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규격 외 혈통 천재-155화 (155/488)

155. 다 큰 자식의 직장에 부모가 찾아왔다

최미남은 자신이 수년간 몸담았던 곳을 바라봤다.

거인이 손가락으로 구멍을 판 것처럼 빌딩 외벽 곳곳에 비정상적인 출입구가 만들어졌다.

옥상에서는 불멸교가 침투했고.

1층 테러는 프로메테우스가 전담했다.

고급 세단 뒷자리에 앉은 채 창문을 내려 바라보는 광경은, 엉망진창이었다.

폭발, 비명, 사이렌 소리.

갖가지 소음이 섞인 아비규환의 장이었다.

그녀는 창문을 내린 채로 여전히 난장판인 바깥 풍경을 눈에 담았다.

웨에에엥.

사이렌 소리가 귀를 울렸다.

“움직이지 마! 이 새끼들아!”

PWAT의 염동력자가 외치는 소리.

그의 이마에 핏대가 서고, 눈길이 향하는 방향으로 테러범 셋이 공중에 뜬 채 버둥거리는 게 보였다.

염동력으로 저 정도로 사람을 제압할 수준이면 저 치도 보통 수준은 아니었다.

그래도 불멸특수대 지부에서 떠오른 신성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실패에 문책이 뒤따를 겁니다.”

운전기사가 걱정을 담아 말했고, 최미남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일에는 상벌이 따르는 법이었다.

‘아깝네.’

불멸특수대의 전력을 분석하고 마윤의 비뚤어진 욕망과 복수심을 이용하고.

남명진은 오만함도 활용했다.

그런데도 실패다.

옥상을 통해 투입한 불멸교도도 막혔다.

‘남명진, 남명진.’

최미남은 속으로 사장의 이름을 되뇌었다.

자신이 입사한 후, 가장 먼저 꼬리를 친 대상이었다.

잠자리까지 같이했다.

그런데도 매혹 주문이 먹히지 않았다.

괜히 1세대의 영웅, 불멸특수대의 간웅이라 불리는 작자가 아니었다.

최미남은 검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화림 정보 통신 건물을 바라보며 머릿속으로 이번 작전의 피날레를 곱씹었다.

1층 폭발 이후, 남명진은 1층을 버렸다.

믿음과 신뢰의 영역에서 요원들이 막아 주길 바란 게 아니었다.

‘연구 시설 보호를 최우선으로 했지.’

불가피한 희생을 감수했다.

덕분에 불멸교도의 습격이 무산됐다.

본부장을 비롯한 남명진과 그의 비서, 화림의 고위 전력이 남아서 불멸교도를 막았다.

그랬다면 1층이 뚫렸어야 했다.

하지만 뚫리지 않았다.

이번 작전의 목적은 두 개였다.

연구 자료 탈취와 테러.

1층에 보낸 전력이 적지 않았다.

크로커다일, 로즈.

특별 전력을 둘이나 투입했는데 실패했다.

민간인 수십 명이 죽었고, 불멸특수대원 중 일부는 몇 달은 침대 신세를 져야 할 것이고.

부서진 시설을 복구해야 했으며 프로메테우스에게 당했으니, 이미지에 타격도 입었다.

그럼에도 실패다.

투입한 전력 중 하나는 잡혔고.

다른 하나는 팔을 잃고 튀었다.

그럼 목적을 이뤘나?

‘유광익, 유광익, 유광익.’

세 번이나 되뇔 정도로 짙은 인상을 남긴 대원이다.

매혹 주문에 걸릴 것 같으면서도 끝내 걸리지 않았다.

더 어떻게 해 볼 틈도 없었다.

자신과의 사이에 만리장성만큼 두꺼운 심리적 벽을 쌓아 두고 거절했다.

‘이상형이 아니라고?’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다. 그래서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했고.

“표정이 안 좋습니다. 작전 때문입니까?”

운전기사가 백미러에 시선을 올리며 말했다.

“아니요. 실연의 아픔이 심장을 콕콕 찌르네요.”

“실연이요?”

운전기사가 눈을 깜빡였다.

최미남이 누구인가.

자타공인 불멸 최고의 미녀 중 하나다.

“시작도 못 해 보고 차인 적은 처음이라.”

그녀가 읊조리는 말에 기사는 더 이을 말이 없었다.

할 말이 없어서 입술을 달싹거리기만 하자, 최미남은 그가 대답할 만한 질문을 던졌다.

“마윤도 실패했나요?”

“네, 연락이 끊겼습니다.”

얻은 게 정말 없다.

아니, 딱 하나 있었다.

남명진,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 다른 이의 희생을 강요하는 남자.

그 작자가 한 짓 덕분에 사장은 제 회사의 사원 하나와 사이가 매우 나빠질 것이다.

‘우리 광익 씨라면.’

화를 낼 것이다. 앞뒤 상황을 보면 자신의 정보가 유출된 건 알게 될 것이다.

아무리 자신이 내부 첩자였다고 하더라도 사원의 개인 정보는 극비였다.

그건 누군가가 흘리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정보다.

남명진은 유광익을 미끼로 삼았고.

그의 가족을 미끼로 선택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냥 넘어갈지도 모르겠지만.’

광익이 그럴 리가 없을 터였다.

“재밌네요.”

“네?”

“남명진은 실수했어요.”

“네?”

알아듣지 못한 운전기사가 되물었다.

그는 자신이 모시는 사람의 상태를 의심했다.

너무 오랫동안 홀로 둔 탓일까?

그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보든지 말든지, 최미남은 혼잣말을 계속했다.

“피닉스팀은 좀 의외였지만, 오히려 그게 이득이 되겠네요.”

광익의 어머니가 죽었다면 유광익은 원한의 화살을 이쪽에도 돌렸을 것이다.

그 어미가 어떻게 살아났는지는 의문이지만, 어쨌든 마윤의 실패가 오히려 득이 될 터였다.

“아셨습니까?”

아는 얘기가 나오자, 운전기사가 되물었다.

광익의 아버지, 유연호의 얘기다.

아무리 이레귤러라 해도 어지간한 순혈의 피를 잇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수준의 재능을 보였다.

최미남은 대략 그럴 거로 예상만 했다.

“추측만요.”

아무리 뒤를 캐내도 광익의 부모를 알 수 없었다.

그럼 답이 나오질 않나.

그만한 기밀이란 얘기다.

행안부 특임대 정도면 딱 맞는 얘기겠지.

‘왕자님이었다니.’

최미남은 유광익을 떠올렸다.

광익의 장난기 어린 태도 뒤로, 가끔 짐승과도 같은 야수성이 엿보이곤 했다.

그걸 감추는 게 능숙해서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을 뿐이다.

최미남은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았다.

아깝다. 너무 아깝다.

한 번쯤 자빠뜨렸어야 했는데.

그 입술을 훔치고 손가락을 깨물고 싶었다.

이제 쉬이 가질 수 없는 남자라고 보이자, 더 탐이 났다.

“으음.”

최미남이 짧은 신음을 흘렸다.

운전기사는 자신이 모시는 프로메테우스 최고위 간부를 힐끔 바라봤다.

더없이 요망한 표정이었다. 속이 울렁거렸다.

“안 되겠다. 우리 좀 쉬었다 갈래요?”

최미남이 제안했고, 기사는 거절하지 못했다.

웨에엥.

밖에는 여전히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하지만 고위 공무원 번호판을 단 고급 세단을 붙잡는 멍청한 공무원은 없었다.

“충성.”

오히려 지나는 그를 보고 긴장한 신입 특수종 경찰이 경례를 붙이는 경우만 있을 뿐이었다.

“멍청아, 차를 보고 경례는 왜 하냐?”

선임이 그를 나무라는 소리가 창문 너머로 들어왔다.

최미남은 창문을 닫았다.

* * *

“유광익 대리 어머니시라고요?”

내가 당황해서 어버버하는 사이다.

흰 머리 악마라는 별명의 파견 본부장이 나섰다.

“네.”

어머니는 웃지도 그렇다고 화내지도 않았다.

태연하게 답했다.

난 그게 더 무서웠다.

여기서 사람 막 패고 그러면 안 되는데요.

“사장이라면 누굴 말하는 겁니까? 그리고 이곳은 작전 구역이고 민간인이 들어와…….”

“불특대?”

그러자 아버지가 나섰다.

“……그쪽은?”

“행안부 특임대 피닉스팀 책임자.”

“……?”

얼마나 당황했는지, 본부장이 고개만 갸웃하고 답을 못했다.

“누구?”

하필 그 타이밍에 뒤에서 기남이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불특대는 한 번 말하면 알아듣지 못하는 머저리들의 모임인가?”

차갑다. 더없이 차갑다.

평소의 온화한 아버지는 이곳에 없었다.

“남명진 그 새끼 나오라고 했다.”

말투는 평소와 같은데, 그 안에 들어 있는 건 방금 막 남극에서 건져 올린 빙하다.

싸늘하다. 비수가 날아와 나 말고 다른 이들의 심장에 꽂히는 것 같았다.

난 뭐, 그러려니 했다.

살면서 아버지가 화내는 걸 한 번도 못 봤을까.

정말 드물게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 냉전이 벌어지면 저런 분위기를 풍기기도 하셨지.

물론 어머니도 만만치 않은 기세를 풍기시긴 했고.

“아니, 아무리 특임대라지만, 함부로 사장님 존함을 부르시면 곤란…….”

파견 본부장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고, 그걸 들은 이장모 본부장이 급히 그의 어깨를 잡았다.

“하지 마.”

“네?”

“하지 말라고.”

“네?”

“닥치라고.”

음, 오티에서 봤던 그 라떼 교관의 모습이 슬쩍 엿보였다.

그는 다급하게 파견 본부장을 잡아 뒤로 당기며 대신 자신이 나섰다.

“위로 올라가시겠습니까?”

끄덕.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아내분도?”

“당연한 말을요.”

어머니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이렇게 순순히 길을 내주시면 나중에 문제가 생길 겁니다.”

파견 본부장이 말했다.

“사우전드 페이스다.”

“네?”

“피닉스 팀장, 사우전드 페이스라고.”

그제야 파견 본부장이 입을 다물었다.

불멸특수대 아니, 전 세계를 두고 활동하는 최고의 불멸 요원을 꼽는다면 누구나 첫 번째 후보로 뽑는 불멸자.

천 개의 얼굴을 지닌, 이름만 존재하는 불멸자.

“네?”

“그냥 입 다물고 있으세요.”

아버지와 어머니가 척척 앞으로 나가시기에 내가 그 뒤에 붙었다.

부모님 뒤에 바짝 붙어,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 하나를 물었다.

“혹시 두 분……?”

말을 끝맺지 않아도 충분했다.

“맹랑한 아들, 그동안 잘도 아버지한테 말하지 않았구나. 나는 아들에게 비밀 따윈 없었는데.”

머리 회전이 빠른 아버지다.

“불멸특수대? 공무원이라고 하지 않았니?”

어머니가 물었다.

“공무원은 공무원이거든요. 이게 또 공기업이기도 하고, 행안부 직속 자회사라는 독특한 포지션에 있거든요.”

말이 잘도 나왔다.

“으흠.”

어머니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두 분 서로 비밀을 밝히셨구나.

이제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라는 사실을 밝혀도 된다는 거다.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그동안 얼마나 답답했던가.

그래, 부부끼리 서로 그런 중요한 걸 숨기고 살아서야 쓰나.

그런데 사우전드 페이스?

“아빠가 그 피닉스팀이었어요?”

아버지는 내 말을 정정했다.

“정확히는 팀장이지.”

그냥 고위 공무원은 아닐 거로 생각하긴 했는데.

피닉스팀은 행정안정부 장관 직속의 최고의 팀이라고 들었다.

그 팀장은 어지간한 정치가도 함부로 못 하는 힘을 지녔다고도 들었고.

“그, 음, 그럼 되게 잘나가시는 분이네요?”

“조금.”

아버지는 겸양을 보이셨다. 눈에 다 보이는 겸양인지라, 잘난 척하는 것과 진배없었다.

“아, 네.”

그럼 어머니는 뭘까.

아무리 봐도 내 몸에 흐르는 두 분의 피가 어중이떠중이 수준의 불멸이나 변신은 아닌 것 같은데.

“나중에 얘기하자. 지금은 이쪽부터.”

두 분의 앞, 정확히는 이장모 본부장이 안내한 곳은 그나마 멀쩡한 회의실이었다.

그곳에 피에 젖은 수건으로 머리를 닦는 남명진이 보였다.

“오랜만입니다.”

아버지가 그를 보며 인사했고.

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아는 사이였다.

그리고 어머니는 자기 방식대로 인사를 건넸다.

땅을 박찬 뒤, 사장의 얼굴을 갈겨 버린 거다.

쩡, 어찌어찌 막은 사장의 양팔이 부러졌고 그가 벽에 날아가며 돌무더기가 우수수 떨어졌다.

한 방에 넉다운이지, 저건.

어머니의 특기 중 하나였다.

일명 로켓 펀치, 예전에는 멋모르고 당했는데 지금은 어떤 방식의 공격기인지 알고 있다.

팔극권 전질보에서 파생된 오리지널 주먹질이다.

만화책에서 감명을 받아서 만든 거다.

땅을 박차는 건 대쉬, 각력으로 몸을 밀어내며 중심을 잡고 나아가는 힘을 더해 주먹을 내지른다.

어지간한 특수종은 알면서도 못 막고, 막아도 박살 난다.

무게, 힘이 실린 일격이었다.

그러니 저런 게 당연했다.

“쿨럭.”

사장이 한 대 맞고 피를 울컥 토했다.

난 그걸 일별하며 박살 나서 흩어진 건물을 바라봤고, 팔을 잃은 동료와 눈이 마주쳤다.

바로 앞자리에 있던 외부 보안 2팀 대리였다.

얼굴이 핼쑥한 게, 놔두면 곧 쓰러질 것 같았다.

* * *

“피닉스팀? 사우전드 페이스?”

기남이 제 형을 보고 말했다.

호남도 아는 게 없었다.

“나도 놀라는 중이다.”

호남이 답했다.

옆에서 그걸 듣던 작대기 선생이 입을 열었다.

“혹시 유광익 어머니가 누군지 아나?”

작대기 선생도 놀랐다.

들어서는 순간, 유연호의 옆에 있던 여자.

감각의 영역 너머에서 자신을 짓누르는 야성을 느꼈다.

그건 곧 변신족이란 소리였다.

“보통은 아니었지.”

쌍남 형제는 눈치채지 못했다. 전투 직후 지친 것도 이유였고, 유광익 아버지의 정체에 놀라기도 했다.

“그쪽은 누구십니까?”

기남은 그제야 작대기 선생의 정체를 물었다.

“이중봉의 친우이자, 유광익의 스승.”

그는 단출하게 자신을 소개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전 피닉스 팀원 중 하나라는 말도 붙여야 할 터였다.

하지만 지금 자리에서 필요한 건 이게 전부였다.

“조력자셨군.”

흰 머리 파견 본부장이 다가왔다.

“그렇수다.”

“사우전드 페이스와도 연관이 있는 분이요?”

“조금.”

“그렇군.”

둘의 대화가 끊겼다.

다들 머릿속에 생각하는 게 달랐다.

작대기 선생은 광익의 어머니가 누구인지 궁금했고.

쌍남 형제는 광익의 아버지 정체에 놀랐으며.

파견 본부장은 다 큰 자식의 부모가 자신의 일터에 와서 당당히 사장을 만나는 게 옳은 일인가 생각했다.

‘그건 아니잖아.’

사우전드 페이스고 뭐고 간에, 지금 공무로 온 게 아니라면.

제 아들 회사 생활에 간섭하러 온 팔불출 부모가 맞는 거 아닌가 싶었다.

그는 광익의 어머니가 습격받았다는 사실을 몰랐다.

어쨌든 제 손을 떠난 일이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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