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 미끼
“리프트 이사를 네가 구했다던데?”
“내가?”
“응.”
수화기 너머로 중고 형이 말했다.
그런 적 없는데.
말하려던 참에 주차장 구석, 차 안에서 밀회를 즐기던 여자가 떠올랐다.
취미 한번 독특한 여자였지.
남의 회사 사옥 주차장에서 남자 연예인이랑 응응이나 하시고.
“네, 제가 그랬군요.”
대강 수긍했다. 그 여자가 아니더라도 뭐, 거기에 있는 누군가 중 하나였겠지.
그게 뭐가 중요할까.
“프리로 뛰어도 되고 특수대가 연예계 요인 경호 하루에 오백 받거든? 그거 맞춰 주라고 해도 맞춰 줄 것 같은데.”
몸값이 두 배로 뛰었다.
특수대의 요인 경호는 본래 비싸다.
불멸자는 툭하면 제 몸을 방패 삼아 경호 대상을 지킬 수 있으니까.
그렇다 해서 무조건 남는 장사는 아니고.
애초에 자주 있는 일도 아니다.
고가의 개인 경호를 부르는 이유는, 위협이 있기 때문이다.
그 위협을 해결하려면 돈이 들어가기 마련이고.
신소재를 기반으로 한 기어는 비싸니까.
나? 난 좀 다르지.
난 어지간하면 몸으로 때울 수 있다.
그게 아니더라도 내가 가진 기어는 다 효율적인 편이고.
4번 타자의 아다만티움 탄약이 꽤 고가이긴 한데, 이전에 남 사장한테 털어온 것도 있고.
기생 저격총이야 내 피로 가동하는 거고.
아다만티움 와이어는 사야 하니까 아깝긴 하다만, 여유가 있을 때 회수하면 되니까.
코트와 장갑도 망가지지만 않으면 굳이 수리할 필요가 없다.
수틀리면 혜민이한테 봐달라고 하면 되고.
혜민이가 스펠 기어 엔지니어보다 나을 수는 없어도, 기본적으로 마력을 다루는 특수종이니까.
이렇게 보니까 내 기어는 전부 가성비가 좋다.
만드는 인간들이 개성 넘치게 제작했을 뿐.
진짜, 나 아니면 이걸 누가 쓰겠냐고.
4번 타자는 산탄총인데, 불멸자의 감각이 아니면 달리는 놈을 맞추기도 어려운 물건이다.
게다가 무거운 주제에 집탄율은 쓸데없이 좋아서, 피격 범위가 생각보다 좁다.
다른 기어는 말할 것도 없다.
그나마 범용성이 좋은 건 코트와 장갑뿐인데.
장갑은 알이 왕가의 보물 중 하나라고 했으니, 시중에서 구할 물건이 아니다.
어쨌든.
“별론데.”
“별로라고? 왜?”
“재미가 없어요.”
위협이라고 해 봤자, 특수종 스토킹 따위가 대부분인 세계다.
그리고 애초에 거기서 일을 더 받으려고 한 일도 아니고.
목적한 바는 다 이뤘다.
“……일을 재미로 하냐?”
“네.”
중고 형도 나름 이 세계에서 빠삭한 정보통이다. 돈만 보고 일하기에 내 잔고가 너무 탄탄하지.
“……부럽다.”
중고 형이 중얼거렸다.
“다음 일이나 물어다 줘요.”
“네, 고객님. 수수료만 챙겨 주신다면 제가 지옥에서라도 일을 물어오는 그런 에이전트입죠.”
“가라, 김중고, 가서 내 일을 물어와.”
장단을 맞춰졌다.
“네네, 고객님, 나중에 보너스라도 좀 주시지요.”
목소리만으로 굽신굽신하는 이미지를 만들어 내다니, 이 형도 참 대단한 인간이다.
농담을 건네며 전화를 끊었다.
이 양반, 아직도 경찰 쪽이랑 일하려나 모르겠다.
그거 꽤 위험해 보였는데 말이야.
뭐, 내 알 바는 아니지.
그렇게 이틀을 보낸 뒤다.
딱 한 번, 연예계에서 한 일로 내 이름이 널리 퍼졌다.
“너 엄청 유명해졌더라?”
삼촌이 말했다.
훈련장에서 자주 마주치는 양반이다.
볼 때마다 생각하는 건데, 우리 삼촌 일은 안 하시나.
SNS 보면 매일 클럽에 술에 놀러만 다니고, 낮에는 나 만나러 온다.
잘 시간까지 쪼개서 노는 거에 목숨 거는 유형이었다.
담배는 안 하는데 술은 무척 즐긴다.
삼촌이 왜 그러는지는 안다.
정답에 가까운 추측이다.
피를 진하게 물려받은 변신족일수록 본능 제어가 힘들다.
즉, 삼촌의 행동 패턴은 본능 제어의 부작용이다.
팬더 형이 애니를 사랑하고 피규어를 사는 것도 그런 거다.
본능을 제어하기에 다른 곳으로 욕망을 표출하는 거다.
“그래요?”
“앱솔루트 실드에서 네가 누구냐고 묻더라고.”
앱솔루트 실드, 단군 그룹 산하 국내 최고의 경호 업체 중 하나였다.
아직 내 존재는 아는 사람만 안다.
혼혈이란 것도.
하지만 유광익이란 이름 석 자는 이번 일로 화끈하게 알려졌다.
텅.
들고 있던 바벨을 내려놓았다.
가슴 근육에 빳빳하게 힘이 들어가서 뻐근했다.
리프트 이사의 러브콜.
단군 그룹 산하, 앱솔루트 실드의 관심.
여기서 끝도 아니다.
어제, 스티븐 최한테도 연락이 왔다.
“친구, 내가 보고 싶어서 전화했어?”
이리 반겨 주니.
“잘 지내셨죠?”
“그게 궁금해?”
“……친구니까요.”
“대답이 바로 안 나와서 나 기분이 조금 상하는 것 같은데.”
“제가요? 바로 답했는데.”
“그렇다고 치고.”
용건을 물었다.
“혹시 입대할 생각 있습니까?”
우리나라는 아직 징병제다. 다만, 난 경우가 조금 다르다.
불멸특수대에 종사하는 요원은 일정 1등 사원이 되면 면제다.
즉, 난 면제다.
내가 말이 없자, 스티븐 최가 떠들었다.
“군 내에서도 핵심, 일명 도깨비 팀이라고 있습니다. 거기서 연락이 왔습니다. 근데 광익 님 연락처 구하는 게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뭐, 다른 부서에서 작정하고 막는다고 하던가.”
아버지 작품이겠지.
“그렇다고 통신사를 압박해서 알아내자니, 그것도 쉽지 않고.”
이쪽은 외가 작품이겠고.
“근데 제가 또 광익 님하고 친구잖아요?”
가라앉은 말투가 하이톤으로 변했다.
“어떻습니까? 주선해 볼까요? 이거 좋은 기회입니다.”
스티븐 최는 프로였다.
일은 일이다.
나한테 연락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 텐데.
그의 진심을 묻고 싶었다.
“진짜?”
“……네?”
“진짜 좋은 기회야?”
“진심으로 부탁 하나만 하면 안 됩니까?”
“해.”
“그 진짜 좀 안 하면 안 돼요?”
“진짜?”
“……관둡시다.”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아니, 몇 번 되물은 게 전부였는데 왜 전화를 끊어.
하여간 군대는 안 간다.
군에서도 당연히 불멸자를 이용한 군대가 존재한다.
그쪽의 주 업무는 국경 경계, 부대 근처 지역의 블랙홀 처리, DMZ(DeMilitarized Zone) 비무장지대에서 이제는 MZ(Militarized Zone)가 된 북한 쪽에서 나오는 인베이더 처리도 있고.
그 존재 자체도 제안도 나쁘다고 생각은 안 한다.
다만, 다시 어딘가에 메일 생각은 없다.
이렇게 군대까지 관심을 보였고.
어머니도 은근히 그룹에 들어가고 싶으면 말하라고 했으며.
아버지는.
“내 아들이지만, 진짜 신기하긴 하다.”
이렇게 말씀하셨다.
“피닉스팀으로 스카우트 안 합니까?”
왜 행안부 쪽만 러브콜을 안 하는 걸까 싶어서 물었다.
“널?”
“네.”
“미흡해. 피닉스팀은 자신을 증명하지 못하는 불멸자를 받지 않는다.”
“오케이, 그쪽으로는 절대 지원도 안 하겠습니다. 소자가 제 미흡함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내 말에 아버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잠깐이지만, 안색도 변했다.
분명 당황했다.
살면서 아버지 당황하는 걸 보는 일은 많이 없다.
엄마가 화낼 때 빼고.
“아들?”
“절대 안 해요.”
“그게 아니지, 아들. 이러면 그 기준이 뭐냐고 묻고 다들 오라고만 하는데, 여기는 감히 날 시험하냐고 궁금해하는 게 정상 아니냐?”
“요새 드라마 많이 보세요?”
지금 말하는 게 재벌이 소시민에게 끌리는 클리셰 같은데.
너 같은 남자 또는 여자는 처음이야 클리셰잖아.
“드라마는 네 엄마 취미다.”
엄마의 취미는 곧 아빠의 취미가 된다. 두 분은 같이 있는 시간이 기니까.
“뭐, 진짜 갈 생각은 없긴 해요.”
“팀원 전부 널 궁금해하긴 한다.”
이게 바로 유명세다.
불멸특수대에서 했던 일, 과연 나와서도 가능할까?
라는 의문의 답이었다.
된다, 아니 되는 정도가 아니라 혼자서 50명의 강화 인간도 때려눕힌다.
하물며 난 그 싸움에서 기어도 안 썼다.
주차된 차만 썼지.
아버지는 내 행동의 여파도 설명해 줬다.
“아마, 그 김중고란 사람이 말한 건 그런 거였을 거다. 과연 특수대의 지원 없이, 네가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하는.”
“그런데 이번에 네가 일을 터트렸지. 그것만으로 사람들 시선이 변한 거다. 아직 특수종 세상 전부가 널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국내에서 활동하는 친구들은 전부 관심을 갖겠지. 노렸니?”
마지막 물음에, 방심하다가 헤- 하고 웃어 버렸다.
“꼭 그런 건 아니지만.”
반쯤은 노렸고, 반쯤은 운이 따랐다.
하도 주변에서 얘기를 많이 해 주니까, 그런 거지.
아버지, 어머니, 사수, 팬더 형, 시발 팀장, 호남이 형까지 연락이 왔다.
알한테도 왔고.
알이야 뭐, 수틀리면 왕가의 병력을 보내 주겠다고 난리니, 패스.
진짜로 받아도 문제고, 보내 줄 상황도 안 될 거다.
그쪽도 꽤 바쁘다고 들었다.
내가 노린 것, 그러니까 이들 전부가 입을 모아서 하는 말은 하나였다.
“프로메테우스, 불멸교 둘 다 널 가만 놔두지 않을 거다. 거기에 미친 과학자 놈들도.”
테러 단체는 어떻게 이름값을 유지하는가.
단순하다. 그 이름 자체로 공포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라는 과속방지턱에 번번이 걸린 것도 부족해서 차가 전복했다.
프로메테우스란 차를 운전하는 운전사가 ‘아, 재수가 없었네.’ 하고 넘어갈까?
그럴 턱이 있나.
그들은 날 노린다. 그렇다고 한다. 다들 그리 말한다.
그래서 한 일이었다.
본래라면 이런 일 몇 번 더 할 생각이었다.
연예인 경호든, 요인 경호든, 그게 아니라면 중고 형이 물어오는 무슨 일이든.
냄새를 풍길 생각이었다.
그 냄새를 맡고 몰려올 하이에나를 만나고 싶었으니까.
미친 과학자 무리가 날 노리는 건 좀 다른 이유이긴 하지만, 그쪽도 마찬가지고.
불멸과 변신의 콜라보레이션인 걸 모르기에, 다른 이들이 보기에 내 몸의 가치는 놀랍다. 불멸자의 육신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말이 돌았다.
하물며 바로 곁에서 본 특수대대원도 놀라서 어버버하는 판이니.
내가 단군 그룹 손자가 아니었으면 그쪽에서도 아예 작정하고 연구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을 정도라고 들었다.
불멸자면서 전투력은 변신족 급.
혼혈이니까 당연한 건데,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이게 또 되게 신기한 일이거든.
하여간 그런 상황이라고 들었다.
그래서 손님 대접을 준비하는 중이다.
난 어릴 때부터 손님이 오면 대접을 잘해야 한다고 배운 몸이니까.
가정 교육이 이래서 중요하지.
난 그 말 그대로 할 생각이었다.
“나, 가요.”
하던 운동을 치우고 일어났다.
“또 나가?”
“밤이잖아요.”
저녁 운동이 끝난 뒤였다.
“오냐.”
“오늘은 클럽 안 가십니까?”
“같이 가고 싶냐?”
……솔직히 한 번은 가고 싶다.
“나중에요.”
“그래, 나중에.”
말하며 밖으로 나섰다. 상쾌한 밤공기가 코를 통해 폐부를 씻었다.
봄이다. 뛰기 딱 좋은 날씨다.
요새 내 일과는 평범했다.
일이 없다면 종일 운동, 가끔 삼촌이랑 시시덕거리고.
마리와 가볍게 대련도 한다.
아, 마리는 바빠서 자주 보진 못한다.
내가 변신체 훈련까지 대충 떼자, 어머니는 마리를 데리고 다시 훈련에 전념했다.
떠오른 게 있다고 하셨던가.
가끔 혜민이가 찾아와 같이 커피도 마시고 밥도 먹는다.
아버지랑 집에서 대작하는 일도 있고.
요한이 형이나 귀태 형이 밥이나 먹자고 찾아올 때도 있었다.
그러다 시간이 나면 팬더 형 반찬을 챙겨 주며 잡담도 하고.
그렇게 저녁 시간이 지나면 조깅 겸 산책을 한다.
이건 매일 반복되는 일과다.
사람이 없는 골목길을 도는 게 취미였다.
그렇게 지하철역, 여덟 정거장 거리를 가볍게 뛰고 돌아오는 길, 머리 위 가로등이 깜빡이는 골목길이다.
가로등이 비치지 않는 그림자 밑, 교복 입은 남자애 셋이 낄낄거리며 쪼그려 앉은 게 보였다.
그중 하나와 눈이 마주쳤다.
교복과 어울리지 않는 눈이었다. 얼굴은 앳되지만, 그 눈에 담긴 건 노회함이다.
그러니까 미끼 냄새 맡은 하이에나가 왔다.
“눈치챘네.”
놈이 말했고.
남은 둘이 땅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두 놈 다 변신족이다.
그와 동시에 전신을 압박하는 무형의 압력이 느껴졌으며.
퓨뷱 하는 소리와 함께 좌우에서는 화살이 날아왔다.
동시다발적인 공격이었다.
어지간한 불멸자라면 순간 방어가 불가능한 전방위 공격이다.
불멸자는 못 막는다. 느낄 수는 있어도, 몸이 따라 주질 못한다.
들어오는 모든 공격이 감각의 그물에 걸린다.
난 순간적으로 공격의 선후를 파악했다.
동시라고 하지만, 약간의 시간 차이는 있다.
화살이 먼저다.
품에 넣어 둔 나이프를 뽑아 좌우로 그었다. 너무 빨리 그어서 은색의 실이 어둠을 가르는 것처럼 보였다.
티딩.
화살 두 개를 쳐 내고, 짓쳐들어오는 두 놈의 얼굴을 보며 땅을 차며 가위차기.
쩡, 쩡.
두 놈 다 양팔을 십자로 교차하더니 내 발길질을 막았다.
전신을 짓누르는 무형의 압력, 그러니까 초능 특수종이 뿜어내는 염동의 힘은 무시했다.
이런 거 인듀어에 비하면 귀엽지.
“언제 오나 했다.”
내 말에 처음 눈이 마주쳤던 놈이 입꼬리를 올렸다.
“올 줄 알고 있었니?”
“다들 경고하더라고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미친 새끼.”
“그런 소리 자주 듣는다.”
양팔을 늘어뜨리며 말했다.
상대는 총 열.
골목길 좌우 담벼락 위로 석궁을 든 두 놈은 불멸자 둘.
눈앞에 안 어울리는 교복을 입고 버티던 놈은 초능 또는 일반인으로 추정.
나머지 둘은 변신족이다.
그리고 안 보이는 곳에서 염동력을 쓴 초능 특수종이 다섯, 위치는 내 뒤쪽이었다.
다른 기어나 무기는 하나도 들고 오지 않았다.
나이프 한 자루가 전부였다.
당연하다. 이 시답잖은 무리를 불러오기 위해 냄새를 풍겨야 했으니까.
미끼가 사냥꾼을 역으로 노리고 있으면 누가 오겠냐고.
작정하고 빈틈을 보였다는 거다.
나이프를 손에서 빙글 돌리며 역수로 쥐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다시 염동력이 어깨를 짓눌렀다.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아까보다 더 묵직하다.
“근데 너희 열 명이 전부니?”
난 압력을 느끼며 물었다.
놈들은 대답 대신 다시 달려들었다.
합이 잘 맞는 걸 보니 한 팀으로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