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규격 외 혈통 천재-135화 (135/488)

135. 인질 탈취

정수라는 당황했다.

이런 방식의 진입로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건 박필로 팀장도 마찬가지였다.

둘의 눈이 마주쳤다.

“할 일 합시다.”

박필로가 먼저 말했다.

그 말이 맞았다.

유광익이 괜히 소음탄을 터트리고 간 게 아니다.

일부러 상대 시야각 바깥에서 바닥 진입로를 만들었다.

진입 작전은 엉망이 됐지만, 여전히 시간은 중요했다.

남은 둘은 유광익이 인질을 구하기 전까지, 버틸 시간을 벌어야 했다.

정수라가 제 허벅지에 칭칭 감긴 합금 채찍의 끝을 당겼다.

그녀는 채찍을 잘 썼다. 그에 맞춰 현대식으로 무기를 제작했고.

티리링.

은빛 비늘을 가진 뱀처럼, 정수라의 무기가 바닥을 때리곤 낭창거리며 휘어졌다.

두께는 손가락 마디만큼 두껍지만, 무겁지는 않아 보였다.

“1층 돌입해서 시선 끌어.”

박필로가 통신기를 통해 말했다.

곧 밑에서 꽝꽝하는 폭음이 들렸다.

한적한 제주도 남쪽이다.

도시 한복판도 아니고 눈치 볼 일도 없으니, 화기를 쏟아부었다.

1층에서는 로켓 런처로 문을 부수고 돌입할 것이다.

박필로를 보며 정수라는 생각했다.

지금 필요한 게 시간이라면.

“시선 끌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곤 옆으로 튀어 나갔다.

당연하게도, 그녀를 향해 총탄이 날아들었고.

그걸 예상한 정수라는 손목을 여러 방향으로 저었다.

곧 채찍이 휘리리링 돌면서, 그녀 앞에 잔상을 남김과 동시에 반구 형태를 만들었고.

티디디디디딩.

불똥이 튀며 총탄이 튕겨 나갔다.

눈에 띄는 묘기다.

정수라의 눈이 상대의 무장을 살폈다.

수류탄, 유탄발사기.

‘틈을 보이면 안 돼.’

그걸 위해서 해야 할 일은 하나다.

상대에게 생각할 틈을 안 주면 된다.

그녀의 눈이 빛났다.

순혈 정가에서 정수라의 별명은 ‘한 치 앞을 내다보는 예언가’.

그녀는 별명 그대로 행동했다.

감각을 열고, 상대의 행동을 예측했다.

한순간이라도 방심하면 추락하는, 절벽 위의 외줄을 타는 듯한 전투 방식이다.

박필로도 놀 수만은 없었다.

수류탄을 까서 상대에게 던졌지만.

꽝!

공중에서 터져 나갔다. 역시, 불멸자의 사격 실력은 무시할 수 없다.

뭘 던지기만 하면 ,맞기 전에 요격하는 놈들이다.

다행히 정수라가 시선을 끈다. 박필로는 생각했다.

‘이런 건 내 스타일이 아닌데.’

변수가 많은 전장에선 실패할 확률이 높다.

그런 작전은 시작하지 않는 게 맞다.

하지만, 이미 휘하 전투원이 돌입했다.

정수라에게 가자고 한들, 갈 것 같지도 않았고.

그럼 어쩌겠나.

할 일을 해야지.

기척 죽이기, 불멸의 비전을 펼친 박필로가 구멍을 두고 움직였다.

정수라가 시선을 빼앗으면, 자신은 숨는다.

거기에 전용 기어까지 꺼내 들었다.

박필로가 모습을 숨긴 채, 방검방탄 슈트를 믿는 놈들의 뒤로 돌아갔다.

전신을 감싼 슈트 사이에도 틈은 있다.

슈트 관절부 사이로 박필로는 제 무기를 찔러 넣었다.

전장에서 그의 별명은 ‘죽음의 간호사’.

죽도록 싫어하는 별명이지만, 또 잘 어울리긴 했다.

그의 무기는 주사기였다.

정확히는 끝이 뾰족한 니들 형태의 기어였지만, 주사기처럼 보였다.

푹.

찌르고, 약을 투입한다.

‘독은 너희만 쓰는 게 아니지.’

전신의 피를 순식간에 딱딱하게 만들어 몸을 굳게 만드는 독이다.

순수 이세계의 물질로 만드는 탓에 돈이 많이 들어가지만, 그 효과는 확실했다.

진형 바깥쪽에 서 있던, 그래서 박필로가 뒤를 잡고 약을 투입한 변신족 놈이 눈을 부릅뜨며 팔을 내쳤다.

붕.

고개를 숙이며 피한 박필로가 뒤로 몸을 굴렸다.

“한 놈 더 있…….”

변신족은 거기까지 말하곤, 통나무가 된 듯 쿵 하고 앞으로 넘어갔다.

코가 깨졌을 듯싶었다.

즉효성 독이다. 대신 지속성이 짧다.

길어야 한 시간 내외로 일어날 거다.

이번에는 이쪽으로 시선이 모였다.

그러자 정수라가 날뛰었다.

금속 채찍을 사정없이 휘두른다. 소재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채찍에 걸린 다리가 썩둑 잘렸다.

거리를 허용하면 다 잘린다. 이를 인식한 적의 진형이 변했다.

밀집 대형에서 벗어나, 사방에서 조준 사격을 시도했다.

정수라가 다시 채찍을 휘둘러 탄을 막았고.

박필로도 다시 기척을 숨겼다.

“등을 맞대라.”

적 지휘자가 말했다.

상대가 2인 1조로 움직이며 서로의 사각을 지킨다. 때문에, 조금 전과 같은 기습은 불가능했다.

‘오래는 못 버텨.’

길어야 20분이다. 박필로는 냉정하게 계산했고, 이후는 유광익이고 뭐고 빠져나가야 했다.

* * *

내려오자마자 약부터 꺼내 먹었다.

첫 번째는 HCS-3.

High Calorie Super-revival 3.

고칼로리 초재생 버전 3이다.

이계의 약초 따위와 섞인 화합물이 여전한 환각을 보여 줬다.

눈앞으로 흰 나비가 보였다가 금세 사라졌다.

손가락으로 다리뼈를 만져 봤다.

하도 내 몸을 부수고 고치다 보니, 어떻게 부러졌는지 아는 건 일도 아니었다.

“전장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제 몸을 고칠 줄도 알아야지.”

자연인 불멸 과외 선생의 가르침이 이렇게 도움이 된다.

할 때는 참 무식한 짓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내 통각을 차단하고.

우둑.

부러진 뼈를 바르게 맞췄다.

끔찍한 통증이 뒤따랐지만, 한두 번 겪은 게 아닌지라 금세 잊었다.

약의 효과가 망가진 몸을 수복하기 시작했다.

흰 나비가 보이는 건 피지컬 칵테일 드럭의 특징이다.

마인드 칵테일 드럭도 꺼냈다.

연초 형태다.

각성 이후 불멸이 가장 사랑하는 마약인 블런트를 기반으로 만든 약이다.

별명은 예민 보스.

먹으면 감각의 예민함이 더해지는 종류로, 정식 명칭은 ‘블런트 알파’.

흰 나비는 알약으로 먹었고, 예민 보스는 흡입형으로 가져왔다.

그러니까, 담배다.

칙.

연초에 불을 붙이고 꼬나물면 준비 완료다.

스읍.

한 모금 머금자, 본래 가지고 있던 오감이 더 예민해진다.

흰나비의 부작용은 감각을 무디게 한다. 그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예민 보스를 빠는 거였다.

다리가 회복되는 사이, 난 오감의 문을 열고 분리한 뒤, 집중했다.

기남을 통해 배운 거다.

위에서 싸우는 소리는 무시하고.

아래로 감각을 모아 집중했다.

눈을 감고 청각에 모든 오감을 쏟아 넣었다.

감각 분화.

순혈 정가의 비기다. 뭐, 난 한번 해 보니까 되기에 그냥 썼다.

듣고 느낀다. 직감과 육감의 영역으로 나아간 감각이 한 곳을 특정한다.

짧게 고른 호흡을 잡아채고 거리를 가늠했다.

3층이다.

기다릴 것도 없었다.

비상구로 내달렸다. 3층까지 내려가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어?”

기척 죽이기를 쓰며 내달렸으니, 문이 날아가듯이 열리기 전까지는 아무도 내가 있다는 걸 모를 법도 했다.

황당한 얼굴로 마주한 놈의 목을 향해 정글도를 그었다.

발도.

훙, 석.

더없이 날카로운 칼날이 불멸자의 목을 날린다.

제 감각을 속이고 사각에서 나타난 습격자다.

놀란 눈을 부릅뜬 놈의 머리가 바닥에 툭 떨어졌다.

꿀렁꿀렁.

잘린 목 단면에서 피가 쏟아졌다.

“시발.”

“미친 새끼가.”

둘이 더 있었다. 상대를 눈으로 훑었다.

변신족이다.

두 놈이 달려든다. 정글도를 수납하며 4번 타자를 꺼냈다.

퉁.

방아쇠에 손가락을 얹자, 두 놈이 양옆으로 흩어졌다.

본능적으로 사격 범위를 피하는 기동이다.

진짜 쏠 것처럼 기척을 흘렸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렇게 둘을 속인 뒤, 땅을 박찼다.

꽝, 바닥에 발자국을 남기며 대쉬.

사물이 뒤로 밀린다. 순간 가속에, 보이는 모든 것이 선의 형태가 되어 뒤로 밀렸고.

목표한 문이 눈앞으로 확 다가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난 오른쪽 어깨로 문을 들이받았다.

꽝!

경첩째로 부서진 문짝이 날아갔다.

“더 다가오면 인…….”

훙.

두 놈이 있었고, 한 놈이 뭐라 말하려 했다.

인질은 방의 중앙에 있었다.

외치던 놈이 다른 놈보다 한 발자국 더 인질과 가까웠다.

문을 부수는 것과 동시에, 품에서 나이프를 꺼내 던졌다.

퍽.

놈은 말하다 말고 입안에 칼날이 박혔다.

동시에 다시 땅을 박찼다. 다른 놈이 칼을 높게 들어 내리쳤다.

아이를 노리고 내리치는 칼이다.

이 새끼가. 습격자 무시하냐?

난 왼손 장갑을 벗어서 던지고, 권총을 겨눠 삼연사를 갈겼다.

탕탕탕!

한 점을 노린 삼연사가 장갑을 때렸고, 필요 이상의 충격을 감지한 장갑이 갤럭시 필드를 발동했다.

둥!

허공에 생긴 은하수 형태의 방어막이 퉁- 하고 칼날을 밀어 냈다.

“어?”

당황한 놈이 자세를 수습하기도 전.

나는 다시 거리를 좁혔고.

놈의 다리 사이로 발을 넣어 아래에서 위로, 턱을 노리고 칼날을 꽂았다.

“핫!”

놈이 기합을 내질렀다.

염동력자였냐?

놈이 반사적으로 염동력을 발동.

위로 찌르는 손에 저항감이 느껴졌다.

뭐, 젤리 수준이다.

염동력은 그 사람이 가진 능력에 비례한다.

근접 거리에서 변신족 근력을 이길 수준의 염동력자는 아주 드물다.

퍽.

결과는 뻔했다.

놈은 턱 밑에서부터 위로 나이프를 꽂은 채 쓰러졌고.

난 헝겊을 뒤집어쓴 둘을 보며 스으읍- 하고 마지막 연기를 삼킨 뒤, 퉤- 하고 담배를 뱉었다.

이제야 입이 좀 자유롭네.

담배 꼬나물고 싸우는 거 안 불편한가?

팀장은 잘도 하더만.

“불멸특수대 요원입니다. 안심하십시오.”

그렇게 말하며 둘의 헝겊을 벗겼다.

아이는 숨도 제대로 못 쉬는지 파랗게 질린 채였고.

코드명 아델은 아는 얼굴이었다.

“너…….”

“오랜만이네. 근데 뒤.”

동기였다.

오티 때 같은 방이었고.

내가 음색 깡패라고도 말했던 여자 동기였다.

그리고 뒤에서 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

문을 지키던 둘은 자기들의 실수를 깨달았다.

문 앞을 비워 둠으로써, 내가 돌입할 각을 만들어 줬으니까.

곧바로 돌아서 왔는데, 이미 상황은 끝났다.

뒤를 덮치는 기척을 잃고 왼발을 뒤로 빼며, 몸을 180도 돌렸다.

오른쪽 옆구리에 4번 타자를 끼고 방아쇠를 당겼다.

꽝! 훙!

뒤로 후폭풍이 불며 음색 깡패 친구의 머리칼을 날렸다.

슬쩍 곁눈질로 뒤를 본 난 전면을 바라봤다.

“장례는 화장한 거로 치자.”

상반신이 날아간 불멸자의 하체가 바닥에 허물어졌다.

애를 죽이려던 놈들이다. 손을 과하게 쓰긴 했지만, 그렇다고 살려둘 만큼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니.

“토할 것 같아.”

뒤에서 동기가 말했고.

“웨에엑.”

아이는 토했다.

“눈 감고 있을래?”

아이한테 말하고 남은 놈을 봤다.

“더 할래?”

“……괴물 새끼.”

이쪽도 변신족 같은데.

놈의 동공이 파르르 떨렸다.

남은 놈이 뒷걸음질 치다가 곧장 몸을 돌려 달아났다.

“1층에 적 병력이 모여 있어. 퇴로가 막혔을 거야.”

이 와중에도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는지, 음색 깡패가 말했다.

난 둘의 손발을 묶은 걸 풀어 주고, 코트를 벗어서 아이를 감싼 뒤, 던진 장갑도 챙겨서 다시 꼈다.

“괜찮니?”

“아니요. 안 괜찮아요.”

애가 당차게 말했다.

이 정도면 괜찮네.

“1층으로 안 갈 거야.”

내가 말했다.

그럼 어디로?

음색 깡패 친구가 눈으로 물었다.

다행히 둘 다 팔다리는 무사하다.

보통 불멸자를 나포하면 다리부터 자르고 보는 놈들이 많은데.

“그 연구원인가 하는 놈은 어딨어?”

내가 물었다.

“밑에 있을 거야. 조심해. 괴물 같은 놈이 있었어. 그놈이 오면 못 빠져나가.”

눈을 가려도 들을 건 듣고 느낄 건 느낀다. 괜히 훈련받은 요원이 아니다.

“응, 보지 말고 가자.”

그렇게 말하며 4번 타자를 겨눴다.

“응?”

한 놈을 고이 보냈다. 내가 성인군자라서 살려 준 게 아니다.

내가 적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일단 비상구와 통로부터 막겠지.

꽝!

총구의 방향은 위로.

파지직.

전선이 합선되며 스파크가 튀었다.

깨진 천장이다. 옥상 천정은 꽤 두껍긴 한데, 이쪽은 아니거든.

한 발이면 충분하다.

물론, 아다만티움 탄은 더럽게 비싸서 비효율적이긴 한데.

사람 구하는 일에 효율성을 따지면 안 되지.

“갑시다.”

뚫린 구멍을 보며 말했다.

“……생각도 못 했어.”

음색 깡패가 말했다.

응. 우릴 쫓는 애들도 생각도 못 하겠지.

노림수가 그거라서.

난 한쪽 팔로 애를 안고, 다른 팔로 구멍 가장자리를 잡고는 턱걸이하듯 올라간 뒤, 손을 뻗었다.

제대로 먹지도 쉬지도 못한 지친 동기를 한쪽 팔로 번쩍 끌어올렸다.

“너 힘이 되게 좋구나.”

“반하지는 말고.”

“안 반해.”

그 와중에 할 말은 다 하네.

난 입을 놀리면서도 손은 멈추지 않았다.

꽝!

머리 위로 총을 쏴서 다시 길을 만들었다.

이제 5층으로 가 볼까나.

6층까지 가면 옥상이었다.

* * *

“보스, 당했습니다.”

살아남은 변신족은 곧바로 2층으로 내달렸다.

그곳에 1층 상황과 옥상 상황을 주시하던 보스가 있었다.

몸이 근질거려 죽겠는지, 불만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뭐?”

“인질을 탈취당했습니다.”

“뭐?”

“어디서 왔는지 모르지만, 갑자기 불멸대 요원 놈이 와서는…….”

“이 새끼가, 똑바로 말 안 해?”

변신족 테러범은 숨을 꼴깍 삼키고 다시 천천히 상황을 설명했다.

제 보스는 성질이 급하다.

괜히 ‘인간 벌목꾼’이란 별명이 붙은 게 아니다.

수틀리면 목을 썩둑 썩둑 베는 괴물이다.

크르르.

화가 난 인간 벌목꾼 노필두가 짐승의 울음을 토했다.

“비상구 막아! 퇴로 열어 주면 죽인다!”

그는 합리적인 선택을 했다.

광익의 예상대로.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