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규격 외 혈통 천재-112화 (112/488)

112. 개척팀에는 좋은 사람만 있는 것 같다.

보통 이세계 파견 근무는 5개월, 이후 한 달의 휴식 기간을 갖고 재파견된다.

개척 탐사든, 마이닝이든, 또는 R&D 부서에서 장기 지원 나온 인원이든, 이 기간은 같다.

감각의 괴리, 중력 변화, 기후의 신이 정신이상이라도 일으킨 듯한 기후 변화.

5개월 이상의 근무는 사람 정신을 미치게 하기 딱 좋았다.

거기다 아더 사이드의 세계에는 인터넷이 없다.

휴식 시간에 즐길 거리가 한정된다는 얘기다.

인터넷 대신 대부분 근무자는 콘솔 게임, 보드게임, 마약도 종종 하고 인트라넷에 올라온 소설을 읽기도 했다.

물론 여유 시간이 그리 넉넉하진 않았다.

이곳이 군대라면, 아더사이드의 기지는 GOP와 같았으니까.

General OutPost, 전초기지다.

본래라면 남방한계선 철책선에서 국군장병이 서는 근무를 이곳에서 서는 거다.

전초기지에서 5개월, 파견된 요원은 끊임없는 경계 근무와 경호 업무에 치인다.

결론만 말하자면, 이세계 파견 근무는 지루하고 답답하며 위험도 동반되는 근무지.

그런 와중이었다.

지원 병력으로 온 이 중에서 현 화림 내 가장 유명한 동기가 왔다.

“들으셨습니까?”

손에 든 카드에서 눈을 떼며 요원 하나가 말했다.

자신을 포함해 총 네 명의 근무자가 둥근 테이블을 두고 마주 앉은 채, 세븐 포커를 치는 중이었다.

“뭘?”

다른 요원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넥광익이 왔다는데.”

먼저 말을 꺼낸 요원은 광익과 동기였다.

외부 보안팀이나 분석팀 같은 비교적 양질의 부서로 가는 동기가 있다면, 이처럼 상대적으로 험한 곳에 배정받는 이들도 있는 법이었다.

“너랑 동기지? 친해?”

친한가?

광익의 동기가 돈 대신 쓰는 코인을 몇 개 올리며 입을 열었다.

“세 개 갑니다. 친하다고 하긴 어렵죠.”

말을 나눠 본 적은 몇 번 있다.

“잘 자라. 좋은 꿈 꾸고.”

아니, 말을 나눠 본 게 아니라 일방적으로 듣고 눈을 감았다.

넥광익은 자신을 곧잘 재워 줬으니까.

“세 개 받고 두 개 더.”

바로 옆자리의 미녀가 말했다.

이마가 넓고 눈매가 가는 친구다.

이쪽도 자신과 동기였다.

“기분이 어때?”

슬쩍 물었다. 여자 동기는 답하는 대신 눈썹을 씰룩였다.

답은 없었다.

“이번 타임 경계 근무조가 광익이랑 정기남이잖아? 맞지?”

남자 동기가 물었다.

“알아.”

여자 동기는 조용히 읊조리고 카드를 엎었다.

영 집중되지 않았다. 그녀는 소총과 무장을 챙기고 일어났다.

근무에 나설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유광익을 다시 만날 시간이고.

그녀의 눈이 파랗게 빛났다.

“살살해라. 놀랄라.”

선배 중 하나가 말했다.

“공사는 구분합니다.”

무표정하게 답한 여자 요원이 몸을 돌렸다.

* * *

근무지는 지상이었다.

지하 기지를 중심으로 네 개의 초소를 만들고, 그곳에 4인 1조로 근무를 선다.

근무자는 보통 R&D 부서의 경호팀에서 차출되거나 개척 탐사팀 인원 일부가 맡는다.

나와 기남이는 최근 이쪽 땅에 개척지 탐사로 인원이 부족해 경계 근무 지원으로 온 거였다.

근데 이런 일에 1팀 에이스라는 정호남 과장이랑 총괄 본부장도 오나?

고작 경계 근무에?

그럴 리가 없지. 내 예상대로 그 둘은 근무에 관여하지 않았다.

그럼 다른 목적이 있다는 건데.

“정기남이, 너희 형은 왜 왔대?”

기남이는 보통 내 말을 무시하곤 한다. 말대답할 때마다 때렸더니 애가 말을 아낀다.

“안 때릴게. 말해 봐.”

“미친 스컹크, 헛소리하지 마라.”

내 말에 발끈하는 게 꽤 귀여웠다.

기남이의 감각 조절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래서 아둔한 애들은 안 된다.

아직도 이 모양이라니.

쯧쯧.

“팁 알려 줄까?”

감각 조절하는 것도 다 노하우가 있는 법이지.

기남의 귀가 쫑긋 섰다.

불멸자는 예민하다. 순혈은 더 예민하고.

그런데 오감이 엉망이 된다고 생각해 보라. 더 미쳐 돌아가는 꼴이지.

기남이가 지금 딱 그랬다.

쫑긋 선 귀를 보며 난 기남이가 귀엽다고 생각하며 말했다.

“노오오오오려어어어억하면 돼.”

그냥 노력 말고 노오오오려어어억해야 함. 노력하면 다 됨. 안 되면 어떻게 하냐고? 모름. 아무튼, 내 말이 맞음.

옆에서 보는데, 기남이의 턱에 근육이 생겼다. 또 어금니를 꽉 깨물었나 보다.

하지만 평소에도 덤비면 1라운드 10초 이내 KO다. 오감이 엉망이 된 지급 상태에서는 덤빌 엄두도 못 내겠지.

감각 조절 노하우가 있을 수는 있지만, 난 모른다.

난 그냥 자연스럽게 됐다고.

천재가 범인을 어찌 가르치리.

“죽어 버렸으면 좋겠군.”

기남이 중얼거렸다.

“누구? 형한테 그런 저주 내뱉는 거 아니다.”

너, 너, 너.

기남이 눈으로 말했고, 난 그 눈빛을 외면했다.

“너희 둘이구나.”

우리는 근무에 나가기 전, 몇 가지 사항에 대해 배웠다.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보이면 쏴. 어지간하면 쏴. 총탄 아끼지 말고.”

가장 중요한 건 이거였다.

나머지는 뭐, 졸면 안 되고 비상시에 곧바로 연락하라는 말뿐이었다.

양방향 무전기를 주긴 하지만, 폭풍이 일면 노이즈가 심하게 끼는 덕에 누르는 횟수로 상황을 전달하는 용도였다.

모스 부호까지 가능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게 과장님의 말이었다.

말을 건넨 이는 오늘 근무지를 책임지는 당직 과장이었다.

개척팀의 일원이었는데 네모난 턱과 까칠한 인상과 달리 말투는 수수하고 부드러웠다.

특히 나한테 더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순혈 정가?”

기남이한테는 한마디 묻고 끝인데.

“혼혈치고는 꽤 잘생겼네.”

나한테는 이렇게 말하며 괜히 어깨를 두드려 주고.

“무슨 일 있으면 같이 근무 서는 대리한테 말해. 내 단단히 일러 뒀으니까 불편한 거 다 말해도 된다.”

뭔데, 왜 이렇게 친절한데.

“네, 알겠습니다.”

일단 호의에 침을 뱉을 순 없으니까.

난 가정 교육을 잘 받은 불멸자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옆에서 무장을 챙기던 기남이가 발을 헛디뎠다.

“아직 감각 조절이 안 끝났나?”

당직 과장이 물었다.

“네, 이 친구가 조금 더뎌서.”

“으음, 광익 씨는 괜찮고?”

“저야 뭐.”

웃으며 답하니, 과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내 어깨를 두드린다.

그걸 본 기남이는 또 턱 근육에 힘을 줬다.

자식아, 어금니 다 닳겠다.

뭐, 다 닳으면 뽑으면 된다. 불멸자의 치아는 계속 새로 난다.

썩으면 뽑아 버리면 된다는 놈도 있는 판이다.

“그럼 수고.”

당직실에서 나오니, 같이 근무 설 요원 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음, 한 명은 낯이 익은데?

이마가 넓고 눈매가 가는 여우를 닮은 요원 하나, 키가 185cm쯤 되는 까무잡잡한 피부의 이색미가 풍기는 요원 하나.

둘 다 여자였다.

“광익 씨?”

까맣고 키 큰 요원이 물었다. 흑인과 동양인의 혼혈로 보였다.

그러니까 평소에 쓰는 혼혈과는 다른 의미의 혼혈이다.

한국말은 유창했다.

“네, 1급 사원 유광익.”

“반가워요. 저 김다은 대리입니다.”

이름이, 보통 제니, 제인 이런 이름이 나와야 할 것 같은데.

“아버지 쪽인데, 어머니가 혼자 키우셔서 쭉 한국에서 자랐어요.”

묻지도 않았는데 줄줄 말했다.

“넵.”

상처가 될 만한 가정사가 아닌가 싶어, 입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하나는 날 지그시 보더니 이내 고개를 돌렸다.

“출발하시죠. 대리님.”

뭐지, 이쪽은 뭔가 까칠한 느낌인데.

그렇게 넷이 근무지로 향했다.

조용한 이동이었다.

기남이는 감각 조절하느라 바빴고.

난 저 까칠이를 어디서 본 것 같아 떠올리기 바빴으며.

대리님은 날 훔쳐보기 바빴다.

뭘 이렇게 보시나.

인정하기 싫지만, 기남이 얼굴이 나보다는 조금, 아주 조오오금 더 잘 생겼는데, 기남이가 아니라 날 훔쳐본다.

“광익 씨는 눈이 참 예쁘네요.”

대리님이 말했다.

“제 눈이요?”

“흡.”

기남이가 옆에서 웃으려다가 호흡을 삼켰다.

이 새끼가 비웃어?

“아, 네, 그런 얘기 종종 들었습니다.”

우리 옆집 혜민이는 나보고 최고의 미남이란 말을 서슴지 않았다.

어머니도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얼굴은 타고났다고 했다.

아버지 빼고 최고란 말을 곧잘 하셨으니.

하여간 금슬이 너무 좋다. 객관적으로 그래, 아버지 미중년 꽃중년 맞는데.

그래도 어머니는 아들이 최고라고 해 줘야 하는 게 맞는 거 아닌가.

뭐, 딱히 불만은 없다.

부모님 사이가 좋아서 우리 집은 화목했으니까.

서로 비밀을 숨기고 있다는 것만 제외하면 최고로 화목한 가정이다.

우리는 지상으로 올라갔고, 발목까지 빠지진 않지만 눅눅하면서 적당히 딱딱한 질감의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이 땅이 진흙 사막이라 불리는 이유다.

가끔 유사도 나타나고 모래 폭풍도 나타난다지만.

제일 신경 쓰이는 건, 체력을 앗아가는 독특한 지형이란 거다.

중력과 더불어 특유의 젖은 모래 같은 땅이 기동력도 반감시킨다.

체력과 기동력 저하, 불멸자에게는 여러모로 안 좋은 환경이다.

이러니까 자원이 꽤 괜찮게 나오는 곳인데도 그레이드가 높지 않은 이계인 거고.

이계의 자원을 가져오는 일이 귀찮을수록 그레이드는 낮아지는 법이니까.

물론, 이 모든 걸 뒤엎을 자원이 나오면 얘기가 달라지지만.

“땅이 참 불편하네요.”

모든 걸 한마디로 함축해서 말하자.

“그런 편이죠. 그래도 익숙해지면…….”

대리님은 말을 끊고 페이스 가드를 내린 채, 초소 쪽을 향해 라이트 불빛을 몇 번 반짝였다.

교대 신호였다.

이후 말을 이었다.

“사실 익숙해져도 불편해요. 어쩌겠어요. 일인데.”

맞는 말이다.

“네.”

대리님과 나만 가끔 대화를 나눴고.

까칠이는 나와 기남이를 번갈아 보다가 앞만 봤고.

기남이는 여전히 그 상태였다.

보통 이계에 넘어오면 다들 감각 크랭크를 조절해야 한다.

이걸 ‘이계 진입 증세’라고 부르기도 한다.

구역질하는 놈, 고산병에 걸린 것처럼 빌빌대는 놈, 몸살이라도 난 듯 끙끙대는 놈, 발열, 오한, 기침까지 증상은 다양하다.

물론 대부분 불멸특수대는 고된 훈련을 받아서, 길어야 12시간 이내에 이 증상을 떨쳐내곤 한다.

적응할 때까지 개인차가 있다지만, 이렇게까지 길게 걸리는 놈도 정말 흔치 않다는 거다.

더구나 만 하루가 걸리는 놈은 거의 없고.

이 새끼 진짜 재능 없는 거 아니야?

무슨 이런 놈이 신입 사원 중 최고의 재능이냐.

내가 두각을 나타내기 전까지는 재능 깡패란 소리 들었던 놈이 이 모양이라니.

“야, 정신 좀 차려.”

문제라면 감각 조절이 채 끝나지도 않은 신입을 근무에 돌릴 정도로 이곳 상황이 열악하다는 거였다.

정호남 과장이 입김이 좀 들어간 것 같기도 하고.

애 좀 쉬게 하지, 뭐 이렇게 빡빡하게 돌리나.

“일찍 왔네?”

상대 근무자가 말했다. 페이스 가드 때문에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목소리가 묵직한 저음의 남자였다.

“조금.”

“으흠.”

남자 교대 근무자는 뒤쪽, 그러니까 나와 기남이 쪽을 눈으로 훑더니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갔고.

중간에서 교대자를 만나 헤어진 우리는 근무 초소까지 이동했다.

시멘트나 벽돌 따위로 만든 초소는 아니었다.

신소재로 만든 둥근 형태의 이글루를 연상케 하는 구조물이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대리가 페이스 가드를 올렸다.

“여기는 산소 공급 시스템이 있으니까 괜찮아요.”

“네.”

외부는 산소가 희박하다.

높은 중력과 산소 부족, 땅의 질감까지.

진짜 활동하기 불편한 땅이다.

내부에는 네 개의 넓은 창이 있었다.

특수한 재질로 만든 유리는 투명해서 바깥을 선명하게 보여 줬다.

이렇게 해서 넷이 각자 자리를 잡고 인베이더 출현을 경계하는 근무, 이게 이곳의 주 업무 중 하나였다.

“자원 채취는 자주 하나요?”

“일주일에 한 번 내지 두 번이요. 매번 성공하는 건 아니고요.”

대리님이 내 말을 받아 줬다.

이 사람, 꽤 친절하다.

외모만 보면 소도 때려잡을 것 같은데, 순한 말투다.

당직 과장도 그렇고 개척팀에는 좋은 사람만 있는 것 같다.

그렇게 한참을 잡담하면서 근무를 서는 중이었다.

“혹시 광익 씨는 여자친구 있어요?”

“……네?”

뜬금없는 물음에 내가 되물었고.

곧 네 개의 시선이 날 향했다.

혼혈 대리님과 여우 까칠의 시선이다.

“없는데요.”

그리 답하자, 두 여자가 모두 조용히 숨을 골랐다.

“나 기억 안 나?”

그제야 까칠이가 물었다.

“안 그래도 물어보고 싶었는데, 우리 어디서 봤냐?”

난 머리가 꽤 좋고 암기력도 탁월한 편인데.

아무래도 기억이 안 난단 말이지.

“머리 나쁜 스컹크.”

기남이가 감각 조절에 헐떡이면서도 날 향해 말했다.

“감각 조절도 못 하는 못난이.”

나도 받아쳐 줬다.

할 말 없는 기남이는 턱 근육에 힘을 줄 뿐이다.

“네가 나한테 강동원 나오는 꿈 꾸라고 했었잖아.”

까칠이가 말한 순간, 몇 가지 기억이 머릿속에 섞였다.

“어, 너.”

동기다. 오티 당시에 내가 기절, 아니 꿀잠 자게 해 준 동기 중 하나.

“꼭 니 꿈 꿔야 해?”

라고 묻기에.

“강동원 꿈꿔라.”

라고 말해 줬었다.

“야, 반갑다.”

“그래. 나도.”

까칠이는 그렇게 말하며 날 향해 몸을 돌렸다. 근무 중에 몸을 돌리지 말라고 당직 과장이 말했던 것 같은데.

까칠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날 마주 보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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