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 사실 나 불멸자야.
마윤의 눈앞에 광익의 집을 지키는 불멸특수대 요원 몇이 보였다.
‘집 지키는 개를 놔뒀다 이거냐?’
그는 유유히 걸었다.
아파트 단지 내를 산책하듯 걸었다.
아무도 그를 제지하지 않았다.
그림자 산보.
그의 오리지널 비기였다.
기척 속이기를 응용한 것으로, 주변에 동화되어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기술이었다.
그는 그렇게 유유히 걸었고, 광익의 아파트 승강기에 올랐다.
목표한 층보다 두 개 층 위에서 내린 뒤 비상구 계단을 타고 내려갔고, 안쪽을 향해 귀를 기울였다.
고요했다.
사람이 없었다.
문 틈새로 종잇장처럼 얇은 나이프를 넣어 서걱서걱 몇 번 썰자, 잠금장치가 잘렸다.
그는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다.
소파에 앉은 뒤, 제집처럼 등을 기댔다.
죽여야 할 건 일반인, 가정주부다.
본래라면 교인 하나만 보내도 충분한 일이지만, 남명진이 이곳을 지키기 위해 병력을 배치할 건 뻔한 일이었다.
그래서 직접 나섰다.
제 손으로 죽일 것이다. 머리를 자르고 돌아가, 자신에게 엿을 먹인 유광익이란 놈에게 절망을 안겨 줄 것이다.
두근.
마윤의 심장이 뛰었다.
불멸교에 투신한 첫 번째 이유가 무엇인가.
마윤은 살인을 즐겼다.
특히나 연한 살을 가진 여인을 찢어 죽일 때면, 그는 오르가즘을 느꼈다.
제 정체를 모르고 아무렇지도 않게 인사를 걸어오는 이들을 보는 것도 즐거웠다.
이제는 그런 삶 중 하나를 포기해야 했다.
전부 유광익 때문이었다.
베란다 창 너머로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하루의 끝을 알리는 석양이 진다.
석양빛이 마윤의 얼굴 반쪽을 비췄다.
불멸자답게 그 얼굴은 아름다웠고, 귀티가 흘렀다.
하지만 눈만은 아니었다.
마윤의 두 눈에서 원한과 곧 벌어질 일에 대한 기대감이 섞인 진득한 눈빛이 흘렀다.
* * *
강슬혜는 낮에는 마리를 돌보고 요가나 필라테스, 또는 친구의 집에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한 뒤 저녁나절에서나 집에 들어갔다.
요새는 그게 일상이었다.
남편이 일찍 오면 저녁 준비라도 하겠지만, 요새도 툭하면 출장이었다.
하나 있는 아들놈은 회사 생활 삼매경인지라, 통화 한 번 하기도 힘들었다.
그나마 마리라도 있어서 다행이었다.
‘잘 컸어.’
실험체라곤 하지만, 변신족은 변신족이다.
강슬혜는 본능에 미쳐 반항하는 변신족을 수없이 만나 봤고, 전부 새 나라의 변신족 어린이로 만들어 줬다.
그녀 나름대로 노하우가 있었다.
본래 본능은 더한 본능에 잡아먹히는 법이니.
본능을 짓누르고 개념을 심어 주면 될 일이었다.
그 와중에 주먹이 몇 번 오가긴 하겠지만, 놔두면 패악질을 부린 놈들을 사람으로 만들 수 있었다.
덕분에 예전에는 갱생 마녀 따위로 불리긴 했지만, 뭐 어떤가.
자기가 즐겁고 행복한 일을 하면 되는 거지.
‘나 그리운가, 돌아가고 싶나? 과거의 그 생활로?’
‘그건 아니지.’
자문자답이었다.
아들을 가진 뒤, 모든 걸 잊고 지내기로 했다.
처가와 연을 끊고 이곳에 자리 잡은 게 몇 년 전인가.
광익의 외할아버지가 손자 용돈이라는 구실로 연락을 해 오지만, 슬혜는 무시했다.
돈만 받고 아들은 보여 주지 않았다.
그건 그녀 나름의 저항이었고.
‘순혈.’
그 이름에 갇혀 지낸 세월에 대한 반항이기도 했다.
‘잘 계시겠지.’
아버지를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동생 놈도 마찬가지다.
괜히 순혈의 변신족이 아니다.
하물며, 자신의 집안이 어떤 집안인가.
아파트 승강기에 올라 버튼을 누르며 강슬혜는 생각을 이어 갔다.
집을 뛰쳐나오고 일반종과 연을 맺은 걸 두고, 아버지는 반항이라 말했다.
‘아니라고 수없이 말해도 안 믿으니.’
원망과 애정, 애증이다.
때로는 아버지가 그립기도 했다.
특히나 남편과 아들, 마리와 떨어져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때면 부쩍 그런 생각이 들었다.
‘늙었나.’
감성적인 생각이었다.
부르르.
그렇게 막 현관문 앞에 도착했을 때다.
핸드폰이 울었다.
출장을 갔던 남편이었다.
통화 버튼을 누르며 반대쪽 손으로 현관문 손잡이를 잡는데, 저항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문이 힘없이 열렸다.
“집이야?”
불멸자의 직감만큼은 아니지만, 여자로서의 직감은 있다.
남편의 목소리가 평소와 달랐다.
“이제 들어가요.”
“들어가지 마. 나와. 지금 바로 나와서 혜민이 엄마 집에 가 있어.”
“네?”
이게 무슨 소리일까 싶은 순간, 코끝을 찌르는 알싸한 냄새가 났다.
그러니까, 평소 집에서 나던 냄새가 아니다.
“무슨 일 있어요?”
“이유는 묻지 말고.”
이유를 묻지 말라니, 이런 사람이 아니다. 무슨 일을 할 때도 하나하나 설명해 주고 같이 의논하던 남편이다.
“오빠?”
연애할 때 부르던 호칭이다.
“슬혜야, 내가 지금 가고 있거든, 그냥 잠깐만…….”
이야기를 끝까지 들을 수 없었다.
변신족은 둔하다. 대신, 불멸자가 넘볼 수 없는 운동신경을 가졌다.
중문을 열고 딱 두 발자국 들어갔을 때, 강슬혜는 옆구리를 찌르는 쇠의 감촉을 느꼈다.
어떤 판단을 내리기도 전에 그녀의 몸은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몸을 틀고 옆으로 뛰었다.
픽.
쇠의 감촉, 칼날이었다.
칼날이 옆구리를 스쳤다.
아들이 선물한 옷이 베였다.
비싼 옷이었다.
“……이걸 피해?”
처음 들어 보는 목소리였다.
“슬혜야, 여보.”
남편의 애타는 목소리가 들렸다.
강슬혜는 아직 끊지 않은 전화의 종료 버튼을 눌렀다.
“어디서 왔니?”
강슬혜가 물었다.
“뭐?”
마윤은 황당함에 되물었다.
이 여자는 뭔가.
기척 죽이기를 유지한 채 칼날을 들이밀었더니, 피부에 닿자마자 몸을 틀어 피한다.
순간, 눈으로 좇을 수 없을 만큼 빠른 몸놀림이었다.
거기에 여유작작한 물음이 이어지니, 당황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의뢰받았어? 내 뒷조사를 한 거야? 쉽지 않았을 텐데.”
강슬혜는 자신의 과거가 녹록하지 않음을 잘 알았다.
원한을 가진 작자가 있을 수도 있었다.
다만, 아버지가 작정하고 제 정보를 기밀로 취급했을 텐데, 어떻게 알아냈을까 하는 의문이 남았다.
“너, 일반인이 아니구나?”
불멸자의 직감은 특별했다.
마윤은 의심했고, 그 의심에 확신을 더해 말했다.
그걸 들으며 강슬혜는 생각했다.
‘고민한다고 답이 나오는 건 아니고.’
일단 쥐어패면 뭐라도 답을 해 줄 존재가 눈앞에 있다.
누가 보냈든, 의뢰를 받았든, 그게 아니라 실수로 들어왔든.
상관없었다.
툭.
땅을 박차며 나아간다. 마윤은 반사적으로, 칼날을 위에서 밑으로 그었다.
강슬혜는 무시했다. 칼날이 내려오는 것보다 빠르게 몸을 숙여 돌진했다.
그렇게 태클로 상대의 다리를 양손으로 잡아서 뒤쪽 방 모서리에 던졌다.
꽝. 우드득.
“끅.”
“어? 한 방에 이렇게 되면 곤란한데, 너 변신족 아니구나.”
그렇다고 초능도 아닌 것 같고.
“혹시 불멸 쪽이니?”
그럼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며 강슬혜가 성큼 다가갔다.
일격에 척추가 어긋난 마윤이 손바닥을 들며 외쳤다.
“잠깐, 난 불…….”
강슬혜는 답을 듣지 않았다.
아니, 지금 들을 필요가 없었다.
왼발 끝을 밖으로 열며 허리를 튼다.
오른발등을 기점으로 다리가 채찍처럼 휘며, 상대의 안면을 강타했다.
꽝!
포탄에 맞은 것 같았다.
안면을 맞았는데 몸이 훙 날아갔다.
방 안쪽 벽에 날아가 퍽- 하고 부딪친 불청객이 바닥에 널브러졌다.
사지를 부들부들 떨면서도 기절하진 않았다.
“맷집은 좋네.”
불멸자치고는 꽤 좋았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가 쌓였었는지, 힘이 좀 들어갔다. 강슬혜는 성큼성큼 걸어 상대에게 다가갔다.
그걸 보는 마윤은 필사적으로 입을 열었다.
“나르릉.”
이미 치아 대부분이 부러지거나 뽑혔고, 혀도 잘려서 언어라 할 수 없는 울부짖음에 가까운 말이었다.
“불멸자는 안 죽잖아. 그럼 나중에 말하자. 누나가 몸을 오랜만에 써서 힘 조절이 좀 안 되네.”
말하고 다시 그 미친 포탄 로우킥이 날아왔다.
마윤은 눈을 감았다.
공포가 전신을 잠식했다.
그가 다시 로우킥을 맞고 기절하기 직전에 든 생각은 하나였다.
‘불멸자라고 안 아픈 건 아니야.’
뻑.
우직.
두 번째 로우킥은 힘을 조절했다. 정확히 목뼈를 꺾는 일격이었다.
가벼운 로우킥 두 번.
상황이 끝났다.
강슬혜는 일을 벌이고 나서야 생각이란 걸 했다.
단순한 변신족의 피가 어디 가지는 않는 법이었다.
‘날 보러 온 게 아닌 것 같은데.’
그리고 단순하다고 해서 멍청한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했고, 그 일부를 이해했다.
남편이 연락했고, 불청객은 자신을 노렸으며, 자신이 변신족인 걸 몰랐다.
그럼 남편 쪽?
꽝.
“여보.”
그때, 현관문을 박차며 남편이 들어왔다.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의 시간이었다.
전신에 기어를 착용한 불멸자와 방금 막 불청객을 조진 변신족의 눈이 마주쳤다.
“……으으으음?”
강슬혜의 고개가 모로 꺾였다.
이게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이해할 필요가 있었다.
“뭐죠?”
강슬혜가 물었다.
유연호는 땀을 흘리며 들이닥친 참이었다.
오자마자 상황 파악이고 뭐고 현관문부터 박차고 들어왔다.
그의 눈에 쓰러진 불청객이 눈에 들어왔다.
동시에 새로운 조력자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고, 그와 함께 자신이 입은 기어에 생각이 미쳤으며.
“오빠, 적은요?”
“형님, 주변에 날파리가 몇 마리 있는데 불특대 애들이던데요?”
“동생, 할배가 퇴로 막았어.”
……자신의 뒤로 피닉스팀이 따라온다는 것도 떠올렸다.
너무 급해서 숨기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다만, 이 모든 생각에 앞서.
유연호는 강슬혜가 안전하다는 걸 알았다.
그는 모든 복잡한 내용은 뒤로 미루고 다가가 아내를 안았다.
아내는 영문도 모른 채로 안겼다.
“무슨 일인데요.”
그리고 물었다.
“괜찮은 거지? 아무 일 없는 거지?”
강슬혜는 어안이 벙벙했다.
고위 공무원, 행정직이지만 출장이 잦은 철밥통.
자신이 아는 남편의 직업이다.
그런데, 지금 모습은 뭔가.
하물며 반사적으로 제 코가 남편이 지닌 장비의 냄새를 맡았다.
스펠 기어, 퓨어 기어, 화약, 칼날의 비릿한 향.
새것이 아니다. 손에 익은 가죽 냄새까지 섞였다.
“오빠.”
지나가는 남자 백이면 백 다 돌아볼 미모의 여자가 자신의 남편을 불렀다.
단순한 변신족의 본능이 꿈틀거렸다.
“오빠?”
강슬혜의 입이 열렸다.
같이 일하는 사이에 오빠?
오오오빠아아아?
“잠깐, 설명할 수 있어. 할 얘기가 많아.”
“오빠?”
되물었다.
“야, 넌 사람을 왜 그렇게 불러? 호칭 똑바로 안 해? 돌아가서 시말서 갈겨 볼래?”
유연호는 몸을 돌려, 일단 제일 급한 상황부터 수습했다.
연애할 때 유연호의 별명이 ‘예민 보스’였다면.
강슬혜의 별명은 ‘눈 돌아간 덤프트럭’이었다.
운동을 즐기기에 힘이 좋은 자신의 아내는, 한 번 눈이 돌아가면 앞뒤 안 가리고 상대를 쥐어패곤 했다.
그게 늘 걱정이었는데.
그 대상이 자신이 될 때도 있었다.
자신의 여성 편력이 문제였다.
아내는 자신을 믿는다. 하지만, 눈앞에서 오빠를 부르짖는 여자 후배를 보고 눈을 곱게 뜨진 않았다.
“오해야.”
우습게도 불멸자인 게 걸린 것보다 이게 더 급했다.
“오해입니다. 오빠 아니고 선배입니다.”
여자 후배가 눈치 빠르게 말을 덧붙였다.
강슬혜는 묵묵히 후배를 바라봤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는 게 몹시도 불안했다.
“그런데 저건 누가 저래 놨대요?”
뒤에서 형 소리를 내며 들어온 남자다. 이 작자도 전신에 기어를 둘렀다.
그가 손가락을 들어 방구석을 가리켰다.
벽을 쪼갠 채 걸레 쪼가리가 된 마윤 상무가 거기에 있었다.
“신원 확인해 봐.”
유연호가 명령했다.
여자 후배가 나서서 상대를 살폈다.
얼굴이 망가져서 알아보기 쉽지 않았다. 곧 그녀는 몇 가지 특징을 찾아내 말했다.
“맞습니다. 마윤.”
“조력자가 있었나 본데.”
유연호가 중얼거렸다.
“그럴 리가. 내려오면서 이 일대는 전부 체크했어. 특수대 꼬맹이들 빼고 아무도 없었어.”
이번에는 연호의 형을 자처하는 작자의 말이었다.
“그럼?”
유연호가 혼잣말하듯 되물었고.
이번에는 강슬혜가 곤란한 상황이었다. 다만, 그녀는 곧 마음을 다잡고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까지 숨길 수 있는 내용은 아니었다.
“저, 여보, 할 말이 있어요.”
마침, 유연호도 할 말이 있었다.
“우리 대화가 필요할 것 같은데. 전원 외부로 나간다. 얘기가 들리지 않는 범위까지 산개해서 호위 대형으로.”
“그 정도로 멀면 호위가 안 되는데요?”
동생이란 놈이 물었다.
“닥치고 가.”
여자 후배가 눈치 빠르게 그를 데리고 빠졌고.
쓰러진 마윤까지 챙겨서 갔다.
그렇게 유연호와 강슬혜, 비밀의 주인 둘만이 남았다.
긴 침묵이 흘렀고 둘 사이를 따뜻한 주황색 노을이 감쌌다.
먼저 입을 연 건 유연호였다.
“사실 나 불멸자야.”
모든 진실은 앞에 두고 핑계는 불필요했다.
그는 평소처럼 이야기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