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 미친 자들의 세상
“아버지가 누굽니까?”
대뜸 사장실로 찾아온 이중봉이 입을 열었다.
달콤한 유자차를 즐기던 남명진은 고풍스러운 찻잔에서 입을 뗐다.
“우리 아버지는 그냥 평범한 순혈이셨지. 가문의 피를 잇지는 않았고.”
“누가 사장님 아버지 물어봤습니까?”
이중봉이 소파에 궁둥이를 붙였다.
“그럼 누구?”
“누구겠습니까?”
“유자차 마실래?”
우려 놓은 게 있기에, 남명진은 다른 찻잔에 노란 찻물을 따라 주었다.
후룩.
이중봉은 우선 차를 한 모금 마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달고 상큼하다.
속에 후끈 열이 오를 정도로 뜨끈하기도 했다.
“광익이?”
“네.”
이중봉도 살면서 별의별 꼴을 다 봤다.
타고난 천재라는 놈도 봤고.
천재인 척하는 머저리도 봤으며.
노력으로 재능을 넘어서는 놈도 봤다.
그런데, 이런 놈은 처음이다.
기척 죽이기는 어디서 배워 왔다고 칠 수 있었다.
그럼 속이기랑 흩날리기는?
유광익은 제 기술을 보고, 베끼면서 배웠다.
흥미가 생기는 건 당연했고.
그래서 하나둘 기술을 가르쳤다.
아니, 가르치는 걸 넘어, 알아서 익히는 수준이었다.
감각 확장은 어지간한 불멸이라면 익히는 기술이다.
그 원류는 순혈 정가의 기술.
예민함을 북돋아 상대의 기척을 읽는 비전.
‘기척 읽기’라고도 부르는 기술이다.
이중봉은 그것을 기반으로 자신의 오리지널을 만들었다.
임의로 한계를 넘어서는 수준까지 감각의 날을 세우는 거다.
재능을 넘어서는 노력의 결과다.
광익은 그것도 배웠다.
금세 흥분하긴 했지만, 그래도 배우긴 제대로 배웠다.
그렇게 이계의 임무를 끝내고 출근한 아침에, 자신의 발을 걸었다.
방심? 했다.
그렇다고 해도 놀라운 일이다.
광익이 쓴 건 기척 돌리기.
기척 죽이기조차 깔끔하게 쓰지 못하는 불멸자가 널렸는데.
놈은 한쪽으로는 기척을 속이고, 다른 쪽으로는 기척을 죽였다.
이게 놀랍지 않다면 뭐가 놀라울까.
호기심과 궁금증이 치밀어 오르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었다.
“혼혈 이레귤러에다 천재, 하지만 기술은 누군가에게 배워야 익히는 법이죠.”
딸깍.
중봉은 말하고 찻잔을 내려놓았다.
“중봉아.”
“네.”
남명진 사장은 주저 없이 말했다. 주저할 게 없었다.
“나도 몰라.”
“……네?”
“나도 모른다고.”
사장은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왜 모릅니까?”
1세대 불멸자, 그 이름 남명진이다.
행정안전부, 현재는 불멸특수대를 총괄하는 정부 부서다.
행안부 안에서도, 어지간한 권력자도 소홀할 수 없는 사람이 남명진이다.
원한다면 기밀도 들춰볼 수 있다.
“나도 궁금해서 물어봤는데 안 나오더라고.”
“진짜요?”
“진짜.”
중봉은 미심쩍은 눈으로 사장을 바라봤다.
나한테까지 속이려고?
라는 눈빛이다.
사장은 웃었다. 웃으며 말했다.
“중봉아, 아무리 나라도 전부 알 수는 없지. 그래서 재밌기도 하고.”
남명진도 모른다.
‘대체 뭐 하는 새끼지?’
중봉은 진심으로 광익의 정체가 궁금했다.
캐내 볼까? 작정하고 캐낸다면 어떻게든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못해도, 최소한 실마리라도 잡을 수 있다.
“첩자, 테러 단체, 광신도는 아니야.”
“그건 어떻게 확신하고요?”
“행안부 꼭대기가 책임진단다.”
고로 정체는 알 수 없지만, 확실한 인재란 거다. 그것도 혼혈 불멸자인 인재.
그냥 인재가 아니다. 천재 중의 천재다.
“사장님.”
문이 벌컥 열렸다.
금테 안경 비서가 들어왔다.
노크조차 없었다.
어지간히 급한 일이 아니고서야, 사장이 담소를 나누는데 쳐들어올 위인이 아니었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문제?”
“이걸 확인해 주십시오.”
비서가 손목 태블릿 PC를 조작했다. 곧 허공에 홀로그램이 투영됐다.
개인방송이었다.
머리를 말끔하게 올백으로 올린 남자가 보였고.
그 남자가 입을 열었다.
“난 한때, 정부를 위해서 연구소에 몸을 담았습니다.”
담담한 태도였다. 하지만 그 남자보다 배경이 더 눈에 들어왔다.
남자의 뒤쪽 배경으로 헝겊을 뒤집어쓴 둘이 보였다.
체형으로 봐선 한 명은 성인 여성, 다른 하나는 아직 어린애다.
잘해야 7~8살이나 되었을 애였다.
그 옆에 칼을 들고 복면을 쓴 남자 둘도 보였다.
칼날이 번들거리는 게 보였다.
남명진과 이중봉은 번들거리며 LED 불빛을 반사하는 칼날을 보고, 독이라는 걸 알았다.
불멸자는 목이 잘려도 충분한 영양소와 시간만 있다면 살아남을 수 있다.
그 경험이 즐거울 리 없긴 해도, ‘불멸’이란 두 글자가 괜히 붙은 게 아니란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멸자를 죽이는 방법은 존재한다.
몸이 아니라 정신을 죽이면 된다.
형이상학적인 말이지만, 인간은 이걸 현실화했다.
죽이고 또 죽이고, 고문하고 또 고문해서 정신을 마모시킨다.
곱게 미쳐야 불감가학이다.
‘불멸을 죽이는 방법 중 하나는 불면’이라는 농담도 있었다.
반은 진담이다.
괴로움에 시달리는 불멸자는 영원한 잠을 원하고.
그 바람은 곧 육체에 영향을 준다.
괜히 제 몸을 혹사하는 훈련을 하는 게 아니다.
불멸자는 제 몸을 찢고 부수며, 통증에 익숙해져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쇼크를 받았을 때 차라리 죽기를 바라게 되고, 정신이 무너진 불멸자는 죽는다.
타의적 자살이다.
물론 고문으로 그렇게 만드는 데는 시간과 노력이 든다. 쉬운 일도 아니다.
그래서 인간은 더 쉬운 방법을 찾았다.
괴로움의 극치, 독이다.
또는 꽁꽁 싸매서 바다에 던지기도 했고.
투쟁의 역사는 특수종을 연구하게 했고.
인류와 특수종의 전쟁은 곧 이런 방법을 만들어 내는 실험장이었다.
“내 인생, 모든 걸 연구에 매진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저한테 남은 건 변절자라는 호칭뿐이군요. 한국 정부에 요구합니다.”
올백 머리 남자는 숨을 고르고 카메라를 노려봤다.
그 눈에 원한이 깃든 듯 보였다.
“정부는 스스로 죄를 시인하길 바랍니다. 그럼 이 둘은 살 수 있을 겁니다. 이 둘이 누구인지는 당신들이 더 잘 알 거요. 한 명은 불멸특수대 요원이고, 다른 하나는 순혈 정가의 여식이지. 여러분 정부는 대를 위해 소를 희생시킨다는 논리로 이제까지 많은 사람을 죽여 왔습니다. 이런 행태를 두고만 보시겠습니까? 절대로 용납하지 마십시오. 난 테러범으로 낙인찍히고 이 목숨을 버려서라도 정부를 징치할 것입니다.”
뚝.
홀로그램이 끊겼다.
“영상은 곧바로 막았지만, 이미 암중에 퍼졌습니다.”
“지랄도 풍년이네.”
이중봉이 말했다.
“영상 분석팀은?”
“확인하고 있습니다.”
이중봉은 홀로그램을 물끄러미 보며 생각했다.
유광익이 지원 작전에 나갔다.
그건 사장의 허락하에 이뤄진 일이다.
광익의 임무는 요원 구출이다.
그리고 지금, 홀로그램 안에는 요원이 잡혀 있다.
저곳, 테러범이 영상을 찍은 곳은 광익이 지원 나간 곳이다.
“알고 보냈습니까?”
이중봉이 물었다.
남명진은 팔짱을 낀 채로 답했다.
“중봉아. 아까 말했지.”
사장은 아까의 말을 반복했다.
“아무리 나라도 전부 알 수는 없다.”
말한 뒤, 사장은 생각했다.
어째 광익이 가는 곳마다 문제가 터진다고.
‘내가 보내서 그런 걸까?’
능력과 재능이 출중하다. 그러니, 당연히 위험한 곳에 보내게 된다.
그 재능을 썩힐 수는 없지 않나.
그렇다고 해도, 과하긴 하다.
눈먼 개 웨이브를 막더니.
이계에서 테러 단체 행사를 방해하고.
머니 & 세이브를 타격해서, 한국에서의 프로메테우스 입지를 줄였다.
동대문에서는 사람을 구하고.
이계에서는 혼자 기지를 지켰다.
“지원팀 준비시켜.”
사장이 말하고.
“3팀도 갑니다.”
“그래.”
사장의 허락이 떨어졌다. 이미 떠난 광익을 쫓아 외부 보안 3팀도 움직였다.
재게 발걸음을 놀리며, 중봉은 생각했다.
이상하고 희한한 일이지만.
‘걱정이 안 되냐. 왜.’
개수작을 부리는 상대가 있다. 위험은 당연했다.
1년 차 신입 사원이 다룰 일이 아니긴 한데, 유광익이 또 그냥 신입은 아니니까.
‘괜찮을 것 같기도 하고.’
이중봉은 자신이 예언가가 아님을 알았다. 지금은 그저 빨리 작전 지역에 돌입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그게 정답이었다.
* * *
특수종의 세상에서 나 정도면 무척 정상이다.
세상에는 미친놈이 이렇게 많으니까.
전용기를 타고 제주도에 도착하자마자 연락을 받았다.
“잠입 작전은 취소다.”
오면서 짰던 모든 작전은 무용지물이 됐다.
미친 과학자가 개인방송을 했고, 본사에서는 그 영상을 분석했다.
박필로 팀장은 분석팀과 회의에 들어갔다.
“늦어.”
개나리 수라는 가끔 헛소리를 뱉었다.
시선을 허공에 둔 채, 아무 생각도 안 하는 듯 인형처럼 앉아 있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초조해 보였고, 어떻게 보면 여전히 독이 오른 고양이처럼 보였다.
처음 봤을 때부터 느낀 건데.
저 여자, 수틀리면 당장이라도 싸울 기세다.
불멸자 사이에서 저런 흉흉한 태도로 앉아 있으면 당연히 도발처럼 여겨지고, 상대에게 불쾌감을 주게 된다.
“별난 여자네.”
대기하는 중에 1팀 대리가 다가왔다.
머리 옆에 스크래치를 넣고 짧은 머리를 고수하는 불멸자다.
“이 세상에 별나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난 진심으로 그리 생각했다.
특수종의 세상은 미친 자들의 세상이라고.
“……하지 마. 광익 씨.”
“네?”
“광익 씨가 그렇게 말하니까 좀 무서워.”
“네?”
“아니야.”
이 양반이, 말을 하려면 끝까지 해야지.
곧 분석팀과 회의를 마치고 온 팀장이 전 병력을 모았다.
“현재 정부의 과학자라고 주장하는 용의자의 신상이 파악되지 않는다. 즉, 용의자 본인이 말하는 내용 중 사실은 없다.”
음?
“분석팀의 영상 분석 결과.”
불멸자의 영상 분석 기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사소한 거 하나도 놓치지 않고 거짓 속에 숨겨진 진실을 파악하는 전문가 모임이라고 봐도 좋았다.
“지금 용의자가 하는 말은 90%가 거짓이다.”
그럼 뭘 노리고 이런 짓을 하는 걸까.
팀장도 세세한 설명까지 하지는 않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해야 할 일을 규정하는 것과 실행할 행동력이니.
다만, 내 머리는 별개로 멋대로 원인을 파악하고 결론을 도출했다.
일개 과학자가 정부를 대상으로 도발을 감행했다.
그럴 이유가 있을까?
돈을 요구한 것도 아니고, 감옥에 갇힌 동생을 빼달라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억울하다며 난리 치는 것도 아니다.
나도 영상을 봤다.
억울하다는 척만 했다.
대신 그의 논리는 명확했고, 원하는 건 정확했다.
정부의 사과.
국민을 위한다는 명목하에 벌인 일들의 사과다.
그로 인해 얻는 건?
정부의 신뢰 추락, 쉽게 말하자면 그 신뢰의 결백함에 손상을 준다.
이미지 타격이라고 봐도 좋다.
그럼 이런 일을 하는 놈들은 누굴까?
“지금부터 대테러 작전으로 임무를 변경한다.”
박필로가 말했다.
그래, 테러 집단이 아니고서야, 이런 미친 짓을 할 리가 없다.
특수종의 세상은 미친 자들의 세상.
그 미친 자들의 세상 속에서도 더 없이 미친 이들의 단체.
그게 바로 프로메테우스를 비롯한 테러 집단이다.
직감이 뇌리를 스쳤다.
상대는 프로메테우스, 또는 그들과 밀접한 관계에 있을 거다.
프로메테우스는 일개 불멸특수요원 덕분에 한국에서 엿을 많이 먹었다.
스케일이 큰 사건마다 빅 엿을 위장 빵빵하게 드셨다.
축능석 탈취, 머니 & 세이브 타격, 그로 인한 불멸교도의 정체 발각.
불멸교 교주랑 프로메테우스의 리더가 각별한 친구 사이라고 해도, 어지간하면 성질이 날 일일 터.
이런 상황에서 내가 테러 단체라면 무엇을 할 것인가.
먹은 엿을 돌려주려 하겠지.
기지를 타격하는 것보다 더 영리한 방법.
흑색선전.
직감에 빗대어 곰곰이 생각해 보니.
왠지 나 때문에 일이 커진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나한테 너무 엿 먹어서, 얘네도 무리해 가면서 덤비는 건 아닐까?
아무리 테러 단체라도 이득이 없는 일에 자원을 투자하는 일이 쉬울 리가 없다.
성공하면 좋지만, 실패하면 이 일에서 남는 게 뭔데?
여기서 결론은 하나다.
미친놈들이 하는 짓에 이유를 붙이지 말자는 거다.
뭐가 나 때문인가.
그게 아니다. 이건 순전히, 이 새끼들이 미쳤기 때문이다.
“보안 1팀이 정면에서 시간을 끌고, 우리 넷은 별도의 진입로를 택한다. 작전 형태는 타임 어택.”
박필로 팀장이 말했다.
이 말로 현재 작전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시간, 인질 구출은 시간이 생명이라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