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규격 외 혈통 천재-157화 (157/488)

157. 변신족 훈련을 하겠다.

유연호는 사흘을 푹 쉬었다.

먹고 마시고 아내와 시간을 보냈다.

돈독한 시간이었다.

자신이 하는 일을 듣고서 아내의 안색이 변하긴 했지만.

“믿어요. 절 걱정시킬 일은 하지 않을 거죠?”

“최선을 다할게.”

더는 아내에게 거짓을 말할 수 없었다.

위험이 동반된 일이었다.

그 외 기밀 사항이 아닌 일은 전부 말해 주기로 했다.

아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마리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진짜 가족이라는 생각으로 그런 건 아니었다.

다만, 아내가 그 아이를 바라보는 눈빛을 봤다.

담담하지만, 그 안에 숨은 안쓰러움이 느껴졌다.

‘실험체라.’

그런 것치고는 예의가 바르다.

“심부름은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안녕히 주무셨나요? 물은 여기.”

“과일 드세요.”

싹싹했다.

누구보다 먼저 잠자리에서 일어나고 설거지를 하겠다고 나선다. 물론 하라고 놔둘 수는 없었다.

그래서 아들을 시켰다.

아들은 툴툴거리면서도 할 일은 했다.

넷이서 같이 TV를 보며 웃었다.

영화도 봤다.

아이는 혹여 방해가 될까 그런지 눈치를 봤다.

그걸 보니 자신도 가슴이 찌릿했다.

아이의 태도에서 버림받고 싶지 않다는 느낌이 물씬 들었다.

‘애가 참.’

불쌍하고 안쓰럽다.

아직은 모르겠다.

이 아이가 진짜 가족이 될는지는.

다만, 아들이 데려온 아이였고 책임지기로 했으며 아내가 원했기에, 그냥 뒀다.

지내다 보면 답이 나오리라 생각했다.

어떤 일은 시간이 필요한 법이니까.

그리고 또 어떤 일은 지금 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었다.

출근 직후, 유연호는 곧바로 행정안전부 장관을 만나러 갔다.

“어떻게, 내가 뭘 해 줄까? 화림 지워 줄까?”

의자를 박차고 일어난 장관이 먼저 말했다.

“말만 해. 원하는 대로 싹 해 줄게.”

유연호는 응접실 한쪽에 있는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커피 한잔하시면서 말씀하시죠.”

“아, 그렇지. 내가 정신이 없네, 김 비서, 커피 두 잔.”

“네, 장관님.”

곧 머리를 단정히 빗어넘긴 젊은 남자가 커피 두 잔을 내왔다.

“어떻게 할까? 남명진 직위 해제? 어디 감방에 처박아 줘?”

아무리 장관이라 해도 남명진 정도 되는 거물을 감방에 처넣을 수는 없다.

그렇게 하려면 자기도 커리어를 걸어야 한다.

유연호도 알고 장관도 아는 사실이다.

다만, 이렇게 말하는 이유가 있을 뿐.

“사직서 안 냅니다.”

“그래. 우리 유 팀장 관두면 누가 그 팀을 관리하나. 피닉스 애들 알잖아? 다 꼴통이야. 내가 유 팀장만 믿는 거 알잖아.”

숨도 안 쉬고 장관이 답했다.

본래는 조금 공적인 사이였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고 공적이 쌓이다 보니 관계가 조금씩 비틀렸다.

행정안전부 특임대, 그중에서도 피닉스팀이 가진 힘이 그렇게 만들었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작전 수행 능력과 더불어 유연호의 존재 덕분이었다.

지금 당장 망명을 요청해도 어떤 나라든 두 팔 벌려 환영할 것이고.

세계 정부 연합 본부에서 매해 러브콜이 오는 사람이었다.

식탁 위에 팔꿈치를 얹은 유연호가 입을 열었다.

“직위 해제시켜도 몇 달 지나면 제 자리를 찾을 사람입니다.”

“내가 그렇게 둘 것 같아?”

유연호가 빤히 장관을 바라봤다.

“최선을 다해서 막겠다는 거지.”

장관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막는다고 막힐까.

제 아내를 위험에 빠뜨린 작자다.

성질 같아서는 그대로 갈아 버리고 싶다.

그래도 참았다. 아들이 관련된 일이었다.

유연호는 생각을 달리했다.

자신을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경고장만 날리기로 했다.

“앞으로 3년간, 지원 금지.”

모든 행정안전부와 관련된 공기업 및 부서는 나라에서 지원금을 받는다.

당연했다.

그게 아니라면 운영 비용이 충당되지 않는다.

보안팀이 연예인 경호, 재벌 경호 따위로 버는 건 푼돈에 불과할 뿐이다.

“그건 당연하지, 한 5년 할까?”

“그리고 아더 사이드 출입 제한 3년.”

“어? 그것도?”

아더 사이드에서 나오는 자원은 행정안전부가 관리한다. 여기서 들어가지 말라고 하면 못 들어간다는 거다.

“그래, 내가 그거까지는 할 수 있지.”

“당연히 인력 지원도 막습니다. 3년간.”

“인력도? 그래, 알겠어. 그 정도는 해야지.”

후룩, 장관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목이 타는 거로 보였다.

“그리고 남명진 사장한테 제 이름을 남겨 주십시오.”

“이름을?”

잠시 유연호를 바라보던 장관이 억지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약속한다. 유 팀장.”

회사를 위해서 그렇게 했다면, 회사 자체에 타격을 주는 거로 경고장을 날리겠다는 의미였다.

* * *

“오랜만입니다. 누님.”

강슬혜는 지난 이십 년간 한 번도 먼저 전화를 건 적이 없는 상대를 향해 말했다.

“잘 지냈지?”

“막내에게 간간이 소식은 들었습니다.”

“우리 사이의 긴 이야기는 필요 없을 것 같고, 부탁 하나 하자.”

“돌아오실 겁니까?”

“아니.”

“그럼 말씀하십시오.”

딱딱하고 차가운 동생이다.

그래도 혈육이고 피붙이라는 건 변함이 없다.

“회사 자금줄 하나 막아 줘.”

아들은 배고프다는 핑계로 돌아섰다.

정이 많은 아들이다.

그래도 제가 속해 있던 곳이라고 쉬이 넘어갔을 것이다.

남편이 나서지도 않을 것이다. 남편 성격상,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그냥 넘어갈지도 몰랐다.

그래서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자신을 노린 건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제 아들을 미끼 삼은 작자다.

그냥 놔둘 수 없었다.

쫓아가서 주먹을 날린 거? 그건 화풀이다.

지금부터는 어른의 문제였다.

당한 사람이 가만히 있으면 그 사람을 호구로 보는 세상이다. 강슬혜는 아들을 호구로 만들 생각이 없었다.

“어딥니까?”

“화림 정보 통신.”

“거기가 어딘 줄은 알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회사는 자금이 있어야 돌아간다.

그리고 강슬혜의 친정은 그 자금줄의 핵심을 틀어쥔 가문이었다.

적어도 국내에서 강슬혜의 가문을 무시하고 사업을 영위할 곳은 없다.

“불멸특수대.”

“눈 가리고 귀 가리고 살고 계신 건 아니었군요.”

“눈 가리고 귀 가려도 눈앞에서 덤비는 놈이 누구인지 냄새는 나니까.”

변신족의 후각은 탁월하다. 그걸 빗대어 한 말이다.

“악취였나 보군요.”

“불쾌한 냄새였지.”

목숨의 위협은 없었다.

꼴랑 불멸자 몇 보낸 거로 자신에게 위협을 가할 수는 없다.

프로메테우스의 크로커다일이란 놈이 회사를 습격했다지만, 아들은 이겨 냈다.

그래도 불쾌함은 남았다.

“알겠습니다.”

“최소 3년, 동결해 줘.”

“알고 계시겠지만, 우리가 막아도 정부 지원이 있을 겁니다.”

“그래도 골치는 아프겠지.”

은행 및 기타 금융권, 조직적인 기업의 협력 거부는 골치 아픈 정도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이유를 물어도 됩니까?”

“알고 싶어?”

“아니요. 그래도 막내는 가끔 만나 주시죠. 애가 누님을 많이 찾습니다.”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짧은 침묵 뒤에 강슬혜는 답했다.

“그래.”

막내를 만난다는 건 다시 본가와 연을 잇는다는 걸 의미했다.

그래야 했다. 그러했기에 긍정의 답을 내놨다.

아들은 타고난 변신의 힘을 이었다.

그걸 놀릴 수는 없었다.

적어도 어디 가서 맞고 다니게 둘 수는 없었으니까.

그러려면 친정의 조력이 필요할 것이다.

세상은 혼자 사는 게 아니니까.

“강녕하시기 바랍니다.”

“너도, 아버지한테 안부도 전해 주고.”

“……그러죠.”

이번에는 동생이 뜸 들이다 답했다.

자신과 아버지 사이가 안 좋은 건 가문 전체가 아는 사실이었다.

괜히 한숨이 나왔다.

그래도 금세 털고 일어났다.

골치 아픈 일은 한쪽으로 던져 두는 게 편한 법이다.

“후우, 이제 날씨가 제법 춥네요.”

아들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며 말했다.

새삼 달라 보이는 아들이다.

‘불멸과 변신의 피가 섞였다고?’

그런 존재가 이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적어도 자신이 아는 한은 없다.

괴물이 된 실험체도 아니고.

그렇다고 한쪽에 편중되어서 망가진 혼혈도 아니다.

‘신이 도우셨지.’

남편도 자신도 몰랐기에 아이를 만들었다.

어젯밤, 남편에게서 불멸의 혈통을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혈통도 얘기했다.

순혈 불멸, 순혈 변신.

그냥 순혈이 아니다. 각기, 가문의 피를 잇는 순혈이다.

아들은 그런 두 개의 혈통을 이은 혼혈이었다.

“엄마, 저 부탁이 있는데요.”

그런 아들이 입을 열었다.

* * *

사흘, 쉬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세상에 악어 같은 놈이 몇이나 될까?

팬더 대리 같은 사람은?

시발 팀장 같은 인간은?

다른 특수종이 본다면 혀를 내둘렀겠지만, 난 내 부족함을 느꼈다.

더 할 수 있으니까 느끼는 부족함이다.

불멸로서의 소양과 능력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난 아직 내 변신족으로서의 능력을 개화하지 못했다.

정확히는 변신조차도 안 했다.

그래서 어머니께 말했다.

“그, 이전에 과외 선생님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왜?”

“제대로 훈련받아 보고 싶어서요.”

“변신족 훈련?”

“네.”

어머니는 잠시 날 바라보더니 답하셨다.

“내가 더 나을 거야.”

“아니요. 전 선생님이 더 좋습니다.”

“엄마랑 하는 게 싫니?”

“……좋습니다.”

“그럼?”

“그냥 선생님이 더 잘하시지 않을까요? 엄마는 이제까지 변신족으로 사신 게 아니니까.”

어머니는 주부로서 살았다. 제 피를 숨기고 살았다는 거다.

흔히 말하는 특수종 은둔자 중 하나다.

가진 바 능력을 활용하는 거라면 어머니가 아니라 과외 선생이 더 적합…….

“엄마 몸 만들고 감 찾는데 보름, 보름 뒤부터 시작하자.”

“네?”

“그렇게 알고 준비해.”

“네?”

어머니가 멀뚱히 날 바라봤다.

“넵.”

반사적으로 대답의 텐션을 바꿨다.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그동안 어머니의 참된 교육 현장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쳤다.

“이론 수업은 아니겠죠?”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해 물으니.

“말보다는 몸으로 얘기하는 시간이겠지.”

어머니가 끈을 싹둑 잘랐다.

어쩔 수 없다.

앞으로 이 세계에서 살려면 적어도 내가 가진 피의 힘만은 제대로 활용해야 할 테니.

“잘 부탁합니다.”

“역시 엄마랑 하는 게 싫은 거니? 싫은 거면 말해.”

여기서 싫다고 얘기하는 건, 그야말로 죽여 달라고 고사를 지내는 수준이었다.

“어머니가 봐주신다고 하니, 소자 기쁨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찌푸린 미간은 다리미로 펴 줄까? 주름졌니?”

“아니요. 아닌데요.”

억지웃음을 짓고 방으로 피신했다.

어머니가 뒤에서 싫으면 말해도 된다고 거듭 말씀하셨다.

난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니 갖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그중 하나다. 남명진 사장이 떠올랐다.

약점 제대로 잡아 둔 거겠지?

아파트와 돈이 중요한 게 아니다.

불멸특수대 지부를 책임지는 사장이 나에게 빚이 있다는 게 중요한 거지.

그가 한 일에 화를 내고 들이받으면 남는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럼?

나중을 위해 이걸 킵해 두면 어떨까?

아버지, 어머니께는 말하지 않았지만, 약점을 잡으면 후일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이었다.

띠링.

폰이 울렸다. 알이었다.

[십 세] 우리 누나랑 결혼할래?

우리 십 세가 마약을 한 사발 잡쉈나.

[나] 갑자기요?

[십 세] 얘기 들었어. 이게 다 흙수저 물고 태어나서 그런 거잖아? 이번 일도 가만히 놔두지 않을 거지만, 애초에 신분 상승을 하면 누가 광익을 건드리는 일 없을 테니까.

[나] 이번 일?

[십 세] 화림 사장.

정보통이 대단한 건지, 아니면 이번 일에 보안이 허술한 건지.

어떻게 왕자의 귀까지 들어간 걸까.

[십 세] 광익, 내가 말했잖아. 무슨 일 생기면 말하라고, 그런데 왜 말을 안 해? 내가 아직 왕자라 그래? 딱 3년만 기다려. 내가 이 나라 먹는다. 그럼 되겠어?

되긴 뭐가 되냐.

[나]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합니다. 알은 알 앞가림해야죠.

[십 세] 우리 사이에 네 일, 내 일이 어디 있어?

우리가 무슨 사이인데.

[십 세] 하여간 절대 용서 안 해. 다친 데는 없지? 그리고 우리 누나 예뻐.

나 불멸자다. 다쳐도 낫는다.

그리고 아무리 예뻐도 국제결혼은 아직 생각 없고.

[나] 아주 건강합니다. 선 안 봐요. 전 연애결혼 할 겁니다.

[십 세] 좋아. 나도 건강해. 결혼은 그래, 천천히 생각해 봐.

[나] 네에네에

[십 세] 귀찮아하는 것 같은데?

감은 좋아서는.

[나] 아닙니다.

[십 세] 한국에서 살기 힘들면 언제든 말해.

[나] 전 한국이 좋습니다.

대강 답했다. 십 세는 그 뒤에도 미주알고주알 떠들었다.

최근에 자신의 입지가 상승했고, 아바마마가 보고 싶다는 얘기가 오갔다.

목숨의 위협을 받긴 하는데 잘 이겨 내고 있다고도 했다.

잘 달래고 잤다.

꿈에서 남명진 사장이 재갈을 물고 마차를 끌었고, 난 그 마차에 올라 채찍을 휘둘렀다.

개꿈이었다.

보름은 금세 지나갔고, 어머니는 이전 과외 선생님 훈련장으로 날 불렀다.

그곳에는 어머니와 통나무 선생님, 마리와 처음 보는 남자가 있었다.

“니가 광익이구나?”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양아치처럼 보이는 남자였다.

그리고 변신족이었다.

야성을 숨기지 않고 내세우는 게 보통내기는 아니었다.

첫 대면에서 그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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