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규격 외 혈통 천재-108화 (108/488)

108. 고백을 들었다.

임무가 끝났는데도 쉬는 시간 따윈 없었다.

“야, 뛰지 마.”

뛰는 놈 머리통에 캔 음료를 던졌더니, 머리통에 맞고 피가 튀었다.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절도를 일삼는 가속 능력자였다.

“내가 바로 제일고 류 선수다. 새꺄.”

그 뒤에는 테러범으로 추정되는 범인 색출도 있었다.

본래라면 며칠간 심문도 필요하고, 증거도 찾아야 했는데.

난 더 간단한 방법을 선호했다.

사수와 둘이 나선 길에서 용의자로 추정되는 다섯을 두고 물었다.

“범인이야?”

그리 물으며, 기남이한테 훔쳐 온 기예를 발동.

감각을 집중했다.

흐르는 땀, 손짓, 눈깔이 굴러가는 방향, 입꼬리가 흔들리는 정도, 모든 걸 눈에 담는다.

화림에서 받은 훈련 중에는 표정을 보고 상대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도 있었다.

물론 모든 게 정답일 수는 없다.

그러므로 여기에 내 직감을 투자하고.

“아닌데요.”

식은땀을 흘리며 부인하는 친구.

“아닙니다.”

단호히 고개를 젓는 친구.

“당신들 누구야, 나한테 왜 이래.”

겁먹은 친구.

“내가 누군 줄 알아? 우리 아빠가 누군 줄 아냐고!”

아빠 자랑하는 친구.

“당신들 누구야?”

경계심을 보이는 친구.

증거가 없을 때는 제압하면 안 된다. 그랬다가 영상이라도 찍히면 9시 뉴스에 출현하고 무튜브에 출현하고, 각종 SNS에 나와 스타가 될 수 있다.

뭐, 회사에서 알아서 막겠지만, 큰 징계를 피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지.

그럼 증거가 필요한데, 그걸 하나하나 찾자니 시간 낭비가 아닌가 싶다.

증거 대신 특정한 범인의 증언이면 충분하지 않나.

“잠시만요.”

난 다섯을 다시 관찰하고.

한 놈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너다. 너로 정했다.”

“뭘?”

놈이 황당해하며 되물었지만, 난 놈의 어깨에 쥔 손에 힘을 주고 말했다.

“얘기 좀 하자고.”

“당신들 뭐야.”

뒤에서 경계심을 보이는 친구의 목소리가 우릴 잡았다.

난 품에서 요원을 증명하는 표식, 그러니까 ‘FBI입니다.’ 하면서 꺼내는 배지를 보여 줬다.

“불특대.”

“아, 불특대.”

경계심을 보이던 친구가 수긍했다.

난 그를 두고 잡은 친구에게 어깨동무를 한 채로 물었다.

“너지?”

프로메테우스의 끄나풀.

단호히 고개를 젓는 친구다.

사수는 묵묵히 용의자를 가운데에 두고 반대편에 서서 팔짱을 낀 채, 내가 하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

“뭘 말하는 겁니까. 불특대라고 이렇게 사람을 막…….”

똑.

사람을 과격하게 두들겨 패면 문제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수준에서 제압이라면 허용 범위 안이다.

쉽게 말하면, 안 걸리면 된다는 거다.

아, 이거 좀 위험한데.

나 어느새 팀장을 닮아가나.

그건 최악인데.

난 용의자 놈의 턱뼈를 손으로 잡아서 뺐다.

신체 전반에 탁월한 지식을 갖춘 불멸자가 아니면 할 수 없는 묘기다.

이게 다 내 몸으로 이것도 해 보고 저것도 해 보면서 익힌 기예다.

“우어억.”

턱뼈가 빠진 놈이 침을 줄줄 흘렸다.

“더러워, 자식아.”

그렇게 말하며 왼 주먹으로 턱을 툭 하고 때려, 다시 교합을 맞춰 줬다.

놈이 말하기 전에 내가 먼저 말했다.

“네가 진짜 억울하면 나중에 신고해. 근데 아니야. 너 맞거든. 우리가 끄나풀 하나 죽이자고 이 난리를 치는 걸까? 불특대가 그렇게 할 일이 없어 보여? 아니잖아. 내가 원하는 건 네 위라고. 그러니까 순순히 털고 얌전히 국밥 처먹으면서 감방 가자.”

난 학창 시절부터 말로 상대를 제압하는 게 익숙했다.

처음 변신족으로 각성했을 때, 힘 조절을 못 해서 여럿이 천국의 문을 두드리게 했다.

당연히 문제가 생겼고, 어머니가 학교에 왔다.

그 이후로 무조건 주먹을 쓰는 게 정답이 아니란 걸 알았다.

매번 어머니를 학교에 부를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올 때마다 어머니와 링에서 대화하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진짜다.

그렇다고 깝치는 애들 그냥 놔둘 순 없어서 입으로 해결하기도 했다.

“어쩔래?”

물었다.

용의자는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더니 입을 열었다.

“저는 진짜, 아는 것도 별로 없습니다.”

그 말에 난 사수를 바라봤고.

“수고했어.”

사수가 한마디를 뱉은 뒤, 용의자 놈의 종아리에 로우킥을 날렸다.

콰직!

“악!”

놈이 비명을 내지르며 쓰러졌다.

그 위에서 사수는 묵묵히 제 할 일을 했다.

“현 시간부로 테러 단체 소속 테러범으로 간주, 시민권 박탈한다.”

이 말이 얼마나 무서운 말이냐면.

모든 시민은 나라의 보호를 받는다. 그 권리를 박탈한다는 거란 말이고.

곧 ‘너는 이제 나라의 보호를 못 받습니다.’라는 말이다.

“에?”

맞은 놈이 눈물 콧물을 쏟아 내다가 날 봤다.

날 본다고 뭐 달라지냐.

“사수, 나 다른 데 지원 갈게요.”

“바쁘네.”

“이게 다 남명진 그 새, 사장님 덕분이죠.”

말을 아꼈다.

그리고 또 뛰었다.

요새 일이 많다. 블랙홀의 출현 빈도도 높아지고 그 틈을 노려 활동하는 놈들도 많고.

하물며 소매치기나 잡범 비율도 늘었다고 하더라.

투다다다!

서울 시내에서 가장 빠른 이동 수단은 무엇인가.

헬기를 타고 다니면 좋겠지만, 내가 갑부도 아니고 어떻게 매번 헬기를 타겠나.

헬기 택시는 그래서 말이 안 된다니까.

그거 가성비가 너무 쓰레기잖아.

그래서 택한 게 이거다.

스쿠터.

적당히 빠르고, 골목길도 잘 달린다.

여기에 방탄 헬멧 쓰고 그 위에 증강 현실 내비게이션을 작동하면 금세 목적지에 당도할 수 있었다.

“팀장님한테 항의 좀 해 주십쇼. 이러다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하겠어요.”

그렇게 말하고 오른 손목을 당겼다.

부앙.

스쿠터 엔진이 내 부름에 답했다.

이래서 바이크는 인생의 동반자라고 하는 거다.

엔진의 떨림이 나와 함께했다.

“스쿠터랑 교감하니?”

뒤에서 사수의 물음이 들렸다.

“어떻게 아셨지.”

“……진짜 교감한다고?”

“농담입니다.”

한때 실적이 없어서 난감했지만, 요새는 실적이 넘쳐흐른다.

사수는 용의자의 머리끄덩이를 잡고 끌고 갔다.

사수는 테러 단체를 증오하고 싫어하기에 테러범을 미워한다.

미안하다. 용의자야.

그래도 잘못은 네가 했다.

저놈 겉으로는 순진한 척하지만, 언택트 경보 재밍 기계로 문제를 일으켰다.

죽은 사람은 없었지만, 다친 사람은 수십이었다.

나온 인베이더가 바운스라 다행이었다.

살상력이 있는 인베이더였다면 대단위 피해가 발생했을 거다.

이 말인즉슨, 지금 사수에게 끌려가는 저 친구가 빌어먹을 새끼라는 소리다.

뒈져도 할 말이 없는 놈이고.

스쿠터를 타자, 통신기에서 팬더 대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웨이브 발생했다.”

이번에는 인베이더 섬멸 작전 지원이었다.

* * *

웨에에엥!

언택트 가드의 경보음이 귀를 때린다.

“일레븐 앤 낫씽, 웨이브, 언택트 가드 경보 발동 중.”

넘버링 11의 인베이더가 몰려나온다는 의미의 작전 용어였다.

“많네요.”

외부 보안 1팀 대리가 임무 책임자고 난 지원 병력이다.

그 옆에 서서 말하니.

“사이오닉 협회에서 염력 부대가 합류한다니까 우리는 보조만 맞추면 될 것 같네요. 광익 씨.”

분석팀 강희모 대리님이 강아지라면, 이쪽 대리님은 고양이를 닮았다. 큰 눈과 야무진 입매가 인상적이었다.

웨이브 형태는 인베이더가 몰려나온다. 넘버링 일레븐은 고블린.

고블린은 실제 판타지 월드의 몬스터와 비슷한 인베이더로.

교활하고 몸놀림이 빠르다.

그로 인해 생긴 일 중에 꽤 큰 사고도 있었다.

고블린 참사, 일반인은 잘 모르지만, 특수종 세계에서는 꽤 유명한 얘기다.

과거, 어스 블랙홀이 터진 뒤에 게이트 입구를 원형으로 포위한 채로 대기하는 중이었다.

특수종 지원이 오기 직전, ES(급격하고 위험한 상황, 작전 용어)가 터졌고.

고블린이 튀어나오기 시작.

포위한 병력은 화력을 쏟아부었다.

상황은 금세 정리되는 거로 보였으나, 그렇지 않았다.

교활함이라는 게 무엇인지, 여실히 보여 준 사건이었다.

사체와 사체 사이.

제 동료의 피와 사체를 덮은 놈들이 죽은 척을 했고.

특수종이 도착하기 직전, 일반 무장 병력은 총기 여섯 정과 나이프, 도검, 창 등의 무기를 빼앗겼다.

고블린은 약하다.

일대일이라면 훈련받은 병사 하나가 소총 사격만으로 제압할 수 있다.

발도 그리 빠르지 않고, 초인적인 움직임도 없다.

다만, 놈들의 손에 무기가 쥐어지면 얘기가 달라진다.

놈들은 놀라운 수준의 손재주를 가졌다.

총기의 사용법을 알아내는 것도 금방이었고, 칼을 다루는 것도 능숙했다.

순식간에 익힌 놈들은 일반 병력을 학살 수준으로 몰아붙였고.

그 뒤에 도착한 불멸특수대가 제압했다고 들었다.

“광익 씨?”

“네? 부르셨어요?”

“같이 일하게 돼서 좋네요.”

고양이상 대리가 웃으며 말했다.

호감형이네.

“저도요.”

짧게 대화하는 사이.

끼이익!

고블린의 울음이 터졌다.

“얼리어, 21분 빠릅니다!”

그동안 인류는 어스 블랙홀을 연구하고 파악했지만, 여전히 모든 걸 알 수는 없었다. 아무리 탐지기가 발달해도 모든 경우를 알아낼 수는 없는 법이다.

이번 경우도 마찬가지다.

얼리어, 예상보다 일찍 홀이 열렸다.

“염력 부대는 아직이죠?”

“쓰읍, 고생 좀 해야겠는데요.”

고양이상 대리가 소총을 들고 앞으로 나갔다.

이곳은 상봉역 근처에 있는 4층 건물 앞.

1층에 있는 기사 식당 입구에 열린 홀이다.

이곳에 지원 온 요원은 넷.

고양이상 대리와 난 우측을, 나머지 둘은 좌측에 자리를 잡았다.

웨이브 홀에서 나오는 고블린.

포화로 시체가 쌓이면 곤란하다.

하나하나 살았는지 죽었는지 확인해야 하거나, 이곳에 폭탄을 터트려 깡그리 죽여 버려야 하지만, 그럴 수가 있나.

도심 한복판에서 폭탄을 터트리는 건 미친 짓이다.

그렇게 할 거면 특수종이 왜 필요하겠나.

“먼저 갑니다.”

4번 타자와 슬러그 나이프, 허리춤에 찬 아다만티움 칼날 정글도, 왕자가 선물해 준 장갑과 박병준 박사를 구할 때 선물 받은 코트.

전신 무장 상태였다.

“어? 광익 씨? 그렇게 막 가면 안 돼.”

뒤에서 고양이 대리님이 말렸지만, 집중포화보다 이게 낫다는 판단이다.

왼발을 앞으로 내밀고, 정글도를 뽑는다.

후앙.

무게감이 실린 일격이 홀 바로 앞에 튀어나온 고블린 세 마리를 그대로 잘랐다.

시원한 일격이다. 첫 일격을 제외한 내 움직임은 작고 섬세했다.

칼에 잘린 고블린 팔뚝이 허공으로 날았고, 동료의 시신 뒤에 숨어 있다가 버티던 놈은 대가리를 정글도 끝으로 찍어서 가르고 부쉈다.

호흡을 고르고 움직임은 더 섬세하게.

힘이 아니라 기술이다.

이전 임무를 끝내고 돌아서는 길에서 팀장은 말했다.

“불멸자는 힘이 아니라 기술로 싸운다. 힘자랑하다간 골로 간다.”

그 말에 뜨끔했다.

뭐야, 내 안에 있는 변신의 피를 알아봤나?

이런 생각도 들었다.

모른다. 팀장은 속을 모를 인물 중 2위다.

1위는 남명진 사장이고.

하여간, 그 말에 난 느끼는 게 있었다.

우습게도 팀장의 한마디는 내 안의 무언가를 깨우는 계기가 됐다.

힘이 아니라 기술.

난 그렇게 했다.

고블린의 손톱은 코트로 막고, 머리는 나이프로 긋는다. 필요한 건 급소다.

힘으로 다 부수는 게 아니다.

모가지를 긋고 따는 데 필요한 건 변신족의 괴력이 아니라, 적당히 훈련한 불멸족의 근력이면 충분했다.

난 그렇게 했다.

생각보다는 즐거웠다. 피하고 벤다.

왕자가 선물한 장갑은 코트보다 상급의 마법이 걸려 있었다.

그걸 발동하지 않아도 재질 자체가 훌륭했고.

미처 피하지 못한 고블린의 손톱을 손바닥으로 막기 충분했다.

막고 손바닥으로 밀어 빈틈이 생기는 고블린의 머리를 팔꿈치로 때렸다.

웅!

충격에 맞춰 육각 결계가 코트 위를 덮는다. 좋은 방어구는 잘 쓰면 무기도 된다.

팔꿈치에 맞은 고블린의 목이 옆으로 꺾였고, 가죽이 쭉 늘어나서 머리가 덜렁거렸다.

가진 장비를 활용하고 섬세한 전투를 이어 간다.

폭풍처럼 몰아치지 않아도 죽이는 데는 문제가 없다.

4번 타자는 필요한 순간에 방패 및 둔기로 썼다.

난 홀 앞에서 고블린을 학살했으며.

협회의 염력 부대가 도착했을 때, 내가 죽인 고블린은 서른 마리가 넘었다.

“혼자서 다 죽인 겁니까? 이걸?”

황당함을 감추지 못한 염력 부대장의 말이 들렸다.

“저 복귀합니다.”

그렇게만 말하고 몸을 돌렸다.

쉬고 싶었다.

그대로 부대로 복귀, 샤워하고 다시 자리에 가서 앉으니.

회사가 조용하다.

요새 외부 보안팀이 바쁘기도 하고, 퇴근 시간이 다 되기도 했다.

난 묵묵히 뒤를 돌아봤다.

팬더 대리는 보고서 쓰는 데 여념이 없었다.

일이 많아지면 서류 정리할 일도 많은 법이다.

“고생했다.”

팬더 대리가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그 뒤로, 책상에 발을 올리고 얼굴에 서류철을 덮은 팀장이 보였다.

그걸 보는데 순간 호기심이 들었다.

팀장은 지금 방심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손에 들고 있던 플라스틱 컵을 그대로 팀장 머리 위에 던졌다.

붕-

탁.

맞지 않았다. 팀장은 눈을 감은 채로 컵을 잡아챘다.

귀신 같은 반응이었다.

“앗, 손에서 컵이 미끄러졌네.”

난 연기했고.

“죽여 버린다. 이 새끼.”

팀장은 잠에서 깨어났으며.

“차 한 잔만 마시고 오겠습니다.”

난 잽싸게 튀었다.

비상구로 달려 6층으로 런.

곧바로 탕비실로 쏙 들어갔다.

“……광익 씨?”

에? 누가 날 부르기에 슬쩍 눈으로만 확인했다.

그러면서도 바깥을 향해 경계심을 풀지 않았다.

팀장이 쫓아오면 어디로 튈까, 동선도 땄다.

“네, 2급 사원 유광익.”

평소와 똑같은 인사에.

“풉.”

수줍은 웃음이 더해졌다.

그제야 상대를 제대로 봤다.

긴 머리칼에 작고 흰 얼굴의 여자다.

예뻤다.

미호도 예쁘지만, 이쪽은 딱 봐도 혼혈보다 순혈에 가까울 정도로 아름다운 분이었다.

꽤 유명한 사람이기도 했다.

분석팀 내에서 최고 미녀로 손꼽히는 최미남 1급 사원이었다.

“여기에는 왜 왔어요?”

“동기 김요한이가 또 무슨 사고라도 치지 않았나, 걱정이 끊이질 않더라고요.”

아무 말이나 했는데.

“나랑 사귈래요?”

이 작자도 아무 말이나 막 던졌다.

어, 잠깐, 이건 반칙이지.

갑자기 고백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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