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 배고파서요.
어머니의 주먹을 맞은 사장이 피를 토하고.
사장 비서 둘이 그 움직임에 반응했다.
“쉿.”
그걸 아버지가 막았다.
아버지도 화가 단단히 나셨는지, 둘의 머리에 총구를 겨눴다.
양손에 권총을 들고 겨누는 모습이 더없이 익숙해 보였다.
피닉스팀이라고 하셨으니.
나는 몰랐지만, 아버지는 잘나가는 능력자였다.
하긴, 고위 공무원치고도 우리 집은 부유한 편이긴 했지.
금수저까진 아니지만, 그래도 은수저 정도는 물고 태어났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했다.
어머니 쪽, 그러니까 친정이라고 해야 하나?
거기도 만만치 않게 부유한 거겠지?
생일 때마다 축하 선물이라며 기본 백에서 이백 정도씩 용돈을 줬다.
당연히 부유할 것이다.
쩡.
어머니는 사장을 죽일 셈일까.
막 일어난 사장의 어깨 위로 어머니의 발뒤꿈치가 내려앉았다.
동작은 단순하고 움직임은 가벼웠지만, 파괴력은 충분했다.
가벼운 발걸음에 이은 무게 중심 이동, 정확한 동작으로 힘을 전달했다.
어깨뼈가 부서지는 걸 넘어서 쪼개졌다.
딱 두 방.
그것만으로 전투 불능을 넘어 개기지도 못할 수준으로 만들었다.
지금 몸 놀리는 걸 보니, 어머니라면 악어 놈도 뚝딱 때려잡지 않았을까 싶다.
뭐, 싸움은 붙어 봐야 아는 거긴 하지만.
물론 나도 악어 새끼를 잡을 수 있었다.
악어가 떠난 뒤에 생각한 건데, 작정하고 싸운다면 질 것 같진 않았다.
어머니가 사장을 쥐어패는 걸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게 의미가 있을까?
자연스레 시선이 돌아갔다.
뚫린 벽이 보였고, 부서진 건물 잔해가 보였다.
팔이 잘린 동료 요원이 보였고, 날 알아보고 반가움에 눈인사를 하다가 우리 어머니를 보곤 누구냐며 필사적으로 묻는 요한 형도 보였다.
입 모양으로 귀태 형은 어디 있냐고 묻자.
요한 형이 손을 들어 제 목 치는 시늉을 했다.
당했다는 소리다.
그동안 미호 따라잡는다고 죽어라 노력한 귀태 형이다.
그런데 어쩌다가 그리 갔나.
뭐, 죽지는 않았겠지.
불멸자이니 회복실 어디 구석에 짱박혀 있을 거다.
내가 매일 놀려서 그렇지, 귀태 형도 혼혈 중에서는 에이스였다.
순혈의 피에 기대지 않고 화림의 방식을 몸에 익힌 그런 요원.
상대가 나빠서 당했을 것이다.
생각의 와중에 무심히 눈을 돌리는 사이다.
“아들.”
“네?”
어머니가 어느새 사장 구타를 멈추고 내 앞에 섰다.
감정이 실리지 않은, 정확히는 속내를 숨긴 두 눈이다.
“사람을 죽이는 게 행복했니?”
“아뇨.”
“사람이 죽어 가는 걸 보는 게 행복했니?”
“아뇨.”
“죽고 죽이는 게 즐겁니?”
“아뇨.”
내가 이런 전장에 섰다는 걸 어머니에게 말하지 못했었다.
어머니가 그걸 탓하셔도 할 말이 없었다.
“싸우는 게 즐겁니?”
“음, 그건 적당히요?”
아마도 변신족의 본능이겠지.
호랑이 가면을 썼을 때나 그 이전과 이후의 전투에서 난 가끔 본능이 이성을 누르는 걸 느끼곤 했다.
어머니는 사장을 한 번 보고 아버지를 한 번 바라보고 다시 날 바라봤다.
“계속할 거니?”
“네.”
이 말에는 추호의 망설임도 없었다.
계속할 거다.
애초에 그러기 위해 이곳에서 일했다. 오롯이 돈만 보고 들어온 게 아니다.
물론 복지 팔만대장경과 연봉도 일조하긴 했다. 난 무임금노동과 자원봉사를 원한 게 아니니까.
잘 먹고 잘살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된다.
꼭 모든 걸 희생하고 포기할 필요는 없다.
난 그리 생각한다.
배우고 익혀 내 세상을 위해 싸운다. 그게 내 삶이 될 것이다.
그러니 특수종의 세상에서 살 것이다.
미친 자들의 세상에서 난 더 확실히 미친 짓을 할 생각이다.
“실수다. 계산 착오였어.”
남명진 사장이 말했다.
몸이 벽에 반쯤 파묻힌 채였다.
어머니를 노린 건 테러 단체.
상황을 이리 만든 건 남명진.
아버지도 어머니도 화가 잔뜩 난 모습이었다.
“실수 한 번으로 나락으로 떨어지는 게 어떤 건지는 잘 알 텐데.”
아버지가 나직이 말했다.
조용하고 감정이 드러나지 않기에 더 살벌한 어투다.
아버지의 말에 무슨 힘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 말에 남 사장의 반응이 달랐다.
“용서하게.”
저자세다.
사장이 저런 자세를 보일 줄은 몰랐다.
그만큼 아버지 힘이 대단한 걸까?
피닉스팀이란 게 그런 건가?
사장과 눈이 마주쳤다.
저 작자는 왜 그랬을까?
왜 내 정보를 팔았을까?
박살 난 외벽 구멍에서 달빛이 스며들었다.
그걸 멍하니 보고 있자니 배가 고팠다.
사장이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뭐, 이유가 있었겠지.
화도 나고 따지자면 한도 끝도 없다.
그렇다고 죽이고 싶지도 않고.
진저리가 난다. 복잡한 정치 및 사장의 속내 따위는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걸 알아야 그에 맞는 대응을 할 텐데, 만사가 다 귀찮았고 상대하기 싫었다.
그리고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자꾸 배가 고팠다.
절로 김치찌개 생각이 났다.
제육볶음도 먹고 싶네.
어머니가 커다란 웍에 목살 십 인분 정도 넣고 화끈하게 불맛 넣어서 해 주는 그 제육.
절로 침이 고였다.
격렬한 전투 후에 잘 못 챙겨 먹긴 했지.
“장관이 여길 지운다고 해도 할 말은 없을 겁니다. 인정하십니까?”
아버지는 무슨 암행어사 같았다.
사장은 죄지은 변 사또 같았고.
다만, 춘향이 역할을 할 어머니는 변 사또를 직접 두들겨 팰 육체파였다.
아버지와 사장이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둘 사이에도 역사가 있는 듯했다.
내 알 바는 아니었다.
그걸 보며 내가 입을 열었다.
“엄마.”
“왜?”
“김치찌개랑 제육볶음 먹고 싶어요.”
“응?”
“주방은 멀쩡하죠?”
어머니가 한바탕 난리를 쳤다면 집안 꼴이 엉망일 것이다.
“멀쩡하지. 아들 배고파?”
“네, 많이요. 마리도 불러서 같이 먹어요. 아, 밖에 혜민이도 있어요. 걔가 마법사래요. 세상에 참 인재가 없죠?”
사장은 정치적인 인간이다.
나도 그걸 안다.
날 옹호한 것도 이용하기 위해서였을 거고.
정치, 자신의 위치, 이득과 손해, 적과의 거래.
복잡한 일들의 결론으로 그런 짓을 했을 거다.
난 그 복잡함에 섞이고 싶지 않았다.
실수라 말하고 변명이라 하는 것들을 듣고 싶지도 않았다.
이 빛은 지금이 아니라 나중에 천천히 받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밥을 먹고 싶다.
“혜민이가?”
“네, 놀랐죠?”
“걔, 음, 공부하고는 담쌓지 않았니?”
“공부 머리랑 주문 머리는 다른 건가 봐요.”
“그럴지도 모르지.”
변신족인 어머니였기에 주문 세계 따위는 잘 모르는 것 같았다.
“밥은요?”
“지금?”
“네. 지금.”
배고프다. 매우 배가 고팠다.
쓴 에너지에 비해 먹은 게 너무 적어 위장이 쪼그라드는 기분이었다.
“찌개에 고기 많이 넣고. 제육에는 양배추 넣어서, 안 맵게.”
“음.”
어머니가 장내를 돌아봤다. 특히나 사장을 눈여겨봤다.
“그냥 가고 싶니?”
“네.”
복잡한 정치를 펼친 사장 따위는 평생 저렇게 살겠지.
뭐, 난 그렇게 안 살 거다. 그거면 되지 않나.
“여보? 광익아?”
“같이 가요. 아버지.”
이건 어쩌고? 그런 표정으로 아버지가 사장과 나머지를 둘러봤다.
다들 사형 선고를 기다리는 사형수 같은 눈이었다.
뭐, 이게 무슨 상황인지 전혀 모르겠다는 요한 형 같은 사람도 많았다.
난 사장님 앞으로 다가갔다.
“저 퇴근할게요.”
“……야근 수당은 넉넉히 챙겨 주도록 하겠다.”
“아, 말이 잘못 나왔다. 저 퇴사할게요.”
사장은 말이 없었다.
무언의 긍정으로 보였다.
사장에게 뭔가 더 따지고 싶은 건 없었다.
다만, 요구 사항은 몇 개 있었다.
“제 커스터마이징 장비는 다 제 거겠죠?”
“원한다면 탄도 챙겨 주지.”
“그럼 아다만티움 탄 5,000발 정도만 챙겨 주세요.”
“……그러지.”
스케일이 크다고 생각하시나.
모르겠다. 그냥 난 사장이 하는 정치 놀음과는 안 어울릴 거다.
그래서 떠나기 전에 적당히 퇴직금을 받으려 할 뿐이었다.
너무 과하지 않은 정도로 말이다.
“오십 평 내외의 안전이 보장된 아파트 한 채만 구해 주세요. 안전 보장 시스템, 주문 방어되는 곳으로요.”
서울에 아파트 한 채를 사는 것도 20억이 호가했다.
신소재와 방어 주문이 들어가면 금액이 천정부지로 뛰었다.
그러니까 내가 요구한 아파트는 대략 150억 정도?
과하지 않은 선이다.
“퇴직금은 30억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아요.”
화림이 돈이 없지는 않다. 그렇다고 해서 한 사람에게 이 정도 돈을 쏟아부을 정도는 아니다.
당장 회계 처리만 해도 골이 터질 것이다.
그래도 과하진 않다고 생각한다. 적절하지.
“그럼.”
대답도 듣지 않고 돌아섰다.
난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 섰다.
“여기는 제가 다니는 회사고 어, 그리고 전 이제 성인이고, 제 마음대로 이렇게 결정해도 될까요?”
나 때문에 어머니가 위험에 빠졌다고 아버지는 생각하셨을 거다.
그거 때문에 화가 잔뜩 났을 거고.
아버지는 사장과 날 번갈아 봤다.
“만족하니?”
“만족보다는 지겹네요.”
아버지는 내 머리에 손을 올렸다.
“다 컸구나. 아들.”
이후 아버지는 사장 쪽은 쳐다도 안 봤다.
일단 지금은 그냥 물러가겠다는 제스처로 보였다.
“저 이제 백수예요. 당분간 신세 좀 지겠습니다, 어머니. 아, 그리고 아버지. 저 동생 있어요.”
“동생?”
“어머니 딸이기도 하죠.”
“딸?”
도란도란.
가족의 대화란 이런 거지.
물론 아버지는 좀 과하게 당황할 이야기이긴 하다.
“그렇게 얘기하면 내가 어디서 딸 하나 낳아서 온 줄 알겠다.”
어머니가 말했다.
“어떤 새끼야?”
아버지가 눈에 불을 켰다.
“수양딸이에요.”
어머니는 차분하게 얘기했고, 아버지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보, 실험체는 위험…….”
그리 말을 하다 멈췄다.
위험하다고 말하고 싶었겠지.
누가? 마리가?
어머니가 위험하겠냐고.
애초에 누가 습격한다고 당할 엄마가 아니다.
그래서 난 화가 덜 났는지도 모르겠다.
“괜찮아요.”
평소의 어머니였다. 화난 어머니는 어느새 보이지 않았다.
엉망이 된 1층으로 가는 동안, 아버지가 물었다.
“그냥 넘어가면 저 작자는 널 또 이용할 거다.”
팔을 치며 말하는 아버지에게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는 뭐.”
나도 사정 봐줄 필요가 없겠지.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 말해라.”
힘이 되어 주겠다는 말이다.
괜히 가슴이 뭉클했다.
다 컸다고 해 놓고서 또 걱정이라니.
“저 특수대에는 왜 보낸 거예요?”
슬쩍 궁금했던 걸 물었다.
“생활이 적당히 몸에 익으면 물어보려고 했다.”
“뭘요?”
“계속 이쪽 세계에서 살 건지. 그런데 네 엄마가 먼저 물었구나.”
“만약 싫다면요?”
“싫으면 안 하면 되지.”
쉽게도 말씀하시네.
걱정이 담긴 눈빛이 느껴졌다. 그와 반대로 기특함, 기대감 따위도 엿보였다.
“괜찮아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
나도 다 컸다.
알 거 다 알고, 할 거 다 한다.
언제까지고 부모님이 만들어 준 울타리 안에서 갇혀 있을 수는 없다.
“피곤해 뒈지겠다. 우리 택시 타고 가요.”
내가 말했다.
웨에에엥.
사이렌 소리가 울리는 등 엉망이 된 현장이다.
나가는 것도 일이었다.
“택시? 헬기 타고 가자.”
아버지는 화끈했다.
그는 제 권력을 십분 활용했다.
“피닉스팀 집합, 알아서 행정 처리하고 길 엽니다. 저 오늘부터 사흘간 휴가. 장관님이 허락 안 하시면 관둔다고 전해 주시고요.”
통신기에 말하니 길이 열렸다.
경찰이고 나발이고 아무도 우리를 막지 않았다.
우리 아빠 모세인 줄.
혜민이가 슬쩍 보였다. 눈인사만 했다.
황당해하는 쌍남 형제도 보였다.
귀찮아서 손짓으로 인사했다.
사수와 미호도 보였다.
사수와는 따로 말할 필요가 있었다.
수신호로 나중이라 말했고, 사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미호한테는 집에 가서 귀태 형 병문안이나 한번 가라고 톡이나 하나 보내야겠다.
그럼 우리 귀태 형 열흘 걸릴 부상 이틀 만에 퇴원할 것 같은데.
‘사랑의 힘!’ 이러면서.
모두를 일별한 뒤, 우리는 현장을 빠져나와 헬기를 타고 집으로 갔다.
베란다 창문이 깨지고 창고로 쓰는 방이 엉망이 됐지만, 주방은 멀쩡했다.
“여보, 고기 좀 사 올래요? 양파랑 파랑 마늘 안 깐 것도.”
“……아들도 있는데 내가 가?”
“여보?”
“지금 가요.”
아버지는 날 힐끗 바라봤다. 같이 가자는 표시인 듯하기에 외면했다.
지금 좀 피곤해서요.
마트에서 고기랑 채소 따위를 사 온 아버지와 난 마늘을 까기 시작했다.
“마리도 부르죠.”
앉자마자 말했다.
“그래. 둘이 까기에는 좀 많지?”
어머니는 여전히 위트를 잃지 않으셨다.
“네, 손이 너무 부족하네요.”
“그래, 그 마리라는 애 좀 보자.”
아버지도 한마디 하셨고.
어머니가 전화로 마리를 불렀다.
띵동.
현관문 벨이 울렸고, 곧 긴장한 티가 역력한 마리가 들어왔다.
들어오자마자 마리는 아버지를 보고 큰절을 올렸다.
“처음 뵙습니다. 아버님, 제 이름은 박마리라 하고, 사정이 여의치 않아 어머니께 몸을 의탁했습니다.”
“어, 아가씨, 아니 초면에 무슨.”
아버지가 마리의 팔을 잡아 일으키려 했지만, 마리는 변신족 실험체다.
힘으로 꾹 눌러서 그대로 큰절을 완성했다.
놔두면 그랜절까지 할 판이기에, 내가 나섰다.
“아빠, 아가씨 말고 마리.”
“응?”
“얘도 우리 가족이라고요.”
어머니의 수양딸, 내 동생, 자동으로 아버지의 딸이지.
“혹여 불편함을 느끼신다면 전 이만 자리를 비키겠습니다. 제 존재가 손해를 끼친다면 평생 눈에 안 띄게 조용히 지내겠습니다. 그 또한 안 된다면 잠시만 기다려 주시면 제가 다른 곳으로 이주를…….”
“마리라고?”
“네, 박마리입니다.”
아버지는 마리의 말을 끊고 손을 들어 어깨를 두드렸다. 조심스러운 손짓이었다.
“평소에 딸 하나 더 있었으면 했지. 오늘부터 가족 하자.”
지켜보던 어머니가 눈웃음을 보였다.
괜히 부부가 아니다.
아버지도 화끈할 때는 화끈했다.
“가자, 배 안 고파?”
“고픕니다. 오라버니.”
“그냥 오빠 하자. 언제까지 오라버니야.”
말하며 마리의 팔을 잡아끌어 식탁에 앉혔다.
“일단 마늘부터 좀 까고.”
셋은 둘러앉아 마늘을 깠다.
베란다에서 찬바람이 밀려 들어오자, 아버지가 여름 이불을 꺼내와선 베란다 위에 못질로 고정해 버렸다.
“여보, 돈 많아요?”
“많지. 그동안 수당으로 받은 거 전부 저축했거든.”
“역시 우리 남편.”
흐뭇하게 바라보는 둘을 보며 난 마늘을 깠다.
마리도 마늘을 깠다.
부지런히 깠다.
곧 김치찌개와 제육볶음이 상에 올라왔고.
넷은 전부 대식가인 걸 뽐내며 먹었다.
거나한 한 상이었다.
“끅.”
절로 트림이 나왔다.
식탁에서 트림했다고 어머니가 날 흘겨봤다.
“너무 많이 먹었어요.”
“그래서 이제 뭐 할 거니?”
“네?”
“특수종의 세상에서 살기로 작정했으면 놀고먹을 일은 없다. 모아 둔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사장 새끼, 아니 사장한테 받은 돈으로 평생 먹고살 생각이라면 접어라. 엄마는 아들 노는 꼴 못 본다.”
어머니는 새끼라고 하다가 아버지 눈치를 보고 말을 바꿨다.
이미지 깨지는 건 한순간이지 뭐.
“놀 생각은 없고요.”
“그럼 엄마 친정 쪽에 자리 하나 내줄 테니까, 거기서 다시 시작해.”
외할아버지가 어디 회사 사장일 것 같긴 했다.
이게 목적이셨나보다.
위험이 내포된 세상을 살겠다 하니, 제 눈에 닿는 곳에 두고 싶은 어머니의 마음이다.
난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이제 다른 사람 밑에서 일하는 건 그만이다. 내가 다 생각해 둔 게 있었다.
“아니요?”
내 대답에 어머니의 고개가 옆으로 기울었다.
어, 의견을 물어보는 게 아니라 강요였나요?
“생각 좀 해 보겠습니다.”
난 답을 바꿨다. 괜히 어머니 심기를 건드릴 필요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