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 내가 그동안 기남이를 너무 괴롭혔나?
강태환 전무는 사람을 쓸 줄 알았다.
사실 간단한 원리였다.
돈을 원하면 돈을 주고.
명예를 원하면 명예를 준다.
그것도 안 되면 약점을 잡는다.
반면, 김동철 이사는 사람이 너무 물렀다.
‘인간미로 설득하다니.’
그나마 이번 일 하나는 제대로 하긴 했다.
남명진 사장의 눈을 피해서 유광익과 가까워지려 한 거니까.
그래서 알게 된 게 있다.
지금의 유광익은 품을 수 없다는 거다.
이계에서의 활약도 문제지만, 노필두를 잡았다.
이미 품에 안기에는 너무 커 버렸다.
남명진이 어지간한 머저리가 아니고서야 저런 인재를 놔줄 리 없다.
그래서 방법을 달리했다.
‘남명진과 경쟁할 필요가 있을까?’
좋은 인재라면, 그 인재를 밑에 두고 싶다면 방법은 많다.
일단 숨기면 된다. 화림이 아닌 다른 곳으로 보내고 필요할 때 다시 불러들이면 된다.
‘다시 못 부르게 된다면?’
아깝다. 속이 쓰리다. 그럴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지금은 놔두면 상대 파벌의 힘이 될 뿐이다.
하물며 그냥 놔두면 화림이 문제가 아니라 불멸특수대 전체를 뒤흔들 만한 인재였다.
나중에 불러오면 좋은 거고.
실패해도 괜찮다는 거다.
어차피 유광익은 자기 사람이 아니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제가 더 나서서 그 친구와 계속 관계를 유지…….”
김동철 이사가 떠드는 소리 사이로, 딸깍- 하고 구슬 굴리는 소리가 울렸다.
강태환은 웃으며 김동철 이사의 말을 끊었다.
“괜찮습니다. 고생했어요. 가 보셔도 좋습니다.”
“포기하시는 겁니까?”
“포기라니요. 쉬운 길을 놔두고 돌아갈 필요가 없는 것뿐이죠.”
김동철은 강태환과 한배를 탔지만, 이런 방식의 일 처리를 좋아하지 않았다.
“가 보세요.”
그렇다고 해서 할 말이 있나.
자신은 그저 시키는 대로 하는 회사의 부속품일 뿐이니.
유광익은 난다긴다하는 순혈의 천재보다 뛰어나다.
그 뛰어남이 독이 될지도 몰랐다.
김동철은 그리 생각하며 전무의 방을 나섰다.
강태환은 남명진의 한계를 알았다.
일선에서 뛰었기에 인정받아 앉은 자리가 현재의 보직이다.
그의 힘은 화림에 국한되어 있다.
하지만 자신은 아니었다. 외부, 그것도 상부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몸이다.
남명진이 놔주지 않으려 한다면, 그보다 윗선을 쓰면 된다는 거다.
“박 차장님 연결 부탁합니다.”
비서에게 말하고 수화기를 들었다.
지금 전화하는 곳은 행정안전부, 한국 정부 권력의 핵심이다.
그중에서도 박호 차장은 특임대 관리자였다.
불특대와 특임대는 같지만 다르다.
상대를 설득해서 자리를 옮길 수 없다면 명령하면 된다.
“네, 박호입니다.”
“저 강태환입니다.”
“네, 별일 없으시죠?”
사무적인 인사가 오가고, 강태환은 본론을 꺼냈다.
“부탁 하나 하죠.”
“네, 말씀하십시오.”
“사람 하나 뽑아가 주시죠.”
특임대라고 해서 불특대의 요원을 멋대로 차출할 수 없다.
다만, 이 일에 권력자의 손이 끼어든다면 달라진다.
학연, 지연, 혈연으로 이어지는 루트는 권력의 핵심 아닌가.
“누구요?”
박 차장의 말투가 투박해졌다.
강태환은 수화기 너머로 그걸 느꼈지만, 무시했다.
“유광익 대리요.”
“하.”
박 차장이 탄식을 뱉었다.
이 새끼가 돌았나.
아무리 행정안전부 차장이라고 하지만, 자신은 화림의 전무이자, 권력자의 핏줄을 이었다.
강태환은 짜증을 참았다. 머릿속에 든 말을 뱉지 않았다.
부탁하는 건 자신이었다.
뭐라고 해도 이 작자는 자신의 말을 들어야…….
“안 돼요.”
뭐? 음?
“……안 된다고?”
말이 짧아졌다.
“네, 그, 어지간하면 건들지 말라는 지시입니다.”
“누가?”
“누구긴 누굽니까. 위에서지.”
“아니, 나보다 위가 누굽니까?”
강태환의 말이 빨라졌다.
“알고 싶어요?”
박 차장이 물었다.
그 윗선의 이름을 들은 박 차장은 꿀꺽 침을 삼키고 전화를 끊었다.
‘뭐 하는 놈이냐, 넌?’
뒷배가 누구기에 행정안전부 장관이 움직인단 말인가.
* * *
올드 포스는 세계 정부 연합이다.
그렇다고 해서, 권력의 중심이 바뀐 건 아니다.
“약속 지켰다, 유 팀장. 근데 네 아들 뭐야, 대체?”
노필두를 잡은 건 비밀이다. 그렇다고 해서 누구에게나 비밀인 건 아니다.
비밀은 소수가 알기에 가치가 있는 법이니까.
유연호는 장관을 보며 말했다.
“아들이 아들이지, 뭐긴 뭡니까.”
“아니, 노필두를 때려잡았다면서. 걔 각성한 지 얼마나 됐는데?”
“2년 조금 안 됐죠.”
“2년 차가 인간 벌목꾼을 잡아?”
유연호도 놀랐다.
아들이 바라는 걸 알기에 불멸특수대에 넣었다.
그 아이가 바라는 대로 살길 바랐다.
그나마 위험하지 않은 곳으로 가길 바랐는데.
작정하고 위험한 작전만 찾아간다.
‘이레귤러.’
그래, 혼혈치고는 좀 괜찮은 능력일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순혈의 불멸자를 때려잡고 S급 변신족을 후려잡아?
유연호는 아들의 행적을 훑었다.
가관이었다.
얌전히 사무직에 종사할 거로 생각하진 않았다.
인베이더나 몇 마리 잡으며 경험이나 쌓겠거니 했다.
무심해서 이제껏 찾지 않은 게 아니었다.
불멸특수대에서 떠오르는 신입이란 소리는 진즉에 들었다.
특임대에서 관심 있게 본다는 것도 알았고.
다만, 일이 바쁜 와중에 신입 하나하나의 행적을 파고들 틈은 없었다.
작정하고 본 건, 이름이 들려서다.
‘동대문의 구원자’란 별명 뒤에 붙은 ‘불멸특수대 유광익’이란 이름.
아들은 이레귤러 수준을 넘었다.
갖가지 사건 기록만 봐도 이건 뭐, 먹이사슬을 파괴하는 수준이다.
그게 유연호의 판단이었고.
그럼 자기가 할 일도 알았다.
외압 따위 무시하게 해 주는 거다.
다행히도 자신에게 그만한 힘이 있었다.
“저도 놀랐습니다.”
솔직히 답하니.
“거참.”
장관이 혀를 찼다.
그래, 아버지가 놀랄 정도니, 모르는 사람이 보면 얼마나 놀라겠나.
유연호는 뿌듯함과 씁쓸함을 동시에 느꼈다.
걱정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다만, 그저 바라길.
‘너무 험한 곳만 가지 마라.’
물론 아들이 위험하다는 소리를 들으면 당장 일이고 뭐고 달려갈 것이다.
그래도 아들이 스스로 크고 자라날 기회까지는 뺏을 수 없다.
딜레마다.
아들의 안전을 바라면서도, 그 아들이 바라는 대로 높은 곳을 향해 날아가길 바라는.
“아들 잘 키웠네?”
씁쓸함 위로 뿌듯함이 고개를 들이밀었다.
“그러니까요.”
장관이 불멸자의 미래라며 아들을 치켜세웠다.
유연호는 그 말에 동의했고, 팔불출이란 소리를 들었다.
그날 저녁 퇴근 한 유연호는 아내에게 말했다.
“우리 광익이, 잘 키운 거겠지?”
“누구 아들인데요.”
아내는 아들을 모른다. 불멸자인 아들을.
입 밖으로 비밀을 토설하고 싶었다.
그래도 될까? 아내가 이해해 줄까?
모른다. 불확실한 미래보다 현재의 삶이 더 중요했다.
“그냥 튼튼하고 건강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어.”
“걱정은, 애 다 컸어요. 이제 우리 품 벗어날 때도 됐죠.”
강슬혜는 아들이 변신족임을 안다.
변신족에게 건강을 빼면 뭐가 남을까.
책상에 앉아서 펜대만 굴리기에 아까운 몸이기도 했다.
기회가 된다면 변신족의 힘을 더 기르게 해 줄 것이다.
물론 지금은 아니다.
나중에, 아들이 진정 자신이 바라는 삶을 갈망하는 순간이 온다면.
그때는 그리할 것이다.
강슬혜는 그 순간이 늦게 오길 바랐다.
그녀는 남편과 눈을 마주치며 생각했다.
“가끔은 걱정이 앞서.”
남편이 입을 열었다.
강슬혜는 속이 쓰렸다.
남편은 아들을 모른다. 변신족인 아들을.
비밀을 말해 주고 싶었다.
이해해 주지 않을까?
그러다 자신의 처가를 알면? 그 이상을 알면?
남편은 자신이 처가와 척을 지고 산다는 걸 안다.
가끔 외할아버지라는 이름으로 광익이한테 용돈이 와도, 강슬혜는 언짢아했다.
남편은 그런 자신을 배려해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나중에.’
강슬혜는 비밀을 안고 살기에 가슴이 아팠다.
그리고 그건 유연호도 마찬가지였다.
* * *
세계 정부 연합은 국제수배범의 현상금을 취급하기도 한다.
올드 포스가 건 노필두의 현상금은 6억 하고도 8,640만 원.
우리 고(古) 노필두 선생께서 정부에만 해악을 끼친 게 아니었다.
엑스큐라시에서도 현상금을 걸었다.
이쪽은 돈 많은 집단답게 스케일도 컸다.
현상금 24억 2,110만 원.
외화를 한화로 바꾸다 보니, 잔돈이 붙긴 했는데.
이걸 잔돈이라고 해도 될까.
불멸특수대 소속이고 지원을 받아 싸웠기에, 이 현상금은 본래 팀에게 분배돼야 맞았다.
그랬는데.
“내가 한 게 뭐가 있다고. 그건 유광익 사원, 아니 대리에게 전부 가는 게 맞습니다.”
박필로 팀장은 좋은 말로 거절했고.
“제 목숨을 구해 줬어요. 현상금은 바라지도 않죠.”
적절한 이유로 음색 깡패 동기도 거절했다.
이 친구는 집이 부유하거나 양심이 부자이리라.
덕분에 모든 현상금은 전부 내 것이었다.
국내 세법상 15%의 세금을 떼지만, 난 하루아침에 부자가 되었다.
근데 이걸 부모님께 어떻게 말하지?
의문과 동시에 해답이 나왔다.
굳이 말할 필요가 있나?
일단 나중에 말하자. 아버지한테는 말해도 되겠지만, 어머니한테는 아직이다.
근데 아버지는 내가 불멸특수대에서 한 일을 알까?
저번에 기척 돌리기를 알려 주신 걸 보니까, 대강 눈치채신 것 같기도 하고.
생각이 길었다.
머리를 털어내고 상체를 일으켰다.
문밖에 현관으로 향하는 룸메이트가 보였다.
“기남아.”
“친근한 척 부르지 마라.”
기남이는 날 쳐다도 보지 않고 답했다.
“어이! 2급 사원 진급을 축하한다. 사원 나부랭이 정기남.”
“염병할.”
기남은 정겨운 인사를 남기고 밖으로 나섰다.
자식, 부끄러워하기는
나도 씻고 먹고 출근했다.
아침은 간단하게 식빵 두 봉지로 때웠다.
유기농 딸기잼이 달콤하니 혀를 즐겁게 했다.
“룰루랄라.”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이런 게 바로 금융치료라는 건가.
직살나게 고생하긴 했다.
노필두를 맞이했을 때는 식겁하기도 했다.
그런데 결과만 보자면, 흡족하기 짝이 없지 않나.
사실 죽을 정도로 위험한 건 아니었다.
수틀리면 냅다 튀면 되는 거였으니까.
박필로 팀장과 우리 음깡 동기가 안 왔으면 그러려고 했었다.
“좋은 아침.”
팀에 들어가며 밝게 인사하자, 미리 출근한 사수가 고갯짓으로 인사했다.
“사수, 오늘따라 미모가 눈부시네요.”
세상은 밝고 아름답다.
내 통장은 더 아름답고.
“좋은 일 있어?”
팬더 대리가 출근하며 묻기에 눈웃음을 지었다.
“대리 유광익, 하루하루가 행복한 남자죠.”
“현상금 들어왔구나?”
곰 주제에 눈치가 비상하다.
“점심에 소고기 콜?”
여유가 사람을 만드는 법.
“콜.”
팬더 대리가 답하고.
“콜.”
사수가 조용히 덧붙였다.
“나도 콜.”
건너편 대리도 말했다.
“우리 팀 회식에 그쪽이 왜 낍니까?”
내가 피식 웃으며 말하자.
“우리 사이에 이러기야?”
외부 보안 2팀 대리가 치정극에 나와야 할 대사를 읊는다.
“우리 사이?”
내가 고개를 갸웃했다.
“너 왜 껴?”
치정극을 사랑하는 대리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팬더 대리가 나섰다.
눈을 부라리니, 옆 팀 대리가 꼬리를 말았다.
“농담입니다. 농담.”
“야, 너 우리 팀 갈구냐?”
2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찍 출근하셨네.
“아니, 갈구는 게 아니죠. 이건.”
“이 새끼가.”
“남의 새끼한테 불만 있냐?”
팀장도 출근했다.
그가 걸어오며 상큼한 인사를 건넸고.
“넌 애들 교육을 어떻게 시키…….”
말을 하다 말고, 2팀장이 날 한번 보고 제 팀을 둘러보더니 말을 바꿨다.
“너희는 무슨 죄수 호송도 실패하냐? 새끼들아.”
애꿎은 원망의 화살이 돌아갔다.
그래, 교육을 어떻게 시키긴.
잘 시키지.
물론 시발 팀장이 잘났다기보다는 이 몸이 잘났기 때문이다.
“좋냐?”
팀장이 물으며 지나갔다.
그는 근래 내 옆을 지나갈 때면 신경을 곤두세웠다.
이전에 기척 돌리기로 발이 걸려서 꽤 신경 쓰이나 보다.
“세상은 밝고 아름다우니까요.”
물론 그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건 내 통장이다.
“저거, 또 저러네.”
팀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들어갔다.
평온한 하루였다. 더없이 평온했다.
동기 전부에 기프티콘을 쏜 뒤, 플렉스 유광익이란 별명을 얻었고.
딱히 할 일이 없어서 난 빌딩을 검색했다.
“뭐하냐, 너?”
팬더 대리가 물었고.
“건물 하나 사려고요.”
상큼하게 답했다.
“스케일 보소.”
팬더 대리는 진심으로 날 부러워했다.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띠리링.
사내 전화가 울렸다.
받으니, 1층 인포메이션 센터다.
“네, 1급, 아니 대리 유광익입니다.”
아직 직급이 입에 안 익었다.
“네. 1층 리셉션인데, 손님이 오셨어요.”
“누구요?”
“순혈 정가의 정수라 씨라는데요.”
정수라? 그 누나가 왜 와?
“저 잠깐 밑에 내려갔다 오겠습니다.”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팬더 대리가 답했고, 곧장 1층으로 내려갔다.
곧 1층 로비에 앉은 정수라가 보였다.
그녀가 화장기 진한 얼굴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공문 갔지? 우리 가주님이 좀 뵙고 싶어 하셔서.”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하던가.
이 순간, 난 뜬금없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동안 기남이를 너무 괴롭혔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