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 건물을 세웠다.
불멸교도 색출 때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그 일 이후로 사장의 압력이 강해졌다.
반대로 임원진의 의견은 약해졌고.
강태환 전무는 생각했다.
이 모든 일은 어디서 시작됐는가.
사장이 꾸민 음모?
그럴 리가.
모든 일은 작은 시발점에서 시작됐다.
유광익.
김동철 이사가 신입 회유에 실패했을 때는 그러려니 했다.
능력이 뛰어나다고 오래 살아남는 건 아니니까.
그런데 그 신입이 일을 제대로 터트렸다.
‘마윤, 마윤, 마윤.’
그 새끼가 불멸교도였을 줄은 누가 알았겠나.
덕분에 남은 사람만 곤란하게 됐다.
강태환 전무가 손안에서 구슬을 굴렸다.
따가락, 따가락.
구슬 맞물리는 소리가 전무실에 울렸다.
뚝.
소리가 멎음과 동시에 강태환 전무가 입을 열었다.
“김 이사님.”
“네.”
김동철이 답했다. 책상 옆에 서서 두 손을 허리 옆에 붙인 모양새가 벌 받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것도 벌써 30분째였다.
강태환은 사람을 불러 놓고 생각을 정리한 뒤 입을 여는 고약한 버릇을 가졌다.
“그 친구, 데려옵시다.”
이름을 말하지 않아도 안다.
지금 사내에서 제일 유명한 인물이니까.
“착수하겠습니다.”
“좋아요. 나가 봐요.”
전무실을 나온 김동철은 생각했다.
‘유광익, 유광익.’
이제는 고작 신입 하나라고 볼 수 없었다.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평가해도 그 신입이 한 공적은 만만치 않았다.
거기에 NS, 규격 외 등급을 받은 초특급 불멸자다.
탐나지 않을 리 없었다.
인재를 품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
김동철은 일단 유광익이란 친구가 뭘 원하는지 알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려면 같이 시간을 보내야 한다. 되도록 다른 사람 눈을 피해서.
특히 사장의 눈을 피해야 했다.
머릿속으로 시나리오를 그렸고, 곧 스마트폰의 통화 버튼을 눌렀다.
* * *
시발 팀장만 아니었으면 내 회사 생활이 더 수월했을까?
모른다. 그래도 배운 건 많으니까 아쉬운 건 없다고 생각하곤 한다.
특히나 이런 순간이 찾아오면, 난 시발 팀장에게 일말의 감사함을 느끼기도 했다.
난 네가 싫다.
정호남 과장 새끼의 눈빛에서 난 여실한 감정을 느꼈다.
애초에 숨길 생각도 없어 보였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이 자리가 불편하진 않았다.
이런 눈빛 정도로 날 가시방석에 앉히려 했다면, 그건 오산이었다.
내 입사 첫날을 떠올려 보라.
“시발.”
욕을 뱉는 팀장.
이마에 핏대를 세우고 인사과에 항의하는 팬더.
얼음덩이 그 자체인 사수까지.
솔직히 나니까 버텼지.
다른 동기가 우리 팀 왔으면 탈탈 털려서 나갔을 거다.
텃세가 장난 아니었다.
그러니 이 정도 눈빛은 초롱초롱한 강아지의 눈과 다를 바 없었다.
기남의 호적 메이트가 날 바라본다. 난 그 눈빛을 음미하며 회의실에 비치된 초코바를 까먹었다.
우적.
트믹스. 카라멜과 비스킷, 초콜릿의 조합은 언제나 진리다.
맛나다. 과자 부스러기가 내 앞섬에 조금 떨어졌다.
그걸 본 기남이 미간을 찌푸렸고.
“나가.”
호남은 브리핑을 시작하기도 전에 날 내보내려 했다.
“눼?”
대답하다가 입에 든 부산물이 조금 튀었다. 툭 하고 반쯤 녹은 초콜릿 조각이 호남 과장 발치에 떨어졌다.
고의는 아니었다.
“나가라고.”
호남이가 말하며 품에서 칼을 뽑았다. 아니, 이 새끼는 진짜 칼을 쓸 것 같은데.
팀장이 반 농담 반 진담이라면, 이 새끼는 지금 2,000% 진심을 담았다.
저 새끼는 진심으로 칼질을 하려 했다.
그것도 같은 회사 동료이자 후임에게 말이다.
진심 칼날은 진심 펀치보다 위험하기에 밖으로 튀어 나갔다.
상사가 지랄한다고 번번이 때려눕힐 순 없는 노릇이니까.
나가면서 입에 있는 걸 꿀꺽 삼키는데.
“브리핑 간다며? 유광익이 넌 첫날부터 농땡이질이냐?”
지나가던 시발 팀장이 말했다.
이 양반은 또 어딜 가나.
“아뇨, 정호남 과장님이 칼을 뽑고 찌를 것 같아서 잠깐 대피한 건데요.”
“칼? 왜?”
“그건 칼 뽑은 사람이 알지 않을까요?”
“나와.”
꽝.
우리 팀장에게 본받을 점이 몇 개 있는데 그중 하나가 이거다.
아무리 욕해도 제 팀원을 까면 가차 없다는 거.
문을 박차고 들어간 중봉이 자신을 보는 호남과 기남을 마주했다.
“우리 기남이, 오랜만이고.”
“3급 사원 정기남, 안녕하십니까.”
“정호남이, 넌 주둥이를 꿰맸냐?”
“과장 정호남, 업무 중입니다. 무슨 일입니까?”
까칠한 정호남이 팀장을 노려본다. 팀장은 상황 파악을 끝낸 뒤, 짧게 숨을 들이켜고 단숨에 말을 뱉었다.
“야, 칼로는 안 돼. 묶어. 주둥이에는 재갈 물리고. 그래야 말 들을까 말까 한다. 저 새끼 재생력 존나 빨라. 자르는 건 비추천.”
팀장은 그렇게 말하곤, 내 옷깃을 잡아서 날 다시 회의실에 넣고 나갔다.
쿵.
내 뒤에서 문이 닫혔다.
다시 열고 나가고 싶다.
난 날 지켜보는 네 개의 눈깔을 마주했다.
호남, 기남, 쌍남 형제다.
멀뚱히 선 채로 둘을 보며 미소를 보였다.
웃는 얼굴에 침 뱉으면 개새끼.
“하하. 저 묶이는 거 별로 안 좋아합니다. 그런 취향 아니에요.”
그리고 팀장 개새끼.
하여간 사람이 기대를 하면 지랄하는 게 아주 버릇이야. 종족 특성이지.
이 일은 반드시 복수할 것이다.
머쓱해서 뒤통수를 긁고 웃으니, 정호남이 입을 열었다.
그 표정이 몹시 신기했다.
볼이 안 움직이고 입술만 움직여 말하는 데 이 정도면 기인 아니냐.
“시키지 않은 일은 하지 마라. 이 작전 이후 정보 열람 권한이 열리므로 각자 정보를 파악해라. 이상.”
그 말을 끝으로 정호남 과장이 회의실을 나갔다.
……이게 끝?
이걸 브리핑이라고 한 거냐?
“야, 룸메이트, 동기, 기남아.”
“미친 스컹크 새끼.”
뭐 이 새끼야? 스컹크?
내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다시금 피를 토하는 지각생이 되고 싶은 거냐?
요새 나 피해서 조기 출근하던데.
난 뭐 일찍 일어날 줄 모르나.
“너희 형.”
“어설프게 입 놀리면 그 주둥이 찢는다.”
그 와중에 형제애는 넘치네.
내가 보기에는 짝사랑 같다만.
사실 사랑도 아니지.
“가문을 모욕하지 마라.”
기남이 말을 덧붙였다.
모욕할 생각은 없다. 그저 처음 기남의 형, 그러니까 정호남 대리의 이름을 들었을 때부터 궁금했던 걸 물었다.
“너희 형…….”
기남이 눈을 부라렸다.
“어릴 때 별명 호남평야 맞지?”
내 물음에 기남은 답하지 않았다.
대신 아까 호남이가 본 것과 비슷한 눈으로 날 3초간 바라보고 밖으로 나설 뿐.
회의실 안이 쓸쓸했다.
나만 남았다.
근데 별명 호남평야 아니었을까?
이름 듣자마자 떠올랐는데 아니라고? 진짜?
궁금했지만, 더 물으면 기남이가 거품 물고 덤빌 것 같았고, 호남평야 과장에게 물으면 날 꽁꽁 묶은 다음에 고문할 것 같았다.
나이를 먹으면 호기심도 길들일 줄 알아야 하는 법.
난 궁금증을 참고 가슴 안에 잠시 눌러 놨다.
“근데 진짜 이러고 가라고?”
이제까지 임무를 꽤 맡았다.
그 다양한 임무 중에 이 정도로 불성실한 브리핑은 처음이었다.
이동하는 와중에 정보를 전달받은 적도 있지만, 이건 뭐 새로운 게임이 나왔는데 설명서도 없이, 시작하는 버튼도 모른 채로 하는 기분이다.
하물며 지하로 간다며?
그게 뭔데?
설명 한번 더럽게 안 해 주네.
뭐, 괜찮다.
나에게는 호남이 대신 팬더라는 든든한 지식인이 있다.
권한도 열린다고 했으니.
자리로 돌아와 팬더 대리 옆으로 의자를 굴려 붙였다.
“대리님, 대리님, 나의 대리님.”
“왜?”
“지하로 파견 임무가 떨어졌는데 지하에 뭐 있어요?”
“……지하?”
“네.”
“무기고 청소?”
“무기고 청소에 정호남 과장이 나설 것 같진 않은데요.”
“1팀 에이스 정 과장님?”
“네.”
“너랑 둘이?”
“아뇨. 기남이도 가요.”
팬더 대리는 날 빤히 보다가 입을 열었다.
“너 권한 열렸냐?”
그제야 인트라넷에 들어가 확인하니 1급 기밀 정보 허가가 떨어졌다.
그걸 보더니 팬더 대리가 입을 털었다.
“화이트홀도 다 같은 화이트홀이 아니거든.”
“네, 압니다.”
입사 초반에 나한테 외우라고 한 것 중에는 그런 내용도 있었다.
따로 이론 교육도 받았고.
“이전에 간 화이트홀은 사실 협회가 반, 국가가 반 소유한 곳이란 곳도 알지?”
사이오닉 협회가 관리하지만, 국군이 주둔하기도 하는 곳이니, 그렇다고 들었다.
“네, 뭐. 대강.”
“그럼 높은 등급의 화이트홀이 있다면 사람이 막 드나들 게 놔둘까? 병력을 주둔시키는 것만으로 해결이 될까?”
안 되겠지. 몰래 홀 너머를 탐험하는 미친 프리랜서들도 있다니까.
허공에 둥둥 떠 있는 구멍을 완벽하게 통제하려면 그만한 인프라가…….
그렇게 말하다가, 깨달았다.
“지하에요?”
“응. 지하에.”
아더 사이드는 현대의 보고寶庫다.
화이트홀은 그 보고에 들어가는 입구였으니, 그걸 지키는 건 매우 중요하다.
특히나 등급이 높은 홀은 철저하게 관리해야 한다.
병력 주둔? 그건 완벽할 순 없지.
화이트홀은 아더 사이드로 넘어가는 통로다.
이면 세계의 자원을 채취하려면 화이트홀이 필요하다.
돈과 권력을 가진 올드포스와 엑스큐라시는 쪼잔하게 병력 따위를 주둔시키지 않았다.
그들은 건물을 세웠다.
그것도 제 사람들로 가득한 건물을.
그러니까 올드포스 한국지부, 불멸특수대 중 하나인 화림정보통신은 화이트홀 위에 세워졌다.
이게 바로 올드포스의 스케일이다.
아무리 미친놈이 발에 차일 듯이 많은 특수종 세상이라 해도, 어지간히 미치지 않고서야 불멸특수대 지부를 들이받진 않는다.
고로 이 화이트홀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에 있는 법이다.
올드포스와 엑스큐라시가 보유한 고등급 화이트홀이 전부 그럴 것이다.
난 기밀 정보 권한을 이용해 사내 정보를 검색했다.
건물 내부 평면도와 각 층의 정보가 보인다.
지하 8층, 화이트홀이 열린 곳이었다.
“2년 차쯤 되면 따로 교육받는데, 이번에는 좀 빠르네.”
팬더 대리가 말을 덧붙였다.
당연하게도 화림 내에서도 마이닝 팀이 존재한다.
아더 사이드의 이곳저곳을 탐험하고 안전 구역을 넓히는 개척탐사팀.
그리고 안전 구역에서 이것저것 자원을 채취하는 자원채취팀, 일명 마이닝팀이 있다.
최초 발견한 아더 사이드 자원은 나풀거리는 철이었다.
그때 당시에는 섬유철 따위로 불렀단다.
뭐, 최초로 발견했으니 원소 기호도 붙일 수 없고 당황스럽긴 했겠지.
인류는 그 섬유철을 연구하고 분석해서 케블라 섬유에 섞었다.
그걸 토대로 만든 게, 현재 보급되는 방검방탄복의 시초다.
그래서 보통 이면의 세계, 아더 사이드 채취팀이 하는 일을 마이닝(Mining)이라고 한다.
채굴, 채광이란 단어가 고유 명사가 된 셈이다.
여기서 내가 할 일은.
요새 한창 바빠서 인력난에 빠진 마이닝팀 경호가 되겠지.
호남, 기남 쌍남 형제와 함께 말이다.
“조심해라. 거기서 길 잃어버리면 미아로 안 끝난다.”
팬더 대리가 경고했고, 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뭐, 별일이야 있을까.
난 팬더 대리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물었다.
“정호남 과장님 있죠.”
“별명이 호남평야냐고?”
“어?”
“기남이한테 그거 물어봤다며? 아까 본부장님한테 메신저 왔다. 정신 병력이 있는지도 물어보시더라.”
팬더 대리가 담담하게 말했다.
“없습니다.”
“나도 그렇게 믿어. 하지만 병원은 꼭 가 봐라. 이게 또 다른 사람 눈으로 보면 좀 더 잘 보이고 그런 거잖아.”
“대리님도 절 그렇게 보는 겁니까?”
그럼 팀장은? 저 양반이 제일 정상이 아니지.
성격이 아주 개차반이잖아.
“농담이야. 하여간 그게 궁금했어?”
“네, 뭐, 조금?”
사실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다.
“정호남 과장님하고 기남이하고 형제라는데 사이가 안 좋아 보여서요.”
“……의외네, 기남이 걱정?”
“걱정까진 아니고.”
그래도 한집에서 매일 얼굴 보며 사는 사이인데, 같이 일도 해야 하고.
“그 집안이 좀 그렇다고 하더라.”
가정 교육이 문제란 소리인가.
아무리 나라도 이건 못 물어보겠다.
기남이한테 ‘너 가정 교육을 어떻게 받았냐?’라고 묻는 순간, 이건 뭐 진지하게 싸우자는 소리 같잖아.
거, 자식 되게 신경 쓰이네.
형제끼리 알아서 할 일이긴 하다. 내가 알 바는 아니었다.
일할 때 불편하지만 않으면 그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