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 우리 함께하자.
침묵이 감돈다. 숨결이 아니라 눈빛에서 열기가 느껴졌다.
모인 불멸자 무리가 나에게 눈으로 말했다.
너 대단해.
너 좋아.
나 너한테 반한 것 같아.
우리 오늘부터 1일 할까?
내가 느끼기엔 이런 의미가 담긴 눈빛 수십 쌍이 모여 날 관통했다.
조용한 데 뜨겁다. 바짝 달궈진 쇳덩이가 회의실 중앙에 놓인 것 같았다.
뭐라고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뒤통수에 손을 올리며 입을 열었다.
“별거 아닌데.”
내 말에 개척 4팀장이 고개를 저었다.
“별거야.”
“별거죠.”
4팀장의 말을 옆자리에 있던 애주가 과장이 받았다. 그녀는 숏컷으로 올려 친 머리를 손으로 쓸어 올리고는 엄지를 보였다.
“완전 별거라고. 대단했어. 원더풀.”
개척 4팀은 다 이런 건가.
오랜만에 만난 동기도 대뜸 고백부터 하고.
같이 근무 섰던 대리님은 내 이상형을 묻고.
이후 만난 두 명의 근무자는 초면에 자기 팀으로 들어오라 말했다.
그리고 지금 여기.
팀장은 회의에 참여한 나에게 얼굴을 맞대고 이리 말한다.
“너 최고, 내가 본 불멸자 중 제일 잘 생김, 제일 멋짐. 남자라도 반할 것 같음. 혹시 기지에서 필요한 거 있으면 마음대로 쓰셈. 내가 허락함.”
실제로 저렇게 말하진 않았지만, 분명 내 귀에는 저런 의미로 들렸다.
슥.
턱이 들리고, 콧대가 솟는다. 어깨가 절로 펴지고 허리가 곧게 선다.
사람이 참 겸손해야 하는데.
“인베이더를 상대하는 방식, 기어를 다루는 방식, 전부 일류였습니다. 몸을 다루는 재주가 보기 드문 수준이었습니다.”
이제성 과장이 말했다.
“혼혈 이레귤러라서 잘난 게 아니라 노력형 천재다?”
여자 과장은 그 말을 자기식으로 해석했고.
“보기 드문 천재라고 본다.”
이제성 과장이 마저 말했다.
“다들 이런 자세는 좀 배워라. 가진 재능이 NS급인데, 노력도 NS급이잖냐.”
팀장이 주먹으로 테이블을 퉁퉁- 치며 말했다.
칭찬이 끊이질 않는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던가.
절로 엉덩이가 씰룩거렸다.
고래에게 칭찬은 고작 춤만 추게 하지만, 인간에게 이런 과도한 칭찬은 마약과도 같았다.
내가 속한 팀에서 느끼지 못했던, 살면서 처음 맛보는 짜릿한 마약이 전신을 휘몰아쳤다.
“아주 칭찬해. 업고 돌아다니고 싶을 정도야.”
팀장은 연신 말을 토했고.
내 기분은 점점 구름 위로 떠오르는 듯했다.
“역시 NS급, 신입 사원.”
“혼혈의 희망.”
“화림 최고의 인기남.”
“잘생겼다.”
“멋있다.”
“나랑 결혼하자.”
회의실에 앉은 불멸자가 한마디씩 던졌고 마지막 말을 한 사람은 남자였다.
순간, 구름 위로 붕 뜬 기분이 싸늘하게 가라앉을 뻔했다.
그래서 못 들은 셈 쳤다.
이게 개척 4팀 특유의 분위기였다.
쉴 때도 그렇고, 근무 설 때도 느낀 바가 있다면.
프로답게 일은 하지만, 분위기만큼은 밝고 가볍게 가져가는 것, 나쁘지 않았다.
“유광익 사원은 어떤 방식으로 훈련하나?”
팀장이 물었다.
이거 참.
뭐라도 한마디는 해야 할 것 같다.
다들 나만 바라보고, 옆자리 여자 대리는 휘파람까지 분다.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분위기가 아닌가.
나는 왼손을 들었다.
팡.
허공을 짧게 끊어친 후 입을 열었다.
“왼손을 제압하는 자가 세계를 제압한다고 했습니다. 왼손을 단련하십시오.”
“……평소에 약점이 되는 부분을 단련해라? 좋군.”
꿈보다 해몽이 좋다.
팀장은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내 칭찬을 마친 후로도 회의는 계속 진행됐고.
정찰팀을 꾸리고 초소 근무 인원을 늘리는 방안을 논의했다.
그리고 모든 회의가 끝난 뒤.
개척 4팀 기지에는 유행이 시작됐다.
“왼손, 왼손.”
일명 왼손 유행이었다.
분위기에 휩쓸려서 던진 한마디가 트렌드가 되었다.
거참 뻘쭘하네.
진짜 되는대로 뱉은 건데.
뭐, 틀린 말은 아니다. 난 기본기가 중요하다고 말하려 한 거니까.
인베이더 사이에서 날뛰는 동안, 내 전투 방식은 ‘피하고 때린다’였다.
기척을 죽였고, 상대를 속였다.
불멸특수대에서 배운 전투의 기본기.
팀장을 통해 배운 것, 사수를 통해 배운 것, 임무를 통해 배운 것.
상대의 빈틈을 노리고 쑤시라는 거다.
난 그렇게 했다. 사실 그게 전부였고.
텅.
방에서 쉬는데 룸메이트가 방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넌 무슨 짓을 하고 돌아다니는 거냐?”
기남이 회복실에서 복귀하자마자 나에게 아는 척을 했다.
새삼스럽네.
보고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지내는 사이였는데.
물론 기남이가 그랬다는 거다. 난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친절했다.
“팔이나 하나 잃어버리고. 쯧쯧.”
걱정을 담아 말하니.
까드득, 까드득.
기남이가 어금니로 호두 깨는 소리를 냈다.
“하나만 묻자.”
“오냐. 이 1급 사원님의 마음은 언제나 열려 있지.”
날 노려보는 기남이의 눈빛은 언제나 초롱초롱하다.
저걸 보는 게 왜 즐거운 걸까.
아우, 짜릿해, 늘 새로워. 기남이 화내는 거 너무 재밌어.
“그래, 1급 사원 유광익, 어떻게 했냐?”
난 고개를 모로 꺾었다.
“뭘?”
“넌 혼혈이지만 이레귤러, 재능이 뛰어나다는 것도 알고 불멸자에 어울리지 않는 괴력을 가졌다는 것도 안다. 그렇다고 해도.”
기남이 말을 끊더니, 한숨을 내쉬고는 나와 눈을 마주쳤다.
기남이가 저렇게 한숨을 쉬는 건 처음 봤다.
“트롤 두 마리를 포함한 인베이더 수십 마리를 어떻게 잡았지?”
아, 그게 궁금하셨어? 그럼 나도 궁금한 게 있었다.
“넌 트롤 어떻게 잡았냐?”
김다미 대리는 배에 주먹만 한 크기의 피어싱을 했고, 강동원에서 유광익으로 사랑의 배를 갈아탄 동기는 반죽음 상태였다.
분명 기남이가 뭘 했다. 트롤은 이 자식이 잡은 거다.
예민한 감각은 전투를 수월하게 만들지만, 고속 재생하는 인베이더를 죽이는 건 다른 문제다.
고로 트롤을 잡는 건, 예민한 감각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트롤의 몸을 서른 조각 이상으로 쪼개면 재생을 멈출 수 있다.”
나도 안다. 불멸자의 전투 교습에서 배우는 내용이다.
그냥 서른 조각이 아니라, 몸을 서른 조각으로 균등하게 나누는 거다.
저게 어려우면 그냥 팔다리를 제외한 몸통을 산산이 쪼개면 된다.
내가 4번 타자의 아다만티움탄으로 한 것처럼 말이다.
아니면 분쇄기에 집어넣어도 되고.
그럼 기남이는 어떻게 했을까.
“비장의 무기는 너만 가진 게 아니다.”
기남이는 그렇게 말하곤, 품에서 칼을 꺼냈다.
“뭐?”
곡선을 그리는 칼날, 얇은 손잡이, 쓰로잉 나이프의 한 종류다.
기남이 칼 손잡이를 쥐고 무릎에 내리쳤다.
탁.
칼 손잡이와 무릎뼈가 만나는 소리와 함께, 칼날은 징- 하고 잔물결을 일으키며 칼날 빛 하나를 더했다가 사라졌다.
“광학병기?”
기어는 두 종류로 나뉜다.
마법이 깃든 스펠 기어.
순수 과학으로 만든 퓨어 기어.
그 퓨어 기어 중에 상위 기어가 바로 광학(光學)병기다.
이전에 팀장이 쓴 광선검은 그 광학병기의 정점 중 하나고.
“일정 속도 이상으로 적에게 부딪혔을 때 발동한다. 회수하고 다시 부딪치는 걸 반복하면 트롤도 조각낼 수 있지.”
던져서 부딪치는 충격에 칼날 주변으로 레이저 칼날이 생성되고, 이후 손잡이 끝에 달린 와이어를 당기는 것으로 회수.
간단한 전투 방식이지만 시간만 있다면, 그러니까 고기 방패만 있다면 트롤 하나 정도는 충분히 요리할 수 있었다.
탁월한 근접전 능력이나 경험이 없더라도 가능한 전투 방식이다.
게다가 기남이는 천재 축에 속하는 놈이다.
이번 한 번의 경험으로 다음에는 훨씬 더 경미한 피해로 트롤을 죽일 수 있을 것이다.
광학병기는 정말 돈 잡아먹는 기어다. 하지만 저 칼날은 순간 발동형이었으니, 광학병기치고는 가성비가 뛰어난 기어였다.
“넌 어떻게 했지?”
기남이 칼날을 품에 넣고 물었다.
갈구하는 눈빛이 보인다.
도저히 서투르게 대답해 줄 수 없었다.
기남의 팔은 아직 재생하는 중이었다. 고통을 감내하느라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이 보였다.
아무리 나라도 도저히 대충 대답하진 못하겠다.
“노오오오오오…….”
“시발 새끼, 죽어라.”
기남이가 흥분해선 갑자기 덤볐다.
“부상자랑 싸우면 내가 욕먹어.”
“죽여 버린다. 반드시 죽여 버린다.”
아니, 진심으로 하는 얘기였는데.
왜 이렇게 흥분하냐.
덤비는 기남이의 다리와 내 다리를 엉켜서 제압하고 눕힌 뒤, 백 마운트 포지션을 잡았다.
팔 하나가 없어서 평소보다 수월했다.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야지, 기남아. 형한테 그런 건 안 배웠어?”
“미친 스컹크 새끼야. 형은 언급하지 마.”
“노력, 기본기, 그리고 육체 단련이라고 말하려 한 거다. 3급 사원 정기남 군.”
“말끝마다 그놈의 직급은.”
“너는 직급 떼도 지잖아.”
팩트로 후려치는 건 정말 짜릿하다.
기남은 말을 삼켰다. 대신 입술을 깨물고 침대에 한참 이마를 대고 있더니, 물었다.
“육체 단련은 나도 한다. 다들 하고.”
“얼마나?”
“뭐?”
“얼마나 하냐고. 뼈를 깎는 고통, 근육이 부서지는 고통을 겪어도, 불멸자의 육신은 무서울 정도로 본래의 컨디션으로 되돌린다. 근육 성장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최선의 몸 상태를 만들어 주는 거, 알지? 그것도 모르면 넌 진짜 샛노란 머저리 개나리다.”
불멸자의 육신이 아니었다면, 시발 팀장이나 박다람 팀장이 그런 대단한 몸을 만들 수도 없었다.
그들의 근력은 일반종이나 불멸자를 초월했다.
물론 작정하고 덤비는 변신족만큼 강하진 않지만, 그래도 맞상대할 최소한의 근력은 갖췄다는 거다.
그걸 위해서 희생해야 할 것.
“시간을 투자하고, 노력해라.”
불멸자의 육신은 고통을 대가로 힘을 얻을 수 있는 구조다.
그렇게 대답하고 일어나려는데, 기남이 입을 열었다.
“넌 얼마나 투자하는데.”
여기서 양심이 가출을 시도했다.
전부 솔직하게 말할 수도 없지 않나.
난 변신족이니 타고나서 적당히 한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으로.”
적당히 둘러댔다.
말하고 이번엔 진짜 일어나려 했다.
똑똑.
그때, 누군가가 방문을 두드렸고.
기남이가 박차고 들어온 문은 제대로 닫히지 않았었다. 문이 열렸다.
“저기…….”
급했다. 일어나야 했다.
하지만 늦었다.
들어온 사람은 연구팀 소속으로 파견 나온 박미혜 2급 사원이었다.
꽤 귀여운 얼굴과 보기 드문 글래머였다.
베이글의 표본인 사원.
자연스레 열린 문 앞에서, 베이글 2급 사원 박미혜는 발을 멈추고 상황을 훑었다.
한쪽 팔을 제압한 내가 기남이의 백 마운트 포지션을 잡은 장면이다.
“싸운 겁니다.”
“그런 거 아니야.”
나와 기남이 동시에 말했고.
“죄송해요.”
박미혜는 그 말과 동시에 뒤로 돌아섰고, 도망치듯 파바박 뛰어갔다.
자세를 풀었다.
허탈한 마음에 문을 바라봤다.
기남이 제 옷매무새를 정리하며 물었다.
“나라를 잃었냐?”
“비슷하다. 염병, 왜 하필 이 타이밍에.”
“배부른 놈. 김동철 이사님이 부른다. 가 봐.”
“……너 그 말부터 전해야 하지 않냐?”
“스컹크, 네놈이 덤벼서 이렇게 됐잖아.”
그렇게 말하며 슬쩍 웃으려다 만 기남이를 보고, 난 이게 의도된 일이라는 걸 알았다.
이 새끼가 나 엿 먹으라고 일부러 그런 거다.
그래, 그동안 형이 좀 많이 때렸으니까 이번에는 봐줄게.
신입 사원 평가 때부터 우리 기남이가 참 많이 처맞았지.
“기남아, 너 그거 아냐?”
“뭐?”
“1급 사원부터는 독실 신청이 가능하다.”
나와 기남이는 룸메이트다.
하지만 내가 지금 집을 나가면 기남이는 아침마다 나와 마주칠 일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나만 아니라면, 다른 동기나 룸메이트는 정기남 저 새끼 성격에 짓눌릴 테고.
기남이 숨길 수 없는 기대감으로 날 보기에 뒤이어 말했다.
“그런데 난 안 할 거야. 너와 함께한 모든 시간이 너무 찬란했거든.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전부. 우리 함께하자.”
“미친 스컹크, 또라이 스컹크.”
그게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욕이니? 수고했다, 기남아. 앞으로도 우리 쭉 같이 가는 거다?
방에서 빠져나와 김동철 이사의 방을 찾았다.
문을 두드리고 들어갔더니.
“내 아내도 날 이렇게 기다리게 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 부른지 삼십 분이 지난 뒤에야 나타난 이유를 물어도 되나? 변비라고 하면 봐주지.”
아니요. 변은 잘 봅니다. 아주 건강하고 굵고 튼튼하게.
“기남이를 오랜만에 봐서 반가운 마음에 담소를 나누다가 그만, 죄송합니다.”
“뭐, 됐다. 유광익 사원.”
“네, 1급 사원 유광익.”
“개척 4팀은 인원이 부족해서 아주 곤란한 상황이다.”
근무라도 서라고 하려나?
“중요한 임무를 맡아 줬으면 한다.”
일이다. 이전에 보인 내 활약 덕분일까? 일반적인 임무가 아니다. 육감과 직감이 말했다.
김동철 이사의 눈을 바라봤다.
남명진 사장이나 시발 팀장과는 달랐다.
굳이 비교하자면, 날 가르쳤던 과외 선생 둘과 닮았다.
하지만 그 둘과도 다르다.
김동철 이사의 눈빛에는 호기심이 가득했다.
과연 나라는 불멸자는 어디까지 할 수 있는가.
그런 호기심이 담겼다.
적어도 난 그렇게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