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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격 외 혈통 천재-163화 (163/488)

163. 하루에 이백오십, 첫 경험

“아우, 신수가 훤해졌네, 동생.”

“우리 중고 형은 고생이 심했어요? 손은 왜 그래요?”

“살이 안 빠져서 극단적인 다이어트 좀 했다.”

다이어트를 쌈박하게도 했다.

중고 형의 왼쪽 손의 손가락 세 개가 없었다.

잘린 부위나 상태를 보니 엊그제 잘린 건 아니었다.

“반년 넘었어.”

대수롭지 않게 말하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뭐 하시다가?”

예의상 물었는데, 중고형이 술술 답했다.

“용병 새끼들 끼고 일하다가 뒤통수 맞았다. 쩝, 하여간 믿을 놈 하나 없는 세상이라니까.”

“거, 조심 좀 하시지.”

근데 머니 & 세이브 사건으로 번 돈이 꽤 될 텐데.

돈만 있으면 몸의 DNA를 기초로 사지 재생이 가능하다.

손가락 세 개 재생도 당연히 가능했다. 돈만 있다면 말이다.

“재생술 안 받으시고?”

“돈이 어디 있나, 돈이. 요새 뭐 건수라도 있어? 그래서 보자고 한 거야? 근데 퇴사하지 않았나 동생?”

“퇴사했죠. 쉬고 있어요.”

쪼록.

빨대로 두유를 한 모금 빨았다.

우리는 카페도 술집도, 그렇다고 식당도 아닌 작은 공원의 벤치에 앉았다.

중고 형은 요구르트 카트를 끄는 직업을 찾은 듯했고.

복장이 참, 뭐라고 해야 할까, 어울리지 않는 듯하면서도 잘 어울렸다.

요구르트색 안전모와 외투를 입었다.

뭐, 코 몇 번 킁킁거리는 거로 이 양반이 얌전한 요구르트 아저씨가 아니라는 건 금세 알았지만, 굳이 걸고넘어지진 않았다.

“봄인데 왜 춥냐.”

중고 형이 옷깃을 여미며 말을 이었다.

“왜 보자고 한 거야?”

“에이전트로도 일하시죠? 일 좀 해 볼까 하는데.”

“프리랜서로?”

되묻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두유를 마저 쭉 빨아서 마셨다.

달고 맛있었다.

오늘 어째 당분 섭취량이 과한 것 같기도 하고.

변신 훈련 중에는 식단도 제한을 뒀었다. 고단백 식단을 넘어서 고기를 입에 달고 살았다.

꿈에서 소와 돼지, 닭, 양 따위에게 쫓기는 꿈을 꾸기도 했고 용봉탕도 먹었다.

내 비위가 그리 좋지 않다는 걸 그때 알았다.

갖가지 보양식과 과학이 가미된 식단 파티였다.

나중에는 영양제도 따로 맞았다.

지긋지긋했지.

이제 해소됐으니, 이런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거다.

“두유 하나 더 줄래요?”

“이천 원.”

현금이 없었다.

“계좌 이체해 드릴게요.”

“꼭 해야 한다. 원래 돈거래는 서로 깨끗하게 해야 하는 법이라고.”

말하며 계좌가 적힌 명함을 건네줬다.

<전문 에이전트 김중고

일이 필요하십니까?

성공을 원하십니까?

당신의 곁에 함께하겠습니다. 당신의 성공을 기원합니다.>

이게 앞면이었다.

전화번호와 계좌번호도 적혀 있었다.

뒷면으로 돌려봤다.

<불멸특수대 합동작전 다수

PWAT 작전 고문 경험 다수

발해 그룹 자회사 프레스 경호팀 고문 초청 소수>

명함이 아니라 작은 이력서다.

먹고 살기 위해서 이리 노력해야 한다는 거다.

회사가 전쟁터면, 밖은 지옥이라고 했던가.

물론 지옥에서도 밥 잘 먹고 잘 자는 사람은 있는 법이다.

아, 지옥에서 잘 지내면 악마가 되려나.

적어도 난 잘 지낼 듯싶었다.

이리 당당히 명함을 뿌리고 다니는 양반이다. 믿음을 갖고 물었다.

“프리랜서로 제대로 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쉽지.”

쉬워?

“이력서에 큰 건 하나 새기면 돼.”

중고 형이 말하다 말고 옆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난 그 시선의 끝에서 항공 점퍼를 입고 짧은 머리칼에 번개 모양 스크래치를 넣은 친구를 볼 수 있었다.

눈매가 사나웠고 피부가 지저분했으며, 쉴 새 없이 코를 벌름거리는 친구였다.

“큰 건?”

“큰일을 맡으면 된다는 거지.”

으흠. 그러네, 쉽네.

“일 하나 주선해 보시죠. 요즘 벌이가 빡빡하신 것 같은데.”

내 이름값이면 꽤 괜찮은 일이 들어오지 않을까 싶은데.

“일?”

중고 형이 말하며 요구르트 카트 안에 손을 넣고 이것저것 뒤적였다.

특별한 손님을 위해 특별한 물건을 팔려는 생각이겠거니 했다.

“저 프리로 뛴다니까요.”

“그럼 잘 찾아오셨습니다. 유광익 고객님, 에이전트 수수료는 8%입니다. 절대로 높은 비율이 아닙니다. 8%는 양심적인 비율이죠. 다만, 고객님의 능력이 증명되기 전이니, 처음 하는 일은 에이전트 수수료가 35%입니다. 양해를 구하자면 이게 이름값 없는 사람은 쓰기가 보통 어려운 게 아니라서요. 아, 물론 고객님께서는 요원 시절 유명세가 있으니, 조금 쉽긴 합니다. 다만.”

이 양반 일이라고 생각하니, 말 한번 세차게 잘한다. 어느새 고객님이다.

마저 말하라는 뜻으로 말을 끊고 숨을 들이켜는 중고 형에게 고개를 끄덕여 줬다.

“사람들이 워낙 의심이 많아야죠. 이전에 고객님이 한 일이 과연 회사의 지원 없이도 그럴 수 있었겠느냐, 이런 의심 따위를 한단 말이죠. 그러다 보니 당연히 첫 번째 일을 주선하기가 보통 어려운 게 아니라는 겁니다. 이해하시죠?”

나 꽤 여유가 있다.

재벌 3세이기도 하고 남 사장님한테 뜯은 돈도 있고, 현상금으로 탄 돈도 있고.

150억짜리 아파트값을 제하더라도 받은 60억을 고스란히 통장에 모셔 뒀다.

덕분에 단숨에 은행 VIP가 됐다.

그렇다고 호구처럼 돈을 뜯기는 머저리가 되고 싶다는 건 아니었다.

“10%.”

“네?”

“나랑 같이 일해 봤잖아요. 그리고 목숨 한 번 구해 준 값도 더하고요.”

“아니, 고객님, 그 은행 때 얘기하시는 거면 그 당시, 에, 내 목숨이 위험할 틈은 없었는데요, 이러시면 곤란하죠. 이게 다 일이라…….”

중고 형의 말이 끝나기도 전이다.

번개 스크래치 놈이 땅을 박찼다.

난 놈이 땅을 박차기 전에 먼저 자리를 옮겼다.

훙.

상대는 초능 특수종, 그것도 마약에 중독된 놈이다.

나이프를 든 놈이 냅다 달려들었다.

내 눈이 놈을 쫓았다. 놈의 모습이 끊어진 컷처럼 사라졌다가 나타나며 중고 형의 앞까지 도달했다.

난 예측했기에, 타이밍에 맞춰 상대의 손목을 쥐고 흔들었다.

그거면 충분했다.

휘릭.

달려들던 놈의 손아귀에 있던 칼이 허공을 날았고, 놈의 몸도 같이 날았다.

내 손을 중심으로 다리와 발의 위치가 바뀐 놈의 머리가 바닥에 쿵 하고 떨어졌다.

두피가 찢어졌는지, 피가 흘렀다.

그래도 죽을 정도는 아니다.

“끅, 뭐, 뭔데, 시, 시, 시발.”

말을 더듬는다. 턱 근육이 제어를 벗어났다는 거다.

중독된 약은 근육 이완제를 섞은 종류다.

거기에 메스 마우스(Meth mouth), 잇몸과 치아 상태도 엉망이었다. 급할 때마다 필로폰을 투약한 거겠고.

난 놈의 목 뒤를 가볍게 끊어친 뒤, 전화를 들었다.

“어, 저기, 고객님?”

“약도 봐가면서 팔아야죠. 뭡니까, 이게. 형 나 아니었으면 죽었어요. 여보세요? 경찰서죠?”

놈의 손에 떨어진 나이프가 중고 형 발치에 굴렀다.

“동생, 잠시만. 10%가 뭐야, 우리 사이에 첫 일은 내가 서비스로 해 줘야지, 전화기 내려놓고 얘기하자, 동생.”

참 미워하기 힘든 사람이긴 한데.

일단, 전화는 끊고 집어넣었다.

“약쟁이를 양산할 생각이라면 관두시죠.”

이걸 그냥 놔둘 수는 없지.

“약 팔려고 하는 게 아니야.”

“냄새가 나는데요?”

“아니, 동생이 무슨 변신족이야? 냄새를 맡게?”

정답.

내가 변신족이다.

이 친구가 달려들 걸 어떻게 알았을까.

난 냄새를 맡았다.

세상 만물에는 냄새가 있다.

변신족의 후각은 그 모든 냄새를 분간할 수 있었다.

그리 훈련받은 몸이었다.

요구르트 카트 안에서 나는 마약 냄새.

초능 특수종에게서 풍기는 오라의 향기와 거기에 섞인 약 냄새.

모든 걸 맡았고 분류함과 동시에 상대의 눈길을 느꼈다.

번개 스크래치 친구는 불안감을 보였다.

습격의 전조였다.

그래서 제압했다.

“PWAT 의뢰라고.”

중고 형 말에 진심이 담겼다. 난 팔짱을 낀 채로 생각한 뒤, 말했다.

“요새 목숨 반 개쯤 걸고 일하나 봐요?”

주변에 PWAT 요원의 기척 따윈 없었다.

그러므로, 중고 형의 말이 진짜라면 개별 작전이란 거다.

내 발밑에 쓰러진 특수종 약쟁이 상대로 직접 나선다는 건데.

중고 형은 특수종이 아니다.

조금 전 같은 일이 일어나면 몸 성히 돌아가기 힘들다.

괜히 손가락을 잃은 게 아니라는 거다.

“신고는 하지 말아 줘. PWAT에서도 소수만 참여하는 작전이라, 소란이 일면 곤란하다고.”

“요새 돈 급해요?”

“돈은 언제나 급하지.”

말하며 중고 형이 웃는데, 그 웃음이 영 씁쓸해 보였다.

묻는다고 쉬이 속내를 말할 사람도 아닌지라, 더 묻진 않았다.

다 각자의 사정이 있는 법이겠지.

“일은요?”

“딱 5%, 내가 일은 진짜 깔끔한 거 하나 따올게.”

사수가 말하길 에이전트로서 능력은 이 업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든다고 하니.

“좋아요.”

말이 끝나자마자, 중고 형이 톡으로 연락처를 하나 보냈다.

임 실장이라는 이름이었다.

“내일모레부터야.”

“무슨 일인데요?”

“연예인 경호.”

“……연예인 경호?”

특수대 시절에도 한 번도 안 한 일인데?

“요새 그쪽 업계가 흉흉하다고 하더라고. 실종자도 나오고 사람도 죽고 뭐 난리야.”

“으음.”

못마땅한 티를 조금 내자, 눈을 몇 번 깜빡인 중고 형이 입을 열었다.

“광익 동생, 아까 말했잖아. 동생이 요원으로서는 훌륭했어. 그런데 이쪽 업계에서는 신인이라고. 이런 일부터 하나씩 해서 한 계단씩 밟고 올라가야 하는 거지. 요원 시절이랑은 다르다고. 그리고 아까 말했잖아. 그쪽 요즘 난리라니까, 불특대에서도 조사원을 파견한다고 하던데 이건 뭐 루머일 수도 있고.”

설득력이 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수당은요?”

“하루에 이백오십. 적다고 생각하지 마. 특수종 경호 기본급이니까. 이후 일이 터지면 추가 수당을 딜해 볼 수도 있긴 한데,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하지 말고.”

“그럽시다.”

뭐, 틀린 말은 하나도 없었다.

일단 한 계단씩.

이게 싫었다면 나도 다른 방식을 써야 하는데.

이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리 집으로 가는 길에 팬더 형이 사는 빌라에 들렀다.

60억을 제외한 그동안 번 내 연봉으로 얻어 준 집이다.

팬더 형은 이전 사건으로 재산 전체가 압류당했다.

그게 풀리려면 1년은 걸린단다.

그리고 풀려도 의미도 없었다.

“돈? 다 썼지. 난 날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 남자니까.”

시계나 신발 따위를 샀단다.

재산이 될 만한 건 하나도 없이, 전부 소모품에 투자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었다.

시계는 되팔아서 생활비로 쓰기로 한 뒤, 내가 집을 얻어 줬다.

그런 집이다.

“이리 오너라.”

들어가며 팬더 형을 부르자, 사각팬티 한 장만 걸친 형이 나왔다.

“밥은? 뭐 사 온 건 없고?”

“지나는 길에 들린 겁니다.”

“손을 가볍게 다니는 건 안 좋은 건데.”

이 양반, 데려오고 나니까 왠지 빈대 느낌이 나는 것 같다.

일전에 어머니와 훈련이 끝나고 나왔을 때는 잘 벼린 칼 같더니, 딱 일주일 뒤에 이 상태, 나사 빠진 팬더가 됐다.

“나사를 힘으로 꽂아 버리고 싶네.”

“뭐?”

“아니에요. 일 받아 왔어요.”

“드디어 시작하는 거야?”

난 포부까지는 아니지만, 앞으로 내가 뭘 할지 정도는 말해 줬다.

“네.”

“그래, 일은 뭔데? 인베이더 추격? 일급 범죄자 생포? 아니면 암살? 암살 쪽은 안 하는 게 낫지 않나? 전문 킬러처럼 보이면 곤란하니까.”

이게 요원 출신의 문제일까.

나도 사실 저런 일이 되리라 예상했었는데.

“연예인 경호요.”

끔뻑끔뻑.

팬더 형은 눈을 몇 번 깜빡이더니, 물었다.

“라면 먹을래?”

“됐어요. 집에서 가족이랑 먹을 겁니다.”

“가족 없는 사람 서러워서 살겠나.”

“가족을 만드세요.”

“그게 쉽냐?”

어렵지. 나도 이상형 만나기 되게 어려워서 아직 내 가족을 만드는 건 꿈도 못 꾼다.

“그 연예인 주변이랑 사람들 조사는 해 주세요. 일이니까, 음, 일은 해야죠.”

“그래, 뭐, 매니저랑 대표까지 하면 되려나?”

“요새 그쪽에 일이 터졌다는데 그것도 좀 알아봐 주세요. 에이전트를 써서 이번 계약서는 그쪽에서 만들어 줄 것 같고.”

프리랜서는 생각보다 잡일이 많다.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을 이었다.

“불특대에서 조사한다는 루머가 있다니까 그것도 좀 체크해 주세요.”

“뭐, 일도 아니지.”

맞는 말이었다. 팬더 형한테는 이 모든 게 1시간도 걸리지 않을 일이었다.

그러니까, 라면 먹고 사이다 한 잔 때리고 애니 한 편 보고 푹 잔 다음 일어나서 해도 될 일이었다.

“언제부터?”

“모레부터요.”

일은 이틀 뒤부터였다.

“경호는 해 봤어?”

“아시잖아요. 제 경호 경력, 왕자님이었죠.”

팬더 형은 고개를 끄덕였다.

첫 번째 경호 임무에서 난 왕자를 들고 튀어서 유괴범 소리를 들었다.

뭐, 이번에는 그런 일이 있을 리가 없을 테니.

“안 가?”

현관문 앞에서 얘기를 나눴다. 그 말에 난 도로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갑니다.”

문이 닫히기 전 손잡이를 잡은 팬더 형이 물었다.

“하루에 얼마야?”

“이백오십이요.”

“짜네.”

“요원 때 생각하면 일 못 해요. 일단 일이나 열심히 하죠.”

경호 일정은 총 사흘.

삼 일 뒤에는 단군 그룹 산하 경호팀에서 빈자리를 채운다고 했다.

그러니까 난 단군 그룹 산하 경호팀에서 일정을 맞추지 못해 생긴 틈을 메꾸는 땜빵이었다.

뭐, 상관있나.

돈 주는 일이니, 일단 해야지.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했다.

난 그 한 걸음을 걷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잘 가고.”

“라면만 먹지 마시고 고기 좀 드세요.”

“돈을 줘.”

“이제부터 법시다.”

말하고 밖으로 나섰다. 따뜻한 봄바람이 불었다. 산뜻한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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