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음, 뭐랄까 재능의 차이?
화림에는 왜 특별한 훈련 환경이 갖춰져 있을까.
단순한 이유다.
그럴 필요가 있으니까.
고중력 훈련, 강풍 속에서 몸의 균형을 잡는 훈련 등 잡다한 게 많았다.
몸을 혹사하기 위한 거로 생각하기 쉽지만, 아니다.
다 쓸 데가 있었다.
화이트홀 너머, 흔히 아더 사이드나 이면 세계라 불리는 곳은 어떤 홀로 들어가냐에 따라 환경이 달라졌다.
그 환경이란 건 크게 네 개로 나눌 수 있었다.
하나, 감각 교란.
이건 경험해 봤다. 축능석을 구하러 갔을 때. 오감을 비롯한 육감이 이물질이 낀 것 같은 느낌이다. 물론 나는 금세 회복했다.
둘, 이상 기후.
폭풍우가 몰아치는 초원.
뜨거운 열기에 몸이 녹아내릴 것 같은 사막.
침을 뱉으면 2초 만에 얼어 버리는 설원.
다섯 걸음만 걸어도 온몸이 축축해지는 밀림.
더 말해서 뭐 하랴.
이런 기상 변화들이 섞여 있는 데가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한파가 몰아치는 사막 같은 곳 말이다.
셋, 중력 변화.
지구의 2배, 또는 3배까지 몸을 짓누르는 압력을 느낄 수 있는 경험이 흔하진 않을 것이다.
이건 돈 받고 관광지로 개발하면 대박 나는 거 아닐까.
넷, 이상 현상.
이건 딱히 꼬집어 말할 게 아니다. 불현듯 일어나는 일이고 예상할 수 있는 종류가 아니니까.
뭐, 붉은 벼락이 치는 땅이라든지, 이해할 수 없는 고중력지대라든지, 칼날 폭풍이 분다든지, 하는 그런 거.
하여간 나도 이론 교육을 통해 아는 건 이게 전부였다.
아더 사이드 경험은 축능석 사건 때 한 번뿐이고.
이게 두 번째 경험이었다.
4번 타자, 아다만티움 정글도, 슬래거 나이프와 헥사곤 쉴드 코트, 알에게 선물 받은 장갑.
그 외 K-2 소총 한 자루, 40발들이 탄창 4개, 글록 17 권총 한 자루와 비상 탄창 하나, 보위 나이프 한 자루, 쓰로잉 나이프 세 자루와 마약 두 종류 등등을 챙겼다.
전투복 위에 불명 특전 조끼를 입으면 이 모든 장비가 조끼에 들어간다. 주머니에 넣은 다음 쑤시고 걸면 끝이다.
어깨에 수통도 하나 있다.
홀 너머의 세계에서는 생존이 제일 중요했다.
그렇다고 화력을 소홀히 할 순 없다.
인베이더가 사는 집에 초인종도 안 누르고 찾아간 셈이니까.
인베이더라 불리는 놈들이 밀입국자를 상대하는 수법은 단순하다.
찢어 죽이고, 씹어 죽이고, 패 죽인다.
죽기 싫으면 우리도 쏴 죽이고 잘라 죽여야 하는 판이다.
그래서 이게 기본 무장이었다.
화이트홀의 위치는 지하 8층.
쌍남 형제와 난 승강기를 타고 내려갔고.
“무장 상태.”
“이상 없습니다. 과장님.”
호남이 물었고, 기남이 답했다.
둘이 형제라면서 더럽게 딱딱한 분위기다.
윙.
승강기 문이 열리는 사이, 난 기남이의 팔뚝을 팔꿈치로 툭 쳤다.
“왜?”
“집에서도 과장님이라고 부르냐?”
기남이는 대답 없이 승강기 밖으로 나갔다.
그 뒤를 내가 따라나섰다.
이런 말 하긴 뭐한데.
우리 기남이, 되게 주눅 들어 있는 것 같다. 내가 할 일 없어서 호남이 형 별명을 물어본 게 아니다.
나 그렇게 이상한 사람 아니다.
그저 기남이 새끼를 보다 보니 마음에 틱틱 걸려서 그렇지.
전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평소의 기남이가 매운맛이라면, 호남이 앞에서의 기남이는 순한맛이었다.
그냥 순한맛도 아니다. 이 정도면 맹한맛이다.
“형 여자친구라도 뺏었냐? 왜 이리 저자세야.”
슬쩍 다가가 귀에 대고 말하려는데, 기남이 고개를 꺾어 피하고는 날 향해 손등을 휘둘렀다.
툭 쳐서 막고 대답을 기다렸다.
“상관하지 마라. 귀에다 바람 불지 말고. 몹시, 매우 불쾌하니까.”
그렇게 말하니까 더 상관하고 싶잖아. 기남아.
형이 오지랖 나라의 18대 국왕이란다.
“아잉, 알려줘.”
애교를 보이자, 기남이 총에 손을 가져갔다.
“장난질 그만하고 따라와.”
호남이 말리지 않았어도, 우리 기남이가 덤비진 않았을 거다.
그동안 그토록 처맞고 변한 게 없다면 이 자식 대가리에는 뇌 대신 우동 사리만 가득한 거겠지.
타박타박 걸어가니, 철저한 두꺼운 금속 문이 보였다.
“소속.”
금속 문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문과 천장, 벽 곳곳에 까만 점이 박혀 있는데, 유심히 보니 전부 카메라였다.
“파견 본부 소속 외부 보안 1팀 과장 정호남.”
“동팀 3급 사원 정기남.”
“동 본부 소속 외부 보안 3팀 1급 사원 유광익.”
신분을 밝히고 얼굴을 확인하자, 문이 열렸다.
안으로 들어가니 또 뚱뚱한 금속 문이 반겼다.
“컨셉이 양파야? 까도 까도 계속 나오는?”
혼잣말을 중얼거리자.
“생각 없는 놈.”
기남이 날 힐난했다.
난 그런 기남의 발을 뒤에서 툭 찼다. 기남이 피하며 고개를 홱 돌렸다.
나랑 눈을 마주한 기남이 속삭였다.
“제발, 조용히 좀 가자.”
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아니, 어깨가 굳어 보여서 긴장이나 풀라고 건 장난이다.
“여기가 어디라고 생각하는 거냐?”
소란에 호남이 뒤를 돌아보고 눈을 부라렸다.
눈에서 레이저가 나올 것 같아서, 고개를 꺾어서 피했다.
“뭐 하는 짓이냐?”
“눈으로 레이저를 쏘시길래.”
우리 정호남 과장님은 굳이 열을 내지 않았다.
내 능력을 의심하면서 뭐라 할 수도 없을 테고.
아무리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순혈주의에 물들었어도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내가 회사 내에서 세운 공적은 만만한 게 아니다.
최단 시간 1급 사원 진급.
이게 내 타이틀이고.
이 외에도 ‘동대문의 구원자’, ‘프로메테우스가 제 편으로 끌어들이고 싶은 불멸특수대원 인기 1위’, ‘화림 내 최고 미녀로 손꼽히는 여자와 썸타는 남자’ 등의 타이틀도 있다.
두 번째 보안 문은 쉽게 열렸다.
이쪽은 내부보안팀 관리였다. 그쪽 직원이 서서 신분을 재차 확인하고 열어 줬다.
“박다람 팀장님은 잘 계시죠?”
지나가는 길에 물으니.
“자주 보다가 얼굴 못 봐서 서운하다고 하시던데요.”
내부보안팀 직원이 수수하게 웃으며 답했다.
내가 말이야, 응? 이쪽 팀장하고도 사이가 아주 깊다고.
같이 사우나는 못 했었어도 같이 쇠질은 한 사이다, 이 말이지.
그 시답잖은 대화가 마지막이었다.
“홀을 통과할 때는 호흡 멈추십시오. 감각 교란이 심하면 구토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당연한 거니까 당황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담당 직원, 나이는 스물 중반쯤의 귀여운 여자가 말했다.
말하며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가 은은한 미소를 보였다.
은근히 부끄러워하는 걸 보니, 새삼 내가 회사 내에서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었다.
난 볼매인가 보다. 1년이 다 돼 가는 시점에서야 인기가 터지는 걸 보니.
“후우우.”
뒤에서 기남이 숨을 내쉬었다. 이 새끼는 왜 이렇게 바짝 붙어 있나.
기남이 놈은 내가 아니라 우리 앞에 있는 ‘문’에 시선을 뺏겼다.
우우우우웅.
홀은 잔잔한 빛을 뿜었다.
긴 타원형이었고 은은한 빛과 함께 표면이 찰랑거렸다.
굳이 한 줄로 표현하자면.
하얀색 물을 가진 호수가 땅과 수직으로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선두, 유광익이 후위.”
정호남이 날 가리켰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먼저 홀 안에 들어가고, 기남이 따라 들어갔다.
나도 숨을 멈춘 채 안으로 발을 들이밀었다.
이전에 들어간 화이트홀은 급으로 따지자면 최하급이었다.
축능석을 제하면 딱히 고가의 자원을 찾지 못했다고 들었다.
나오는 광물, 채취할 수 있는 자원이 많고 아까 말했던 ‘환경’이 만만할수록 홀의 급수는 올라간다.
그리고 화림 내에 있는 화이트홀의 급수는 중급.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수준이다.
나오는 자원은 종류도 꽤 되고 질도 좋지만, 환경이 나쁘다는 평이다.
물론 오기 전에 팬더에게 듣고 열람 권한이 늘어서 공부한 내용이다.
웅.
귀가 떨리고 몸이 붕 떠오르는 착각이 들면 게이트 너머다.
한 번 해 봤다고, 이게 또 익숙한 맛이 있다.
홀은 곧 게이트.
구멍은 문이고, 문이란 넘어서면 새로운 공간을 보여 주는 용도.
탁.
땅에 발을 내디뎠다.
“호흡기 착용.”
호남이 말했다.
아무리 재수 없긴 해도, 그 또한 불멸특수대원. 프로는 프로다.
그렇게 말함과 동시에, 방탄의 페이스 가드를 내려 작동시켰다.
윙.
곧 얼굴 앞이 진공 상태가 되고 조끼 뒤쪽에 찬 손바닥만 한 압축 산소통을 꺼내 헬멧 옆에 붙였다.
과학의 진보는 이런 것도 가능케 하는 법이다.
대형 산소통 대신, 이거 하나면 48시간은 숨 쉬는 데 문제없다.
시계가 열리지 않았다. 30cm 앞도 보이지 않는 짙은 먼지 폭풍 속이었다.
후아아앙.
방심하면 몸이 붕 떨어질 것 같은 강풍이었다.
“자세 낮춰.”
난 호남이 말하기 전에 낮췄고.
기남이는 그 말과 동시에 무릎과 허리를 굽혔다.
눈앞이 안 보이고, 바람 때문에 청각에 의지해 주변을 읽기도 어려웠다.
산소통에 의지하고 있으니, 당연히 후각도 아웃.
답답하네.
이전에도 겪었던 감각 교란도 섞였다.
물론 난 1분도 되지 않아 감각의 크랭크를 조절했다.
이 정도야 뭐.
오감을 조정하니, 몸을 짓누르는 압력이 달라진 걸 느낄 수 있었다.
중력이 지구보다 더 높았다.
체감으로는 대략 1.2배.
약간의 차이지만, 평소보다 몸이 무겁게 느껴졌다.
거기에 장비의 무게가 더해지니, 몸이 땅으로 끌려 내려가는 기분이 든다.
그러니까, 나 말고 기남이가 그럴 것이다.
후아아앙.
계속될 것 같았던 바람은 금세 멎었다.
휘잉.
사람을 통째로 뽑아서 날릴 것 같은 강풍이 사라진 자리에, 희끄무레한 그림자가 보였다.
보호색으로 전신을 두른 사람이었다. 헬멧도 전투복도 전부 황갈색이다.
내가 디딘 곳의 땅은 무르고 짙은 황갈빛이었다. 모래도 아니고 진흙도 아닌, 그 중간쯤 되는 진흙 사막이라는 지형이었다.
지구에는 없는 재질의 땅이란 소리다.
“훌륭한 대응이다. 정호남 과장.”
“정호남 과장 외 2명 현장 도착했습니다.”
정호남은 상대를 이미 알고 있었다.
나도 목소리를 들으니, 누군지 알겠고.
이 양반이 왜 여기 있나.
“반갑다. 제군들. 난 김동철이다.”
총괄 본부장이자, 사내 이사, 김동철이다.
나한테 소고기를 선물해 준 사람이기도 했다.
나와 기남이 각각 3급과 1급 사원을 복창했다. 기남이 안색이 보기 드물게 나빠 보였다.
아직 감각 조절이 끝나지 않은 탓이리라.
“전원 쉘터로 이동한다.”
김동철이 말하고 몸을 돌렸다.
그제야 주변 전경이 보였다.
넓다.
광활하다는 말은 이런 곳에 어울리겠지.
시계가 트이지 않아 지평선 따위는 보이지 않지만, 오감과 더불어 육감으로 알 수 있다.
이곳은 참으로 드넓은 땅이다.
날 기준으로 오른쪽에는 우리를 스쳐 간 폭풍이 지나쳤고.
왼쪽에는 꽈릉- 하고 붉은 벼락이 치는 중이다.
화림 내에 있는 화이트홀 너머 세계의 공식 명칭은 ‘진흙 사막’. 번개와 폭풍우가 치는 독특한 질감의 땅을 가진 사막이었다.
“가지.”
김동철이 말하고 걸었다.
그가 향하는 곳은 지하였다. 위로는 폭풍우가 몰아친다.
그러면 안전지대를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위가 위험하면, 밑으로 가면 된다.
불멸특수대는 이곳에 지하 시설을 만들었다.
땅을 비스듬히 파고, 그 위로 철제 구조물을 올렸다.
위로 비스듬히 휘어진 스키대 같은 구조물이다.
바람의 피해를 막기 위한 거로 보였다.
그 밑이 입구였다.
단단한 시멘트 계단이 우리를 반겼다.
“대단하지 않나?”
걸으며 김동철 이사가 말했다.
날 보며 한 말이다.
“네. 대단하군요.”
솔직히 감탄했다.
아더 사이드에 올 때는 몸에 지닌 물건이 아니면 들여올 수 없다.
정확히는 힘으로 들어 올릴 수 있는 것만 가져올 수 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건축물이 가능할까.
답은 조립이다.
하나씩 나르면 된다.
부품 하나하나를 피라미드 쌓는 인부의 마음으로 가져와 쌓고 조립해서 만든 거다.
“여기가 베이스다. 이곳에는 연구원 스무 명과 개척팀 스무 명이 머무르지.”
빠바바바빠밤.
러브하우스에서 집을 소개하는 것처럼, 이사는 하나하나 친절하게 설명해 줬다.
“여긴 간이 연구실, 간단한 실험만 하는 곳이고 그곳은 식당이다. 거긴 휴게실, 거긴 화장실이다. 급한가? 급하면 다녀오고.”
“아닙니다.”
하수 처리, 오물 처리 등 기본적인 의식주를 위한 모든 것을 갖춘 곳이다.
“진짜 대단하네요.”
이걸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을까.
이 모든 것이, 이 땅에 있는 자원을 채취하기 위한 거다.
“당장 쉬면 좋겠지만, 손이 부족하다. 2시간 휴식하고 곧바로 경계 근무에 돌입한다.”
“네, 알겠습니다.”
대표로 정호남이 답했다.
그 말에, 기남이는 더욱 속이 뒤집힌 표정으로 변했다.
친구야, 속이 많이 안 좋니?
“감각 조절 끝내고 와라. 정기남.”
호남이가 말했다.
“알겠습니다.”
기남이가 딱딱한 어조로 답했다.
형제가 아니라, 사이 안 좋은 상사와 부하 직원 같다.
딱한 기남이 같으니라고.
기남이와 난 같은 방에 배정됐다.
적당히 깨끗하고 흰 이불이 있는 침대 두 개. 넓지도 좁지도 않았다.
아무리 자원을 가져와 조립해도 지구만큼 편안한 환경은 무리겠지.
그래도, 습도로 괴롭진 않았다.
건조하면 건조했지, 눅눅하지는 않았으니까.
“넌, 왜?”
방에 들어오자마자 기남이가 물었다.
“뭐?”
감각 조절?
눈으로 묻고 눈으로 답을 들었다.
“음, 뭐랄까. 재능의 차이?”
툭 하고 내뱉은 말에.
기남이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