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 진짜
“저 모르십니까? 이 바닥에서 저 모르면 간첩인데, 혹시 북한에서 오셨습니까? 그럼 또 전향자 특별 패키지가 있는데…….”
이 작자는 혀가 길다.
긴 혀에는 주먹이 잘 어울렸다.
주먹을 들고 이번에는 간장 치기를 할까, 아니면 작정하고 갈비뼈를 하나 부러뜨려 줄까 고민했다.
“때릴 거죠?”
“응, 계속 입 털면 그럴 거야.”
“진정하시죠. 폭력으로 모든 일을 해결하면 세상이 얼마나 슬프겠습니까?”
“맞은 너보다는 덜 슬플 듯.”
“아니, 진짜 저 헤드헌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데요.”
“진짜?”
“네.”
“진심으로?”
“네.”
그래, 맞지 않고는 못 배기지.
그리고 이 친구가 한 대 맞았음에도 왜 이렇게 뻐기는지도 알았다.
말로 시간을 끌면서 수작을 부렸다.
냄새가 났다.
육감의 영역 밖, 발동하는 무언가를 낚아챈다.
오감으로는 전혀 감지하지 못하는 순간, 놈의 몸이 분리되는 걸 느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
눈앞에 스티븐 최가 있었지만, 그 뒤에 하나가 더 생겼다.
난 멱살을 쥔 손을 놓고 앞에 있던 놈을 밀친 뒤, 뒤로 손을 뻗어 다시 놈의 멱살을 쥐었다.
이 작자는 나한테 잡힌 채로 분신, 인형 따위로 자신을 대체하는 그런 신비를 부렸다.
마법, 주문, 하여간 그런 종류의 힘이다.
곧, 먼저 있던 스티븐 최의 모습이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잡혔네.”
스티븐 최가 꽤 놀랐는지 중얼거리고는, 날 보고 물었다.
“어떻게 했어요?”
“잘.”
설명은 무슨.
난 놈의 뺨을 때렸다.
짝.
경쾌한 소리가 울렸다.
“악.”
비명을 지른 친구가 바닥에 널브러졌다.
그 앞에 쪼그려 앉은 채로 난 다시 물었다.
“너 뭐야? 뭐 하시는 분이세요?”
맞은 뺨 위에 손을 올린 스티븐 최의 동공이 떨렸다.
왜 불멸 앞에서 주문 쓰면 그냥 튈 수 있을 줄 알았어?
이제야 알겠다.
첫 만남 때 도망가는 걸 왜 못 잡았는지, 이쪽도 주문을 쓰는 종류의 특수종이니까.
그때는 내가 이걸 못 잡아챘으니까.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달랐다.
“와, 이걸 잡네, 우연이죠?”
말하면서 또 개수작을 부렸다.
발밑에 안개가 쌓인다. 그 안개가 어떤 효과를 보일지는 몰랐다.
그저 느꼈고, 움직였다.
머리끄덩이를 잡고 당긴 뒤, 바닥에 코부터 처박았다.
쿵.
“욱.”
갑작스러운 충격에 주문 발동은 실패, 모이던 안개가 흩어졌다.
머리끄덩이를 잡은 채로 올리자, 줄줄 코피를 흘리며 스티븐 최가 말했다.
“진짜 안 통하네.”
“재밌지? 한 번 더 해 봐. 이번에는 어디 한 군데 부러뜨려 줄 거니까.”
본래는 부러뜨리고 시작하려고 한 건데 봐준 거다.
“참으시죠. 안 합니다. 진짜 안 합니다.”
“그래서 너 뭐냐고.”
세 번째 질문이다. 이번에도 대답이 없으면 다리 또는 팔 중 하나는 부러뜨릴 생각이었다.
“진짜 헤드헌터입니다. 때리지 마세요. 올드포스와 엑스큐라시, 초능 협회에서 승인한 헤드헌터 회사 맞으니까.”
“거기에 마법사시고?”
“그건 부가적인 거죠.”
“으흠, 거기에 테러 단체랑 짝짜꿍하시고.”
“그쪽은 의뢰인이시고.”
막힘 없이 말하는 친구다.
나도 막힘 없이 주먹을 잘 쓰기에 그걸 어필했다.
“입으로 하는 대화가 싫으면 다른 쪽 대화를 더 해 볼까?”
폭력의 좋은 점은 몇 대 때리면 상대가 알아서 내가 원하는 걸 찾아 말한다는 거다.
“의뢰가 왔고, 그걸 실행한 게 다입니다.”
스티븐 최가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의뢰?”
“프로메테우스에서 광익 님을 모시고 싶어 하는 것 같더라고요.”
뭐, 그쪽만 날 원하는 건 아니다.
지금도 수없이 많은 회사에서 러브콜이 오니까.
하물며 엑스큐라시나 타국 정보기관, 알도 나한테 은근히 제 나라로 오길 바란다.
능력이 뛰어난 특수종을 바라는 건 당연하다.
개인의 힘이 군대의 힘을 뛰어넘는 시대다.
난 스티븐 최의 말을 이해했다.
테러 단체라고 해도 양지의 사업체를 갖고 있고 그 양의 탈을 쓴 채로 일을 한다.
그러니까 이런 스카우터도 쓸 수 있는 거고.
고로, 그가 한 일이 법에 저촉되는 일은 아니다.
다만, 내가 이런 제안을 받아들일 거로 생각했다면, 그건 문제가 있지.
조금만 머리가 있는 친구라면 이런 짓을 안 한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이 스티븐 최가 멍청하지는 않거든.
그러니까 이 양반은 개수작을 부린 거다. 진짜 목적이 나와 프로메테우스를 연결하는 게 아니란 거지.
그리고 저 미친 또라이 집단인, 불꽃을 가져오느니 마느니 하는 테러 단체도 진짜 날 데려오려고 이러는 건 아니겠지.
진짜 이 새끼들은 누굴 머저리로 아나.
내가 이 정도 머리도 못 굴리게 생겼나?
“쿨럭.”
말을 하다 말고 스티븐 최가 연신 기침을 토했다.
식은땀도 아까보다 더 흘리고.
“몸이 안 좋아? 왜 이렇게 땀을 흘려?”
물으니.
그걸 몰라서 묻냐는 눈빛이 돌아왔다.
“눈빛이 마음에 안 드는데.”
눈빛이 온순해졌다.
“마나 역류가 일어났습니다.”
“왜?”
다시금 ‘그걸 진짜 몰라서 묻냐’라는 눈빛을 보내려 하기에 미리 눈을 부라렸다.
“제가 몸이 좀 안 좋아서요.”
“그렇구나.”
난 자리에서 일어서며 스티븐 최의 몸을 끌어올려 줬다.
“다시 만나면 반드시 어디 한 군데 부러뜨리고 시작하려 했는데.”
“네?”
“그랬었다고.”
“아, 네.”
이 양반, 땀을 줄줄 흘려서 셔츠가 다 젖었다.
“술이나 한잔할까?”
사지를 부러뜨리는 대신이다.
나한테 와서 이런 어쭙잖은 짓을 한 이유를 듣고 싶었다.
“싫어?”
“아니요.”
파랗게 질린 안색으로 고개를 젓는 스티븐 최를 보며 난 어깨동무를 했다.
“그럼 가자고.”
내가 또 사내에서만 사교성이 좋은 게 아니다. 이렇게 외부에서도 친구를 사귈 줄 아는 사람이었다.
* * *
스티븐 최는 숙취에 시달리며 눈을 떴다.
‘아, 개새끼.’
일어나자마자 떠오른 얼굴에 절로 욕이 나왔다.
유광익, 불멸특수대의 떠오르는 신예.
그 일의 특수성 때문에 알려진 일이 적었음에도, 능력만으로 최근 가장 주목받는 이름이었다.
프로메테우스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그 작자를 주선해 달라는 말이 쉴 새 없이 나왔다.
“하.”
절로 한숨이 나왔다.
머리가 깨질 것 같아서 굴러다니는 생수병을 들고 위장에 쏟았다.
꿀꺽꿀꺽 타는 속에 물이 들어가니 그나마 좀 나은 듯하다가도 금세 머리가 빙글빙글 돌았다.
‘무식한 놈.’
마나 역류로 속이 뒤집힌 마법사에게 술을 먹여?
덕분에 지금 생사의 경계를 오가는 기분이 들었다.
양주를 나발로 불어넣은 수준으로 마셨다.
물을 마셨는데 술 냄새가 나는 기분이 들었다.
뭘 먹을 생각도 들지 않았다.
꾸역꾸역 바닥을 기며 화장실에 들어갔다.
뜨거운 물을 틀어 샤워기 앞에 서니 조금 나은 기분이 들었다.
‘미친 자식이잖아.’
본래 계획은 이게 아니었다.
자신의 능력을 보여 주면 대부분 요원은 자신과 친분을 유지하려고 했다.
지금 당장이야 불멸특수대에 몸 바치고 마음 바쳐 일할 것 같아도, 사람의 생각이란 건 언제 바뀔지 모르는 거다.
그래서다.
프로메테우스랑 연결해 줄 수 있다고, 넓은 인적 자원을 어필할 생각이었다.
그러니까, 이전에는 진짜 주선이었지만, 이번에는 나름의 노림수가 있었다.
그런데 씨알도 안 먹혔다.
그런 건 신경도 안 쓰고 일단 쥐어패고 이것저것 캐묻더니 술을 퍼먹이고 계산도 안 했다.
“하, 또라이 새끼.”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았다.
욕실에서 나와 몸에 물기를 닦고, 죽을 것 같은 속을 달래려고 배달 어플을 켰다.
그때, 메신저 알림 표시에 들어가 보니, 유광익이란 이름 석 자가 보였다.
[유광익] 또 보자, 반가웠어. 우리 친구 맞지? 앞으로도 종종 연락하고 안 하면 내가 찾아간다.
무시하고 싶지만, 무시할 수도 없었다.
캐면 캘수록 무서운 놈이다.
‘주문을 간파했어.’
어떤 불멸자가 그런 짓이 가능할까.
마법은 자신의 숨겨 둔 한 수였다.
그런데 안 먹힌다. 그게 끝도 아니다.
그 집요함.
“진짜?”
“네? 진짜로 그저 제 바운더리가 넓은 걸 보여 주려고 한 거라니까요.”
“에이. 한잔할래?”
뒈질 것 같은데 술을 권한다.
“저 만취했습니다.”
“그래서 못 마신다고?”
마셨다.
선택지가 없었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진짜?”
아, 시발 진짜라고.
생각과 달리 겉으로는 공손하게 말했다.
“네, 맞아요, 맞다고요.”
“진짜?”
저 진짜라는 말에 노이로제가 걸릴 것 같았다.
“그럼 그 미친 테러 집단은 왜 굳이 이 타이밍에 날 찾을까?”
광익의 마지막 물음, 그때 자신이 뭐라고 답했더라.
최근에 일어나는 일과 상황을 유추한 뒤 답했었다.
“소재를 파악하려고 했을 겁니다. 직접 나서는 것보다, 저 같은 헤드 헌팅 업체를 이용해 요원 소재를 파악하는 건 흔히 쓰는 수법이에요.”
“진짜?”
진짜 개자식이었다.
“으.”
어제의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을 것 같았다.
스티븐은 심호흡을 몇 번 거듭한 뒤, 답장을 보냈다.
아무리 음경 같은 자식이라도 이건 일이고 스티븐은 프로였다.
잘 들어가셨냐는 물음과 함께 즐거운 하루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그러자 답장이 왔다.
[유광익] 진짜?
스티븐은 폰을 벽에다 던져 버렸다.
* * *
“아, 속이 다 후련하네.”
“뭐가?”
요새는 출근하면 종일 혜민이랑 붙어 다닌다. 주문의 흔적을 찾아야 했고 그러려면 적당한 안내자가 필요했는데, 그게 딱 나였다.
우린 사내 편의시설을 안내한다는 명목하에 사무실 여기저기를 쏘다니는 중이었다.
“얄미운 놈이 있었는데 어제 잡았거든.”
“돈이라도 떼먹고 도망갔어?”
“그건 아니고.”
말하다 말고 혜민이 한 사람을 또 짚었다.
오늘만 벌써 세 번째다.
“저 사람?”
내 앞자리 대리였다.
항상 밝고 쾌활한 성격이고.
요한 형의 말을 빌리자면 노는 걸 좋아하지만, 사생활 관리 잘하고 일 잘하는 훌륭한 요원이다.
“전부 흐릿하긴 해.”
혜민이 읊조렸다.
중간에 누가 듣더라도 알 수 없게 주어는 쏙 뺀 말이다.
어제 퇴근길에 잡은 사람처럼 확실한 용의자는 아니란 거다.
팬더 대리에게 말해서 뒷조사나 하면 그만이었다.
“안녕하세요.”
지나는 길에 정호남 과장이 보였다.
“그래.”
인사만 하고 훅 지나친다. 발걸음이 바빠 보였다.
난 찝찝한 게 싫어서 일단 정호남 과장부터 짚었는데, 혜민이는 오히려 이쪽은 깨끗하단다.
주문의 주체자고 뭐 오브젝트를 활용하는 아주 초보적인 법칙만 구사한다는 못 알아들을 말을 하긴 했지만, 다행히도 용의선상에서 지워졌다.
“사귀나?”
이런 쓸데없는 질문을 하긴 했었다.
그 형도 이상하게 내 사생활에 관심이 많아.
“마나 역류라는 거 괴로운 거냐?”
어제 들었던 단어를 떠올리며 내가 물었다.
“아프지, 괴롭고.”
“그래?”
“응. 역류하면 요양 제대로 해야지.”
“그 상태로 술 퍼먹으면?”
“어떤 미친놈이 그런 짓을 해? 그럼 다음날 사경을 헤맬걸?”
몰랐네.
조금 미안해졌다.
그래도 다 제가 뿌린 씨앗이다.
돌아다니며 테러 단체는 왜 내 소재를 파악하려고 했을까 고민했고.
혜민이를 부른 사장의 속내도 궁금했다.
그저 첩자만 잡으라고 부른 걸까?
정말로?
스티븐 놈에게 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떠올리는 중이었다.
그렇게 막 1층 카페테리아에서 다시 올라가려는 참이었는데.
“어?”
혜민이 몸을 홱 돌렸다.
건물 출입구였다.
막 인포메이션 센터 앞에 선 사람이 보였다.
한 명은 아는 얼굴이다. 최미남 대리다.
“왜 몰랐지, 처음에 마주쳤었는데.”
혜민이 중얼거리는 사이, 난 알 수 없는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최미남 대리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 뒤에 후드를 눌러 쓴 사람이 둘.
그리고 순혈임이 분명한 외모를 뽐내는 남자가 하나 보였다.
그 셋 중 둘의 체형이 눈에 익었다.
“인식 장애가 걸려 있어.”
혜민이 말하며 손가락을 들었다.
“저 둘.”
가리킨 쪽은 후드를 눌러 쓴 둘이다.
“그리고 저 여자, 주문의 흔적이 아주 진해.”
혜민이 재차 말했다. 이번에 가리킨 건 최미남 대리다.
후드를 눌러쓴 둘을 단번에 알아보지 못한 건 주문의 힘이었을 거다.
그걸 알아챈 순간 오감을 집중했고, 난 둘 다 구면이란 걸 알았다.
하물며 한 명은 어제 홀로그램을 통해서 만나기도 했다.
“따란따도.”
내가 중얼거렸고 그 순간 최미남 대리와 눈이 마주쳤다.
“미안, 광익 씨.”
그녀가 읊조린 순간이다.
불길함 예감이 물리적인 형태로 다가왔다.
앞쪽에 졸졸 달리던 놈이 내 앞에 서류 가방을 던졌고, 그게 터졌다.
꽝!
폭음이 터지면 폭발의 폭풍이 밀려들었다.
난 반사적으로 코트를 벗어 혜민이를 감싸고 품에 안았다.
곧 내 뒤로 열기와 파편 조각이 날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