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 배울 건 배운다.
이번 작전명은 ‘눈 가리고 맴매’였다.
“작전명은 누가 짓는 겁니까?”
진지하게 물었다.
“불만 있냐?”
팀장이 지었군.
네이밍 센스가 최악이었다.
“아니요. 작명소를 차리셔도 되겠습니다. 대박 날 것 같아요.”
이렇게 말하며 엄지까지 치켜세우면 완벽하다.
“놔, 저 새끼 묻고 가게.”
일어나는 팀장을 팬더 대리가 뒤에서 안았다.
잘한다. 우리 대리님.
“왜요. 칭찬해도 지, 지지지지 베이비, 베이비.”
지랄이라고 할 뻔했네. 급히 어디서 들어 본 멜로디로 덮었다.
“총 가져와.”
팀장님 허리에 있습니다. 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미친 꽝 새끼.”
팀장은 흥분을 가라앉혔다. 진짜로 화낸 건 아니었다.
어쨌든 일할 시간이니, 일을 해야 할 거 아닌가.
우리 작전은 단순했다. 하지만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다.
발전소를 타격하고 외부에서 보안 요원의 시선을 끌면 그사이 뒤를 털기로 했다.
머니 & 세이브 때와 같네.
내심 그리 생각하고 있는데.
“양아치 금고를 털 때 너무 너저분해서, 차마 보고서를 눈 뜨고 볼 수가 없었지. 꽝 새끼야, 꽝 새끼야, 일 그렇게 하는 거 아니다.”
팀장이 말했다.
“덕분에 불멸교도도 잡고, 퇴사도 안 당하고 감방도 안 가고 그랬지만. 네, 너저분했죠.”
“이 새끼는 진짜 한마디를 안 지네.”
죄송합니다. 부모님에게 지는 법을 배우지 못한 입을 물려받은 터라.
“제가요?”
대신 모른 척은 잘하지.
능청은 사회생활의 필수 요소다.
“일이나 하자.”
팀장이 항복 선언을 했다.
여기로 올 때 날 갈궈서 그런 건 아니다. 우리에게는 이게 일상이다.
하여간 필요한 건 발전소 타격팀과 시선을 끌 미끼, 뒤를 털 도둑놈이었다.
“동훈이가 전기.”
“오랜만에 실전이네요.”
팬더 대리가 직접 나선단다.
“괜찮겠어요?”
난 팬더 대리가 싸우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사내에서는 ‘제일 못 싸우는 불멸자’라는 별명도 붙은 작자다.
어떤 싸움도, 전투도 피하다 보니 붙은 별명이다.
“넌 날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오타쿠, 회귀자 드립을 좋아하는 망상병 환자, 다크써클을 달고 다니는 밤에 뭘 하고 다니는지 모를 남자.
“……성격 좋은 대리님?”
난 사회생활을 할 줄 아는 남자다.
“이 몸은 일도 잘하지.”
그래, 사무실에서는 잘했지. 밖에서는 모르겠고.
이거 진짜 괜찮은 거 맞지?
팀장에게 눈으로 물었다.
“뭐, 팍, 네 일이나 잘해.”
나한테만 까칠해, 저 양반은.
기남이한테 하는 거 반만 해 봐라. 내가 업고 다니지.
“하여간 우리 기남이가 와야 했는데, 아니면 예쁜 미호라도. 어디서 덜 떨어, 아니 생기다 만 게 와서는.”
난 초고속 진급으로 2급 사원, 그 둘은 아직 3급 사원이다. 내 능력이 위라는 걸 증명한 셈이다.
그러니 덜떨어졌다는 말을 틀렸다.
팀장이 그래도 개념은 있다. 거짓을 토대로 말하진 않으니.
기남이 새끼가 나보다 조금, 아주 조오오금 잘생기긴 했지.
미호는 혼혈치고 순혈만큼 예쁘장하게 생기긴 했다만, 여자랑 미모를 비교해서 뭐 하겠나.
물론 팀장은 당장 여장을 시켜도 어지간한 여성의 미모를 압도할 것이다.
그래도, 얼굴이 미모 깡패면 뭐 하나. 성격이 개차반인걸.
사람은 내면이 중요한 법이다.
“사람은 내면이 중요하죠.”
나도 모르게 속마음을 내비쳤다.
“풉.”
팀장이 날 비웃었다.
욕을 하고 싶어졌다.
“내면이 중요한 못난이랑 정아는 미끼, 세부 작전은 알아서.”
성격이 조금 모났어도 배울 건 배워야 한다.
팀장에게 배울 건 많았다.
첫째, 약점을 간파하는 통찰력.
우리의 타깃인 연구 시설은 대외적으로 평범한 연구소다.
그런 연구소이기에, 내부에 비상 전력 발전소 따위를 만들 수는 없다.
어떤 연구소는 몰래 지하 굴을 파서 비상 발전소를 짓기도 한다지만.
작정하고 스캔하면 다 나오는 세상이다.
현재 우리 목표인 곳은 가면을 쓴 불법 연구소.
그들은 내부에 불법 시설을 지어 또 다른 위험을 안느니, 외부에 발전소를 두는 거로 결정한 듯했다.
그게 바로 비상 전력 발전소다.
내부에는 전기 잡아먹는 감지기나 경보 시스템이 한가득했고, 그 모든 건 전기를 먹어야 일을 할 수 있었다.
고로, 전력을 차단하고 비상 전력 발전소를 조지면 끝이라는 거지.
팀장은 여기 오기 전에 이미 이 작전을 세웠다.
보고 판단하는 통찰력이 남다르다는 말이다.
둘째, 과감함과 세밀함이다.
팀장은 주저하지 않았고, 고민하지도 않았다.
방법을 떠올리고 그대로 진행하면 그만이라는 거다.
다만, 그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특수한 상황을 말하고 그려 냈다.
팬더 대리는 팀장이 말하는 불시에 일어날 모든 일에 대비책을 내놨고.
쿵짝이 잘 맞는 둘이다.
셋째, 팀장은 팀원을 믿었다.
팬더 대리도 할 수 있으니까 시키겠지.
그게 아니라면 보낼 리가 없을 것이다.
작정하고 실패할 생각을 하고 일하는 위인은 아니니까.
거기에 미끼 팀에 사수만 보내서는 답이 없으니 날 동행 시키는 건, 평소 내 임기응변 능력을 믿는다는 거 아니겠나.
“정아야, 수틀리면 쟤 집어던지고 넌 빠져나와라. 저건 바퀴벌레를 닮아서 잘 살아남을 테니까.”
사수는 ‘잘 드는 칼’이란 별명을 가졌지만, 기초적으로 강화 약물을 먹은 인간이다.
불멸자와는 다르다.
고로, 팀장이 한 말이 맞다. 위험하면 내가 남고 사수가 빠져야 한다. 다만, 듣기에는 껄끄러웠다.
팀장의 마지막 말은 적당히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내용만 캐치했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언젠가 시간이 흐르면 나도 내 팀을 가질 것이다. 그럴 때를 대비해 배울 건 배울 뿐.
“지금부터 30분, 대충 개요 잡고 타이밍 조진다.”
“질문 하나 해도 됩니까.”
내가 손을 들었다.
우등생은 질문을 아끼지 않는다.
“하지 마. 입 닥쳐. 끝날 때까지 벙어리라고 생각해.”
전생에 나와 팀장은 무슨 사이였을까.
멍청한 고양이와 영리한 쥐?
내가 영리한 쥐였겠지.
“발전소를 건드리는 건 범법 아닙니까?”
“연구소 자료 빼 오는 건 합법일까?”
사수가 드물게, 질문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난 우등생이어서 방금 질문으로도 충분히 이해했다.
“안 걸리면 장땡이군요.”
“시발, 쓸데없는 그 주둥이 좀 닥치라고.”
저렇게 입이 더럽지만, 팀장 얼굴만 보고 반하는 여자도 있겠지?
하지만 금세 돌아설 것이다.
사람은 내면이 중요하니까.
“야, 내면 못난이. 밴 끌고 가.”
“네.”
작전 개요는 짰다.
사수와 말을 맞춰 보기도 했고.
“잘할 수 있죠?”
내가 물었다.
“진심으로 묻는 거야?”
기대하지 말자.
팀장은 시선을 끌라고 했지, 보안 요원을 두들겨 패라고는 안 했다.
우리가 불멸특수대라는 걸 걸리면 안 된다고 했다.
가면이라도 쓰는 게 어떻냐고 했더니.
“고양이 가면 쓰고 날뛴다고 해서 안 걸릴 줄 아냐? 양아치 금고 턴 것도 불멸특수대에서 했다는 거 다 알아, 새끼야.”
고양이 아니고 호랑이 가면인데.
뭐, 나도 가면 하나로 감춰졌으리란 생각 안 하긴 했다.
뉴스에서야 불감가학병에 걸린 정신병자라고 했지만, 알 놈은 다 알겠지.
더군다나 그 일로 불멸교에도 타격이 가고 프로메테우스에도 타격이 갔으니.
나중에 들어 보니, 한국에 들어온 머니&세이브의 입지가 상당히 좁아졌다고 했다.
프로메테우스는 여기에 전력을 투입하느니, 지켜보기로 한 것 같다.
그게 아니었다면 또 한바탕 난리가 났겠지.
그들은 싸우는 대신 잘나디 잘난 불멸특수대원 하나에게 마수를 뻗었지만, 잘나디 잘난 불멸특수대원은 그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데 쪼개고 지랄이냐?”
사실 팀장은 날 좋아하는 게 아닐까.
툭하면 내 얼굴만 보고 있네.
“언젠가 저도 팀을 이끌겠구나, 하는 생각이요.”
“꿈이 커. 우리 내면 못난이의 꿈이 아주 대하 서사시야.”
요즘 팀장은 어디 드립 학원에 다니는 것 같다. 말이 늘었어, 이 양반.
“꿈은 클수록 좋은 거니까요.”
“응, 개꿈. 작전 시작은 지금부터 1시간 뒤다. 알아서 시작해. 타이밍은 내가 맞춘다.”
도둑놈 역할의 팀장님이 말하며 장갑을 손목 쪽으로 당겼다. 손에 딱 맞게 조절되는 응축 가죽이다.
팀장은 주먹을 몇 번 쥐었다 펴며 장비를 점검했다.
싸우지 않고 시선을 끌어야 했기에 나랑 사수는 연인을 연기하기로 했다.
적당히 길 못 찾는 남자와 화난 여자, 싸우는 연인을 보면 당황하는 법이니.
그걸 통해 시선을 끄는 사이, 팬더 대리는 잘 숨어서…….
“대리님, 기척 죽이기는 할 줄 아시죠?”
“넌 진짜 날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진심으로 말해 줘야 하나.
“기척 죽이기도 잘하는 대리님.”
“정답.”
팬더 대리가 찡긋- 한쪽 눈을 감았다.
눈을 돌렸다. 엄한 걸 봤다.
“가죠.”
사수에게 말했다.
우리는 장비와 방검방탄복을 벗었고.
난 맨투맨 티, 사수는 딱 붙는 니트티를 입었다.
그 뒤에 내가 밴 운전석에, 사수가 조수석에 앉았다.
“운전은 할 줄 알지?”
“절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툭하면 사고 치는 신입 사원, 싸움 잘하는 후배, 팀장님에게 지지 않는 입을 가진 사원.”
뭐 하나 틀린 말이 없구나.
통찰력은 사수에게도 있었다.
“정답.”
팬더 대리처럼 윙크하고 액셀을 밟았다. 사수는 어느새 창밖을 바라봤다.
붕.
밴이 출발했다.
연기는 배경부터 시작하는 거다. 난 밴을 천천히 몰았다.
길을 잃은 차는 빨리 달리지 않는 법이니까.
작전에 대해 생각하다가 자연스럽게 내가 한 일을 떠올렸다.
말은 험해도, 기초적으로 팀장은 바른말을 한다.
너저분했다는 건, 깔끔하지 못했다는 거다.
그랬나?
되새겼다.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왕자를 구했을 때는? 그 또한 마찬가지인가?
모른다. 세상일에 정답은 없다. 다만, 이게 고민할 일이 아니란 건 알겠다.
지나간 일을 후회하지 말라고 배웠다. 그건 아버지, 어머니의 의견이 같다.
“후회할 시간에 오늘 점심거리나 고민하는 게 낫지 않겠니?”
어머니는 이리 말씀하셨고.
“어제보다 중요한 건 내일이고, 내일보다 중요한 건 오늘이다.”
가끔 명언을 날리시는 걸 즐기시는 아버지는 이리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쓸데없는 고민이라는 게 내 결론이다.
“사수.”
그리 말하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부웅.
차가 느릿느릿 연구소 정문으로 향했다. 허리춤에 권총을 찬 보안 요원 셋이 보였다.
창문을 내리며,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여기라니까, 봐, 내가 맞잖아. 이런 컨셉 카페 있다고.”
“여기가?”
만약 사수가 연기자의 길을 간다고 하면 바짓가랑이를 잡고 말려야겠다.
“아, 글쎄, 여기…….”
“정지, 멈추십시오.”
보안 요원 하나가 다가오며 말했다.
차를 멈추자, 그가 운전석 쪽으로 다가왔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대부분의 연구 시설은 사유지다. 회사가 소유했든 개인이 소유했든, 방문자를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
“카페 아니에요?”
순진무구한 눈빛 발사.
“아닙니다.”
그렇게 말하며 슬쩍 허리춤을 들이민다. 무장상태를 보여 줘 압박을 주려는 거다. 못 본 척하며, 입을 열었다.
“여기 아니에요? 맞는데?”
상대가 뭐라 반응하기도 전에 문을 벌컥 열고 내렸다.
“아니, 내비가 여기를 가리키는데? 아니라고? 맞잖아. 컨셉이 이런 거죠? 보안 시설 컨셉 카페, 맞죠? 이건 웰컴 이벤트 같은 건가? 자기야, 내려.”
그렇게 말하며 잽싸게 조수석 문을 열었다.
“아닌 것 같은데?”
사수, 요즘은 국어책도 그렇게 안 읽어요.
“맞다니까.”
팔을 잡아끌며 어깨를 감쌌다.
사수가 옆구리를 쿡 찔렀지만, 무시한다.
“우리 애기, 오빠 못 믿어?”
“어이, 뭐 하는 거야? 차 빼.”
뒤쪽에 서 있던 보안 요원이 다가왔다.
“이 양반들 연기 쥑이네. 나중에 제가 별그램 리뷰 올릴게요. 실감 나네, 진짜. 우리 애기, 예쁜 애기.”
말하면서 사수 이마에 쪽.
“하지 마라.”
연기가 안 되면 진심을 담으면 된다. 사수는 마음을 담아 말했다.
“화내지 마, 자기야. 무서워.”
나도 진심을 담았다.
“죽창이라도 맞고 싶나.”
곁에 다가왔던 보안 요원이 말하고, 먼저 나섰던 작자가 미간을 찌푸렸다.
“거, 칭찬한다니까. 여긴 뭐가 맛있어요?”
사람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당황하는 법이다.
아주 잠깐 요원 둘이 ‘이거 뭐 하는 새끼지?’라는 표정을 짓는 순간, 난 사수를 품에 당긴 채 걸었다.
우린 연인이다. 연인.
연기에 진심을 담아야 할 거 아닌가.
그렇게 말하며 앞으로 몇 걸음 나선 순간, 뒤에서 어깨를 잡았다. 내 어깨 말고 사수 어깨를.
일부러 그쪽으로 걷긴 했다. 딱 손이 닿기 좋은 위치에 사수 어깨를 댄 거지.
“미쳤어? 아니라니까?”
“야, 너 지금 어디에 손댔냐? 손 안 치워?”
화냈다.
화내는 연인이 안 된다면 화난 남자 친구가 되어 보자.
어쨌든 시간만 끌면 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