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 인간벌목꾼 노필두
일 대 다수의 싸움뿐이라면, 버틸 만했다. 지금보다 시간을 더 끌 수도 있었다.
그런데 상황이 달라졌다.
‘이건 안 돼.’
박필로는 애초에 이십 분을 버티는 게 한계라고 봤다.
붕붕.
도끼를 든 채로 팔을 크게 돌리며, 변신족 놈이 피식피식 웃는다.
일반 요원의 수준을 훌쩍 넘어서는 무력.
“나와. 저건 내 거다.”
놈은 자신을 노렸고, 박필로는 거기에 응수해야 했다.
불멸특수대 안에 있어서 순혈 불멸자를 자주 보는 거지, 본래 특수종의 세계에서 순혈은 그리 흔한 게 아니었다.
상대는 순혈 변신족이자, 전투 훈련을 받은 놈이었다.
차라리 빗발치는 총탄이 낫다. 변신족과 근거리 전투는 어떤 불멸자도 선호하지 않을 테니.
광익이 바닥에 구멍을 뚫고 내려간 지 고작 십 분이 지났을 때다.
“세 놈이었잖아. 하나는 어디 갔어? 어디 숨어 있는지는 몰라도, 그 새끼도 내가 죽인다.”
놈이 송곳니를 보였다. 삐죽 솟은 치아가 인간의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변신도 안 하면서 날 상대하겠다고?”
불리한 상황을 보여 주는 건 하책.
박필로는 되려 당당한 척 나섰다.
“네가 누군데? 혹시 네가 그 팬텀?”
불멸특수대 팬텀은 전설로 남은 요원이다.
박필로 역시 그게 누군지 알았다.
“절대 아니지.”
그래서 불쾌했다.
“그럼 뭔데?”
“불멸특수요원이다.”
“시발, 그냥 잔챙이야?”
변신족이 사납게 눈을 부라렸다.
살기가 전신을 옥죄어 온다. 박필로는 어금니를 깨물고 살기를 떨쳐 냈다.
기척 죽이기를 시도할 만큼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자신의 기술 완성도가 문제가 아니었다.
변신족의 동체 시력은 눈앞에서 불멸자의 모습을 놓칠 만큼 만만치 않았다.
고로, 기척 죽이기는 쓸 수 없다.
‘불리하긴 한데.’
상대의 도발은 무시한다.
박필로의 최대 장점은 냉정한 머리였다.
같은 순혈의 싸움이라면, 변신족과 불멸자 중에서 불리한 건 불멸자다.
변신족의 괴력과 투쟁 본능은 타고난 싸움꾼과 같았다.
더군다나 지금은 옥상의 제한된 공간에서 싸운다.
팬텀, 그러니까 이중봉 팀장 같은 사람이 이상한 거다.
그쪽은 일대일로 변신족을 잡으니까.
곁눈질로 슬쩍 정수라의 상태를 확인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모르지만, 전보다 금속 채찍의 속도가 느려졌다.
저쪽도 길어야 5분이다.
한계였다. 더 대치해 봤자 피해만 생긴다. 포기해야 할 때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순간.
“인질 확보 완료요.”
뒤쪽에서 목소리가 툭 먼저 들렸고, 이후 인기척이 감각에 걸렸다.
구멍 쪽이었다.
유광익이 뚫은 그 구멍.
“……뭐?”
박필로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가 뒤로 돌아갔다.
“뭐?”
똑같이 놀란 변신족 놈도 박필로의 뒤로 시선을 던졌다.
거기에 유광익이 있었다.
“그렇게 놀랄 일입니까? 구해 온다고 했는데.”
이제 막 십 분밖에 안 지났는데?
밑에도 테러범이 있는데?
박필로는 묻고 싶은 게 많았다.
하지만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그럴 때가 아니었다.
“율!”
정수라가 외쳤다.
휘이잉!
그녀는 떨리는 근육을 무시하고 금속 채찍을 휘둘렀다.
아이가 제 몸을 감싸며 단숨에 달려온다.
“엄마!”
아이가 외쳤다.
딸과 엄마가 만난다.
인질이 되었던 딸의 멀쩡한 모습을 보자, 어미의 표정이 변했다.
정수라의 동공이 요동쳤다.
“인질을 구했으면 보고를 해야지.”
팀장이 말했고.
“헬멧이 날아가서 통신기가 안 되잖습니까.”
광익에 제 머리를 톡톡 치며 답했다.
“아.”
그랬다.
헬기에서 뛰어내릴 때 광익은 헬멧을 잃었다.
“염병, 저거 하나 못 지키고.”
앞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순혈 변신족은 그렇게 말함과 동시에 땅을 박찼다.
꽝!
박필로는 포이즌 니들을 등 뒤에 숨기며 왼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왼팔을 내주고 찌른다.’
틈을 보고 탈출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놈은 박필로를 무시하고 인질에게 짓쳐들어갔다.
생각지도 못한 움직임에 몸이 굳었다.
허리 뒤로 뻗었던 변신족의 팔이 채찍처럼 휘어지며, 위에서 밑으로 도끼날과 함께 날아들었다.
그 장면이 느린 화면처럼 눈에 담겼다.
‘놓쳤다.’
아이가 목표였다.
정수리부터 아이의 몸이 반으로 쪼개지는 장면이 눈에 선했다.
정수라와의 거리는 고작 세 걸음, 하지만 변신족의 도끼가 그보다 몇 배는 빨랐다.
찰나의 찰나를 쪼갠 순간.
쪼갠 순간 사이로, 광익의 목소리가 틈을 비집으며 들어왔다.
“또라이 새끼가.”
도끼가 내리치는 자리에 묵직한 칼날이 마중을 나갔다.
까-앙! 우우우웅!
두 개의 칼날이 부딪치자, 공명음이 귀를 울렸다.
공기의 진동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순간 몸이 굳을 만큼의 충격파가 동심원을 그리며 퍼졌다.
‘음.’
박필로가 속으로 신음을 삼키는 사이.
꽝!
유광익의 산탄총, 4번 타자가 불을 뿜었다.
순혈 변신족이 바닥 찍은 발을 축으로 몸을 휘릭 돌리며 산탄총의 범위를 피했다. 그걸 본 광익은 상대의 도끼를 막았던 정글도를 수납하고 4번 타자를 놓은 손으로 놈의 손목을 쥐었다.
“넌 뒤졌다.”
손목이 잡힌 변신족이 되려 중얼거렸다.
괴력의 변신족에게 근접전을 거는 불멸자는 멍청하다고 해야 옳다.
하지만, 광익은 여타 불멸자와 달랐다.
“지랄은.”
찰나의 순간에도 말을 나눈 둘 사이로 섬광이 터졌다.
불멸자의 감각은 섬광이 터지는 사이에 일어난 일을 여실히 느끼게 했다.
도끼를 든 변신족 놈은 팔을 당기며 반대쪽 팔꿈치를 그었고.
광익은 그 팔꿈치를 오른팔로 막았다.
우둑.
막는 순간, 팔뚝 중간이 90도로 꺾이며 부러지고.
그 틈에서 광익은 왼손으로 정글도를 역수로 쥐곤 아래에서 위로 그었다.
섬광은 정글도가 칼집을 벗어나는 순간 빛을 반사하며 생긴 거였다.
슈컥.
칼날이 변신족 놈의 왼쪽 팔과 어깨 어림을 갈랐다.
“……끄, 끄아아아.”
변신족 놈의 고통에 괴성을 내질렀다.
“뭐 해요, 팀장님. 고사 지내요?”
광익의 재촉에 박필로는 관객에서 참여자로 포지션을 바꿨다.
“뛰어. 외벽을 타고 내려간다. 시간은 내가 끈다.”
박필로는 그렇게 말하며 로프건을 환풍구 기둥에 쐈다.
퉁!
끝이 뾰족한 바늘이 환풍구 기둥에 퍽- 하고 박혔다.
그대로 줄을 늘어뜨리고, 난간 너머로 총을 던지니 탈출로가 완성되었다.
“강하해.”
정수라가 먼저 아이를 안고 뛰었다.
그 뒤를 음색 깡패가.
마지막으로 광익이 한 손으로 로프를 잡고 발로 벽을 톡톡 차며 내려왔다.
투다다다다.
“조져!”
“놓치면 뒈진다!”
남은 테러범 무리가 총탄을 쏟아냈다.
“받아줘.”
팀장은 총탄에 팔뚝과 허벅지가 뚫리며 말했다.
방탄복이 아무리 훌륭해도, 지속적인 충격에는 내구도가 닳기 마련이다.
더구나 관통력을 살린 특수탄을 맞아도 문제고.
팀장은 난간에 기댄 채 마구잡이로 총을 쏘다가 연막탄을 던졌다.
광익이 바닥에 발을 디딘 시점이었다.
내려오자마자 광익은 감각을 곤두세웠다.
위에서 묵직한 물체, 팀장이 떨어졌고, 광익은 팀장의 등을 손바닥으로 받아 냄과 동시에 무릎을 굽혀 충격을 해소했다.
끌어안듯 품으로 받아 내면서 옆으로 몸을 굴러, 여력도 흘려 냈다.
무거운 물건은 힘으로 받는 게 아니라 요령으로 받는 거였다.
바닥을 구른 팀장이 일어나며 말했다.
“가자.”
* * *
박필로 이 양반도 보통은 아니네.
난 그리 생각했다.
위에서 뛰어내리다니, 이게 어디 보통 강단으로 될 일인가.
처음에 짠 작전에서의 퇴로는 총 세 가지였다.
하나는 헬기가 멀쩡했을 때 헬기를 타고 튀는 거고.
다른 하나는 1층 타격팀이 퇴로를 확보해 주면 건물 정면으로 튀는 거였다.
마지막 하나가 외벽을 타고 내려오는 거다.
박필로 팀장은 애초에 모든 변수를 염두에 두는 타입이었다.
다양한 변수를 계산하고, 그에 맞는 행동 패턴을 정한다.
시발 팀장과는 상반되는 타입이다.
그쪽은 아예 상황을 제가 원하는 대로 끌고 가는 타입이지.
물론 그가 예상 못 한 일도 있었지만, 어쨌든 좋은 게 좋은 거다.
인질을 다 구했고, 우리도 다 멀쩡하고.
아, 심 대리님은 안 멀쩡하네.
“뛰어. 곧바로 작전 지역에서 이탈한다.”
반쯤은 안심했다.
이번에도 프로메테우스에게 빅엿을 먹였기에 속이 든든하기도 했고.
돌아가서 사수에게 자랑해야겠다.
둘이 오붓하게 밥이나 먹으며 말해야지.
사수가 얼마나 기뻐할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물론 겉으로야 밋밋하게 ‘잘했다’ 하고 말겠지만.
“괜찮으십니까?”
팀장에게 물으니, 되려 팀장이 되물었다.
“팔은?”
“이거야, 뭐.”
아직 몸에 약효가 돌고 있다 보니, 달리면서 뼈를 맞추자 금세 붙었다.
이제는 살짝 금이 간 정도?
“초고속 재생에 버금가는구나.”
팀장이 허벅지에 구멍이 뚫린 탓에 절뚝절뚝 뛰면서 말했다.
건물의 정면 지역에서는 아직도 전투가 이어지고 있었다.
우리가 내려온 곳은 전투가 일어나는 곳과 반대쪽이고.
방향을 정하고 튈 틈이 없었다.
내가 팔과 어깨 반을 자른 놈이 변신이라도 해서 죽자고 덤벼들면 또 문제니까.
내가 문제가 아니라, 여기에는 비전투원인 아이도 있다는 게 문제다.
누굴 지키면서 싸우는 건 상당히 고달픈 일이니까.
근데 그 새끼 기세가 어째, 누구랑 비슷했던 것 같은데.
“운율아.”
정수라는 제 딸의 이름을 부르며 딸을 안았다.
아이는 엄마 품에 안기며 울었다.
눈물을 흘리면서도 괜찮다고 말하는 아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애가 좀 대차다.
“엄마, 나 괜찮아. 진짜 괜찮아.”
“그래, 그래, 엄마도 괜찮아.”
새삼 정수라의 나이가 궁금했다.
“몇 살이야?”
궁금한 건 물어야 맛이지.
“스물여덟.”
꽤 연상이었네.
“애를 좀 일찍 낳았구나.”
“열여덟에.”
불멸자로 각성하기도 전에 애를 낳았네.
“그럼 꼬맹이, 너 열 살이야?”
“누가 꼬맹이예요? 제 이름은 박운율이에요.”
“박?”
순혈 정가라며?
이쪽은 남자도 다 데릴사위로 데려오는 집안이라고 들었는데?
뭐, 사정이 있겠지.
남의 집안 사정 물을 때인가.
우리 집 사정이 더 환장할 판이다.
아빠 불멸자, 엄마 변신족.
콜라보레이션의 결과물은 나.
근데 개나리 수라는 왜 이렇게 갑자기 답을 잘해 주냐.
“나중에 정식으로 말하겠지만, 고맙다. 고마워. 꼭 보답할게.”
정수라가 진정을 담아 말했다.
소름이 돋았다. 예상할 수 없는 일격이었다.
“아우, 하지 마. 그냥 전처럼 지냅시다. 누님.”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 하니.
“아니, 꼭 보답할 거야.”
이상한 데서 집요함을 보이는구나.
“그래요. 그럼.”
정수라는 눈에 정을 가득 담아 딸을 한 번 보고, 그 눈길 그대로 날 한 번 봤다.
“내가 날카로웠지? 그것도 사과할게.”
아니, 사람이 갑자기 이렇게 변하기 있기, 없기?
“저기, 누나라고 해도 되죠?”
상대가 이렇게 나오면 또 받아치기가 좀 그렇다. 놀리기도 그렇고.
“동생이라고 불러도 괜찮아.”
아니, 나보다 일곱 살 연상이시잖아.
“이야기는 나중에 해요.”
난 그렇게 말하며 걸음을 멈췄다.
세상만사 쉬운 일이 없다더니.
다들 한숨 놓고 안도했는지 모르겠는데, 난 아니다.
육감과 직감이 계속 경고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감각 분화까진 아니지만, 난 여전히 뒤쪽 추격자를 의식했고.
곧 끔찍한 살기가 다가오는 걸 느꼈다.
“……미친.”
박필로 팀장이 말했다. 그는 허벅지와 팔에 관통상을 당했다.
불멸자니까 금세 낫겠지만, 당장 전투 가용 인원이 될 수는 없었다.
“그놈이야.”
음색 깡패 동기가 말했다.
이쪽은 포로에서 막 풀려난 몸이고.
멀쩡해도 도움이 안 될 거다.
상대가 규격을 넘어서는 적이라면, 일반 요원 수준으로는 상대할 수 없을 거다.
“그놈? 전남친이야?”
내가 물었다.
“괴물 같은 놈이 있었어.”
파랗게 질린 안색으로 동기가 말했다.
“먼저 가시죠.”
어디 보자, 팔은 다 나았고.
왼쪽 다리도 멀쩡하고.
아다만티움 탄도 두 발 남았고.
남은 무기도 멀쩡하고.
“코트 다시 가져간다.”
애한테 덮어 놨던 코트를 낚아챘다.
팡.
허공에 코트를 털고 어깨 위로 걸쳤다.
“바쁘냐? 안 바쁘면 얘기 좀 할까?”
추격자는 살기를 질질 흘리고 다니는, 끔찍한 변신족이었다.
그리고 구면이었다.
* * *
노필두는 제자의 비명을 듣자마자 옥상으로 향했다.
“비상구 안 지켰냐?”
“지켰습니다.”
옥상 바닥에 난 구멍이 보였다.
‘계단이 아니라 구멍을 뚫고 올라왔어?’
미친 새끼다.
거기에 자기 제자의 팔을 잘랐다.
몸에 털이 숭숭 난 제자가 자신도 못 알아보고 송곳니를 들이밀었다.
반인반수 상태였다.
“크르르르르!”
“괜찮다.”
제자가 자신의 팔을 콱 물기에, 그 주둥이를 한 손으로 잡고 비틀었다.
우드득.
턱뼈가 어긋나자, 변신 중이던 제자 놈이 낑낑거리며 신음을 흘렸다.
비 맞은 개도 아니고.
툭.
수도로 목 뒤를 쳐 실신시킨 뒤.
노필두는 부하 중 불멸자 둘을 찾았다.
감각이 특히 예민한 놈이다.
“찾아.”
“저쪽입니다.”
부하 하나가 말했다. 유광익과 일행이 떠난 지 5분도 되지 않을 때였다.
노필두는 난간으로 향해 손톱을 세운 뒤, 벽에 꽂아 미끄러져 내려갔다.
콰드드드드드!
건물 외벽에 세 줄의 긴 선이 그어지고.
툭 하고 바닥에 떨어진 노필두는 그대로 뒤를 쫓았다.
그렇게 뒤를 잡자, 구면인 놈이 있었다.
염병할 따란따도 새끼였다.
따란따도는 프로메테우스에서 광익을 부르는 이름이다.
“아, 그쪽 이름은 뭐였더라? 나 별명 아는데, 맞아, 그거지? 인간벌초기? 아재요. 도끼로 풀을 기가 막히게 자른다며?”
별거 아닌 도발이었다. 하지만 노필두는 이미 머리끝까지 화가 났기에, 단숨에 변신했다.
펑!
몸을 두른 슈트가 터지고 털이 솟고, 등뼈가 늘고 근육이 팽창했다.
주둥이가 앞으로 쭉 늘어나며 손톱이 자란다. 눈은 노랗게 물들었다.
양손에 들었던 도끼가 몸에 비해 커 보였는데, 이제는 손도끼처럼 보였다.
“내 별명은 인간 벌목꾼이다.”
사나운 기운을 가득 담은 목소리는 듣는 것만으로 오금을 저리게 한다.
그게 바로 프로메테우스가 자랑하는 인간 병기, 노필두였다.
“거, 더럽게 폼 잡으시네.”
광익은 그 모습에 핀잔을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