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규격 외 혈통 천재-146화 (146/488)

146. 수수께끼는 풀렸다.

마윤은 원한을 잊지 않았다.

다만, 타이밍을 기다렸을 뿐.

“번번이 실패한 걸 자랑으로 삼을 셈은 아니겠지?”

그는 불멸교도 중 하나로 회동에 참석했고, 그 한마디에 상대방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럴 리가.”

“그럼 어쩔 텐가? 함께하겠나?”

“한다.”

애초에 그리 약속된 얘기였다.

프로메테우스, 불멸교.

둘은 전 세계에서 낙인찍힌 테러 단체다.

한국에서 큰 사고는 치지 않았다고 해도, 그들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하물며 최근에 화림에서 채간 정보는 이들에게 치명적이었다.

고로, 이들의 목적은 두 개였다.

하나는 이전에 빼앗긴 실험 결과의 탈취.

둘은 세계에 보내는 메시지다.

테러 단체는 테러를 목적으로 삼으니, 그 무력시위야말로 이들의 존재의의였다.

마윤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았다.

남명진이 마법사를 제 사무실에 불렀다. 심어 둔 사람이 발각되는 건 금방이었다.

각자의 입장과 이득, 정치적 우위, 존재의의의 증명.

조금은 다르지만, 또 조금은 비슷한 이유로 두 개의 테러 단체는 손을 잡았다.

마윤 상무는 거기에 개인적인 원한을 덧붙였다.

일부러 사람을 써서 유광익이란 놈의 모든 것을 샅샅이 파헤쳤다.

덕분에 희생한 게 한두 개가 아니다.

마윤은 유광익을 잡기 위해 이 일을 벌였다.

그 목적은 오롯이 원한이었다.

막 광익이 스티븐 최를 괴롭히던 밤에 일어난 일이었다.

다음 날, 테러 집단은 움직였으며.

같은 시각, 마윤은 기밀 중의 기밀이라는 요원의 개인 정보를 탈취, 광익의 집 앞에 섰다.

‘피눈물을 흘리게 해 주마.’

그는 유광익의 가족을 찾아서 하나하나 찢어 죽일 셈이었다.

* * *

남명진은 여러 가지 미끼를 뿌렸다.

마법사를 불러와 압박감을 심기도 했고.

유광익의 개인 정보를 빼내려 발악하기에 은근히 풀어 주기도 했다.

위험한 줄타기였다.

은밀한 거래로 정보도 교환했다.

그 대가로 얻은 건 스파이의 존재, 최미남 대리다.

그걸 알자마자 바로 내부 감사팀을 호출했고, 박다람 팀장을 비롯한 모두를 기다리는 사이 폭음과 함께 건물이 흔들렸다.

불길함이라 말할 것도 없었다.

디딘 발밑이 흔들릴 정도의 폭발이었다.

그건 즉, 이 빌딩 내부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의미였다.

“습격입니다.”

사장이 몸을 일으킨 순간, 비서가 들어와 상황을 보고했다.

테러 단체가 작정하고 힘을 모아 화림을 친 거였다.

“허.”

남명진은 오히려 그들을 비웃었다.

불멸특수대의 본부 위치는 아는 사람은 다 안다.

하지만 여길 건드리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특수종 병력이 집결된 곳을 치려면 그만한 각오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물며 이곳은 정부 산하 단체다.

여길 건드리는 순간, 올드포스의 집요함을 감당해야 했다.

“사내 방송 돌려, 전 병력 전투태세로.”

사장이 말했다. 비서가 곧바로 움직였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전장이 열렸다.

테러 집단과 불멸특수대의 전장이었다.

* * *

매혹 주문이란 무엇인가.

상대에게 호감을 강요하는, 정신 계열에 해당하는 주문이다.

그럼 쓰기만 하면 상대의 호감을 얻을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게 가능했다면, 세상은 오롯이 주문을 쓰는 특수종이 지배했을 테니까.

그만큼 사람의 마음을 얻는 건 어렵다.

그럼 어떤 종류의 사람이 써야 유용할까.

매력적인 사람.

적어도 일정 이상의 매력을 품은 자가 쓰면 유리할 것이다.

외모로 먼저 호감을 살 수 있다면 이후는 쉬울 테니까.

내가 본 탁월한 외모의 소유자는 여럿이다.

시발 팀장, 남명진 사장, 쌍남 형제, 최미남 대리, 정가의 가주.

순혈의 피를 이은 걸 넘어, 우월한 미모를 뽐내는 이들.

고로, 최미남 대리는 무엇보다 이 주문을 쓰기 유리한 포지션이었다.

아쿠아리움.

수족관을 운영한다고 농담 삼아 말했더니, 진짜 수족관을 차려서 사람을 부렸다.

이틀 동안 주문의 흔적을 찾은 게 넷이다.

아마도 더 뒤적거리면 더 나왔겠지.

정호남 과장은 최미남을 꺼렸다.

왜?

그는 기초라지만, 주문을 쓴다. 그게 아마도 최미남 대리를 꺼리게 만드는 계기가 됐을지도 몰랐다.

아니면 순혈 정가의 예민함이 준 직감이었을지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저 추측의 영역이다.

“매혹 주문에 완전히 걸려들면, 내가 하는 모든 일이 그 사람을 위한 일이라는 최면에 걸리기도 해.”

혜민의 말이 떠올랐다.

최미남 대리는 자신의 외모를 십분 활용했을 것이다.

그녀를 처음 봤을 때, 나도 마음이 움직였다.

이상형을 만난 기분이었다.

곧바로 아더사이드로 들어갔고 시간이 지난 뒤, 나는 그녀를 거절했다.

그때 그녀는 나에게 수작을 부리지 않았을까?

아니, 부렸다. 분명 주문을 걸었다.

다만, 걸리지 않은 거다.

스티븐 최가 나에게 영사기를 가져온 대가로 얼마를 받았다고 했더라.

나한테는 한 장, 그러니까 천만 원 받았다고 했지만, 그 작자는 능구렁이다.

그보다 더 받았을 것이다.

고작 영사기에 말 몇 마디 전하는 건데 그런 돈을 쓴다고?

내 소재 파악을 위해서?

이상했다. 그래서 의문이었다.

모든 상황이 머릿속을 헤집다가 정리된다.

왜 따란따도는 날 보려 했는가.

이제는 알 수 있었다.

최미남 대리가 나에게 매혹 주문을 걸었다면 그게 통했나 알고 싶었던 거다.

즉, 그들은 내 상태를 확인하고 싶었던 거다.

습격 전에 제 편에 돌아설지 아닐지, 그걸 위한 거였다.

혜민이 입사하던 날, 난 최미남 대리를 만났다.

그게 우연일까?

신입 마법사의 출현으로 그녀는 위기감을 느끼진 않았을까?

자신을 노리는 칼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을까?

그래서 내 몸에 남은 주문의 흔적을 걷어간 건 아닐까.

사무실로 내려와 팬더 대리에서 건네준 서류는 별거 아니었다.

“서류? 별거 아닌데.”

팬더 대리가 그리 말했었다.

굳이 분석팀에서 줄 내용도 아니었다.

강혜민의 인사발령서였으니까.

누가 전해 주든 문제없는 종류의 문서를 전해 주러 굳이 사무실까지 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날 보기 위한 핑계는 아니었을까?

이 추측이 맞다면 문제가 하나 남는다.

불멸자는 주문을 다룰 수 있을까?

“난 여덟 살 때부터 마법을 배웠어.”

혜민이 말했었다.

어릴 때부터 교육을 받고 마나를 다룰 줄 안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정호남 과장은 기어를 통해 주문을 다룬다고 했다.

그럼, 스펠 기어가 있다면 특정 주문을 쓰는 것도 가능하겠지.

또 다른 문제도 있다.

불멸특수대에 입사할 때, 테러 단체와의 접점이 있었다면 입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분석팀이 그 정도도 못 찾는 머저리들의 모임은 아니다.

다만, 어릴 때부터 마법을 배우고 애초에 이런 일을 위해 훈련받은 사람이라면 가능할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모든 것을 조작하면 가능하다.

즉, 최미남이 첩자다.

“아들, 정신이 꺾이면 몸도 꺾이는 법이다.”

아버지가 말했다.

지금 어디 계실까.

“몸이 튼튼하면 마음이 꺾일 일도 없지, 극기, 정신을 가다듬는 건 일단 몸부터 만들고 나서부터다.”

어머니가 말했다.

지금쯤 뭐하시려나.

“오라버니, 건강하시지요?”

박마리도 나왔다.

나야, 잘 지내지.

……빠! 과아익! 너어!

기억 너머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시끄러운 외침이었다.

“오빠! 유광익! 너 불멸자야! 안 죽어!”

불멸자는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

고로 지금 외치는 건 불멸자가 아니다.

여긴 불멸특수대인데, 왜 불멸자가 아닌 사람이 있나.

눈을 몇 번 깜빡였다. 뜨거운 액체가 흘렀다.

눈물은 아니었다. 진한 피비린내와 매캐한 화약 냄새가 났고.

다리의 통증이 뇌를 깨운다.

눈을 감았다가 떴다.

시야 반쪽이 보이지 않았다.

남은 시야 반쪽에 소리를 지르는 혜민이가 보였다.

그래, 나 안 죽는다.

난 혜민이를 보고 말했다.

“수수께끼는 풀렸다.”

할아버지의 명예는 지키게 됐다.

첩자는 최미남이다.

“깨자마자 웬 미친 소리야.”

어금니를 깨문 혜민의 얼굴에 검댕이 묻은 게 보였다.

“내 상태 어떻냐?”

내 눈으로 확인하기도 힘들었다.

“다리 한쪽은 복합 골절인 것 같고, 반신이 폭발에 휘말렸어.”

코트 입고 있었는데, 내가 그걸 어떻게 했더라.

아, 혜민이 위에 덮어 줬다.

다행히 헥사곤 필드와 내 몸이 방패가 된 덕에 혜민이는 무사했다.

다리 한쪽에서 피를 질질 흘리고 있긴 하지만, 이 정도면 양호하지.

예측할 수 없는 폭발이었다.

예상하지 못한 일격이었다.

혜민이까지 데리고 피할 구석이 없었다. 이게 최선이었다.

“이런다고 내가 반할 줄 아냐고, 난 벌써 예전에 반해서 또 안 반한다고.”

“넌 무슨 미친 소리야.”

손이 덜덜 떨렸다.

아무래도 몸 상태가 정상은 아닌데.

“매혹 주문에도 안 걸리고, 그렇다고 스카웃 제의도 거절하고. 뭐, 답이 있나. 죽여야지.”

간신히 고개를 돌렸다.

저 새끼가 누구더라.

사수의 방에 붙여져 있던 사진이 떠올랐다.

남성미가 물씬 풍기는 동남아인 남자.

날 스카웃하러 따란따도랑 같이 왔던 남자.

프로메테우스의 주력 중 하나.

사수가 말한 기피 대상 1호.

“따란따도.”

그 옆에 내가 따란따도라 부르는 여자도 보였다. 문제는 이 여자도 나를 따란따도라고 부른다는 거다.

“오늘 내가 몸살이 좀 나서 그러는데, 다음에 약속 잡고 다시 와라.”

내가 말했다.

그 말에 따란따도가 픽 웃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여유가 넘치네?”

“넌 이런 상황인데도 왜 이렇게 못생겼냐.”

“캿, 닥쳐!”

“말려들지 마라.”

기피 대상 1호가 나섰다.

“마지막으로 할 말은?”

그가 물었고.

난 곰곰이 생각하다가 답했다.

“딱 1시간 뒤에 대답하면 안 될까? 지금 진짜 컨디션이 안 좋아서.”

“제대로 미친놈이군.”

“그런 말도 종종 듣긴 하는데, 대낮에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폭발을 일으킨 테러범 입에서 들으니까 좀 그래. 내가 부끄러워. 공자 앞에서 문자 쓰는 격이잖아.”

“시간을 끈다고 달라질 건 없다.”

고막이 터져 버렸는지 소리가 먹먹했다.

그래도 들릴 건 다 들렸다.

사람들의 비명, 사이렌, 총격음.

1층에는 일반인도 꽤 있었을 텐데 말이야.

“난 보이지도 않나 봐.”

바로 옆에서 혜민이 눈에서 귀화를 토해 냈다.

진짜 파랗게 타오르는 눈빛으로 둘을 노려봤다.

“주문을 읊조리는 순간, 넌 죽는다. 네 아비의 얼굴을 봐서 놔줄 테니까, 꺼져라.”

“아, 우리 아빠를 알아? 염병, 그럼 좀 전해 줄래? 딸은 알아서 잘 컸으니까 내 일에 신경 끄시라고.”

“눈감아 주는 건 한 번뿐이다.”

혜민이가 시간을 조금 끌어 준 사이, 난 생각했다.

이 상황을 타파할 수십 가지 방법을.

사실 수십 가지까진 없다.

조력자의 도움을 기다리든지, 아니면 다른 수단……

탕! 땅!

을 강구할 참인데.

귀를 때리는 총격음이 들렸다. 소리와 함께 기피 대상 1호의 머리가 옆으로 꺾였다.

“……뭐야?”

혜민이 중얼거렸고.

난 상황을 파악했다.

탄이 날아왔고, 기피 대상 1호의 머리통을 후렸다. 후렸는데, 안 죽네.

피가 흐르긴 했다.

생채기 수준이었다.

불멸자에게 예민함의 피와 고속 재생의 피가 흐르듯, 변신족에게도 그런 순혈의 피가 있다.

그중 하나다.

강체의 변신족.

무섭도록 단련해, 제 육체의 강도를 강철처럼 단단하게 만드는 일족.

“안 아파?”

내가 물었고.

“아프지.”

기피 대상 1호는 대수롭지 않게 머리를 쓸어내렸다.

내 눈에 짜부라진 탄환의 형체가 눈에 들어왔다.

한번 보면 잊을 수 없는 형태다.

캐쉬 히포, 사수의 탄이었다.

탕! 탕!

총알 두 발이 더 날아왔고, 따란따도 여자는 옆으로 굴렀다.

기피 대상 1호는 귀찮다는 듯 팔을 들어 방패처럼 막았다.

땅! 땅!

망치로 쇳덩이를 후려친 듯한 소리와 함께, 다시 찌그러진 탄환 두 개가 바닥에 떨어졌다.

“나 원하네, 이 땅에 사는 원혼을 부르기를.”

그 틈에 혜민이가 주문을 읊었다.

저게 어떤 효과를 가져다줄지는 모른다.

그저 주문은 속으로 말하는 것보다 소리 내어 말하는 게 더 효과적이란 말은 들었다.

기피 대상 1호는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혜민이가 축구공이라도 된다는 듯 걷어차려 했다.

훙.

공기를 찢어발기는 발길질이다.

강체, 강철과도 같은 몸이다.

전신이 무기였다.

저걸 맞으면 혜민이는 죽는다.

막으려고 했다.

하지만 나보다 빠른 사람이 있었다.

탁, 쿵.

손바닥으로 발등을 밀듯이 흘린다. 흘린 뒤, 반대쪽 손바닥으로 기피 대상 1호의 배를 밀어쳤다. 중심이 흔들린 놈이 뒤로 몇 발자국 물러났다.

흘리고 치는 것, 시발 팀장의 특기였다.

그리고 내 앞에 선 건.

“괜찮냐?”

팬더 대리였다.

피가 무서워서 못 싸운다던 작자다.

“안 괜찮은데요.”

“그래, 혜민 씨는 일단 걔 좀 데리고 빠져 봐요. 난 저 친구랑 잠깐 상담이 있어서.”

“네?”

“뒤로 빠져요.”

팬더 대리가 말하고 내 앞을 막아섰다.

내 눈에 팬더 대리의 넓은 등이 보였다.

“너 살아 있었나?”

그리고 놀랄 일이 하나 더 일어났다.

기피 대상 1호가 팬더 대리에게 아는 체를 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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