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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격 외 혈통 천재-167화 (167/488)

167. 이게 이렇게 되나?

“진짜?”

우미호가 되물었다.

안 될 건 뭐야.

“응, 너 해.”

내 말에 우미호가 미간을 찌푸리고 중얼거렸다.

“불길해.”

불길하긴, 뭐가.

얘도 불멸자다. 제 감각에 충실한 특수종이자, 끊임없는 훈련으로 제 감각을 단련하는 무식한 혼혈.

사내에서 독사, 우크루지 따위로 불리는 그런 불멸자다.

우미호는 훈련할 때는 독하게 하고 일상생활에서는 땡전 한 푼조차 아끼는 구두쇠 마녀였다.

그나마 친분이 있던 여자 동기가 왜 그렇게 독하게 구냐고 물었던 적이 있었다.

“비효율적인 질문이야.”

그 물음에 우미호는 우미호 했다.

귀태 형의 끊임없는 구애에 딱 한 번 진지하게 대답해 줬다는 것도 들었다.

“가용 현금 최소 20억 이상, 재산과 별개로 그 돈 나한테 줄 수 있으면 그때 다시 와.”

만나는 데만 20억이라.

아무리 속물이라고 해도 너무했지, 그건.

귀태 형은 그 말에 더 불타오르긴 했다.

“사랑? 웃기지 마, 이제 돈으로 사겠어. 얼마면 돼? 얼마면 되겠어?”

한동안 술주정이 이랬다.

난 그때마다 옆에서 이십억이라고 속삭여 줬다.

놀리려는 건 아니고 현실 감각을 일깨워 주기 위해서였다.

난 귀태 형을 아끼니까.

“그건 너무 많잖아.”

그럼 이렇게 말하고 눈물을 흘린다.

참 감성적인 형이다.

그런 우미호다. 차갑고 뱀 같은 불멸자.

그리 돈을 밝힐 때는 이유가 있겠지.

근데 물을 생각도 없었다. 애초에 그럴 틈이 보이는 애도 아니고.

이건 그냥 호의다.

사실 이걸 가져가서 파는 것도 일이고.

화림에 있을 때야 회사에서 다 알아서 해 주는 일이었는데 막상 나와서 보니 이게 또 일이거든.

이걸 판다고 여기저기 찔러 보느니, 그냥 줘 버리고 말지.

“이게 뭐 별거라고.”

선물이라고 하기에는 그로테스크하긴 하네.

쪼개진 머리통을 건넸다.

머리통 안에 뇌가 없었다.

저 촉수가 전부 욕망충의 본체였다.

욕망충은 기생 후 뇌를 파먹고 파먹히는 숙주는 미친 짓을 일삼는다.

그래서 욕망충이다.

욕구를 참지 못하고 욕설을 참지 못한다. 분노를 토해 내고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한다.

미친놈이 된다는 거다.

그러다가 뇌가 다 파먹히면 펑 하고 머리가 터지고 촉수가 자라난다. 그게 끝이다.

최근 몇 년간은 욕망충에 당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

백신도 잘 나오고 예방법도 다들 잘 알고 있으니까.

지금은 그냥 뇌염모기 수준이다.

“선물치고는 좀 그렇긴 하네.”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 건넸는데 우미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진짜 나 준다고? 왜?”

“아, 별 이유 없다고.”

애가 뭔 모든 행동에 이유를 붙여.

“비효율적인데.”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이 기계냐? 효율적으로만 살게?

귀찮으면 이럴 수도 있는 거지 뭐.

그리 생각하고 주변에 감각을 퍼트렸다.

더는 위협 없고.

“야, 우미호, 이거 화림에서 뒤처리해라.”

마지막까지 내 책임 아니라고 해 준 뒤, 경호 대상에게 다가갔다.

“그, 음, 괜찮은 겁니까?”

매니저가 다가오는 날 보고 물었다.

“저 불멸잡니다.”

“불멸자라고 해도 일단 다치긴 하니까.”

“안 다쳤고요.”

매니저를 지나쳐 밴 뒤쪽 문을 열었다.

이유나가 불안한 눈빛을 보내며 날 바라봤다.

다친 곳 없고 정신적 충격은 지금 내가 어떻게 못 해 주고 어찌나 놀랐는지, 안색이 하얗다 못해 창백하다.

그런 이유나가 입을 열었다.

“줄리아는요?”

“괜찮습니다.”

말하고 3층 창문 위를 올려다봤다.

박호순 저거 뭐 하냐.

여기 정리 끝났으니까 상황 종료 선언해야지?

우미호도 가만히 내가 쪼갠 머리통을 보고 멍 때리고 있다.

너희 일 안 하냐?

본래라면 불멸특수대원이 할 일이지만, 뭐 이번에는 내가 일을 다 끝맺은 셈이니.

“이유나 씨 개인 경호원 유광익입니다. 현 시간부로 모든 위협은 제거, 안전합니다.”

고요한 가운데 내 목소리가 울렸다.

루지트 건물이 외곽 쪽에 있는지라 지나는 사람도 많이 없었다.

덕분에 생긴 고요다.

“이제 괜찮다고요?”

주차장에 매니저 아재와 이유나만 있는 건 아니었다.

물론 난 이미 알고 있었다.

주차장 구석, 사람이 오가지 않을 만한 곳에 주차된 외제 SUV였다.

그곳에 나온 여자의 목소리다.

“네, 상황 완료입니다.”

답해 줬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3층 창문 위에서 목소리가 터졌다.

“언니! 언니!”

노랑머리 찰랑거리는 치킨 좋아하는 사고뭉치 여고생, 줄리아다.

“야, 너.”

차에서 내린 이유나가 눈물을 글썽거리며 창문을 가리켰다.

살아났다는 기쁨, 공포가 사라진 것에 대한 환희, 갖가지 감정이 섞인 목소리다.

둘뿐 아니었다.

“살았어, 살았어.”

“와아아아!”

환호가 뒤따랐다.

공포 영화를 보는 이유가 현실감을 위한 거라고 했던가.

그런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

영화에서 일어난 일이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으니, 영화가 끝난 후 드는 안도감이 좋다는 거다.

이 사람들이라고 다를까.

목숨을 건진 사람들은 울었고 환호했다.

아까 소개하다가 내 이름을 들었는지.

“광익이 오빠 고마워요!”

어떤 여자애가 울먹이며 그리 외치기도 했다.

난 손을 들어 화답해 줬다.

아이돌이 된 기분이었다.

“후,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네요.”

외제 SUV에 탔던 여자가 다가왔다.

“이유나 개인 경호원이시라고요?”

“네, 뭐.”

사흘 동안이지만, 그렇지.

“고마워요. 이대로 죽는 줄 알았거든요.”

사실 나 아니었으면 죽었을 것 같다.

저 제대로 미친 욕망충 숙주 자식이 분명 주변을 초토화했을 테니까.

웨에에엥.

뒤늦게 사이렌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신고는 아까 했는데 말이죠.”

여자가 미소와 함께 말했다.

간도 크네.

목숨 건졌다고 바로 웃어?

“이름이 유광익이에요?”

“네.”

이미 주변에서 내 이름 외치는 애들이 몇 있다.

여자는 이후 말없이 돌아섰다.

곧바로 같이 있던 남자가 따라왔는데 둘이 나란히 서자, 누가 주도권을 가졌는지 확실히 알 것 같았다.

여자는 담담하고.

남자는 다리가 후들거렸다.

“괜찮아. 울지 마.”

여자가 남자를 다독였다.

돌아서는 둘을 보며 귀를 후볐다.

자꾸 광익이 오빠라고 부르는 통에 귀가 아플 지경이었다.

딱히 나쁜 기분은 아니다.

“고마워요.”

“고맙습니다.”

다들 인사하기 바쁘다.

내 덕에 산 걸 아는 거다. 모를 수가 있나. 이 난리를 쳤는데.

외제차 두 대를 글러브로 썼다.

음, 타격감 괜찮았는데.

“그럼 숙소로 돌아가시죠.”

경호 대상을 향해 말했다.

난 일을 한 거다. 지금도 일을 하는 중이고 그 일을 마무리해야 할 때였다.

매니저와 이유나, 줄리아를 데리고 돌아섰다.

남은 건 남은 요원 둘, 그러니까 우미호랑, 이름을 벌써 까먹은 남은 동기 하나가 할 일이었다.

뒤늦게 온 경찰까지 합류해 그렇게 사건이 마무리됐다.

* * *

이유나 호위는 달랑 하루가 남았고 그 하루는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갔다.

일단 이유나를 비롯해 모두는 쉬어야 했으니까.

정신과 상담도 받고.

놀란 마음도 진정시키고 그런 시간이다.

그렇다고 심심하진 않았다.

어찌나 말을 많이 걸던지.

“우리 유나 구해 주셨다고요. 감사합니다. 나중에라도 제가 도움이 될 일이 있다면 반드시 연락해 주십시오. 무슨 일이라도 제가 몸을 팔아서라도 꼭 돕겠습니다.”

이유나 소속사 대표였다.

과장된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진심은 느껴졌다.

“일이었습니다.”

돈 받고 하는 일인데 뭐.

적당히 물려주고.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광익 씨 안 계셨으면 어쩔 뻔했을지, 혹시나 나중에 제가 도움이 될 일이 있으면 언제라도 연락해 주십시오.”

매니저도 이리 말하기에 그럴 일이 있을까 싶지만, 알겠다고 했다.

“네, 그럼 나중에 아이돌이랑 소개팅 한번 해 주시죠.”

“원하신다면 제가 영혼을 팔아서라도.”

대표랑 형제지간 아니랄까 봐 둘이 똑같다.

소개팅 한 번에 영혼을 왜 팔아.

“오빠, 여자 친구 있어요?”

그리고 줄리아는 대뜸 이런 걸 물었다.

“없어도 생길 판이다.”

“네?”

“어린애는 안 받아 준다.”

말하고 이마를 콕 찔러 밀었다.

“흥.”

줄리아가 볼을 부풀렸다.

귀엽긴 한데, 너 괜찮겠니?

오빠 옆에는 강혜민이라고 꽤 살벌한 마법사 하나가 있단다.

네가 이러는 걸 알면 너에게 저주를 퍼부을지도 모른단다.

“전 성인인데.”

얘는 또 왜 이래.

이유나다.

“어디 아파요? 정신적으로 충격이 너무 컸나? 근데 촉수 말고 놀랄 게 있었나?”

“그 차 두 대로 사람들 쓸어 버릴 때요. 그때 제일 놀랐는데요.”

“촉수보다?”

“네.”

얘도 좀 이상한 것 같다.

“고생하셨고, 전 그럼 갑니다.”

그렇게 난 첫 번째 일을 마쳤고 집에 돌아왔다.

“돈 벌어 왔니?”

어머니의 환대에 소고기를 쥐여 드리고.

“역시 내 아들.”

“오라버니, 오셨습니까? 건강에 염려를 끼칠 일은 없으셨는지요? 마리가 무척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마리도 날 반겼다.

얘는 하루가 다르게 말투가 저세상으로 향하는 중이다.

“괜찮았어.”

말하며 머리나 한번 쓰다듬어 줬다.

이러면 마리가 무척 좋아한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만.

마리는 내가 헝클어뜨린 머리를 몇 번 쓰다듬더니, 곧 어머니가 고기 손질하는 걸 도왔다.

그렇게 하루를 푹 쉰 다음 날이다.

방에서 밀린 웹소설이나 보는 중에 메시지가 왔다.

우미호였다.

[셜록 홈즈 개나리] 혹시 너도 방귀태와 같다면, 조건은 같아.

이게 무슨 강아지 짖는 소리일까.

[셜록 홈즈 개나리] 현상금 탔으니까 그 정도는 있겠지.

메시지가 또 왔다.

[나] 이십억?

이게 돌았나.

폭풍 메시지를 작성했다.

내 이상형에 관한 이야기였다.

예쁘고 가슴 크고 낮에는 현모양처 밤에는 요부, 청순하고 섹시하지만 단아하고 지적인 그런 여자.

[셜록 홈즈 개나리] 그런 여자는 없어. 배신자 최미남도 결국 그런 여자는 아니었잖아.

이게 진짜, 사람 아픈 곳 콕콕 찌르네.

최미남, 딱 한순간이지만, 홀라당 넘어갈 뻔한 유일한 여자다.

근데 이건 진짜 왜 이렇게 돈을 밝히나.

어디 빚이라도 왕창 진 거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빚이라는 게 아무한테나 몇십억씩 주는 건 아니란 말이지.

빚도 능력이란 말이 괜히 있겠나.

[나] 어디 사채 끌어다 썼냐?

답장은 없다.

대신 전화가 울었다.

좀 쉬려는데 연락 참 줄기차게 오네.

팬더 형이었다.

“디자이어 버그 나왔다며?”

“잡았어요. 숙주도.”

“고생했다. 돈은?”

집에서 사타구니 벅벅 긁으면서 전화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런 주제에 돈은 밝혀요.

“다 줄까요?”

“진짜?”

“아니, 그냥 해 본 말.”

“……나쁜 새끼.”

말만 해 봤다. 말만.

“조사하느라 고생했으니 20% 떼 드림.”

“아, 네, 겁나게 감사합니다.”

거, 삐죽대기는.

앞으로 일 많이 하면 되지.

이 형 참 돈 밝혀.

크리스마스에 제 손목에 명품 시계 선물하는 인간이니, 말할 것도 없긴 했다.

“왜 또 뭐 사게?”

“피규어. 새로 나왔거든. 이게 또 명기예요, 명기.”

어머니가 환골탈태시킨 변신족 괴물이 된 반달 곰탱이.

예전의 이동훈은 이제 없다.

몸이 변하고 본능을 제어하는 변신족이 남았을 뿐, 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사람 참 어디 안 간다.

어머니는 자신이 가르쳐 본 사람 중에서 저렇게 몸 쓰기 귀찮아하는 변신족은 처음 본다고 단언했다.

삼촌이 옆에서 어머니 손에서 저 정도로 자신의 캐릭터를 유지하는 변신족을 처음 본다는 말도 덧붙였다.

껍질은 변했는데 알맹이는 그대로다.

뚝.

전화를 끊었다.

이 형이 돈이 어디에 쓰는지 따위 알고 싶지 않다.

가진 돈을 다 명품에 갖다 쓰는 양반이다.

씀씀이가 헤픈 걸 넘어서 구멍이 송송 난 인간이고.

그리고 시계 팔아 생활비 하라니까 죽어도 못 팔겠다고 숨겨 두고 나한테 생활비도 꿔 갔다.

독서나 하자, 독서나.

다시 폰을 여는데 또 전화가 울었다.

마음의 양식을 쌓을 틈이 없다.

이번에는 중고 형이다.

“무슨 짓을 한 거야?”

대뜸 하는 말이다.

“뭐가요?”

“연예계 쪽에서 너 한 번 부르겠다고 난리다. 아니, 아예 고정으로 일해 줄 수 없냐고 하던데?”

“에?”

“연봉은 맞춰 주겠다고.”

“제 연봉이 얼마일 줄 알고?”

“이쪽에서 제일 머리 큰 곳이 어디인 줄 알아?”

대형 엔터는 나도 안다.

훈련 중에 그 엔터 주식 떨어질 때마다 과외 선생이 미쳐 날뛰었다.

“리프트요?”

그 둘 중에서도 한 곳은 넘사벽, 한국 엔터계의 엑스큐라시다.

그쪽에서 온 러브콜이었다.

“연봉 3억부터 시작하는데 생각 있냐?”

중고 형이 물었다.

화끈한 제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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