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규격 외 혈통 천재-154화 (154/488)

154. 사장 나오라고 해요.

전투의 향방이 그림처럼 머리에 남았다.

곧 팀장과의 첫 번째 대련이 떠올랐다.

그때 난 팀장의 양팔을 묶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기척 속이기 때문에 당했다.

방금도 같았다.

기척을 속여 양팔에 집중하게 한 뒤, 왼발로 악어의 팔을 벴다.

훌륭하다.

불멸자이기에 제 몸을 돌보지 않고 할 수 있는 전략이었다.

좋은 걸 배웠다.

언젠가는 저런 개인 전술을 써 볼 일도 있겠지.

팔을 자르고 팀장이 바닥에 떨어지는 짧은 시간 동안 여러 생각이 지나쳤고.

악어가 세로로 된 동공에 분노를 가득 담아 널브러진 이중봉 팀장을 보는 사이였다.

“눈뜨면 죽는다. 손만 까닥여도 죽는다. 입을 열어도 죽는다.”

작대기 선생의 목소리였다.

장미 또라이의 목을 쥔 채로 말하는데, 그 목소리에 감정이 조금도 들어 있지 않았다.

담담한 사실을 고할 뿐이었다.

“크로커다일, 움직이면 이 여자를 죽이겠다.”

작대기 선생은 냉정했다. 현 상황에서 악어와 싸우는 건 무리라는 판단이다.

박필로 팀장과 박다람 팀장, 호남이 형이 침묵으로 동의했다.

“죽여라.”

말하며 크로커다일이 몸을 일으켰다.

팔 한쪽을 잃은 놈은 흡- 하고 호흡을 멈추는 거로 출혈을 잡았다.

우는 아이 울음 그치듯, 몇 방울씩 점점이 떨어지던 피도 뚝 그쳤다.

제 몸 근육 하나하나를 조절하는 신기다.

변신족의 특기였다.

불멸이 감각이라면 변신은 육신.

초능이 재능이라면 마법은 노력이라고 했던가.

물론 감각, 육체적 능력, 노력과 재능은 누구에게나 균등하게 필요한 법이다.

다만, 각 특수종에게 저런 게 두드러지게 드러난다는 거지.

뭐, 불멸자라고 몸 키우는 데 노력하지 않는 건 아니니까.

마법이라 해서 재능이 필요치 않은 것도 아닐 테고.

악어 놈은 로즈를 바라보지도 않았다. 그저 제 팔을 잃은 것에 화가 났는지, 눈을 부라릴 뿐이었다.

왼쪽 옆구리를 부여잡은 사이에 살이 얼추 붙었다.

이 정도면 다시 움직일 만은 하고.

쓰러진 팀장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팀장 이중봉, 화림 정보 통신 최고의 요원.

그런 양반이 뒤는 생각하지도 않고 나 몰라라 덤빈 건 아닐 것이다.

팔 하나에 불멸 에이스가 전투 불능이다.

내가 시발 팀장이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나라는 자원과 더불어 박다람 팀장, 박필로 팀장, 스펠 기어를 쓰는 정호남 과장도 있다.

기남의 무기도 만만한 수준이 아니다.

먹힐 만한 무기가 있고 자원이 있다면, 버텨야 했다.

하지만 팀장은 그러지 않았다.

내가 아는 시발 팀장이 성격은 개 뭣 같아도 능력이 없는 작자는 아니었다.

작전에 나갔을 때도, 코를 파면서도 할 일은 다 했다.

그게 이중봉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는 할 일을 다 했다.

뭐, 저 일 합을 나눈 뒤에 기절하지 않을 거란 것 역시 예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 지금 뭐라고 지시를 내렸겠지.

항상 예상 밖의 일은 일어나는 법이니까.

팀장의 의중과 별개로 난 현재 상황만 직시했다.

순혈 변신족, 강체의 피를 이은 악어 새끼가 눈앞에 있다.

악어는 팔을 잃었음에도 금세 제 몸의 밸런스를 찾았는지, 자세에 흐트러짐이 없었다.

몸 쓰는 거로 변신족을 따라잡을 건 없지.

그리고 몸이 회복하는 불멸자만큼 골치 아픈 적도 없을 것이다.

변신족은 불멸자를 바퀴벌레라 비하하기도 했다.

여기까지 생각한 난 시발 팀장의 의도를 읽었다. 적어도 난 그렇게 믿었다.

“이중봉 팀장님이 팔 하나니까. 제가 왼 다리 하나 가지고 가죠. 선생님이 오른 다리 하실? 박다람 팀장님이 남은 팔 하나 하시고, 남은 몸뚱이는 알아서 쪼개 보죠.”

강체 변신족의 몸은 총탄을 무시한다.

아다만티움 정글도로 벨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광선검으로는 벨 수 있다.

난 팀장이 쓰러지며 튕겨 낸 원통 형태의 막대를 발끝으로 튕겨 쥐었다.

탁- 하고 잡아채며 스위치를 올리자, 원통 끝에서부터 빛이 흐르고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는 광학병기의 결정체가 눈앞에 현신했다.

지이잉.

강체를 지닌 변신족.

각성한 이후 제 앞을 막은 적이 몇이나 될까.

저 작자가 위기에 빠진 적은 몇 번이나 될까.

처음 만났을 때부터 기피 대상 1호는 여유가 넘쳤다.

그건 강자의 여유.

구석에 몰려보지 않은 자의 여유.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자의 여유다.

가난해 보지 않은 사람은 가난을 모르고.

궁지에 몰려보지 않은 작자는 그 상황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할 것이다.

시발 팀장은 저 새끼를 잘 알았다. 오랜 시간 관찰했고 만나 보고, 싸워 봤을 것이다.

그럼 어느 정도는 성격도 알지 않을까?

“저 가죽으로도 가방을 만들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내 의도를 알아챈 호남이 형이 말했다.

리볼버를 든 손을 늘어뜨린 채, 그가 내 오른편에 섰고.

“……유광익을 닮으시면 안 됩니다. 과장님.”

기남이 자신의 기어를 손에서 팽그르르 돌리면서 내 왼편에 섰다.

그리고 바로 뒤로 박다람 팀장이 다가왔다.

“쇠질을 열심히 해도 변신족만큼 힘이 세질 수는 없겠지만, 다리나 팔 하나쯤은 가져갈 수 있지.”

“헬스를 왜 하십니까, 싸우려고 하는 거 아닙니까.”

내가 그 말을 받았다.

“내가 뒷수습인가?”

박필로 팀장을 마지막으로 요원 전부가 내 뒤에 섰다.

전원이 불멸자다.

이곳은 화림정보통신, 불멸특수대의 지부다.

불멸자는 제 목숨을 담보로 상대의 사지를 절단하는 미친 자들의 요새였으니.

“다시 해 봅시다.”

그렇게 말하며 악어를 노려봤다.

눈이 마주쳤다.

세로 동공은 흔들리지 않았다.

잘못 짚었나 싶은 순간.

무표정한 낯짝 그대로 악어가 땅을 박찼다.

눈을 부릅떴다. 선공으로 휘몰아칠 생각이라면, 그 첫 일격은 내가 막는다.

아직도 감각이 곤두선 채였다.

뇌세포가 다 타 버릴 듯 머리도 뜨거웠다.

각오와 함께 집중한 순간, 곧바로 허무함이 따라왔다.

“두.”

쾅.

악어가 땅을 박차며 남긴 말이다.

한 글자, 한 글자가 뒤따라와 문장을 완성했다.

“고.”

펑.

벽을 뚫으며 말했고.

“보.”

꿍!

뚫고 나가 멀어지며 말했으며.

“자.”

마지막 한 글자는 아련하게 귀에 남았다.

“……먹혔군.”

호남이 형이 남은 이들 사이에서 말했다.

내 의도를 알아챘다는 의미의 말이리라.

쌍남과 작대기 선생도 고개를 끄덕였다.

허장성세였다.

뭐, 불가능한 전술은 아니니까.

다만, 피해는 막심했겠지.

아직 바깥도 정리가 안 됐고, 위쪽도 무슨 일이 터졌는지 확인해야 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장미 또라이와 테러범 일부가 남았다.

테러범 무리가 눈치를 보다가 한 놈이 입을 열었다.

“세상에 불을 가져와 복 되게 하리…….”

놈을 말을 끝맺지 못했다.

“쉿.”

박다람 팀장이 단숨에 다가가 헬멧에 손을 올리더니 팔꿈치로 후려쳤다.

쩡.

경쾌한 소리와 함께 놈이 쓰러지자, 헬멧에 총구를 바짝 붙이더니 방아쇠를 쉬지 않고 당겼다.

탕, 탕, 탕!

아무리 방탄 헬멧이 튼튼해도 저런 방식의 공격에는 버틸 수 없었다.

곧 헬멧에 구멍이 뚫리고 피가 튀었다.

남은 테러범 중 몇이 덤볐지만, 정리하는 데 큰 무리는 없었다.

기세가 꺾였다.

이들에게는 악어도 없었고 지휘관은 잡혔으며, 병력의 중추라 할 수 있는 실험체도 다 죽었으니.

반항하는 놈도 몇 되지 않았다.

그걸 보며 내가 입을 열었다.

“야, 저 새끼 되게 의리 없다. 너 두고 갔는데?”

장미 또라이는 내 말에 날 한 번 보고 떠난 악어의 빈자리를 한 번 보더니, 다시 악어가 뚫고 나간 벽을 한 번 봤다.

세 번을 돌아본 뒤, 그녀는 떨리는 동공으로 다시 날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나 놔줄래?”

“지금?”

“응.”

“진짜?”

“응.”

“놔줄까?”

“그래 줄래? 그래 주면 네가 원하는 건 뭐든지 들어줄게.”

나만 동의하면 빠져나갈 수 있다고 믿는 건가.

눈을 가만히 바라봤다. 동공이 요동치고 속눈썹은 파르르 떨렸으며, 자기도 모르게 입술도 반쯤 벌렸다.

그러다 침 흘릴라.

패닉 상태였다. 악어가 설마 자기를 버리고 갈 줄은 몰랐나 보다.

“그럼 놔줄 테니까, 아는 거 싹 말해 볼래? 앞으로 진행하는 작전부터 시작해서 간부 이름, 각 지부, 아, 너희 가지고 있는 사업체 있잖아, 그거 전부 테러 단체가 모체라고 증언도 해 주면 좋겠고. 또 뭐가 있더라.”

“아.”

신나서 말하는 중에 갑자기 외마디 신음을 흘린 장미 또라이의 눈이 풀렸다. 초점이 흐려지고 흐리멍덩해지더니, 곧 몸을 덜덜덜 떨기 시작했다.

“장미야?”

내 부름에 반응하는 대신 장미가 침을 질질 흘렸다.

“주문이야, 강요, 속박, 억제 여러 개도 걸어 놨네. 놔두면 백치가 될 것 같은데.”

어느새 나타난 혜민이가 말했다.

“막을 수 있어?”

“이쪽이 전문이야.”

그렇게 말한 혜민이 장미 이마에 손을 올리고 뭐라 읊조리기 시작했다.

그걸 보며 위로 가야 하나, 밖으로 가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

밖에서 들리는 소음에 사이렌이 섞였다.

PWAT의 출현일 듯싶었다.

밖도 금방 정리가 되겠군.

위에서도 흰 머리 본부장을 비롯해 간부가 뛰쳐 내려왔다.

오랜만에 이장모 인사 본부장도 보였고, 그 뒤로 빨간 머리 양초남 분석 2팀장 김한도 보였다.

이장모는 여전히 대머리 스타일을 고수했기에 눈에 띄었다.

김한 팀장도 마찬가지다. 저 대가리는 본래 빨간색인가.

전부 헬멧조차 쓰지 않고 내려오더니 주변을 둘러보고 말했다.

“여기가 더 개판이군, 저건 이중봉 팀장인가?”

이장모가 물었다.

“네, 맞습니다.”

박다람 팀장이 나서서 말했다.

“위쪽에서도 불멸교도의 기습이 있었다.”

“노린 건 뭐였습니까?”

“그들이 노린 게 무엇이든 얻은 건 없을 거다.”

이장모가 말했고, 흰머리 본부장은 나한테 다가왔다.

“또 너군.”

“네?”

“아니다.”

말하는데 그 눈빛에 왜 대견함 따위가 엿보이는 것 같지.

나 싫어하지 않았나.

본부장은 살아남은 테러범을 구속했고, 혜민이는 곧 장미 또라이를 식물인간으로 만들었다.

“야, 전문이라며?”

“응. 전문. 그래서 백치 안 되게 멈춰 놨어. 나중에 시간을 들여서 멀쩡하게 만들어야지. 주문이란 게 도깨비방망이인 줄 알았어? 뚝딱하면 금이 나오는 게 아니거든.”

“생각만큼 잘 안 됐구나?”

혜민이는 당황하면 말이 많다.

“……티나?”

“조금.”

혜민이는 제 손을 떠난 일이라고 했다. 맨손으로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라고도 했고.

“끄응.”

타이밍 좋게 팬더 대리가 일어났다.

변신이 풀리면 그 뒤에는 불멸의 피가 활동하는지, 중상은 없었다.

그는 머리를 부여잡고 주변을 둘러보다 나와 눈을 마주쳤다.

“나, 음, 어땠냐?”

기억은 없지만, 변신 이후 자신이 폭주했음을 아는 눈치다.

하, 이럴 땐 역시 진지하게 진실을 말해 줘야 하는 법이다.

짧고 굵게 그의 모든 행동을 한 문장에 담아 말해 주고 싶었다.

난 말을 고르고 고르다, 팬더 대리의 상황을 딱 정리해 말했다.

“짐승 같았어요.”

그 말에 팬더 대리의 눈꼬리가 밑으로 축 처졌고.

내 말을 들은 기남이 옆에서 조잘거렸다.

“넌 진짜 가차 없구나.”

“내가?”

뭘?

바깥에도 점점 소음이 묻히고 상황이 얼추 정리되자, 본부장 둘이 동훈 대리 앞으로 다가왔다.

“이동훈 대리, 본사 소속임에도 동료 공격, 위장 취업으로 개인 정보 은닉, 의도를 파악할 수 없는 태도를 이유로 구속한다. 이의 없지?”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른다.

그동안 괜히 팬더 대리가 정체를 숨긴 건 아니었을 것이다.

“이동훈 대리 아니었으면 피해가 더 극심했을 겁니다.”

의외였다. 기남이 나서서 말했다.

“사원이 나설 자리가 아니다.”

호남이 형이 그런 기남의 팔을 잡아 뒤로 끌었다.

“그럼 그냥 두고만 봅니까?”

“지금 말고.”

둘이 속삭였다.

난 멀뚱히 지켜봤다. 팬더 대리가 수신호를 보내기도 했다.

가만히 놔두라는 의미였다.

나도 지금은 뭘 할 생각이 없었다.

구속한다는 건 당장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 아닐 테니까.

팀원이 끌려간다고 발을 동동 구르던 귀여운 신입 사원은 이제 없다.

여기는 이제 적당히 닳은, 회사 생활에 익숙해진 대리가 있을 뿐.

팀장의 반쪽 몸뚱이는 곧 요원 몇이 정리해서 가져갔다.

고로 싸움은 끝났다.

그제야 숨을 푹 내쉬다가 불현듯 잊은 걸 떠올렸다.

어, 음, 우리 어머니한테 아까 누가 갔었다고 하지 않았나?

“여기 맞아요?”

“맞아. 화림 정보 통신, 불멸특수대 서울 지부.”

귀에 익은 목소리가 정리가 끝난 곳에 난입했다.

그건 난입이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하나는 불멸자가 모인 곳임에도 둘이 다가오기 전까지 기척이 제대로 안 읽혔고.

두 번째는 차분한 목소리였지만, 그 목소리에 어린 짜증과 화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난 둘과 눈이 마주쳤다. 남자 한 번, 여자 한 번이다.

둘의 눈에 잠깐 온화한 빛이 스쳤지만, 곧 사라졌다.

“딱 한 번만 말할게요.”

여자가 한 발 앞으로 나섰다.

통이 큰 수수한 면바지에 가슴에 해바라기가 그려진 면티를 입었다.

누가 봐도 동네에서 산책이나 하다 온 차림이었다.

“사장 나오라고 해요.”

그녀가 말했다.

둘 다 아는 얼굴이었으며 바로 곁에는 사수와 우미호가 있었다.

사수에게 수신호로 물었다.

무슨 일이냐고.

“음, 유광익 대리, 부모님이 오셨습니다.”

사수가 조용하지만 단단한 목소리로, 장내의 당황한 이들에게 정보를 제공했다.

나도 당황한 참이다.

부모님이 다 큰 아들 회사에 오셨다.

그것도 뭔가 단단히 따지고 싶은 얼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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