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 형은 얘가 왜 좋은 거야?
“최근 어스 블랙홀 발생 빈도가 늘었습니다.”
“맞습니다. 작년 기준 14.8 퍼센트나 늘었죠.”
“이번 이상 현상이 휴즈 게이트 사건만큼 위험하다고 보십니까?”
“어떤 것도 확답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이 일이 위험하다는 건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사고에 대비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요.”
계산대 앞에 세워둔 스마트폰에서 뉴스가 한창이었다.
박철수는 흥미도 없고 재미도 없었다.
“제노 라이트 1밀리 하나.”
바뀐 아르바이트생이 담배를 찾지 못하고 헤맸다.
“저기. 야, 거기 말고 그 옆에, 어 그 노란 거. 아오, 답답한 새끼.”
“아, 이거요.”
아르바이트생이 담배를 꺼내 바코드에 찍었다.
손이 참 느린 놈이었다.
그걸 보고 있자니, 두피가 간지러웠다. 철수는 머리카락 사이로 손가락을 집어넣어 벅벅 긁었다.
하얀 가루가 떨어졌다.
본래 작업 중에는 안 씻는다. 그게 박철수의 징크스였다.
덕분에 가루가 좀 날렸다.
그걸 본 아르바이트생이 미간을 찌푸렸다가 금세 폈다.
“6,000원입니다.”
“야.”
“네?”
“시바, 너 방금 인상 썼지?”
“안 썼는데요.”
“내가 다 봤는데?”
“잘못 보셨겠죠.”
키가 자기보다 한 뼘이나 큰 놈이다. 얼굴도 꽤 반반한 편.
철수는 괜히 짜증이 솟았다.
그가 손을 들어 아르바이트생 머리를 때렸다.
딱 소리 대신 틱 소리가 났다.
소리가 찰지지 못했다. 철수는 방금 일어난 일을 곱씹었다.
‘피해?’
아니, 그것보다 어려운 짓을 했다.
손을 피한 게 아니라, 맞는 순간 손이 흘러가는 방향으로 머리를 젖혔다.
굳이 말하자면 머리통으로 손바닥을 흘린 거다. 칼날 흘리기와 같았다.
고로, 어려운 기술이다. 이렇게 움직이려면 어지간한 운동신경과 훈련이 필요하다.
동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할 짓이 아니란 거다.
‘우연이겠지.’
마음먹고 때린 건 아니지만, 그런 훈련을 받은 놈이 여기서 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겠나?
“새끼야, 차라리 예능을 켜 놔. 어린 놈의 새끼가 뉴스는 무슨 뉴스야. 칙칙해 뒈지겠네.”
딸랑- 하고 문을 밀고 나가는데 뒤에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뉴스를 보건 말건, 지가 수신료를 내줬나. 전기세를 내줬나. 배터리 충전을 해 줬나.”
문을 연 채로 멈춘 철수가 입을 열었다.
“야, 형이 동생 같아서 하는 말인데. 입 함부로 놀리다가 인생 조진다. 내가 그런 놈 본 게 한둘이 아니야.”
“저기, 그럼 형이라고 생각하고 하는 말인데. 좀 씻고 다녀요. 냄새나요.”
“이 새끼, 아까 인상 쓴 거 맞잖아.”
그냥 말해도 짜증이 치솟는데, 이 쌍놈의 새끼가 귀를 후비며 눈길조차 안 돌리고 말한다. 그걸 보는 순간 박철수는 화가 치솟았고, 더는 참을 이유도 찾지 못했다.
동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손모가지 하나 부러뜨리는 거야 일도 아니었다.
일이 터지면 알아서 처리할 뒷배도 든든했고.
“너 이 새끼, 이리 와 봐.”
성큼성큼 걸어 아르바이트생에게 손을 뻗었다.
놈은 잽싸게 몸을 숙이더니 계산대이자 출입구인 테이블 도어 밑으로 굴러 나와서는 진열대 뒤로 튀었다.
“이 씹새끼가.”
“아, 씹새끼는 저 말고 따로 있는데.”
제대로 미친놈이었다. 잡아서 아작을 내줘야 했다.
본래, 버릇은 어릴 때 고쳐야 하는 법이다.
자신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어릴 때 문방구에서 펜 한 자루 훔치던 버릇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물론 지금은 손수 뭘 훔치지는 않는다. 대신 사람들의 안목을 훔친다. 그게 더 벌이가 좋기도 했고.
만족감도 있으니까.
박철수는 ‘카피어’였다.
한국에서는 ‘복돌이’라고도 부르는데, 보통 명품이나 명화를 복사해서 팔아먹는 이들을 총칭하는 직업이었다.
개중에는 자신들이 하는 일을 예술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박철수가 그런 종류의 인간이었다.
그리고 지금.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예민한 예술가의 성질을 건드렸다.
박철수가 진열대를 잡고 옆으로 엎었다.
우당탕 소리와 함께, 과자나 물티슈 같은 것들이 바닥으로 우르르 쏟아졌다.
“아, 니가 다시 진열할 거냐고.”
“니가? 니가? 이 새끼 너 또라이지?”
“여기서도 그 얘기를 들어야 한다니.”
“오냐, 오늘이 네 제삿날이다.”
아르바이트생은 잘 피했다. 잡힐 듯 말 듯 움직이면서 정말 잘 피했다.
막 손에 닿을 듯하면 쏙- 하고 피했다. 진열대를 뛰어넘으며 사탕 따위를 던지기도 했다.
딱 하고 이마에 사탕 케이스가 적중한 순간, 박철수는 분노를 표출했다.
“으아아아!”
아르바이트생은 덤덤한 태도로 말했다.
“그렇게 소리 지르면 성대 나가요.”
딸랑.
외침과 함께 다시금 달려들려고 할 때, 손님이 들어왔다.
“오늘 장사 접었어! 나가!”
소리를 하도 질러서 목이 반쯤 쉰 박철수가 외쳤다.
딸깍.
들어온 사람은 묵묵히 문을 잠갔다.
소리도 안 지르고, 무슨 일이냐고 묻지도 않는다. 묵묵히 자물쇠 잠그는 소리만 들렸다.
박철수가 고개를 돌렸다.
“얌전히 시간만 끌면 되는 일을 이렇게 처리하는 건 비효율적이야.”
여자였고, 예뻤다. 지나가다가 봤다면 당장 연락처를 묻고 싶을 정도로 예쁜 얼굴이다.
다만 표정은 딱딱했고, 누군가를 나무라고 있었다.
‘누굴?’
또라이가 어깨를 으쓱했다.
“나가려는 사람을 어떻게 잡으라고, 기운이 좋아 보인다고 같이 제사라도 지내자고 할까?”
“포스기 고장으로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면 되잖아. 기다리는 동안 담배 한 대 태우고 오시라고 라이터를 빌려줬다면 도로 들어와서 계산까지 하고 갔겠지. 그럼 시간도 충분히 끌었을 거고.”
“그건 모르지. 저놈이 도둑놈이라서 그냥 갈 줄 누가 알아.”
“자기 작업실 코앞에서 좀도둑질을 한다고? 비합리적이야. 유광익.”
“넌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말도 모르냐? 저건 바늘 도둑으로 시작한 소도둑이야.”
또라이 아르바이트생의 손가락이 자신을 가리켰다.
이 새끼들이 지금 뭐라고 하는 거지?
“너희 뭐 하냐?”
박철수는 흥분을 가라앉히며 허리춤에 꽂아 둔 폴딩 나이프를 꺼냈다.
틱- 나이프를 펴고 손에 쥐었다.
그런데 또라이와 예쁜 여자는 눈도 안 돌렸다.
“소도둑이건 바늘 도둑이건 합리적 방법을 택했으면 될 일이었다는 거야.”
“아니, 그 합리적인 방법이 안 통하면 골치 아프잖아. 저거 튀면 누가 잡는데? 영장 나오기 전까지는 건들지도 말라며.”
“일 처리 방식이 마음에 안 들어.”
박철수는 둘의 대화 사이에 영장이란 단어를 들었다.
‘영장? 무슨 영장?’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그런데 은근슬쩍 둘이 입구를 막았다.
창문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었다. 출입로는 하나뿐이었다.
“손도 대지 말라고 해서 최선을 다한 것뿐이다. 결과가 좋잖아.”
“지저분한 일 처리야.”
“효율이 떨어지는 건 아닌데?”
“아니, 본사에서 이 점포에 배상해야 하니까 효율이 떨어지지.”
“말을 말자. 말을.”
미친 것들.
철수는 슬금슬금 움직이다가 또라이의 왼쪽으로 뛰었다.
달렸고 거리가 좁아졌다. 또라이가 코앞이었다. 서슴없이 칼날을 그었다.
우둑.
‘우둑?’
위로 꺾인 제 손목이 보였고.
“어디 가, 형?”
통증에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눈앞이 까맣게 변했다.
박철수는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특수종 구치소였다.
일어났는데 머리에 충격이 없다.
어지럼증도 없었다. 기가 막히게 정신만 잃게 만든 거다.
“누구였지? 나 때려눕힌 놈?”
눈을 뜬 박철수가 처음 뱉은 말이었다.
그는 상대의 예술적인 타격 기술에 반쯤은 감탄하며 물었다.
그는 예술가였다. 그게 작품이든, 기술이든, 보는 순간 반하는 그런 종류의 인간.
“숨기라는 말은 없지?”
“오히려 자기가 처리한 일이라고 똑똑히 알려 주고 가던데?”
“불멸특수대원 유광익.”
박철수는 그 이름을 머릿속에 단단히 새겼다.
* * *
사장님은 날 뺑뺑이 돌리기로 작정한 듯했다.
처음 나간 임무는 귀태 형과 함께였다.
“뭐냐? 난 미호와 사선을 넘어야 하는데 왜 네가 나와?”
“임무 배정을 내가 하는 건 아니잖아?”
귀태 형은 몹시 실망한 표정으로 날 봤다.
딱히 해 줄 말이 없었다. 일이나 합시다. 방귀태 씨.
요새 들어 블랙홀 발생 빈도가 높아졌단다.
그래서 외부로 파견 나온 인원까지 일대를 단속하기 바빴다.
PWAT도 바쁘고, 엑스큐라시도 지들이 담당한 지역을 커버치느라 바쁘고.
뭐, 그런 일이 있어서 나와 귀태 형이 페어로 일을 나섰다.
신입이라지만, 이제 1년이 다 되어 간다. 제 몫을 할 때가 됐다는 게 회사의 판단일까.
나야 그렇지만, 우리 귀태 형 싸울 줄은 아나?
우리는 답십리 도로 위 생긴 블랙홀과 마주했고.
일대는 이미 봉쇄 중이었다.
때아닌 도로 봉쇄로 근처 도로가 교통 체증으로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사이오닉 협회에서 만든 판독기는 비접촉 전자 체온계를 다섯 배쯤으로 확대한 것처럼 생겼는데, 그 위로 정보가 줄줄이 뜨기 시작했다.
근데 저 판독기 좀 작게 못 만드나.
낑낑거리며 들고 있는 순경이 불쌍해 보였다.
“판독 끝났습니다!”
타입은 더블 라인, 콜드였다.
핫이 빠른 거라면 ‘콜드’는 느리다는 거고, ‘더블 라인’은 둘이나 셋씩 줄줄이 나온다는 거다.
나오는 인베이더는 넘버 투 인베이더, 도플갱어.
도플갱어는 상대의 모습을 훔치는 인베이더다.
처음 만나는 놈이었다.
“상대해 본 적 있어?”
“아니.”
귀태 형도 처음이다.
이곳에 있는 특수종은 형과 나 둘뿐이다. 상대하는 게 어렵지는 않다. 당황하지만 않으면.
난 머릿속으로 외웠던 인베이더의 정보를 되새겼다.
인베이더 ‘도플갱어’는 상대의 모습을 그대로 복사한다. 자신과 똑 닮은 무표정한 괴물이다.
모습을 흉내 내지만, 그 능력을 전부 가져오는 건 아니다. 한계가 있다는 거다.
냉병기는 복사하지만, 총화기는 복사 불가다. 복사체 또한 신체 일부이기에 그걸 발사할 수 없다.
대응법도 단순하다.
거울을 보고 '난 왜 이렇게 태어났나'라고 한탄할 외모라면 쉽다. 제 얼굴을 보고 총탄을 갈기면 된다.
주의할 점이라면 하나뿐.
도플갱어 무리가 아군과 섞이지 않도록 하면 된다. 섞이면 아군이 아군을 죽이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전원 일렬로 모이십시오. 이제부터 제 앞으로 나가는 인원은 인베이더로 추정, 곧바로 격살합니다.”
내가 말했다.
공포 분위기가 조성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도플갱어와 싸울 때는 대열이 중요하다.
내 외침에, 귀태 형이 뒤로 세 걸음 물러났다.
“형은 빼고. 우린 앞에서 싸워야지.”
“알지.”
귀태 형이 다시 세 걸음 앞에 섰다.
“그렇다고 내 앞에 서지는 말고.”
“내가 뒤에 있는 게 낫겠지?”
귀태 형이 뒤로 물러났다.
이 양반, 그동안 임무 수행 어떻게 한 거야.
홀이 열리고 인베이더가 튀어나온다.
“저거 내 얼굴이라고? 거짓말!”
귀태 형이 외쳤다.
혼혈이지만, 우리 형 얼굴은 좀 그래. 아쉽긴 하지.
견착할 것도 없이 오른손과 왼손, 소총 두 자루를 들고 갈겼다.
탕! 탕! 탕!
귀태 형 얼굴에 구멍이 난다.
도플갱어는 모습을 훔치는 대신 약점도 같아진다. 인간의 모습을 훔치면 인간과 같이 머리통이 약점이다.
쓰러진 놈들의 머리통에서 걸쭉한 보라색 액체가 바닥에 흩뿌려졌다.
“전원 사격.”
일반 병력을 지휘하는 사람이 외쳤다.
곧 도심 한복판으로 화끈한 화력이 쏟아졌다.
요새 경찰은 소총 장비가 필수다.
그들이 갈기면 갈기는 대로 도플갱어가 쓰러졌다.
몇몇, 다른 놈보다 발이 빠르거나 움직임이 다른 놈은 내가 쐈다.
도플갱어의 전술은 간단하다. 썩은 사과 속에 멀쩡한 자두를 숨기는 전법이다.
한 마리만 아군 사이로 들어오면 지는 셈이니까.
“긴장 풀지 마!”
지휘관이 외쳤다.
잘하네.
두두두두두.
한창 총질 중인데, 머리 위로 헬기가 날았다.
홀로 인해 생긴 교통 체증 때문이었다.
“가지가지 하네.”
귀태 형이 툴툴댔다.
뭐, 요새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돈 많은 작자들은 서울 시내에서 헬기 착륙장을 만들어 타고 다닌다. 택시 헬기도 곧 도입한다는데, 그걸 누가 타고 다니려나.
나도 모르겠다.
그렇게 세 시간가량 총기 난사를 하니, 홀 클로징이다. 인베이더가 더 나오지 않았다.
한숨 돌릴 틈도 없었다.
“다음 작전이다.”
방탄 헬멧 통신기로 팬더 대리가 말했다.
“대리님, 저 이제 막 끝났는데요?”
“다음 건 쉬워. 잠복이야.”
“혼자 가요?”
“아니, 3급 사원 우미호랑.”
통신은 귀태 형도 같이 들었다.
화르륵.
열기가 느껴져 옆을 보니, 귀태 형이 눈에서 불을 뿜었다.
“나도 같이 가.”
“아니, 방귀태 사원은 복귀. 보고서 작성해야지.”
팬더 대리의 말에 귀태 형의 눈에는 불꽃 대신 물기가 생겼다.
“안 돼. 우리 미호랑 사선 넘지 마.”
이 형은 머릿속에 뇌 대신 우동 사리가, 아니지. 연애 세포가 가득한 거겠지.
좋게 보자, 좋게.
난 환복한 뒤 곧장 작전 장소로 향했고.
“편의점 직원으로 잠복해.”
“내가?”
“내 얼굴은 너무 눈에 띄니까.”
우미호의 말이 맞았다.
“그리고 난 증거 찾아서 영장 발부까지 해야 하니까. 이게 효율적이야.”
틀린 말은 아닌데,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네.
어쨌든 그렇게 편의점 잠복을 시작한 거였고.
현재.
달려드는 복돌이 새끼가 칼을 들고 있길래 손목을 꺾고 몸을 반 바퀴 돌려 목 뒤를 후렸다.
꿀잠 목덜미 후리기다.
한두 번 해 본 게 아니어서 힘 조절은 일도 아니었다.
“죽이진 않았네. 장족의 발전이다.”
우미호가 말했다. 내 귀에는 비아냥거리는 거로 들렸다.
“체포가 임무라며?”
“잘했어.”
나 진짜 기분 이상해. 얘가 칭찬하는 거 같긴 한데, 기분이 나빠.
귀태 형. 형은 얘가 왜 좋은 거야?
난 이해할 수 없었다.