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 옆집 여자 사람
“……어, 응? 음? 앙? 잉?”
“광익 씨?”
뒤에서 미남 대리가 불렀는데, 들리지 않았다.
얘가 왜 여기 있지?
“신입 사원, 강혜민입니다.”
까만 원피스에 화장도 했다.
웨이브 진 머리칼이 어깨를 타고 내려왔다.
평소라면, 얼굴에 분칠한다고 달라질 건 없다고 쏘아붙였을 거다.
아파트 단지 내에서 만났으면 분명히 그랬을 건데.
“음.”
내 입에서는 짧은 음절의 외마디 말만 나왔다.
“너무 반가워서 말문이 막혀?”
혜민이 물었다.
아니, 너무 황당해서 말문이 막혀.
“진짜 아는 사이야?”
팬더 대리가 물었다.
“옆집 여자 사람 동생이요.”
반사적으로 답변했다.
“앞날을 약속한 사이죠.”
혜민이 옆에서 말했다.
“음?”
팬더 대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건 아니고.”
진정하자, 숨을 고르고 상황을 직시하자.
강혜민이다.
이번에 수능을 말아먹어서 앞으로 뭐 먹고 살까 걱정되던 옆집 여자 사람 동생.
내가 과외 선생이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은 학생.
하이킥을 잘 차는 맹랑한 꼬맹이.
난 멍하게 혜민을 바라보며 물었다.
“우리 회사 고졸도 가능해요?”
“넌 대학 나왔냐?”
팀장이 되물었다.
아, 나도 고졸이었지.
휙휙 사수가 내 눈앞에 손을 흔들었다.
“괜찮아?”
그리고 묻기에.
“네, 괜찮습니다. 그냥, 조금, 아니 많이 놀라서.”
아무래도 해명을 들어야 할 타이밍 같은데.
강혜민 이건 뭐가 그리 신나는지, 날 보고 해맑게 웃기만 했다.
그런데 꾸며 놓으니까, 꽤 예쁘장한 외모이긴 하다.
물론 얘는 외모보다는 성격이 문제였는데.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가식의 가면을 쓰고 싹싹한 척 구니, 그 성격도 안 보였다.
“이거 내일 오후까지요.”
뒤에서 미남 대리가 팬더 대리에게 서류철을 건네고 날 톡 건드렸다.
“광익 씨, 음, 나중에 봐요. 뭔가 되게 못 볼 걸 본 얼굴이네요.”
“네, 네, 대리님, 들어가세요. 아쿠아리움 운영 잘하시고요.”
나도 모르게 헛소리가 나왔다.
“네?”
“아닙니다.”
일단 수습하고.
미남 대리가 고개를 갸웃하고 나가고.
팀장은 그런 날 보더니 물었다.
“몰랐냐?”
촌철살인 같은 물음이었다.
“네. 몰랐습니다.”
난 진정 몰랐다. 옆집 사는 애가 마법사라니.
내가 놀랐건 몰랐건 간에, 신입 사원이 들어온 건 들어온 거였다.
“30분 뒤, 회의실에 모여.”
팀장이 말했다.
그 말을 듣고서 황당한 와중에도 난 불만을 표했다.
“왜 시발 안 해요?”
아니, 나한텐 했잖아.
그게 우리 팀 공식 첫인사 아니었냐고.
“시발, 됐냐?”
아니, 그건 나한테 한 거고 이 양반아.
혜민이가 내 옷깃을 잡아당겼다.
“많이 놀랐어? 우리 오빠.”
“야.”
“응?”
“마법사는 머리 좋아야 하지 않냐?”
왜 이 순간에 이게 궁금한지 모르겠다.
“좋아야지.”
혜민은 그저 웃었다.
* * *
이름 강혜민, 현재 나이 스물.
수능은 말아먹은 옆집 동생.
이게 어제까지 내가 알던 강혜민이었다.
그리고 회의실에 들어가기 전, 혜민은 나한테 간단하게 사정을 설명했다.
“속이려고 한 건 아니고. 결혼하면 말하려고 했지.”
“농담할 때냐?”
“하여간 난 여덟 살 때부터 마법을 익혔고, 사람들에게 정체를 들키면 안 되니까 시선을 끄는 일은 자제하며 살았어. 끝.”
자제한 게 그 정도였니?
우리 동네에서 ‘하이킥 강혜민’ 하면 모르는 양아치가 없을 텐데.
팔짱을 낀 채로 그녀의 말을 들었다.
놀람은 가셨다.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눈앞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담담히 받아들여야 한다면 그렇게 하라고.
난 그렇게 했다.
강혜민은 마법사다. 그리고 이제까지 날 속였다. 속였는데.
“오빠도 불멸자인 거 말 안 했잖아.”
“내가 불멸자인 건 어떻게 알았어?”
“불멸은 마법으로 잡고, 변신은 초능으로 잡는다. 이런 얘기 못 들어 봤어?”
들어는 봤다.
네 종류의 특수종을 두고 하는 얘기다.
마법의 특별함은 불멸자에게 치명적이고.
초능의 다양성은 변신족을 잡기 좋다는 말이다.
전투 능력 자체는 불멸자와 변신족이 우월할 수밖에 없기에 나온 말이다.
물론 이 말도 전부 케이스 바이 케이스다.
마법사가 불멸자의 천적은 아니라는 거다.
“그게 무슨 상관인데?”
“마법을 다루는 사람에게 특수종이 정체를 숨길 순 없다는 말이지. 특히나 불멸자는.”
속였다고 하지만, 사실 혜민이 처지에서야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제 정체를 쉬이 밝힐 수 없었으리라.
이해가 필요하면 이해를 해야 한다.
아버지의 가르침이 거듭 떠오를 정도로 놀랄 일이긴 하지만, 난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래, 알았다.”
그리고 상황을 받아들였다.
“음? 속였다고 화 안 내?”
“화는 무슨.”
내가 화를 낼 처지냐고.
이미 난 불멸과 변신의 혼혈이라는 걸 숨기고 사는 중인데.
“됐어. 오케이, 너 마법사인 거 알겠는데 입사는 어떻게 한 거냐?”
“그건 회의실에서.”
팀장이 30분 뒤에 회의실로 모이라고 했었다.
“그래, 가자.”
팀장은 뭔가 아는 눈치 같았다.
그렇게 신입 사원 포함 총 다섯 명이 된 3팀은 회의실에 모였다.
문을 닫으면 완전 방음이니, 밖으로 소리 새어 나갈 염려는 없고.
홀로그램 프로젝트를 켤 필요도 없었다.
딸깍하고 LED 등을 켜고 자리에 앉았다.
안쪽에 앉은 팀장이 혜민이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혜민이 일어났다.
“일단 제 소개를 하려면 마법 연맹에 관해 먼저 말해야 할 것 같네요. 현재까지 특수종 세계에 알려진 연맹은 총 네 곳이에요.”
유럽에 터를 둔 일루미나티.
러시아에 기조를 둔 싸우는 시인.
미국의 갤럭시.
아시아 연합의 써클.
알려진 연맹은 넷, 하지만 마법사가 전부 연맹에 속한 건 아니었다.
“저는 전승으로 이어져 온 마법사라서 연맹 소속은 아닙니다.”
불멸자의 직감은 예리한 법이었다.
말이 입사지, 혜민이가 온 건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이유 없는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제가 여기 온 이유는 위장 취업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설명이 꽤 부족했다.
“……위장 취업?”
팬더 대리가 고개를 모로 꺾었다.
팀장이 톡 하고 책상을 주먹으로 쳐서 주의를 끌었다.
“간단하고 단순하게 설명한다. 이전 마윤 상무 탈취 사건 당시, 어떻게 상대가 그 루트를 알았을까?”
그 한마디를 듣는 순간, 알아서 머리가 돌아갔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첩자군요.”
사수가 말했다.
불멸특수대 경력이 원데이, 투데이도 아니고.
특히나 프로메테우스와 관련된 일이라면 사수는 언제나 진지했다.
사수의 말이 맞았다.
“맞다. 보안팀, 분석팀, 그것도 아니면 감사팀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사내 첩자를 찾는다. 이건 비공식 작전이다.”
혜민이 보고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자, 알아서 머리가 돌아갔다.
첩자를 찾는 데 마법사를 불렀다는 소리다.
왜? 우리 힘으로 찾을 수 없었으니까.
즉, 불멸자의 감각이나 주기적으로 초능력자를 통해 살피는 거짓말 탐지로도 알 수 없었다는 것.
곧, 예민함이나 초능력을 피해갈 능력을 썼다는 결론이고, 그런 능력이라면 마법밖에 없다는 거다.
의문이라면 하나뿐.
“왜 우립니까?”
본래라면 이 일은 내부감사팀이 해야 할 일이다.
박다람 팀장이 할 일 중 하나라는 거다.
“이전에 불멸교도 중 하나가 그 팀에서 나왔잖아. 거긴 안전 구역이 아니다.”
내 속내를 눈치챈 팬더 대리가 말했다.
거기에 다른 이유도 있을 거다.
우리 팀은 마윤 상무를 잡는 공적을 세웠다.
상무의 지위에 있는 불멸교도 색출.
그 일은 우리 팀, 정확히는 내가 용을 써서 이룬 일이다.
팀장, 팬더 대리, 사수 전부 연관된 일이기도 하고.
고로 공적을 세운 우리 팀은 첩자 청정지역이란 거다.
“첩자는 마법을 쓴다.”
내 사고의 과정이 맞다는 걸 증명하듯 팀장이 말했고, 자연스레 난 한 명의 이름이 떠올랐다.
정호남.
내가 아는 불멸자 중에 유일하게 마법과 연관된 이였다.
설마.
지금 생각한다고 결론이 나올 일이 아니다.
“그럼 넌 진짜 취업한 게 아니네?”
생각을 접고 혜민에게 물었다.
“아니지. 공식적으로 활동하려면 신분이 필요하니까 들어온 게 다야.”
그럼 미리 말 좀 해 주지 그랬냐? 어차피 알게 될 거.
“그리고 공식적으로 마법사와 정부가 손잡은 그림도 그렸겠지.”
팀장이 말을 덧붙였다.
“네, 그렇죠. 이제 우리도 양지로 나갈 때가 됐다는 윗분들의 판단이겠죠.”
혜민이 답했다.
“회의는 여기까지. 마법과 연관된 사람을 찾으면 이쪽 마법사 아가씨가 말해 줄 거고, 우리는 그 자를 관찰한 뒤, 되도록 생포할 거다.”
팀장이 말하며 해산하라는 듯 손을 저었다.
“공식적으로는 네 후임이니까 일은 광익이 네가 가르쳐야겠다.”
팬더 대리가 말했고 난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서 내선 전화 받는 법 알려 주고, 작전 상황 발생 시 필요한 작전 용어도 알려 줬다.
“와, 나 살짝 두근거린다.”
혜민이 말했다.
“뭐가?”
“막 내가 야근하면 오빠가 도시락 가져와서 같이 먹고 그럴 거 아니야.”
“내가?”
“응.”
“그런 사이야?”
파티션 건너편 2팀 대리가 말했다.
“아니요. 아닙니다. 동네 옆집 여자 사람입니다.”
대리가 날 보고 눈웃음을 보였다.
다 안다고, 괜찮다고 그렇게 말하려고 하는 것 같길래.
“진짜 아니라고.”
강하게 어필했다.
“알았다. 거, 불멸자 잡겠네.”
이 양반은 왜 툭툭 끼어드는지.
“사이 좋아 보여서 좋네.”
팬더 대리가 옆에서 말했다.
“사이 안 좋습니다. 옆집 여자 사람이라니까요.”
“그래. 알았다고.”
“감사합니다. 이동훈 대리님, 그리고 취존합니다. 저도 그 애니 되게 재밌게 봄.”
혜민이가 말하며 팬더 대리 책상에 있는 피규어를 가리켰다.
“오, 너 뭘 좀 아는구나.”
“제가 또 마법사잖아요. 마법사물 매니아죠.”
피규어가 무슨 망토를 둘러쓰고 있긴 했다.
나는 뭔지 모르겠지만.
“새삼 환영해. 혜민 씨.”
“저도 이렇게 좋은 팀원분이 있어서 너무 좋아요.”
쿵짝 한번 잘 맞네.
얘는 나랑 있을 때는 맨날 질질 새는 바가지던데, 여기서는 왜 이렇게 안 새는지.
“여기로 들어가면 인트라넷이고, 공지는 매일 확인해라.”
난 무시하고 할 일 했다.
혜민이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슬쩍 사수한테 말을 걸었다.
“김정아 대리님.”
“왜?”
“저녁 같이 드실래요?”
“오늘?”
“네, 약속 있으세요? 오빠도 같이 갈 거예요.”
“오빠 아니고 대리.”
사수가 호칭을 정정했다.
“아, 맞다.”
혜민이가 말하며 제 머리를 꽁 때린다. 얘 지금 귀여운 척하는 건가.
주먹이 나갈 뻔했다.
속이 안 좋아졌다.
“그래.”
사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혜민이는 그걸 보고 방긋방긋 웃었다.
“나는?”
팬더 대리가 끼어들었다.
“대리님은 내일 드시죠. 헤헷.”
혜민이 말끝마다 웃음을 흘린다.
난 조용히 혜민이 컴퓨터 메모장을 켜 톡톡 타이핑을 했다.
[가증스럽다. 작작해라.]
혜민이는 그걸 힐끗 보고 지워 버리고는 그 밑에 적었다.
[신경 꺼라. 내 남자.]
누가 네 남자야.
이게 미쳤나.
이렇게 극구 부인했음에도 벌써 무슨 소문이 돌았는지, 메신저에 불이 났다.
[강푸름] 진짜냐? 여자친구?
이 새끼는 다이어트 성공했다면서, 얼굴 보기 참 힘들다.
옆집 여자 사람이라고 말해 줬다.
그 외에 표현할 말이 없었다.
[방귀태] 이제 미호에게 마수를 뻗치지 않는 거지?
애초에 안 뻗쳤다. 이 양반아.
[정기남] 집에 데려오면 죽여 버릴 거다.
얘는 왜 이래.
[우미호] 확실히 해라. 분석팀에서 네 여자친구 맞냐고, 확실한 정보냐고 자꾸 묻는다.
그게 분석팀까지 올라갈 사안이었냐?
[김요한] 애도 있다며?
아니, 소문이 어떻게 퍼지는 건데.
왜 애가 생기는데.
난 충실하게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서 답장을 보냈다.
옆집 여자 사람이라고.
그냥 아는 동생이라고.
혜민이는 첫날에는 사수와 나랑 같이 저녁을 먹고.
다음 날에는 팬더 대리와 점심을 먹고 저녁은 팀장과 먹은 뒤, 회의실로 우리를 불러 모았다.
신입 사원이 회의를 소집한 셈인가?
쫄레쫄레 그 말에 따르는 팀장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일단 네 분은 전부 깨끗하네요.”
혜민이는 회의실에 모인 우리를 보고 말했다.
“테스트한 거였냐?”
내가 물었다.
“내 안위가 걸렸으니까.”
혜민이 말했다.
이곳에 내가 아는 강혜민은 없었다.
내가 알던 옆집 여자 사람은 마법사가 되어 나타났다.
여덟 살 때부터 마법을 배웠다던 혜민에게서 프로의 냄새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