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규격 외 혈통 천재-120화 (120/488)

120. 너 성격 나쁘구나.

큰 눈에 각진 턱. 볼에는 검댕이 묻었고, 양 손톱 끝이 까맣다.

한창 기어에 기름칠이라도 하고 온 듯했다.

숨결은 고르고 몸에는 적당히 근육이 붙었다.

눈이 커서 왕방울처럼 보이는 꽃미남 엔지니어가 중얼거렸다.

“아다만티움을 통짜로?”

대답을 바란 질문이 아니라 혼잣말이다.

“만들 수야 있지만, 굳이?”

이것도 혼잣말.

슬쩍 애주가 과장을 보고 눈으로 물었다.

‘이 사람 좀 이상한데요?’

뜻이 전달됐는지, 과장이 킥킥 웃으며 답했다.

“괜찮아. 집중할 때면 종종 저래. 지금은 옆에서 다음 주 로또 번호를 불러도 모를걸.”

“이상적으로 보자면 잔고장이나 탄 걸림이 절대 없는 총이 되는 거고. 같은 무게의 탄이라면 파괴력이 어지간한 광학병기에 버금가겠지만…….”

그렇게 열심히 혼자 떠들던 왕방울 엔지니어는 한참 동안 내 4번 타자를 만지작거리더니, 고개를 들고 내 눈을 바라봤다.

“거치대는 어디 있어요?”

그가 물었다.

“무슨 거치대요?”

“거치대 없이 이걸 어떻게 쓰는데요?”

뭘 어떻게 써.

“들고, 휘두르고, 쏘죠.”

담백하게 답하니, 왕방울의 동공이 흔들렸다.

“이게 손잡이였어? 둔기로도 쓴다고? 이걸?”

“네. 휘두르는 맛이 있죠.”

그렇게 말하며, 몽둥이 휘두르는 시늉을 보였다.

놔두면 한없이 제 세상에 빠져들 것 같은 캐릭터다.

난 이곳에 용무를 꺼냈다.

“탄이 있을까요?”

아다만티움탄이다. 쉬이 구할 거란 생각은 안 했다.

“여기서는 못 만들어.”

역시나.

근데 이 사람, 언제부터인지 말을 놨다.

자기가 말을 놓았는지 아닌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럼 이 칼날 연마라도 가능할까요?”

이번에는 정글도다.

그는 아다만티움 칼날을 살피더니 말했다.

“이것도 써? 무게 중심이 개판인데? 아니구나. 여기서 크롬강으로 오히려 무게를 줄였어. 아니, 그럼 더 불편하잖아?”

정답, 정글도는 내가 봐도 극악의 밸런스를 가진 무기지.

칼날에 모든 무게가 쏠려서, 중심 같은 건 하나도 잡히질 않는다. 대신 뽑은 직후의 첫 일격, 발도에는 더없이 적합하지.

왕방울의 고민이 깊어지는 것 같아 내가 말했다.

“발도하면서 무게를 실으면 꽤 괜찮아.”

나도 말을 놨는데, 역시나 의식하지 못했다.

“아, 발도할 때만 쓴다고? 근데 그렇게 쓰려면 보통내기로는 어림도 없지 않나?”

힘도 힘이지만, 감각도 꽤 요구하는 짓이긴 하다.

솔직히 나니까 하는 거지.

으쓱.

어깨를 으쓱하고 답하지 않았다.

내가 쓴다는 걸 굳이 말해 주지 않아도 이제는 알겠지.

“하.”

짧은 외마디 감탄과 함께.

왕방울은 눈을 감았다가 뜨고는 날 보며 입을 열었다.

“너구나, 유광익 맞지?”

이제 정신 차린 것 같은데.

“네, 1급 사원 유광익.”

“난 개척 엔지니어 팀장.”

꽤 어려 보이는데 팀장이란다.

“능력자야, 우리 엔지니어 팀장님.”

옆에서 애주가 과장이 거들었다.

왕방울 눈의 팀장은 내 다른 기어로 시선을 돌렸다.

“코트는 스펠 기어, 이건 여기서 충전 못 해. 구조만 봐서는,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주변 마력을 끌어모으는 것 같으니까 놔두면 될 거야. 한두 달쯤?”

다음은 장갑.

“이건 갤럭시 필드가 내장된 거지?”

퓨어 엔지니어라면서 눈도 좋네.

“장갑은 아직 한계점이 안 왔고…….”

슬러그 나이프도 꺼내 놨는데, 그걸 보더니 혀를 찬다.

“흠. 네 거야?”

“네.”

“이건 쓰레기야.”

그 말에 기분이 상했다.

연구 개발팀 경호팀장이 선물해 준 물건이다.

말이 심하잖아.

한마디 하려고 하는데.

“부끄럽다. 이런 걸 아직도 쓰고 있다니, 폐기하자.”

그렇게 말하며 칼자루를 쥔다.

나는 칼날 끝을 손가락으로 눌렀다.

“폐기라니요.”

내가 칼날을 손가락으로 누르자, 팀장은 눈을 몇 번 깜빡거리더니 물었다.

“어디 쓰레기장에서 주워 온 건 아니지?”

“R&D 본부 산하 연구원 호위팀장, 김주석 팀장님한테 선물 받았습니다.”

짜증이 나서 어금니 꽉 깨물고 답하니.

“쓰다 버리라니까, 그걸 무슨 선물까지 하고 그러냐고.”

팀장이 중얼거리는데 볼이 빨개진다. 진짜 부끄러워하는 것 같았다.

이 사람 진짜 왜 이래.

손에서 힘을 빼지 않자, 팀장이 입을 열었다.

“이거 내가 만든 거야. 부끄럽다. 이런 걸 기어라고 만들어서 썼으니.”

슬러그 나이프도 개조 무기, 신소재가 가미된 기어 축에 속한다.

퓨어 기어 중에서 천만 원이 넘는 가치는 사실 과하게 비싸다고 할 수 없지만.

그래도 기어 하나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낫고, 이 무기의 가치가 그렇게 떨어진다고 볼 수는 없는데.

“한 번 쏠 때마다 장전해야 하고, 반동과 충격은 전부 몸으로 받아 내야 하고. 대신 이거 줄게.”

손에서 힘을 뺐다. 왕방울 팀장이 자기 허리춤에 있던 칼집을 통째로 끌러 건넸다.

보위 나이프였는데, 손잡이가 얇았다.

고로, 슬러그 나이프가 아니란 거다.

탄이 들어갈 구석이 없는데? 그런데 그런 것치고는 꽤 묵직했다.

얇지만 칼날만큼 긴 손잡이. 그런데도 균형감은 끝내줬다.

칼 자체로도 훌륭한 물건이다. 물론 그냥 칼은 아니었다.

“강선 전투술은 배웠지?”

왕방울이 물었다.

“네, 겸사겸사.”

격투기는 독학하고, 불멸의 비기는 팀장을 곁눈질했고, 기남이 것도 곁눈질로 배웠지만, 화림 공통 전투술은 사내에서 따로 배웠다.

전투 운전, 강선 전투술 등등이 거기에 속했다.

특기로 삼을 정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못 하는 건 아니다.

나에게는 변신족의 피도 흐르기에, 어지간한 게 아니라면 몸으로 하는 데 탈 불멸자급이 된다.

“거기를 비틀고 당겨.”

손잡이 끝을 가리키며 말하기에 그대로 했다.

팅.

손잡이가 왜 긴가 했더니, 비틀어서 당겼더니 와이어가 나오네.

허허.

“아다만티움 강선이다. 길이는 대략 6미터. 필요하면 연마된 아다만티움 칼날로 잘라서 트랩 만드는 데 쓸 수도 있는데, 칼날 손잡이 윗부분으로 딱 1cm가 아다만티움 칼날이지.”

팀장이 내 슬러그 나이프를 챙겼다.

말은 그렇게 해도 부술 생각은 없어 보인다.

“칼에 탄을 왜 넣어. 충격받으면 터지고 위험하기나 하지. 아우, 이건 폐기하자. 부끄럽다.”

말로는 부끄럽다면서 내가 칼을 함부로 말하는 거에 화내는 걸 보고 좋아한다. 입꼬리가 살살 올라가고 있다고, 이 양반아.

자꾸 보니까 꽤 귀여운 타입의 불멸자다.

난 손에서 나이프를 몇 바퀴 돌리고 칼집까지 해서 허리춤에 찼다.

슬러그 나이프는 산탄을 쏘는 나이프다.

하지만, 굳이 칼로 총을 쏠 필요가 있을까?

애초에 그런 용도로 쓸 필요가 없다.

그렇기에 프로토타입이었다.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허리춤에 있는 나이프를 쓰다듬었다.

이건 얼마나 할까? 천? 아니지, 못해도 수천은 될 것 같은데.

이런 물건을 그냥 먹을 수는 없었다.

“얼마 드려요?”

화림에서 기어는 누구한테 받아도 정당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됐어. 너 해.”

이런 화끈한 양반.

“돈은 무슨, 너 가져. 그리고 잠깐 기다려 볼래?”

“네.”

물론입죠.

왕방울 팀장이 안쪽으로 몸을 돌렸다.

팀장은 안으로 쏙 들어가서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우두커니 서 있자,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공방 여기저기서 아는 척을 해 왔다.

“왼손 유광익?”

어느새 저런 별명이 붙었다.

“네, 그 유광익이 접니다.”

“와, 나 가까이서 처음 봐.”

나도 모르게, 개척 4팀의 아이돌이 된 것 같다.

사인해 달라고 안 하는 게 다행이지.

“이거 한번 써 볼래요?”

팀장을 기다리는 사이.

얼굴에 검댕이 묻은 다른 엔지니어가 다가왔다.

다가오며 내준 건 권총이었다.

받아서 들어 보니, 꽤 묵직했다.

아다만티움? 그건 아닌데.

자세히 살펴보니, 이게 총이 맞나 싶었다. 겉모습은 글록에 가까운데.

뭔가 느낌이…….

“거기 탄창 멈치를 누르고 던지면 5초 뒤에 꽝하고 터집니다. 신기하죠? 막 쓰고 싶죠? 실전에서 써 보실래요?”

엔지니어는 신이 나 보였다.

권총 형태의 수류탄이란다.

“근데 굳이 권총 형태로 만들 필요가 있습니까?”

엔지니어가 유심히 생각하더니, 답했다.

“……상대의 방심 유도?”

“풉.”

그 말에 애주가 과장이 깔깔 웃었다.

불멸자는 깔깔 웃어도 데시벨이 크지 않다. 저렇게 웃는 것도 재주다.

“그럼 차라리 테니스공 모양으로 만들지 그래요?”

그게 더 방심을 유도하기 쉽겠다.

“아니면 인형이나.”

“아, 그것도 그렇네.”

엔지니어가 중얼거리며 멀어졌다.

“오래 기다렸지?”

팀장이 금세 돌아왔다. 품에 상자를 들고 와서 테이블 위에 얹었는데, 무게감이 느껴지진 않았다.

군청색의 플라스틱 상자였다.

딸깍- 하고 잠금장치를 열며, 팀장이 입을 열었다.

“근력이 평균 이상이라면 무거운 무기를 쓰는 데 거부감이 없지. 그런데 불멸자란 놈들은 힘이 그렇게 좋지 않단 말이지. 그렇다고 변신족을 위한 무기를 만들 수도 없고.”

시대가 변했다.

이제 불멸특수대에도 변신족이 들어오는 시대라고 들었는데.

아직은 주변에서 변신족 요원을 보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다른 쪽 불멸특수대로 입사하긴 했다던데, 아직 본 적은 없다. 뭐, 그것도 혼혈 변신족뿐이라고 듣긴 했다.

순혈 변신족은 전부 엑스큐라시 소속이니까.

같은 의미로 엑스큐라시에 입사하는 순혈 불멸자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기껏 만들었더니, 이걸 못 쓰겠다네.”

뭔데 그럴까.

“패러사이티움이란 금속을 아나?”

기시감이 들었다.

나 언제 이런 적 있었는데.

기억을 더듬었다. 4번 타자를 받을 때였다.

그때는 큰 누님이 아다만티움을 아느냐고 물었지.

“압니다.”

이번에도 아는 이름이 나왔다.

아다만티움이 무게와 강도로 유명하다면.

패러사이티움은 조금 달랐다.

그 능력이 워낙 특출났기에 직관적인 이름을 지었다.

한국말로 하면 ‘기생석’.

몇 가지 약물 처리와 더불어 특별한 제련법을 통해, 기생석은 무기로 만들 수 있다.

특징으론 가까이 붙은 사람의 에너지를 빨아먹고.

그 에너지를 토대로 형태를 바꾼다는 점이다.

쉐이프 쉬프트, 형태변환이 가능한 금속이다.

형상기억합금의 신소재 버전으로.

체액을 먹고, 생물로 치자면 피를 빨고 제 모습을 드러내는 기어다.

팀장이 꺼낸 건, 팔뚝을 감는 형태의 완갑이었다.

딱 손목까지 떨어지는 길이다.

“웨어러블 기어다. 어때?”

말하며 왕방울이 눈을 빛낸다. 이 양반, 기대감이 잔뜩 어렸는데.

난 그걸 보며 깨달았다.

이 사람도 반쯤 미쳤구나.

4번 타자나, 아다만티움 정글도도 그렇지만.

이건 진짜 미친 무기다.

무기를 든 사람을 파라오 친구로 만드는 거잖아.

“뭐로 변해요?”

“직접 써 봐.”

팀장이 침이라도 흘릴 기세로 본다.

보통의 불멸자가 쓴다면 자살용 무기이려나?

안 그래도 체력 소모를 줄이는 게 일인데, 그 체력의 근본을 뺏기는 꼴이니.

긴급 수혈팩으로 피를 공급해도 무리겠지.

손을 완갑 위에 올렸다.

두-웅.

실제 박동이나 맥박이 있는 건 아니겠지만, 그런 떨림을 느꼈다.

나 이거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유 따위는 모르겠고.

그냥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보통, 이런 감은 틀리는 법이 없었다.

“쓸 수 있겠어?”

기대와 흥분이 섞어 물었다.

설마 죽기 직전까지 뽑아가겠어?

하다가 아니다 싶으면, 힘으로 뜯어내면 그만이었다.

완갑을 찼다. 차가운 감촉이 팔을 감쌌다.

손목 위에 난 기생석의 바늘을 손등 위 혈관에 꽂았다.

순식간에 팔을 감싼 완갑의 온도가 올라갔다. 완갑 안쪽이 후끈해졌다.

우드드득.

기생석이 변한다.

정확히 말하면 완갑의 형태로 제련된 웨어러블 기어가 제 역할을 수행했다.

뒤틀리고 늘어나며 단숨에 형태를 바꾼다.

피는 한 방울 정도 들어간 것 같은데, 원래 이렇게 변하는 게 맞나?

짧은 순간 드는 의문이지만, 호기심은 뒤로 미루고 변한 형태를 눈에 담았다.

왼팔 위에 나타난 건 총구였다.

총구는 손등 위를 지나, 손가락 앞까지 지나서 20cm쯤 튀어나와 있었고, 팔꿈치 위에는 조준경도 보였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웨어러블 기어니까, 부착형 저격총?

“……뭐가 이렇게 빨라.”

팀장이 날 보고 중얼거렸다.

빠르면 안 되나?

“피는 얼마나 빨렸어?”

묻기에 답했다.

“한 방울 정도.”

“한 방울?”

고개를 끄덕여 줬다.

곧 팀장 형의 눈이 아까보다 세 배는 뜨거워졌다.

“설명서 가져가라. 그리고 쓰고 나서 나중에 꼭 반드시 나한테 후기 남겨 주고.”

후기를 남겨 달라니, 쇼핑몰 사장님이세요?

뭐, 그래도 공짜로 받은 무기다.

무료 협찬으로 웨어러블 기어를 증정해 줬는데.

후기 정도야.

“넵.”

담백하게 답하고 돌아서려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유광익.”

기남이었다.

까득까득.

사람을 불러놓고 제 어금니를 씹는다. 이상한 새끼다.

“부탁이 있다.”

기남이 말했고, 난 내 청력을 의심했다.

“뭐라고?”

처음 봤을 때는 잘생긴 개나리, 그 뒤에는 우리 기남이, 너희 기남이, 룸메이트 기남이, 샌드백 기남이가 되었다.

기남이의 변천사다.

다만, 그 어떤 기남이도 나한테 이런 말을 꺼낼 리는 없었다.

“부우우타아아악?”

나도 모르게 말꼬리가 늘어졌고.

고개는 모로 꺾였다.

그걸 들은 애주가 과장이 날 유심히 보곤 속삭였다.

“너 성격 나쁘구나.”

틀린 말이었다. 난 성격이 나쁘지 않았다. 다만, 기남이 한정으로 조금, 아주 조오금 짓궂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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