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규격 외 혈통 천재-147화 (147/488)

147. 2차전 합시다

“남명진 이 미친 자식이.”

유연호는 화를 내는 일이 드물었다.

부대 내에선 농담 삼아 ‘그가 화내는 걸 보면 로또 사라’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만큼 보기 드문 모습이었다.

유연호는 전해 들은 몇 마디 말로 앞뒤 상황을 유추했고, 그게 틀리지 않았음을 알았다.

화림 정보 통신 사장, 1세대의 영웅 남명진이라는 새끼가 아들의 신원을 팔아서 사내를 청소하려 했다는 거다.

“선배.”

그 말을 전한 여자 후배가 어떻게 하냐고 눈으로 물었다.

“야, 뭘 물어.”

뒤에서 행정안전부 장관이 말했다.

“애들 다 풀어. 지금 당장 주변에 있는 애들이랑 전부 모아서 투입해.”

그래야 했다.

유연호는 앞뒤 가릴 틈이 없었다.

아내가 위험했다.

비밀? 불멸자인 걸 들킬 일?

그건 전부 나중 일이다.

당장 아내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불멸특수대고 뭐고, 정부고 뭐고, 화림이고 뭐고, 남명진이고 뭐고.

“다 지워 버린다.”

그 말에 장관은 소름이 돋았다.

유연호는 한다면 하는 놈이다.

특임대에서 근무하는 건 유연호의 개인 의지이지, 나라에서 잡은 게 아니다.

그가 원한다면 장관은 그를 풀어 줘야 했다.

그만한 인재고, 그만한 불멸자다.

“연호야, 괜찮을 거다.”

장관은 사적인 관계를 앞세울 때, 그를 이름으로 부르곤 했다.

“네, 그래야 할 겁니다. 장관님.”

유연호는 호칭을 명확히 했고 장관은 속으로 불멸특수대를 욕했다.

‘아니, 그러니까 애초에 뒤에서 손을 쓰게 해 주면 좀 좋아?’

특수대에 아들을 넣어 두고 모른 척해 버리니 생기는 문제 아닌가.

하지만 장관은 불만을 표하는 대신,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했다.

당장 이들을 떠나게 해 주는 거다.

“옥상으로 가.”

장관이 말했고, 유연호는 곧바로 발을 뗐다.

그 뒤를 부대원 몇이 뒤따랐다.

특임대 내부에서도 피닉스팀이라 부르는 특수 부대 내의 특수 부대였다.

총원은 유연호를 포함해 고작 다섯이지만, 이들이 한 일은 고작이라고 할 수 없었다.

일국의 전쟁을 막고 특수 현상 수배범을 잡는다. 적의 단체에 침입해 일급 기밀을 빼 오는 일도 수없이 했다.

올드포스 내에서도 수위에 꼽히는 최강의 불멸자를 모은 팀이다.

“난 지금 특임대장이 아니라 한 아내의 남편으로 가는 거다. 빠질 사람은 빠져.”

선배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후배가 뒤따르며 말했다.

“오늘부터 오빠라고 불러야 하나요? 전 동생으로 따라갑니다.”

“형님, 전 원래 형님 동생입니다.”

다른 팀원도 말하고.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도 붙었다.

“그럼 대장 말고 뭐라고 불러. 동생?”

“양심 좀 가지쇼, 이 양반아. 동생이 뭐야, 동생이, 조카쯤 되겠구만.”

“이 새끼는 왜 나만 걸고넘어지냐.”

노인 곁으로 따라붙은 중년의 불멸자가 말했다.

“내가 동생 할 거니까 할배는 조카하쇼. 그것도 많이 봐줬다.”

유연호는 그들의 말에 답하는 대신 발을 놀릴 뿐이었다.

옥상에 올라가니, 장관이 이미 헬기 택시를 준비해 놨다.

유연호는 말없이 뛰어올랐고 나머지도 마찬가지였다.

헬기에 오른 직후, 유연호는 문자를 찍었다.

내용은 단출했다.

[내 아들한테 좀 가 봐라.]

1분도 지나지 않아 답이 왔다.

[은퇴한 사람한테 뭘 시키는 겁니까.]

[가, 당장]

반항을 허용하지 않는 말투다.

다시 답변이 왔다.

알겠다는 답이었다.

두두두두.

헬기가 곧 상공을 날았다. 유연호는 가슴이 타들어 갔다.

그는 그저 아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 * *

“살아 있었어.”

기피 대상 1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쉽게 죽을 몸은 아니니까.”

등을 보인 팬더 대리가 답했다.

“그렇지, 우리가 그렇게 만들었지.”

“알면서 뭘 물어.”

팬더 대리는 너스레를 떨며 물었다.

“그냥 꺼질 생각은 없지?”

“좋군. 이 자리에서 반드시 죽일 놈이 둘이나 있으니. 이중봉까지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남의 얘기 안 듣는 건 여전하네.”

둘이 아는 사이인 건 확실해 보였다.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다.

사수도, 팀장도.

그리고 팬더 대리도 감추는 게 있을 수 있다.

다만, 그게 테러 단체 수뇌부의 절친한 친구쯤 되는 것 같아서 놀랄 뿐이지.

“친구예요?”

뒤에서 내가 물으니.

“원수지.”

팬더 대리가 답했다.

“좋습니다. 대리님 과거는 모르겠고, 숨겨진 힘을 보여 주실 때가 됐군요. 다 쓸어버리세요. 그동안 전 숨 좀 돌려야 할 것 같으니까.”

“그럴까?”

여유 있는 상황은 아니다.

내 몸은 정상이 아니고, 지원 병력이 올 상황도 아니다.

외눈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앞에는 팬더 대리, 뒤쪽에는 테러 단체 무리다.

1층 비상계단 입구 앞에 접착식 폭탄을 붙이는 게 보였다.

승강기 문을 잡아 뜯는 변신족도 보였다.

작정하고 온 거다.

들이닥친 놈들은 1층을 거점으로 삼을 작정이다.

고로, 당장 본대의 지원을 바랄 수는 없었다.

쾅.

폭발음이 들렸다.

계단을 밀고 내려오던 특수대 요원 몇이 휩쓸려 나갔을 터였다.

“다 죽여라.”

기피 대상 1호가 말하며 짓쳐 든다.

팬더 대리가 그 작자를 맞이했다.

아까도 봤지만, 팬더 대리는 잘 싸웠다.

툭, 탁, 탁.

기피 대상 1호가 주먹과 발을 놀리는 걸 잘 흘렸고, 잘 피했다.

훙.

기피 대상 1호의 주먹이 막 팬더 대리의 코끝을 스쳤다. 팬더 대리는 아예 드러눕듯 피하며 손을 뻗어 땅을 짚고 양발을 모아 올려 쳤다.

턱.

막은 기피 대상 1호의 발이 떴다.

와, 대리님, 힘 좋네.

혜민이가 옆에서 뭐라 중얼거리더니, 허공에 손을 펼쳤다.

그러자 나와 혜민이를 덮는 원구 형태의 방어막이 생겼다.

방어막은 육각형 모양의 도형이 이어 붙은 형태, 그러니까 헥사곤 필드다.

투두두둥.

우리를 노리고 쏜 탄환이 헥사곤 필드를 뚫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마법사다. 저년 먼저.”

따란따도의 목소리다.

“너무 많아.”

혜민이가 중얼거렸다.

많긴 많았다.

최소 몇 개 소대 이상의 전력이다.

그것도 하나하나가 전부 프로의 솜씨고.

자, 그럼 어쩐다.

블러드 젝과 마약 몇 종류가 간절하다. 아니, 입에 쑤셔 넣을 영양분, 하다못해 맛을 따질 때가 아니니 민트 초코바라도 있었으면 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지금은 그중 하나도 구할 수 없었다.

난 머리를 굴렸다.

불멸, 변신, 초능이 합세한 적의 전력.

당장 이곳에 있는 건, 나와 혜민이랑 힘숨찐 팬더 대리.

밖에 사수가 있지만, 정문 유리를 깨부수고 들어오는 놈들을 보니 저쪽도 난장판일 터.

고로 사수가 현장에 난입해 오는 건 악수다.

내가 아는 사수라면, 저격 포인트를 잡고 사수하겠지.

탁, 휘릭.

앞에서는 여전히 팬더 대리가 분투 중이었다.

뻗은 팔을 공중에서 낚아채 플라잉 암바를 걸자, 기피 대상 1호가 팬더 대리를 든 채로 팔을 바닥으로 내리찍었다.

팬더 대리는 자세를 풀고 옆으로 데굴데굴 굴렀다.

그걸 따라 놈의 발이 쾅쾅 도장 찍듯 찍혔고, 놈의 발이 찍힐 때마다 바닥이 깨져 파편이 튀었다.

입사한 이래로 팬더 대리가 싸우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작전에 나가도 지원 임무만 하고 일선에 나서지 않았다.

피를 무서워하는 불멸자.

다 개 뻥이다.

팬더 대리는 꽤 잘 싸웠다.

난 생각을 정리했다.

필요한 게 있다면 구하면 그만이라고.

“쟤들 눈도 잠깐 가릴 수 있냐?”

내 손가락이 멀리서 총을 쏴대는 놈들을 가리켰다.

“돼.”

혜민이는 대답과 동시에 주문을 읊기 시작했다.

유심히 들으니, 기묘한 내용의 주문이었다.

“뿌옇게 떠올라, 아지랑이 피워 내리라. 닿는 모든 것을 젖게 하고 가리고 지우리.”

혜민이 말하며 왼손은 휘젓고 오른손은 품에 넣어 작은 구슬을 꺼내 바닥에 던졌다.

구슬이 깨지자, 거기서부터 안개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안개는 곧 길쭉한 플라스크에 갇힌 것처럼 긴 막대가 되더니 바닥을 긁으며 쭉 나아갔다.

“수작 부린다. 마술쇼 구경 왔어?”

따란따도가 부하에게 명령하는 소리다.

그 말에 페이스 가드를 내린 변신족 하나가 달려들었다.

꽝- 하고 땅을 박차 거리를 좁힌 뒤, 헥사곤 필드 위로 나이프를 꽂았다.

퍽 소리와 함께 무형의 방어막이 충격에 흔들렸다.

“발악은.”

변신족 놈이 우리를 비웃었다.

혜민이 만든 막대 안개가 계단 입구와 승강기를 막은 무리 안에서 퍼졌다.

터지듯이 퍼진 게 아님에도, 안개는 동영상을 빨리 감은 것처럼 사방을 금세 잠식했다.

“안개에서 빠져나와. 주문이다.”

말함과 동시에 따란따도가 다섯을 대동해 출입구 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안개는 살아 있는 것처럼 그 뒤를 따랐다.

“길어야 10분이야.”

부쩍 안색이 창백해진 혜민이 말했다.

“충분하네.”

변신족 놈이 헥사곤 필드 위에 꽂은 나이프 손잡이를 주먹으로 꽝꽝 내리쳤다.

그때마다 쩡쩡- 하고 방어막이 흔들렸다.

곧 깨질 것처럼 보였다.

방어막이 흔들릴 때마다 혜민의 안색도 더 파랗게 질렸다.

“열만 세.”

말하고 나도 나이프를 꺼냈다.

손잡이를 비틀어 아다만티움 와이어를 꺼내, 부러진 다리 위를 칭칭 감고 당겼다.

우드득.

살이 잘리고 뼈가 썰린다. 통증을 견디며 와이어를 다시 수거하고, 잘린 바짓단으로 허벅지 위를 칭칭 감았다.

그래도 피가 찔끔찔끔 샜지만, 내 몸은 이미 회복에 돌입했다.

괜히 튼튼하고 오래가는 불멸자의 육체가 아니다.

망가진 안구도 서서히 회복 중이라, 암전됐던 반쪽 시야도 흐릿하게나마 보이기 시작했다.

귀는 이미 제대로 들렸고.

혜민이 혀를 내둘렀다.

“안 아파?”

안 아프겠냐?

“후우.”

대답 대신 참았던 숨을 내쉬고, 난 혜민에게 손짓했다.

아직 열을 다 세지 않았지만, 손짓의 의미를 이해한 혜민이 방어막을 풀었고.

막 위에서 주먹질하던 변신족 놈의 나이프가 허공에서 밑으로 툭 떨어졌다.

방어막이 사라지자, 변신족 놈은 옳다구나 하고 주먹을 뻗었다.

혜민이의 머리통을 노린 일격이었다.

다리가 없기에 균형을 잡기 힘들었다.

난 일어나는 대신 손으로 바닥을 치고, 앞으로 몸을 날렸다.

날림과 동시에 상대의 주먹을 손등으로 쳐 내고 바닥에 떨어지며 놈의 발목을 잡았다.

“왜 널 또라이라고 부르는 줄 알겠다.”

변신족은 여유를 부렸다.

“아니, 넌 모를걸.”

답하며 힘을 썼다.

우드득.

“큽.”

발목을 아귀힘만으로 부러뜨리자, 놈이 신음을 삼키고 날 걷어찼다.

날아오는 발을 어깨로 받아 내며 몸을 틀었다.

타점을 흩트리자, 놈이 균형을 잃었다.

“이 새끼가.”

응, 니 새끼 아니고.

난 발목을 잡은 채로 끌어와 나이프 손잡이로 놈의 무릎을 내리쳤다.

빡. 빠각.

일격에 무릎 관절 이탈이다.

“끄윽.”

이 친구 비명을 잘 참네.

난 놈의 발목을 잡아서 당기고, 뱀처럼 놈의 몸을 타고 뒤로 돌아가 목을 잡고 조였다.

우드득.

반쯤 목이 꺾인 놈이 사지를 부르르 떨며 실신했다.

쓰러진 놈의 헬멧을 강제로 벗기고 뒤로 던졌다.

“머리통에 총알 맞을라, 써.”

그걸 혜민이한테 던지는 사이, 안개를 빠져나온 불멸자가 날 발견했다.

놈은 반사적으로 총을 들었고, 난 변신족이 떨어뜨린 나이프를 던졌다.

훙 하고 날아간 나이프가 놈의 헬멧을 정통으로 맞췄다.

쩡!

헬멧을 반쯤 파고든 칼날이 내 괴력을 증명했다.

바닥을 기었다. 누가 봐도 놀랄 정도로 빠르게 기어 쓰러뜨린 놈의 곁에 가자, 다시 다른 변신족이 달려든다.

숨 쉴 틈도 없었다. 난 쓰러진 놈의 손목을 잡고 걸쇠에 걸린 놈의 손 위에 손을 겹쳐서 방아쇠를 당겼다.

투두두두.

변신족 놈이 옆으로 뛰며 탄을 피했다.

총구 방향 보고 탄을 피하는 건 기본기다.

난 놈이 피하는 걸 보며 반대쪽 손으로 불멸자의 품을 뒤졌다.

전투에 들어간 불멸자의 기본 장비가 테러 집단이라고 다를까.

있었다. 블러드 젝이.

두두두두.

연사로 놔둔 채로 기관단총을 갈기며 블러드 젝을 찾아 팔에 꽂았다.

차가운 액체가 혈관을 통해 몸에 흘렀다.

마저 품을 뒤졌는데, 더 쓸 만한 건 없었다.

그사이 육감과 직감이 경고성을 터트렸다. 난 머리통에 칼날이 꽂힌 불멸자를 들어 앞을 가렸다.

투두두두.

안개 따위로 불멸자의 모든 감각을 막을 수 없다.

공기의 파동, 청각 따위로 내 위치를 찾은 놈들의 총탄이다.

방패막이로 삼은 놈을 들어 총탄 세례를 막고.

혈관을 돌기 시작한 피를 느끼며 밑을 내려다봤다.

혈관이 자라고 신경 다발이 생기고 뼈와 살, 근육 따위가 다시 자라는 중이었다.

길어야 5분이면 충분했다.

반쯤 자란 다리를 보며 기척을 죽이며 뒤로 기었다.

뒤로 기면서 쓰러진 놈의 옷을 벗겼다.

조끼 형태의 방검방탄복이었다.

“입어, 총 맞으면 아프다.”

그것도 혜민이한테 던졌다.

내 뒤로 바짝 붙은 혜민이 말했다.

“……듣기는 했는데, 오빠, 진짜 잘 싸우는구나.”

“감탄하긴 이르지.”

말하며 숨을 고르고 회복에 집중했다.

수없이 다치고 잘리고 아파 본 나는 회복력 또한 집중력에 좌우된다는 걸 알았다.

빗발치는 총탄, 날 노리는 변신족.

“따란따도오오오!”

화가 잔뜩 나서 날 부르는 프로메테우스의 따란따도.

다 무시한 채로 집중했다.

재생은 고통이 수반된다. 난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아무리 잘 견뎌도 아픈 건 아픈 거다.

툭.

아직 근육이 완벽하게 구성되진 않았지만, 발바닥이 땅에 닿았다.

“후우.”

폭발의 여파를 완전히 해소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얼추 싸울 만한 몸은 됐다.

안개가 걷힌다. 그 안에 선 테러 집단의 병력이 보였다.

한쪽에 서서 날 노려보는 따란따도도.

그 모두를 보며 내가 입을 열었다.

“2차전 합시다.”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