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 변신하는 건강 미녀요.
광익의 어머니, 강슬혜는 부쩍 한가로웠다.
“너 그러다 병나, 아르바이트라도 좀 해.”
“됐어. 괜히 일 시작하면 또 미련만 남지.”
친구의 권유에 귀가 솔깃했지만, 단념했다.
아들 인생에 복잡한 스토리를 끼얹어 주고 싶지는 않았다.
‘지루하네.’
남편의 출장이 잦아지고, 집에서 부대끼던 아들놈은 독립했다.
돈은 잘 버는 것 같지만, 무슨 공무원이란 놈이 허구한 날 싸돌아다니는 것 같기도 하고.
‘잘하겠지.’
강슬혜는 아들을 믿었다.
그래도 걱정이 앞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변신족의 욕구는 강렬하다. 그 욕구는 잘 컨트롤하는 것 같다만.
아직 변신 경험이 없다.
변신족은 변신 경험 이후가 돼서야 진짜라고 할 수 있었다.
‘나중에.’
조금 천천히.
인간과의 혼혈로 태어난 아들이다. 그저 쿼터 수준의 능력이면 좋겠지만, 친구가 말하길 이레귤러라 했고.
그 말은 자신의 피가 제대로 이어졌다는 말이기도 했다.
걱정이 앞서진 않는다.
다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이니, 조금 천천히 자라도 괜찮으리라는 생각이었다.
그리 생각하며 슬혜는 폰을 확인했다.
이 쌍놈의 아들 새끼는 툭하면 연락을 안 한다. 아들 새끼 키워 봤자 다 헛짓거리라더니, 아직 여자도 없는 것 같은데 벌써 이렇다.
[나한테 아들은 없다.]
그 메시지에, 아들은 이틀 전에 답을 줬다.
“힘드니?”
강슬혜는 눈은 폰에 둔 채, 입을 열었다.
다리를 꼬고 벽에 등을 기대어 선 채였다.
제 친구의 개인 훈련장이었고, 광익이 훈련받은 그 공간이기도 했다.
“아니요.”
땀을 뚝뚝 흘리는 마리가 답했다.
처음에 광익이 데려올 때만 해도 사람답게 키워만 보자고 생각했다.
때 되면 제 갈 길 찾아 보내려 했는데.
‘애가 좀 잘해야지.’
말을 가르치고 글씨를 가르치고,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소양을 가르쳤다.
광익이 대신 등산도 데려갔다.
그렇게 극기 정신을 심어 주고 나니, 애의 몸이 보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자마자 상대의 수준이나, 육체의 질을 알아보는 눈은 불멸자에게나 가능한 묘기다.
그들의 감각, 특히나 육감과 직감은 날카로운 데가 있으니까.
대신 강슬혜는 마리를 굴렸다. 박마리는 구르면서 제 몸의 재능을 증명했다.
‘평균 이상.’
훈련에 따라서는 강슬혜 기준, 상위급이 될 것이다.
눈치챈 것도 있다. 일반의, 그러니까 보통의 변신족이 아니라는 거, 실험실에 갇혀 있던 흔적이 몸에 남았다는 거다.
강슬혜는 매드 사이언티스트 집단을 증오한다.
같은 의미로 본가의 실험실도 싫어했고, 정부가 몰래 돈을 들이는 연구도 전부 싫어했다.
물론 가장 증오하는 건 테러 집단이나 미친 과학자 새끼들이지만.
어쨌든. 마리를 처음 맡았을 때는 그저 소일거리 정도였으나.
지금은 달랐다.
가르치는 대로 흡수하고 배우니, 어찌 즐겁지 아니할까.
거기에 애가 싹싹하기도 하며 자신을 무척 따른다. 절로 정이 갔다.
“아버지가 있다고 하던데 기억은 하니?”
슬혜가 물었다.
훈련을 끝내고 막 샤워를 마치고 나온 마리는 몸의 열기가 남아 어깨 위로 증기가 피어올랐다.
수건으로 몸을 닦으며 마리가 답했다.
“아니요. 딱히 기억나는 사람은 없어요.”
“친부나 친모를 만나고 싶니?”
변신족 순혈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가문이 있지만, 그 피가 흐른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순혈에 가까운 변신족의 피가 몸에 흐르는 건 분명했다.
어떤 연구소나 실험실도, 그 어떤 미친 과학자도 생명을 창조할 수는 없다. 고로, 마리에게도 친부와 친모는 있을 것이다.
“모르겠어요. 실험실에서의 기억은 드문드문 나는데 그 이전 기억은 없고, 기억이 없으니 딱히 그립지도 않아서.”
고개를 모로 꺾으며 답한 마리는 수건을 치우고 바디 드라이어 위에 섰다.
위이잉.
기계가 밑에서 위로 바람을 토해냈다.
땀을 흠뻑 흘린 뒤, 샤워하고 몸을 말리는 시간이다.
슬혜는 바나나 우유를 하나 건넸다.
빨대를 꽂아서 한 번에 쭉 빠는 빨대 원샷이란 기술을 보인 마리가 후아- 하고 맑은 숨을 토했다.
상쾌하고 개운한 표정이었다.
“전 어머니랑 함께하는 시간이 좋아요. 실험실로 돌아가고 싶지도 않고요.”
실험실의 기억을 숨기는 것도, 본인이 실험체라는 걸 숨기는 것도, 자아 성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강슬혜는 그렇게 판단했고, 되려 상처가 될 기억을 받아들이고 극복할 힘을 갖길 원했다.
박마리는 그 가르침에 충실히 따랐다. 그게 예뻐 보이는 건 당연했다.
“음, 네 아버지란 작자는 네가 보고 싶다는데?”
“친부인가요?”
박마리는 거리낌 없이 물었다. 친부면 어떻고 아니면 어떨까.
“아니라는데?”
“그럼 그게 왜 제 아버지죠?”
자신을 키워 준 것도 아니고 낳아 준 것도 아닌데. 어떻게 그가 자신의 아버지인가.
박마리는 이전에 그녀가 아니었다. 본능만 남은 짐승이 아니었다.
강슬혜에게 사회를 살아가는 상식을 배웠다.
물론 강슬혜 스타일로 배웠다.
올해 나이는 열아홉.
박마리에게 강슬혜의 아들은 자신의 오라비였고.
어머니의 친구는 이모였다.
이모는 훈련장의 주인인데, 자신에게 큰 관심은 없었다.
고로 그녀에게 중요한 건 강슬혜 하나였다.
박마리에게 세상은 강슬혜였다.
* * *
“마리야?”
박병준 박사가 당황했다. 내가 봐도 그렇다.
어머니는 사태를 수습했다.
“일단 앉으시죠. 커피라도 한 잔?”
“아, 네.”
박사는 자연스레 어머니의 인도에 따랐고.
난 차가운 아메리카노 석 잔과 우유 한 잔을 가져왔다.
우유는 마리의 몫이었다.
선물 받은 세 개의 쇼핑백을 얌전히 챙긴 어머니는 나서지 않았다.
자신이 나설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걸까.
“저기, 마리야?”
박병준 박사가 눈치를 보며 말했다.
마리는 격동에 차서 눈물을 흘리거나, 그렇다고 원한을 담은 눈빛을 보이지도 않았다.
그저 예의 바르게 담담히 물을 뿐이었다.
“몇 가지 물어도 될까요?”
“그래라.”
“친부가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그럼 절 낳아 준 건 아니고, 그렇다고 키워 줬다고 하기에는…… 완벽하진 않지만, 전 실험실에 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한낮의 동네 카페는 적당히 한가하고 적당히 소란스러웠다.
한쪽에 아주머니 몇이 모여 떠들고 있지만, 우리 쪽 테이블에 귀를 기울인 사람은 없다.
테이블이라고는 저기 하나뿐이었고.
“키워 주지도 낳아 주지도 않은 사람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습니까?”
외통수다.
박병준 박사는 입을 벌린 채, 말을 잇지 못했다.
“박사라는 호칭에서 추측하길, 혹시 그 실험실에서 절 데리고 나와 주신 겁니까?”
“그래, 내가 데리고 나왔지.”
박사가 답했다. 눈이 풀렸다. 이미 넋이 나간 상태였다.
“그건 감사하지만, 그것만으로 제 아버지라고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혹시 제가 모르는 호적상 등록이 되어 있습니까?”
엄밀히 말하자면 마리는 호적조차 없는 무호적자, 주민등록이 없는 사회적 유령이다.
“아니, 그런 건 없다.”
상황상 마리를 데리고 도주하면서 주민센터까지 갈 수는 없었겠지.
갔다 해도, 호적에 올리는 게 쉬운 일도 아니고.
지금도 박병준 박사는 자신이 배반한 연구 집단에서 수배 중인 몸이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호적은 무슨.
“그럼 은혜는 감사합니다. 필요하다면 돈 또는 그에 상응하는 무언가로 갚겠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제 아버지가 아닙니다.”
야, 말을 그렇게 하면 안 되지.
나서려 하는데, 밑에서 어머니가 발끝으로 정강이를 툭 찼다.
상관하지 말라는 표시였다.
“……마리야.”
박병준 박사는 세계를 잃었다.
그는 마리를 위해 많은 걸 포기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마리의 반응이 싸늘하다.
아니, 싸늘함이 아니라 무심했다.
사실이 그러하니, 그리 말할 뿐.
딱 이 태도였다.
진짜 감정이 요만큼도 느껴지지 않았다.
어버버 하는 박사를 대신해 내가 말했다.
“박사님은 마리 씨를 딸로 생각해요.”
사람이 좀 안쓰러워야지.
“말씀 편히 하세요. 오라버니. 그럼 오라버니도 이분을 아버지라 부르시나요?”
“그건 아니지.”
“그럼 만약 오라버니를 아들로 생각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오라버니는 그 사람을 부모라 생각해야 하는 건가요?”
사랑은 상대적이다.
혈연으로 묶여 있지 않다면 일방적인 사랑은 있을 수 없다. 타인의 사랑은 반드시 보답받을 수 없는 것과 같다.
그게 연인이 되든, 친구가 되든 말이다.
가상의 부모 자식 관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박병준 박사의 생각과는 별개로, 마리가 박사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둘은 부녀지간이라 할 수 없다.
정설이고, 맞는 말이다.
딱 어머니 스타일이기도 하고.
미니 강슬혜를 만들어 두셨네.
“아니,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친한 사이 정도로는 남는 게 좋지 않을까? 둘 사이의 스토리는 다 모르지만.”
난 어머니 앞에서 불멸특수대임을 밝힐 수도 없고 마리는 우연히, 정말 우연히 맡은 아이라고 강조했었다.
“한쪽이 이렇게 나서는 데는 이유가 있지 않겠어? 박사가 너한테 해를 끼치려는 것도 아니고.”
“해를 끼치긴 했었죠. 저에게는 일부지만, 실험실의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그 말에 박병준 박사가 뜨끔했는지 몸을 움찔했다.
나도 모르겠다.
“둘이 알아서 할 문제지. 아들.”
어머니의 말이 정답이었다.
난 포기했고.
박병준 박사도 할 말이 없는 듯했다.
마리는 그리 말하며 우리가 또 만날 이유가 있냐고 물었고.
박사는 보고 싶을 거라고 했으며.
여기서 마리는 혹시 자신을 여자로 보는 거냐고 물어, 박사를 절망에 빠지게 했다.
헤어지는 것밖에 도리가 없었다.
박사는 포기했다.
지금은 마리가 행복해 보였고, 문제 또한 없어 보였기에 그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카페에서 궁둥이를 떼고 몸을 일으켰다.
돌아서는 박사를 향해 마리가 입을 열었다.
“박병준 박사님.”
“응?”
반색하며 박사가 고개를 돌리자, 마리가 물었다.
“제 나이가 열아홉인 건 맞습니까? 확실히 아는 건 박사님뿐이라서요.”
“맞다. 생일은 1월 20일이고.”
“감사합니다.”
마리가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였다.
박병준 박사는 미련을 털어 냈다.
돌아서는 그를 차로 데려가자, 그가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우리 마리 잘 부탁하네.”
“거, 애는 잘 크고 있는데 다 큰 어른이 뭐 이렇게 울고 그럽니까.”
“내가, 진짜.”
박사가 울먹거렸다. 안쓰러워서 어깨에 손을 올려 토닥이니, 그가 내 가슴에 머리를 기댔다.
거참, 다 큰 어른이.
“아빠, 저 오빠가 아저씨를 울렸어. 그럼 저 오빠가 나쁜 남자야?”
지나가는 초등학교 1학년쯤 되는 아이가 제 아빠의 손을 붙잡고 말했다.
“보지 마. 저런 건 봐도 모른 척해 주는 거야.”
“둘이 사랑해서 그러는 거야? 어제 본 영화처럼?”
“쉿.”
어이, 거기 딸 아이 아빠.
애 교육을 어떻게 하는 거야.
누가 봐도 그런 거 아니잖아.
한마디 확 쏘아 주고 싶네.
둘을 지나치자, 진짜 어른이 도착했다.
“곤란하면 도와주고.”
사장님 비서, 비서 형이다.
“그럼 완전 감사죠.”
비서 형이 날 쫓는 건 이미 알았다.
박병준 박사는 뭐, 여러모로 문제가 될 소지가 있으니까.
나 하나한테만 맡길 수는 없다.
비서 형뿐만 아니라, 아예 사장 직속 팀이 움직인 거로 안다.
이미 기척도 잡아챘고, 어디에 숨었는지도 안다. 그저 모른 척할 뿐이지.
“하나만 묻자.”
비서 형이 돌아서려는 날 붙들었다.
“네?”
“너희 어머니는 뭐 하시는 분이냐?”
변신족을 키워서 예의 바른 청학동 에이스로 만든 어머니다.
물론 그 변신족이 반푼이였으니, 어지간히 훈련받은 사람이라면 컨트롤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다만, 그게 쉬운 일은 아니지.
우리 엄마 변신족이에요.
라고 하면 쉬운 답이지만, 그게 또 쉬이 입이 떨어지지 않는 말인지라.
“변신하는 건강 미녀요.”
이리 답할 수밖에 없었다.
“변신?”
비서 형이 눈을 반짝였다.
“위험하면 세일러문으로 변신하거든요.”
“……최소 올해 마흔인 분이?”
“아직 소녀 감성이세요. 나이는 숫자일 뿐입니다.”
“말을 말자. 가. 오랜만에 가서 효도나 해.”
비서 형이 말했다.
“네, 전 효도하러 갑니다. 어머니는 운동 좋아하고 격투기 사랑하는 건강한 여자 사람일 뿐입니다. 평범한 분이에요.”
내 설명에서 이미 평범은 넘어섰지만, 비서 형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래. 그래야 너 같은 아들이 나오는 거겠지.”
어떻게 표현할 수 없는 내 능력의 기반을 어머니에게서 보는 걸까?
아니면 진짜 변신족이라고 생각하기라도 할까?
그건 무리지. 사람은 자신이 아는 세상, 그러니까 자신이 가진 상상의 범주 내에서 예측하고 추측한다.
불멸과 변신의 혼혈 실험이 성공한 적은 없다. 고로, 날 그렇게 생각할 확률도 높지 않았다.
하물며 난 불멸의 피가 진하게 이어졌고, 그걸 증명한 몸이기도 하니까.
그나저나, 이제는 정말 어머니와 아버지가 서로의 비밀을 공유해야 할 때가 온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