보니 그 부끄러워한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피지컬 깡패가 써드 오더라고 했다.
요즘 회사는 예전처럼 직급으로 사람을 나누진 않는다고 들었다.
삼촌이 말해 줬다.
모든 평사원은 동급, 대신 그 위로 매니저가 한 명, 그 위로 총괄 매니저가 있다고.
전투 상황에서는 명령 체계가 필요하기에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직급은 별도로 준다고 했다.
그게 바로 퍼스트, 세컨, 써드 오더.
총 셋이다.
공기업에 가까운 화림이 직급 체계가 딱딱한 편이었지.
하여간 특수대랑 비교하자면 눈앞에 있는 여자는 팀장급이었다.
고로 팀원이 있다는 거다.
“총원 40명, 1개 소대 병력 대기 중이에요. 재미난 일 한다고 들었는데 우리 뭐 해요?”
피지컬 깡패가 물었다.
“얘는 서포트 오더고요. 40명 전부 프로 수준은 되니까, 실력은 제가 보장해요. 그래서 우리 뭐 한다고 했죠?”
난 막 답하려고 입을 반쯤 벌렸다가 다물었다가를 반복했다.
얘 말이 너무 많다.
“서울에서 약 파는 애들을 전부 잡을 겁니다.”
“아, 윗선을 찾겠다?”
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그럼요?”
“말 그대로요.”
“네?”
팬더 형 아이디어였는데 내 마음에도 쏙 들은 작전이다.
“점조직이라 못 찾아? 그럼 기어 나오게 하면 되지?”
어쨌든 마약상이 이곳에 있는 이유가 뭔가.
돈 벌려고 하는 거다. 그러니, 돈 못 벌게 하면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보이는 모든 마약쟁이를 조지면 된다는 결론이다.
전부 잡을 필요도 없었다.
어느 정도 공포심만 심어 주면 알아서 된다.
예전에 했던 일진 소탕 놀이랑 비슷했다.
보이는 대로 쥐어패면 반항한다. 그러니, 공포심을 심어 줘야지.
“좀 치는 애들이라면 별로 어려운 조건이 아닐 겁니다. 손목 하나, 다리 하나씩 해 주면 돼요.”
“뭘요?”
“부러뜨려요. 그리고 그냥 놔두고 가면 뒤처리는 경찰이 알아서 하겠죠. 세금 냈으니까 거기도 월급 값은 해야 할 테니까. 당장 오늘부터 하면 되고 밤새워서 할 필요는 없고 위험하면 무조건 빠지고, 에, 서로 무전 하죠? 저도 주파수 하나 주시고 일 터지면 저 부르세요. 수습은 제가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다칠 필요 없어요. 만만할 때만 나서라고 해 주세요.”
“잠깐, 정리 좀 할게요.”
피지컬 깡패는 손은 고왔다. 손바닥을 날 향해 보여 주고 말하는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여 줬다.
“그러니까 수도권 전체를 대상으로 약 파는 애들은 무조건 잡아 족친다?”
“약하는 애들도요.”
“거기에 걸리는 이들 손목과 발목을 전부 부러뜨려라?”
“한쪽씩만요.”
어쩌다 보니 첫날 내가 한 일이 소문이 돌았다.
마약상을 노리고 날뛰는 놈이 있다는 소문이다.
뭐, 뒷골목 세계를 넘어왔다는 둥, 이쪽 세계의 일에 관여한 게 누구냐는 둥 그런 말도 많이 나돌고.
우연이 만들어 낸 일이지만, 사태를 지켜본 팬더 형이 약도 좀 뿌렸다.
“그거 들었어? 약에 손대면 서울시 사이코패스 골절 마니아가 손목이랑 정강이를 부러뜨린다는데?”
따위의 소문까지 더해지는 중이다.
자, 그럼 소문이 소문으로 안 끝나고 현실이 되면? 약을 쥐고만 있어도 더럽게 무섭겠지.
혼자서 하려면 몇 달은 걸릴 일이었다.
그런데 소대 병력이면.
이틀? 길게 잡아서 일주일이면 차고 넘쳤다.
근데 너무 과한 일을 시켰나.
사실 나야 해 볼 만한 일이지만, 이걸 불멸특수대에서 하자고 했으면 일단 작전 계획서부터 짜자고 했을 거다.
본부장 승인도 받아야 하고 골머리 아픈 일이 한가득했을 거고.
뭐, 내가 하진 않았을 거다.
화림에 있을 때도 이런 건 팬더 형이 다 했다.
상대의 대답을 기다렸다.
피지컬 깡패는 잠깐 날 멍하니 바라보더니 말했다.
“우리 애 가질래요?”
……뭐?
“광익 씨, 사고방식 진짜 마음에 든다. 끝나면 한번 할까요?”
뭘 하자는 거야.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말투가 절로 딱딱해졌다.
“동정이에요? 변신족이라며?”
“저 혼전순결입니다.”
“변신족이?”
옆에 있는 부끄럼쟁이 킬러도 놀라서 되물었다.
이게 놀랄 일이야?
진짜 혼전순결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무 여자와 할 생각도 없다고.
“하고 싶으면 하는 거지, 왜 뺄까, 나 잘하는데.”
뭘 잘한다고 자랑하는 거냐고.
당최 변신족 마인드는 이해가 안 간다.
“……일합시다.”
“네, 그럼 끝나고 얘기해요.”
걱정된다.
혜민이도 합류하기로 했는데, 이 둘이 만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어디부터 할까요?”
내가 찾던 방식을 강요할 순 없었다.
대신 어제 열심히 두들겨 패서 모은 정보가 있지.
점조직이라고 해도 자기들끼리는 잘 알고 지내더라고.
중간책 하나에 대충 열에서 열다섯 명 정도 엮여 있고.
그렇게 잡은 중간책이 다섯이다.
그 정보를 건넸다.
“끊길 때쯤 되면 중간책 알아내서 자체적으로 움직이면 되겠네요? 흐응, 흐응, 재밌다. 나 이런 거 너무 신나. 도시에서 한번 미치게 날뛰고 싶었어.”
피지컬 깡패가 말하고.
“동감이다.”
부끄럼쟁이 암살자 변신족도 말했다.
이건 나도 동감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가끔 비 오는 날 우산 따위 개나 줘 버리고 뛰어다니고 싶은 그런 심정과 같다.
해방감.
변신족이 본능을 제어하며 중요하게 생각하는 포인트 중 하나다.
물론 이렇게까지 환영받을 줄은 몰랐다.
“우후, 우후, 손 하나 다리 하나 다 으깨 줘야지.”
피지컬 깡패가 콧김을 연신 뿜으며 말했다.
부끄럼쟁이도 조용히 열의를 불태운다.
어쨌든 난 지원 병력을 알차게 쓸 생각이었다.
“그럼 시작하죠.”
내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