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 꽤 많았다.
“온다. 픽.”
선두에서 정호남 과장이 말했다.
커맨더의 역할 겸 레이더의 역할도 수행 중이시다.
참 난놈이란 말이지.
역할을 나눈다고 해서 커맨더가 입만 털고, 스나이퍼가 총만 쏘는 건 아니다.
서로 겹치는 부분의 일도 있는 법이니까.
나도 탐사 기본 장비 중 하나인 픽을 꺼내 땅에 쑤셨다.
푹- 하고 부드러운 진흙을 넘어 단단한 땅이 닿기까지, 깊이는 대략 30cm.
신소재로 만든 기다란 막대는 몸을 고정하는 용도였다.
픽의 끝을 땅에 꽂은 후 반대쪽 끝을 전투 조끼 고리에 걸고, 허리춤에 걸어 둔 고정형 고리를 끌러 막대 중간에 건다.
그럼 진흙 사막의 명물, 모래 폭풍을 맞을 준비가 끝난다.
이후에는 버티기다.
후아아앙.
어지간한 바람이라면 나도 픽 따위를 박지 않고 버티겠지만, 이쪽 폭풍은 사람 하나쯤 우습게 날려 버리는 위력이다.
픽을 박고 자세를 낮춰 버티는 것만이 답이었다.
다들 같은 자세로 수그렸다.
페이스 가드 위를 굵은 입자의 모래가 후렸다.
파바바박 하는 소리가 귀를 울렸다. 시계(視界)가 막히고, 폭풍 소리에 소리를 분간하기도 어렵다.
이럴 때 인베이더가 습격하면 위험하겠지만.
인베이더라고 해서 폭풍에 날아가지 않는 건 아니니까.
그렇게 5분쯤 지나자, 폭풍이 우리 뒤로 물러났다.
아아아아아앙.
폭풍이 울며 멀어져 간다.
“이게 몇 번째지?”
애주가 과장이 물었고.
“여섯 번째입니다.”
기남이 답했다.
탁, 탁.
이순창 대리가 옆에서 전투 조끼를 벗어서 털었다.
먼지가 흩날렸다.
저 장면을 벌써 여섯 번째 보고 있다.
그동안 단 한 번도 인베이더를 만나지 않았으며.
특이종의 종적은 털끝도 구경하지 못했는데, 모래 폭풍만 여섯 번을 만났다.
“붉은 벼락만 안 만나면 이 정도야 뭐, 괜찮지 않습니까?”
이순창 대리가 말했다.
애주가 과장이 맞는 말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붉은 벼락, 이쪽 이계 특산물쯤 되는 기후 현상이다.
오자마자 꽤 멀리서 치는 걸 본 적도 있다.
이계의 하늘에는 무슨 이상한 입자가 떠다니기에 전파가 원활하게 흐르지 않는데, 그게 지구에 있는 적란운 형태로 뭉치고 포화 상태가 되면 땅을 향해 떨어진다고 한다.
고열의 붉은 벼락은 맞는 순간, 어지간한 생명체 따위를 잿더미로 만든다고도 들었다.
사내 과학자는 이곳이 이런 특이한 질감의 땅을 가지게 된 것도 전부 저 벼락의 영향일 거로 추측한단다.
붉은 벼락이 훑고 지나간 자리에는 발화석이 남아, 저 벼락 자체가 신소재를 만들어 내는 현상 중 하나였다.
그래, 바로 그 발화석.
초소를 습격한 놈들이 폭탄 대신 쓴 폭발 도끼의 원자재다.
돌 중에서도 벼락 맞고 버틴 놈은 열기를 머금은 돌이 된다는 거다.
그 발화석 중에서 열기를 조금 머금은 놈은 온열석이 되는 거고.
온열석은 반영구적으로 은은한 온기를 뿜는 돌이다.
지구에서는 이 돌을 잘게 쪼개서 핫팩을 만들거나, 온열복을 만들었다.
복잡한 과학 놀음이야 내 알 바는 아니었고.
과학자에게 붉은 벼락은 이 땅을 이루는 자연 현상이자, 독특한 자원을 만들어 내는 원인이겠지만, 우리에게는 무조건 1순위로 피해야 할 재해일 뿐.
“공기가 달라졌습니다.”
기남이 말했다. 그는 제 역할을 했다.
촉감과 육감.
기이할 정도로 예민한 그 감각을 통해, 붉은 낙뢰가 떨어지기 전에 먼저 예측했다.
그 예민함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것도 신경 쓰지 않고 오롯이 기후 변화에만 주목하긴 했지만, 그거로 충분했다.
이놈의 붉은 벼락이란 놈은 되게 뜬금없이 여기저기서 치곤 한다.
기지에서야 여기저기 피뢰침 등을 만들어 안전지대를 보호한다지만, 이곳은 그런 보호에서 벗어난 지역이니.
“전 방향 우측 45도.”
호남은 그 말에 주변 지형을 눈에 담고 말했다.
“좌측으로 선회.”
짧게 말한 그는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벌써 사흘째였다.
기지로 돌아가는 길을 잃어버릴 정도로 멀리 왔냐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다.
붉은 벼락을 피하고 모래 폭풍을 최대한 비껴내며 움직일 뿐인지라, 그리 멀리 오지는 못했다.
“이대로 특이종을 못 찾을 수도 있겠는데요.”
앞서가는 호남의 등을 보며 속삭였다.
“으흠, 그럴 것 같아?”
애주가 과장이 턱을 당기며 헬멧의 위치를 조정했다.
산소 농도 때문에 마이크로 산소통을 달고 있어야 하므로, 헬멧을 벗을 수도 없었다.
“씻고 싶다.”
옆에서 이순창 대리가 중얼거렸다.
나와 애주가 과장이 나누는 대화에는 일말의 관심도 없어 보였다.
“인베이더 새끼들도 모래 폭풍하고 붉은 벼락은 피해야 하거든.”
애주가 과장이 말했다.
그러네, 그 새끼들도 맥없이 죽기 싫으면 이곳에서 떨어지는 벼락이나 불어닥치는 모래 폭풍은 피해야 한다.
“그럼 모래 폭풍의 영향에서 자유롭고 붉은 벼락에서도 안전한 곳이 있다면?”
“머리에 우동 사리 대신 뇌를 달고 태어난 인베이더가 있다면 거기를 보금자리로 삼을 테고, 당연히 우리 목적지도 거기겠죠.”
“모래 좀.”
애주가 과장의 말에 난 손으로 그녀의 페이스 가드 위를 쓸어 줬다.
진흙 성질을 가진 모래라 잘 떨어지지 않기에, 일일이 손으로 떼 줘야 했다.
“우리가 가는 곳이 거기야. 일명 개미굴. 탐사 시도는 했지만, 여기저기 뚫린 굴이 하도 많아서 완전 소거 불가인 곳.”
발이 푹푹 빠지는 엉망인 질감의 땅은 행군하는 사람의 체력을 갉아먹었고.
산소 농도 덕분에 먹는 순간을 제외하면 산소통을 달고 살아야 했다.
모래 폭풍은 견뎌야 했고, 붉은 벼락은 피해야 했다.
거기에 다섯이서 떠난 길이다.
하루 수면 시간을 8시간으로 잡았으며, 불침번은 한 사람당 2시간.
신경을 예민하게 곤두세워야 하기에 기남이는 불침번 제외.
고로 나머지 인원의 평균 수면 시간은 여섯 시간이었다.
제대로 씻을 수도 없고, 이동하며 먹는 건 전부 고열량 칼로리 바로 해결.
스쿠터나 다른 이동 수단을 이용할 수도 없다.
모래 폭풍을 만나면 전부 바이바이 할 텐데, 쓰겠나.
기지 근처에서 타고 다니는 것과는 다른 문제였다.
모래 폭풍을 피할 공간이 없으니.
여러모로 악조건이었다.
“뒈질 것 같네, 저 미친 회색 태양.”
이순창 대리가 중얼거렸다.
뜨겁진 않은데 건조한 공기 위로 내리쬐는 태양은 행군을 더 힘들게 하는 요소 중 하나였다.
은근한 열기가 땅을 덥히고 몸을 덥힌다.
기남이도 땀을 뻘뻘 흘렸다. 헬멧 안쪽에서 바깥으로 땀방울이 흘렀다.
“후. 지랄 맞네.”
분명 처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애주가 과장 또한 꽤 힘들어했다.
이곳에서 묵묵히 움직이는 건 둘뿐이었다.
하나는 정호남.
다른 하나는 나.
“광익 씨는 안 힘들어?”
수통에 든 물을 이순창 대리 손에 부어 주는 참이었다.
다들 개인 군장을 지참했고, 덕분에 물은 꽤 넉넉히 가져올 수 있었다.
모래 폭풍의 바람에 휘말릴 걸 대비해 짐으로 몸무게를 늘린 거다.
“힘든데요.”
“근데 왜 그렇게 멀쩡해 보여?”
“글쎄요.”
그래, 힘들기야 똑같이 힘든데.
뭐랄까.
그냥 딱 적당히 견딜 만하다.
변신족의 육체라서? 그렇다기보다는.
“힘들어? 순간이 힘들다고 불평하면 뭐가 남니?”
아버지의 말이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있다.
마음가짐을 달리하면 많은 게 달라진다.
그래서 나한테 이 정도는 ‘견딜 만한’ 정도다.
그 험한 훈련을 받고 임무를 수없이 수행한 개척 4팀 대리보다 내가 더 잘 버티는 게 아이러니하긴 했다.
“요새 본사에서는 신입 훈련을 어떻게 시키는 걸까.”
이순창 대리가 중얼거리며 앞을 바라봤다.
앞에는 땀을 주룩주룩 흘리고 지친 기색이 역력함에도 여전히 집중력을 잃지 않은 정기남이 걷는 중이다.
“기남아, 힘들면 말해라. 내가 업어 줄게.”
다가가서 반쯤 놀릴 생각으로 말을 걸었다.
“됐어.”
어라, 이 반응 뭐야.
평소에 비하면 너무 무미건조하다.
애가 너무 힘이 빠져서 그런 듯했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멀다. 벌써 퍼지면 곤란했다.
무려 내가 추천해서 같이 가게 된 거 아닌가.
난 기남이에게 파이팅을 심어 주고 싶었다.
본래 감정이란 곧 에너지다.
그게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말이다.
난 기남에게 그런 에너지를 솟아나게 해 주려 했다.
그게 부정적인 에너지라도 말이다.
“또 트롤 나오면 한 마리는 부탁한다. 나머지는 내가 어떻게든 해 볼게. 너만 믿는다.”
난 안다. 정기남은 이런 류의 도발에 약하다.
까득.
어금니를 간다. 그래, 이 반응이다.
내가 기다린 정기남이다.
“……그래. 한 마리는 내가 처리하겠다.”
아니, 그게 아니라니까.
이건 내가 알던 기남이가 아니야.
발이라도 걸어 볼까.
그건 너무 심한가?
아니, 고작 육체를 고되게 하는 것으로 나의 기남이로 되돌릴 수는 없다. 난 머리를 굴렸다.
이대로 힘 빠진 개나리를 보는 건 내 자존심이 용납지 않았다.
반드시 평소의 ‘꺼져’를 남발하는 기남이를 봐야 했다.
막 그리 마음먹는데, 어디서 살기가 느껴졌다.
변신족에 버금가는 살기.
앞을 보니, 발을 멈춘 호남이 형이 날 노려보는 중이었다.
“무슨 일 있습니까?”
대수롭지 않게 묻는데.
몹시, 정말 몹시도 성이 난 말투로 호남이 말했다.
“유광익 사원.”
“넵.”
난 생글생글 웃었다. 본래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 법이니.
“닥치고 움직이지 않겠나?”
“네?”
이제까지 잘만 떠들고 다녔는데?
“닥치고 임무에 집중하라고.”
아니, 그러다 한 대 치겠네.
“옙.”
기세가 보통이 아닌걸.
옆을 보니, 기남이가 페이스 가드를 올리며 제 형을 바라보고 있었다.
야, 모래 들어간다. 뭐 하냐.
호남은 그 눈빛을 외면했다.
탁- 하고 페이스 가드를 내린 기남은 그제야 날 보며, 몹시 불쾌한 어조로 말했다.
“제발 꺼져라.”
목적은 이뤘는데 이 찝찝함은 뭘까.
다시 발을 놀려 뒤로 자리를 옮기자, 애주가 과장이 말했다.
“내가 말했잖아. 동생 바보.”
뒷말은 나한테도 잘 안 들릴 정도로 속삭였다.
그래, 그랬었지.
정호남 과장이 사실은 브라더 콤플렉스라고.
제 동생 건드리면 눈깔 돌아가는 종류의 사람이라고.
본래 제 가족 건드리면 다 열이 뻗치기 마련이지만, 정호남 과장은 그 정도가 더 심하다고 한다.
직접 보니 더 그렇다.
동기끼리 몇 마디 나누는 것 가지고 그런 살기를 보내?
그 뒤로 몇 번 더 기남을 통해 실험해 봤다.
진짜였다.
평소에는 얌전하다가도 기남이만 건드리면 정호남 과장이 반응했다.
정호남에게 정기남이란 일종의 스위치였다.
그것도 이성을 잃게 만드는 스위치.
그나저나 계속 건드리다 보니까 이거 왜 재밌냐. 이러다 버릇 들겠네.
“적당히 해.”
그걸 아는 애주가 과장이 말렸지만, 내가 말린다고 들었으면 시발 팀장과의 사이도 벌써 좋아졌을 거다.
그렇게 소일거리로 시간을 죽이며 걷다 보니, 폭풍이 뚝 끊기고 지형이 변하기 시작했다.
푹푹 빠지는 땅에서 단단한 질감으로 서서히 변하더니, 주변에 바위 따위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울퉁불퉁한 길이 이어졌고, 곧 경사로가 나타났다.
눈앞에 훅 떨어지는 급격한 경사, 달리 말하면 절벽이 나타나자, 애주가 과장이 속삭였다.
“여기야.”
앞에서 정호남 과장이 주먹을 들었다.
멈추라는 신호였다.
그는 선 채로 전술 망원경을 페이스 가드 위로 댔다.
“개미굴 확인.”
호남이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말했다.
“인베이더도 있습니다.”
바로 옆에서 기남이 말을 덧붙였다.
감각을 개방했다. 멀리 보고 귀를 열자, 망원경이 없어도 절벽 틈새의 사이사이로 움직이는 무리가 보였다.
애주가 과장의 말처럼 벽에 구멍이 숭숭 뚫린 지형. ‘개미굴’이란 단어가 더없이 잘 어울리는 형태였다.
그게 끝이 아니다.
굴 사이사이로, 허공에서 회색 태양 빛을 반사하며 빛을 뿌리는 것들이 보였다. 반짝이는 입자를 뿌리는 요정이다.
“넘버링 6 헬 페어리입니다.”
이순창 대리도 망원경에 눈을 대며 말했다.
머릿속으로 헬 페어리에 관한 정보를 되새겼다.
크기는 고작해야 손바닥 두 개 합친 정도.
앞모습은 순진·순수한 요정을 닮았지만, 뒤로는 침을 질질 흘리는 커다란 입을 가짐.
그 침이 입자처럼 흩어져 요정의 날개 가루처럼 보임.
빠르진 않으나, 그 눈에는 사람을 현혹하는 힘을 담았기에 주의 필요.
현혹한 후 사람을 뜯어먹는 인베이더다.
“진입은 어렵겠는데요.”
애주가 과장이 말했다.
정호남 과장이 그 말에 답했다.
“이 자리를 베이스로 하루 휴식하고 작전 회의 시작하겠습니다.”
“꽤 많은데.”
애주가 과장이 망원경으로 밑을 확인하더니 말했다.
바글바글한 정도는 아닌데, 어림잡아 개체 수가 이백은 넘어 보였다.
우리는 평소와 같이 불침번을 서고 특수 발화 연료로 모닥불을 피운 뒤, 칼로리 바 대신에 둥근 반합에 물을 끓였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식사 시간이었다.
그동안 모래바람 때문에 물도 제대로 못 끓였다는 거지.
건조된 인스턴트 면과 마법의 가루만 있다면 우리는 인류가 만든 최고의 음식을 맞이할 수 있다.
“라면?”
이순창 대리가 반색했다.
“네.”
“그걸 챙겨왔어?”
“네, 혹시 몰라서.”
“와, 나 오늘부터 광익 씨 팬 할래.”
뭐, 팬은 이미 많으니, 한 명 추가된다고 달라질 건 없다.
난 라면을 끓였고, 내 팬과 기타 3인은 맛나게 잡수셨다.
설거지까지는 무리라서 대충 물로 헹궈 군장에 넣고, 침낭을 꺼내 몸을 넣었다.
오랜만에 짠 국물을 드링킹했더니 포만감이 든든히 배를 감쌌다.
쌍남 형제도 사람이었다.
라면 끓이니까 말없이 잘만 처먹더라.
눈을 감자마자 잠이 들었다.
푸석한 모래바람이 없어지니 상쾌한 느낌이 들었다.
꿈도 안 꾸고 자던 중, 난 눈을 떴다.
뜨자마자 침낭을 밀어내고.
옆에서 곤히 자는 이순창 대리의 머리를 눌렀다.
내 손길에 대리가 눈을 떴다.
입을 막고 고개를 저은 뒤, 몸을 일으켰다.
일련의 과정 중에서 난 조금도 소리를 흘리지 않았다.
불침번을 서던 애주가 과장과 눈이 마주쳤다.
달빛조차 비추지 않는 어둠이지만, 불멸자의 눈은 어느 정도의 어둠을 꿰뚫어 보며.
불멸특수대원의 헬멧에는 나이트 비전 기능도 있었다.
페이스 가드를 통해 녹색으로 빛나는 과장이 수신호를 보냈다.
습격.
두 글자로 설명은 충분했다.
인베이더의 노린내가 코를 찔렀고, 귀로는 소리를 죽이기 위해 땅을 지르밟는 미세한 소음이 들렸으며.
육감과 직감의 영역에서는 인베이더 무리의 규모를 느꼈다.
꽤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