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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격 외 혈통 천재-107화 (107/488)

107. I`m your father

잠깐의 연극은 금세 끝냈다.

“아, 여기가 아니네. 가자.”

“아니라고 했잖아!”

보안 요원 친구의 어깨를 눈빛으로 두드려 주고, 사수의 어깨를 감싸고 돌아왔다.

밴을 타고 돌아와서 비포장도로에 차를 두고 곧바로 성큼성큼 걸었다.

“나쁘지 않았죠?”

연애도, 연기도, 한번 하면 잘할 수 있다니까.

“역겹지는 않았지.”

사수가 답했다.

역겹진 않았다. 이걸 뭐라고 해석해야 하나.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연구소를 중심으로 크게 돌아 뒤편으로 가니, 팀장이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뻐끔.

“멍청이 꽝 꼬마.”

내 호칭은 하루가 다르게 특별해지고 있다.

“네이, 입에 꽃을 물고 계신 팀장님.”

꽃을 문 팀장이다.

“이 새끼 이거, 나 놀리는 거지?”

사수에게 물었지만, 사수는 묵묵부답.

둘 중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 보기 드문 솔로몬의 지혜를 가진 요원이다.

“앞에 애들 보니까 어떻디?”

팀장이 앞에 놓인 벽을 어떻게 뚫을지는 고민하지 않고 나에게 물었다.

난 벽에 손을 올리며 두께를 가늠했다.

아주 옅지만, 규칙적인 진동이 손끝을 따라 울렸다.

불멸자의 감각이 아니고서는, 아니, 쿼터 이하로 표현되는 둔한 감각의 불멸자는 느끼지도 못할 만큼 작은 진동이다.

아직 기계는 작동 중이란 소리이며, 팬더 대리가 아직 일을 못 끝냈다는 말과 같았다.

난 손끝에 느껴지는 감각과 별개로 팀장의 질문에 답했다.

“1분이면 되겠던데요.”

질문의 요지를 파악하는 건 쉽다.

처음 본 세 명, 그들의 취향을 파악하라는 건 아닐 테니.

전투 상황 발생 시 어떨 것 같냐는 질문이었다.

“쌈닭 자식.”

칭찬이다.

그만큼 내가 독보적인 전투 능력을 갖춘 요원이란 소리로 해석했다.

“연구소 안은 어떨까?”

일반 연구 시설 안에 숨겨 둔 연구 자료다.

폐기물 창고가 타깃이고.

그 안?

“대단한 경호 인력이나, 보안 요원은 없겠죠. 아마도?”

“그럼 우린 왜 여기서 벽에 개구멍을 뚫으려고 지랄을 할까?”

표현이 참신하긴 해.

뭐든 다, 욕으로 끝내는 대화법이다.

하라니까 했지, 딱히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부분의 질문이다.

정신없이 이 임무 저 임무를 클리어하고 온 뒤라 더욱 그랬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반쯤 끌려오다시피 오기도 했고.

“머리에 든 게 없어도 생각은 좀 하고 살자.”

“지금 막 생각 중이었는데요.”

“그래서 답은?”

인내심은 어디에 놔두고 다니는 걸까, 사무실에 놓고 왔나.

“임무 중에 한가하게 머리 굴릴 시간이 있다고 생각하냐? 여유가 넘치는구나.”

있네. 지금. 이 순간, 한가하게 머리 굴릴 시간.

팀장이 눈을 부라렸다. 머리가 굳지는 않았다. 다만,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을 뿐.

작전이 없을 때, 다양한 상황을 시뮬레이션하고 대응하는 법을 훈련했다.

그중 하나였다.

“불법 연구소는 자료 파기를 우선으로 하니까, 정면으로 치고 들어가면 데이터 보존이 어렵습니다.”

“더 빨리, 시작하기 전부터 생각해, 대가리 안에 들어 있는 게 우동 사리가 아니라면 계속 사용하면서 사는 거다. 꽝 우동.”

내 호칭은 정말 나날이 특별해지고 있다.

“네, 알겠습니다.”

순순히 답하니, 팀장이 미간을 찌푸렸다.

“왜요?”

“시발, 뭔가 허전하네.”

항상 대거리하다가 멈춘 내 입, 칭찬해.

이게 바로 파블로프의 고전적 조건 형성이다.

매일 개기던 사람이 개기지 않으면 찝찝하거든.

팀장 신경 쓰라고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다. 배울 건 배우자고 마음먹은 참이었다.

시발 팀장의 성격은 진짜, 어디 지옥에서 올라온 파수꾼의 음경 같지만 일은 잘한다니까.

지금도 딱 필요한 순간에 말했다.

시키는 대로 반사적으로 움직이다가, 자연스럽게 앞뒤 상황을 유추하게 만드는 타이밍.

이 일은 왜 시작했는가.

본래라면 난 알 수 없다. 다른 팀에 일하는 동기한테 들어 보면 시키는 일을 하는 데도 빡세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팀은 좀 다르다.

팀장이 아니라면 팬더 대리라도 나서서 임무에 관해 설명해 주는 편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난 이미 이번 임무 정보의 출처를 안다. 박병준 박사다.

고로, 우리는 이 임무의 진실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그러므로 데이터 보존이 최우선이다.

전투 상황이 발생하는 건 피해야 옳다.

팀장은 이 모든 걸 파악한 뒤, 이 작전을 짰을 거다.

웅.

손가락 끝에 걸리던 진동이 사라졌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잠입 액션 판타지다.

걸리면 안 된다.

그런데 벽이 좀 두껍다. 귀를 대도 안쪽에서 나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소음 방지는 기본이다. 마구잡이로 벽돌을 쌓아 만든 벽이 아니라는 거다.

“폭탄이라도 터지면 최악이겠네요?”

벽에 귀를 댄 채, 물었다.

“그걸 말이라고 하냐?”

“그럼 이건 어쩌고요?”

톡톡 벽을 두드렸다.

두께도 상당하고 소재도 아다만티움까지는 아니지만, 강도가 남다르다.

신화 속 이름까지 붙인 묵철로 연구소를 지으면 그 연구소 자체가 보물일 거다.

그러니 적당한 신소재로 만들었겠지.

“임무의 목적을 파악했으면 해답도 대가리를 굴려서 생각해야지.”

팀장이 나이프를 뽑으며 말했다.

안 그래도 머리를 굴리는 중이다.

지금 필요한 건 은밀함, 거기에 과격함이다.

이 두툼한 벽을 뚫고 들어가야 하니까.

답은 뻔하다.

인류는 조용하지만 완벽한 절삭력을 자랑하는 무기를 개발했으니, 그걸 쓰면 된다.

팀장이 뽑은 나이프 손잡이는 긴 막대 형태였다.

정확히 말하면 긴 직사각형의 형태로 끝이 둥글며, 가운데에는 세로로 길게 쪼개진 긴 램프가 있었고, 그 세로 램프에서 파란빛을 뿜는 기계 막대였다.

“그거죠?”

“그게 뭔데?”

팀장은 모른 척했지만, 난 저 무기를 알고 있다.

한 번 구동하는 데 얼마라고 했더라?

신소재, 신기술, 신무기는 전부 돈 잡아먹는 하마다.

저 막대에 비하면 사수의 캐쉬 히포는 동네 구멍가게일 뿐이다.

저게 바로 가성비 최악의 무기이자, 현존하는 최강의 근접 무기다.

“길게 쓰면 경위서를 쓰라고? 시발, 하여간 회계부 개자식들.”

팀장이 중얼거리면 버튼을 눌렀다.

웅.

막대 끝에 파란빛이 솟는다.

광선검이었다.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옛날 영화광이었다. 쉴 새 없이 명언을 날리시는 병은 그 영화의 영향이 많다고 본다.

그중에서도 하나는 나도 봐야 한다며 권했었다.

난 그 영화의 명대사가 떠올라 부지불식간에 읊었다.

“I`m your father.”

“……누가 니 아빠야? 할 거면 포스가 함께하기를, 이게 맞지.”

팀장도 그 영화 아는구나.

팀장은 회계부의 압박을 떠올렸는지, 숨 한 번 쉴 짧은 시간 만에 파란빛을 뿜는 광선검으로 벽을 잘랐다.

정확히 사람 하나가 지나갈 정도의 크기다.

파지직.

잘린 자리로 검게 그을음이 생겼고 불똥이 튀긴 했지만, 전부 한순간이었다.

“정아야.”

사수가 앞으로 나서서 벽에 흡착식 고무를 붙여 당겼다.

내가 당긴 벽을 들고 옆에 세워두자, 출입구가 생겼다.

광선검으로 만든 출입구다.

안으로 쏙 들어가니, 절단부에서 뜨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바로 앞에 후드를 눌러쓴 여자가 날 빤히 바라봤다.

“……도둑?”

구경해서 뭐 하나, 단숨에 다가가서 목 뒤를 가격, 굿 나잇 수도치기를 날렸다.

쓰러지는 여자를 한쪽에 잘 눕히고 앞뒤를 둘러봤다.

어둡다.

해가 지진 않았는데, 건물 안쪽은 빛이 없었다.

전력이 끊겨서 모든 전등이 나간 거다.

“비상 전력은 왜 안 들어와!”

“내 연구 망치면 니들이 책임질 거야?”

“야, 보안 팀장은 어디 갔는데?”

사방에서 떠드는 소리가 절로 귀에 들어온다. 소란이 일었다. 화를 내는 사람들이 많았다.

난 그들을 이해했다.

팬더 대리가 이 작전의 세부 내용을 설명하며 말했었다.

“일주일 밤샘 작업하다가 누가 컴퓨터 전원을 껐어, 화가 나? 안 나?”

미치지.

과제 하다가 블루 스크린만 떠도 돌아 버리지.

그걸 말이라고 하나.

덕분에, 지금 연구원 모두가 패닉 상태였다.

“가시죠.”

팀장에게 말하고 앞장섰다.

연구소 내부는 머릿속에 다 때려 박았다.

길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팀장과 사수가 뒤를 따라왔다.

“야, 이거 꿈이지? 꿈이잖아?”

“정신 차려, 자료 날린 거야. 하, 시발 잠은 다 잤네.”

열린 문 사이로 흰 가운을 입은 두 명의 남자가 보였다.

둘 다 기운이 없어 보였다.

“보조 배터리로 어떻게 안 되냐?”

“……넌 우리가 쓰는 기계가 무슨 스마트폰으로 보이냐?”

한 명은 동아줄이라도 잡으려 하고, 다른 하나는 현실을 직시했다.

“쯧쯧.”

안타까움에 혀를 찼다.

“구경났냐?”

팀장이 귀 옆에 대고 속삭였다.

전신 솜털이 삐죽하고 곤두섰다.

이 양반은 이 순간에 왜 기척을 죽여.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걸었고, 아무도 우리를 잡지 않았다.

일이 이렇게 쉬워도 되나 싶을 정도였다.

폐기물 창고 앞으로 가자, 반쯤 정신을 놓은 보안 요원이 보였다.

그래도 여긴 지키긴 하는데.

밖에서 본 세 놈도 그렇고 얘도 그렇고, 프로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거기에 이 자식은 신입 같다.

어벙해 보인다는 말이다.

“여기는 통제구역입니다.”

“알아, 우리가 그것도 모르는 것 같냐?”

내가 나섰다. 무시하며 전진.

“아, 그, 들어가시면 안 되는데요.”

“너 미쳤어? 팀장은 어디 갔어? 당장 이 사태를 어떻게 할 거야? 보조 배터리로 기계 구동이라도 시킬까? 우리가 이런 일 생기지 말라고 돈 갖다 부어서 너희 고용하는 거잖아.”

그렇게 말하며 놈을 옆으로 밀었다.

요원 놈이 땀을 뻘뻘 흘렸다.

애가 왜 이렇게 불쌍하냐.

“아니, 그게, 제가, 아니 팀장님이요.”

“나와. 안에 급히 구제해야 할 자료가 있다.”

요원이 비켰다. 사수와 팀장이 뒤를 따라 들어왔다.

“넌 사기꾼이 됐으면 대성했을 거다.”

뒤에서 팀장이 말했다.

이게 칭찬인가?

유심히 고민하다가 칭찬이라고 판단했다.

그만큼 임기응변 능력이 뛰어나다는 거잖아.

“네, 감사합니다.”

“뭘 감사해?”

“칭찬이요.”

“……말을 말자.”

우린 걸었고, 곧 한 가지 문제에 봉착했다.

전기가 끊기면 자료는 어떻게 빼 와?

고개를 돌려서 물으려는데.

“머리 써라. 묻기 전에 생각해.”

아무 말도 안 했는데 팀장이 말했다.

눈치가 귀신이다.

난 머리를 굴렸다. 보조 배터리? 그거로 전력 공급하고 자료만 빼 오면 될까? 근데 그런 기계가 있나?

앞쪽으로 열두 대의 컴퓨터가 보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폐기물 창고 관리 용도로 보이지만.

매서운 내 눈은 피하지 못했다.

어떤 미친놈이 수냉식 커스터마이징 컴퓨터로 고작 창고 관리나 하겠나.

저건 겉보기에는 일반 컴퓨터지만, 안에는 돈을 때려 부은 고사양 컴퓨터다.

슬그머니 다가가자, 얼굴이 흙빛이 된 남자가 라이트로 우리 쪽을 비췄다.

“누구야?”

“보안팀에서 나왔습니다.”

내가 답했다.

아까는 연구원, 지금은 보안팀이다.

적절한 신분 변화다.

“염병할, 너희 이거 어떻게 할 거야? 이 자료 유출 날아가면 내 모가지 하나로 안 끝나는 거 알지?”

흙빛이 된 남자 뒤로 몇 명이 더 보였다.

다들 짧은 머리칼이 인상적이었고 이런 순간임에도 칼같이 제자리를 지켰다.

특수종은 아니다.

안쪽 보안은 바깥보다 더 허술해 보였다.

팀장은 앞으로 척척 걷더니, 연구원 앞에서 멈췄다.

“뭐? 아니, 너 처음 보는 얼굴인데?”

“나도 너 처음 봐, 새끼야.”

말과 함께 팀장이 연구원을 머리를 때렸다.

손으로 팍, 맞은 놈의 목이 옆으로 꺾일 정도였다. 연구원은 동공이 풀리더니 풀썩 쓰러졌다.

연구 자료를 훔쳐 가는 방법은 많다.

복사, 공유, 또는 눈으로 보고 사진도 찍을 수 있다.

다만, 모든 건 전력이 공급되어야 시도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선택할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움찔한 몇 명이 뭐라 소리치면서 달려들었고, 사수와 난 전부 때려눕혔다.

일도 아니었다.

그 뒤, 말없이 본체를 뜯어서 데이터 저장 장치를 챙기려 했는데.

“분리하면 자료 소멸이다. 하드 건드리지 마.”

“요새는 하드 아니고 SSD인데요.”

“시바, 그거나, 그거나.”

아우, 옛날 사람.

“본체 통째로 들고 간다.”

우리 손은 여섯, 눈앞에 있는 컴퓨터는 총 열두 대다.

“뭐 해? 안 들어?”

사수가 두 개, 내가 여섯 개를 대충 콘센트 코드를 뽑은 다음 묶어서 들었다.

그 뒤 주변에 남은 게 없나 꼼꼼히 확인하고 돌아서서 나왔다.

나올 때도 어려움은 없었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팀장이 입을 열었다.

“꽝 새끼야, 모든 임무를 다 주먹으로 해결할 필요는 없다.”

“마지막에 주먹 쓰지 않았나요?”

“손날만 썼어.”

“……아, 네.”

“그 앞쪽의 침묵이 몹시 거북한데?”

그러라고 답을 늦게 한 거다.

“아, 그래요?”

“나 왜 기분이 나쁘냐?”

역시 눈치는 귀신이라니까.

“글쎄요.”

모른 척했다.

그사이, 주차해 두었던 밴을 동훈 대리가 끌고 왔다.

복귀할 시간이었다.

새삼 이 자료가 진짜인지 궁금하긴 했다.

인베이더와 인간의 혼혈이라니, 이 정도면 혼혈이 아니라 합성이라고 봐야 하지 않나?

근데 그게 가능하긴 한 건가?

자료를 확인하려면 시간이 필요할 거다. 연구소 애들이 멍청이가 아니라면 갖은 암호를 다 걸어 놨겠지.

그걸 푸는 데만 해도 시간이 꽤 필요할 거다.

결론만 말하면, 오늘 우리 팀이 한 일의 결과를 당장은 알 수 없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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