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규격 외 혈통 천재-171화 (171/488)

171. 개 조심

충격은 길었다.

“열은 없는데?”

아버지가 내 이마에 손을 올리셨다.

“감기 따위에 걸릴 몸이 아니거든요.”

어머니가 답했다.

“오라버니, 머리에 이상이 있는 건가요?”

마리가 걱정을 담아 물었고.

“응, 네 오라비 뇌가 아픈 것 같다.”

삼촌이 그 말을 받았다.

이 사람들이, 멀쩡한 사람 앞에 두고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저 멀쩡합니다.”

충격을 수습한 어머니가 숨을 몇 번 고르시더니 입을 열었다.

“아들, 그 공주 키우는 애들이 범국가적 범죄 조직인 건 알지? 동네 양아치 아니고, 학교 일진 아니고.”

“프린세스는 실수라니까요. 네, 압니다. 동네 양아치 아니고 고딩 일진 아니고.”

아버지는 미심쩍은 눈으로 날 보며 물었다.

“그럼 어떻게?”

생각한 바가 있었다.

난 담담하게 설명했고.

어머니와 삼촌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조카가 아주 잘 자랐습니다. 누님. 자랑스러워요.”

“아들, 넌 다 계획이 있구나. 변신족다운 계획이.”

어머니가 감탄했다.

“오라버니, 마리는 오라버니를 존경해요.”

마리도 감탄했다.

“그게 계획이냐?”

아버지만이 미간을 찌푸렸다.

“진짜로 하겠다는 게 아니잖아요. 여보.”

어머니가 아버지의 어깨를 톡톡 치며 말했다.

아직 농담으로 들렸구나.

“아니야. 저거 농담 아니야.”

“농담 아니라고요?”

아버지의 말에 어머니의 기세가 변했다.

그게 진심이라고?

살기가 찌릿하고 피부를 눌렀다.

이런 살기 한두 번 겪은 게 아니다. 아랫배에 힘을 주고 버텼다.

“엥, 난 진짜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삼촌이 한마디 했다가 어머니 눈빛이 입을 다물었다.

작전이야 단순하긴 하지.

하지만, 이게 효과적이라니까.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한다.

아버지와 눈을 마주치고 어머니에게 시선을 옮기며 물었다.

“처음에는 어머니, 다음에는 누구일까요?”

어차피 불인지 돌인지 가져온다는 또라이 집단하고는 이미 루비콘강을 건넜다.

놔두면 내 가족과 내 지인의 위협이 될 뿐이다.

그럼 치운다. 그게 맞다.

다만, 국가 범죄 조직을 나 혼자 어떻게 할 순 없는 노릇인 건 맞다.

그렇다고 올드포스나 엑스큐라시에 나서 달라고 할 수도 없고.

그 두 집단이 나설 수 있었다면 진즉에 나서서 소탕했겠지.

테러가 생명이란 놈들을 왜 가만 놔두겠나.

그래서 세운 첫 번째 계획.

이름하여 ‘개 조심’이다.

내 눈을 본 아버지와 어머니는 곧 포기한 듯 보였다.

“푸후.”

아버지는 긴 한숨을 내쉬며 천정을 올려다봤다가 시선을 내렸다.

“자식 키우는 게 죄인이라더니.”

어머니가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이게 꽤 걱정을 끼치는 일이구나.

불현듯 사수가 떠올렸다.

사수의 집에서 난 그녀의 결의를 봤었다.

“난 프로메테우스를 죽여야 해.”

그리 말한 사수의 안에는 울먹이는 소녀가 있었다.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데, 나도 이 미친 테러 집단과는 선을 세게 넘었으니, 사수와 같은 입장이 됐다.

그쪽이 복수라면 난 어설픈 짓거리 사전 차단 정도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같다.

프로메테우스를 죽인다는 것.

“말리면 들을 테냐?”

아버지가 물으셨다.

난 웃었다.

안 듣죠. 아들 다 컸습니다.

“도움 필요하면 언제든 말해라.”

아버지가 말했다.

“네.”

위험하면 피닉스 팀이라도 불러 주시려나.

“너 혼자는 안 돼.”

어머니는 그래도 고개를 저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혼자 하는 건 아닌데요.”

“그래도 안 돼.”

그럼요?

표정으로 물으니.

“긍낙아.”

“서포트 팀 하나 붙일게.”

그렇게 단군 그룹에서 내 손과 발이 되어 줄 이들이 오기로 한 거로 어머니도 고개를 끄덕였다.

베란다 밖에 뜬 달빛이 밝았다.

미친 자들의 세상에서 살며 인베이더를 죽이는 삶을 살려고 했다.

근데 눈앞에 쓰레기가 너무 많다.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는 주워서 버려야 한다.

난 그렇게 배웠다.

부모님이 날 그렇게 가르쳤다.

지금 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이 날 말리지 못하시는 이유였다.

* * *

개 조심.

골목길을 지나며 이런 푯말을 보면 알아서 피하는 게 사람이다.

난 프로메테우스란 순정 또라이 모임에 그걸 알려 줄 생각이었다.

너희가 날 건드리면 나도 너희를 상큼하게 물어뜯어 주겠다고.

누가 더 또라이인지 재 볼 때가 됐다.

내가 유리한 점도 있다. 난 몸이 가볍다는 거다.

물리적인 의미가 아니다.

난 혼자고 상대는 덩어리란 말이다.

조직이란 건 아무리 통제해도 정보가 새기 마련이고 한국에서 계속 활동하는 한, 그 흔적은 남기 마련이었다.

“이번 마약 사건 배후에 프메가 있다던데?”

팬더 형이 말해 줬고.

난 그걸 토대로 움직였다.

그러니까 마약 판매상이 프로메테우스다?

“야, 꼭 그런 건 아니고 연관이 되어 있다, 이거지. 이번에 국내에서 도는 건 메이드 인 코리아란 소리도 나오고.”

그러니까 마약 제조상이 프로메테우스다?

“야, 꼭 그런 건 아니라니까?”

알 게 뭐람, 파는 놈이나 사는 놈이나 그게 그거지.

“너 요원 퇴직하고 너무 심플한 마인드로 사는 거 아니냐?”

이건 부작용이다. 변신족 훈련의 부작용.

사람을 한 치 앞만 보게 만든다. 과하게 구르다 보면 진짜 당장 눈앞만 보이지, 먼 미래 따위 알 게 뭐람 마인드가 된다.

하여간 정보가 생겼다.

삼촌이 사람을 붙여 준다고 했지만, 언제 올지도 모르고.

파라락.

코트를 걸치고 장갑을 꼈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샷건이나 정글도를 들고 다닐 순 없으니, 4번 타자와 단짝 아다만티움 정글도는 집에 모셔 두고.

무장은 아다만티움 나이프에 기생 라이플이면 충분했다.

“아들, 어디 가니?”

집을 나서는데 어머니가 물었다.

“산책이요.”

“……그렇게 입고?”

코트에 장갑, 안쪽에 입은 건 움직이기 좋은 운동복 차림이다.

신발은 당연히 압착 슈즈.

정강이를 감싸는 부츠 형태다.

화림 기본 장비는 알차게 빼 왔다.

화기류는 4번 타자를 제외하고는 가져올 수 없었고.

“오늘은 네가 테러리스트다.”

떠나는 데 어머니가 날 머리부터 발끝까지 눈으로 훑더니 덕담을 건네주셨다.

맞습니다. 어머니.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개 조심이란 작전은 함무라비 스타일이거든요.

상대가 하는 짓을 따라 한다는 거다.

그래, 난 테러를 벌일 참이었다.

일단 시작은 프메 사업에 지장을 주는 거로.

집을 나와 번화가를 찾아 뒷골목을 거닐었다.

눈을 감고 감각을 곤두세웠다.

불멸자의 감각으로 마약을 사고파는 놈들을 잡을 순 없었다.

후각에 집중했다.

퀴퀴한 하수구 냄새, 지나치는 이들의 향수 냄새, 골목길에 베인 텁텁한 향, 길 바깥에서 굽는 다코야키 냄새, 맛있겠다.

구분하고 분류한다.

나누고 제한다.

냄새를 쪼갠다. 전직 불멸특수대 요원으로 약 복용 경험은 남 못지않았다.

킁.

난 냄새를 맡았다.

여기서 내가 생각지도 못한 일도 일어났다.

불멸자의 감각이 변신족의 후각을 돕는다. 후각이 시각화되어 길을 인도했다.

붉은 연기로 형상화된 후각 내비게이션이었다.

난 그 연기를 따라 걸었다.

* * *

“두 장 빈다.”

“깎아 줘.”

눈이 퀭한 남자가 애원했다.

이미 약의 노예가 된 남자다.

“씁, 장난치나.”

후드를 눌러쓴 판매상이 인상을 썼다.

착.

구매자가 품에서 접이식 칼을 꺼냈다.

그가 손을 덜덜 떨면서 칼을 들었다.

“죽기 싫으면 약 다 내놔.”

“하.”

후드가 한숨을 한 번 내쉬더니, 말했다.

“아재요, 실수하는 거야.”

약을 파는 자는 초능 특수종이였다.

후드가 손을 들었다.

화륵.

손에서 불길이 일었다.

“이힉.”

약에 취한 남자가 뒷걸음질 쳤다.

“얼굴을 구워 줄까?”

후드가 위협했다.

턱.

그리고 누군가 그의 손목을 잡았다.

뒤편이었다.

“뭐야!”

놀란 후드가 손에서 더 큰 불길을 만들었다.

화륵.

손바닥 전체에 불꽃이 타올랐다. 후끈한 열기가 퍼졌다.

우직.

특수종 판매상이 반항을 시작하기도 전이다.

손목을 잡은 작자가 손목을 부러뜨렸다.

똑 하고 손목이 부러져 덜렁거리며 불길이 사그라든다.

후드가 비명을 내지르려는 순간, 그의 입을 틀어막는 손이 있었다.

그 덕에 마음대로 비명도 지를 수 없었다.

“쉿, 우리 강아지, 착하지.”

귓가에 누군가 속삭였다.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손목에서부터 올라오는 통증과 별개로 공포가 전신을 잠식했다.

“윗선이 누구야?”

길 물어보듯 평온한 어조다.

후드는 그래서 더 무서웠다.

“그 윗선이랑 연락하는 방법은?”

두 개의 물음이 귀에 닿았다.

“쉽게 말할 생각이 없구나?”

“읍읍.”

후드가 신음을 토했다.

남자는 후드의 정강이를 발등으로 때렸다.

똑.

그리 세게 때린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정강이가 부러졌다.

다시금 통증이 전신을 치달렸다.

후드가 침을 흘리고.

멍하니 그걸 보던 맞은편 남자가 말했다.

“저기, 입을 막으시고 물으시면 대답을 못 하지 않나요?”

후드의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렀다.

고마웠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이었다.

“아, 깜빡했다.”

남자가 입을 막은 손을 풀었다.

“흐그윽, 흐으윽.”

울먹이는 후드를 보고 남자가 물었다.

“대답은?”

말해야 한다. 답하지 않으면 죽을 것이다. 저 남자는 자신을 반드시 죽인다.

무서웠다. 공포에 물든 후드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남자는 나타났을 때와 같이 바람처럼 사라졌다.

그날 밤, 서울 시내에서 활보하는 마약 판매상 다섯의 정강이와 손목이 부러졌다.

손 하나, 다리 하나.

하룻밤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중간책의 손목과 다리도 마찬가지로 꺾였으며.

아침 해가 밝아올 때쯤, 마약상 사이에서 소문이 돌았다.

서울 밤거리를 헤집고 돌아다니는 미친놈이 있다고.

그 미친놈은 마약을 파는 이들의 손목과 정강이를 부러뜨리고 다닌다고 했다.

문제라면.

“누군지도 모르고, 얼굴조차 본 놈이 하나도 없어?”

“네.”

박정식의 물음에 부하가 고개를 숙였다.

유광익 사냥을 시작하려 했었다.

그런데 정작 사업 쪽에서 문제가 생겼다.

정확히는 어떤 미친놈이 일을 벌였다.

분명 특수종이다.

다만, 귀신 같은 새끼였다.

“팬텀?”

“특수대에서 관여한 일이 아닙니다. 그쪽은 확인했습니다.”

포마드 머리 부하다.

한국 마약 유통은 박정식이 쌓아 올린 왕국과도 같았다.

하물며 한국의 바닥을 잠식하기 위한 프로메테우스의 대계 중 하나이기도 했다.

실패는 용납되지 않는다.

맨손으로 바닥부터 시작해서 여기까지 왔다.

이제까지 이런 위험이 한 번도 없었을까.

“애들 풀어서 찾아.”

“네.”

하부 판매책이야 전부 점조직이다. 자신까지 닿을 턱이 없었다.

문제는 사업의 유지다.

물론 혼자서 발악한다고 한국 전체에 뿌리를 내린 마약 사업이 망할 일은 없었다.

박정식은 그리 생각했다.

* * *

“전부 점조직이네.”

알아낸 걸 전부 팬더 형한테 말했더니 나온 답이다.

“하룻밤을 꼬박 새웠는데 남은 게 없다는 겁니까?”

지금 내 체력이야 나흘 밤을 새워도 거뜬하다.

그래도 노동의 대가가 없다는 건 슬픈 일이다.

“그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나 갈구냐?”

“아닌데, 물어보는 건데요.”

중간책까지 알아내는 건 일도 아니었다.

어쩌다 보니 손목과 발목을 부러뜨렸다.

손목이야 헛수작 부리지 말라는 경고로, 발목은 나중에 경찰이 잡아갈 때, 얌전히 잡혀가라고.

판매책 중에는 일반인도 꽤 많았다.

불멸자도 있었는데 물론 이쪽은 발목을 부러뜨리는 정도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으깼다.

복합골절은 초고속재생 능력이 없으면 재생할 때 끔찍한 통증을 수반하는 건 물론이고 시간이 걸리니까.

“차라리 잘라 주지.”

통증에 식은땀을 줄줄 흘리던 불멸자 판매책은 그리 말하고 기절했다.

생각의 와중이다.

“내가 누구냐?”

팬더 대리가 물었다.

팬더, 눈 밑이 검은 곰탱이, 어머니에게 개조 받은 반달 곰탱이, 눈치 더럽게 없는 곰탱이, 애니와 피규어에 빠진 냄새 나는 아재, 경제관념이 너무 없어서 평생 장가가기는 글러 먹은 변신족 실험체.

머릿속에 떠오른 걸 뱉어 내면 싸우자는 말이랑 다를 게 없었다.

“…….”

때론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침묵이 더 필요할 때가 있는 법이다.

“내가 바로 화림이 낳은 최고의 두뇌, 스카우터가 탐내는 1순위 불멸자, 변신족의 힘까지 제어해서 팔방미인이 된 남자, 이동훈이다.”

이 형, 많이 아픈가.

“그래서요?”

“방법은 언제나 있는 법이라고.”

난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다들 나보고 미쳤네, 또라이네 하는데.

사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이 더 정상이 아니라는 건 아는 걸까 하는.

물론 그래서 더 마음에 들었다.

팬더 형은 설명했고 난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 하기에는 손이 부족하겠네요.”

“변신족 애들 온다며?”

자원은 쓰라고 있는 법.

때마침이다.

부르르, 폰이 울었다.

변신족 지원군이 왔다는 삼촌의 연락이다.

그럼, 일단 변신족 동업자 친구들 얼굴이나 보자고.

특별히 신예 중심으로 뽑았다고 했다.

그중에는 순혈의 피를 이은 변신족도 있다고 하던데.

정기남과 우미호가 떠올랐다.

이쪽은 또 어떤 색다른 개나리일까 하는 기대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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