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 화려한 복귀
“작전 사항 보고합니다.”
보고자 정호남, 확인자는 김동철 이사와 개척 4팀 팀장이다.
호남은 있었던 사실을 기반으로 설명했다.
“유광익 사원이 아니었다면 80% 이상의 확률로 전멸이었을 겁니다.”
“정찰팀이요?”
개척 4팀장이 되물었다.
“아니요. 기지가.”
호남은 솔직히 답했다. 특이종, 머리 쓰는 인베이더 오거.
몸은 잽싸고 머리는 잘 돌아갔다.
소총 몇 발 따위로 잡을 수 없다.
이곳은 이계이므로 전투기 폭격 같은 것도 기대할 수 없다.
특수종 병력으로 죽이는 것 외에 길은 없다.
하지만 그 오거 놈이 숨어서 정신 조종으로 인베이더만 보낸다면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아무리 좋게 봐줘도 기지는 포기해야 했을 거다.
아더 사이드는 자원의 보고, 하물며 화림 내에 있는 화이트홀을 포기한다는 건 단순한 경제적 타격 그 이상이었다.
불멸특수대가 제 밥그릇도 챙기지 못한 꼴이 되었을 거고, 그건 곧 행안부에까지 올라갈 사항이 되었을 것이다.
“저격 한 발로 잡았다면서?”
김동철 이사도 되물었다.
호남은 팩트 기반 보고에 자기 생각을 덧붙였다.
“그 누구보다 빠른 판단과 주저하지 않은 행동력, 그리고 커맨더인 제 생각을 한발 앞서 읽어 내고 전략에 맞춘 움직임.”
만약 그 순간, 오거가 비틀린 입가로 미소를 지었을 그 순간에 광익이 주저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고작 몇 초 차이다. 호남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랬다면 인베이더 대군이 오거 놈을 둘러쌌을 것이고, 그럼 광익이 중기관총을 들고 있어도 못 잡았을 것이다.
곧, 광익이 쏜 그 한 발은 완벽한 판단과 행동력이 돋보인 일격이었다.
거기에 모래 폭풍이 천혜의 보호막이 되리라는 걸 예상한 움직임까지.
호남은 후퇴 시 행동 지침을 말해 준 적이 없었다. 하지만 광익은 이미 아는 것처럼 행동했다.
이계 전투 경험이 농후한 대리급도 아니고, 고작 사원이다. 그것도 이제 막 만 1년이 되어 가는 사원.
이레귤러의 피, 한 수 앞을 내다보는 머리, 무엇보다 놀라운 적응력까지.
‘형이라고?’
기남도 쉬이 그리 부르지 않는다. 특히나 자신이 요원이 된 이후에는 더욱더.
서글서글함을 넘어서 외계인급 친화력이었다.
“이상입니다.”
호남의 보고가 끝났다.
개척 4팀 팀장은 놀람과 기쁨을 숨기지 않았다.
가만히 앉아서 된통 맞을 뻔한 일이었는데, 시작도 하기 전에 끝난 셈 아닌가.
걱정하기도 전에 걱정거리가 없어진 거다.
이 기지의 책임자로서 광익이 예쁘기만 했다. 그 친구가 원한다면 자기 딸이라도 줄 수 있을 정도로.
물론 팀장에게 딸은 없었다.
‘딸 대신 동생이라도.’
애주가 과장이 광익을 확 자빠뜨리는 건 어떨까 생각했다.
‘남녀상열지사라는 게 어찌 될지 모르는 거고.’
이제 스물하나인가 둘이라고 했다.
여자에 빠져서 앞뒤 분간 못 할 나이이지 않나 싶었다.
정말 나쁘지 않은 시도였다.
인재를 밑에 두고 싶은 건 지휘관으로서의 본능이었다.
개척 4팀장이 상상력에 기반한 행복회로를 가동할 때, 김동철 이사는 기쁨 대신 미간을 찌푸렸다.
‘이 새끼 이거.’
유광익이란 존재를 안 건 진즉부터다.
잘 치는 신입 사원에서 동대문의 구원자, 규격 외 재능을 지닌 이레귤러.
다양한 호칭을 붙일 수 있는 놈이지만, 제 손바닥 안에 있을 거로 생각했다.
휘하에 두면 좋은 칼이라 생각했는데…….
‘과한데?’
잘나도 너무 잘났다.
활약하는 수준이 1세대 영웅급이다.
품에 안기에는 너무 커 버렸다.
김동철은 골치가 아팠다.
이계에는 사장은 물론 그 누구도 손을 뻗을 수 없다.
속된 말로 이곳은 김동철 이사의 구역이었다.
개척 4팀 자체가 본래 자신이 소속된 팀이기도 하고.
때문에 잘 구슬리고 엮어 볼 셈이었다.
사람이라면, 그것도 젊은 남자라면 응당 원하는 게 있을 테니.
그걸 쥐여주고 품에 안을 셈이었는데…….
‘사장이 순순히 내줄까?’
뒷공작으로 데려올 수준은 훌쩍 넘어섰다.
이번 일은 누락할 수 없다. 본사에 보고가 올라갈 것이다.
김동철은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정호남과 눈이 마주쳤다.
그 눈에 광익에 대한 호의가 엿보인다.
정호남을 보자니, 본래 계획이 떠올랐다.
이유 없이 유광익을 싫어하는 정호남.
그게 곤란한 유광익.
커버해 주는 상사의 존재.
그로 인해 싹트는 정, 쌓여 가는 신뢰.
때로는 유형의 무엇보다 무형의 감정이 그 사람의 의지를 움직이는 법이다.
김동철이 노린 건 그 부분이었다.
물론 유형의 이득도 사장만큼 잘 챙겨 줄 자신이 있었고.
‘꼬였네.’
꼬였다. 제대로 꼬였다.
차라리 유광익이 실수해서 욕이라도 먹었으면 수습하며 빚이라도 만들어 둘 텐데.
할 게 없다.
자신이 나설 것도 없이, 초소에서는 홀로 무쌍을 찍더니, 특이종을 확인하라고 보낸 정찰 임무에서는 특이종의 머리에 헤드샷을 쏘고 돌아왔다.
작전 규모를 따져 보면 피해가 전무할 정도다.
그게 오롯이 한 명, 유광익 혼자 한 일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가 없었다면 문제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졌으리라는 건 명확했다.
광익은 인지하지 못했지만, 이 자리에 있는 셋은 모두 인지했다.
그가 이번에 한 일은 동대문에서 특수종 몇을 구한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이라는 걸.
걱정이 생기기도 전에 걱정거리를 없앤 탓에, 광익의 활약이 눈부시지 않을 뿐이다.
아니, 이미 눈부신 활약이지만, 본래는 눈이 부신 정도가 아니라 눈이 멀 만큼 화려한 공적이었다.
* * *
작전 이후, 이틀 동안 초소 경계 태세는 더 빡세게 돌아갔다.
“여.”
그사이에 난 이 사람 저 사람과 안면을 텄다.
“누나.”
애주가 과장과는 호자호제(呼姉呼弟)했으며.
“광익이, 내일 돌아간다며? 우리에게는 아직 하룻밤이 남았네.”
찡긋.
윙크하는 눈을 보고 난 피식 웃었다.
저 농담은 정말 돌아가는 날까지 하려나 보다.
“그리고 오늘 밤도 누나는 독수공방이겠죠.”
“칫.”
개척 4팀의 퓨어 엔지니어 팀장과도 친해졌다.
“썼다며? 한 발로 팡 하고 머리 터트렸다며? 어땠어?”
난 성심성의껏 후기를 들려줬다.
“죽여줬어요.”
기생 완갑은 성능도 성능이지만, 나 말고 다른 불멸자가 썼으면 팔이 날아갈 무기다.
같이 죽자는 무기였으니, 말 그대로 죽여주는 기어였다.
“하아, 하아, 그래?”
그 말에 들뜬 숨을 내뱉는 걸 보니, 역시 기어 엔지니어들은 정상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이순창 대리와도 친분을 유지했고.
연구팀 여직원 둘에게는 고백도 받았고.
“이제 좀 괜찮냐?”
정신을 차린 까칠이도 만났다.
“네 꿈 꿨어.”
눈을 뜬 까칠이가 말했고, 난 약속대로 회복실에 누운 까칠이를 안아 줬다.
“고마워.”
감사에 내가 머리를 헝클어 줬다.
“또 보자.”
하루가 지나고, 복귀할 날이 됐다.
김동철 이사는 화장실에서 뒤를 닦다 만 표정이었고.
개척 4팀장은 나와 애주가 과장을 번갈아 보다가 물었다.
“저 정도면 완전 예쁘지 않나?”
“예쁘죠.”
“근데 왜 아무 일도 없었지?”
꼭 무슨 일이 일어나길 바란 사람 같다.
“네?”
“아니다. 고생했다. 돌아가면 술 한 잔 사마.”
“약속 지키십쇼.”
기남이는 여전히 팔이 없는 채였지만, 표정은 나쁘지 않았다.
내가 미친 활약을 보였지만, 기남이도 나름대로 제 역할을 했다.
고사리손이라도 도움은 도움이니까.
호남이 형은 날 보는 시선이 부쩍 부드러워졌다.
전과 같이 무감한 눈빛이긴 한데.
“수고했다.”
이런 말도 건넸고.
“기남이랑 사이좋게 지내라.”
이런 말도 했다.
동생 바보.
그 말이 참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네, 사이야 좋죠.”
난 좋지. 기남이가 문제지.
그렇게 다시 게이트를 빠져나왔다.
임무 수행 완료.
난 초소 습격 사건의 주역이 됐고.
특이종 인베이더를 격살했으며.
기지를 지켜 낸 불멸특수대원이었다.
* * *
“와, 무슨 연락이.”
게이트를 넘어온 뒤다. 바뀐 중력에 다시 적응하고, 위험한 임무를 끝낸 것에 대해 이틀 휴가를 받았다.
팀장을 비롯한 우리 팀 사람들의 얼굴도 보지 않고 방에 돌아왔다.
폰을 들어 보니, 미확인 메신저와 부재중 통화가 빽빽했다.
가장 최근의 연락을 보니 알이었다.
[십 세] 당장 한국으로 가겠어. 너에게 무슨 일이 있다면 다 죽여 버릴 거야.
뭐야? 왜 오는데?
밑으로 온 메시지를 쭉 확인했다.
[십 세] 일국의 왕자가 친히 보낸 메시지를 다 씹어? 중죄야, 대역죄야, 죽일 거야.
[십 세]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내가 싫어진 거야?
[십 세] 죽일 거야, 널 죽일 거야. 내 연락을 씹어?
[십 세] 사고로 죽은 건 아니지? 무슨 일 있으면 말해.
[십 세] 감히.
[십 세] 연락 줘.
이중인격이냐? 지킬 앤 하이드야? 헐크 앤 브루스 배너야?
이랬다저랬다 난리네.
당장 연락하지 않으면 진짜 한국에 쳐들어올 기세였다.
답장을 썼다.
임무 수행 중이었다고 했다.
부르르르.
3초도 안 돼서 벨이 울렸다.
전화를 받으니, 알이 소리를 질렀다.
“말을 하고 가야지!”
귀청 떨어지겠네. 꼬맹이가 앙앙거리며 외쳤다.
“작전이 꽤 길어졌어요. 금방 돌아올 줄 알았거든요. 그리고 일일이 다 말하고 갈 수는 없죠, 임무인데.”
수화기를 귀에서 적당히 떼며 말했다.
알이 내 여자친구라도 그건 무리다.
불멸특수대 임무는 기밀이다.
“아, 몰라, 말해. 말하고 다녀. 연락이 안 되면 안 된다고 말을 해. 그렇게 해. 내가 그렇게 정했어. 국법이야.”
너 안 바쁘냐? 우리 십 세 한가한가 보다.
초능국의 왕위 계승 싸움에 끼어든다며, 그럼 겁나 바쁠 텐데.
“네네, 그럽시다.”
어린애랑 싸워서 뭐 하나. 살살 달랬다.
“혹시 위에서 불합리한 일 강요하면 꼭 말해.”
“네네. 말할게요.”
“꼭.”
“네.”
달랬다. 잘 달랬다.
만약 나한테 형이나 누나가 있고 조카가 있다면 이런 기분이려나.
뭐, 모르겠다. 있어 봤어야지.
전화를 끊고 다른 연락을 확인했다.
스팸 메시지 몇 개는 무시하고.
어떻게 불멸특수대원 스마트폰에 불법 대출 메시지를 보내는 걸까.
보이스피싱을 하는 애들 정보력은 사실 세계 제일이 아닐까.
다음은.
“엄마네.”
몇 개의 문자, 연락하라는 말.
마지막 메시지는 꽤 강렬했다.
[동대문구 최고 미녀] 나한테 아들은 없다.
어, 음, 단단히 삐지셨네.
답장을 쓰려는데 손가락이 떨렸다.
뭐라고 써도 욕을 먹을 것 같았다.
아버지한테 먼저 연락하니.
[최고 미녀 남편] 빌어.
두 글자만 왔다.
아빠? 이러기예요? 그동안 살면서 어머니에게 용서를 빈 노하우를 주셔야지, 이건 아니지.
부르르.
따지려는 순간, 아버지에게 메시지가 다시 왔다.
[최고 미녀 남편] 좋은 핑계, 훌륭한 변명, 마지막으로 필요한 건 맷집.
이 메시지에 불현듯 마리가 떠올랐다.
박마리, 박병준 박사가 자기 딸이라 주장하는 변신족 실험체.
그 아이를 맡기고 나서 한 번도 집에 안 갔다.
박병준 박사한테 마리 만나게 해 준다고도 했는데.
만나게 해 줄 때가 왔다.
도저히 집에는 나 혼자 못 가겠다.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았다.
[동대문구 최고 미녀] 누구세요?
콜 백 대신 메시지가 왔다.
다시 전화했더니, 받으셨다.
“어머니, 불효한 소자 인사드리옵니다.”
“아하, 살아는 계셨네?”
“에이, 제가 어디 가서 쉬이 죽을 놈은 아니죠?”
“그건 모르지. 가는 데 순서 없어.”
“일했어요. 외국 출장을 갔는데 폰이 잘 안 터지는 곳이라.”
“아하, 그랬구나. 출장 갔구나. 이놈의 부자는 다 출장에 목을 맸구나. 일이 중요하구나. 집에 혼자 있는 엄마는 상관도 하지 않는구나.”
“아니요. 상관합니다.”
“그래? 그게 다니?”
반쯤은 농담으로 넘겼지만, 보름이 넘는 동안 아들과 연락이 안 됐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셨을 거다.
“죄송해요. 어머니.”
이게 먼저였다.
“그래, 어디 다친 데는 없고? 별문제는 없고? 사무직이라면서 무슨 외국까지 가니?”
“네, 완전 멀쩡하죠. 문제없고요. 출장이었어요. 이런저런 일이 많아서요.”
다쳐도 금방 낫는 불멸자인지라.
팔 좀 부러지고 타박상 정도는 표시도 안 납니다.
문제는 무슨, 활약만 했죠.
출장은, 앞으로도 갈 것 같으니, 밑밥을 깔아 두겠습니다.
“고생했다.”
어머니가 말했고.
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마리는요?”
“이제야 걔가 생각나는 거니?”
죄송합니다. 거듭 죄송합니다.
“그, 제가 마리 아빠한테 마리를 만나게 해 준다고 했었거든요.”
“그래라. 데려와. 친부니?”
“음, 아닐걸요?”
“흐응, 그래. 한번 보자.”
어머니의 말에 가시가 돋친 것 같다는 건 내 착각일까.
어쨌든 약속은 약속.
휴가가 끝나면 회사에 물어봐야겠다.
박병준 박사가 그동안 딸을 못 봐서 난리는 안 쳤는지, 잘은 지내는지.
어쨌든 부재중 연락까지 다 끝냈으니.
이제 좀 쉬자.
난 운동도 좋지만, 놀먹싸자도 좋다. 놀고 먹고 싸고 자고.
일단 식사부터 해결하고.
한우 살치살을 잔뜩 사 와서 구워 먹고, 집에서 가져온 PL4를 8시간 내내 하고.
몸이 찌뿌둥할 테니 훈련장에서 몸을 풀고.
그사이 우연히라도 사수는 만나지 못했다.
기남이는 회복실로 바로 입원하러 가서, 이틀 동안은 싱글 라이프였다.
덕분에 푹 쉬고, 이틀 뒤에 다시 출근했다.
“늦어, 너무 늦어. 일찍 일찍 좀 와라. 자식아.”
팀장과.
“와, 광익이 왔어? 새삼 왜 이렇게 네가 반갑냐.”
팬더 대리와.
“왔어?”
사수를 다시 만났다.
그동안 별일은 없었나 물어보고 싶었는데 셋 다 눈 밑이 까맣다.
여기도 나름대로 일이 많았었나 보다.
물어보니, 그랬다.
내가 없는 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다고 했다.
그중 제일 큰 사건은 탈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