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 미친 이레귤러
이중봉은 급히 움직였다.
덕분에, 어떤 지원팀보다 빠르게 현장에 도착했다.
그의 뒤로 이동훈과 김정아가 따라온 건 당연했다.
“전 서포트만…….”
뒤에서 동훈이 입을 열다 말았다.
전장에 합류하는 것보다 당장 건물 후면에 별동대로 들어가는 게 낫다는 판단에 고른 루트였다.
그렇게 가던 중에 전투가 벌어졌다는 걸 알아채고 달려와 본 광경이 있었다.
그들의 눈에 들어온 건, 머리 잃은 시체와.
“미친, 미친, 미친.”
박필로가 놀라서 넋이 빠진 모습과.
“……이러면 반하지.”
바로 옆 나무 위에서 내려온 요원 하나다.
무엇보다 그 시신 앞에 선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후아, 이번에는 고생 좀 했다. 그죠?”
유광익이 말하며 제 무기를 챙기고 절뚝거렸다.
그렇게 대여섯 걸음 절뚝거리다가 이내 다 나았는지 제대로 걸었고, 이중봉의 얼굴을 발견하고 고개를 갸웃한다.
“에? 지원 왔어요?”
대답이 쉬이 나오질 않았다.
눈썰미 좋은 이동훈이 시신을 눈여겨보며 입을 열었다.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바닥에 떨어진 도끼 두 자루, 변신족, 현재 벌어진 상황, 모든 걸 종합한 뒤, 동훈의 입이 열렸다.
“저거 노필두냐?”
“네? 네.”
말하며 광익이 떨어진 정글도를 주워 왔다.
“에고 삭신아. 뒈질 뻔했네.”
아무렇지 않게 말해서 충격이 뒤늦게 왔다.
하물며, 그 이중봉 또한 입을 다물었다.
“팀장님도 왔네.”
평소라면 광익의 말꼬리를 잡아 난리 칠 타이밍에 이중봉은 묵묵히 노필두의 시신을 바라봤다.
“진짜 죽었냐?”
이중봉의 물음에 김정아가 발로 노필두의 시신을 걷어찼다.
머리가 잃은 채로 서 있던 변신족의 육중한 몸이 쿵 소리를 내며 쓰러지고, 힘이 빠진 육신의 털이 빠져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머리 없는 시신이지만, 그 몸에 남은 흔적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노필두다.
1급 현상 수배범이자, 테러범, 프로메테우스가 자랑하는 칼.
이중봉 자신과 견줘 싸울 만한 S급 변신족.
“죽었습니다.”
김정아가 시신 상태를 확인하고 말했다.
노필두는 변신족이다. 목이 잘리고서도 살아남을 수는 없다.
“니가 죽였다고?”
중봉이 물었다.
광익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죽자고 덤비길래.”
“박필로 팀장.”
“네?”
박필로에게 평소의 냉철함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그도 놀랐다. 몹시 놀랐다.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 좀 부탁하지.”
“하울링에 몸이 굳었는데, 광익이는 안 굳었습니다.”
멍한 시선으로 박필로가 말했다.
설명치고는 조악했지만, 이중봉은 주변의 흔적을 잃고 그림을 그렸다.
‘싸웠다. 밀렸고.’
시간이 지났다면 죽는 건 이쪽 셋이었을 거다.
아무리 난다긴다하는 혼혈 이레귤러라고 해도 변신족의 체력을 따라갈 수는 없다.
변신한 변신족의 괴력은 이중봉 자신도 쉽게 못 받아친다.
‘흘리고 버틴다.’
버티는 게 한계다. 보통이라면 그렇다.
그런데 죽였다.
‘천재?’
그따위 말로 폄하할 수 없었다.
자신도 이렇게 할 수 없다. 노필두를 잡으려면 그에 맞는 준비가 필요하다. S급 변신족이란 게 그렇다.
“허.”
자기도 모르게 탄식이 나왔다.
“놀라셨나 보네.”
그걸 본 광익이 읊조렸다.
그제야 이중봉은 표정을 관리했다.
“야, 정리해. 복귀한다.”
중봉이 말했다.
박필로도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광익 씨.”
그가 잽싸게 광익의 옆에 붙었다.
사실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라는 게 맞을 것이다.
아직 놀람이 가시지 않았으니까.
“내 뒤통수친 거 괜찮아.”
그래서다. 아무 생각 없이 입이 움직였다.
“그거 마음에 담아 두고 있었구나.”
“시말서 쓰게 하려고 했지, 다 끝나고 나서.”
“그런데요?”
“그런 말 못 들어 봤어?”
“무슨 말이요?”
광익이 제 무기를 꼼꼼하게 챙기는 게 보였다.
“직급이고 뭐고, 불멸특수대는 실력이 우선이라고.”
고로, 실력 제일주의라는 거다.
실력이 아무리 좋아도, 어느 정도 선에서 멈춰 줘야지.
이 정도로 잘나면 어지간한 미친 짓은 다 그러려니 해 주게 된다.
박필로는 광익이 자신의 뒤통수를 다시 때려도 괜찮다고 생각했고.
“회귀자는 아니라고 했으니까, 혹시 소드 마스터가 빙의했냐?”
이동훈은 헛소리를 뱉었고.
“잘했어. 먹고 싶은 거 있어?”
김정아는 프로메테우스 간부를 죽였다는 것 자체에 기뻐했으며.
“……이제 저거 날뛰는 걸 누가 막을까.”
중봉은 미래를 떠올리며 한탄했다.
이제 유광익은 그냥 신입 사원이라고 할 수 없었다.
단숨에 대리를 달아도 된다. 물론 진급 대기자가 툴툴거리긴 하겠다만.
‘이걸 보고 누가 뭐라 할까.’
노필두가 그냥 1급 수배범인가.
무려 프로메테우스의 간부다.
불멸교 12신도 중 하나를 잡은 것과 비견할 만한 일이란 거다.
“먹을 거 없어요? 초코바? 민초 말고, 팀장님, 비상식량 좀 푸시죠. 나 배고픈데.”
그런데 정작 이 일을 한 놈은 배고프다고 투덜댈 뿐이었다.
“없어.”
중봉은 광익의 말을 자르며 본대로 합류하자고 말했다.
본대에 합류할 때쯤, 싸움도 막바지였다.
상대는 머리를 잃었고 인질도 잃었다. 시간은 불멸특수대의 편이었다.
“계속 덤비면 이제 미사일 꽂는다?”
인질이 없으면 이런 방식의 전투가 가능해진다.
말초신경까지 세뇌당한 테러범 몇을 제외하고는 전부 항복이었다.
그렇게 전장이 정리되는 사이, 정수라가 광익에게 다가와서 두 손을 꼭 잡았다.
“새삼 고맙다.”
“아니, 안 이래도 된다니까.”
광익은 난감해했다.
그 옆에 있던 정수라의 딸이 광익의 허벅지를 툭툭 치며 말했다.
“우리 열 살 차이죠? 혹시 나중에 목숨 구해 줬다고 결혼하자거나 그러면 안 돼요. 내가 좀 예쁘긴 해도.”
정수라의 딸은 예쁘고 당찼다.
이중봉은 말없이 모든 상황을 두 눈에 담았다.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아, 보고서 써야 하네.”
“내가 쓸게. 뭘 그런 일로 신경을 써.”
박필로는 광익에게 설설 기었다.
“다음에 지원 또 와 주고.”
“네, 뭐, 기회 되면.”
“수틀리면 우리 팀에 와도 돼.”
“그렇게 티오가 남아돌아요?”
없어도 만들겠지. 미친 새끼야.
중봉은 속으로 욕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라고 해도, 이만한 일을 한 팀원에게 오늘만은 장난으로라도 뭐라 할 수 없었다.
그 순간 바로 대역 죄인이 되는 기분일 테니까.
“티오 남지, 많이 남아. 우리 팀 항상 인력난이다.”
“이번엔 네 팔이 부러져 볼래? 박필로.”
그래도 저건 너무 나갔지.
광익에게 뭐라고 할 수는 없어도, 눈앞에 팀원의 상급자가 버젓이 있는데 무슨 개수작이란 말인가.
“농담입니다.”
박필로가 정색했다. 자신한테는 또 평소의 그 냉정한 박필로다.
수송기가 날아와서 곧바로 서울로 돌아가기로 한 참이다.
장비를 싣고 지원 나온 팀이 남은 테러범을 처리하고.
“난 그냥 시켜서 한 겁니다. 저들이 목숨을 위협했다고!”
개인 방송을 했던 연구원이란 작자도 잡았다.
잡아 놓고 보니, 연구원은 연구원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미친 과학자 새끼였다.
아직 각성하지 않은 불멸자를 실험할 수 있다는 말에 혹했다고 한다.
“무기징역이면 다행인 줄 아쇼.”
요원 중 하나가 꽥꽥 소리 지르는 연구원의 목울대를 잡고 말했다.
“수틀리면 여기서 묻고 가 버릴 수도 있고.”
적절한 위협이었다.
광익은 그 말이 꽤 마음에 들었다.
“프로메테우스에서 난리 치겠는데요?”
옆에서 동훈이 입을 열었다.
“그 또라이 테러범 애들만 난리 날 것 같냐?”
중봉이 말했다.
“에, 음, 그렇죠?”
동훈이 동의했다.
그 말 그대로였다.
수송기를 타고 복귀한 광익은 소고기 20인분을 먹어 치우고 숙소로 돌아갔다.
김정아는 이번 일이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는지, 광익에게 연신 밥 산다는 말을 했다.
이틀 후, 광익은 평소처럼 출근했다.
그리고 그 이틀 동안 남명진 사장은 수십 통의 전화를 받았다.
행안부 특임대부터 외국의 유명 용병대, 민간 군사 기업, 그동안 전략적 제휴를 맺은 갖가지 단체들까지.
하물며 요새 슬슬 머리를 들이미는 마법 연맹 단체까지도 광익에 관해 물었다.
“누가 잡은 거요? 노필두.”
“요원 정보는 기밀입니다. 묻지 마십시오.”
인맥을 통해 묻는 이들도 많았다.
물어오는 모든 이들에게 같은 말을 한 남명진은 딱 이틀 뒤, 공지를 작성했다.
도저히 일개 사원으로 둘 수 없는 인재였다.
“광익이 대리로 진급시켜.”
“좀 이르지 않습니까?”
“지금은 과장을 달아 줘도 그러려니 할 거다.”
맞는 말이었다.
공지가 올라왔고.
“그럴 만하지. 이번 작전에서 노필두가 죽었다더라. 그걸 광익 씨가 했다는 말도 있고.”
“야, 아무리 그래도 진급 대기자가 몇 명인데.”
“야, 아서라. 너 광익 대리가 딴 공적 반이라도 따고 말해야지.”
“……그건 무리지.”
포기는 빨랐고, 인정은 더 빨랐다.
그 뒤에 나온 얘기는 좀 색달랐고.
“광익 씨가 노필두 잡은 거면 이제 팀장님보다 센 거 아닌가?”
“그건 모르지. 진짜 노필두를 잡았겠어? 설마, 그렇다 치더라고 설마 혼자 했겠어? 작전 중에 운이 따랐겠지.”
“운만으로 잡힐 놈이냐? 그 새끼가?”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기에 그들은 추측했다.
“하긴 그 노필두니까. 이제 고(古) 노필두인가.”
요원 중에는 노필두의 도끼만 보고 도망간 이들도 꽤 있었다.
“하, 하여간 진짜 대단하긴 하지 않냐?”
“응. 요새 여직원들 사이에서 난리다. 역시 남자는 능력이라고.”
“그 미남 대리도 찼다며?”
“그래서 더 난놈이지. 사실 잘난 놈일수록 난 그런 생각을 해, 그거 고자 아닐까 하는.”
“풉. 남근을 바치고 능력을 얻었다? 그건 마법사도 불가능해. 미친놈아.”
“농담이지.”
대수롭지 않은 얘기였다. 다만, 광익의 실력만큼은 누구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을 뿐.
정호남도 그 소식을 들었다.
“대리라. 빠르긴 하지만.”
이해할 만했고, 납득도 되었다.
동시에 기남도 이 소식을 들었고.
그는 진지하게 퇴사를 고민했다.
1급 사원이 된 뒤에도 자신을 미친 듯이 놀린 놈이다.
그런데 대리?
엊그제 2급 사원으로 진급한 기남은 괴로웠다.
가문의 의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싶었다.
나름 인정하는 놈이다. 그런데 그 주둥이만큼은 정말 싫었다. 악마가 주둥이에 빙의한 것 같은 새끼였다.
사내에서의 소문으로만 끝난 게 아니었다.
당연히 외부 단체에서도 알려졌다.
다만, 여기서 남명진 사장은 작정하고 정보를 통제했다.
“요원이 노필두를 죽인 건 맞다. 하지만 누군지 밝힐 수는 없다.”
그 덕분이다. 유광익이란 이름 대신, 별명이 먼저 알려졌다.
미친 이레귤러.
누가 붙였는지는 몰라도 기가 막히게 어울리는 닉네임이었다.
물론 광익은 인정하지 않았다.
“아, 팀장님이죠? 맞지?”
“맞지는 반말이고.”
“미친 이레귤러 이거 누가 지었냐고요.”
“아, 몰라, 모른다고.”
외부 보안 3팀은 오늘도 평화로울 뿐이었다.
* * *
“걔 얼굴 한번 보자.”
정수라는 본가에 복귀하자마자 부름을 받았다.
순혈 정가는 피를 이을 의무가 있다.
하지만 정수라는 혼혈의 불멸자를 낳아 버렸다.
덕분에 집안에서 입지가 개판이었고.
가주도 자신을 내치기 직전이었다.
이번 일조차도 일탈에 가까운 행위였다.
다만, 가주는 자기 일을 눈감아 줬고, 암중으로 지원도 해 줬다.
그렇지 않았다면 불멸특수대가 제 의뢰를 받아 줄 리도 없었다.
“누구를 말씀하시는지.”
“노필두 잡은 애.”
가주는 순혈의 피를 이었고, 오랜 시간 가문을 지켜온 남자다.
그 외모는 빛이 날 정도였다.
다만, 눈만큼은 북극의 빙하처럼 차가웠다. 그 색 또한 파란 눈이니, 더 차가운 기운이 감도는 듯한 기분의 그런 눈이었다.
“유광익 말입니까?”
“그래. 한번 보고 싶네.”
“제가 부른다고 올 사람이…….”
은혜를 입었다. 가주 앞에 데려와도 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이번에 벌인 일, 이전에 낳은 아이, 모두 문제 삼고 싶지 않다면 데려와라.”
협박이 아니라 사실의 나열이다. 정수라는 가주가 자신이 아니어도 광익을 만나고 싶다면 부를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만한 권력을 지닌 사람이었다.
“네.”
정수라는 얌전히 고개를 숙였다.
차라리 먼저 가서 말해 주는 게 나을 듯싶었다.
광익에게 최소한 어떤 걸 조심해야 하는지, 경고 정도는 해 줄 수 있을 테니까.
만약 그가 싫다고 한다면, 정수라에겐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오지 않게 해 줄 용의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