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 그게 핵심이다.
편의점 잠복 작전은 단순했다.
“이름 박철수, 일명 칼잡이. 그동안 증거가 없어 잘 빠져나갔는데 이 근처에서 작업한다는 정보가 있어. 이 편의점에 자주 나타난다고 하니까 넌 기다리고 만나면 시간 끌어. 난 그사이 작업실을 찾아서 증거를 확보, 영장을 발부한다.”
“……정리 잘하시네요.”
일반인 검사가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렇게 난 잠복을 하고, 우미호는 탐정으로 빙의해서 일대 작업실 조건을 선정했고, 곧 찾았다.
그리고 놈이 자리를 비운 사이 작업하던 물건, 그러니까 증거가 될 만한 것을 찾아서 영장을 발부했단다.
의심만으로 사람을 감방에 처넣을 수는 없다.
그래서 필요한 과정이었다.
이런 복돌이 새끼들이 수틀리면 증거 소멸하는 게 또 기가 막혀서, 자리를 비운 사이에 노려야 했고.
난 뭐, 적당히 시비 걸고 성질 돋워서 못 가게 했다.
그게 전부다.
영장 발부하기 전까지는 손도 대지 말라고 해서 손도 안 댔고.
“이번 일의 주요 포인트는 하나다. 패지 마.”
팬더 대리가 이렇게 말했었다.
내가 무슨 파괴왕이야?
어느 웹툰 작가처럼 어디 나타나기만 하면 다 부숴 버리는 그런 존재냐고.
그래서 원만히 처리했다. 편의점을 조금 부순 건 어쩔 수 없다.
이게 최선이었다니까?
“점포 피해는 불멸특수대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우미호가 정리를 마쳤다.
그렇게 범죄자 검거 완료.
“복귀?”
“연남동에 홀 출현했어. 그쪽 지원.”
“또?”
아니, 진짜 뺑뺑이 제대로 돌리네.
“뛰는 게 빠르겠다.”
난 장비도 없이 다음 홀 출현 지점으로 가야 했다.
이번에는 넘버 쓰리 슬라임과 바운스가 같이 나왔다.
귀찮은 조합이다.
슬라임은 불에 태워 죽여야 하고, 바운스는 냉각탄이나 그물 따위로 잡는데.
일반종이 상대하기에는 둘 다 껄끄럽다.
고위 넘버 인베이더가 나오는 홀도 간간이 생긴다곤 하는데, 난 그런 곳은 구경도 못 했다.
“불멸특수대 우미호와 유광익, 합류합니다.”
우리는 그대로 합류, 그물을 던져 바운스를 잡고 슬라임을 태웠다.
노동이긴 한데 놓치면 누군가는 죽을 수도 있는 일이기에 긴장을 놓을 수는 없었다.
“클리어, 홀 클로징입니다.”
엑스큐라시에서 나온 변신족도 있었다.
“수고.”
난 그렇게 말하며 이제 진짜 복귀하려고 했는데.
미호가 어깨를 잡았다.
“왜?”
“사장님 특별지시야. 도주한 변신족 잡아 오래.”
“나만?”
“응.”
우미호가 필요한 정보만 똑 부러지게 전하고 훌쩍 떠났다.
정이 없다. 도와주겠다고 물어보지도 않냐?
귀태 형, 진짜 쟤가 왜 좋아? 어디가?
얼굴만 보고 좋아하는 거라면, 화림 내에 저 정도 수준은 꽤 많다.
난 당최 귀태 형 취향을 모르겠단 말이지.
자고로 여자란 참하고 몸매 좋고 가슴 크고 성격 좋고 낮에는 현모 밤에는 요부, 응? 하여간 그런 여자다.
우미호는 아니지.
“싸가지 장례 치른 애가 뭐가 좋은 거냐고.”
난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발걸음을 옮겼다.
어쩌겠나. 시키면 해야 하는 게 회사원인 것을.
“동대문의 구원자시죠?”
엑스큐라시 변신족이 물었다.
“낯부끄럽지만, 네, 맞습니다.”
명성은 즐기라고 있는 법이다.
“영광입니다.”
어느새 내가 이렇게 유명해졌다.
자식, 똘똘하게 생겼다.
악수 한번 해 주고 헤어졌다.
그대로 폭주하는 변신족을 잡기 위해 갔더니, 이미 두 명의 변신족이 쫓는 중이었다.
난 베이스로 쓰는 대형 버스에 올랐다.
“불멸특수대?”
“네. 지원 왔습니다”
“……맨몸으로?”
홀 정리하면서 화기랑 그물만 쓰고 방검방탄복도 안 입고 왔다.
“바빠서요.”
“골치 아파, 미친놈인 줄 알았는데 잘 숨네. 냄새로 쫓기도 곤란하고.”
“이 근처까지 쫓긴 했어. 위성으로 위치 파악 중이니까 반나절이면 잡을 수 있어.”
도심 한복판에서 변신족의 냄새, 그것도 특정한 냄새를 찾아서 맡는 건 어렵지.
아무리 개 코라도 기준은 있어야 특정할 수 있는 법이다.
그런데 반나절?
“반나절 동안 기다릴 필요 없습니다.”
난 대충 말하고 감각을 열었다.
정기남에게서 배운 감각 확장의 변형이다.
한 사람에게 집중하는 게 아니라, 이 일대 전체에 감각의 거미줄을 퍼트린다.
호수를 연상하며 그 호수 안에 걸린 특이한 모든 걸 잡아채고 걸러낸다.
내 주변에 있는 변신족 둘은 제외.
이 일대라면 반경이 어느 정도일까.
호수가 일그러진다. 이미지가 깨지기 직전, 난 작고 옅은 호흡을 들었다.
일반종이라면 절대 할 수 없을 깊고 깊은 호흡.
찾았다.
“생포는 두 분이 직접 하시죠.”
난 전투가 아니라 탐색 지원이다.
최근 맡은 모든 임무가 이랬다.
전투 외, 일반 임무 지원.
블랙홀 지원도 내가 전면에 나서서 싸우는 게 아니라 서포트였고.
편의점 잠복도 마찬가지다.
내가 그동안 보여 준 것만 해도 전투의 귀재란 소리를 듣기엔 충분했다.
그러므로 이제 보여 줄 건, 다양성이다.
전투 외 임무에서도 잘한다는 걸 보여 주라는 거지.
뭐, 단순하게 어떤 임무든 해결하면 그만인 문제다. 깊게 생각할 일은 아니었다.
“찾았다고?”
“벌써?”
“제 왼쪽 손목을 걸죠.”
그렇게 말하고, 버스 밖으로 나가서 내달렸다.
본능이 탁월한 도망자였다.
놈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좌전방, 빨간 건물.”
건물주 취향이 의심되는 빨간색 건물 바로 옆이었다.
휙 하고, 검은 그림자가 골목 안으로 달리는 게 보였다.
나만 본 건 아니었다.
동체 시력은 변신족도 뛰어나다.
꽝! 꽝!
둘은 곧바로 땅을 박찼다.
보도블록이 박살 나며 변신족 둘의 몸이 골목 안으로 짓쳐들었다.
사람들이 참 깔끔하지가 못하네.
부드럽게 밟고 땅을 박차도 속도를 낼 수 있는데 뭐가 그리 급하다고, 멀쩡한 바닥을 부수나.
응? 사람이 말이야. 일이라고 다 때려 부수고 그러면 안 돼.
난 편의점 점포를 반쯤 부순 과거를 깨끗하게 잊었다.
사실, 내가 부순 건 아니지, 흥분한 복돌이가 부쉈지.
나도 둘의 뒤를 쫓았다.
둘은 이미 침을 흘리고 동공이 흔들린 변신족을 제압한 뒤였다.
한 명이 어깨에서 피를 질질 흘리는 걸 보니, 기습에 당한 것 같았다.
어쨌든, 클리어지?
“고생했습니다.”
변신족 하나가 그제야 존댓말을 제대로 썼다.
“네, 불멸특수대원 유광익이었습니다.”
난 그렇게 답한 뒤 회사로 복귀했고.
그곳에 날 반기는 팀장을 만났다.
“오, 꽝 왔네, 10분 뒤에 출발이다.”
“……어딜?”
“어딜은 반말이고.”
“요?”
“죽여 버리고 싶네.”
전신 방검방탄복에 가벼운 무장.
권총, 나이프 따위를 두른 게 보였다.
팬더 대리도 비슷하고, 사수도 비슷하다.
캐쉬 히포 대신 토가레프.
방검방탄복 안쪽에 불룩하게 튀어나온 건 소음기.
섬광탄과 연막탄도 몇 개 챙긴 것 같다.
소음탄과 드론 따위도 챙겼네.
“어디 가요?”
셋만 따로 작전을 나가나?
난 사무실 지키고?
“5분 준다. 장비 챙기고 지하로 내려와.”
“나요?”
“그럼 시바, 너 말고 뭐, 컴퓨터한테 처 말하겠냐?”
아따, 성질은.
팀장은 나이프 손잡이를 쥐고 나갔다.
진심 뺑뺑이네.
뛰었다. 방검방탄복 챙기고 장비 대강 챙기고.
권총 두 자루, 소음기, 섬광탄 손에 잡히는 대로 대강 달라고 했다.
“너 무기 안 가리는구나?”
탄약고 담당 대리가 말했다.
“팀장이 5분 이내에 오래요.”
“거, 중봉 팀장님도 너무 하시네. 야, 이것도 챙겨 가, 이번에 새로 연구팀에서 내려온 건데 너한테만 먼저…….”
“감사합니다.”
낚아채듯 받아서 뛰었다.
“아이고, 고생이다.”
뒤에서 들리는 말에 호의가 느껴졌다.
입사하고 따로 친분이 있던 사람이었나? 그건 아니었던 것 같은데.
내가 인간관계를 워낙 잘해 놨지.
이미지도 좋고.
기남이나 미호에 비하면 난 천사다. 말도 잘 듣고, 사교적이며, 능력도 좋다.
하하하하, 내가 그런 사람인데.
“꽝, 빨리 안 튀어와?”
팀장이 총을 꺼내 장전하며 말했다. 그 움직임에 날 쏘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꽝.
난 바닥을 발로 찼다.
부서지든 말든 힘을 좀 썼다.
대신 추진력을 얻어 검은 밴 앞에 단숨에 당도했다.
“……너 운동 너무 열심히 한 거 아니야?”
팬더 대리가 어안이 벙벙한 채로 말했다.
“훌륭해.”
사수는 칭찬했고.
“사내 기물 파손, 네 월급에서 깐다.”
이런 시…….
상급자한테 욕은 하지 말자. 난 그런 사람이 아니다.
대신 속으로 읊조릴 뿐.
시발, 팀장 너님이 하도 쪼아서 이런 일이 생기는 거잖아.
시발 다음에 팀장 일부러 띄워서 생각한 건 아니다. 잠깐 딴생각하다가 그랬지.
“그래서 진짜 어디 갑니까?”
내 물음에 운전석에 앉은 팬더 대리가 나섰다.
“박병준 박사가 그동안 미주알고주알 떠들어 줘서 사설 연구 시설 위치를 몇 군데 캤지. 그중 하나.”
“다 때려 부수러?”
“폭력적인 새끼, 뭘 때려 부숴.”
그게 늦었다고 막 귀환한 부하 직원에게 총을 겨누는 사람이 할 말입니까?
팀장을 바라봤다.
“뭘 봐. 눈깔 빼 줄까?”
“팀장님 안 봅니다. 팀장님 뒤에 있는 창문 봤어요.”
“지랄로 팡파레를 터트리시네.”
내가 할 말을.
“안 부숴. 들어가서 물건 하나만 빼 올 거야.”
사수가 차근차근 설명을 시작했다.
사설 연구 시설인데, 대외적으로는 공식 인증 기관이란다.
그래서 자료만 빼 오는 거란다.
대놓고 쳐들어갈 명분은 없기에 불멸특수대가 관여됐다는 증거를 남기면 안 된다는 옵션이 붙었다.
박병준 박사가 말한 정보의 진위를 판단하는 작전이란 말도 들었고.
차는 수원을 지나서 산을 옆에 두고 멈췄다.
우리 목적지는 아직 2km가 남았고.
차를 세운 팬더 대리가 말하며 홀로그램을 띄웠다.
허공에 입체감 넘치는 건물과 부지 청사진이 반투명하게 생겨났다.
적당히 넓은 부지에 사옥과 연구 시설을 동반한 곳이다.
바이오 무슨 기술을 개발하는 곳이라는데, 겉으로만 그렇고 뒤에서는 몰래 금지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단다.
박병준 박사의 말이 진짜라면 말이다.
“얘들, 단단히도 막아 놨네요.”
시설을 둘러보며 동훈 대리가 말하고, 팀장이 무표정하게 홀로그램을 관찰하는 동안 난 사수에게 물었다.
“금지된 연구가 뭐래요?”
“인베이더와 인간의 혼혈.”
거, 음, 끔찍한 연구를 진행 중이시네.
위성을 통한 홀로그램 형성만으로 팬더 대리는 건물에 구성된 보안 시스템을 파악했다.
“동작 감지기, 온도 변화 감지기, 외부 보안 카메라까지. 오십 대가 넘는데요?”
팬더 대리는 그렇게 말하며 홀로그램을 집게손가락으로 잡고 좌우로 나눴다.
홀로그램이 흩어지자, 건물 구조가 더욱 상세히 보였다.
바로 옆의 사옥을 별개로 치면, 지하 시설이 없는 3층 구조의 건물이다.
팬더 대리가 브리핑을 시작했다.
“사옥에서 연구하지는 않을 겁니다. 이 일과 무관한 사람도 꽤 있을 테니까요.”
“으음.”
팀장이 팔짱을 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몰래 땅굴을 파지 않았다면 이쯤, 아마도 여기겠죠. 뭘 숨기기 딱 좋네요. 저라면 여기를 폐기물 창고로 만들고 업체를 선정해서 처리하게 하겠습니다. 보통 연구소의 폐품이라고 하면 끔찍한 것들이 많으니, 연구원이나 다른 사람이 들어가지도 않을 거고요.”
팬더 대리의 손가락이 1층 안쪽을 가리켰다.
분리된 구조로 봐서 그렇지, 연구소 정문을 기준으로 반대편이다.
“이미 전화로 확인했는데, 폐기물 창고가 있다고도 하고요.”
“뭐라고 전화했어요?”
그냥 전화한다고 해서 알려 주진 않을 거 아니야?
나중에 나도 이런 임무를 할 수도 있으니, 선배의 노하우는 배우는 게 좋다.
“그게 궁금하냐?”
팀장이 팔짱을 낀 채로 물었다.
“네.”
밝고 자신 있게 답했다. 풋풋한 신입 사원이 궁금하다는데.
“죽여 버릴까.”
팀장이 팔짱을 낀 채로 발을 들었다.
“팀장님, 여기 작전 지역에서 고작 2km 떨어졌습니다. 소란은 곤란합니다. 임무를 생각하셔야죠.”
숨도 안 쉬고 말했다.
“말 잘하네.”
사수가 감탄했다.
“팀장님, 진정하시고요. 견학 간다고 전화했지. 생물학 전공하는 대학원생인데 폐기물 처리는 어떻게 하냐고.”
“그럼 답해 줘요?”
“안 해 주지.”
그럼 대답을 어떻게 들었는데?
팬더 대리가 픽 웃더니 말을 이었다.
“그렇게 말하면 환경 보호 단체에서 거짓말로 전화한 줄 알거든. 그럼 폐기물 처리하는 창고가 따로 있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하지. 그럼 난 증명해 달라고 하고. 보통 연구 시설, 특히나 구린 게 있는 곳은 외부인을 받고 싶어 하지 않으니까.”
“사진이나 뭐 기타 증명할 만한 것을 주겠네요.”
“정답.”
생긴 건 곰탱이 같이 생긴 불멸자인데, 스마트하다. 우리 팬더 대리.
난 홀로그램을 바라보다가 중얼거렸다.
“전기세 더럽게 많이 나오겠네.”
공업용 전기를 가져다 쓰려나.
“꽝.”
그 말에 팀장이 날 불렀다.
“네?”
내가 뭘 또 잘못 말했냐?
“그게 핵심이다.”
“……네?”
팀장의 말에 팬더 대리와 사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만 눈을 깜빡였다.
“그게 핵심이라고.”
그니까 뭐.
“새끼야, 전기. 니 입으로 말했잖아.”
팀장이 손을 들었다. 난 쫄지 않았다. 대신 홀로그램으로 눈을 돌렸다.
건물 구조도가 보였다.
우리가 해야 할 건 잠입 액션 판타지고.
필요한 건 경보 시스템의 제거.
그럼 할 일은 하나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