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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격 외 혈통 천재-116화 (116/488)

116. 동생 바보

꽝.

달려나가며 내지른 주먹에 고블린 머리가 걸렸다.

한 방에 목뼈가 부러져 길게 늘어진 목을 갖게 된 고블린이 바닥에 드러누웠다.

쓰러진 놈을 발로 걷어찼다. 맞은 고블린이 붕 떠서 앞으로 날아갔다.

“키익!”

날 향해 달려들던 고블린 놈이 제 친구를 안고 뒤로 굴렀다.

뒤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4번 타자를 들고 휘둘렀다.

아다만티움을 통으로 써서 만든 산탄총은 그 자체만으로 흉기다.

쩡, 우두둑.

개머리판에 가슴팍을 맞은 놈이 숨을 헐떡이며 뒤로 넘어졌다. 가슴뼈 함몰이다.

오른손으로 권총을 뽑아 쓰러진 놈의 머리통에 한 발.

탕.

쏘는 것과 동시에 다시 권총을 수납.

숨 쉴 틈 없이 다음 고블린이 달려든다. 달려드는 고블린 놈의 다리에 로우킥을 먹였다.

우적- 하는 소리가 들렸다. 무릎이 뒤틀린 놈이 낑낑거렸다.

눈가에 눈물 맺힌 거 실화냐? 아프냐? 난 안 아프다.

놈에게 바짝 붙자, 놈이 반사적으로 이빨을 들이댔다. 기꺼이 손을 내줬다.

쩡.

갤럭시 필드가 발동하지 않아도, 장갑의 강도만으로 고블린의 이빨을 막았다.

주먹에 힘을 주어 그대로 위아래로 흔들었다.

우둑, 우둑. 뿌직, 뿌직.

다시는 고기를 씹을 수 없게 이빨을 와장창 뽑아 버린 뒤, 그 불쌍한 인생이 가여워 머리통에 총알 한 발.

탕.

픽- 하고 페이스 가드 위로 다시금 녹색 피가 튀었다.

멈춘 채로 참았던 호흡을 뱉었다.

페이스 가드 안에서 내가 내뿜는 숨의 열기가 볼을 데웠다.

체온이 평소보다 올라간 숨결이 뜨겁다.

아나볼릭 스테로이드 기반에 갖가지 이세계의 풀이나 곤충 체액이 섞여 만들어진, 불멸 전용 약물 BB-8.

불멸자끼리는 뽕팔이라 불리는 약의 최대 장점은 정신에 미치는 영향이 없다는 거다.

오롯이 신체 능력 향상에만 맞춰져 만들어진 약물이었다.

내가 했던 몸이 풀렸다는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약의 효과에 적응했고, 몸에 부하를 주는 중력에도 적응했으며.

무엇보다 그동안 맡은 임무와 전투, 모든 걸 겪으며 난 인베이더와의 전투에도 익숙해졌다.

죽은 고블린 사체를 바닥에 굴리며 눈으로 주변을 훑었다.

돌격과 동시에 짓쳐들어가는 속도에 맞춰 주먹을 휘두르는 거로, 네 마리 고블린을 피떡으로 만들었다.

나는 왼손에 4번 타자 손잡이를 들고 빙글빙글 돌리며 말했다.

“빨리빨리 와라. 형 바쁘다.”

훙, 퉁!

말하기 무섭게 옆에 있던 고블린이 손에 든 쇠꼬챙이를 옆구리를 향해 찔렀다.

육각 결계가 발동했는데 그걸 뚫고 들어온다.

손날로 꼬챙이를 후렸다.

방검방탄복에 구멍이 생겼지만, 긁힌 상처가 전부였다.

4번 타자를 휘두르는 척하자, 뒤에서 오크 한 마리가 반탄석 방패를 위로 들더니 내 머리를 향해 찍었다.

쇠꼬챙이 고블린, 그 옆에서 돌도끼를 휘두르는 고블린, 앞에서 달려드는 오크.

그 셋을 잇는 하나의 선을 그린다.

동시에 팀장에게 배운 감각의 스위치를 켰다.

주변에 들어오는 모든 정보를 머리가 아닌 감으로 인지했다.

오른손이 허리춤을 훑으며 아다만티움 칼날 정글도를 쥐었다.

쥐고 뽑고 벤다.

모든 동작이 1초 이내에 이뤄졌다.

후앙.

허공을 가른 정글도의 원심력을 따라 오른쪽으로 한 걸음 이동.

벤 직후, 다시 정글도를 칼집에 넣었다. 팅 하는 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렸다.

머리, 가슴, 팔, 배.

칼날에 걸린 모든 곳에서 실금이 그어지더니 녹색 피가 주룩주룩 흐르다가 점점 그 양이 늘어났다.

칼날의 범위 안에 있던 놈들이 전부 바닥에 쓰러졌다.

“하아.”

다시 숨을 돌렸다.

남은 건 몇 마리?

셀 필요도 없었다.

이제까지의 경험과 인베이더 무리의 전투력을 환산하면.

처음 눈먼 개를 잡았을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큰 차이가 있었다.

신체 능력이 비약적으로 늘진 않았지만.

싸우는 법을 배웠다.

인베이더 상대하는 법을 배웠고, 불멸자의 전투를 배웠다.

기척을 죽이고 속이고, 흩날린다.

감각에 의지하며 날뛴다.

주변 모든 것이 적이었다.

인지하는 순간 베고 때리고 짓이긴다.

오크 두 마리가 반탄석을 내팽개치고 달려들었다.

권총의 9mm 파라블럼탄의 저지력으로는 오크 두 마리를 막지 못한다.

팀장은 말했다.

“이성을 잃고 싸우면 멧돼지지, 그게 불멸자냐?”

말투는 까칠하지만, 그 안에 내가 알아야 할 모든 게 있었다.

감각의 스위치를 켜면, 주변의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이고 들린다.

상대의 움직임을 눈에 보이듯 예측할 수 있다.

세상만사 전부 내 뜻대로 될 것 같다. 번쩍 뛰면 하늘도 날 수 있을 것 같다.

아니다. 그럴 수 없다.

스위치를 켬과 동시에 내가 가져야 할 건 냉정함.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해야 했다.

물론 난 불멸과 변신의 혼혈.

할 수 있는 게 다른 불멸자보다는 많다.

가령, 아다만티움 통짜 산탄총에 아다만티움 총탄을 쓰는 무식한 총을 한 손으로 들고 갈기는 것도 가능하다.

왼손에 쥔 4번 타자를 허공에 살짝 띄워 던지고 손잡이를 쥠과 동시에, 오른 팔뚝으로 개머리판 뒤를 받쳤다.

무게 중심을 발끝에 쏠리게 한 뒤, 방아쇠를 당겼다.

꽝.

폭발음과 함께 4번 타자가 불을 뿜었다.

그와 함께 산탄, 흩어져 나간 총알이 오크 두 마리 전신에 구멍을 뚫었다.

격발 시 생긴 반동이 몸을 뒤로 떠밀었다. 몸 전체로 반동을 받아 냈다.

“방패 안 챙기냐?”

듣지 못하는 놈들을 비웃는 건 이상한 일이지만.

전략과 전술까지 쓰면 덤비는 놈들에게 엿을 먹이고 나니, 뿌듯해서 입을 멈출 수 없었다.

“다음.”

내 말에 선두에 있던 고블린과 오크 한 마리가 한 걸음 물러났다.

인베이더에는 특유의 파장이 있는데 그걸 ‘피어’라고 부른다.

괴성을 내지르며 초저주파를 뿜으면 그 파장이 인간의 정신을 압박한다. 고양이 앞의 쥐처럼 바짝 얼어붙기도 한다.

무의식이 상대가 가진 야성과 강함을 인지하고 몸이 굳는 거다.

그럼 역으로 인베이더는 인간에게 공포를 느끼지 않을까?

오늘 보니까 알 수 있었다.

무의식에 꼬라박는 힘의 공포는 인간이나 인베이더나 동일하다.

놈들은 겁을 집어먹었다.

아직 트롤 한 마리가 기세등등하게 버티고 있지만.

불멸자는 제 몸을 깎아내는 고통 감내 훈련을 필수로 받는다.

그 훈련의 모토는 전투 불능에 빠지지 않기 위한 지식을 쌓는 행위.

이 말인즉슨, 역으로 불멸자의 몸을 조지는 방법을 너무도 잘 안다는 거다.

고로, 재생하는 괴물을 상대하는 법도 잘 안다는 것과 같다.

처음 무너뜨려야 하는 건 기동력.

다리를 베고 움직임이 멈춘 놈의 전신을 다진다.

조각 단위로 쪼개진 불멸자는 죽는다.

트롤도 마찬가지였다.

눈을 두 번 깜빡이는 동안 스위치가 켜진 내 모든 오감과 육감은 트롤의 마지막을 그렸다.

발을 떼려는데, 뒤에서 턱턱 소리가 들렸다.

걸음 소리, 그 걸음에 실린 무게와 비린내, 거친 호흡과 그르륵거리는 소리까지.

대기를 가르는 공기의 파동만으로도, 기지 안에 들어갔던 트롤 두 마리 중 하나가 내 쪽에 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안쪽의 전투는? 귀를 기울였다.

거친 소음이 연신 울린다. 끝나지 않았다.

그럼 얘는 여기 왜 온 거야?

“왜. 여기가 더 맛집으로 보이더냐?”

통하지 않을 말을 뱉고 호흡 조절을 끝냈다.

두 마리 중 하나가 이곳에 왔다.

그럼 남은 하나로 저 안을 해결할 수 있다는 판단이 섰다는 걸까?

인베이더가 그렇게까지 머리를 굴릴까?

모른다. 야습하고 포위하는 인베이더 새끼들도 오늘 처음 봤다.

난 생각을 멈추고 대신 발을 움직였다.

마저 숫자를 줄이자.

그게 지금 내가 할 일이었다.

기남이가 갈기갈기 찢겨 죽기 전에 어떻게든 해결을 봐야 할 거 아닌가.

* * *

광익과 기남이 경계 근무에 투입됐다면, 호남도 할 일이 있었다.

정찰 임무다.

막 야간 정찰을 막 끝내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위잉.

머리 위로 드론이 날아왔다.

이곳은 이계, 어지간한 전파 따위는 씹어 삼키는 곳이고.

통신을 위해 선을 연결하면 인베이더가 다 헤집는 곳.

안전지대라고 해도 하루에 한 번은 인베이더를 마주하는 곳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통신 수단을 포기할 순 없는 노릇이었기에 초소에는 단방향 신호기를 달았고.

과거의 방법을 답습하기도 했다.

통신이 안 되면 직접 전하면 되는 법, 전서구를 쓰는 거다.

그 전서구를 현대식으로 바꾸면 드론이 되는 거고.

프로그래밍된 드론은 약속된 방향으로 움직인다.

그 경로에서 드론을 발견한 정찰대원이 반응했다.

“기지에 무슨 일이 있나 봅니다.”

그 말에, 호남은 이상할 정도로 불길함을 느꼈다.

‘왜?’

속으로 되물었지만, 알 수 없다.

그저 자신의 직감이 경고했다.

지금 전해온 소식이 좋은 것만은 아닐 거라는 경고.

낮게 떠서 날아가는 드론을 대원 중 하나가 낚아챘다.

드론에 달린 액정에 기지에서 전한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초소 습격, 다수의 인베이더 출현이 예상됨, 현재 2초소와 3초소 위기, 최대한 빠른 복귀 요망, 이라는데요?”

2초소와 3초소.

호남은 정찰을 떠나기 전, 기남이 몇 시에 어디로 근무를 들어가는지 들었다.

“정기남 사원은 아직 적응이 안 끝났는데 곧바로 투입입니까?”

개척 팀장에게 직접 물었었다.

“몸을 빨리 굴릴수록 적응이 빠릅니다. 그리고 지금 한가하게 쉴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팀장은 까칠했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자신이 어찌할 수는 없었다.

“몇 시간 근무입니까?”

대신 따졌다. 어디에 서는지, 위험은 없는지, 면밀히 체크했다.

“이봐요. 당신 그 친구 보모야? 뭐 이렇게 따져? 일하러 왔으면 일을 해.”

“일합니다. 제대로 할 겁니다.”

호남은 프로다. 이제까지 그랬든 제대로 일을 처리할 작정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동생은 아직이다.

미숙하고 앳된 어린아이다.

“알려 주십시오.”

“진상이네.”

팀장은 그리 말하며 제 큰 귓불을 당겼고, 툴툴대며 근무지와 시간을 말해 줬었다.

호남은 손목 태블릿을 확인했다.

09:12PM

동생이 근무를 서는 중이었다.

장소는 2초소.

인베이더 무리가 습격했다는 곳이다.

팍.

호남이 땅을 박찼다.

진즉에 이계 환경에 적응했기에 움직이는 데 거리낌은 없었다.

근저 지형도 이미 숙지했다. 호남은 엘리트였다. 지형 숙지는 오자마자 끝냈다.

“어, 어, 과장님.”

“야, 우리도 가야지.”

빠른 복귀 요망이라고 했다.

그 말 그대로, 다급한 상황이라고 판단했다.

남은 정찰대원 넷도 발을 놀렸다.

정찰대원 중 하나가 뛰면서 입을 열었다.

최근에 휴가를 끝내고 돌아온 대원이었다.

“그거 진짜였나 보네.”

“뭐가?”

헬멧에 마이크로 산소통을 달고 적당히 호흡을 조절하며 뛴다.

그래야 도착해서 곧바로 전투에 투입될 수 있었다.

그들은 그렇게 했다.

하지만 이미 호남의 뒷모습은 저만치 멀어져 있었다.

그렇다고 입을 놀릴 시간이 없는 건 아니었다.

“정호남 과장, 동생 바보라고 하던데.”

“딸 바보, 아들 바보는 들어봤어도 동생 바보는 뭐냐.”

“너희 둘, 잡담이나 할 때냐?”

상급자의 질책에 둘이 입을 다물고 뛰기 시작했다.

* * *

평소의 호남은 냉정하고 냉철했다.

딱 한 가지 경우만 아니라면 그랬다.

“후욱.”

호흡을 짧고 굵게 마시고 뱉는다. 그거로 최대한 호흡을 돌리고 땅을 박찬다.

꽝!

폭음이 먼저 귀를 때렸다.

이 빌어먹을 이계의 공기는 일정 지역의 소리를 넓게 퍼지지 않게 막는다. 대기가 소리를 집어삼켰다.

그 지역을 벗어난 곳, 그러니까 개척 지역과 미개척 지역의 중간이 아니라 ‘완전 안전지대’라 불리는 곳이 가까워지면 소리가 귀에 닿기 시작한다.

딱 그곳이었다.

호남은 2초소가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신호탄의 불빛이 주변을 환히 밝혔다.

빛과 소리, 모든 걸 감각을 열어서 받아들인다.

인베이더 시신 사이로 누군가 우뚝 서 있는 게 먼저였다.

뛰는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유광익이다.

“……과장님?”

광익이 먼저 아는 체를 해 왔다.

호남은 뛰면서 물었다.

“정기남은?”

아직 근거리는 아니지만, 둘 다 불멸자다. 눈에 보이고 점점 가까워지는 중이기에 대화 역시 가능한 거리였다.

“안쪽에 있는데.”

대답을 들은 호남은 그대로 기지로 몸을 날렸다.

터진 창문, 매캐한 냄새, 호남은 창문을 뛰어넘었다.

눈이 사방을 훑는다.

반쯤 피떡이 된 불멸자가 보였다.

성별은 여자, 왼쪽 팔과 왼 다리가 뜯겼다.

힘으로? 아니, 손톱과 이빨 따위에 잘렸다.

피를 너무 흘려 실혈성 쇼크다.

호남은 눈을 돌렸다.

“후욱, 후욱, 후욱.”

그곳에 외팔이 불멸자와 그보다 키가 훌쩍 크지만, 배에 구멍이 난 불멸자가 보였다.

“……무슨 일입니까?”

팔 하나를 잃은 동생이 물었다.

그 앞에 갈기갈기 찢긴 인베이더 시신 한 마리도 보였다.

‘트롤.’

한 마리를 상대하려면 무장한 특수종 병력 다섯이 필요한 적이다.

그 인베이더를 죽였다.

“……지나가는 길이다.”

호남은 핑계를 댔다.

때려 죽어도 동생을 걱정해서 왔다고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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