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규격 외 혈통 천재-158화 (158/488)

158. 내가 재벌 3세?

“오라버니, 조심.”

마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다.

양아치남이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와 내 발목을 걷어차려 했다.

난 발을 뒤로 물리면서, 기척을 속이고 흘리며 죽였다.

단숨에 불멸의 세 가지 비기를 쓰고 뒤를 잡으려 했다.

꽝!

눈앞에 불이 번쩍했다.

머리가 핑하고 돌았다. 예민한 감각이 내가 맞은 부위를 알렸다.

관자놀이 부근, 순간 머리가 핑 돌았다.

상대의 움직임이 뇌리에 남았다.

짧은 동선을 그리며 횡으로 그은 팔꿈치에 걸린 거다.

맞았다고 느낀 순간, 난 무릎을 치켜세우고 원투를 뻗었다.

충격에 눈앞이 까맸지만, 꼭 눈으로 봐야 상대의 위치를 아는 건 아니었다.

팍! 퍽, 탁!

상대가 무릎을 막으며 잽은 맞았고, 스트레이트도 막았다.

놀라운 반사 신경이었다.

예상해서 막은 게 아니라 맞는 순간 반응해서 막았다.

2차 공격은 없었다.

대신 양아치남의 입이 열렸다.

“뭐야, 얘 어디서 훈련 제대로 받았나 본데요? 누님?”

누님? 뭘까. 엄마의 숨겨 둔 남자일 리는 없고.

미묘하게 풍기는 기세가…….

“인사해라. 작은삼촌이다.”

“……네?”

나한테 삼촌이 있었어?

“이긍낙이다.”

“성함이 특이하시네요. 이 씨예요?”

엄마는 강 씨고 이쪽이 삼촌이면, 이쪽도 강 씨여야 하지 않나?

이복 남매일까.

“어머니가 같은 겁니까?”

“아니, 아버지가 같은데.”

삼촌이란 작자가 생글생글 웃으며 잘도 답했다.

“그, 음.”

“집안 사정이 복잡해. 콩가루 집안이지. 엄마가 말 안 해 주디?”

“네, 안 해 주셨는데요.”

집안 얘기는 단 한 번도 이야기해 주지 않았다.

어머니를 바라봤다.

무뚝뚝하게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할 뿐, 입을 열지 않는다. 농담을 걸 타이밍에 그냥 바라만 본다.

저 표정은 부끄러울 때 짓는 거다.

“나중에 얘기해 줄게. 아직 제 아빠 집 얘기도 다 못 들었어.”

“다 들었는데요.”

보름 동안 탱자탱자 놀면서 뭐 했겠나. 아버지랑 둘이 소주도 나눠 마시고, 양주도 같이 마셨다.

계산은 내가 했다.

아버지는 내가 이제까지 번 액수를 듣곤 지갑을 열지 않으셨다.

현상금으로 번 돈만 해도 상당하니까.

“엄마 집이 클라이막스니까 나중에 알려 줄게, 아들.”

엄마의 말에 삼촌이 말했다.

“무슨 비밀이라고, 단군 그룹 알지?”

안다. 뭐, 좀 유명해야지.

올드 포스는 세계 정부 연합, 즉 한국 정부가 올드 포스 한국 지부가 되는 셈이다.

엑스큐라시는 범국가적 기업 연합이고, 각각의 국가의 대표 기업은 그 연합의 일원이다.

그리고 한국의 대표 기업이 ‘단군 그룹’이다.

전자, 보안, 주문, 보험, 증권, 제조, 숙박업, 각종 특수종 장비 제작 및 공급 등 손을 안 댄 곳이 없다.

계열사만 육십 개가 넘는다.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이자, 전 세계가 인정하는 엑스큐라시의 대표 기업 중 하나.

지금 내가 쓰는 폰도 단군 그룹 계열사에서 만든 거고.

불멸특수대의 장비 일부도 그곳에서 만든 거다.

괜히 정부와 기업이 동급으로 취급되겠나.

말 그대로 정부만큼 힘이 센 곳이니까 그렇다.

즉, 한국의 엑스큐라시는 단군 기업이라고 할 수 있었다.

“우리 아빠가 거기 회장.”

양아치 삼촌이 말했고, 엄마는 그 말에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음?

“음?”

속마음이 그대로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우리 외할아버지가 단군 그룹 회장?

“……내가 재벌 3세?”

부유할 거로 생각은 했지만, 이건 뭔가 어떤 선을 넘어 버린 느낌이었다.

“그게 중요하니?”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올해 생일 선물은 람보르기니 한정판으로 부탁드립니다.”

람보르기니 한정판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한정판이면 비싸고 좋은 거니까 붙여 봤는데.

“어? 내가 타고 온 차 줄까? 오늘 그거 타고 왔는데.”

재벌 클라스 보소. 그냥 준대.

“네.”

숨도 안 쉬고 답했다.

“어딜 줘. 애 버릇 나빠져.”

이게 재벌 2세들의 대화겠지.

대략 십억쯤 하는 차를 버릇 나빠진다고 주지 말라는 엄마와.

“뭘 이 정도로 버릇이 나빠져.”

이 정도로 무슨 버릇이 나빠지냐고 말하는 삼촌.

처음 봤지만, 난 삼촌이 좋아졌다.

“삼촌, 사랑해요.”

그 마음을 고백했고.

“……애가 혼혈이라 상태가 좀 그래?”

옐로우 헤어 엉클은 어머니를 향해 조심스레 물었다.

“안 이상해. 나 닮았어.”

어머니는 그 말을 일축했다.

“훈련 안 해?”

폰을 들여다보던 과외 선생님이 말했다.

표정을 보니 하한가다.

주식에 빠져 사는 사람이니, 상한가 치는 날에는 기분이 좋고 하한가 치면 훈련이 고돼진다.

사실 상한가든, 하한가든, 훈련은 항상 고됐다.

뭐, 그렇다고 소화 못 할 정도는 아니니까.

“마리야.”

어머니의 말에 마리가 홀로그램 영사기를 켰다.

거창하게도 준비하셨다.

홀로그램 영사기는 간단한 표를 투사했다.

‘유광익 변신 계획표’라고 쓰인 게 보였다.

“누님이 만들었어요? 거, 어지간하면 돈 주고 맡기지. 디자인이 저게 뭡니까?”

딱 보니까, 삼촌은 금강석 수저를 물고 태어나서 평생 눈치 없이 살아온 타입 같았다.

“내가 만들었으니까 좀 닥치지?”

옆에서 과외 선생이 살기를 뿌렸다.

“아, 누님이 만들었구나.”

죄다 누님이로군. 삼촌은 넉살이 좋아 보였다.

내 훈련을 어머니가 직접 하겠다고 했는데, 혼자서 하실 작정은 아니었나 보다.

“6개월이면 충분할 것 같다.”

어머니가 말했다.

계획표는 틈이 없었다.

자는 시간, 먹는 시간을 제외하면 오롯이 뭔가를 했다.

살기를 다루는 훈련부터 시작해서 변신족의 비전을 배우는 과정이다.

“쉬는 날이 없는데요?”

“과정을 재주껏 줄여봐. 그럼 쉬는 날이 생길 거야.”

선생님이 말했다.

삼촌은 계획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구시대적인 발상이긴 한데, 효율만 따지면 나쁘지 않지. 본능 컨트롤 훈련은 누님이 하면 되고. 난 이쪽 맡을까?”

삼촌이 말하며 계획 목표 중 하나를 짚었다.

살기 컨트롤이었다.

“재밌겠네.”

삼촌이 말하며 담배를 꼬나물자, 과외 선생이 삼촌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오랜만에 봐서 감 없니?”

“금연이에요? 몰랐지.”

우리 과외 선생님도 한가락 했나 보다.

재벌 2세가 꼼짝도 못 하는 걸 보니.

“그럼 시작하자.”

어머니가 말했다. 기다리던 시간이었다.

람보르기니고 뭐고.

일단 내 몸에 담긴 변신족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할 시간이다.

마리가 제 몸만 한 플라스틱 통을 들고 왔다.

뚜껑이 없어서 안이 훤히 보였다.

찍찍찍.

그 안에 흰 생쥐 한 마리가 눈을 굴리며 요리조리 뛰는 게 보였다.

“테스트 좀 해 보자. 쟤 멈출 수 있니?”

어머니가 물었다.

“물론이죠.”

난 답함과 동시에 손을 쏙 집어넣어 쥐의 꼬리를 잡았다.

변신족의 운동 신경이다. 이 정도는 일도 아니다.

“……누님, 조카 머리가 좀 나빠요?”

그걸 본 삼촌이 중얼거렸고.

“아들, 손대지 말고.”

어머니는 삼촌의 말을 무시하고 나에게 말했다.

아, 무형의 압력을 넣어라?

과외 선생님한테 배울 때는 해 본 적 없었다.

그리 어려울 것 같진 않았다.

그동안 지나온 전장의 경험과 최근에 마주한 악어의 살기, 더불어 팬더 대리의 살기까지 느꼈고 지켜봤다.

교보재가 많았다.

훅, 아랫배 깊은 곳에서부터 한줄기 뜨거운 기운이 솟아오르는 기분이었다.

살기란 곧 해치겠다는 마음, 형태 없는 기운이다.

무형의 힘으로 현실에 영향을 끼치려면 내 안에 무엇을 담아야 할까.

그것은 곧 의지, 곧 실현되리라 믿게 만드는 기세다.

움직이면 죽인다.

쥐를 바라보며 생각했고 투영했다.

기척 속이기와 비슷한 면이 있었다.

불멸이 근육의 움직임, 자세의 변화 등으로 자극한다면.

변신은 말 그대로 무시무시한 눈빛과 기세로 행했다.

쥐가 멈췄다.

“……소리도 안 내고?”

오늘 삼촌은 놀라기 전문인 것 같다.

“아, 소리 내도 되는 거였어요?”

내가 되물었다.

“마리야, 열 마리.”

마리가 쥐를 더 풀었다.

총 열 마리다. 활발하게 돌아다니는 놈들이 보였다.

“멈춰 세워 봐.”

어머니가 말했고.

소리를 내도 된다기에 악어의 그것을 따왔다.

쥐를 보고 낮지만, 울리는 음성을 담아 하울링을 뱉었다.

“그르르릉.”

둥- 하며 플라스틱 통이 떨렸고, 활발하게 움직이던 생쥐 열 마리가 모두 인형처럼 멈췄다.

“누구한테 배웠냐?”

삼촌이 물었다.

“안 배웠는데요.”

그냥 하니까 되던데.

대수롭지 않게 답하자.

“얘, 물건이네.”

삼촌이 감탄했다. 난 이게 감탄한 일인가 싶긴 했다.

순혈 변신족이면 다들 이 정도 하는 거 아니었나 싶었다.

“다음.”

어머니는 계획표를 치웠다.

그러더니 곧장 훈련을 시작했다.

그러니까 어머니, 통나무 선생, 삼촌이 만든 몸만들기 좋은 훈련이라는데.

내 입장에서는 몸을 혹사하는 무지막지한 단련의 시간이었다.

“불멸이니까 회복이 빠르다 이거지? 그럼 더 굴려도 된다는 거고.”

삼촌은 신이 났고.

“아들, 너무 힘들면 말해.”

어머니는 날 걱정했다.

“지금 힘든데요.”

“아직 괜찮네. 말투 멀쩡하고.”

“지, 후우, 그음 힘, 너무, 힘들어요.”

다시 말했다.

“우리 아들 연기자 안 한 게 얼마나 다행이니. 배우 한다고 했으면 진짜 사지를 부러뜨려서라도 말려야 했을 테니까, 얼마나 아팠겠니?”

보통 도시락 싸 들고 다니며 말려야 하지 않습니까?

“아직 할 만하네요.”

어머니 말에 담긴 기세가 예사롭지 않기에 말을 바꿨다.

“오라버니, 힘내세요. 마리가 응원할게요.”

마리는 가끔 대련도 해 줬지만, 기본적으론 응원조였다.

그런데 얘는 요새 갑자기 자기를 3인칭으로 부른다. 그게 또 어색하지 않았다. 솔직히 많이 귀여웠다.

“나 불멸자거든, 근데 온몸의 근육이 안 움직여. 이건 오버 트레이닝 정도가 아니라, 오버오버오버오버오버오버 트레이닝이야.”

마리는 내가 불만을 토로하면 들어주기도 했다.

“씻기 힘드시죠? 마리가 씻겨 드릴까요?”

그리고 이런 곤란한 제안을 하기도 했고.

“아니, 괜찮아. 혼자 씻을게.”

너, 그거 위험 발언이다.

통나무 선생님은 상한가를 치는 날에는 부드러운 여자였다.

“할 수 있어. 유광익, 난 널 그렇게 키우지 않았다.”

키우긴 부모님이 키웠는데요.

“더 해, 할 수 있어. 널 믿는다. 끝나면 안아 줄게.”

필요 없는 보상이었다.

하한가를 치는 날에는 조금 다른 반응이었다.

“겨우? 이게 전부? 하기 싫으면 때려쳐. 안 할 거면 관두라고 남의 시간 낭비하게 하지 마.”

“오늘 훈련을 복기하고 너 자신의 허술함을 반성해라.”

까칠함의 신이다.

어쨌든 셋이 돌아가며 날 굴렸다.

그런 와중에도, 난 어떻게든 훈련 일정을 앞당겨 휴가를 얻어 내기도 했다.

적어도 주에 한 번은 쉬어야 했다.

휴식의 의미도 있지만, 할 건 또 해야 하니까.

그렇게 얻은 휴일이었다.

* * *

“누나.”

난 퇴사했다. 그러므로 이제 사수는 그저 아는 누나일 뿐이었다.

카페 구석에 앉은 채로 정아 누나는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이네.”

“회사는 잘 돌아가요?”

“소문만 들으면 곧 망할 것 같아.”

“네?”

회사가 왜 망해.

사장이 나한테 얌전히 장비도 넘기고 퇴직금도 주고 아파트도 사 줬는데?

“아더 사이드에서 퇴출당했고 지원금 끊기고 은행 대출 막히고. 외국 자본 유입도 막혔다고 하던데.”

뭘까, 이상하게 전부 나랑 연관이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그런데 용케 저한테 아파트를 해 줬네요.”

남명진 사장을 뜯어먹은 내 일화는 이미 알 사람은 다 알았다.

“사장이 자기 기어도 팔고 개인 자산 다 넘겨서 지금 원룸 산다는 소문이 돌더라.”

소문에 무관심한 정아 누나가 알 정도면 사내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터였다.

회사 운영 좀 똑바로 하시지.

어떻게 했길래 이 모양인가.

물론 예의상 물은 질문이었다. 회사 따위 알 게 뭐람.

난 정아 누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입술을 달싹였다.

얼굴이나 보고 지난날을 회상이나 하자고 부른 건 아니었다.

“어떻게 됐어요?”

팀장은 회복 중이고, 사수는 그사이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돼서 보안 1팀의 미운 오리 새끼가 됐다.

이건 요한 형을 통해서 이미 알고 있는 거고 내가 알고 싶은 건 다른 거였다.

“수감됐지.”

이동훈, 팬더 대리의 거취였다.

실험체의 몸으로 신분을 숨기고 입사한 죄였다.

화림 습격 사건.

뉴스에 연일 테러 단체의 습격이라는 기사가 나왔던 이 대규모 테러 사건 또한 첩자 하나로 시작된 일이었다.

최미남 대리.

일이 끝나고 찾았지만, 이미 종적을 감춘 뒤였다.

마윤은 어머니 손에 쥐어 터져서 특수종 감옥에 수감됐고.

로즈는 지독한 저주에 걸려서 사경을 헤맨다고 들었다.

혜민이가 직접 말해 준 이야기다. 처음 그 저주를 손댄 장본인으로, 몇 번 그쪽 일에 나섰다고 했다.

지금은 관두고 백조 생활을 영위하고 있고.

툭하면 연락해서 데이트하자는 통에 곤란할 따름이다.

하여간,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동훈 대리는 다시는 빛을 못 볼 거라는 말을 들었고.

난 사수와 약속을 잡았다.

“애초에 어떻게 회사에 들어간 거예요?”

내가 물었다.

사수는 날 빤히 보더니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빨아 꿀꺽 삼켰다.

차가운 액체가 목울대를 통해 넘어가는 게 보였다.

“얘기하자면 길어. 우리 팀장, 왜 진급 못 했을까?”

“성격이 개차반이라서요.”

1초도 주저 없이 답했다.

정답이죠?

눈으로 묻자, 사수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얼음 공주의 표정이 이 정도로 변한 거면 빵 터진 거랑 다름없었다.

“나랑 이동훈 대리 때문이지. 반은. 아, 나머지 반은 네 의견이 맞고.”

봐, 내 말이 맞잖아.

나머지 반의 이유도 이해가 간다.

그래서 기회라고 생각하는 거고.

“팀장 정신은 차렸어요?”

“아직.”

봐, 기회라니까.

그러니까 인재 영입의 기회였다.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