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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격 외 혈통 천재-149화 (149/488)

149.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다.

“선배 저 싫죠?”

신입으로 온 놈이 기남의 속을 콕 찔러 말했다.

맞다. 싫었다.

이유 따위는 없었다. 사람이 싫은 데 이유를 찾는 게 더 우스웠다.

그래도 나름대로 티는 내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이쪽도 불멸자라고 예민한 구석이 있었다.

“아니.”

기남은 그래야 할 필요를 느꼈기에 하얀 거짓말을 했다.

그 신입 놈은 처량하게 웃으며 답했다.

“네.”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조금은 신경 써 주려 했었는데.

“뒈져라. 성격 더러운 새끼.”

이 미친 신입 새끼가 기남의 머리에 총을 겨눴다.

폭음이 터지고, 사무실이 엉망이 된 직후였다.

신입 중 일부가 종교관을 내비치며 덤벼들었다.

“불멸영원! 영원불멸! 불신자는 지옥으로!”

불멸자답지 않은 외침.

그리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기습.

놀랐지만, 마지막 말에 이마에 핏대가 솟았다.

탕.

고개를 숙여 탄을 피했다.

“예민 보스 같은 새끼.”

놈이 재차 말했다.

기남은 짜증이 솟구쳤다.

나름대로 잘해 주기도 했었다.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으니, 탕비실에 가서 쉬라고 권하기도 했고.

인명부를 제대로 외우지 못하기에, 아무래도 머리가 나쁜 것 같다며 천천히 외우라고 말해 주기도 했다.

“이 새끼가.”

같이 살면서 말투가 물들었을지도 모른다.

기남은 자기도 모르게 광익처럼 말했고.

그처럼 싸웠다.

겨눈 총구를 피한 뒤, 거리를 좁히고 턱에 주먹을 꽂은 거다.

숏 어퍼에 턱을 맞은 놈의 동공이 풀렸다. 이후 놈을 제압, 권총을 빼앗고 머리에 한 발을 쏴 줬다.

1층에서 터진 폭탄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불멸교도가 신입으로 숨어들어온 거다.

‘불멸특수대 보안이 이렇게 허술했나?’

기남은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곧 지웠다.

지금은 그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자신한테 덤빈 놈처럼 단순한 놈이 있는가 하면, 개중에는 가증스러운 놈도 있었다.

“어, 어, 이거 뭡니까?”

순진하게 바닥에 주저앉은 척하더니 뒤에서 몰래 칼을 들고 찌르는 저런 놈.

턱.

그 일격은 호남이 막았다.

“같잖다. 혼혈.”

호남은 평소의 말투로 속삭이고는 놈의 목에 나이프를 대고 그었다.

석.

피가 흘렀다.

곳곳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시발, 이거 뭐야.”

개중에는 당한 사람도 있었다.

“쿨럭.”

배에 구멍이 나거나 머리가 터져 바닥에 널브러진 요원 몇이 보였다.

“2팀 대리급 미만, 전부 의무 보조로 전환. 움직여.”

한쪽에서 2팀 팀장이 상황을 수습했다.

기습이었지만, 전력은 그리 대단치 않았다.

“팀장님은?”

“커피 사러 가신다고…….”

호남의 물음에 바로 곁에 있던 대리급 요원이 말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1팀 팀장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얼굴 반쪽이 피범벅이었다.

다리를 절었고, 팔도 한쪽 없었다. 몸에 검댕도 잔뜩 묻은 채였다.

“1층에 테러범 무리가 진입했다. 올라오는 길에 일부가 비상 통로에서 당했다. 개새끼들이 폭탄을 터트렸어. 승강기도 먹통이다.”

‘고립?’

호남은 짧은 순간, 상황을 시뮬레이션했다.

1층을 제압해, 위층에 모인 요원의 발을 묶는다. 그 사이에 그들은 1층을 점거할 수 있을 것이다.

진형을 갖추게 한 뒤에 싸우면 피해가 커진다. 놈들이 버는 건 시간이다.

“피해를 감수하고 통로를 뚫는다. 대리급 이상은 내 뒤를 따른다.”

호남이 말하자, 1팀 팀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최선으로 보였다.

그 타이밍에 위층에서 요원 몇이 뛰어 내려왔다.

“그럴 필요 없어.”

박필로 팀장을 비롯한 내부 감사팀 일부였다.

“당장 제압해야 합니다.”

“좋다. 다만 우린 비상구가 아니라 다른 곳으로 진입한다.”

어디로?

호남이 눈으로 묻자, 박필로가 발로 바닥을 찼다.

“밑을 뚫는다.”

그 뒤에는 일사천리였다.

바닥을 터트리고 뚫고 내려가고.

그 사이에 기남이 따라오는 걸 보고 돌아가라 했지만, 머리 굵어진 동생은 말을 듣지 않았다.

“지켜 주지 못한다.”

“지켜 줄 필요 없습니다.”

그저 이리 답할 뿐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1층이다.

‘유광익.’

놈들은 진형을 갖추지 못했다.

단 한 명의 불멸자 때문이었다.

유광익의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치열한 싸움이었을 것이다.

당한 흔적이 보였다.

그런데도 싸우고, 그런데도 막았다.

홀로 테러범 부대 단위의 병력을 맞상대했다.

호남은 광익에게서 눈을 뗐다. 그가 한 일은 묻혔다. 아니, 나중에는 새삼 감탄할지라도 지금은 아니다.

전장의 한쪽에서 퍼지는 살기에 절로 어깨를 들썩인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모든 광경을 잊게 하는 살벌함이다.

호남은 그쪽으로 눈을 돌렸다.

* * *

피부가 터지며 거북이 등딱지 같은 딱딱한 피부가 새로 솟는다.

그 색은 칙칙한 암녹색이었고, 겉보기에 그 단단함은 강철 이상으로 보였다.

무장한 갑옷을 입은 모양새였다.

주둥이가 뿌드득 소리를 내며 길어졌다. 입을 닫았음에도 이빨이 위아래로 삐죽삐죽 튀어나온 게 보였다.

특히나 중간 아랫니 중 하나가 위로 삐죽 솟았고, 주둥이 밖으로 삐져나와 살벌함을 더했다.

덩치도 훌쩍 커졌다.

본래도 컸던 기피 대상 1호의 몸은 어느새 작은 산처럼 보였다.

주둥이가 길어지고 덩치가 길어지니, 층고가 높은 빌딩 천장에 머리가 닿을 듯 말 듯 했다.

악어 거인이 나타난 것 같았다.

직접적인 살기는 뿌리지 않았다.

큰 울음을 토하지도 않았다.

크롸아아.

작고 낮은 초저주파 울음을 퍼트렸을 뿐인데.

장내의 모두가 주목했다.

내가 날뛰며 난리를 피운 효과를 고작 울음 한 번으로 만들어 냈다.

노필두의 변신도 압도적인 강함을 내비쳤다.

다만, 그 강함은 어디까지나 상대할 수 있을 만한 범주였다.

이쪽은 그 범주를 넘어섰다.

이게 바로 순혈 변신족이 가진 힘일까.

특수종의 세계에서 전투력만으로는 단연코, 어떤 특수종보다 압도적인 힘을 발휘하는 게 변신족이다.

그중에서 순혈, 그중에서도 가문의 피를 이은 자의 변신이다.

크롸아아아아.

놈은 긴 세 번째 울음을 토한 뒤, 하품이라도 하듯 입을 쩍 벌렸다가 닫으며 눈을 떴다.

악어 특유의 쭉 찢어진 세로 동공과 붉은 홍채가 보였다.

놈의 동공에서 한줄기 눈물이 흘렀다.

입을 벌렸을 때 눈물샘이 자극받아 반사적으로 흐르는 악어의 눈물이었다.

강체의 변신족, 기피 대상 1호의 모체는 악어였다.

놈의 동공이 작아졌다가 본래의 크기로 돌아왔다.

놈의 눈동자가 천천히 내려와 제 앞을 막은 상대를 바라봤다.

앞에 선 상대, 팬더 대리의 몸은 작고 가냘파 보였다.

한 입 거리로도 보였다.

금방이라도 금세 씹어 삼킬 것 같았다.

그런 폭력성과 야수성이 내재한 육체였다.

압도적 포스가 장내를 짓눌렀다.

“로즈. 2군을 들여보내라.”

놈이 말했다. 걸쭉한 저음이었다. 제대로 듣지 않으면 그저 으르렁거리는 소리처럼 들렸다.

아니, 저 입에서 인간의 언어가 나오는 게 더 어색했다.

하물며 유창한 발음의 영어다.

그 말에 내가 따란따도라 불렀던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마스터.”

난 그녀를 보며 물었다.

“너 이름이 로즈야?”

“흥.”

그녀는 답하는 대신, 나와 요원 전부를 경계했다.

“아니, 이름 더럽게 안 어울린다고 칭찬해 주려 했는데.”

“그게 칭찬이냐!”

거, 소리 지르는 게 취미인가.

말하며 은근슬쩍 빈틈을 엿봤는데 틈을 안 내줬다.

어쨌든 로즈라는 미친 테러범의 능력 또한 드문 초능이었다.

눈만 마주치면 몸을 멈추게 하니.

그나저나, 우리 팬더 대리 괜찮나?

무슨 뒷일을 부탁한다는 건지.

내 눈이 팬더 대리의 뒤를 향했다.

그는 물러서는 대신 제자리를 묵묵히 지키는 중이었다.

* * *

‘아, 정말 싫다.’

이동훈은 이런 상황이 싫었다.

평생 적당히 놀고먹고 싶었는데.

물론 그리 살 수 있을 만한 팔자는 아니었다.

제 출신이 그랬고, 제 피가 그리 놔둘 리가 없었다.

“안 변할 건가? 그 상태로 날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변신하기 직전 놈이 말했다.

막 놈의 팔꿈치에 갈비뼈를 맞아서 숨을 헐떡이던 중이었다.

이대로 싸워도 필패였다.

시간을 끄는 행위, 그 이상은 힘들었다.

“그럼 내가 먼저 하지. 저 천둥벌거숭이를 살리기 위해서 온 거라면 너도 변해야 할 거다.”

말하는 놈의 얼굴에 잠깐이지만, 미소가 어렸다.

그 미소에 어린 의미가 동훈의 가슴을 후벼팠다.

변하지 않으면 지킬 수 없을 것이라고.

변한 뒤에는 과연 네가 여기에 남을 수 있을 것 같냐는 그런 의미.

‘생각을 너무 많이 했네.’

기피 대상 1호가 변신했고.

동훈은 그걸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지금 자신의 목숨은 여벌로 얻은 것이었다.

그 목숨을 잇게 해 준 건 이중봉 팀장이었고.

동훈이 생각해도 이중봉의 성격은 지랄맞았다.

그 이중봉과의 첫 만남이 떠올라, 동훈은 킥킥 웃었다.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웃음이지만, 지금이 아니면 이제 웃을 일이 없으리라 생각했다.

“반푼이네. 이거.”

“죽여 버린다. 불멸자.”

“실험체야, 지금 그 꼴로는 지나가는 바퀴벌레도 못 죽인다.”

동훈은 팔다리가 잘린 채로 바닥에 버르적거리는 중이었다.

“회복하면 죽인다.”

“왜? 뭘 위해서?”

“위하긴 뭘 위해.”

“불쌍한 새끼, 너 여기서 나가 본 적은 있냐?”

그때의 동훈이 아는 세상은 피와 살, 칼과 싸움이 전부였다.

이성을 잃고 깨어나면 주변에는 살점과 피, 시신, 전투의 흔적만이 보였다.

기억이 없기에 남는 건 허무함과 공허함뿐이었다.

상대의 말이 맞았다.

동훈은 이 건물이 제 세상의 전부였다.

“나 따라올래?”

“……내가 왜?”

“하, 이 새끼, 세상에 재밌는 게 얼마나 많은데 여기서 투견 노릇이나 하고 있어.”

“투견이 뭔데?”

“됐다. 따라올 거야, 말 거야. 안 따라오면 분쇄기에 갈아 버릴 테니까, 알아서 잘 판단해.”

판단이 필요한 말이냐, 그게? 강요잖아.

어쩔 수 없이 뒤를 따랐다.

회복하면 멱을 따고 돌아올 생각이었다.

다시 제 세상으로 돌아와 여전히 가슴이 뻥 뚫린 듯한 허무함을 안고 살아갈 것이다.

그게 자신이 태어난 목적이라 배웠다.

그렇게 중봉의 뒤를 따라갔고, 일명 특별 갱생 프로그램이란 걸 받았다.

물론 그 프로그램이란 건, 이중봉이 그를 죽도록 두들겨 팬 게 전부였다.

“혼자 있으면 심심하지? 이거라도 봐라. 글은 읽을 줄 알지?”

“누굴 바보로 알아?”

중봉이 건네준 건 만화책이었다.

꼬리 달린 소년이 여의주 일곱 개를 모아서 소원을 비는 내용이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무술을 배워 싸우고, 그러다가 또 갑자기 우주인이라고 출생의 비밀이 밝혀진 뒤, 우주에서도 싸우고 나중에는 저승에서도 싸우는 내용이었는데.

“씨.”

동훈은 울었다. 감동의 대서사시였다.

줄거리를 말하자니, 무슨 막장의 막장을 거듭한 내용 같지만, 실제로 보면 감동 그 자체였다.

동훈은 그렇게 만화책을 만났고 삶이 변하기 시작했다.

“하, 진짜 싫네.”

그 안락한 삶이 끝난다. 그 주체가 눈앞에 있었다.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쟤한테 맡겨.”

이중봉은 그리 말하고 떠났다.

‘쟤’는 유광익이었다.

동훈은 광익을 보며 뒷일을 부탁한다고 입 모양으로 말하곤, 생각했다.

‘이게 얼마 만이더라?’

이동훈, 불멸특수대에 입사하기 전, 그는 프로메테우스의 투견이었다.

실험체였으며, 고위급 간부의 대련 상대이기도 했다.

그의 몸에는 두 개의 피가 흘렀다.

불멸과 혼혈.

다만, 그 피의 순도는 높지 않았고 실험은 실패했기에 그는 투견이 됐다.

본래라면 양쪽의 피가 흐르는 완벽한 특수종을 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오직 싸움밖에 모르는 괴물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의 몸에 흐르는 두 개의 피는 미약했으나, 피가 섞이며 어떤 작용을 했는지 변신족의 피는 미쳐 날뛰었다.

그 피가 들끓었다.

“나 꼭 죽여라. 악어 새끼야.”

세 번째 울음을 통해 자신의 기세를 발산하는 놈을 향해 말한 동훈도 변신했다.

뿌드득.

근육이 부풀어 오르며 옷이 펑 하고 터졌다.

눈앞이 흐릿해졌고, 남아 있던 이성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사이어인으로 변신하면 좋을 텐데.’

‘정아야, 들어오지 마라. 나 보지 마라. 변한 날 보여 주고 싶지 않다.’

‘광익아, 되도록 내가 죽은 뒤에 덤벼라.’

‘팀장님,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아, 애니 보고 싶다.’

몇 가지 생각이 단편적으로 뇌리에 남는 걸 마지막으로 이성의 끈이 끊어졌다.

동훈은 눈을 감았다가 떴고.

그 눈에 남은 건 본능뿐이었다.

뿌드드득.

전신의 뼈와 근육이 재구성되며 몸이 자란다.

전신의 털이 자라며 검게 물든다.

가슴팍에 반달 모양만 흰털로 자라나 흉근을 덮었다.

곧 눈앞의 악어보다는 작지만, 큰 덩치의 맹수로 변했다.

반달곰.

광익이 만날 팬더라고 놀렸지만, 이동훈의 변신형은 반달곰이었다.

“크르.”

뚝뚝.

변한 이동훈의 입가에 침이 흘렀다.

이성을 잃은 맹수의 눈이 시퍼런 빛을 토했다.

“쿠워어어어어어!”

곧 동훈은 괴성을 토했다.

그가 터트린 하울링은 적아를 가리지 않고 퍼졌다.

“이성을 잃은 저능아야. 넌 한 번도 날 이긴 적이 없었다.”

이성을 갖춘 완성형 변신족, 악어 인간이 말했다.

반달곰으로 변한 동훈은 상관하지 않았다.

그는 침을 흘리며 살기 가득한 눈을 빛냈고 자라난 손톱을 바짝 세웠을 뿐이다.

변하면 이성을 잃었기에 이기든 지든 어떤 것도 기억하지 못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쾅!

곧 맹수로 변한 동훈이 달려들며 앞발을 휘둘렀다.

악어가 팔을 들어서 동훈의 앞발을 막는 거로 괴수급 변신족 둘의 전투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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