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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격 외 혈통 천재-129화 (129/488)

129. 식탁에서도 배우다.

“아들.”

“네.”

“네가 하는 일, 괜찮은 거지?”

일반 사원의 범주를 넘어서는 보너스.

선물이 과했다. 그걸 보고도 그냥저냥 공무원이라 생각할 수는 없을 거다.

실험체 변신족을 데려오는 깜냥도 보였다.

내가 하는 일이 평범하다고 할 수 있을까.

이게 전부 다 아버지 때문이다.

진즉에 다 밝히면 얼마나 좋아.

“괜찮은 건데, 평범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가장 좋은 거짓말은, 진실을 섞는 거다.

“기밀 사항이라 말씀드릴 수 없지만, 국가 정보에 관련된 일을 맡아서 하고 있어요.”

어머니는 날 유심히 바라봤다.

이럴 때가 제일 뜨끔하지만.

“믿는다.”

어머니는 그 말만 남기셨다.

“네, 믿으십쇼.”

어쩌겠나, 이미 쏘아진 화살은 잡아챌 수 없으니. 그저 얌전히 날아가길 바랄 뿐이다.

“아버지는요?”

“집에.”

“마리는 얌전해졌네요.”

“애가 순해.”

처음 봤을 때는 순하다는 단어와 완전히 반대편에 섰었죠.

“그럼 집으로 가죠. 주말 내내 먹고 놀고 싸고 자는 게 목표입니다.”

“내 아들이지만, 참 한결같아.”

그거 칭찬일까요?

눈치를 보니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옷 예쁘죠?”

“오늘은 소고기다.”

어머니는 선물에 약한 분이었다.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가서 푸짐하게 상을 차려 먹었다.

마리는 아직 집에 들일 수 없으니 헤어졌고.

오랜만에 아버지까지 모여서 단란한 가족 식사를 했다.

저녁쯤, 어머니는 친구를 만난다며 한껏 꾸미고 나가셨고, 그사이 아버지는 내게 맥주나 한잔하자고 하셨다.

“좋죠.”

다 큰 아들이다. 대작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버지는 흐뭇해하셨다. 얼굴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일은?”

맥주 한 캔을 다 마실 때쯤이었다.

식탁에 팔꿈치를 올린 아버지가 물었다.

“재밌어요. 처음에는 당황하긴 했지만, 하다 보니까 즐겁기도 하고요.”

“으흠.”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시죠?”

나도 눈치가 백 단이다.

“뭘?”

“제 소속.”

애초에 아버지가 꽂아 준 회사다. 모를 리가 없었다.

“불멸특수대.”

아버지는 웃음기 하나 없이 말했다.

궁금하긴 했다. 천금 같은 아들, 그것도 하나뿐인 자식이 나인데.

불멸특수대는 위험을 담보로 한 회사였으니, 그런 곳에 아들을 보낸 아버지는 무슨 생각이실까.

“그 안에서 네가 뭘 하는지까지는 알 수 없다. 단체에는 각자의 사정이 있는 법이니까.”

꼴깍, 그리 말하면서 아버지가 맥주 한 모금을 들이켰다.

“그 말은, 아버지는 불특대가 아니라는 거네요?”

“아니다.”

확고하시네.

정말 아니란 거다.

아버지가 맥주를 두 캔 째 비우며 손으로 우지직- 하고 알루미늄 캔을 구겼다.

평소에 주량이 센 편은 아니신데, 많이 드시네.

“아들.”

“네.”

“만약 네가 평범하게 살길 원했다면, 아빠는 절대 널 그곳에 넣지 않았을 거다.”

난 날 구해 준 사람의 등을 매번 떠올렸고.

내 인생의 목표도 명확한 편이었다.

초등학교 때는 소방관, 다음 해에는 경찰관, 그다음 해에는 경호원, 다시 다음 해에는 군인.

매해 달라지는 것 같지만, 목표는 한결같았지.

난 인베이더의 반대편에 서고 싶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 모든 걸 지켜봤다.

“하지만 네가 하고 싶은 일이 있고, 해야만 한다면. 적어도 내가 아는 곳에서 시작했으면 싶었다. 불멸자의 전투를 배우면 최소한 쉽게 당하진 않을 테니까.”

속이 쓰리다.

아버지의 말에서 걱정이 여실히 느껴졌다.

심장을 바늘로 쿡 찌르는 기분이 들었다.

어찌 걱정하지 않을까.

불멸특수대란 곳, 인베이더와 싸우고 테러단체와 마주하는 집단에 아들을 넣고 어찌 담담할 수 있을까.

“그래서. 뭐 좀 배웠니?”

“네, 뭐 좀 배웠습니다.”

먹먹한 가슴을 부여잡고 아버지가 화제를 전환했다.

나도 이쪽 분위기가 더 편했다.

어머니도 그렇고, 아버지도 그렇고.

평소에 사랑한다고는 잘만 말하면서도, 감동적인 언사를 나누는 건 참 어색했다.

아버지와 내가 무뚝뚝한 편은 아니지만, 먹먹함보다는 내가 이룩한 걸 보여 드리는 편이 더 나았다.

어색한 공기를 날리며, 난 불멸의 비전을 펼쳤다.

기척 죽이기.

기척을 죽인다. 눈앞에 있지만, 사람이 흐릿하게 보이게 만드는 불멸의 비전.

난 앉은 자리에서 내 숨소리를 죽이고 움직임을 제한함으로써 내 기척을 숨겼다.

“오호.”

아버지가 감탄했다.

한 발 더 나가 보자.

기척 속이기.

기척을 숨기는 걸 넘어, 상대에게 움직일 것처럼 보이는 거다.

손가락을 까딱하며 왼쪽 허벅지 근육에 힘을 준다. 내가 그린 이미지는 왼쪽 맥주 캔을 들고 던지는 것.

실제로 움직일 마음은 없다. 단순한 페인팅이다.

아버지는 말없이 눈웃음을 보였다.

기척 죽이기, 속이기, 다음은 흩날리기다.

단순한 패턴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의 패턴을 섞는다.

맥주 캔을 던지고 발을 건다. 식탁을 엎고 그 틈에 하단 태클.

이미지를 그리고, 근육을 움직인다. 움찔하는 손짓 하나만으로 내 모든 건 아버지의 감각에 걸린다.

다음은 팀장에게 배운 감각 강화를 펼쳤다.

아버지가 어떤 반응이라도 보이면 그다음 행동을 예측하게 만드는 예민한 상태다.

일명 ‘존에 빠진 상태’였고, 달리 말하면 벽을 넘은 상태.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다. 촉각으로는 느끼고 미각으로는 공기의 맛을 본다.

뇌세포가 활발하게 움직이며 육감과 직감을 예민하게 달군다.

아버지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저 맥주 캔을 들어, 남은 맥주를 들이켰을 뿐이다.

맥주 캔을 든 손에서 변화가 일 듯 말 듯한다. 손가락의 움직임에 집중했다.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변화가 눈에 보인다. 상대의 의지를 읽는다. 흔들리는 공기의 파동, 근육의 움직임까지 읽어 내자.

기척 흩날리기? 비슷했다. 집중했다.

아버지는 끝내 맥주만 마셨다.

그리고 그게 끝이었다.

난 거기서 어떤 반응도 찾을 수 없었다.

그랬는데.

툭.

아버지가 반대쪽 손가락으로 내 이마를 짚었다.

“……어?”

놀랐다. 진심으로 놀랐다.

한창 벼르고 벼른 감각의 그물에 걸리지 않았다.

이마에 촉각이 느껴지고 나서야 알았다.

“놀랐지?”

아버지가 웃으며 물었다.

“……어떻게 한 거예요?”

솔직히 기겁할 정도로 놀랐다.

“집중이 과해. 죽인 기척을 잡아채는 거에 집중하면, 정작 눈앞에서 떠다니는 나비를 놓치는 법이란다.”

선문답, 명언과 더불어 아버지가 좋아하는 말투다.

“아니, 진짜로 어떻게…….”

말하는 동시에 깨달았다.

기척을 느낀다는 건 무엇인가.

상대의 의도를 읽는다는 거다.

나비가 나는 걸 집중해서 보면, 나비의 날갯짓 횟수까지 셀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집중하는 게 그 뒤에 떠다니는 벌이라면?

본능적으로 위협에 집중하게 된다. 눈앞에 떠다니는 나비가 아니라 벌에 모든 심력을 쏟게 된다. 나비의 움직임을 머릿속에 지우는 거다.

내가 방심한 것도 있다.

만약 전투 중이었다면 이렇게 쉬이 당하지 않았을 테지만.

이건 또 나름대로 새로운 비전 중 하나다.

기척 죽이기를 기본으로 삼는 비전. 머릿속에 새로이 배운 게 정리됐고, 이해됐다.

“기척을 죽이고, 속이고, 흩날리고. 다음은 뭘까?”

아버지가 여전한 미소를 띠며 물었고.

이어서 답도 알려 주셨다.

오늘따라 후하시다. 보통은 내가 알아내라고 할 텐데.

아니, 이미 원리를 눈치챈 걸 아신 걸지도 모른다. 내가 눈치가 빠른 건 유전이다.

아버지는 더 하다.

“기척 돌리기다.”

아버지가 말씀하셨고, 난 집 주방 테이블에 앉은 자리에서 아버지와 맥주로 대작하며 새로운 비전을 배웠다.

연습해야지.

이걸 제대로 써먹으면, 팀장에게 한 방 제대로 먹일 수 있을 듯싶다.

“잘했다. 아들.”

취기가 오른 아버지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고.

“더 잘할 겁니다.”

난 내 의지를 보였다.

화림에 있으면 알게 된 것.

그리고 깨달은 것.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레 알게 된 것들까지.

그 모든 시간과 경험은 나에게 세상을 보는 눈을 줬으며.

그건 곧 나에게 새로운 목표를 심어 줬다.

아직 입 밖으로 꺼내 말할 수 없지만.

“진짜 더 잘할 거라고요.”

“암, 누구 아들인데.”

지금 보니, 아버지 된통 취하셨다.

주량을 넘기셨다. 맥주 세 캔이라니.

“엄마가 보면 화낼 것 같네. 요새 출장도 잦은데 집에서 술 취한 거 알면.”

“아빠, 샤워 좀.”

냉수 샤워하세요. 어머니 오시기 전에.

극구 추천합니다.

아버지는 비틀거리진 않았지만, 머리를 흔들며 욕실로 직행하셨다.

* * *

“주희야.”

“응?”

마리는 방에서 홈스쿨링.

강슬혜는 친구와 마주했다.

낮에는 종일 폰만 잡고 몰두하는 친구지만, 저녁에는 한가한 편이다.

“우리 애.”

“광익이?”

“우리 애, 이상한 일 하는 걸까? 공무원이라고 하면서 뒷돈이라도 크게 받는 걸까?”

“……자랑하려고 하는 말은 아니지?”

강슬혜는 아들에게 받은 선물 3종 세트를 다 가지고 나온 참이다.

“아니고.”

임주희가 고개를 모로 꺾었다.

유광익은 제가 가르친 학생이기도 했다.

“돈을 과하게 잘 벌어서 의심하는 거야?”

“실험체 변신족 아이를 데려오기도 했지.”

아래층에서 홈스쿨링에 여념이 없는 박마리가 그 주인공이다.

“다른 가능성은?”

“내 아들이 변신족의 힘을 믿고 어디 조직 같은 데 들어간 건 아닐까? 말만 공무원이라고 그럴싸하게 하고 말이야.”

물음에 임주희는 고개를 저었다.

특수종의 세계다. 일반 깡패가 활약하던 시대는 지났다.

회칼로 배를 푹 찌르면 뭐 하나.

찔린 놈이 특수종이면?

“나 불멸자야.”

이러면 아무 의미가 없다. 되려 어지간해서 죽지 않는 특수종에게 원한만 잔뜩 사겠지.

현재 어둠의 세계를 장악하는 건, 민간군사기업 또는 프리랜서 연합이다.

범죄자가 모두 특수종인 건 아니지만, 특수종이 아닌 범죄자가 살아남기에는 험한 세상이었다.

그리고 임주희는 이 어둠 쪽 계통에 빠삭했다.

“네 아들 정도 되는 애가 제대로 날뛰었으면,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을 리가 없어.”

임주희가 제 귓불을 툭 치며 말했다.

“거기에 남편 추천이었다며.”

지금 광익이 다니는 회사는 정부 계통의 자회사로 알고 있다.

공기업이고 철밥통.

강슬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랏일을 하는 건 맞을 것이다. 그래서 드는 가장 큰 의심이 뒷돈이었다.

임주희는 꽉 막힌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자신의 친구도 막힌 타입이 아니라는 걸 알았고.

“뒷돈 좀 받으면 어때, 호구 잡혀 사는 것보다야 백번 낫지.”

“그건 그래.”

강슬혜는 수긍했다.

‘사고치고 다니는 건 아닐 거야.’

세상에는 별의별 놈이 다 있다. 뉴스에선 불감가학병에 걸린 미친 호랑이 가면 불멸자가 날뛴 사건도 보도되었다.

그 전투 영상은 보안 시스템에 걸리기에 볼 수 없었지만, 미친놈인 건 분명했다.

제 아들이 그런 사고를 치고 다니는 건 아닐까?

‘아니겠지.’

사리 분별은 할 줄 아는 아들이다.

강슬혜는 아들의 정체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불멸자와 변신족은 세계 정부 연합 올드포스와 글로벌 기업 엑스큐라시로 대변된다.

둘 사이에 정보 교류가 원활하진 않아도 서로 알 건 다 안다.

첩보 수준은 아니어도, 소문 정도는 오가는 사이다.

만약 강슬혜와 임주희 둘 다 기업 쪽에 속해 있었다면, 동대문의 구원자란 이름 정도는 들었을 거다.

하지만 둘 다 아니었다.

강슬혜는 일에서 손을 뗀 지 오래였고.

임주희는 낮에는 주식에 목을 매고, 저녁에는 소일거리나 하며 지냈다.

몇 해 전만 해도 프리랜서로 이름을 날렸지만, 그 일을 놓은 지 꽤 됐다.

그래서 둘 다 몰랐다.

물론 불멸특수대라는 조직이 가진 배타적 특성 때문이기도 했다.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져도 대외적으로 크게 이름을 드높이게 두진 않는다.

헤드헌터 회사나 이쪽에 빠삭한 이들이라면 알겠지만, 둘 다 그쪽과는 연이 깊지 않았다.

“웅이한테 물어볼까.”

강호웅, 슬혜의 동생이었다. 광익에게는 삼촌이었고.

“그거 물어보면 웅이는 돌아오라고 할 테고, 그럴 생각이 없는 넌 또 한바탕 싸우겠지, 그러다 머리에 열 오르면 주먹질도 할 거고. 그래도 연락할 거야?”

“아니.”

강슬혜는 고개를 저었다.

현업에서 손 씻은 지 오랜 시간이 지났다.

강슬혜는 아들을 믿었으며.

혹시나 아들이 뒷돈을 받았거나 사고를 쳤다 해도.

몸만 멀쩡하면 수습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제 아빠가 고위 공무원이고.

연은 끊었지만, 제 외할아버지도 영향력이 남다른 사람이었다.

‘아니겠지.’

아들은 곧고 바르다. 자신이 그렇게 키웠다.

아들이 추구하는 삶도 안다.

자신의 구함을 받았기에 그걸 위해 살겠다는 건데.

안쓰럽다. 그렇게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말릴 수는 없다. 그래서 공무원이 된다는 말에 내심 안도했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적당히 기업에 꽂아 넣고 변신족의 육체를 쓰는 법을 가르쳤을 것이다.

하고자 하는 일에 힘이 되도록.

최소한 어디 가서 처맞고 다니지는 않도록.

강슬혜의 눈에 걱정이 스며든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제 배로 낳았지만, 아들은 아들의 삶이 있다.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는 그 삶을 존중해 주는 것부터 시작이었다.

“저 다 풀었어요.”

현관 밖에서 마리가 말했다.

저녁 숙제 담당은 임주희의 몫이지만.

“내가 갈게.”

이번엔 슬혜가 직접 움직였다.

강슬혜가 나가고, 임주희는 생각했다.

유광익이 누구인가.

이레귤러 변신족, 탁월한 하드웨어와 놀라운 극기를 갖춘 혼혈, 친구의 아들, 자신의 제자.

변신족의 힘을 썼다면 그 이름이 들리지 않을 리가 없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임주희는 발품을 조금 팔아 볼 생각이었다.

광익이 어디서 무얼 하는지 알아보는 것쯤은 그리 큰일도 아니니.

친구의 걱정을 덜어주고 싶었다.

‘내일 아침 장부터 보고.’

그래도 제 일이 먼저이긴 했다.

블랙홀 생성 개수와 겹문이라는 이상 현상이 터진 탓에 코스닥 시장이 엉망이 됐었다.

최근에 안정화되고 있어서 이제야 원금 회수가 코앞이었다.

‘빌어먹을 블랙홀.’

임주희는 블랙홀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었다.

물론 그런 세상이 돼도, 그녀의 주식 계좌가 플러스가 된다는 보장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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